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을 피하라

 

가을사랑

 

 

가끔은 세상을 살아가다가 멈추어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냥 하루 하루 맹목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달이 잠깐 사이에 지나가고, 어느듯 한 해가 지나가게 된다. 돌이켜보면 2007년도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달력에 2008년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면 새삼스럽게 그런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10년의 세월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 빠르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주 자연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정말 짧다. 순간적인 찰나에 비유되기도 한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우주 가운데 어디일까?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삶은 보람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걸어왔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란 뚜렷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는 삶이란 시간이 가고 늙게 되면 허무함만 남기게 된다. 인생이 나름대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지 않으면 동물의 생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전도서 기자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도서 3:19~21)"

 

맞는 말이다. 인생에 관한 분명한 주관적인 인식이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자고, 섹스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동물적인 삶과 다를 게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을 많이 벌어 쌓아두고 자신의 이기적인 쾌락만을 즐기고, 남을 전혀 고려치 않는 개인적인 행복이나 추구한 인생은, 원숭이가 좋은 밀림 속에서 맛있는 바나나나 평생 먹고, 암컷 원숭이와 섹스를 많이 하다가 죽는 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원숭이가 힘이 세서 수컷들 중에서 왕노릇을 하고 잘난 척을 하면서 살다 죽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 있어서 목적을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는 동물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주신 영이 있고, 그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그 안에 들어와 내재하고 계시는 성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몸은 그래서 깨끗하게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음식도 조심해서 먹어야 하고, 질병에 걸리지 않게 건강관리도 잘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도록 하신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육체를 잘 보존해야 한다.

 

몸을 막 굴리고 게으른 상태에서 나쁜 음식이나 많이 먹고, 운동도 하지 않고, 술과 담배나 많이 해서 기운이 없이 만들고, 과도한 섹스나 해서 몸을 망가뜨리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요,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의 마음은 더욱 그렇다. 선한 행동을 해야 하고, 선한 생각을 해야 한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악한 생각, 악한 마음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사탄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많은 법을 성경을 통해 주셨다. 그것이 이른바 율법이라고 하는 성경의 법이다. 성경의 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악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

 

성경의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며 선악과를 우리 마음대로 따먹는 것이다. 선과 악을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 선과 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선악과를 통해 우리에게 선을 분명하게 긋고 계신 것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는 인간이 쳐다보고 그 선악과가 가르키는 대로 선과 악을 구별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그 자체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준대로 선과 악을 나누어 놓으셨다. 선악과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 비로소 기능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선악과를 인간이 따서 먹어버리면 선악과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세콤을 떼어서 부셔버리면 세콤은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선악과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무시된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선악과를 눈으로 보지 않게 되고, 선과 악의 구별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마음대로 결정하려고 한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기준으로 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한 죄악이다. 그 자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에게 불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만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태도를 용서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즉시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동산에서 동쪽으로 내쫓으셨다. 그리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세기 3:24).

 

아담은 왜 에덴의 동편으로 내쫓겼는가? 왜 서편이 아니고 동편이었을까?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다. 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를 보시고 징계를 하시면서도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내쫓으신 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회개하면 다시 에덴의 동산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남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내쫓겼으면 아담은 결코 다시 동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서쪽에서는 해가 짐과 동시에 어둠의 세계가 되며 영원한 어둠 속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인간은 그 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찾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다시 새사람으로 부활하여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시 부활한 새사람은 과거 율법의 노예로부터 생명의 법을 따르며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아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과 다시 만날 수 있다. 멀리 떠났던 탕자가 다시 아버지께 돌아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었버렸어도 아버지의 은혜만은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면 세상 모든 것을 잃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었던 온갖 부귀영화를 모두 다 잃어버리는 순간에도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깨닫고 마음의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동안의 시간들은 이 순간의 기쁨으로 모두 다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신을 이용하고 빼앗고 농락을 하려고 했지만, 자식에게 아버지와 같은 관계인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죄많은 우리 인간을 자신의 자녀로서 다시 그 따뜻한 품안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유일한 구원이다. 다시 새사람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다시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지 않을 것이다. 다시 에덴의 동산에 들어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 즉 선악과는 절대로 손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뱀이 유혹하더라도 선악과는 쳐다만 볼뿐,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선과 악을 그대로 따르면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할 것이다. 

