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활성화 방안

 

1. 전도를 하기 위한 기본 자세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첫째, 언제 어디서나 전도를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둘째,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셋째, 열매가 있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전도하여야 한다. 넷째, 전도를 시작해서 전도가 되고, 교회로 인도한 이후에도 그 사람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2. 전도에 있어서 성공하기 위한 방법

 

가. 전도가 어렵고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고방식과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물론 전도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미신에 빠져 있거나 하나님 이외의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다.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당장 돈이 생기거나 이익이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전도에 성공한 사례를 보면 누구든지 사명감을 가지고 전도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전도를 해야 한다.

 

나. 전도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시는 사업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전도를 해보면 전도의 열매는 개인의 노력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성과는 결국 주님께서 전도가 되어 그 사람의 영혼을 구원받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러면 전도가 되고,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며, 교회는 부흥된다.

 

다. 전도는 많은 경험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을 설득시켜 교회로 인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고, 현재 처해 있는 실정에 맞게 전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온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더 교회에서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전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전도 경험을 공유하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특히 그 지역의 특성과 지역민들의 특수한 생활환경,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서 지역에 맞는 맞춤형 전도활동을 해야 한다.

 

3. 구체적인 전도활성화방안

 

가. 구역내 잃은 양, 숨은 양을 본격적으로 찾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지구역장 회의에서 구체적인 전도계획을 토의하고 전도방안을 마련한다.

 

나. 한달에 한번씩 지구역장회의에서 교구전도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토의한다.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교구전도방안을 발표하도록 하고 토의한다.

 

다. 지구역장회의에서 평신도 한 두 사람을 참석시켜 전도간증을 발표하도록 한다.

 

라. 교구 전도일지를 작성하여 기록으로 남긴다. 관내 교구의 지역적 특성과 동향, 교구전략등을 기록하여 사역자가 바뀌는 경우에도 활용하도록 한다.

 

마. 교구 인터넷 카페를 별도로 만들어 전도과정을 기록해서 공유하도록 한다. 사진을 많이 찍어 올려 놓는다.

 

바. 교구에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모아 동호회를 결성하도록 한다.

 

사. 교구에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기 위한 상담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중보기도를 열심히 해준다.

 

아. 교구에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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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니 엘 서

 

Ⅰ. 구조

 

다니엘서는 두 주요 부분으로 나뉜다. 1~6장은 바벨론의 통치 아래 유배에 관한 이야기이고, 7~12장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환상에 대한 내용이다. 유다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마침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2차 포로 사건이 있은 지 11년 후(주전 586년)에 유다는 3번째 침략을 받고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포로가 된 지 19년이 지난 때였다.

 

다니엘의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God is my Judge), 또는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God is Judge)란 뜻을 가지고 있다. 에스겔은 다니엘을 노아와 욥과 함께 어려운 시대에 의를 지킨 경건한 인물의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다니엘과 동시대인인 에스겔이 다니엘을 높이 평가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직접 다니엘의 예언을 인용하심으로 다니엘서의 진정성을 입증해 주셨다.

 

다니엘은 유다 멸망 전 19년 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다. 그는 바벨론에 살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유다가 비록 바벨론에게 멸망을 했지만, 여호와께서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다니엘을 통해 알려주셨다.

 

다니엘은 예루살렘 성에 있는 집에서 살다가 약 15세가 되었을 때에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다. 다니엘서 1-6장에는 다니엘과 관계된 유명한 여섯 가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Ⅱ. 내용

 

1. 다니엘과 친구들은 바벨론에서 인정받지만 신실함을 잃지 않았다.

 

2.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그 의미가 다니엘에게 계시된다.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을 예언한다.

 

3.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버리기보다는 순교에 직면하지만 구원을 받는다.

 

4.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두 번째 꿈을 해석한 후 하나님을 찬양한다.

 

5. 다니엘이 글을 해석한 후 하나님께 도전하던 벨사살 왕은 죽는다.

 

6. 다니엘은 하나님을 포기하는 대신 위험에 처하지만 구원을 받는다.

 

7. 하나님은 꿈에서 다니엘에게 연속되는 왕국들을 보여 주시고, 이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성도들을 보여 주신다.

 

8. 다니엘은 그리스 제국에서 등장하여 결국 하나님에게 멸망하는 한 독재자에 대한 환상을 본다.

 

9. 다니엘이 이스라엘을 위해 회개기도를 한 후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독재자가 정복당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10. 한 천사가 나타나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에 백성에게 일어날 일을 보여 준다. 안티오쿠스 4세까지의 역사에 대한 개괄은 의인들의 최종 승리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진다.

 

Ⅲ. 신학적 주제

 

1. 하나님 나라

 

다니엘은 역사 속의 하나님의 통치를 연속적인 네 나라들과 이어지는 다른 종류의 나라의 설립이라는 도식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은 다스리는 분이다. 하나님은 왕들에게 권력을 주신다. 다니엘은 왕권뿐 아니라 신약에서 중요하게 되도록 발전할 그분의 왕국도 알고 있었다.

 

2.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통치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소통은 두 세상 모두에 친근한 인자 같은 이라는 인물에 의해 진행된다. 인간의 높은 지위는 하나님께 대항하는 가장 최악의 죄로 인해 부패될 수 있다. 에덴동산의 죄는 왕들의 교만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3. 메시야

 

예수와 복음서가 인자를 재해석한 것이 정당한 이유는 다니엘서에서 인자 같은 이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그 적절한 위치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지배 아래서 통치 책임을 담당하는 인류에 대한 포괄적인 묘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자 예수는 다른 인류가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해냈다.

