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수술과 부엉이
가을사랑
미네르바는 자신의 어깨 위에 항상 부엉이를 올려놓고 있었다. 부엉이는 한환 대낮에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어두워지는 황혼이 되면 앞을 잘 볼 수 있어 날기 시작한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부엉이를 통해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는 세상 일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부엉이는 법으로 상징된다. 세상일은 복잡한 변화가 지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냉정하게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의료과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볼 때 이런 교훈이 떠오르는 것은 반드시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날이 갈수록 의료사고는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 환자가 많이 증가하여 의료시술이 늘어나고 있는데 따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생명존중의 정신이 희박해지는 데도 원인이 있다.
자신의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환자의 생명과 신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적 사명감을 제대로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다. 의사의 수는 포화상태에 있어 무한경쟁의 치열한 전장에서 살고 있는 의사들이 차분하게 환자의 권익만을 보호하기에는 불가능하다.
특히 성형수술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강남에는 우후죽순격으로 성형외과, 피부과가 들어서 있다. 그 많은 병원에서 성형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다. 얼굴과 가슴을 포함하여 몸 전체를 뜯어고치고 있다. 인위적으로 살도 빼고, 체형도 바꾸어놓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시술상의 과오도 있고, 정상적으로 시술에 대한 확실한 설명과 부작용에 대한 사전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평생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가슴에 새겨놓고 열심히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때로 일부 의사들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의사도 아닌 사람들이 무허가로 성형수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처음 수술을 받는 사람들은 아무런 의학적인 지식이 없다. 그냥 주변에서 주어들은 이야기가 전부다. TV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예뻐진 모습만을 보고 자신도 똑 같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있다. 특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10대, 20대 젊은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성형수술을 받으려고 한다. 이때 부모들과 제대로 상의를 하지 않기도 한다. 부모들도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별로 만류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성형수술에서 성공한 사람들만 성공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패해서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창피해서 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도 언론에서 크게 받아주지도 않는다. 그냥 의료시술상 있을 수 있는 정도로 가벼운 부작용현상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통계로만 부작용의 수치를 듣고 아주 가볍게 생각한다.
질병을 고치는 것도 아닌데 요즘 시술되고 있는 성형수술은 너무 위험한 수준까지 무모하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에 위험이 있다고 해도 이를 감수하고 수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뇌수술이나 심장수술 같은 것이 그렇다. 대단히 위험한 수술이지만, 수술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는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수술을 하다가 목숨을 잃어도 환자나 가족들은 기꺼이 수술에 동의하고 그 결과를 감내한다.
성형수술은 다르다. 질병의 치료가 아니라, 현재 상태보다 나은 상태로 호전시키기 위한 개선이 목적이다. 그런 개선목적의 수술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성형수술을 하다가 사망에 이르는 사례도 있는 것을 보면 문제다. 환자의 상태로 판단해서 성형수술이 위험할 것 같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 판단은 어디까지나 전문가인 의사의 몫이다.
그리고 성형수술의 부작용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다른 수술과 달라서 성형수술은 대개 밖에 노출되어 있는 신체 부위를 대상을 행해진다. 애당초 수술의 목적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므로, 수술을 해서 예쁘게 고쳐지면 그 부분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수술이 잘못되면 그 수술한 부분은 남에게 잘 보이는 곳이므로 쉽게 눈에 띄게 되고, 더욱 커다란 고통을 받게 된다. 눈이나, 코, 턱, 입, 얼굴피부 등이 그렇다. 남자나 여자 모두 자신의 얼굴 부위에 대해서는 아주 민감하며 대외활동의 간판이기 때문에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할 때도 얼굴만을 본다. 거울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얼굴만을 보게 된다. 얼굴 이외에 등이나 발을 거울로 자세히 들여다 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가장 중요한 부위인 얼굴에서 성형수술로 부작용이 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얼굴을 들도 밖에 다닐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과실로 초래된 재앙이다. 그는 얼굴 때문에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게 되고, 다른 일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공부도 못하고, 일도 못한다. 운동도 못한다. 모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얼굴에 대해 비관하다가 우울증에 걸린다. 대인기피증에 빠지게 된다. 세상을 원망하고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게 된다.