 

완전히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탕자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제멋대로 살았던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착한 자녀가 될 것이다. 새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특히 음행과 관련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음행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다. '간음하지 말찌니라'(출애굽기 20:14). 술에 취하지 말고 음란한 생각을 품지 말라. 정신을 맑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은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무척 힘든 명령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명령을 왜 하고 계신지 깨달아야 한다.

 

주변을 보라, 술을 많이 마셔 간암에 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술에 취해 음주운전을 하다가 구속되고, 싸움을 하다가 다치거나 다른 사람을 폭행하여 징역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술을 좋아해서 유흥방탕에 빠져 돈도 못벌고 고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가장이 술에 취하면 가족들은 생계가 어려워진다.

 

술은 많은 경우 범죄의 원인이 되고 사고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치고, 건전한 가정생활을 망치게 하는 주범이다. 술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는 매우 일시적이다. 술은 중독성이 있어 한번 빠지면 평생 끊기 어렵다. 그러므로 술을 끊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술에 취하지 말라. 가급적 술을 절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음행은 에이즈에 감염되게 만든다. 성매매를 하다가 커다란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욕정을 참지 못하고 강간을 하거나 강제추행을 하다가 파렴치범으로 처벌되기도 한다. 성범죄자는 이제 인적 사항이 공개되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간통을 하다가 적발되면 애인의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간통죄로 구속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건전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마음으로라도 간음하면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음란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 9~10).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린도전서 6:1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곤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쫓지 말라"(데살로니가전서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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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

 

가을사랑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신분에 맞게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면, 자기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자기 마음을 고상하게 가꾸게 된다. 그리고 소중한 자신의 영혼이 삶에 있어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자기를 비천하게 생각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비하시키면 안 된다.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과 겸손한 것은 다르다. 고귀한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지만,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자신을 비하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처음부터 비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축복받아 행복하게 사는데 자신은 불행하게 태어났고, 자신은 평생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끝날 운명이라고 믿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포자기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텐데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현재 처한 상황에서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값없이 받은 선물이다. 

 

비록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많지만, 현재 주어진 것을 따져보면 그 자체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목숨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명은 이 지구 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다. 그 어느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우리의 생명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대통령 자리와 바꾸겠는가? 아니면 재벌 그룹의 회장 자리와 바꾸겠는가? 최고 정상에 있는 연예인의 자리와 바꾸겠는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다. 그 생명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다. 무상으로 받은 것이 생명(life)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고 해도, 생명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재벌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하나님께 간절히 빌 것이다. 며칠 만 더 살게 해달라고. 그러면 몇백억원이라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그렇다고 그 재벌의 생명이 며칠 더 연장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값진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셨으므로 조금이라도 돌아다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치 않으면 병을 얻게 되고 두 발로 걸어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귀한 생명과 육체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지으심을 받은 존재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일진대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몸에 거하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주셨지만, 하나님은 우리 몸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성령으로 이끄시려고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린도전서 3:16~18)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보살피기 위해 우리의 몸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무시하고 세상의 법에 따라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세속을 따라 인간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을 우상으로 여기고, 순간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며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극도의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세속적인 법칙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살게 된다. 남이야 죽든 말든 전혀 괘념치 않고 자기 혼자 잘 났다고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제멋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온갖 악행에 빠지게 되고, 죄만 짓게 된다. 나중에 죽을 때 허무한 상태가 되며,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된다.