 

4. 하나님의 신실함과 인간의 신실함

 

다니엘서는 구약 전체의 메시지, 성경 전체의 메시지와 잘 들어 맞는다. 하나님은 악과 전쟁을 하면서, 악에 승리한다.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통치함으로써 결국 모든 인간적인 악을 물리칠 것이다.

 

Ⅳ. 나의 의견

 

원래 묵시문학의 강조점은 미래의 사건에 있는 것이나 다니엘서는 현재의 사건으로 시작하고 있다.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에 박해를 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다니엘의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히 서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다니엘은 중재자, 곧 공동체를 대신하여 효과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역할을 한다. 다니엘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부패한 세상 제국들을 심판할 거대한 뜨인 돌, 참다윗일 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 속에 인간성과 함께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만 드릴 지위를 결합하고 있는 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본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메시야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고, 권세와 영광 가운데서 만민의 섬김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메시야 사상은 대단히 진전된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과 재림을 통하여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신약의 교훈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경 속에서도 헌신된 성도들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시는 사역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로 인해 징벌을 받고 있는 기간에도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가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악을 영원히 멸망시킬 것이라는 이야기는 신약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은 지상의 사역 기간 동안 사단과 싸우셨다. 그러면서 끝내는 십자가 위에서 악의 세력들을 물리치셨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예견적인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성될 것이다. 미래의 승리를 다루고 있는 요한계시록은 다니엘서를 자주 인용함으로써 양자 간에 긴밀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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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과 새예루살렘

 

가을사랑

 

Ⅰ.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의 방법

 

일반적으로 천년왕국은 인간의 구원이 쉽고, 전체적이며, 궁극적이고, 현세적이며, 승리적이라는 점에 입각하고 있다. 천년왕국 사상은 초기교회 시기에 등장하였으며, 그 후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무천년설 등의 이론으로 변화하면서 발전하였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중재림과 비밀휴거를 믿지 않는 입장이다.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우면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큰 환란이 있을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환란을 겪을 것이고 환란의 마지막에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적그리스도와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고 이 땅에 천년왕국을 건설한다는 것이주된 내용이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다. 천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성도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강조한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인류의 역사를 일곱 개의 시대로 구분한다. 순결시대, 양심시대, 인간통치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교회시대, 왕국시대로 나누고 있다. 이중에서 주님의 재림 후 천년의 기간인 왕국시대를 천년왕국의 기간으로 보고 있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지상재림 전의 공중재림과 휴거 그리고 7년이라는 기간으로 상정된 환난의 기간을 말하고 있다. 세대주의는 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스라엘과 교회를 지속적으로 구분한다. 이 땅에 세워질 천년왕국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나라로 그것은 구약의 다윗 왕국의 회복을 의미한다.

 

후천년설은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의 끝에 있다고 말한다. 후천년설에서는 이중재림이나 휴거, 7년의 환난기간도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천년왕국과 그의 종말, 재림과 최후의 심판만을 인정한다. 천년왕국은 인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 역사 안에서 온 세상이 복음화되고 그리스도의 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올 것이며, 그러한 시기는 문자적으로 천년이라기보다 천년을 넘어서는 긴 기간이라고 본다. 현재 교회 시대 동안에 사단이 결박당하고 있는 것과 또한 현세대 기간 중 이미 죽은 신자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통치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천년왕국은 복음을 받아들인 변화된 성품의 사람들과 그들이 성취해낼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업적들에 의해서 이 땅에 이루어질 의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 자체를 부인하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천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이라기보다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예수님의 재림은 바로 최종적이며 완전한 상태의 시작이며, 재림에 뒤이은 지상적인 천년왕국 같은 것은 없다고 본다.


Ⅱ. 천년왕국의 내용

 

1. 사탄의 수감

 

구원이라는 개념의 하나는 지적이고 영적이며 개인적인 성취로서의 구원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건설하게 될 지상적인 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으로서의 구원이다. 후자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최후심판까지 이어질 천년왕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천년왕국 신앙은 초기교회 때부터 보편적인 신앙이었다.

 

사도 요한이 보았던 천년왕국은 새 하늘과 새 땅,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 하나님 나라를 향한 꿈이었던 것이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멸망하여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진다. 마귀 사탄도 붙잡힌다. 천사가 내려와서 무저갱 열쇠와 쇠사슬로 용을 잡아 무저갱에 가둔다. 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두어 놓은 후, 천년이 다 차자 잠간 풀어놓는다. 이러한 시험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추리고 골라낸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계 20:1~3)>

 

천 년 동안 지구의 사람들은 다시 들풀처럼 지구에 가득하게 된다. 이들은 사탄의 유혹을 받지도 않고 사탄의 권세 아래 있지도 않았으므로, 죄도 짓지 않고 병도 없이 번성하여 지구를 가득 채우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사탄의 시험도 영향력이 없는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지 아닌지, 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 마음의 결정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잠깐 동안 사탄을 무저갱에서 놓아준다. 이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추리고 골라내신다.

 

이 시험은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이다. 우리는 모두 사탄의 유혹을 받고 훼방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스스로 마음에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나왔기 때문에 진실하고 참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순교를 했고 또 유리 바다를 통과하여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천 년 동안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런 어려움이나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탄을 잠깐 놓아서 그들을 시험하게 하여,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배반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2. 심판하는 보좌들과 첫째 부활

 

첫째 부활에는 7년 환난 동안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먼저 일어난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한 사람들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첫째 사망은 육신이 죽는 것이고, 둘째 사망은 영혼이 죽는 것이다. 영혼의 죽음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세세토록 괴로움을 당하는 사망을 말한다.

