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의 및 교회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목회에의 적용 대안


가을사랑


Ⅰ.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의 및 이것이 교회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시오. 


1. 21세기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의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기의 인간생활양식의 변화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등장한 문화논리, 사상체계, 사회운동이다. 탈이데올로기 사회,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사회, 디지털 영상정보화 사회, 신 중간계급사회, 신과학 사회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2. 포스트 모더니즘이 교회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도래함으로 인해 기독교에게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가져오는 복합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1) 다원성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문제가 이성주의에 입각해 문화와 사회를 획일화하는 세계관이 삶을 억압하고 비인간화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해체 작업과 그 결과로 말미암는 다원성을 강조하고 있다. 

 

(2) 종교 다원주의


종교 다원주의 속에서는 여러 종교가 공존해야 할 당위성이 강조되고 선교는 부정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는 면에서 힌두교나 불교와 흡사하고, 인간이 신이요 창조주라는 뉴에이지의 생각과도 통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내가 원하는 것, 선택하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리로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3) 상대주의


세계를 역사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보편적 원리나 통일성이 없는 것으로 보는 세계관은 상대주의에 봉착한다. 이런 상대주의의 특징은 절대성을 표방하는 것을 모두 배격한다.

 

(4) 디스토피아와 허무주의


진리가 상실되고 모든 것이 같은 가치를 누린다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세계는 규범과 토대를 상실한 무질서와 허무의 폐허 즉 디스토피아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허무주의적인 것은 모든 진리가 권력 의지라고 주장하는 데서 비롯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진리와 사실도 해석일 뿐이라는 주장도 허무주의를 내포한다.

 

(5) 반인본주의


본능과 감성이 주가 되고 이성마저 권력 의지의 시녀가 된 인간상을 보고 있으며 이런 인간상에 의해 모든 체제와 규범에서 벗어나 감성과 본능의 세계로 일탈하려는 욕구가 폭발하는 것도 포스트모던의 일면이다. 이런 인간상으로 현실로부터의 일탈을 중요시 여기게 되었으며, 자연히 소비주의, 향락주의와 심미주의적 탐닉이 삶을 지배하게 된다.

 

(6) 사회의 기형적 현실


상업 예술이나 특히 영상 매체에서 두드러지는 감각주의, 음란성, 무규범성, 성역 없는 상품화는 번져가고 있고, 성개방과 심지어 동성애까지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7)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교회


여러 면에서 기독교가 이미 포스트모던적 정서와 문화적 분위기에 휘말리고 있다. 형식을 초월한 예배를 주장하는 운동이다. 신앙의 감성적 요소를 중시하고,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도 감정적이며 경험적 성격을 중시하며 초자연적인 체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주관주의, 멋대로 신앙, 개인주의와 고립주의를 다시금 조장할 염려가 있다.


포스트모던적 분위기에 휩싸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기보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는 교회를 찾는 경향이 있다. 인간 중심적이며, 청중의 요구에 따라 축복 위주의 설교로 일관한다. 그리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교회 안에 전시장, 문화 공간 서점을 비롯한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경향이 있다. 즉, 교회가 일종의 ‘종교적 테마 공원’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Ⅱ. 이것을 나의 목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대안을 설명하시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를 전략적으로 역이용하여 복음의 세계관을 자신 있게 제시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능함을 역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최고의 대안은 순교적 선교자의 자세이다. 진정한 기독교 신앙은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시대상황 속에 정확히 신앙의 원리를 찾아내어 적용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계승한 것인지 역사 전체의 흐름과 방향을 같이 하면서, 당시 자기 시대의 어떤 사상, 조류에도 희석되거나 무너지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뜻과 본질이 시대만 달리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신앙,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주도해 나가도록 좌표를 정확히 찍어내는 것이다.


(1) 객관주의의 극복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이며 중립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학문의 객관성 비판이다. 기독교에서도 이미 어거스틴이나 루터와 칼빈도 이성과 학문이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서만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오래 전부터 학문이 중립적이지 않음을 주장해 왔다.

 

(2) 상대주의의 극복

 

포스트모던 세계는 온갖 종류의 혼란과 분열된 ‘의견의 세계’이다. 근대시대에는 유토피아를 추구하였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그 환상을 깨뜨렸는데, 그 대신 가상현실, 시뮬레이션과 해석이라는 더욱 심각한 상대주의의 환상으로 끌고 간다. 기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바른 실재 의식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는 모든 것이 언어의 산물이요,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며 절대적 진리나 규범을 부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기독교에는 언어에 진리를 드러내는 힘이 있고, 사랑과 관심을 표현 한다. 언어가 진리를 발견하는 통로가 된다는 통찰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 제시에 매우 중요하다.

 

(3) 새로운 인간관의 회복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과 역사에 대한 지배를 추구하는 근대인을 폭력적 존재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하려 한다. 잘못된 인간관을 극복하기 위해 해석학적 관점을 참고할 수 있다. 해석학은 인간을 타자와의 관계와 주어진 상황 속에 살아가는 역동적인 존재로 본다. 그리고 사람은 타인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갖게 된다고 본다. 해석학은 남을 이해하기 위해 인내와 관용, 이해 의지가 필요함을 밝혔다. ‘남을 고유한 행위자 또는 능동적인 인격적 주체로 존중한다’는 해석학적 원리는 성경적 진리에 근접한다.

 

(4) 공동체의 회복


근대적 위기와 포스트모던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른 사회 의식과 윤리에 입각한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참다운 신뢰와 상호 존중과 사람에 입각한 공동체의 회복이다. 만약 교회가 성경적 원리에 충실하다면 바로 이 점에서 모범이 될 수 있다. 성경적 원리에 충실한 교회공동체는 유토피아를 지향하기보다 실천적인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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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리더’ 독후감


가을사랑


‘찬양 리더’라는 책은 최혁 목사님이 쓴 책이다. 저자는 서울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찬양경배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은 찬양의 의미와 구체적인 찬양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찬양을 하고, 교회에서 음악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그 의미와 방법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까 하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최혁 목사님께서 쓰신 ‘찬양 리더’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너무나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은 찬양을 통해 드리는 예배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상세한 분석과 해설을 해놓았다.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어쩌면 무관심한 상태에서 종래 해오던 방식대로 구태의연하게 찬양을 드리던 것에 대해 커다란 반성을 하게 만들어주었고, 새로운 인식을 얻음과 동시에 효과적인 찬양방법을 배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현대 찬양경배의 의미와 찬양경배 인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찬양경배 팀 조직과 연습, 전체 찬양목록 작성법, 예배 찬양 목록 작성과 연결법, 찬양경배 인도의 실제, 예배 분석 등에 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음악적인 소양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있다. 그러나 찬양경배의 신학적 의미와 역사에 대한 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던 분야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전해 주고 있었다.


