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난해 구절 해석


가을사랑


Ⅰ. 인용에 있어서 문제가 있는 듯한 구절 해석


1. 마태가 왜 스가랴 선지자가 말한 내용을 예러미야의 예언으로 인용했는가?


마태복음 27:9~10의 인용은 예레미야 32:6~9의 내용과 스가랴 11:12~13의 내용을 혼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예수님은 당시 성경 해석의 원리에 따라 예레미야 선지자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다윗이 성전에서 진설병을 먹을 때 대제사장은 누구였는가?


한 해결방법은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역대상에서는 교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해결방법은 다윗이 진설병을 먹을 때 아비아달도 그의 아버지 제사장 아히멜렉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마가복은 2:26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할 수 있다.


Ⅱ. 서로 상충되는 듯한 구절 해석


1. 세 곳에 기록된 바울의 회개사건들이 왜 서로 일치하지 않는가?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 회개하였다. 바울의 회개에 대한 세 개의 기록은 본질적으로 일치하지만 강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각 기록은 문맥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 세 곳의 기록에 나타난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문체적으로 아주 귀중하지만 내용의 일치에 있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저자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음을 인정하고 같은 사건을 기록할 때 맹목적인 일치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2. 가룟 유다는 어떻게 죽었는가? 마태의 기록과 사도행전의 기록의 차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누가가 유다가 맞이한 죽음을 창자가 터져 죽었다고 기술한 것은 유다가 어떻게 죽었느냐는 죽음의 방법을 기술하지 않고 죽음의 결과를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의하면, 유다의 죽은 곳은 낭떠러지로 유다가 낭떠러지 위에서 나무에 매달려 죽어 아래로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마태는 유다가 맞이한 죽음이 방법을 기술했고, 누가는 죽음의 비참한 결과를 기술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순서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왜 다르게 나타나는가? 그리고 이런 차이가 성경무오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차이는 누가복음이 마태복음 순서의 둘째와 셋째를 바꾸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가 예수님의 광야 시험을 역사적인 순서대로 따르지 않은 것은 인접 문맥의 경우처럼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누가에게는 이런 자유가 있었으며 이와 같은 기록은 성경무오설과 전혀 상충이 없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순서를 누가보다는 마태가 더 시간적인 순서를 따랐다고 생각된다. 누가는 이 부분을 기록할 때 시간적인 순서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첫 번째 시험 후에 “모든 권세와 그 영광”에 관계된 시험을 세 번째에 기록하지 않고 두 번째에 기록함으로서 예수님의 광야시험에 더 극적인 면을 나타내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접된 문맥도 같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Ⅲ. 교리적인 상충이 있는 듯한 구절 해석


1. 요한일서 3:9은 성도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완전론을 지지하는가?


요일 3:9의 본문은 성도가 죄를 짓지 아니하는 이유를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성도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씨가 존재하는데 그 씨가 계속 자라고 확장된다는 뜻을 함축한다. 하나님의 씨를 소유한 성도가 죄를 범할 수는 있지만 성도 속에 있는 생명을 살아있는 것이다. 이 살아있는 생명 때문에 성도는 계속해서 죄 가운데서 살아갈 수 없다. 요한일서 3:9은 중생한 성도가 같은 죄를 계속해서 범할 수 없다는 뜻이지 성도가 전혀 죄를 범할 수 없다는 완전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2.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뜻은 무슨 뜻인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노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이 구절의 해석은 비아제타이를 중간태로 보느냐 아니면 수동태도 보느냐에 달려있다. 비아제타이를 중간태로 취급하여 번역하면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힘있게 진전한다. 능력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번역할 때 후반부의 내용과 전반부의 내용이 서로 잘 일치한다.