 

그러나 첫째 부활에 참석한 사람들은 비록 육은 죽었지만 영은 하나님께 영접을 받는다.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이다. 그 외의 죽은 사람들은 천 년이 다 차기까지 일어나지 못한다. 창세 이후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죄인들은 음부에 있다가 천년왕국에 참예하지 못한다. 그 후 천년왕국이 지나면 부활하여 심판을 받은 다음, 이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영원히 던져진다. 그러므로 죄인들의 부활은 심판과 멸망을 위한 부활이 된다. 그들의 부활은 첫째 부활에 참예한 사람들에 비교할 때 하늘과 땅의 차이인데, 그것은 곧 영원한 삶과 영원한 죽음의 차이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4~6>

 

3. 옥에서 놓여난 사탄

 

천년왕국의 기한이 다 차고 땅에는 사람들이 모래같이 번성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무저갱에서 놓아 준다. 그러면 사탄은 사람들을 유혹하면서 백성들을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라지 같은 인생들을 불로 멸하여 버린다.

 

곡과 마곡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백성 중에서는 천 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부활한 성도들의 살아 움직임과 다스림을 보고서도 마귀의 꾐에 넘어가 또다시 마귀 편이 되어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 중에서도 시험을 거쳐 또 골라낸다.

 

사탄의 편에선 모래같이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이 거하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포위한다. 이제는 성 안에 있는 사람들과 성 밖에 있는 사람들, 두 편으로 분명히 갈라진다. 알곡과 가라지로 갈라지고, 양과 염소로 갈라진다. 하나님께서는 성 밖에 진치고 있는 가라지 같은 인생들을 불로 멸하여 버리신다. 그들의 영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타는 못으로 내려간다. 그들을 유혹하던 악의 삼위일체, 즉 사탄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불 못으로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을 당할 것이다.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7~10>

 

4. 흰 보좌 심판

 

땅과 하늘이 간데 없이 사라진 후 심판대가 나타나게 된다. 심판이 시작되자 그 앞에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서 있다. 심판대에는 책들이 펴져 있는데, 그 책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땅에서 행하였던 행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책에 이름이 없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불 못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롣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리라 -계 20:11~15>

 

Ⅲ. 새 예루살렘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 나라는 영원히 새 것이다. 이곳은 낡지도 쇠하지도 않으며 더러운 것도 없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우리 모두 영원한 새로움과 영원한 청춘을 가지고 주 앞에서 살게 된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새 예루살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이다.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들어가서 살게 된다. 일반적인 하나님의 선민들인 유대인들과 천년왕국이 지나고 난 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새 예루살렘 성 밖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산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간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화로운 자리에서 같이 호흡하며 같이 나누며 살게 되는 마지막을 의미한다. 새 예루살렘이란 새로운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라는 뜻이다.


영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보통 명사적인 영혼과 추상명사적인 영혼이 있다. 보통 명사적인 영혼은 흙으로 된 몸을 가지고 있는 생물이다. 흙으로 된 몸을 가진 생물은 땅에 속한 자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 이 영혼은 영적인 몸을 가진 천사들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추상명사적인 영혼은 몸이 없는 영혼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영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몸이 없는 영혼도 죽은 것이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산자의 나라이다. 몸이 없는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부활하여 하늘에 속한 몸을 입어야 한다.

 

나무의 수한은 길면 천년정도이다. "너희가 그 날에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으리라"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다(이사야 65:22).

 

어느 그 날들에는 지구 땅 사막이 꽃동산이 되며, 사자와 양들이 함께 뒹굴며 뒤놀며 어린 아이가 뱀의 굴에 손을 넣어도 흙을 먹고 사는 뱀이 물지 않을 것이다(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이런 날들의 때는 계시록 21:4에서 말씀하시는 눈물과 아픔도 없는 영원한 주님의 새 예루살렘 영원한 도성이 내려오기 잠시 전, 천년이 주님에게는 하루 같을지라도, 이 땅에서 주님예수께서 통치하시는 옛 땅 지구에서 이루시는 날들이다.

 

<나 요한은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되었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 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그 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내시며 다시는 사망이나 슬픔이나 울부짖음이 없고 고통 또한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은 다 사라져 버렸음이라."고 하더라 -계 20장>


성경에는 새 예루살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계 21:10~11)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자녀인 인간이 영원히 거처할 아름다운 천국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요한계시록 21:2에 보면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한다.


새 예루살렘 성은 눈물, 슬픔, 고통, 사망, 질병이 없고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곳이다. 천사들이 가장 평안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예비한 것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 성은 천국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므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빛 자체인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주님께서 영광의 빛을 비추며 계신 곳이므로 어두움이나 밤이 없으며 악이나 사망, 원수 마귀가 있을 수 없다.


요한계시록 21:11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고 되어 있고, 21:23에는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되어 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는데 정금은 불순물이나 다른 요소가 섞이지 않은 순금으로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적으로 부귀와 권세를 의미하는 정금으로 성벽을 만드신 이유는 새예루살렘이 변치 않는 믿음으로 천국을 소망하며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곳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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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스 겔 서 

 

Ⅰ. 구조

 

에스겔서는 바벨론에서 행한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구약 가운데 유배 시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책이다. 에스겔서는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간 주전 597년에서 5년이 지난 해인 주전 593년에 예언을 선포하고 있다.