찬양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방법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더욱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조용하게 설교를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찬양을 통해 예배를 활성화하고 생동감이 넘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찬양예배는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찬양예배를 드리는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찬양인도법에 어떠한 명확한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혁 목사님의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을 차분히 공부하여 실제 찬양예배에 응용하면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찬양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구약시대부터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찬양의 방식은 시대, 지역, 전통, 신학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음악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찬양과 예배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전해 왔고, 현재 대부분의 교회에서 찬양을 통해 보다 더 가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찬양을 통한 선교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찬양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신도들에게 맞추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도 동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악을 응용하여 찬양을 하는 기법이 개발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찬양경배는 주로 예전, 전도, 은사, 임재 중심으로 행해졌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예배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찬양 역시 이와 같은 점에서 모든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찬송가의 가사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에 중점이 두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찬양의 방법 역시 경건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맞추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다. 성령은 교회에 임재하며 교인들이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기꺼이 들으신다. 저자는 이점에서 탁월한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찬양경배의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찬송한다는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찬양은 단순히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하게 예술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찬양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경배와 경외심과 사랑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널리 알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여야 한다.


저자는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인 표현을 좋아하시며, 하나님께서도 말로만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셨다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이며,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총동원하여 전인격적으로 당신과 교제하시기를 바라고 계신다.


저자는 음악이란 인간의 감정을 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마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감정을 조정한기 때문에 긴장과 이완은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법칙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음악처럼 인간을 박자와 곡조에 따라 긴장감을 주거나 긴장을 풀어주는 매체는 없다. 그러므로 찬양경배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긴장과 이완의 순환법칙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지루한 음악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인간을 흥분시키는 음악도 피해야 하지 않을까?


찬양경배에는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말씀과 음악이 합해지면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찬양시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간의 열린 마음이 교통하는 순간 말씀과 음악은 모두 힘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만 전파하는 설교에만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설교 이외에도 음악을 통해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과 음악의 두 가지 힘이 합해지면 초이성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찬양경배의 목적은 적극적인 찬양을 통해서 회중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최대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회중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최대한 도움을 주는 일이다.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회중들이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마음속의 구름을 걷어내고, 마음을 열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기도하면서 그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현대의 찬양경배 사역자와 이 시대의 목회자는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중들이 가장 즐기는 문화 형태를 예배에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문화의 규범과 표현 매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찬양경배는 일반적으로 찬양 - 경배 - 말씀 - 사역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찬양 팀은 처음 찬양경배를 드릴 때만이 아니라 이 사역 시간을 위해서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찬양 팀 중에서 한두 사람만이 노래를 할 수도 있다. 이때 찬양곡은 설교 주제와 맞는 간단한 코러스가 좋다. 또 가사를 안 보고 계속 반복할 수 있는 느린 곡이 좋다. 찬양을 드리는 중에 회중들에게 기도를 시키기도 하고, 강단으로 초정하기도 하고, 안수를 하기도 하면서 사역을 실시한다.


찬양경배인도자는 영적 음악적 목자이며, 회중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는 사람이며, 경배자라고 할 수 있다.


찬양경배를 인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인도자는 예배의 음악적인 부분과 회중의 영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찬양경배의 인도자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진실한 경배자로서 인도와 경배를 동시에 해야 한다. 성령의 흐름과 회중들의 반응을 민감하게 느껴야 한다. 이런 일은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서, 한 면만으로 제한하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가슴과 머리, 감성과 지성, 체험과 말씀, 찬양과 설교, 신앙과 신학,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 초자연과 자연, 계시와 역사, 영성과 해방,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찬양경배사역에서는, 예배 감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예배 쾌락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예배 신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예배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말씀 공부를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최혁 목사님께서 쓴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찬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면서 친밀해지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충직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열심히 찬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이처럼 좋은 책을 쓴 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4차원의 영성


가을사랑


‘4차원의 영성’은 조용기 목사님께서 쓰신 책이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기로 한다.


제1부 4차원 영적 세계로의 초대


제1장 3차원의 인생, 4차원의 영성


3차원은 운명적으로 4차원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4차원인 시공간을 포함하게 된다. 3차원은 입체, 즉 시간과 공간을 포함하고 있으며 시간과 공간이 생기는 동시에 이미 공간은 무한에 소속되어 있고 시간 역시 무한에 소속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은 무한에 속하면서도 무한을 포함한 공간이 되고, 시간은 영원에 속하면서도 영웡을 포함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공간에는 무한이 들어와 있고, 시간에는 영원이 들어와 있다. 그래서 4차원은 3차원의 공간에 시간이 더해져서 생기는 시공간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감각적인 세계를 뛰어넘은 영혼의 세계, 영적인 세계인 것이다.


4차원은 영적인 세계이다. 창조된 이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이다. 3차원 세계 자체는 진화한 것이 아니라, 4차원에 속한 성령님이 품으시며 친히 창조하신 것이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3차원의 세계에 있으면서 4차원에 속한 존재이다. 인간의 영은 3차원인 육을 다스린다. 4차원은 3차원을 포함하면서도 3차원속에 존재한다. 인간의 영은 몸속에 있으면서도 3차원의 지배를 받지 않고 육신을 초월해 있다.


하나님은 3차원 안에 들어가 계신다. 그래서 그 영원함과 무궁함을 우리에게 전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통해 3차원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하나님의 4차원으로 채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2장 4차원을 변화시키는 4가지 요소


4차원의 세계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생각, 믿음, 꿈, 말이라는 4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4차원의 변화는 그것을 이루는 4가지 요소인 생각, 믿음, 꿈,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3차원에 긍정적인 역사가 일어난다. 믿음은 4차원의 세계를 통해 3차원을 바꾸는 강력한 힘이다. 예수님께서도 4차원의 믿음으로 3차원의 기적들을 모두 이루셨다. 꿈이 없으면, 즉 4차원이 꿈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으면 3차원은 희망이 없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마음 속에 꿈이 있다면 그 꿈은 3차원을 점령하고 변화시킨다. 4차원의 꿈은 3차원의 세계를 부화시킨다. 인간은 말을 통해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4차원적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성공적인 사람은 말을 조심한다. 부정적인 말은 자신의 4차원에 부정적인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다.


제2부 당신안의 4차원 영적 세계를 바꾸라


제1장 당신의 4차원의 생각, 이렇게 바꾸라


사람은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일을 할 때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실체이다. 생각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3차원의 인생을 결정하는 4차원의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실행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바뀌는 엄청난 결과를 낳을 것이다.


1. 하나님의 방식대로 생각하라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는 인본주의적 생각이다. 말씀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닳아야 한다.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점검, 성찰, 회개하고서 바꾸어야 한다.


말씀은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말씀으로 온 세상 만물이 창조 되었으며, 말씀을 통해 모든 기적과 이사가 행해졌다. 이러한 권능의 말씀을 우리의 생각에 고정시켜 삶에 적응시킨다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생각을 길들이고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생각이 성경말씀에 사로잡히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 시작할 때 열매를 맺고 3차원의 환경이 변화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 생각을 긍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바꾸라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든지, 부정적으로 드는 생각을 스스로 설득하여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당신도 절망을 이길 수 있다.


3. 생각의 부정적인 체질을 파악하고 지배하라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생각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가득 차 있다. 분노, 절망, 불안 등을 없애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점점 더 커진다.


우리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슬픔과 좌절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4. 항상 5가지의 복음과 3가지의 축복을 생각하라


당신은 이미 복받은 사람이다. 생각의 부요의식을 가져라. 당신의 생각창고에 복음과 축복의 기쁨을 넣어라.


