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전도활동


바울은 거기를 떠나서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는데, 그는 이방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고, 그의 집은 바로 회당 옆에 있었다.


회당장인 그리스보는 그의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 믿는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고린도 사람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서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렀다(행 18:7~11)


[해설]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바울과 아굴라는 모두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한 집에서 머물면서 함께 일을 하였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고린도로 내려온 다음에는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유대 사람들에게 밝혀 증언하였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반대하고 바울을 비방하였기 때문에 바울은 유대 사람들의 회당을 떠나서 이방 사람들의 회당으로 갔다. 이때 만난 사람이 디디오 유스도라는 이방 사람이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회당장인 그리스보는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주님을믿는 신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을 하셨다. 주님이 바울과 함께 하시므로 아무도 바울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러한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러 다녔다.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일을 하던지 개의치 않고 담대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며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게 된다. 바울이 바로 그런 믿음의 멘토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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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과 믿음의 증거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24~31)

 

 

-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면서 한 말이다.

아덴에는 우상이 가득 차 있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 그리스도인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예수와 부활을 전하고자 했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은 전에 있지 않고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의 섬김을 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는 분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 수명과 삶을 인정받았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떤 용도로 쓰려고 하시느지

그 뜻을 깨닫고 자신의 소명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회개라하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공의를 가지고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로 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로 사람들에게 믿음의 증거를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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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석방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치안관들이 로마 시민인 우리를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은 채 공공연히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내놓겠다는 겁니까? 안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석방해야 합니다. 관리들이 이 말을 치안관들에게 전하니,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치안관들은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데리고 나가서, 그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청하였다.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떠났다.(행 16:37~40)


-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회개한 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전도를 한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빌립보라는 도시에 갔을 때, 그곳에서 점을 치는 여자를 만났다.

 

그 점치는 귀신 들린 여자는 종으로서 점을 칠 줄 알아 자신의 주인들에게 커다른 이익을 주고 있었다. 그 여종은 바울의 일행이 예수님을 전도하는 것을 보고 쫓아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하면서 괴롭혔다. 바울이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은 사도였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권능을 받아 귀신을 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명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이 그 여자 점장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 점장이의 주인들은 자신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관원들에게 데리고 갔다.

 

주인들은 바울을 고발하기를, "바울 일행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고 했다.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를 때리도록 명령했다. 그 후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를 석방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때 바울이 말했다.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고 와서 그들을 위로하고 빌립보 시를 떠나도록 요청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는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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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 대한 구원

 

 


많은 논쟁을 한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 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행 15:7~11)


- 사도행전 제15장에서는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제자들과 신도들이 예루살렘에서 모여 신앙에 관한 회의를 한 것이 바로 예루살렘 회의이다. 유대에서 온 몇 사람은 신도들에게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그곳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을 만나 설명을 하도록 했다. 이때 신도 몇 사람이 이방 사람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드로가 이때 한 말이다. 이방인들도 자신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방인들도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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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안


가을사랑



갑자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사람은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하늘이 까맣게 보이고, 머릿속은 하얗게 백지장이 된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우왕좌왕하게 된다. 밥맛도 없어지고, 힘이 쏙 빠진다. 


그런 상황에서 불안감은 증폭된다. 아주 민감하게 된다. 신경이 날카롭게 된다. 주변에서 누가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해도 과민반응을 보인다. 술을 마시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은 상황이 된다. 옆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일이 해결되고, 상황이 호전되면 갑자기 힘이 생기고 하늘이 하얗게 보인다. 머릿속이 제대로 차게 되고, 움직이게 된다. 힘이 솟아 오른다. 밥맛도 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도 하게 되며 웃음도 되찾게 된다. 지옥에서 빠져나와 순간적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기 마음 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드나드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고, 마음이 지옥처럼 된다.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문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타의에 의해서 자꾸 지옥에 빠지거나, 지옥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옥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마음을 훈련시켜야 한다. 수양을 해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하게 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많은 지옥체험을 하게 된다. 지옥이란 자꾸 빠지게 되면, 비록 그곳에서 탈출해 나온다고 해도 몸과 마음이 상처를 주게 되고, 지옥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지옥이란 음습하고, 우울하며,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그런 흔적과 자취를 많이 지니고 있으면 그 사람은 보이지 않게 지옥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살면서 자꾸 천국체험을 하게 되면 그는 보이지 않게 천국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모든 근심과 염려,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담대해지다. 그런 믿음을 가져야 영혼이 구원받게 되고, 구원을 받아야 진정한 천국에 가기 전이라도 현실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믿음 - 소망 - 사랑 이라는 바울의 등식과 같이, 믿음 - 구원 - 평안 이라는 새로운 등식을 생각해 본다. 살면서 우리는 이런 영혼의 평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된다. 마음의 평안이 없는 사람은, 살아도 지옥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얻어도,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도 마음의 평안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고통스럽다. 지옥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버리고 평안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한 상황이 되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기도해야 한다. 불안에 떨고 있어봤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물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경영하지 않으면 인간의 노고는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보다 신실한 믿음의 반석 위에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그리고 그 믿음 위에 우리의 영혼을 구원 받자. 그러면 현실에서 지금 이 시간 참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연약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명을 다한 것이다.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평안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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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2)

 

가을사랑

 

 

돈은 눈에 보인다. 권력은 손에 잡힌다. 명예는 당장 카메라의 섬광을 몸에 비치게 한다. 정욕은 일시적으로 짜릿한 충족감을 준다. 수십억을 들여 만들어놓은 호화주택은 마치 로마시대의 귀족같은 신분상승의 대리만족을 준다. 모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육체적인 감각을 자극시키고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더군다나 믿음이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는 공허한 환상이나 거짓말로 들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증명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그것은 증명이 되지 않을 뿐이다.