 

에스겔서의 구조는 세 주요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신실하지 못하여 예루살렘에 임한 저주에 집중하고, 둘째, 이방 나라들을 향한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셋째, 주요 회복과 구원 환상을 다루고 있다. 여호와 자신의 백성인 유다를 향한 심판 메시지에 이어 여호와께서는 모든 열방의 심판자도 되심을 보여 주는 더 넓은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네러티브 구조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요소는 에스겔이 직접 보고하고 있는 것들 간의 연관성들이다. 1~7장 선지자와 장차 임할 예루살렘의 운명, 8~11장,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환상, 12~15장, 에스겔, 장로들, 선지자들, 16~24장 알레고리와 비유, 25~32장 열방 신탁, 33~39장 예루살렘의 멸망, 구원, 신탁, 40~48장 새로워진 도성과 성전, 땅에 대한 환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Ⅱ. 내용

 

1. 선지자와 장차 임할 예루살렘의 운명(1~7장)

에스겔은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포위와 멸망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네 가지 상징적 행동들을 수행하고 있다. 에스겔은 상징적인 행동과 개인적인 고난을 결합하고 있으며, 그의 메시지 가운데 가시적인 측면이 좀 더 표현되고 있다. 에스겔은 소수의 남은 자들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2. 예루살렘의 죄에 대한 환상(8~11장)

바벨론의 관점에서 본 예루살렘의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신중하게 구성되어있다.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시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남은 자, 즉 포로로 잡혀 유배된 자들을 살려주실 것이라는 또 다른 재확신의 말씀이 등장한다.

 

3. 에스겔, 장로들, 선지자들(12~15장)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그 분은 정의를 드러내신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정결하고 새로워진 백성들을 창조하려고 하시기 때문에, 형벌이 이야기의 전체는 아니다. 에스겔의 메시지는 대중적인 지혜로든, 자기 상상력으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서든, 혹은 점성술에 의지해서든 심판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반대하고 있다.

 

4. 알레고리와 비유(16~24장)

백성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에스겔은 익숙한 주제들을 비꼬고 있다. 자기만족에 취한 백성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5. 열방 신탁(25~32장)

열방 신탁을 담고 있는 일반적인 이유는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권능 안에 있으며 그 분의 법에 순종하여 정의롭게 행동할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6. 예루살렘의 멸망, 구원 신탁(33~39장)

에스겔은 선악간의 최후의 대결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실한 백성에게 승리와 구원을 베푸실 것이라고 말한다. 

 

7. 새로워진 도성과 성전, 땅에 대한 환상(40~48장)

에스겔서는 그 중심에 갱신된 성전을 갖춘 미래의 이스라엘에 대한 환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성전 자체가 묘사되고 공동체의 삶을 위한 규례들이 주어지며, 끝으로 환상이 온 땅으로 확장되고 있다. 

Ⅲ. 신학적 주제

 

1.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그들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다. 유배자들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 분은 반역자들을 정화시키시며 그 땅에 신실한 백성을 세우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보편성은 그 분은 유다만의 왕이 아니라 바벨론의 왕이기도 하시며, 모든 곳에서 왕이 되신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3. 죄, 심판, 정화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정화 혹은 제의적 정결이다. 이런 제의적 부정의 제기는 그 자체로 심판을 가리키는 정화일 수 있다.

 

4. 구원 : 급진적인 새로운 시작, 시온과 에덴

시온에 거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왕이 되신다. 이는 유다와 제사장적 신정체제로의 복귀보다 훨씬 위대한 구원에 관한 소망을 가리킨다.

 

5. 정치적/ 형식적, 영적 종교: 선지자와 제사장인 에스겔

에스겔은 구약의 정치 신학과 영성 신학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은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직면한 지상의 체제가 주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왕국을 세우실 것임을 의미한다.

 

Ⅳ. 나의 의견

 

에스겔서는 메시야 사상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메시야는 이스라엘 높은 산에 숨겨진 유다 왕족의 백향목 가지로 묘사되며, 의를 가지고 오는 자로 표현된다. 묘사된 메시야는 회복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고, 진실한 목자가 되심을 나타내신다. 결국 메시야는 구원의 중보자로서 성령께서 주시는 새 영을 통해 이사라엘을 정결케 하며, 구원을 주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분으로 소개되고 있다.

 

에스겔이 구약신학에 특별히 기여한 것 중에 하나는 철저한 윤리적, 영적 갱신이라는 선지자의 신학을 수용하고 그것을 하나님 백성의 지속적인 정치, 종교적 삶을 위한 환상에 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스겔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시며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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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헌법

 

Ⅰ.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헌법 연혁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주사거리에서 일어난 오순절성령운동은 1914년 하나님의성회(ASSEMBLES OF GOD)라는 교단을 형성하게 하였다. 대한민국이 독립국가가 되면서 미 하나님의성회 동양 선교부장 오스굿 목사가 내한하여 오순절 교단의 공식적인 선교가 시작되었다.

 

1952년 초대선교사 A. B. 체스넛 목사가 부임하여 이미 오순절신앙운동을 펼치고 있던 박성산 목사, 배부근 목사, 허흥 목사 등과 더불어 1953년 4월 8일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소재 남부교회에서 본교단을 창립하게 되었다. 창립 당시 헌법은 미 하나님의성회 헌법에 준한 중앙집권제였다.

 

그 후로부터 지금까지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 놀라운 부흥과 성장을 거듭한 결과 단일교회로서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본교단에서 배출하게 되었다. 2006년말부터 교단 대통합안이 대두되었다. 2009년 5월 18일 제58차 정기총회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역 총회로 인정하는 법이 공포되었다.

 

Ⅱ. 개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헌법은 총칙, 신조, 교회 및 교인, 목사, 전도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집사, 회의, 치리회, 지방회, 총회, 위원회, 이사회, 재정, 포상 및 징계, 부칙 등 모두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Ⅲ. 구체적 내용

 

제1장 총칙

 

본회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라 칭하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여의도에 본부를 둔다. 본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도록 양육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성령 충만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장 신조

 

우리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우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규범으로 믿는다. 우리는 신 구약 성경을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꾼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기록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오, 정확무오하여 신앙과 행위에 절대적 권위가 있는 법칙으로 믿는다. 우리는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며, 자신 스스로를 영원 지존자로서, 천지만물의 창조자로서, 인류의 구속자로서 계시하셨음을 믿는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삼위 중 한 위로서, 그 본체와 능력과 위엄과 영광이 성부, 성자와 동일하시다.