제2장 당신의 4차원의 믿음, 이렇게 바꾸라 


1. 당신의 믿음을 이렇게 바꾸어라


우리에게 보이는 3차원의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부정적이고 혼란스럽게 흔들어 놓는다. 세상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앞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때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직시하지 말고 4차원에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큼을 보시고 은혜로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주신다. 또 기적을 베푸신다.


믿음이란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이다. 우리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볼 때 우리 삶 속에 그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을 이런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마가복음 9:23)


2. 바라봄의 법칙을 따르라


목표를 바라보되, 있는 것처럼 바라보라. 실체를 바라보라. 마음 속에 소원을 품은 후, 이미 이루어진 현실로 믿고 기도하라. 기적을 체험하고 싶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4차원의 영성인 바라봄의 믿음법칙으로 믿어야 한다. 바라봄과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바라보는 것은 4차원이지만 3차원을 바꾸는 믿음과 연결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의 실상이며 증거인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이것은 자연법칙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법칙이기도 하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다. 심으면 반드시 거둘 것을 기대해야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시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9)받은 줄로 마음에 확신이 들어오고, 받았다고 생각이 되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게 될 때까지 기도하였으면 이제는 기도의 말을 달리해야 한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믿어지는 그때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1~2)


3. 부정적으로 유혹하는 환경과 싸우라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다. 싸워 이기라.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하라.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라.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려 해도 세상이 인정하는 상식과 지식은 우리를 커다란 절망으로 데려간다.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여 믿음을 굳건히 하고 앞으로 나타날 기적을 기다리려 해도 이 환경의 압박은 계속 우리를 짓누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겨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능히 이겨낼 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할 때에는 받은 줄로 믿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범위가 넓은 응답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구하고 기도해서 얼음벽을 녹여 마음에 확신이 들면 받은 줄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4. 3차원 인생의 짐을 주께 맡기라


불안한 시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지만 염려를 내려놓으라.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를 건질 자는 우리의 목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5. 항상 믿음으로 사는 법을 학습하라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학습하라. 성령님을 만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


말씀이 믿음을 붙잡아 주는 것이며, 믿음이 흔들릴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깨달아지고 그러한 체험이 있어야 어떠한 시련과 환난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용기의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4차원의 믿음은 성령님에 의해 성장한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내는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이며 성령님이 만들어 주시는 작품이다.


성령님은 인생의 절망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안내하시며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며 하늘나라를 확장하고, 세상과의 싸움을 더 쉽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우리 자신이 믿음의 힘이 되어 많은 영혼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에는 믿음의 동역자를 찾으라. 그들의 기도로 도움을 얻는 것도 지혜이다. 연합된 믿음의 기도는 확신과 평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 하늘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항상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야 한다. 현실이 어둡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종국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믿음으로 사는 영적 습관이 생겨야 한다. 말씀을 통해 믿음 성장의 방법을 찾고, 성령님과 함께 교제하며 믿음의 키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그 믿음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믿음으로 사는 법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평생토록 학습하고 배워가야 한다. 그래서 습관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4차원의 믿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자라게 된다.


제3장 당신의 4차원의 꿈, 이렇게 바꾸라


1.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을 기대하고 꿈꾸라


항상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베푸실 크고 놀라운 일을 기다리고 꿈꾸라. 앞길이 절벽이 될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희망, 낙관적인 꿈을 꾸라.


2. 당신이 꿈꾸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려라


분명한 대상을 먼저 마음 속에 그려라. 구체적으로 종이에 써보아라. 보다 더 구체적인 목표를 얻을 때까지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라.


3. 꿈의 성취 과정에서 작은 일부터 실천하라.


갓난 아이를 인큐베이터에서 조금씩 자라게 하듯이, 조그만 꿈을 잘 간직하면서 계속 키워 나가라.


4. 항상 희망의 꿈을 간직하고 확산시켜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다려라.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라. 그리고 희망을 나누는 삶을 살라.


제4장 당신의 4차원의 말, 이렇게 바꾸라


1. 희망의 말씀을 입술 밖으로 선포하라


말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풀어놓으라. 또한 자주 성경을 암송하고 그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말하라.


2. 말로 믿음을 풀어 놓으라


말은 환경을 이기는 영적 전쟁의 중요한 도구이다. 말로 믿음을 풀어놓으라. 계속해서 입술로 반복해서 시인하라. 우리의 환경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다.

3. 창조적이고 성공적인 말을 하라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감동을, 기쁨을, 성공을 불러오는 창조적인 말을 하도록 힘써라.


4. 항상 천국의 언어로 통역해서 말하라


사랑과 축복이 담긴 말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복되게 한다. 천국 언어인 축복과 사랑의 말을 하면 성령이 그 혀를 통해 기적을 베풀어 주신다.


제3부 4차원의 영성을 훈련하라


1. 인생의 문제들, 4차원의 영성으로 대응하라


세상은 3차원의 세계이므로 이것을 이기는 4차원의 영적 무기로만 이길 수 있다. 우리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3차원의 인생의 문제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에 따라 3차원 인생이 달라보인다. 해답은 4차원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4차원을 변화시킨 우리는 3차원의 인생을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4차원 세계의 변화는 영적 전쟁이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결국 영적인 문제이며, 영적인 전쟁인 것이다. 영적 승리를 위해 윌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면서 4차원 영성의 4가지 요소를 하나님의 뜻대로 바꾸는 것은 영적 훈련으로 가능하다. 영적 훈련의 방법에는 기도훈련, 말씀훈련, 성령훈련이 있다.


(1) 기도훈련


기도 없이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바른 영성을 가질 수 없다. 내적인 영성 개발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기도훈련방법으로는 기도일기, 사역기도, 믿음의 기도, 명령형 기도, 공동체적인 기도 등이 있다.


(2) 말씀훈련


성경을 암송하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4차원 영적 세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설교말씀을 통해 성도들은 4차원 영적 세계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을 때 다르게 변할 수 있다.


(3) 성령훈련


성령훈련은 성령님과 함께 하는 교제이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성령님과의 연합이 있어야 한다.


3.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라. 그리고 체험하라


4차원의 영적 세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그의 백성인 우리들이 만나는 통로이다. 우리는 4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우리의 3차원 세계가 변화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 믿음, 꿈, 그리고 언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운명을 바꾸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도록 도와주신다.

중국에 대한 선교전략


가을사랑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에는 기독교인이 적고, 정부에서 여전히 기독교를 탄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선교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필요성이 높은 지역이 중국이다.


중국에서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을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몇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 중국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충분한 준비 없이 선교활동에 뛰어들었다. 둘째, 선교과정에서 물질적인 지원에 우선적인 중점을 둠으로써 선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세속화시켰다. 셋째, 한국교회는 경제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현지 중국교회를 무시함으로써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세계 교회의 중국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1기는 1807년부터 1860년까지의 시기로 선교사 입국과 포교자유를 얻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2기는 1861년부터 1911년까지의 시기로 선교사와 국가와의 갈등기라고 할 수 있다. 제3기는 1911년 이후의 시기로 기독교 박해와 3자교회 성립기라고 할 수 있다.