3. 칭의를 받는 것은 믿음으로인가, 행함으로인가?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데 있어서 믿음만으로 가능함을 롬 3:28에서 강조하고 있다. 반면, 야고보는 약 2:24에서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설명한다. 야고보는 바른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행위에서 분리된 믿음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서 믿음의 실재와 믿음의 활력이 증명되는 그런 믿음을 강조한다. 살아있는 믿음은 어떤 형태로든 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롬 3:28과 약 2:24는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Ⅳ. 맺는 말


우리가 성경에서 난해한 구적을 대할 때 상충이나 잘못이 있다는 전제하에 접근할 것이 아니요,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정확무오하게 기록되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는 조화를 이룰 수 없을지라도 시간의 흐름과 계속되는 연구를 거쳐 조화의 방법이 나타나게 된다. 성경의 어떤 것은 지식으로 해결할 수 없고 믿음으로만 해결되는 분야가 있다. 우리가 소유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이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적을 믿은 여인[캐더린 쿨만]


가을사랑


로버츠 리아돈(Roberts Liardon)이 쓴 치유사역의 거장들(God's Generals)이라는 책은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사람들이 살았던 영성과 능력 사역자의 삶에 관하여 쓴 것이다. 12명의 위대한 사역자들의 삶에 대해 쓴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그레이스은혜출판사에서 박미가씨가 번역출간한 책이 있다. 이중에서 캐더린 쿨만의 사역에 관해 요약정리해 보기로 한다.


캐더린 쿨만은 1907년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14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였다. 1928년 그녀는 아이다호 주 보이스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캐더린 쿨만의 초기사역에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헌신에 중점이 두어졌다. 그녀만의 특징적인 사역을 지속해 나가는 동안 어린 시절부터 보여주었던 영적인 것에 대한 이해력을 빠르게 증진시켜 나갔다.


충성이란 하나님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조금도 가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보았다.


1933년 캐더린 쿨만은 미국의 대공황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여행 복음 전도자로서 그 어떤 교단의 지원도 받고 있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1935년 그녀는 덴버에서 덴버 부흥 타버나클의 문을 열었다. 이 타버나클은 곧 교회로 발전하였고, 웃음이라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1938년 10월 캐더린 쿨만은 첫 부인과 이혼한지 16개월째 접어든 윌트립과 비밀리에 결혼하였다.


캐더린 쿨만은 1944년 윌트립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혼자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1947년 그녀는 비로소 월트립과 정식으로 이혼하였다. 그녀는 펜실바니아 주 프랭클린으로 갔다. 그녀는 그곳을 근거지로 하여 미국 중서부의 여러 주들과 펜실바니아 남쪽의 주들을 돌아다니며 다시 집회를 열기 시작하였다.


당시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복음전도사역이었다. 그녀는 이때부터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치유를 비는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기적이나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집중하지 말고 기적을 주시는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할 것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그녀는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구원받은 시점에 치유도 이미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성령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947년부터 성령에 관한 가르침을 시리즈 형식으로 만들어 사람들 앞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캐더린 쿨만은 자신의 치유 사역이 점점 커져갈수록 믿음에 대한 설교는 점점 줄었고, 대신에 성령님을 강조하는 설교 횟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1950년이 되자 그녀의 사역은 전국의 도시들로 무대가 넓어졌다. 캐더린 쿨만의 설교는 전세계에 방송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단 한번도 흡연과 음주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설교한 적은 없었다. 그 당시 치유복음전도자들이 일반적으로 흡연과 음주를 지나치게 비난하였는데 그녀는 그런 비난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질병이 마귀가 준 것이라고 설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그분과의 관계 회복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예배들 드리게 하면 모든 치유와 기적 및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사역 초창기에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속한 교단에 묶여있지 말고 그 교단의 묶임에서 과감히 벗어나라고 설교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역의 종반부에 들어가자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속한 교단으로 돌아가서 그 교단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라고 강조하였다.


그녀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였다. 그녀는 걸어다니며 기도를 할 때 머리를 위 아래로 흔들며, 손을 위로 들기도 하면서, 그리고 때로는 손뼉을 치거나 등뒤로 손깍지를 끼기도 하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기도하였다. 하나님과 대화식 기도를 하면서, “온유하신 하나님. 나에게서 성령님을 거두어 가지 말아주세요.”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녀의 집회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치유가 일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그 어떤 기적보다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최고의 기적이라고 믿었다. 태어날 때부터 온 몸이 마비된 5살 어린아이가 보조기구 없이 혼자서 걷는 기적이 일어났다. 12년간 휠체어에 앉아서 걸을 수 없었던 여자가 혼자 걷게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치유에 대한 신비를 다 풀지는 못하였지만 모든 치유는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녀는 단지 하나님 사역의 하녀들 중 하나로 봉사하였고 하나님을 자신의 사역의 경영자로 여겼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 자신은 경영자 되시는 하나님의 경영 방침에 온전히 순종하는 올바른 치유 사역의 모범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람들에게 만일 자신이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하나님께 왜 어떤 사람은 고쳐주고 어떤 사람들은 고쳐주지 않았는지를 제일 먼저 물어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사람들을 잘못 판단하고 뽑은 실수를 범했지만 사역에 관한 한은 절대로 육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각별한 신경을 썼다. 그녀는 항상 사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만 드렸고 하나님의 영광을 절대로 도둑질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는 날까지 헌신된 사역자로서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살았다.


