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6-1

은영은 이상하게 무슨 마력에 이끌리는 듯 박기사의 감정이 그대로 이입되고 있었다. 박기사는 계속 술을 마셨다. 나중에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12시가 넘어서 은영은 박기사를 부축여서 나왔다.

도저히 집에까지는 갈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은영은 부근에 있는 모텔로 들어가 박기사를 위해 방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나오려는데 박기사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가지 말아요. 좀 더 있어줘요. 혼자 있으면 미칠 것 같아요.”

은영은 마음이 약해졌다. 도저히 박기사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모텔 작은 쇼파 의자에 앉았다. 박기사가 잠을 자도록 불을 꺼주었다. 그리고 자신도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은영은 옷을 벗고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박기사는 벌써 일어나 모텔방을 나가고 없었다. 은영은 당황했다. 분명 의자에 앉아서 잠을 잤는데, 어떻게 옷을 다 벗고 침대에서 자고 있었을까?

혹시 박기사가 나쁜 짓을 했는지 확인해보았다. 특별히 박기사가 나쁜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밤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내가 어떻게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을까?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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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20

그러면서 젊은 시절에 방황하다가 감방에도 갔다왔다. 많은 여자들이 애인으로 있었지만 지금은 다 떨어져나갔다. 박기사가 그렇게 순수하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은영도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불쌍한 생각도 들고, 옛날 자신의 처녀를 가진 남자라는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강간이었지만, 은영의 처녀성을 빼앗은 남자였다. 그때도 박기사는 은영이 너무 좋아 어쩔 수 없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그냥 강간해서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면서 은영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은영도 따라서 눈물이 나왔다. 박기사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했다.

방 한칸 월세로 얻어 생활하고 있고, 혼자 지내다 보니 건강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친한 치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가 다 떼어먹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를 사기죄로 고소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그 친구가 다른 채권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서 감방에 가게 되었을 때 박기사는 그 친구를 위해 변호사비용으로 3백만 원을 빌려주었다고 한다.

박기사는 은영에게 자신을 도와주는 방법은 명훈 엄마로부터 합의금을 받아서 자신에게 2천만 원만 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특히 눈물을 많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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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9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올 거예요. 당신이 깡패를 시켜서 나를 청부폭행한 것을 경찰서에 고소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과거에 대해 모두 폭로할 거고요.” 은영은 겁이 났다. ‘정말 이 사람이 내 과거를 모두 폭로하고, 폭행당한 것을 경찰서에 고소를 하면 골치 아프게 될 텐데...’

“일단 만나서 이야기해요. 지금 바로 만나요.”
은영은 박기사를 만났다. 박기사는 많이 맞은 것 같았다. 아직도 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진단서도 4주 상해를 끊어서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박기사는 명훈 아빠가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곧 구속되고 회사는 부도날 것이라는 이야기도 소상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명훈은 지금 강간죄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곧 구속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박기사가 가운데서 명훈 엄마를 설득시켜 1억 원을 받고, 그 중 2천만 원은 박기사가 수고비로 가지며, 나머지 8천만 원을 은영이 받고 아이를 낙태시키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 박기사 자신이 당한 청부폭행사건도 고소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은영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훈이도 나쁜 아이고, 집안도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특히 정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박기사가 가운데서 은영을 위해 합의를 보아주려고 하다가 심하게 맞은 것도 미안했다.

일단 박기사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박기사는 고맙다고 하면서 둘이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은영은 따라갔다. 박기사는 술에 취하자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이야기했다. 너무 고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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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8

은영은 바람을 쐬러 명동으로 갔다. 연말이라 그런지 거리는 화려했다. 네온사인이 형형색색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도로 양쪽으로 즐비한 가게들. 손님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신상품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물건들이 많았다. 먹고 마시는 가게도 많았다. 은영은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아이 때문에 참았다. 술은 태아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커피 맛이 좋다.

혼자 조용히 커피를 즐긱로 있는데, 박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을까 하다가 궁금했다. 지난 번 정자의 친구, 성균이 박기사를 만나서 많이 때려주었다는 말도 들었기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러나 싶었다.