3자교회는 1950년 9월 정식 출범하였다. 3자교회는 문혁기간에는 핍박을 받았으나 1979년 사인방이 타도된 이후에 삼정정책에 의해 제한된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교회는 1989년 공식적으로 선교사를 중국에 파송하였다.


이제 한국교회는 보다 성숙한 전략을 세워 중국 복음화에 기여하여야 한다. ‘공급자 중심 선교론’에서 탈피하여 ‘중국과 중국인 중심의 수요자 선교론’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리고 총체적인 지연연구와 교회개척을 연결시키는 전략을 수립하여야 한다. 중국에서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 교회의 기초를 위한 영역을 넓히는 방법, 현지 중국인 리더십의 개발방법 등을 연구한 다음 선교를 본격화하여야 한다. 

 

중국에는 언어 및 지역적인 기준에 따라 490여개 종족으로 구별되는 방대한 나라다. 따라서 중국 선교를 할 때에는 사전에 선교 대상으로 삼으려는 종족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를 부분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994년 새로운 종교법을 제정하였다. 새로운 종교법에 의하면, 당과 종교는 분리된다는 원칙을 재천명하고 있고, 중국내의 다양한 종교활동으로 인한 문제점에 대처하려는데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아직까지 외국인에 의한 기독교선교활동을 공식적으로는 금지하고 있다. 다만, 외국인이 중국인에게 물질을 제공하는 것은 애덕기금위원회를 통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 중국에서 효율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활동을 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중국의 가정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보면 신도의 80%는 농민이며, 90%는 비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 교회건설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국인 중에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중국은 정부에서 신학교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정부는 당국의 의도대로 신학교 졸업생들이 배출되도록 제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커다란 도시나 지방에 하나의 교회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역의 신자들로 하여금 주일 낮예배에 집중하도록 하고 저녁에는 구역별로 처소예배를 허용하고 있다.


가정교회는 부분적으로 통제와 규제를 받으며 3자교회만이 인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3자교회는 중국정부가 인정하는 공인교회라고 할 수 있는데 신학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중국교회는 삼자교회, 가정교회 또는 지하교회로 불리우는 처소교회로 구별된다. 그동안 중국에 파송된 한인인 선교사들은 주로 처소교회를 주된 무대로 활동해왔다.


처소교회는 정부 당국에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를 심하게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3자교회는 정부에 등록되어 있다. 중국선교는 개인이나 단체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연합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인에 의한 중국선교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1991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한 다음 한국인 선교사들은 처소교회에 집중투자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처소교회를 위주로 선교해 온 한국교회가 삼자교회를 다시 보고 삼자교회를 통한 합법적인 선교활동에 나서야 한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 정부의 영도 아래 전국의 기독교신도들을 단결하여 조국을 사랑하면서 국가의 법령을 준수하고 자치, 자양, 자전의 삼자를 지지해 나가는 것을 주장하면서 탄생된 삼자교회는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의 약칭이다. 삼자교회의 현황은 신도 1천만명, 예배당 12,000개, 예배처소 25.000개, 신학교 17개, 신학생 1000명이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인민은 타종교를 신앙할 수 없다’는 헌법 조항을 ‘있다’고 수정한 바 있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원도 타종교 가입이 가능하다. 원래 공산당은 무신론 종교이기에 정책은 기독교 박멸이라는 초강수를 두어 왔다. 종교국, 종교과, 통일전선부, 안전부 등이 선교사를 감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선교의 큰 전환점이 되고 있다. 삼자교회를 통한 합법적인 선교가 지하교회 사역보다는 더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그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선교는 중국내 종교정책과 사회상황을 감안하여 조용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는 현재 중국교회는 빠른 속도록 성장하고 있지만 가정교회에 대한 정부 당국의 박해는 증가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많은 수의 외국인 목회자, 선교사, 가정교회 지도자와 신자들을 체포하고, 조사를 하고,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서는 종교활동가들에 대해 각종 법률을 들어 추방하거나 체포·구금하는 사례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새로운 선교수단 개발과 활동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중 하나가 인터넷을 활용한 접근이다. 하지만 해마다 인터넷 사용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인터넷을 통한 선교는 중요한 선교수단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제 중국선교는 보다 전문화·특성화된 전략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949년 공산화 이후로 국가교회가 등장하였으나 이 또한 문화혁명 시기에 완전히 문을 닫는 일이 있었다. 중국의 국가교회는 원칙상 외부와 선교 교류를 하지 못하며 다만 필요에 의해서 외부와 제한적인 교류를 하는 정도이다.


중국의 가정교회는 그 동안 눈부시게 성장하여, 외부의 선교사들과 연합하여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자체적인 노력으로 지도자를 키우며 심지어는 중국내의 소수민족들을 복음화 하기 위해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몇몇 가정교회 조직은 선교 협력을 요청하기도 한다. 조선족교회에서도 소수민족선교를 위하여 선교회를 교회 내에 만들어서 은밀하게 한국선교사와 협력하여 선교를 시도하고 있다.


먼저 한국교회가 국가교회 신학교와 협력하여 장.단기 교류 속에서 선교학 과목을 개설하도록 하고, 선교신학의 기초를 제공하여야 한다. 가정교회 지도자와 협력하여 선교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중국의 가정교회가 선교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략적 선교자원을 개발하고 세계선교에 기여하게 하여야 한다. 이미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가정교회에 대해서는 선교학적 훈련을 제공하고 선교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전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조선족교회에 소수민족 선교의 필요성을 가르치고 선교자원을 개발해야 한다. 선교 오리엔테이션 훈련반, 선교 지도력 개발 및 훈련, 선교사 파송을 위한 협력분야 개발, 현장 정착을 위한 동반자 및 협력선교 등 각 교회 상황에 맞게 창의적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그밖에 가정교회의 선교지도자 훈련, 현장의 인적자원 동력화, 개발선교를 통한 접촉점 개발, 그리고 가정교회 선교사를 통한 토착 지도력 등 가장 효과적이며 실제적인 선교협력의 제 분야를 개발하여 선교효과의 극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1992년 8월 한중수교 이후 중국 선교는 전 방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공인하는 중국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중국기독교협회, 삼자교회와 함께 진행하는 공식 선교방법과 가정교회를 통해 이루어진 비공식 선교방법, 공인 비공인 혼합형 선교방법 등 다양한 선교 형태가 등장했다. 가정교회를 돕는다는 선의가 뜻하지 않게 처소교회를 돕게 되거나 일부 처소교회 지도자에게 속아서 각종 지원책을 남발하기도 한다.