그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숨긴 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들이 얼굴이 괜찮다고 말해주어도 곧이 듣지 않는다. 얼굴에 대한 콤플렉스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생리적인 문제가 아니고, 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은 미적인 것이기 때문에 몹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고민은 더욱 심화된다. 평생 그런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끊임없이 재수술을 받아 원상으로 회복하려고 시도하지만, 가는 곳마다 비관적인 답변뿐이다. 하기야 남이 망쳐놓은 것을 다른 의사가 왜 새로운 위험부담을 안으려고 하겠는가?
성형수술로 망가진 것은 사실상 원상회복이 어렵다. 얼굴과 같은 민감한 신체부위는 자꾸 수술을 하면 더욱 악화된다. 그것을 진흙덩어리처럼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진흙을 가지고 조각을 하는 사람은 몇 번이고 진흙을 이겼다 붙였다 할 수 있지만 사람의 얼굴은 그렇지 않다.
성형수술의 부작용은 실제로 당한 사람들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 쌍꺼풀 수술을 잘못 받아 토안(兎眼)이 된 사람들은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까칠까칠해지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고 안구가 건조해져 항상 아프다. 안약을 계속 넣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눈이 물러 터진다. 일도 못한 채 평생 그런 고통을 받아야 한다. 턱을 잘못 깍은 사람은 입을 벌리면 딱딱 소리가 나기도 한다. 얼굴성형수술이 잘못되어 피부가 색깔이 변하고 썩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으로 가볍게 여기고 웃고 만다. 왜 수술을 했느냐고 비난이나 한다. 물론 의사의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다. 대개의 사고는 예상치 못한 데서 일어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유독 그 환자의 경우에만 부작용이 나서 시술한 의사는 재수 없는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학적 관점에서 그 부작용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숨이 위태롭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전혀 다른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경우에 가해자는 자신의 책임을 면하려고 급급한다.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상대방의 피해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얼굴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성형수술로 이한 부작용이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법과 제도, 행정감독기관, 언론, 수술하는 의사와 수술받는 사람 모두의 책임이다. 성형수술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를 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성형수술을 자꾸 부추기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사들도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성형수술을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더군다나 부작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신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요행만 바라고 위험한 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만일 성형수술로 인한 의료사고가 있으면 철저히 수사하여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 많은 의료과실이 수사력의 미흡으로 과실이 밝혀지지 못한다. 법률에 대해 잘 모르고, 의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피해자가 의사의 시술상의 과실을 증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법원에서 의료사고에 대해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엉이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의료과오소송에서 피해자는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지 못해 패소하고 만다. 패소하면 의사측의 소송비용까지 피해자가 부담해야 한다. 어렵게 의사의 과실을 입증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인정하지 않고 기껏해야 설명의무위반 정도로 인정하고 손해배상금액은 아주 낮은 금액으로 그치고 만다. 피해자들은 법에 대해 실망하고 법원에 대해 신뢰를 가지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법과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법이 현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연예인 모씨가 2002년 9월 코성형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통증 등의 후유증을 겪었으며 2004년 7월 안면부에 자기지방이식수술을 받았다가 발열 및 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수술한 의사를 상대로 3억5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낸 사건이었다.
법원은 "일반대중에게 얼굴 및 신체를 자주 노출시켜야 하는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얼굴 부위에 나타나는 부작용은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부작용 발생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세심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2차 시술 당시 다른 방법으로 염증 등의 부작용을 예방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의사뿐만 아니라 변호사 세무사 건축사 등의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의뢰인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분쟁이 생기고 송사가 생기는 일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전문가에 대해 그들의 잘못을 따지기에는 일반인들의 역량이 부족했었으나 이제는 이반인들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권익보호에 철저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현상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전문가들 역시 자신의 업무에 있어서 보다 높은 사회적 사명감, 도덕적 윤리의식, 인간존중의 정신을 가져여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인격적으로 대하고, 자신이 배운 지식과 경험을 단순히 돈벌이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제 : 여배우 '성형부작용' 소송에서 승소 [미디어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