1968년 그녀는 주로 이스라엘, 핀란드, 스웨덴 등을 돌아다니며 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녀는 매우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같이 몰고 다녔고 성령님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캐더린 쿨만은 특별한 치유 복음 사역자였다. 그녀의 사역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성령에 대한 새로운 것을 알도록 해주었다. 그녀는 성령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친밀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 세대에 알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한 하나님의 여종이었다. 그녀는 성령님이 우리의 친구 되신다는 사실을 가르쳤고 실제로 그것을 입증하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캐더린 쿨만은 1976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한 개혁주의와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견해 검토


Ⅰ. 서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요, 신앙생활에서도 큰 유익을 줄 뿐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데 유익을 준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성령은 신자의 영적 생명의 근원이고 지속이기 때문이다. 성령에 대한 여러 해석은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개혁파 교회 내에는 신학적인 면과 목회적인 면에 있어서 성령세례 이해에 대한 분명한 이질감이 생겨났다. 신학적으로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영향을 받아 중생과 성령세례의 동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으나, 목회적으로 볼 때는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가옥명의 성령론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중생과는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전통에 서 있는 목회자들은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Ⅱ. 개혁주의의 신학적 견해


1. 개혁주의 내용


성령의 주입이라는 개념은 중생론의 핵심이다. 개혁주의에서는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증명해 나간다. 중생은 새창조의 역사로서 성령의 주입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만일 중생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영혼에는 새롭고 참된 영적 요소가 그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중생이란 단순히 삶과 변혁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 인격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영적인 원리, 주입된 은혜의 경향성, 또는 은혜로운 능력들이, 중생으로 인해 요구되어지거나, 또는 그 안에 성령의 역사 또는 산물이 된다면, 그것은 성령으로 태어난 영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중생의 원리가 우리들 가운데 주입될 때 우리들의 심령을 전면적으로 변화를 시키기 때문이다. 중생의 원리는 모든 영적인 행동과 도덕적인 행동의 원인이 된다. 그러므로 중생의 원리는 옛 사람을 싫어하고 부패한 본성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중생의 원리는 모든 행동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롬 6:6).” 구약성경에서의 성령의 사역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더욱 명백한 성령의 사역은 중생이다. 이 중생은 모두 동일하다. 중생은 세례에 의해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며, 생활이 변화도니다고 중생하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변혁이 일어나고 중생하게 되는 것이다. 중생은 열광적인 황홀경을 동반하지 않는다. 중생의 교리는 중요하다.


2. 개혁주의에 대한 비판


개혁주의자들의 견해를 보면, ① 체험을 너무 무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개혁주의 내에서도 많은 지적이 나오고 있고, 오순절로부터도 가장 공격을 많이 받는 것 중의 하나이다. ② 신자들의 영적인 고통을 너무 도외시한다. 오순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원한 대답으로 영적 고통의 문제를 잘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③ 교회의 영적인 침체이다. 영적고통이 개인의 문제라면 영적침체는 현대교회,특히 개혁주의의 고민거리이다. ④ 성령세례의 유사개념이다. 오순절주의자의 성령세례의 의미와 유사한 개념,즉 전통개념의 성령충만보다 더 깊고 뜨거운 영적 체험의 상태를 전통견해자들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Ⅲ. 오순절주의의 신학적 견해