처소교회는 중국 삼자회에 가입한 가정교회 또는 삼자교회의 지교회를 의미한다. 삼자회에 소속된 미자립교회, 혹은 교회당 건물은 없지만 임시로 종교활동 장소로 허가 받아 모이는 곳이다. 처소교회가 모두 다 잘못된 교회는 아니다. 한국 교회의 처소교회에 대한 지원은 건강한 가정교회를 괴롭히는데 악용되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의 중국 선교 전략은 매우 단순했다. 가정교회와 삼자교회, 한족과 소수민족 선교 등의 분류방식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부족했다. 이제는 중국 선교의 총론에서 벗어나서 중국의 어느 성, 어느 지역, 어느 계층, 어느 종족을 대상으로 선교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국에서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중국문화를 존중하여야 한다. 중국인들의 특성을 고려하고 중국의 역사·사상·현실에 맞는 선교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인들의 노골적인 거부를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려면, 한국교회가 중국학 학계와 연대하여 중국문화를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국교회를 제어하여야 한다. 중국인들은 사방에서 들어오는 외래문화를 자기 문화로 만들어 버리는 용광로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중국문화를 존중한다고 하여 아예 중국인들에게 내맡기게 되면, 중국인들은 중국식 기독교를 만들어 버릴 것이다. 중국교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제어하려면, 중국교회가 외국 교회들과 끊임없는 국제적 유대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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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더니즘의 영향(이성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

 

Ⅰ. 현대 모더니즘의 의의

 

현대 모더니즘의 특징을 보면, 반정초주의, 다원주의, 반권위주의, 연대의식의 표방 등을 들 수 있다. 현대 모더니즘에서는 인식주체와 독립된 대상의 존재성을 부정하고 언어가 대변하는 세계는 하나만의 대응적인 현실이 아니라 다수의 복합적인 세계가 존재한다고 이해한다. 독립적이며 이성적인 주체를 설정하고 있다. 현대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독립성, 합리적 이성과 원자적 자율성을 해체하고 있다. 현대 모더니즘은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현대 모더니즘이 기독교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이성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 등의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Ⅱ 현대 모더니즘의 특징

 

1. 반합리주의

 

현대 모더니즘에서는 이와 같은 근세의 이성적 주체적 자아라는 개념은 결국 사람들을 속박하기 위한 의도에서 설정한 개념이며, 인간의 자아라 함은 유희적 관계망을 가진 언술의 산물에 불과하며, 자아는 우연적 타율적 분열적 모순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2. 상대적 인식론

 

현대 모더니즘에서는 보편 타당한 지식을 추구하는 지적 탐구활동의 기초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 모든 인식활동은 인식자의 주관에 따른 상대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지식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정 담론과 삶의 양식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 위한 권력적 속성을 가지고 주장하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배척한다.

 

3. 탈전형화

 

현대 모더니즘의 입장에서는 정전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고급 문화와 저급 대중문화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특정 생활양식을 정전에 부합하는 고급문화로 규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4. 유희적 행복감의 향유

 

현대 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인들은 주체적 자아의 확립, 보편적 진리의 습득, 고급 문화에의 입문 등의 문제로 긴장하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사적 도덕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유희적 행복감을 향유하는 것이 자연현상과 인간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Ⅲ. 현대 모더니즘의 기독교에 대한 영향

 

1. 서론

 

현대 모더니즘은 기독교에 도전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종교계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과 기독교 신학의 접합을 시도하는 등 포스트모던적인 양상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종교에 미친 영향은 다원성과 이분법적 사유의 해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보여주는 다원성은 유일신 종교들에게도 어느 정도 열려진 자세를 갖게 했다. 종교다원주의의 수용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종교다원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배타성이 강한 기성 종교들이 다른 종교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의 단일적이고 절대적인 교리 해석을 지양하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이 개인주의적 구원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현상의 도래를 가속화시켰다는 점을 반성하고 있는 것도 이 현상이 기독교에 가져온 위기의식을 잘 대변해 준다. 어떤 점에서는 반기독교적 정신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종교의 성격을 일정부분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종교에 미친 또 다른 영향으로는 이분법적 사유의 해체와 개별 영성운동의 출현을 들 수 있다. 동양종교의 부상과 더불어 개별 영성운동의 출현과 확산 역시 눈여겨볼만 하다. 이는 ‘신영성운동’이란 용어로 설명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영성운동의 연결고리는 주로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근래 들어 ‘영성’이라는 단어가 크게 유행하고 있고, 학계에서도 영성 관련 담론에 관한 논의가 자주 등장하고 있거니와, 특히 이 같은 논의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성의 ‘사회적’ 의미이다. 이러한 영성 담론의 확산은 바로 이분법적 사유의 해체에 기인되면서 동시에 이분법적 사유를 해체시키는 좀 더 적극적인 동인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이성주의

 

현대 모더니즘에서는 기독교교리에 대해 이성적, 학문적 비판과 공격을 하고 있다. 19세기 절정의 시기를 보내고 현재에는 쇠퇴일로를 겪고 있는 이성주의가 기독교를 아직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신론은 종교를 이성으로 생각하는 합리주의 신학을 말한다. 이성주의 철학은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전통 교리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성주의 철학은 계시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판단력을 사용했다. 그들은 현세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보다는 인간이라는 주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 기독교는 신비한 것이 아니며 이성에 의해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성에 의해 증명될 수 없는 것은 반드시 거부했다.

 

3. 신비주의

 

기독교 신비주의는 헬라사상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헬라사상은 "다자의 일자를 향한 연합"이라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주조음을 이루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신비주의에는 성서적 신비주의, 순교시대의 신비주의, 오리겐의 신비주의, 수도원의 신비주의, 라틴교부의 신비주의, 어거스틴의 신비주의 등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무한자와 유한자,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것은 종교의 신비주의 경험의 유형을 구분함 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단 거시적으로 이 양자의 관계를 조명해 본다면, 힌두교와 불교와 같은 동양종교의 신비체험에 있어서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는 상호 대칭적이며 상호 수렴된다.

 

정적주의는 17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 내에서 발생한 신비주의 운동이었다. 그것은 영혼의 내면의 빛이 영향에 피동적으로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직관적으로 직접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을 강조했다.

 

정적주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자발적, 능동적 활동을 부정하고 오로지 고차적, 초인적인 능력이 인도하는 대로 내맡기는 수동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기성 교리와 하나님의 의지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계시인 성경을 밀쳐주고 내면의 빛이라는 교리를 선호했다. 그것은 성령께서 성경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 주실 수 있다는 의미였다.

 

4. 경건주의

 

경건주의에서는 내면적, 주관적, 개인적인 성경공부와 기도로의 복귀를 강조했는데 특히 성경 연구와 토론 그리고 성경의 조명자로서의 성령의 기능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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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 리더


‘찬양 리더’라는 책은 서울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찬양경배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최혁 선생님의 저서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찬양의 의미와 구체적인 찬양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찬양을 하고, 교회에서 음악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그 의미와 방법에 대해 명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찬양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구약시대부터 끊임없이 이루어져왔다. 찬양의 방식은 시대, 지역, 전통, 신학에 따라 다양하게 변해왔다. 음악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구약시대의 찬양전통은 BC 1000년경 다윗에게서 비롯되었다. 성전 예배에 음악을 도입한 것은 다윗이었다(대상 6:31~32). 초대교회에서도 찬양은 매우 중요시되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의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하나님을 찬미했다.


