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6-9

명훈 엄마는 박기사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은영을 만났는데, 은영이 아이를 반드시 낳겠다고 하는 말, 그래서 자신이 겨우 설득시켜 돈을 주고 해결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명훈 엄마는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명훈이 강간사건으로 구속될 위기에 처했는데, 또 은영이 사생아까지 낳게 되면 명훈이 인생은 모두 끝이 날 것 같았다.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외아들인데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어린 명훈의 잘못이 아니라, 집안에서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사업이나 하면서 바람이나 피고 돌아다닌 명훈 아빠 책임인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명훈이는 잘못된 부모의 희생물인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 들어보면 이해가 가는 사건이었다. 젊은 아이가 연애를 했는데, 갑자가 상대 여자가 달라붙어서 임신을 해가지고 공갈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남자로서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고 아닌가? 은영이 같은 이상한 여자는 만명중 한 명이 있을까 말까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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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11

이제 김 검사 부인은 그 아파트 단지에서 더 이상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할 판이었다. 더군다나 부인의 친정에서는 김 검사가 그렇게 여자를 좋아하고 음큼하게 밝히는 줄 미처 몰랐는데, 이제 그 실체를 알게 되었으니 딸이 걱정이 되었다.

김 검사 친가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억울한 것 같기는 하지만, 검사나 된 아들이 그렇게 오해받을 처신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 검사 아버지는 최근에 조상 산소를 제대로 벌초도 하지 않고, 절에도 잘 다니지 않아 액운이 들어온 것으로 생각했다. 당장 조산 산소에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잘 아는 역학자에게 가서 원인을 물어보기로 했다. 이렇게 물의를 일으키면 김 검사는 변호사개업도 쉽지 않다.

변호사회에서 변호사 개업 등록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어서 집에서 놀고 있으면 김 검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상황이었다. 그리고 죽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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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10

그래서 당분간 명훈 아빠의 사건은 수사중단상황에 들어갔다. 검사나 사법경찰관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든다.

구속시키고, 사업을 망하게 한다. 특히 고소사건을 맡아서 처리하면 지는 쪽에 대해서 원수가 된다.

원망이나 원한의 정도는 물론 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손해를 보는 쪽은 검사나 경찰관을 절대로 좋게 보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비난하고, 원망한다.

무의식적으로 저주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실 따지고 보면 검사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누군가 해야 할 범죄수사와 처벌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선행을 베푸는, 남에게 은혜나 이익만을 주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꼭 좋은 직업이라고는 할 수 없다.

김 검사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하루 아침에 별 것 아닌 실수로 인해 패가망신을 당한 것이다. 김 검사의 부인도 참으로 한심하게 되었다. 인물 좋고 머리 좋은 검사와 결혼했다고 해서 주변에서 많은 부러움을 샀다.

친정 식구들에게도 떳떳했다. 아파트 단지내에서도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그런 검사가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추행을 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가서 조사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검사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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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9

법조인 숫자가 많다 보니 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 검사의 경우는 정말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술에 취해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타인은 결코 남의 잘못이나 과실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 검사는 이런 교훈을 뼈저리게 느꼈다.

김 검사의 사표가 수리되었다는 보도를 보자 명훈 아빠는 뛸 듯이 기뻤다. 즉시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제 사건 담당 김 검사가 성추행으로 사표를 내고 쫓겨났대요. 이제는 제 사건이 끝나는 건가요?”

“아니예요. 김 검사는 나가도 다른 검사가 그 사건을 인수인계받아서 처리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미 김 검사가 많은 조사를 해놓았고, 수사기록을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그리고 정사장님도 이미 입건조치를 해놓았잖아요?”

명훈 아빠는 좋다가 말았다. 그러나 아무튼 주임검사가 열심히 특별수사를 하다가 사표를 냈으니 아무래도 후임으로 다른 검사가 사건을 인수받아 처리한다고 해도 예전보다는 훨씬 수사강도가 떨어질 것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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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8

명훈 아빠를 수사하고 있던 김 검사는 끝내 사표를 제출하고 말았다. 언론에서 김 검사가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고 게다가 여자까지 성추행했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김 검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뿐만 아니라, 김 검사가 성추행을 한 다음에도 이에 대해 항의하는 여자 피해자 및 그 일행에게 욕을 하며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보도가 되자, 김 검사는 완전히 일반 시민에게 현직 검사로서 갑질을 한 것처럼 왜곡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 검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예전에 발생했던 판사와 검사 및 기타 공무원들이 저질러서 문제가 되었던 성추행사건까지 모두 모아서 종합 분석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법을 잘 지켜야 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법조인이 어떻게 성추행을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검사집단 전체에 대해 심각한 평가절하를 하고 있었다.

하기야 현직 검사장이 도로에서 공연음란행위를 한 사실 때문에 사표를 낸 사실도 있었다. 현직 판사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했다고 해서 입건된 사실도 있었다. 여자 판사가 남자 변호사와 연애를 하면서 고급차를 선물 받았다고 해서 법적으로 무제가 된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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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8

그리고 명훈이가 자필로 쓴 각서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여자 두 명이 강압적으로 때리면서 경찰서에 끌고 가겠다고 하니까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써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검사는 다시 명훈과 이옥임 및 옥임의 여자 친구 세사람을 동시에 불러서 심도 있게 대질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물론 명훈의 변호사도 피의자조사에 참여했다.