“만나서 조용히 할 말이 있어요. 꼭 만나야 해요.”
“만나고 싶지 않아요. 전화로 해요. 무슨 말인지?”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모든 것이 끝나요? 그러니까 이쯤 해서 내가 양보해서 8천만 원을 은영씨에게 줄테니, 합의하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 돈도 못받고 아이를 낳아봤자. 명훈 아빠가 부도나고 감방 가면 아무 것도 아니게 돼요. 나도 이달 말에 회사를 그만 둘 거예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나는 절대로 낙태 안 해요. 그리고 돈도 필요 없어요. 내가 그냥 아이를 낳아서 내 힘으로 키울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 문제에서 손을 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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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5

“아니 그렇다면 강간도 하지 않았는데, 여자들이 조금 때린다고 이처럼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각서를 써주었다는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그 여자들을 불러서 대질조사를 해주세요.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수사관은 어디로 연락하더니 곧 얼마 있지 않아서 피해자 이옥임이 나타났다. 그리고 여자 변호사 옆에 앉으라고 했다. 대질조사가 시작되었다.

피해자는 당시 있었던 상황을 아주 영화보듯이 생생하게 설명했다. 너무 리얼해서 명훈은 그 여자가 IQ가 아인슈타인보다 더 좋은 것으로 보였다.

바로 한 시간 전에 있었던 일처럼 아주 또렷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치마가 어떻게 걷어올려졌는지, 팬티는 어떤 색깔인데 어느 정도 내려졌는지, 그리고 성기는 어떻게 삽입이 되었는지, 몇분간이나 성교를 하고, 사정은 어떻게 했는지, 일이 끝난 후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같이 맥주집으로 가서 범행을 시인받았는지, 각서는 어떻게 작성하게 되었는지 등등을 설명하는데 마치 법과대학 교수처럼 보였다. 아주 논리적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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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4

“피의자 박명훈은 피해자 이옥임(여, 가명, 39세)을 강간한 사실이 있지요?”
“아닙니다. 저는 피해자를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모텔에 같이 갔는데, 저는 침대에 누워있고, 피해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가겠다고 해서 조금 더 있다 같이 나가자고 팔을 잡았더니 갑자기 저를 때리고 난리를 쳤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피해자 주장에 의하면, 모텔방에서 피의자가 갑자기 피해자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린 다음 성교를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거짓말로 나를 강간범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저는 침대에 눕힌 사실도 없고, 치마를 올리거나 내린 사실도 없고, 성교를 한 사실도 없습니다. 증거를 대라고 해주십시오. 증거를!”

“피의자는 강간을 한 다음, 피해자가 친구를 불러 함께 맥주집으로 가서 이와 같은 각서를 써준 사실이 있지요?”

수사관은 명훈에게 ‘각서’ 사본을 보여주었다. 명훈은 자세히 각서를 들여다 보았다. 분명 그때 자신이 쓴 각서가 틀림없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정말 너무 자세하게 노골적으로 강간죄를 인정하는 내용으로 쓰여있었다.

“이 각서는 그 여자들이 나를 붙잡아놓고 때리고 겁을 주어서 본의 아니게 허위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 쓴 것입니다. 절대로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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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3

명훈은 마침내 경찰서로 갔다. 여자 변호사와 함께 출석했다. 말하자면 강제소환이 아닌 임의출석을 한 것이다. 변호사를 선임하면 피의자로 조사를 받을 때 변호사가 참여하여 조사를 받을 때 도움을 준다.

수사관 앞에 피의자가 앉고, 그 옆에 변호사가 앉는다. 수사관은 피의자를 상대로 조사를 할 때, 먼저 피의자에게 형사소송법상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고지한다.

‘피의자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권리를 알려주고, 피의자신문조서에 그와 같은 권리를 고지해준 사실과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진술을 하겠다는 취지의 동의 의사표시를 기재하도록 한다.

또한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받았다는 표시도 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사받으면서 진술을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일 진술을 거부하면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의심을 받고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범죄사실을 부인하거나 다툰다. 소극적으로 진술을 거부하지 않는다.

피의자에게는 이와 같이, ①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② 묵비권, ③ 부인할 수 있는 권리, ④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 ④ 변호인의 참여를 받을 권리 등이 부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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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2

김 검사는 OO경찰서 형사과로 끌려갔다. 그리고 먼저 자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받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내가 어떻게 경찰서에 끌려와서 조사를 받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경찰관에게 양해을 구하고, 김 검사 방에서 근무하는 최 계장에게 연락을 했다. 최 계장은 김 검사에게 경찰관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최 계장은 경찰관에서 자신이 모시고 있는 현직 검사가 맞으니 선처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경찰에서는 김 검사를 피의자로 입건하여 조사했다. 피해자 여자도 조사했다.