361년 라오디게아 종교회의에서는 예배시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창작 찬송을 금하는 규례를 만들었다. 라오디게아 회의에서 결정한 13번째 조항은 지정된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규칙은 천 년 동안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다시 회중 찬송을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근대 찬송은 영국의 아이삭 왓츠로부터 시작되었다.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찬송의 변천사를 보면, 칸틸레이션 - 칼티클 - 챤트 - 코랄 - 시편가 - 찬송가로 변해왔다.


현대찬양경배의 경향은, 예전 중심, 전도 중심, 은사 중심, 임재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인 예배의 초점은 온전히 하나님이 된다. 찬양 기도 설교를 포함한 예배의 모든 순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예전 중심의 교회에 찬양경배가 도입되면 찬양경배는 또 하나의 예전이 되기 쉽다. 찬양경배를 새신자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교회도 있다. 은사 중심의 교회에서는 찬양경배 후에 사역을 한다. 여기에는 신유의 사역, 축사 사역, 예언 사역이 뒤따르기도 한다. 임재 중심의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교제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예배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찬송중에 임재하신다.


찬양경배 사역자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곧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의 인격과 활동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주목해야 한다.


십자가의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감정적인 사건이다. 십자가를 대할 때, 우리 안에는 거룩한 감정이 생겨나야 한다. 감정은 없고 교리만 남아 있으면 십자가 사건은 연구와 비판을 위한 냉랭한 이론이 되어 버린다.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교제에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예배에는 감정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찬송한다는 말은 음악을 한다는 말이 아니다. 상대방을 칭찬한다는 말이며, 높인다는 말이다. 찬양경배에서 음악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마음을 여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음악과 더 나아가 음악으로 표현된 우리의 적극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적극적인 표현을 좋아하신다. 하나님께서도 말로만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셨다.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매체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총동원하여 전인격적으로 당신과 교제하시기를 바란다.


음악은 감정을 조정하는 힘이 있다. 마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감정을 조정한다. 긴장과 이완은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법칙이다.


찬양경배에는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말씀이 있다. 말씀과 음악이 합해지면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간의 열린 마음이 교통하기 때문이다. 말씀과 음악에는 모두 힘이 있다. 그 두 가지 힘이 합해지면 초이성적 경험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권능이 체험되기고 한다. 이것이 찬양경배의 원리인 것이다.


찬양경배의 목적은 적극적인 찬양을 통해서 회중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최대한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회중이 하나님을 만나는 데 최대한 도움을 주는 일이다. 찬양경배 사역자들은 회중들이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마음속의 구름을 걷어내고, 마음을 열어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기도하면서 그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현대의 찬양경배 사역자와 이 시대의 목회자는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중들이 가장 즐기는 문화 형태를 예배에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중문화의 규범과 표현 매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찬양경배는 일반적으로 찬양 - 경배 - 말씀 - 사역의 순으로 이루어진다.


찬양 팀은 처음 찬양경배를 드릴 때만이 아니라 이 사역 시간을 위해서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찬양 팀 중에서 한두 사람만이 노래를 할 수도 있다. 이때 찬양곡은 설교 주제와 맞는 간단한 코러스가 좋다. 또 가사를 안 보고 계속 반복할 수 있는 느린 곡이 좋다. 찬양을 드리는 중에 회중들에게 기도를 시키기도 하고, 강단으로 초정하기도 하고, 안수를 하기도 하면서 사역을 실시한다.


찬양경배인도자는 영적 음악적 목자이며, 회중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는 사람이며, 경배자라고 할 수 있다.


찬양경배를 인도하는 일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인도자는 예배의 음악적인 부분과 회중의 영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찬양경배의 인도자일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진실한 경배자로서 인도와 경배를 동시에 해야 한다. 성령의 흐름과 회중들의 반응을 민감하게 느껴야 한다. 이런 일은 많은 훈련과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서, 한 면만으로 제한하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가슴과 머리, 감성과 지성, 체험과 말씀, 찬양과 설교, 신앙과 신학, 영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 초자연과 자연, 계시와 역사, 영성과 해방,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찬양경배사역에서는, 예배 감정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예배 쾌락주의를 조심해야 한다. 예배 신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예배의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말씀 공부를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과정에서 찬양은 매우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면서 친밀해지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충직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더욱 열심히 찬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목회의 결과를 평가하라


가을사랑


‘21세기 목회지도력’은 다니엘 브라운 목사님이 지은 책이다. 한국어로는 고종혁 목사님이 번역한 책이 있다. 여기에서는 제9장 ‘결과를 평가하라’는 부분을 요약해 본다.


Ⅰ. 목회에 대한 평가의 중요성


목회자는 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어야 한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달란트와 자원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목회활동에 전념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한 목회자들은 제자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고, 더 많은 지도자를 달라고 기도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동원하고 격려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 예는 어떤 목사님이 부임할 때보다 자꾸 교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40분이나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고, 아침 식사를 사람들과 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 목사님은 지역사회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 교인들을 늘려달라고 기도만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목사님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었다.


또 한 목사님은 교단의 행정책임자로 일했는데, 그는 그 일에 전혀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 교회의 교인수가 줄어들었고, 재정도 줄어들었다.


이런 두 경우를 보면, 모두 목회자들이 교회 성장의 기회와 방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초자연적인 해결방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회자는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냉철하게 평가하고, 그동안 한 일에 대한 성과가 어떠한 것인지 분석해야 한다. 모든 목회의 결과는 목회자가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정확하게 반영되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Ⅱ. ‘아하!’라고 말하라


교회 지도자는 평가를 피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들이 교회에 대한 평가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이유는, 당장 평가가 설교와 같이 시급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인 분석을 하지 않는 대신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고 변명하려 들기 때문이다.


목회를 잘 하고 싶으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고 평가를 받을 마음을 가져야 한다. 평가는 훌륭한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 교회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학의 우수성을 평가할 때 사람들은 보통 졸업생의 질, 자원의 양, 제도적 가시성 등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쉽게 숫자로 표현되는 질의 측정이 대학의 질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나 교회의 경우에는 그곳에 다니는 대학생이나 신도들에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이어야 한다. 목회자의 지도력과 기술은 교회에 중대한 차이를 가져온다. 그리고 교회가 효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회의 시스템과 과정에 대해 평가하고 분석한 다음 이를 수정 보완하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Ⅲ. 목회를 계량화하라


교회의 효율성이라 함은 어떤 교회가 성취하려는 사명을 얼마나 많이 달성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척도를 말한다. 교회 평가의 첫 단계는 교회의 제도적 사명과 구성 요소와 연관된 측정 가능한 항목으로 나누어 효율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교회의 효율성은 숫자 또는 이상적인 과정이라는 항목으로 나누어 정의할 수 있다.


1. 주일 출석수, 회심자, 세례자, 현금수입, 선교비 지출, 지도자 훈련과정을 마친 사람, 셀 그룹과 같은 것에 의해 수적인 목표를 달성하여야 한다.


2. 현재 교회 과정이나 프로그램이 얼마나 이상에 근접하고 있는지 평가하여야 한다.

숫자를 조사하고 교회의 현재 상태를 이상적인 과정과 비교한 다음, 과정의 변화와 수적인 결과의 변화 사이의 관계를 찾으면서 그 요소들을 서로 연관시켜야 한다.