 

사랑이나 바람을 눈에 보이게 손에 잡히게 증명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한 증명은 비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증명하려고 시도되지만 완벽한 물질적이고 과학적인 증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러한 증명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공연한 논란거리만 제공할 뿐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은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린도전서 2:14~16).'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서는 올바른 사람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교육을 받고 도덕과 윤리의식으로 무장을 해도 그 사람은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을 뒤집고 배신하며 죄를 짓고 타락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정치인들, 공무원, 기업인들이 그랬다. 일반사람들이 그들에게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마저 저버리고 속으로 타락했으면서 겉으로는 최고의 봉사자, 선행자로 찬사를 받고 있었던 사례가 많았다. 그게 인간이 교육이나 도덕, 노력으로 할 수 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린도전서 2:13).

 

그리고 믿음이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시간 기도를 하여야 한다. 기도를 통해 묵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의와 나라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그 기도는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오랜 시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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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1)

 

가을사랑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믿음의 개념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누구인지? 하나님의 무엇을 믿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무엇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믿는다는 사실 만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선한 것으로 착각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사람이라는 쓸데없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우월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말과 행동이 달라 위선적인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본연의 일에 소홀하고, 가정에 충실치 않으며 현실을 무시하고 생활하는 폐단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추어 입장에서 기독교 신앙생활에 대해 나름대로 느낀 소감을 적어보기로 한다. 신학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도 아니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아주 평범한 입장이라 이러한 글을 쓰는 것에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실력에 한번쯤 체계적인 생각을 해보는 것은 나로서도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에는 믿음의 알맹이를 다음과 같이 특정시키고 있다. (1)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God the Father Almighty),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3) 성령(The Holy Ghost)를 믿는다는 서약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성자, 성부, 성령을 믿는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제왕적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존재에 대해 인정을 하지 않는다면 신앙은 있을 수 없다. 오직 과학만능주의에 서게 된다. 자연과학에 따른 법칙만을 인정하고 진화론만을 수용하게 된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원시상태에서 점차 진화되었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며, 모든 현상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결정되고, 자연의 법칙에 따라 천체만물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창조론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믿음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토양을 만들어야 생긴다. 자신의 정신적인 토양 위에 믿음의 씨앗이 떨어져야 믿음이 생기고 자라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갑자기 믿겠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믿음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길 여지가 전혀 없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믿음이 뿌리를 내릴 환경이 필요하다. 그 환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만들어진다.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과 고집, 물질, 취미, 집착을 모두 던져 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 백지상태가 되어야 믿음은 그 백지위에 새로 그려지는 것이다. 믿음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우상과 배치된다. 우상을 만들어 그곳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주고 있는 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연약한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다. 우상을 깨뜨려버리고, 우상보다 하나님을 앞세울 때 믿음은 가능하게 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능, 교육으로 인해 얻은 지식, 이성적 판단, 개인의 주관을 모두 그대로 둔채 그 위에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은 개인적인 주관에 의해 왜곡되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되며, 보다 더 현실적인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유용한 병기로 둔갑하며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을 오히려 방해한다. 자칫 위선자가 갖추려고 하는 도덕적 방패역할을 하는데 그치게 될 위험이 있다.

 

믿음의 씨앗은 누군가가 뿌려주어야 한다. 혼자서 그 씨앗을 얻어 자신의 영혼에 뿌려 믿음이 싹트게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전도가 중요하다. 영혼을 구하기 위해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는 행위가 전도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전도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양을 키우라고 명령하셨다.

 

씨앗이 뿌려져 자라기 시작하는 믿음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어가면서 자라게 된다.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믿음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인간은 소망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축복을 받게 된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소망은 인간세상에서의 물질적인 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출세나 명예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면 일시적으로는 소망을 이룬 것 같기도 하고, 행복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아무리 많은 부를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도 그 권력이 십년을 넘기지 못하며 나중에 늙고 힘이 떨어지게 되면 높은 권력에 있었던 만큼 반비례하여 더 낮게 추락하고 만다. 지나간 부귀영화의 시절은 한 여름의 꿈처럼 느껴지고 남아있는 인생의 길이 더 초라해지고 비참해진다. 아무리 과거이야기를 해봤자 힘이 떨어진 사람의 이야기는 공허한 메아리로 낙엽처럼 땅 위를 뒹굴고 만다.

 

겉사람은 고생을 하고 병이 들고 늙고 고통을 받아도, 속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나라에 속하여 당당하고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게 되는 것이 커다란 소망인 것이다. 그런 속사람은 거듭나게 되고, 죄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과 축복, 은혜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도 하셨지만,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경고도 하고, 나아갈 길을 밝혀주셨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 2:9)' 하나님의 지혜는 은밀한 가운데 있으며, 곧 감추어졌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의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이다. 그것은 만세 전에 정해져 있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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