그리고 피해자 일행 두 사람의 진술조서도 받았다. 김 검사는 우선 자신의 혐의사실인 강제추행부분에 대해서만 상세하게 해명 차원에서 진술하였을 뿐, 자신을 폭행한 피해자 일행의 폭행이나 상해부분에 대해서는 진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를 받는 도중에도 이곳 저곳이 쑤시고 아팠다. 지문도 찍고, 피의자신문조서를 마친 다음 경찰에서 풀려나왔다. 데리고 있는 최 계장은 택시를 타고 와서 경찰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 검사를 집에까지 모셔다 드렸다. 김 검사는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억울하게 당한 점을 분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현직 검사가 물의를 일으켜서 큰일 났다는 생각 때문에 공황상태가 되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한치 앞을 볼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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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1

실강이가 벌어지고 시간이 지체되자, 피해자인 여자와 그 일행이 난리를 쳤다.
“빨리 경찰서로 갑시다. 저런 나쁜 X은 구속해야 해요. 어떻게 남자 친구가 있는데 감히 여자의 엉덩이를 주무릅니까? 그리고 반성도 하지 않고 있는 X이예요. 아마 상습범인 것 같아요. 콩밥을 먹어야 해요. 피해자는 대학 강사예요. 술에 취하지도 않았고요. 대학 강사가 당하지도 않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이예요? 빨리 끌고 갑시다. 우리고 갈 게요.”

김 검사는 화가 치밀었다.
“이런 나쁜 X들 봤나? 내가 성추행하지도 않았는데 왜 뒤집어씌우고 나를 때려? 너희들 깡패야? 가만두지 않을 거야.”

이때 남자경찰관이 피해자 일행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은 현직 검사예요. 조용히 해결하면 어때요?” 이 말에 일행은 흥분했다. “뭐라고! 저 X이 검사라고? 그럼 검사는 여자 엉덩이 만져도 되고, 검사 아니면 여자 못만지겠네? 저런 나쁜 X이 무슨 검사야?”

식당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 기이한 장면을 구경하면서 재미 있어 했다.
‘저 사람이 현직 검사래!’
‘별로 검사답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검사가 저러겠어? 검사 사칭하는 거겠지?’ ‘아냐 현직 판사도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체포된 적 있다는 뉴스를 봤어.’ ‘판사나 검사가 더 응큼하대’

상황이 어렇게 되자, 경찰관은 어쩔 수 없었다. 남자 경찰관이 김 검사의 팔을 끼고 순찰차에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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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5-10

경찰관 중 한 명은 여자였다. 남자 경찰관은 일단 김 검사에게 말했다.
“귀하를 강제추행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귀하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구대로 가자고 했다. 김 검사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절대로 강제추행을 한 사실도 없다. 술에 취해 비틀거렸을 뿐, 여자의 엉덩이를 고의로 만지지 않았다. 그것은 좁은 공간에서 여자가 오해를 한 것이다. 순간 술에서 깨어 정신이 빤짝 들었다.

‘이 상황에서 경찰서에 끌려가면 큰 망신이다. 어떻게 하지?’ 그래서 김 검사는 경찰관에게 잠깐 옆으로 가서 조용하게 말을 하자고 했다. 술집 빈방으로 들어가서 김 검사는 남자 경찰관에게 말했다.

“사실 나는 OO검찰청 검사요. 저 여자가 오해한 거요. 그러니까 조용히 해결합시다.”

그러자 경찰관은 김 검사에게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김 검사는 검사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사무실에 놓고 다닌 것이다.

“일단 경찰서로 가시죠. 다른 사람들 이목도 있고. 그리고 정식으로 112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서에 가서 잘 해명하시죠.” 김 검사는 화가 났다.

“아니, 내가 검사요. 그런데 내가 술을 마셨지만, 여자를 추행이나 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이게 정당한 법집행입니까? 내가 무슨 현행범이라는 말이요? 내일 내가 경찰서에 연락하겠소.”“안 됩니다. 검사님! 경찰서에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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