결과와 과정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과정의 목표를 세우지 않고는 수적인 목표를 세울 수 없다. 그리고 교회 과정이 그 사명을 성취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정리하여야 한다. 또한 과정의 각 부분에 있어서 효율성을 점검하여야 한다.


수적인 목표와 과정 목표에서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더해진 가치, 즉 교회가 만들어낸 차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목회자가 기대하는 효율성을 교인들에게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변화되고 도움을 받았는가, 다시 말하면 그들이 교회에 오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어떤 변화가 그들에게 일어났는가를 확인하여야 한다.


결과를 평가하는 다르면서도 겹치는 척도는 인적 결과와 인적 자원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인적 결과이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을 통하여 일어나는 일이 인적 자원이다. 사람은 과정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과정의 자원이다.


평가의 마지막 단계는 성취된 것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쏟아 부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가끔 굉장한 에너지와 노력을 프로젝트에 쏟아 부었는데도 불구하고 하찮은 결과를 얻는 때가 있다. 이것은 결국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교회를 평가함에 있어서 숫자를 세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런 방법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성장 과정에 잇으므로 교회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는 것을 불공평하고 불필요하다. 교회 과정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교회의 여러 자원들은 자주 재배치되어야 한다. 교회 과정은 교인들에게, 그리고 교인과 더불어 일하기 때문에 전체 교인수에 의해 평가될 필요가 없다. 교회 과정은 무형적이고 빗물질적이닉 때문에 교회의 물리적 능력이나 속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Ⅳ. 결론


교회에 대한 정적인 생산모델은 지도자들로 하여금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평가를 거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자신과 교회가 과정 지향에서 행하는 일을 제대로 평가한다면, 그러한 분석은 그들이 더 나은 일을 하게 만들 것이다. 과정으로서의 교회는 약속으로서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대사

 

‘하나님의 대사’는 주중대사를 지낸 김하중 씨가 지은 책이다. 그가 주중대사로 봉직한 6년 반 동안의 세월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데 진력한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나날이었다.

 

세상에 파송된 하나님의 대사의 능력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에 있다.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기 위해 했던 기도 가운데 응답받지 못한 것이 없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할 때에 그는 수많은 기적을 체험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부활하신 후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열방에 자신의 대사로 파송하셨다. 크리스천인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대사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터와 삶의 자리에 하나님나라 대사로 파송하셨다.

 

에스더는 자신이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 까닭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르드개를 통해 깨달았다. 느헤미야도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의 위치를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섬기는 기회로 선용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대사는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나라를 받들고 그 백성을 섬기기 위해 진력하는 것이 본분이다. 이 본분을 능력 있게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도이다.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쌍방통행의 영적인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런 영적인 기도가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구현시키며 하나님나라 백성의 복지를 향상시킨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혹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들어 세상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던 김 대사를 끝까지 지키고 보호해주셨다. 그리고 사스라는 환란을 통해 중국과 중국인들의 마음을 얻는 승리를 김 대사에게 안겨주셨다. 김 대사가 주중대사로 근무하던 기간 동안 탈북자들이 대사관 영사부에 진입한 건수가 430여번이었고, 한국으로 보낸 탈북자들이 1060여명이었다. 

 

김 대사는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고, 여호와의 지혜를 구한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기도의 중요성을 이 책의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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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발췌 요약]

 

Ⅰ. 그 한 사람

 

오늘날의 시대가 특별한 사람들의 출현을 기대함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영적인 인물들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특별히 준비된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민족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자신의 죄인 됨 앞에서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 본 사람이 아니면 소명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영광스러운 목회 사역을 위한 소명은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확인하여야 할 사항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로 섬기고자 하는 타오르는 열망과 잃어버린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영혼의 번민과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을 바치는 것밖에는 더 이상의 소망이 없다고 믿는 거룩한 결단이 의식 세계 속에서 확인되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소명의 확인 없이 신학 수업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면 속히 이 문제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

 

Ⅱ. 육체적 준비

 

육체적인 성숙은 목회 사역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준비이다. 그러한 육체적인 성장을 복음 사역과 관련지어서 생각할 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요소를 내포한다. 하나는 건강이고, 또 하나는 육체의 순결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목회 사역으로 부르셨을 때 그것은 단지 우리의 사고나 마음만을 구별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길 우리의 몸도 구별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역을 위하여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기 위해 훈련받고 있다. 그러므로 건강으로 미래의 사역을 준비하는 일은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일이다.

우리는 정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매일 그리스도 예수의 손에 붙잡히지 않니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그분과의 보다 긴밀한 영적 관계를 유지하고 유혹을 이기며 살아가는 영적 생존의 방법을 배워야 한다. 능력의 근원은 거기에서 나온다.

 

Ⅲ. 지성적 준비

 

지식은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던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였다. 지식은 소중하다. 구원의 은사 다음으로 귀중한 것은 지식이다. 지식이 없으면 예배도 헛것이고, 경건도 쓸모없는 것이다. 헌신도 갈 바를 잃는다. 목회 사역을 위한 지성적인 준비는, 성경 자체에 대한 지식과 성경에 관한 지식으로 구별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 그 자체는 목회 사역에 있어서 문제가 덜 될지 모르나, 지식을 쌓는 일에 게으른 학문에 대한 태도는 신앙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신학교 시절에 부지런히 성경을 아는 지식과 신학을 이해하는 지성에서 자람 감으로써 진리를 소화하고, 마음에 불을 품은 채 어두운 시대를 세례 요한과 같이 예리한 통찰로 꿰뚫어 열심히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Ⅳ. 인격적 준비

 

우리는 목회 사역에 대한 강렬한 열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 하나님의 일에 대한 진지한 마음을 품어야 하는 동시에 성숙한 경건이 우리의 인격에 배도록 힘써야 한다. 우리의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우리가 전하는 거룩한 말씀에 부합하는 경건한 덕성을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 시종일관, 믿음이 모든 일들에 있어서 여러분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도록 해야 한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범사에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그분만을 소망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Ⅴ. 정서적 준비

 

모든 지식은 인격적으로 습득되어야 한고, 인격적으로 습득된 지식은 반드시 지성적인 동의와 체험에서 비롯된 정서를 가져다 준다. 체험하지 못한 진리를 붙들고 종교 생활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다. 정서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위하여 고난과 희생을 감내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뿐 아니라 가치없는 일이다.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고 싶어하는,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낮아질 수 있는 내면의 준비와 어찌하든지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고 싶어하는 거룩한 열정과 정서 없이는 훌륭한 사역자가 될 수 없다.

거룩한 정서가 신학의 도상에 있는 우리의 인격 안에서 자라게 하는 첫 번째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두 번째는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겼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만을 바라는 추구이다. 네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깊이 만져 주시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열정이 필요하다. 하늘의 진리를 그 거룩한 정염으로 불붙여 교회 구석구석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냉담함의 덤불들을 사르고, 좋으신 주님을 위하여 흘릴 피와 눈물과 땀이 있는 신령한 사랑과 열정으로 불꽃처럼 살아가는 교회로 바꾸어 놓을 사람이 필요하다.