 

제3장 교회 및 교인

 

교회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간을 정하여 일정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의 모임을 말한다. 당회가 구성된 교회를 조직교회라고 한다. 교인은 공동예배 출석과 십일조외 헌물 및 전도와 봉사에 참여하며 교회의 치리에 복종하여야 한다.

 

제4장 목사

 

목사의 자격은 헌법 제37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제38조는 목사를 담임목사, 부목사, 기관목사, 전도목사, 원로목사, 공로목사, 무임목사, 사직목사, 은퇴목사, 선교사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제5장 전도사

 

전도사는 지방회에서 임명을 받아 전도인의 사명을 다하여 교회를 가르치고 권면하여 예배를 인도하는 신성한 직분을 말한다.

 

제6장 장로

 

장로는 교회에서 피택, 지방회의 안수로 장립되는 봉사직이다. 담임교역자의 목회를 협력하여 치리하고 봉사하며 교인들의 신앙 향상을 위하여 힘쓰되, 특히 병자와 고난당한 자를 위하여 심방하고 충성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제7장 안수집사

 

안수집사라 함은 교회의 택함을 받아 담임 교역자를 협력하여 교회를 돕는 귀중한 직분을 말한다.

 

제8장 권사

 

권사는 여자로서 안수 받은 항존직이며 담임목사를 받들어 교회를 봉사하며, 교우를 심방하고 권면하며 특별히 병자와 고난당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에 힘쓰며, 신앙 향상을 위하여 덕을 세우며 충성하는 명예로운 직분을 말한다.

 

제9장 서리집사

 

서리집사는 담임목사의 임명을 받아 교회 봉사와 교인 심방에 적극 참여하는 귀중한 직분을 말한다.

 

제10장 내지 제18장 회의 및 부칙

 

제10장부터 제18장까지에서는 회의, 치리회, 지방회, 총회, 위원회, 이사회, 재정, 포상 및 징계, 부칙 등의 순으로 내부 운영기관 및 운영방법 등에 관하여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Ⅳ. 맺는 말

 

헌법은 매우 중요한 법으로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모두 헌법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 교인들은 헌법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교단 헌법은 매우 정치한 규정을 상세하게 두고 있다. 교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하게 해놓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운영방법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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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신학의 구원론

 

Ⅰ. 개요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원론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로마서는 신학적 논증(1-11장)과 윤리적 교훈(12-15장)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학적 논증 가운데 셋째 단원, ‘그리스도인의 실존 안에 사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롬 5,1-8,39)’에서 바울은 구원론을 다루고 있다.


바울의 구원론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었다는 것, 이렇게 실현된 하나님의 의가 믿음과 세례를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존 안에 이루어진다는 것과 이 의가 성령을 따르는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안에 사실로 이루어져야 기독인이 궁극적인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최초 조상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한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원은 죄와 필연적인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울은 인간의 죄와 구원에 관하여 로마서와 갈리디아서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바울 신학의 구원론(Soteriology)의 핵심은 모든 인간은 죄의 노예가 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에서 빠져나올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그것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믿는데 있다. 여기에서는 바울이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구원론에 대해 필요성, 구원의 방법, 수단, 구원의 목표, 구원의 결과에 대해 순차로 알아보기로 한다.


Ⅱ.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구원계획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되었다(엡 2:3).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철저히 거부권을 행사하신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속성 자체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의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기에 죄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의 후예인 인간은 모두 죄 아래 있게 되었고 죄를 범했다. 죄에 대하여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삶의 척도인 율법을 주셨다. 그리하여 율법이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 있어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게 되었다(롬 2,12). 그러나 사람들은 죄 아래에 있기 때문에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을 수가 없었다. 모든 인간은 심판을 받고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율법 이외의 딴 방법을 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을 위한 화목 제물로 정하신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에게 내어 준 바 되어 십자가상에서 처형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우리는 죽음을 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죽음에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를 의로 여기신다. 이렇게 화목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가 실현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이 의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개인적 차원과 민족적 차원에서 모두 성취되었다. 바울은 구약성경을 통해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버림을 받았으며, 많은 이방인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이 이 구원을 과거에 이스라엘에 대해, 그리고 오늘날에는 이방인에게 확대하였으나 그의 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한 반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모두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방인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선택성 역시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일부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확실하고 분명한 멸망의 길로 향하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바울의 해결책은 이들 가운데 일부를 구원에 이르도록 택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바울의 관점에서 볼 때 공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정죄로 나타났다. 그러나 긍휼과 은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일부 사람들에 대해 나타난 것이다. 인간은 두 길 가운데 하나를 따른다. 어떤 사람들은 진노의 그릇에서 건짐을 받아 영광을 위해 예비 되며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택하신 자들과 달리 거짓말을 믿어 심판을 받게 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신의 뜻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인간이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을 수 있는 구원을 얻지 못하였던 까닭은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기’(롬 9:32, 사 28:16) 때문이다.

 

비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는 그 날에는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의 목적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 후에 즉시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이며,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Ⅲ. 그리스도의 사역

 

성부 하나님이 구원 계획의 중심이라면 이 구원을 완성하실 핵심 주체는 성자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 버리신 부요함이란 그이 신적 특권을 말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이 받아 누리게 되는 부요함이란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사귐을 가지며, 예수님에게 속한 권리와 특권의 일부를 그와 함께 누리는 것이 포함된다. 바울이 말하는 가난함이란 예수께서 이 땅에서 겪으신 자기희생적 삶과 죄인들을 위한 처참한 죽음이 포함된다.

 

1. 속죄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새 언약의 시대에, 화목제물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 많은 백성들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죄사함이 이루어졌다. 백성들은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희생의 은총을 누리게 되었으며,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다. 하나님과 죄인들은 이제 하나가 되었다. 이것은 매년 속죄일의 희생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 때문이다.