 

그러다가 견디기 어려운 시련에 닥치게 되면 자포자기하여 자살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속물로 늙어가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영혼을 올바르게 보전하는 관리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뿐인 몸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저 욕정을 충족시키는 동물적인 존재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 돈을 버는데 급급한 속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여 건강하게 유지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바램이요 소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처럼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 그것이 세상 살아가는 첫번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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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법


가을사랑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전혀 다른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모른 채 인간의 머리와 힘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절대전능하신 능력자로 믿고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세속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살고 마음 편안하게 장수하기도 합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많은 자식들을 낳아 성공도 합니다. 죽은 다음에는 그 사람의 공덕비가 세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고, 자신보다 훨씬 우월하며 자신의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서 사는 것이 보다 나은 방법이 아닐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흐트러지지 않고 바른 길을 찾아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걸어가는 넓은 길, 편한 길이 아니라 좁은 길, 고생하는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리석은 방법 같아도 나중에 세월이 흐르면 그것이 매우 현명하며 안전하고 튼튼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빛을 발하는 등대와 같은 존재를 바라보면서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세상을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가치관을 상실한 채 표류하다 보면 권태에 빠지고, 교만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한 고난과 고통을 받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그때는 절망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이럴 때 연약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 위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긍정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게 만듭니다.


항상 부정적이고, 콤플렉스를 느끼며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고 세상에서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넷째,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허무한 것입니다. 죽을 때 돈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높은 권좌에 있어도 무한정 그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가혹하게 대하고, 혼자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고, 보람 있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어린 아이가 나이 든 할아버지의 큰 뜻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는 다는 것은 그런 생각조차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에게 상상도 하지 못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우리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2:11~12)

그것은 하니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토기쟁이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던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지 우리의 의사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하고 믿는 자세로 하나님의 품안에서 우리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법과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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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마음


가을사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조금만 잘났어도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똑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교를 다니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것으로 믿습니다. 얼굴이 잘 났고, 몸매가 좋으면 우월감이 넘칩니다. 재벌집 자녀로 태어나면 아무 고생도 모르는 상태에서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권력을 잡으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고 거침없는 말투로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 생각하고 그 결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교만에 빠지는 것은 첫째,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사악하게 대하는 습관을 가져옵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셋째, 그러면서 커다란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넷째, 그 결과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교만은 커다란 죄악입니다.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셨다는 사실도 부정합니다. 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불쌍한 인생으로 무시합니다. 평생 영원토록 자신은 그와 같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건강을 허락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천재지변이나 예상치 못한 인재는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대통령을 지낸 후 감옥에 가기도 하고, 떵떵거리던 재벌이 순식간에 부도가 나고 구속됩니다. 권좌에 앉아 세상을 호령하던 장관도 재판을 받게 됩니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하루 아침에 암판정을 받아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결혼해서 잘 살던 사람들도 이혼법정에 서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별 것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질그릇처럼 자기 뜻대로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4:6).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에 따라 살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서 이 땅에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25)" 그렇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부족한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자랑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건강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한 순간에 잘못 판단하거나 나쁜 사기꾼 한 사람을 만나 그룹이 부도가 납니다. 장관 자리에서 구치소로 자리를 옮깁니다. 등산이 취미인 사람이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갑니다. 세상은 그 누구도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 아래 매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현재의 상황은 미련하고 지혜 없으며, 약한 몸에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해도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고 마음 먹으면 우리는 그 어떤 지혜 있고, 강한 사람들 보다 더 지혜를 얻게 되고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사람과 멸시 받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택하여 있는 사람들을 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인간적인 교만으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7~29)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태어났고, 평생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본받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평강을 주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땅에서 소멸하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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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분별력


가을사랑


[본문]

여러분이 배운 교훈을 거슬러서, 분열을 일으키며, 올무를 놓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 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수셔서 여러분의 발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롬 16:17~20).