검사는 더 나아가 명훈과 이옥임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이옥임의 몸에 났다고 주장하는 상처와 진단서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조사했다.

세 사람은 경찰에서 각자 주장한 바와 똑 같이 일관성 있게 검사 앞에서도 진술했다. 거짓말탐지기 결과도 명훈과 이옥임 모두 진실반응이 나왔다.

검사는 상당히 고심했다. 이 사건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 증거에 의해서 인정되면 구속도 해야 하고, 나중에 법원에 가서는 실형도 살게 될 사건이다.

그런데 워낙 물적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말밖에 없는 사건이라 잘못했다가는 무죄가 선고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조사를 마친 검사는 보름 정도 사건기록을 보면서 고민했다.

부장검사와 사건에 대한 협의를 한 다음, 일단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피해자 이옥임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상해진단서까지 있는 강간치상죄의 무거운 사건이다.

피의자 정명훈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며, 합의도 성립되지 않는 점을 참작해서 도주 및 증거인멸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명훈은 법원에 가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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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5

명훈의 강간사건은 경찰에서 검찰청으로 송치되었다. 송치(送致)라는 용어는 어려운 한자말이다. 경찰서에서 형사사건을 수사한 다음 검찰청으로 사건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에서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기록을 작성한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경찰관은 사건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한 다음, 수사기록 앞에 붙인다. 이러한 사건기록과 압수한 증거물 및 증거서류 등을 모두 검찰청으로 보내는 것이 바로 사건송치다.

만일 피의자가 구속되어 있으면, 피의자의 신병까지 함께 검찰청으로 보낸다. 이때는 수갑을 채워 검찰청으로 피의자를 보낸다. 명훈에 대한 사건은 경찰에서 기소의견으로 불구속송치되었다.

다시 말하면, 명훈을 구속하지는 않고, 조사한 결과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수사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검찰청으로 사건을 보낸 것이다.

경찰은 명훈에 대해 강간치상죄를 적용했다. 적용법조는 형법 제301조다. 강간치상죄는 강간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상해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한 때에 성립하는 범죄다.

강간치상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성범죄는 이처럼 아주 무겁게 처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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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4

형법에는 피의사실공표죄라는 죄가 있다. 형법 제126조에 규정되어 있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하는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또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무죄추정의 법칙이 있고, 아직 재판에 회부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직 검사가 성추행을 했다는 식으로 언론보도를 하면 이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보도가 피의사실공표죄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처벌된 예는 거의 없다.

더군다나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현직 검사라고 해도 물의를 일으키면 갑의 입장이 아니라 을의 입장이 된다. 김 검사는 정말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되자 아무도 김 검사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부장검사나 차장검사, 검사장까지도 그랬다. 김 검사가 억울하다고 해도, 일을 저질러 놓고 무슨 변명이냐는 식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검찰청 출입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는 이제 검사로서는 끝이다.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를 건드렸으니까 경찰 조사를 받았지, 아무렴 성추행을 하지도 않았는데 일반인이 현직 검사와 같은 높은 분을 허위고소를 했겠느냐?’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김 검사가 그동안 열심히 수사를 하고, 고급 술집에도 다니지 않고, 서민적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기자들은 ‘ 검사가 아주 위선자고 가식적인 저급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김 검사는 대검찰청 감찰조사도 받았다. 그곳에서도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진술을 했지만, 감찰 담당자 역시 김 검사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김 검사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대검찰청에서는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김 검사의 사표를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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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3

김 검사는 기가 막혔다. 정말 자신은 성추행한 사실이 없다. 술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좁은 통로에서 여자 손님과 비켜나오려고 하던 중 술기운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여자 엉덩이쪽으로 손이 닿았을 뿐이었다.

여자는 치마를 입고 있었고, 순간적으로 손을 뗐기 때문에 여자가 크게 문제 삼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자신의 엉덩이를 만져서 추행을 했다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억울하게 뒤집어 쓰게 된 일이었다.

이처럼 여자의 일방적인 진술과 주장에 의해 피의자로 입건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하지도 않고, 경찰에서는 기자들에게 이런 사실을 공표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이었다. 분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김 검사는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할 때는 재판에 회부되기 전에도 언론에도 메주알고주알 까발리고, 공표를 해서 사실상 범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중에 재판에 넘어가지 않고 불기소처분을 받아도 그렇고, 형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단 언론에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다음에는 그 추락한 명예를 회복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당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김 검사 자신의 일이 되고 보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김 검사는 경찰관의 이런 행위가 어떤 죄에 해당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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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진 운명 6-2

김 검사가 사무실에 출근하자 난리가 났다. 검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검사님! 어제 술집에서 성추행을 했다면서요? 어떻게 된 겁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술을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던 중 여자 손님과 좁은 통로에서 비켜나오던 중 약간의 신체접촉이 있었는데, 여자가 오해를 하여 일어난 해프닝입니다.”

“경찰 말로는 검사님이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술에 취한 척하면서 강제추행을 하였다고 하던대요? 누구 말이 사실입니까?”
“정식으로 강제추행죄로 형사입건은 된 겁니까?”

경찰에서는 이미 기자들에게 김 검사 사건을 알린 모양이었다. 기사 내용은, ‘OO지방검찰청 A 검사가 술집에서 여자 손님의 몸을 만져서 강제추행을 한 사실로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풀려나왔다.’라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대검찰청에서는 김 검사에 대해 감찰조사를 벌이기로 했다.’는 기사도 덧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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