 

2. 화목

화목이라는 단어는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기 때문에 속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통해 성취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화목의 주도권을 쥐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일부로 제시하는 신적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연합은 화목에 관한 주제의 한 특징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유익은 그 자체로서 보편적이나 이러한 유익은 복음의 메시지를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 한하여 경험되어진다. 

 

3. 구속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얻은 자유를 이음새가 없는 하나의 전체로 보았다. 그것은 이 구속이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된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복음을 통한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먼저 주신 율법을 통한 구원의 방법과 아주 독특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 수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범죄하는 인간에게 생명에로 인도하는 율법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령한 것, 즉 영적인 것으로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이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으며 생명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한 율법은 인간이 죄에 의하여 기만되었기 때문에 생명을 주는 능력을 상실하고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만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살아나는 대신에 죄가 살아났고 인간은 몸으로서 살아난 죄의 권세 하에 들어갔다. 그는 죄에 팔렸고, 죄의 몸이 되었다. 죄의 권세 하에서 죄의 몸인 인간에게 율법은 죄의 율법으로 만난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에서는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계명이 죽음으로 바뀌었고 모든 사람이 죄 중에서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죄와 죽음을 죽이고 의와 생명을 살리는 사건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일어났다. 이것은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


4. 속죄제로서 대속적 죽음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죄의 능력과 권세를 깨뜨린 사건이며 바울의 의인화된 표현을 빌자면 궁극적으로는 죄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생각하였다. 정죄는 예수님의 죽음에 근거한다.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죄의 형벌을 제거되고, 죄의 능력은 깨어졌으며, 죄의 현현은 사라질 것이다. 죄는 궁극적으로 신자가 영화롭게 될 때 사라질 것이나, 죄에 대한 추방이나 우리를 용납하심은 바울이 과거시제 동사를 사용하여 언급할 만큼 확실한 사건이다.


Ⅳ.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이 실제로 죄값을 지불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보여준다.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이 죄의 형벌을 면하게 하고, 죄의 능력에서 벗어나게 하며 궁극적으로는 죄의 현현으로부터 구원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자에게 있어서 구원의 현재적 국면과 미래적 국면을 결합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사역은 반드시 완성되어 언젠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가 됨으로 끝날 것이다.

 

Ⅵ. 성령의 사역

 

구원을 성취해 가는 대행자는 성령이다.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신 성령은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신자와 인격적으로 함께 하신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새 언약의 사역에 나타난 특징이다.

 

1. 믿음과 성령의 사역

바울은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할 필요성을 강력히 믿고 있었으나 메시지에 대한 믿음의 반응은 오직 성령의 사역으로만 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죄악된 세상에서 인간이 구원되는 도구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으로서 이것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의 예언을 통해서 약속되었으며,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을 통해서 선포되었다. 이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심과 독생자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초자연적인 소식을 말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8절에 "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람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했다.


이로 볼 때 복음은 이미 아브라함을 통하여 계시되었고 또한 약속되었다. 바울은 복음을 가르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되시는 그리스도이심 롬1:16; 고전1:24.) 하였으며 로마서 1장 2-3절에는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혈통(씨)에서 육신의몸(성육신)으로 태어나심을 강조했다.


또한 갈라디아서 3장 4-5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를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 말해서 로마서 8장 3-4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한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즉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죄있는 인간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그는 빌립보서 2장에서 말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복음)이라" 강조하였으며 더욱이 에베소서 1장 20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로마서 1장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라고 증거하였다.


그는 또한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희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했다. 죄많은 인간이 구원 받아 새 생명 얻는 길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하였다.(엡6:3913:14; 갈3:27-29.)


다시 말해서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마지막 아담 고전15:45 (참고 요5:216:3339-40,54,57,63).) 이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 롬1:2-416; 고전4:15; 엡1:12-14; 딤후3:14-17.)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능력을 행하시는 도구 및 수단이므로 바로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절대 불가항력인 하나님의 능력이다. 

 

2. 보증으로서의 성령

구원에 있어서도 성령의 내주하심은 구원의 전 과정이 성취되도록 보증하신다. 

 

3. 성령의 인도

성령의 능력은 죄와 사망의 능력과 대조된다. 후자는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여 멸망으로 이끈다. 그러나 위대하신 성령의 능력은 신자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시며, 그들에게 정해진 목적지를 향하여 반드시 인도할 것을 보증하신다. 바울은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대행자로서 성령에 초점을 맞추지만 결코 인간의 책임에 대해 무시하거나 도외시 하지 않는다. 

 

4. 성령과 율법

성령의 일반적 사역 및 특별한 인도하심에 대한 바울의 관점과 관련된 것으로 구원의 서정에 나타나는 율법의 역할과 기능이 있다. 

 

Ⅶ. 칭의


구원은 칭의로 불린다. 바울은 또한 칭의를 장차 심판을 통해 선언될 미래적 시제로 언급하기도 한다.

 

Ⅷ. 성화


칭의와 구원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부분과 전체의 상호대치는 성화에서도 나타난다. 복음에서 계시된 인간 구원의 방법은 하나님의 의에 "의"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였으며, 그는 디도서 3장 5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니" 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3장 23-26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하였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였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빌립보서 3장 5-9절에 "내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하였다.