[QT]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들 중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악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년에 서울 홍대입구에서 있었던 택시강도강간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의 경우에는 갑자기 길을 가던 선량한 여자들을 납치하여 돈을 뺏고 강간을 한 후 죽여 강물에 던져버리는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서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도 있습니다. 계획적인 사기를 쳐서 수많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망하게 하는 사기꾼들도 많습니다. 순진한 애정을 이용해서 등을 치는 꽃뱀과 제비족도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마와 사탄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물이 들 위험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와 같이 사람을 분별해서 피해를 보지 않고 시련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제대로 못해 패가망신하고, 평생 고생하며, 세상을 기피하는 우울증에 빠져 살게 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절대로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람을 무조건 믿고 사기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취지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항해서 분열을 일으키고 거짓 주장을 함으로써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려는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감언이설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아 소멸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옛사람으로부터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애로운 은혜로 대속을 받아 죄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의 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 세례는 우리의 죄 많은 옛사람을 성령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옛사람의 잘못된 삶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법, 은혜의 법에 따라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은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처럼 선지자들의 깨달음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죄 많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죄 없는 양처럼 속죄를 하기 위해 번제로 희생되셨습니다. 그 고귀하고 값비싼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고, 죄에서 구원받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슬기로운 지혜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일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순진한 태도를 보여 그로부터 자신을 멀게 해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악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악인에 대한 응징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사실 우리가 악인을 처치할 수도 없습니다. 처치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더 다치게 됩니다.

악인은 매우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해서는 더 큰 악을 초래하게 됩니다. 끊임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피의 복수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우리는 더 큰 환난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해 가족이 죽음을 당했다고 가정할 때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 범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직접 살해를 한다고 하면 살해된 범인의 가족들은 또 피의 복수를 할 것이고 다시 이쪽에서 복수를 하면 그에 대한 재복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는 끊임없이 몇 백 년간 집안끼리 살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했을 때 그 사기범이 재산을 다 빼돌리고 무자력자가 되었을 때 민사상으로는 해결방법이 없고, 오직 형사처벌만 가능할 때 사기범을 처벌하기 위해 몇 년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허망한 배신감, 법에 대한 불신감, 인간에 대한 회의, 두려움만이 남게 됩니다. 얻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당했을 때 빨리 그 악의 결과에서 벗어나 악을 멀리하고 피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악을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지 않더라도 악인을 그 자체로 징계하고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부분을 명확하게 단언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셔서 여러분의 발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롬16:20)’ 우리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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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가을사랑

 

 

 

[본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QT]

 

보통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급급한 실정입니다. 먹고 살기 바쁘고, 자신의 건강을 유지관리하기도 어렵고, 가족을 부양하기도 벅찹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하루 보내다 보면 세월만 가고 나이 먹고 병들고 늙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인생은 매우 허무하고 생의 마지막에 후회스럽게 됩니다. 현실에 집착하다 보면 세상 욕심에 빠져 몸과 마음을 제멋대로 굴리게 되고, 남는 것은 병든 몸과 황폐화된 정신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상실할 채 방황하다고 인생을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자신이 어디에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따지고 보면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나중에 어떤 보상을 받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아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형상(形像  image)대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그 뜻에 무조건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은총을 받아 우리의 삶이 밝은 곳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고, 마음의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많은 것을 구하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고난도 불평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 채찍질도 하시고 시련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나중에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도 나중에 복이 될 수 있고, 그런 불행을 극복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깊이 있고, 믿음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련을 당하더라도 이를 꿋꿋하게 헤치고 나올 수 있는 인내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몸 가운에 작은 세포 하나, 핏줄 한 부분만 잘못되어도 우리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순간의 사고를 당해도 우리는 사망하거나 불구가 됩니다.