1. 오순절주의의 내용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는 사람이 이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역력한 경험이라고 본다. 성령세례의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사업, 즉 전도와 봉사에 그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성령의 세례는 주로 주님을 증거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에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령 세례의 결과로 집약할 수 있는 말은 ‘ 권능 ’이다. 사도행전 1:8에 의해서 “ 누구든지 성령 세례를 받으면 다 권능을 얻게 되는데 그 권능은 곧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은 일을 감당하기 위한 권능이다. ...... 그 사람은 반드시 그의 생활과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함에 있어서 새로운 권능을 얻게 될 것이다 ” 권능에 있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고린도 전서 12장에 있는 은사의 모양처럼 다른 것이라고 한다. 성령 세례란 받고 안 받은 것을 알 수 있는 분명한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거듭남과는 다른 그 윗 자리에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성령 세례는 언제나 주님을 중시하는 일과 주의 사업에 봉사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으며 주요한 목적이 증거하는 일과 봉사하는 일에 있다는 것을 그는 확신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권능(=은사)을 부여 받음으로 그것을 반드시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성령 세례는 모든 믿는 자들의 유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신자가 다 성령 세례의 자기 유업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이 유업을 구하지 않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성령 세례를 유업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파함(Charles F. Parham)은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단 하나의 증거라고 최초로 강조하였다. 그의 영향력은 1901년 Topeka와 1906년 시무어(W. J. Seymour)가 이끈 Azusa 거리의 부흥에서는 물론, 현재까지 방언을 성령세례와 직결시키는 전통 오순절주의(Classical Pentecostalism) 신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다. 국내에는 하나님의성회가 ‘방언의 표적을 중시하는 성령세례’를 주장하는 전통 오순절주의의 대표적 교단이다. 이 노선의 가장 영향력있는 저자로서는 조용기 목사님을 들 수 있다. 구약에서의 성령임재의 특징을 보면, ① 구약에서는 성령이 특별한 사람, 즉 거의가 지도자들과 예언자들인 한정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였다. ② 구약에서 성령임재는 일반적으로 봉사를 위한 능력이었다. 대부분 성령의 임재는 지혜와 특별한 기술과 큰 육체적 힘을 주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 오순절 날에 함께 모인 모든 사람들의 성령체험은 성령으로 충만하였다는 말로 기록되었다. 오순절주의자는 성령세례는 회심의 결과로 일어나며 사람이 거듭났다 하더라도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않을 수가 있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오순절주의자의 대표자인 토레이는 성령세례는 그의 중생의 사역과 구별되는 성령의 사역이며, 중생의 사역의 일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오순절 순복음 교회에서는 성령을 받는 것, 또는 성령이 임하는 것 즉 성령세례를 중시한다. 오순절교회에서는 성령세례 받은 증거가 필수적으로 방언이라고 주장한다. 1900년대 초에 미국 성결교단에서 오순절교단이 갈라져 나올 때 "성령세례"의 증거로 방언을 내세우고 그것이 오순절교단의 기본적 사상이 되었다. "제1의 물결"(The First Wave)은 한마디로 "오순절주의"(Pentecostalism)로 표현된다. 오순절주의자(Pentecostals)란 외형적으로 오순절 교단에 속한 크리스천을 말하며, 보통 제1의 물결은 1900년대 초반기의 아주사 부흥 이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오순절주의에 속한 교단들은 모든 크리스천들이 거듭난 이후에 반드시 성령 침례(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성령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초대 교회에 나타났던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 중 하나 이상을 받게 된다고 주장한다. 1906년 이후에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침례의 초기 증거로서 방언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믿어 왔고, 사실 이것이 다른 교단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이들은 다른 은사주의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 자신들을 "전통적인 오순절주의자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4중"(Four-fold)복음 혹은 "순"(Full) 복음을 전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세주, 성령 침례를 주시는 분, 병 고치는 분, 앞으로 오시는 왕으로서 사역을 하심을 의미한다. "제2의 물결"(The Second Wave)은 한마디로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으로 표현되며,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예전에는 신오순절주의자(Neo-Pentecostals)라 불렸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은사주의자(Charismatics)로 불리고 있다. 은사주의자들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전성기를 이룬 은사운동에 참여한 자들이며, 이들의 특징은 오순절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표적과 이적을 구하되 방언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며, 오순절주의 교단에 속한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고 일반 교단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은 한마디로 오순절/은사운동에 속한 교단이 아닌 미국내 다른 주요 교단 교회에서의 부흥(Mainstream Church Renewal)을 말한다. 이 물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3의 물결 주의자"(The Third Wavers)라 불리며, 이들은 오순절주의나 은사주의와 상관이 없는 복음주의자들로서 성령 충만을 받아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를 경험하며 표적과 이적을 강조하되, 여전히 자신들의 교단에 남아 있고 자신들을 오순절주의자나 은사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플러 신학교에서 "교회 성장" 과목과 "표적과 이적" 과목을 강의한 윔버(John Wimber)와 와그너(Peter Wagner) 같은 이들이 대표적으로 이 부류에 속한다. 특히 와그너는 「성령의 제3의 물결 : 현재 표적과 이적을 만나는 길」, 「크리스천의 삶에서의 제3의 물결」같은 책을 펴내 제3의 물결을 확산시켰다. 오순절주의자들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부흥운동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을 구분해 보라고 하면, 그들은 단지 위에서 언급된 차이점 정도만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차이점이라는 것은 말을 바꾼 것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위의 「오순절/은사운동 백과사전」은 "제2의 물결"에 속한 사람들, 즉 은사주의자들도 "제1의 물결"에 속한 오순절주의자들과 똑같은 것을 경험했으며, 같은 방언으로 말하고, 같은 영(the spirit)으로 충만케 되어 능력을 받았으며 그 영에 의해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사역을 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2. 오순절주의에 대한 비판


