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봉사명령의 확대해석금지원칙과 불이익변경금지원칙
가을사랑
최근 대법원은 사회봉사명령제도의 내용에 관해 확대해석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판결은 대그룹 회장이 피고인이며, 항소심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전제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는데, 이번에 대법원에서 항소심판결의 사회봉사명령내용이 위법하다는 이유로 파기하면서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는 집행유예부분까지 파기해서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어렵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한 그룹회장에게 다시 실형이 선고될 수 있는지 여부가 궁금한 것이다. 사건의 내용과 그동안의 진행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A그룹의 회장인 피고인 B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1034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696억원을 빼돌리는 등 회사 자금 900억여원을 횡령하고 그룹의 계열사에 2100억원대의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2006년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되었다. 1심 판결은 피고인 B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고등법원은 A그룹 회장 B에 대하여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5년간 그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은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고인 B에게 사회봉사명령을 부과하였다.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은, ① 2013년까지 8400억원을 출연한다는 약속을 이행할 것,② 준법경영을 주제로 전경련 회원 등에게 2시간 이상 강연할 것,③ 국내 일간지 등에 같은 주제로 기고할 것이었다. 당시 항소심 재판장은, “이 판결의 의미는 사회봉사명령의 확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재능 있는 사람은 재능을,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을 공여하게 해서 그게 당사자에게 부담이 되면 실형에 가름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바 있다.
서울고등법원의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해 검찰에서는 사회봉사명령에는 재산의 사회헌납 등이 포함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대법원에서는 사회봉사명령에 재산출연, 범죄행위와 관련된 기고 등을 명령할 수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대법원에서는 현행 형법에 의해 명할 수 있는 사회봉사는 500시간 내에서 시간 단위로 부과될 수 있는 일 또는 근로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금원출연을 명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이나 기고도 취지가 분명치 않고 그 의미나 내용이 특정되지 않아 헌법이 보호하는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할 수 있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환송하면서 사회봉사 명령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집행유예부분도 함께 파기했다. 대법원은 판결설명자료에서 기부금을 내용으로 하는 사회봉사명령은 자칫 자의적이고 불평등한 형벌집행을 초래할 위험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형의 집행유예제도라 함은, 법원에서 형을 선고하면서 그 집행만을 일정한 기간 유예하기로 하는 것을 말한다. 법원은 피고인에게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형법 제51조가 규정한 양형사항을 검토하여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선고한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형법 제62조 제1항 본문).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집행유예제도는 형법 제51조가 규정하고 있는 양형사항을 검토해서 법원의 재량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때 집행유예와 함께 부과하는 사회봉사명령은 임의적 부과사항이다. 법원에서는 피고인에 대한 형의 집행을 유예하면서, 사회봉사명령을 함께 부과할 수도 있고, 부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회봉사명령은 집행유예선고의 필수적 요소가 아니라 임의적 요소에 불과하다.
1995년 개정형법 제62조의2 제1항은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하거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할 수 있다, 이 경우 보호관찰의 기간은 집행을 유예한 기간으로 한다. 다만, 법원은 유예기간의 범위 내에서 보호관찰기간을 정할 수 있다, 사회봉사명령 또는 수강명령은 집행유예기간 내에 이를 집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봉사명령은 500시간, 수강명령은 20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보호관찰등에관한법률 제59조제1항, 형사소송규칙 제174조의2 제3항).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 부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사회봉사명령의 내용 중에 피고인의 재산의 사회출연이나 준법을 강조하는 강연이나 원고의 기고 등이 포함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릴 수 있으나, 대법원은 현행 형법에 의해 명할 수 있는 사회봉사는 500시간 내에서 시간 단위로 부과될 수 있는 일 또는 근로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금원출연을 명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강연이나 기고도 취지가 분명치 않고 그 의미나 내용이 특정되지 않아 헌법이 보호하는 피고인의 양심의 자유에 중대한 침해를 초래할 수 있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사회봉사명령은 시간단위로 부과될 수 있는 일 또는 근로활동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전을 직접 출연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이다. 대법원은 "범죄인 처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이 개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하지만 그 요건과 절차는 정해진 법률에 따라야 하고 함부로 확장·유추 해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현행 형법의 사회봉사명령제도의 입법취지나 사회봉사명령은 50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한 관련 법령의 내용 등을 종합하면 대법원이 사회봉사명령을 위와 같이 제한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일응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다만, 앞으로 입법보완작업을 통해서 사회봉사명령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외국의 입법례를 참고로 하여 사회봉사의 내용을 다양하게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에서 피고인은 상고하지 않고, 검사만 상고하였다. 그런데 검사의 상고이유는 피고인에 대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피고인이나 검사 모두 형이 무겁다거나 가볍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한 것은 피고인에 대하여 부과한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원심판결 내용 중 사회봉사명령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파기하면서 사회봉사명령이 집행유예판결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들어 함께 파기하였다. 형법 제62조의2 제1항은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하거나 사회봉사 또는 수강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봉사명령은 집행유예판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실형을 선고하면서 사회봉사명령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에 대법원에서 파기한 사건의 심리를 맡게 될 재항소심에서는 피고인 B에 대한 집행유예를 취소하고 실형을 선고할 수 있을까? 형사소송법 제368조는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과 피고인을 위하여 항소한 사건에 대하여는 원심판결의 형보다 중한 형을 선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번에 사건을 맡을 재항소심재판부는 종전에 선고한 항소심판결은 파기되었으므로 효력이 없는 상태이고, 피고인을 위한 불이익금지원칙의 적용을 받는 제한은 없다고 보여진다. 즉 형사소송법 제368조의 규정이 직접 적용되는 사안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대법원 공보관은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든 형량을 높이든 법리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로 대법원은 ‘형법 제62조의2 제1항에 의하면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사회봉사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조항에서 말하는 사회봉사는 형벌이 아니므로, 제1심에서 징역 3년의 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 대하여 항소심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면서 24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하였다고 하여 형사소송법 제368조의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99. 7. 27. 선고 99도2074 판결). 사회봉사는 형벌이 아니라는 취지를 분명하게 한 판결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원래의 항소심이었던 서울고등법원은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사회봉사명령을 동시에 부과했다. 피고인은 상고를 포기했고, 검사만이 상고를 했는데, 이때 상고이유는 양형부당이 아니고(애당초 양형부당은 상고이유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사회봉사명령만이 잘못되었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대법원에서 양형부당이 아니고, 사회봉사명령의 내용이 위법하다는 이유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이때 집행유예부분은 사회봉사명령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함께 파기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고 하면 재항소심에서는 사회봉사명령부분만 다른 내용으로 판결하고, 집행유예를 하지 않고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피고인에게 형사소송법상 인정되는 불이익금지원칙이 곧 바로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원항소심에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이때 검사만이 상고한 사건에서 상고이유가 양형부당이 아니었고, 사회봉사명령부분에 대해서만 위법 여부를 다투었기 때문에, 사실상 피고인에 대한 형량에 있어서 더 이상의 불이익한 사태가 오리라고는 예측할 수 없었던 점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볼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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