 

나쁜 사람 한 사람만 잘못 만나도 우리의 사업체나 가정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맙니다. 현대사회처럼 사건과 사고가 많은 때는 없었습니다. 천재지변뿐 아니라 인재도 수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범죄로 인한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고 배신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날이 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지고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의 배금주의 풍조가 사회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의식은 급격하게 실종되고 있고, 혼자만 잘 먹고 편하게 살면 그만인 세상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표류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놓치면 우리는 어두운 밤에 등대를 보지 못하고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불행한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쁨과 평강(平康 peace)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가능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가 받아 충만해질 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항상 주만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를 믿고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믿음 위에 소망을 가지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며 가족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예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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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위험성

 

가을사랑

 

 

[본문]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댜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롬 14:10~13).

 

[QT]

 

세상을 살다 보면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다. 짜증나는 일도 많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많고, 부족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경우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얌체같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세상에는 일정한 기준이 있기 마련이다.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아이들 중에 약간 부족해서 단체생활에 잘 못따라가는 학생에 대해서는 다른 친구들이 비웃고 무시하게 된다. 머리가 나쁘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센스가 없다고 비웃는다. 그럴 때 그 아이는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그 반의 일정한 기준에 맞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서, 아니면 경제적인 환경이 어려워서, 성격이 비뚤어져서, 나쁜 습관에 빠지는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보통사람들은 무시하고 경멸하고 비난한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 잘 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을 무시한다.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무시한다. 얼굴이 잘난 사람은 못난 사람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만을 따라다니고, 권력에서 물러나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인기 있는 연예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는 비춰지는 법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 속에는 아주 교만한 자존심이 있고,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사람은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경멸한다.

 

이런 세상 분위기 때문에 사실 없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다. 너무 잘난 사람들이 많아 기가 죽게 되는 세상이다. 너무 배우고 똑똑한 박사들, 해외유학파들이 많아 피곤한 세상이다. 정치, 경제, 교육, 스포츠, 연예분야이건 모두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제14장에서 이와 같은 세상 사람들의 부족한 태도를 경고하고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을 받아야 할 입장에 잇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같이 죄를 지어서 구치소에 구속된 상태에서 함께 재판을 받는 똑 같은 피고인이 다른 피고인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권한은 없다. 그들은 똑 같은 처지에 있고, 똑 같이 불쌍한 입장이다. 남을 판단할 권한도 없고 여유도 없는 것이다. 똑 같이 불쌍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인간은 모두 원죄를 타고 난 죄인이고 부족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보시에게는 모두 다 똑 같다. 아주 근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거의 비슷하다.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같은 형제들이 서로 싸우면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잘못이고, 둘 다 똑 같은 것이다. 누가 특별히 잘 했고, 누가 특별히 못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간은 다 비슷한 처지에 있고,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서로 똑 같이 잘못을 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의 잘못만 크게 확대경으로 보면서 비난하고 헐뜯는다. 자신의 주관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시원치 않고 잘못이라고 비난하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상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지적이다.

 

우리 모두는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죄인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그 비판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은혜와 사랑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은 인간의 법과 정죄, 복수를 뛰어넘는 위대한 힘이다. 세상 살면서 인간 사이의 갈들은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법은 또 법으로 되갚음을 해오게 만든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이 적용된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원망은 원망을 가져온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그 은혜의 법, 사랑의 법, 긍휼의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법이다. 사망과 음부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의 길이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전에 이땅에 오셔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 피값으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죽으나 모두 주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8)'

 

우리는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예수님의 성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 가슴 속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 바울은 말하고 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로마서 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며,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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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


[본문말씀]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롬 13: 8).


[QT]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선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셔야 하고, 그 분들의 노고로 열 달간 태안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탄생하게 되고, 또 자라는 동안 옆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다.