오순절주의자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보면, ① 오랜 동안의 기독교 역사가 소위 성령세례적 은사와 방언에 의해서 유지된 적은 없다. 그것은 방언과 은사가 아닌 보혜사의 인도하심 때문이었다. ② 삼위일체중 성령의 사역만을 강조하고 있다. ③ 체험을 너무 강조하고 있어 깊이가 없다. ④ 체험을 강조하지만 자기네 것만 내세운다. ⑤ 성령충만을 감격 일색으로 대치하려 한다는 등이다.


Ⅳ.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관계


성령세례란 외부에서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말하고, 성령충만이란 내주하는 성령이 한 개인의 영적인 영역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말한다.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의 관계에 관하여는 양자를 동일하게 보는 견해와 서로 다르게 보는 견해가 대립되어 있다.


1.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동일하게 보는 견해


오순절주의자들에 따르면 성령세례는 개종과 회개를 뒤이어 오는 경험으로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신자는 성령을 전적으로 받아서 주를 위한 사역에 능력을 얻는다고 한다. 그들은 중생과 성령세례는 구별된 체험으로 보면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동일시한다. 고전12:13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추가적 은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서 보편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은 고전12:13절 후반의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를 신자 안에서 후속적 사건으로서의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성령세례는 성도의 구원경험에 있어 단회적인 경험이요, 예수 처음 믿을 때 발생하는 경험이며 성령충만은 예수 믿은 후의 성도들의 삶속에서 발생하는 경험인 것이다. 하지만 오순절 신학에서 성령세례를 물세례와 구별되는 제이차적인 세례로 보고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동일하다고 함으로써 신자들을 “완성된 신자”와 “미완성 신자”로 나누어 신자들 간에 화합과 일치를 깨뜨리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분열을 가져올 염려와 위험성이 크다. 오순절주의자들에 따르면 성령세례는 개종과 회개를 뒤이어 오는 경험으로서 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신자는 성령을 전적으로 받아서 주를 위한 사역에 능력을 얻는다고 한다. 그들은 중생과 성령세례는 구별된 체험으로 보면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은 동일시한다. 고전 12:13에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추가적 은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서 보편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은 고전 12:13절 후반의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를 신자 안에서 후속적 사건으로서의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성령세례는 성도의 구원경험에 있어 단회적인 경험이요, 예수 처음 믿을 때 발생하는 경험이며 성령 충만은 예수 믿은 후의 성도들의 삶속에서 발생하는 경험인 것이다. 하지만 오순절 신학에서 성령세례를 물세례와 구별되는 제이차적인 세례로 보고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은 동일하다고 함으로써 신자들을 “완성된 신자”와 “미완성 신자”로 나누어 신자들 간에 화합과 일치를 깨뜨리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분열을 가져올 염려와 위험성이 크다.