사도행전 13장 38-3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했다.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하였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과거에 자신이 사망에 속하였던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 자처하던 자신의 잘못을 자인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하였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이며, 이 의는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의의 모든 요구를 만족시키며 인간의 소망을 완전히 채워 주신다. 이렇게 인간의 소망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켜 에베소서 2장 7-8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한다. 바로 이 의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의로와 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 롬3:21-264:255:9-10; 고전1:30; 고후5:21; 갈2:163:11; 빌3:9 (참고 벧전3:18; 요일2:1-2) 하나님의 선물 롬5:17-1910:4; 엡2:7-8 (참고 요3:164:10).) 바울의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하나님 앞에 의로 여김을 받는다.( 인간이 의로와지는 길 롬3:21-244:5-8,10:9-10; 갈3:16; 엡4:22-24.)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로 여김 받은 우리들에게 바울은 로마서 6장 13절에 "너희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지신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로마서 8장 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로 여김 받은자가 받을 은혜에 대해 말했다. 

 

Ⅸ. 영화


신자가 구원을 얻는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다. 

 

Ⅹ. 믿음과 순종


구원의 서정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신적 행위의 상호관계에 관련하여 인간의 책임에 대한 바울의 관점은 믿음과 순종으로 나타난다. 바울이 구원의 확실성에 대해 믿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구원의 미래적 국면에 대해 그것이 이미 완성된 것처럼 언급한 데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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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선교 방안


가을사랑


1. 협력과 협동의 선교


현지 교회 지도자와 협력하면서 사역을 하여야 한다. 한국 교회의 동아시아 선교는 현지 교회나 오랜 현지에서의 선교 경험과 사역을 축적시켜 나가고 있는 국제적인 선교 단체와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


2. 총체적인 전력 선교 개발


동아시아에 대한 선교 전략은 상황적인 전략이 되어야 하며 다면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의 공동체적 선교를 요청한다. 첫째, 사회 복지 시설을 통한 선교접근방법이 있다. 둘째, 전문 직종을 통한 선교접근방법이 있다. 셋째, 비거주 선교전략이 있다. 비거주선교전략이란 선교 사역이 제한되거나 닫혀진 지역 주변 자유로운 곳에 선교 교두보를 설치하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장 단기 선교 목표를 설정하여 현지 언어를 익히고 현지 교회와의 긴밀한 유대 속에서 현지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신분을 확보하며 선교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넷째, 단기 선교 전략이다.


3. 도시 선교 사역을 활성화하는 일


도시 선교는 특수한 상황적 선교 방법이 모색되어야 하며 장기적인 차원의 계속적 선교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조직적인 공동체 팀 사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4. 미전도 족속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한국 교회의 동아시아 미전도 족속 선교는 세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동아시아 교회나 선교 단체의 미전도 족속 선교에 기도나 재정 후원을 하는 간접적인 참여이다. 둘째, 특정 미전도 족속을 선정하여 동아시아 교회나 선교 단체와 협력하여 직접적인 선교 사역을 수행하는 일이다. 셋째, 한국 교회 단독의 미전도 족속 선교 사역이다.


5. 현지 교회 지도자 양성 및 재훈련 측면의 선교


동아시아 지도자 양성을 위한 한국 교회의 접근방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지 신학교에 교수 요원 선교사를 파송하여 지도력 향상에 기여한다. 둘째, 목회자를 훈련시킨다. 셋째, 선교 훈련을 시키는 일에 참여한다. 넷째, 국내에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동아시아 교회 지도자들을 참여시킨다. 다섯째, 현지에 직접 신학교를 세워 지도자를 양성하거나 국내에서 위탁하여 현지인을 지도자로 훈련시킨다. 


6. 전략지점에 선교 훈련서를 설립하는 일


국내적인 차원에서 한국 교회의 타문화권 선교 훈련을 강화시키기 위해 동아시아의 전략적인 지점에 선교 훈련소를 세우거나 위탁하여 한국 교회 선교 후보생을 훈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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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어스 선교 전략


가을사랑


네비어스는 1854년 중국의 영파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선교 현지 문화에 민감하였고 문화 속에서 변혁을 통한 토착 교회 설립을 주장하였다. 그의 선교 방법의 핵심은 철저한 성경 공부였다. 네비어스는 성경의 지식 없이는 바른 선교 방법이 나올 수 없고, 성경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자급, 자치, 자전의 토착교회가 설립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네비어스는 철저한 성경 공부의 바탕 위에서 광범위한 순회 전도, 엄격한 교회 치리, 모든 신자들에 의한 총체적인 전도 등을 주장하였다.


네비어스 선교 방법은 다음 네 가지로 분석된다.


(1) 초년 선교사들이 철저히 선교 현지 언어를 습득하도록 하고 있다.

(2) 신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 친지, 이웃을 떠나지 않고 사는 곳에 머무르면서 주변을 복음화하라는 것이다.

(3) 문화 변혁의 주체는 현지인이 되어야 하며 선교자는 조력자일 뿐이고 토착 교회의 지도자는 현지인이 되어야 한다.

(4) 토착적인 교육 방법을 이용해서 지도자 훈련을 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네비어스 선교 방법의 핵심은 자치, 자급, 자전의 토착 교회가 설립되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통한 변혁이 일어나야 하는데 선교사들은 변혁의 조력자가 되기 위해서 현지 언어, 문화를 익혀야 하며, 궁극적인 문화 변혁의 주체는 현지인 지도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캘빈 마티어 등은 네비어스 선교 방법을 비판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 형편이 어려운 선교지 상황에서 도움 없이 자립만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선교 현지 교회를 도말할 가능성이 있고, 뿐만 아니라 네비어스 원리는 토착 교회에 서구의 가치관인 개인주의 및 제도주의 등을 부식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네비어스 선교 방법은 한국 교회를 양적으로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시켰으며 이것은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선교사와 한국 교인들의 신뢰의 결과였다. 네이버스 선교 방법의 참된 의미가 왜곡됨이 없이 계속해서 창의력 있게 한국 교회의 선교 현장의 모든 부분에 적용되기를 기대한다.