그 다음에도 부모님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녀야 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들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때그때 주변 사람들의 직접적, 간접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서로 돕고 사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일단 상대방으로부터 나에게로 도움이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고 그들에게 빚을 지면서 실상 그 빚을 제대로 갚는 경우란 많지 않다.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지 않으면 자신의 채무와 빚은 잊어버리거나 제대로 갚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배은망덕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불효자식은 그래서 생겨나게 되고, 경우 없는 사람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일, 은혜를 거꾸로 악으로 갚는 일 등은 역사상 많은 경우를 볼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빚을 진 사람을 채무자라고 한다. 채무자는 자신의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 빚을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제대로 갚지 못하면 채무자는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된다. 소송을 당하게 되고 강제집행을 당하게 된다.


그렇게 해도 변제할 채무가 남으면 파산선고를 받게 된다. 경제적으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채무불이행이나 파산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본인도 잘 인식하고 주변 사람들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빚, 정신적인 채무와 같은 영혼의 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가 영혼의 빚을 지고 있는지, 그 빚을 갚지 않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지고 있는 영혼의 빚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 빚을 갚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영혼의 빚을 모두 갚은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위선일 수도 있다. 영혼의 빚은 한이 없다. 부모님의 은혜는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기 때문에 끝이 없다. 그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 출세해서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불효자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님들의 속을 썩이면서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있는 청소년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는 부모님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학대하고 구박한다. 나이 들어 의지할 곳 없는 독거노인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남편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서 성공하게 만들었더니 젊고 예쁜 여자들과 살림을 차리고 조강지처를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남편은 병이 들면서까지 돈을 벌어다 주었더니 부인은 다른 남자와 놀아나는 경우도 많다.


사업자금을 대준 동업자를 배신하고 혼자 이익을 독차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을 믿은 순진한 사람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너무 많은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은혜를 갚지 않고, 영혼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살면서 영혼의 빚을 져서는 안 된다. 물론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그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갚으려는 노력을 평생 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남으로부터 받은 은혜는 항상 가슴 속에 새겨 두어야 한다. 바위에 새겨야 한다.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생각과 행동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사랑이 있어야 이런 생각과 행동이 가능하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그는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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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


[본문말씀]


형제 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 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1~2).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을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롬 12:9).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며, 환난을 당할 때에 참으며, 기도를 꾸준히 하십시오(롬 12: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롬 12:19).


[QT]


로마서 제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주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좋을지 잘 모르고 있다.


목사님 설교를 듣지만, 매우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선하게 살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선한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기 어렵다.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라고 하지만 막상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마음은 순식간에 흐트러지고 불안과 초조감에 쌓이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도 어렵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도 어렵다.


웬만한 신앙심을 가지고서는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닥치는 많은 고난과 위기,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리 감당하려고 해도 너무 무거운 짐을 지기에는 육신이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원죄를 타고 났기 때문에 거짓말도 잘 하고, 욕망에 무너지고, 쉽게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작심삼일인 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에 선생님과 부모님들은 수많은 가르침과 지도, 훈계를 한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공부하고, 착하고 바르게 살고, 건강을 위해 이것은 먹어서 안 된다, 게임도 적당히 하고, 친구관계도 제대로 해라, 등등.


그러나 막상 그것이 옳은 것인 줄을 알지만, 그리고 그런 말씀을 따르려고 하지만 인간의 의지에는 한계가 있고, 쉽게 욕망에 무너지고, 마음 먹었던 계획은 삼일이 못가서 지켜지지 않고 주저앉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 아이 때의 말씀은 나이가 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선생님도 안 계신다. 오직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이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한다.


그것은 대부분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성경을 통해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의 은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으로 전해진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음성으로 듣고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아이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 인간이고 현실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과식도 하지 말아야 하고, 콜레스트롤이 높은 음식을 피해야 한다. 건강도 꾸준히 해야 한다. 결혼한 이후에는 연애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라도 간음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 우리가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많은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듯이 나이가 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더 많은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약한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이상적인 기준을 부여받고 제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자괴감에 빠지며 때로는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우리는 꾸준히 노력할 뿐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끊임없이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마치 사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된 것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오해다. 십일조를 제대로 내고,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했다고 해서 제대로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도 착각일 수 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 더 없이 낮아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수준은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그 시간과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우리는 그런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또 그런 믿음을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거짓이 없어야 하고, 소망을 품고 즐거워하라. 환난을 당할 때에도 참고 기도를 꾸준하게 하라. 원수는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원수 갚는 일을 맡겨라. 로마서는 이와 같이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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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롬 11:1~10)