2.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다르게 보는 견해


오순절 성령세례 이후 3000명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들은 성령세례의 결과로 성령충만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성령세례의 결과인 것이다. 세례는 예수께서 행하신 것이고, 단 하나밖에 없는 최초의 체험이며, 반복도 상실도 없다. 하지만 성령충만은 그들이 받은 것이며, 계속적이고 영속적인 결과와 규범을 뜻하며, 반복도 상실도 가능한 것이다. 결국 성령세례는 단회적인 사건이고 성령내주가 지속적 상태라면 성령충만은 반복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령충만에 관하여 명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기독교인이라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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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신학

 

가을사랑

 

Ⅰ. 이사야서의 개요

 

이사야서는 선지자 이사야(B.C 740~700년경)가 쓴 예언서이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기간에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네명의 왕이 통치를 하고 있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부터 종말론적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라고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및 모든 나라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역사 속에 인격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사야서의 신학적 메시지는 여호와는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심판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정화한 다음 그들을 새로운 언약관계로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성취한다는 데에 있다.

 

Ⅱ. 아사야 1장 내지 39장의 신학

 

1. 하나님과 그의 백성

 

(1) 언약의 파기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들을 파기하고 불순종하며 범죄를 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회경제적으로 극심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 가난한 자를 착취한 자들은 동족에 대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성일이면 제물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 종교에 빠졌다. 앗수르의 위협이 가시화되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2) 심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앗수르는 여호와의 중요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이스라엘 땅의 소산은 멸망당할 것이며, 거민들은 죽거나 포로로 잡혀갈 것임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궁극적인 목적은 백성들의 성결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정결케 하는 속성은 언약 백성들에 대한 약속의 하나로, 이사야 신학이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기는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3) 구원과 회복

 

하나님이 심판은 이스라엘 역사를 영원히 중단시키지 않는다. 심판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조치에 불과하다. 이사야의 미래적 언약 공동체에 대한 이상의 핵심은 메시아이다. 메시아라는 왕적 호칭은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능력과 군사적 용맹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특별히 메시아라는 왕에게 그의 신을 부으셔서 지혜롭고 능률적인 통치를 하게 하신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머물기 때문에 왕은 비범한 분별력과 그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전적 헌신의 자세를 소유한다. 메시아의 통치는 그의 지혜와 능력과 하나님의 기준에 대한 충성으로 말미암아 절대적 공의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하심에 대한 증거 외에도 임마누엘은 유다 왕국에 대한 궁극적인 구원을 미리 예시한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며, 그들을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하심을 상기시켜준다.

 

2. 하나님과 열방들

 

(1) 심판

 

하나님은 애굽, 앗수르 및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이나 블레셋, 모압, 아람, 에돔, 아라비아 및 두로 등 주변 군소 위성국가를 포함하여 고대 이스라엘 당시의 주변국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 심판에 관하여는 질병, 불, 삼림이 베임을 당함, 홍수, 폭우 및 부르짖는 사자의 공격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은유가 사용된다. 이사야 3&;36-38은 이 심판에 대한 예언의 성취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 회복

 

여호와께서는 시온산에 자신의 우주적 통치자를 세우실 때 그는 우주적 평화와 성결한 예배를 촉구하신다. 모든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은 그들의 불만을 해결하실 것이며, 한때 위협적이었던 나라들도 전쟁 준비를 그치고 보다 건설적인 일에 온 힘을 바칠 것이다. 한때 가장 적대적인 세력을 형성했던 나라들도 함께 동참하여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

 

Ⅲ. 이사야 40-66장의 신학

 

1. 하나님과 그의 백성

 

(1) 포로민들의 형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포로민들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불의한 결정이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해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둘째,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짓밟힌 나라의 축소판인 예루살렘을 인격화하여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위함 미래적 계획 속에 회복과 언약적 갱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약속하셨다. 셋째,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셨다.

 

(2) 이스라엘의 미래적 회복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며 그들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회복에 대한 그의 약속은 믿을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신실하다.

 

(3)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도구를 사용하실 것이다. 즉, 바사의 통치자 고레스와 이상적 이스라엘 및 새로운 모세로 묘사되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한 종이다.