 

 

[1] 21세기 포스트 모너니즘의 정의 및 교회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종래의 모더니즘 시대가 마감하면서 거대한 지적인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함은 해체주의, 축소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을 틀징으로 하는 복합적인 현대 사상을 말한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근대 사회가 이성주의에 입각해서 문화와 사회를 획일화하는 세계관이 삶을 억압하고 비인간화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해체작업과 그 결과로 말미암는 다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은 종교적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기독교와 같은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입장에 회의적이다. 또한 상대주의와 허무주의에 입각해서 규범과 신앙의 토대를 허물어뜨리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감성과 본능의 세계로 일탈하려는 욕구를 폭발시킴으로써 소비주의, 향락주의와 심미주의적 탐닉이 삶을 지배하도록 만들고 있다.


때문에 사회는 감각주의, 음란성, 무규범성, 성역 없는 상품화는 번져가고 있고, 성개방과 심지어 동성애까지 정당화하고 있다.


기독교 교회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형식을 초월한 예배를 주장하는 운동인 열린예배를 선택하고 있다.


신앙의 감성적 요소를 중시하고,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감정적이며 경험적 성격을 중시하며 초자연적인 체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주관주의, 멋대로 신앙, 개인주의와 고립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포스트모던적 분위기에 휩싸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기보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는 교회를 찾는 경향이 있다. 인간 중심적이며, 청중의 요구에 따라 축복 위주의 설교로 일관한다. 그리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교회 안에 전시장, 문화 공간 서점을 비롯한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종교다원주의를 강조하면서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며 현상이 다를 뿐 "실제는 같다"는 주장을 통해 종교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은 우리 사회와 교회에 침투하면서 사상적 혼란을 야기하고, 기존의 교회관과 구원관을 흔들고 있다.


이러한 사상으로 현대인들은 더 이상 진리는 절대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구원관에 있어서도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에서도 얼마든지 구원의 길이 있다고 믿으며, 기독교는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2] 포스트 모더니즘을 목회에 적용하는 방안


포스트 모더니즘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시대적 정신, 사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배척할 수는 없다. 포스트모던적 사상에 오염된 현대인을 구원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현대 교회는 그를 둘러싼 사상과 문화를 읽고 해석해야 한다. 만일 이일에 실패하여 대책을 정확하게 세우지 못한다면 교회는 세상에 대한 영햑력을 상실하고 무너지면서 겨우 생존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전략적으로 역이용하여 복음의 세계관을 자신 있게 제시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능함을 역설하는 것이 좋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진리 주장은 권력 싸움이므로 객관적이며 중립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학문의 객관성 비판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도 이미 어거스틴이나 루터와 칼빈도 이성과 학문이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서만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오래 전부터 학문이 중립적이지 않음을 주장해 왔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포스트모던 세계는 온갖 종류의 혼란과 분열된 ‘의견의 세계’이다. 근대시대에는 유토피아를 추구하였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 환상을 깨뜨렸는데, 그 대신 가상현실, 시뮬레이션과 해석이라는 더욱 심각한 상대주의의 환상으로 끌고 간다는 사실이다. 이때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실재 의식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이다.


기독교에는 언어에 진리를 드러내는 힘이 있고, 사랑과 관심을 표현 한다. 언어가 진리를 발견하는 통로가 된다는 통찰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제시에 매우 중요하다.


해석학은 남을 이해하기 위해 인내와 관용, 이해 의지가 필요함을 밝혔다. ‘남을 고유한 행위자 또는 능동적인 인격적 주체로 존중한다’는 해석학적 원리는 성경적 진리에 근접한다.


근대적 위기와 포스트모던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토대는 바른 사회 의식과 윤리에 입각한 건강한 공동체이다. 포스트모던 사회란 담론에 기초한 공동체이므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참다운 신뢰와 상호 존중과 사람에 입각한 공동체의 회복이다. 만약 교회가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다면 바로 이 점에서 모범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원리에 충실한 교회공동체는 유토피아를 지향하기보다 실천적인 공동체이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시대상황 속에 정확히 신앙의 원리를 찾아내어 적용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계승한 것인지 역사 전체의 흐름과 방향을 같이 하면서, 당시 자기 시대의 어떤 사상, 조류에도 희석되거나 무너지지 않으면서, 아니 오히려 이러한 다양한 사조의 조류의 영향을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뜻과 본질이 시대만 달리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신앙,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주도해 나가도록 좌표를 정확히 찍어내는 것이다.

 

포스트모너니즘과 이머징교회


가을사랑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에 대한 개념이다. 18 ~ 19세기를 풍미했던 모더니즘 사상은 이성주의, 과학주의, 합리주의를 기본으로 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이러한 시대적 사상, 행동양식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인식과 행동에서 반합리주의, 비과학주의, 감성주의 등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경향을 포스트모더니즘, 현대모더니즘이라고 한다.


이머징교회라 함은 이와 같은 새로운 사고, 행동양식에 맞추어 종래의 엄격한 권위주의, 경건주의, 합리주의에 기초한 교회와는 달리 개인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와 행동에 맞추어 새롭게 변형되는 교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교회들은 종교적 다원주의의 경향을 보이고 있고, 반인본주의, 상대주의, 허무주의 색채를 띠며,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감정적이며, 경험적 성격을 중시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이와 같은 이머징교회는 기독교의 근본교리까지 침탈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회를 할 때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실적 경향을 고려하여 예배에 반영하되, 근본적인 기독교정신은 끝까지 지켜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반영하는 방법으로서는 열린 예배의 방식을 도입하고, 개인의 감성을 존중하며, 개인과 사회의 가치를 중시하는 실천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이머징교회에서 주장하는 객관주의, 상대주의를 극복해야 하고, 새로운 인간관을 회복하며 실천적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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