 

[QT]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살펴볼 기회를 갖는 것이다. 성경을 읽지 않고 그냥 혼자 생각하는대로 살아가다 보면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단순히 타고난 착한 심성대로 살아가는 것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학교 다닐 때 아주 제한된 시간 배웠던 도덕책의 지식으로 살아가는 것도 불충분하다. 사실 학교에서는 제대로 도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필요한 시험과목 위주로 외우고 문제를 풀고 하는 기능성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가정에서도 진정한 도덕과 윤리를 가르킬 분위기가 아니다. 먹고 살고, 체면치례하는데 온 가족이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주로 많이 접하는 TV를 보면 그 안에서는 대개 부정적인 현상이나 보게 되고, 빈부의 격차를 느끼게 만들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모습을 보게 만들어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삐뚤어지고, 성인들 역시 정신적으로 우울증에 걸리게 되며 영혼이 방황하게 된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혼자만의 생각으로, 혼자만의 철학으로 살아가게 되면, 그는 오류에 빠지게 되고, 교만하게 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저 절망하고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면 주변사람들을 포함한 자신의 환경에 대해 원망과 저주만 하게 된다.

 

세상에 대해 시기심만 늘고, 점차 도덕적으로 타락하며 극도의 이기심에 빠져 아주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그렇게 살다가 죽게 된다. 젊은 시절 오직 현재의 환경만을 바라보며 죽기 살기로 출세하고 돈을 버는데 급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과 정욕을 채우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말초적인 자극에 빠지게 되고, 삶의 방향과 좌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런 삶은 나중에 잘 돼도 허망하고, 못 돼면 아주 비참해진다.

 

명확한 삶의 방향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출세하고 돈을 벌고 재미있게 살았다고 해도 나중에 늙고 병들고 힘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되고, 삶에 있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며, 세속적으로 살았던 것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자신의 삶을 냉철하게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2천년 동안 믿어왔던 성경을 겸허한 자세로 읽어보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고 있다.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가지고 수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읽고 연구하고 그에 대한 주석서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성경을 통해 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얻고, 그로부터 영혼의 구원을 받았으며, 삶에 있어서 성공했고, 기적을 체험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음의 평온을 얻었고, 삶에 있어서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공연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삐딱하게 성경을 볼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머리 좋고 더 성공적으로 세상을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고 따르면서 살아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루를 살면서 꼭 한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성경을 펴놓고 읽고 그 의미를 숙고하고 그 성경 말씀을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유익하다. 달리 좋은 방법이 없는 현실이 아닐까? 성경을 읽지 않고, 막연하게 세상을 살다가 어느 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을 당하게 되면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도 제대로 잘 읽어야 한다. 종교란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방향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 성경말씀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고 잘못 이해하면 사이비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종교란 매우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영 자체를 이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경을 통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그때 그 시련과 고통을 견뎌낼 힘이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무서운 병에 대한 예방접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방주사를 맞고 면역성을 기르는 약을 미리 먹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을 소멸시키는 불치의 병(?)에 걸려 영혼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영혼을 잃지 않아도 영혼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치명상을 받게 될 우려가 있다. 

 

바울은 로마서 제11장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기 백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값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행위가 없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하면 그 은혜는 진정한 은혜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기준을 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은혜를 주신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은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롬 11: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뉘우치지 못한 채 잘못 살고 있는 때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노력하시고 계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신다. 원죄를 가지고 타고난 약한 처지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먼저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믿음을 전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면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은혜다. 은혜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믿고 그 뜻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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