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법
가을사랑
[본문말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
[QT : Quiet Time, 묵상의 시간]
성경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죄를 짓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성경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에는 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다. 원래 하나님은 죄가 없는 완전무결한 분이므로 그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 역시 아무런 죄가 없는 존재였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인정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여지면 그것은 죄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많은 사항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에서 죄가 아닌 경우가 많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마땅치 않고 올바르지 않은 행위가 죄인 것이다.
에덴이라고 불리우는 동산에서 살고 있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였다. 인간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서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했다. 분명 그것은 중대한 선택이었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권유를 받아들여 선악과를 먹었던 것은 뒤집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한 선택의 결과는 어떠한가?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단절이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인간에게는 영적인 사망을 뜻한다. 인간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그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물과 달리 인간은 영을 가지고 있고, 그 영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된다. 하나님과 인간은 영적으로 통해 있다. 육체적으로 통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영적인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에덴의 동산에서도 하나님은 오직 말씀으로만 아담과 이브에게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명확하게 말씀으로 전해졌다. 인간이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한 대가는 즉시 나타났다.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되었을 뿐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초래했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과 혼연일체의 상태에 있을 수 없었다.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영적으로 분리된 인간은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었고, 그 죄는 더욱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대가는 영적인 죽음에 이어 육적인 죽음을 초래했다. 그래서 끝내 아담은 육체적으로도 사망하고 소멸해 버렸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의 근원이다. 생명이 그 근원이며 원천인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성을 확보하는 순간, 그 인간은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불완전해졌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뜻과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곧 인간의 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때 인간은 분명히 죄를 짓고 있는 것이 되었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 죄에 빠져 있는 아담이 낳은 후손들은 모두 아담의 본성인 죄성을 물려받게 되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창세기 5:3).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기 1:27).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죄 없는 아담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곧 죄를 짓게 되었고, 그 후 영적인 죽음을 맞이한 상태에서 자기의 형상대로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아들을 낳은 것이지 창조한 것은 아니다), 곧 그 아들은 아담과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죄를 짓는 죄의 본성을 유전적으로 물려받고 태어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에게 종교적 규범인 율법만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계속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의식만을 느끼게 하고, 괴롭히는 결과가 된다. 연약한 육신과 연약한 정신을 가지고 인간이 어떻게 그 어려운 율법적인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은 인간을 얽어매는 구속적 기능만 수행하고, 인간을 평생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힘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 그래서 영원히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죄에서 벗어나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인간은 타고난 죄성과 그 죄를 옭아매는 율법에 구속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부활하였으며, 그 상태에서 더 이상 하나님께 배반하지 않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과거 억눌려 있었던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생명과 성령의 법의 영역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인간이 원래 있다가 추방되었던 에덴의 동산으로 다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에덴의 동산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직접 체험하고 하나님의 옷자락을 직접 붙잡고 매달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 들어간 인간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 아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인간도 자신의 육신의 법은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야 한다.
그 법은 곧 사망의 법이요 죄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법만 따라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몸이 죽으면 우리의 영은 의를 인하여 살게 되고, 죽은 자를 살리신 이는 곧 우리의 육신이 죽어도 다시 영으로써 몸을 살리게 되는 부활의 기적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육신대로만 살면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게 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인간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