 

Ⅵ. 영적 준비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사역은 성공할 수 없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사역을 기뻐하시고 하늘을 여시사 특별한 성령의 부으심을 주시는 것이다. 거룩한 성령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인식한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때와 매우 유사한 시대에 목회 사역으로 부름을 받았다. 이제는 바리새인 같은 지도자들이나, 율법사 같은 직업적인 말쟁이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셀롯당원들과 같은 과격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선지자와 같이 준비된 영적인 지도자가 필요한 때이다.

 

Ⅶ. 기다림의 미학

 

무지를 밝히는 찬란한 지성과 완악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고매한 인격의 감화와 부패한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그들과 동화될 수 없게 하는 거룩한 순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신들도 어찌할 수 없는 죄와 완고함의 지배로부터 해방받게 해줄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특별히 교회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준비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신학 수업을 감당하는 동안 언제나 교회에 대한 사랑의 정서가 마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보다 자기를 통하여 더 널리 알려지는 하나님의 이름과 여호와의 영광을 인하여 기뻐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진실로 그리스도 예수께 붙잡힌바 된 소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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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설교의 근거

 

설교자들은 성경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 설교를 한다는 것은 아담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의 모든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 그 사건들의 의미를 우리의 삶 속에 깊이 새겨놓는 것이다.  

설교를 항상 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은, ① 성령의 생동력을 받아서 설교를 해야 한다. ②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게 하는 능력을 가진 설교를 해야 한다. ③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도상에서 언제나 새롭게 창조되는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에 있어서는 설교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중요한 것이다. 설교자가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말씀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설교자는 항상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며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를 믿고 의지해야 한다.  

설교는 혼적인 이성의 세계나 육적인 감각의 세계가 아니다. 신앙은 순수하게 영적인 세계이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직감과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깨닫고 믿고 구원받은 후, 육을 쳐서 정복시키고 혼을 이끌어 나가는 생활을 뜻한다.  

설교자는 무조건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세상에서 말하는 선하고 의롭다는 기준을 따르면 안 된다. 믿음과 순종,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 이 세 가지가 설교자들을 성공적인 목회로 인도한다.

 

Ⅱ. 설교의 능력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적 실재를 믿고 실행해야 한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설교에 능력을 주시는 근원으로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설교자는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목표를 가지고 지으신 인간을 구원하는데 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중에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이 전달할 설교의 주제를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설교가 참된 능력을 가지려면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능력있는 설교를 하려면 성령의 우발성을 우리의 생활속에 받아들여서 의지해야 한다.  

설교의 가치는 죄로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영혼을 살리는 데에 있다. 설교는 하나님의 창조를 전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이 바로 창조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된다.

Ⅲ. 설교의 분류

 

설교는 그 구조와 성경 본문과의 관계에 따라 보통 강해설교, 본문설교, 제목설교로 나눌 수 있다.

 

1. 강해설교

강해설교는 성경의 본문을 배경과 문자적 의미, 그리고 주해를 통해 성경 자체의 의미를 전함으로 교훈을 얻는 설교를 말한다.

 

2. 본문설교

본문설교는 성경 본문에 따라 제목과 대지가 결정되는 설교를 말한다. 본문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본문에서 적합한 주제를 찾아내고 정확하게 구분을 해야 한다.

 

3. 제목설교

제목설교는 주제나 제목이 설교의 전체적인 전개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제목에 따라 대지와 소지가 결정되고 그 내용은 성경의 구절을 인용하여 작성된다.

 

Ⅳ. 설교의 구상

 

구상이란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하는 첫째 단계이다. 즉, 자신이 전달할 설교를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설교자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할 것이며, 어떤 내용을 말하고, 어떤 예화를 들며 어떻게 논지를 펴나가야 하겠다는 구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성령의 역사 가운데서 설교에 대한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꿈과 환상으로 그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우리의 생각을 두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창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

설교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언제나 설교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마음 속에 수용해야 된다. 용감하게 시도해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끊임없이 전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설교에 있어서 구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며, 훌륭한 구상력을 갖고 있는 문학작품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신앙의 상상력을 이용하면 설교에 놀라운 감동을 주게 된다.

 

Ⅴ. 설교의 기초

설교의 기초는 본문, 주제, 제목, 명제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설교자가 어떤 말씀을 전하려고 할 때는, 그에 적절한 본문을 선택해야 하며, 어떠한 내용을 전할 지 그 주제를 정해야 한다. 다음 그 설교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제목을 만들고, 그 설교의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명제가 필요하다.

 

1. 본문

선택한 성경 본문을 그 의미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긍정적인 본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성경의 각 부분에서 고루 선택해야 한다. 본문을 선택할 때에는 교회력을 잘 살리는 것도 좋다.

 

2. 주제

주제는 분명해야 하며, 복음적이어야 하고, 청중의 요구에 맞는 주제이어야 한다.

 

3. 제목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제목이어야 하고, 제목은 분명해야 하며, 새로운 느낌을 주는 제목이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목을 가능한 한 짧아야 한다.

 

4. 명제

명제는 단순한 문장이어야 한다. 명제는 보편적인 진리로 말해야 한다. 설교 내용의 완전한 요약이어야 한다.

 

Ⅵ. 설교의 구성

 

1. 구성의 중요성

설교는 짜임새 있는 구성 아래 어떠한 내용을 몇 개의 대지로 나눌 것이며, 그 대지 안에는 소지를 두고, 전체적으로는 서론 본론 결론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한 성경 본문이 뜻하는 바를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전달하려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구성해야 한다. 설교의 구성에는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설교 구성은 단순해야 한다. 그리고 질서가 있어야 하며, 균형이 있어야 한다. 또한 구성에 진행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 형식적인 면

(1) 서론

주의를 집중시키고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생각의 방향을 설정시킴으로써 본론을 소개해야 한다. 서론은, 침착하게 청중의 흥미를 끌도록 가능한 짧게, 본론에 적절하게, 겸손한 태도로, 암시적으로 해야 한다.

 

(2) 본론

본론은 메시지의 핵심을 분명하게 분리시켜 듣는 자의 가슴 속에 심어주는 과정이다.

 

(3) 결론

결론은 자연스럽고 적절해야 하며, 개개인을 향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

 

3. 기능적인 면

 

설교는 일반적인 설명뿐 아니라 본문에 대한 설명,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하고, 논증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청중의 요구에 맞는 적응을 해야 한다. 또한 예증을 하여야 한다.

 

Ⅶ. 설교에서 주의해야 할 점

 

반복되는 설교라도 하나님의 창조와 능력으로 새로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부주의한 반복을 해서는 안 되고, 타성에 젖어서는 안 된다. 지식을 과시해서도 안 되고, 모방도 금물이고, 지나치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있는 그대로 말하여야 하며, 풍자에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를 할 때 마귀의 세력에 대적해야 한다.

 

Ⅷ. 느낀 점

 

목회자들이 설교를 할 때 막연하게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우선 설교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설교를 하는가? 먼저 이런 점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확실한 지식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과의 교제를 열심히 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받아들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설교의 근거는 성경이며, 설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간단하고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를 사전에 충분하게 구상하고, 준비함으로써 설교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야한다. 설교를 하면서 자꾸 돌아봄으로써 문제점을 확인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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