 

(4) 언약의 갱신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자기 백성들의 미래적 구원에 대해 선포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구원에 관한 약속을 신뢰하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사야가 약속한 마지막 회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선행조건은 언약갱신이다.

 

(5)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미래적 성화

 

이사야 자신은 이스라엘의 반역적 성향이 그의 종말론적 이상이 완전히 성취되기까지 연기될 것이라고 말한다.

 

2. 하나님과 열방들

 

(1) 심판

 

고레스를 통해 하나님은 고대 열국 가운데 많은 나라에 심판을 가져올 것이다. 고레스를 일르키실 것이라는 선언에서 하나님은 열방과 그들의 신을 꾸짖으신다. 열방의 어떤 신도 이와 같이 행할 자 없으며 누구도 바사 왕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거역할 수 없다.

 

(2) 구원

 

여호와의 종의 주요 사역 가운데 하나는 열방에 공의를 베푸는 것이다. 열방은 이 기쁜 소식에 기쁨과 찬양으로 화답해야 한다. 열방에 대한 이사야의 진술을 회개에 대한 촉구에서 절정에 이른다. 열방에게 자신의 절대주권의 증거를 보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해를 제시하신다. 이사야는 열방이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으로 돌려보내어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할 것이며 여호와께 공물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은 사자들을 먼 나라에 보내시어 그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선포하게 할 것이다.

 

Ⅳ. 결론

 

아사야서는 신뢰, 거룩, 정치적 종교적 충성, 공평, 정의, 소망 등의 중요한 주제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이사야서는 오랜 역사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러한 메시지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라의 몰락을 경험하고 재건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기대를 하셨던 것이었는가를 알게 하는데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11장은 인간의 반역이 어떻게 창조질서를 붕괴하였으며, 저주와 죽음과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후손을 통한 전 세계적 회복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부터 한 나라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사야와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지적하는 대로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순종과 공의의 모범을 보이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세계적 축복의 통로가 되는데 실패하었다. 이와 같은 반역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 백성들 및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결국은 성취될 것이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의 순종하는 종으로서 이상적 이스라엘은 소경과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다시 한번 결박을 풀고 새 언약을 줄 것이다. 그는 또한 열방들을 복종과 축복의 장소로 인도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사야의 메시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성경 역사와 모든 종말론의 초점이 된다. 

아주사 부흥


가을사랑


아주사 부흥이라는 책은 미국의 로버치 리어든이 쓴 책이다. 한국에서는 김광석이 번역하여 2008년 서로사랑에서 출간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서 아주사 부흥운동에 관하여 연구하기로 한다.


Ⅰ. 부흥의 뿌리


성령의 임재와 말씀의 증거로 원시교회는 적법성을 갖추게 되었다. 초대 교회는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살았다. 이들은 개인과 집단의 삶에서 온전히 성령에 의지했다. 이들의 말을 통해 물리적인 권세가 나타났고, 이들의 행동에는 능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서로 사랑했고 주님과 교제했다. 이들은 최초의 오순절 교인이었으며 이들의 은사와 예배의 능력은 이들의 증거가 되었다.


교회가 2세기로 접어들면서 성령의 역동성은 멈춘 듯이 보인다. 교회가 인내를 갖고 성령을 기다리기 보다는 사람의 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2세기 중엽 프리지아에 몬타누스라는 새로운 선지가나 나타나자 많은 추종자들이 따랐다. 이들은 너무 무거운 율법주의를 채택했고 영적으로 교만하여 영적 갱신을 계속할 수 없었다. 3세기에 콘스탄틴이 등장하고 이어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쇠락은 완성되었다. 교회는 율법주의, 형식주의, 교황주의 그리고 전통주의 바다에서 방황했다.


교회가 율법주의와 의식주의의 바당에서 방황할 때 수도원이 등장했다. 4세기 후반과 5세기 초반경 대부분의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 교회로 발전되었다. 타락한 교회 속에서 방언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에 대한 기억은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


1510년 마틴 루터가 속해 있던 수도회는 그를 로마로 보냈다. 그곳에서 루터는 고위 성직자들의 영적 나태에 충격을 받았다. 루터는 성경에서 죄인인 인간에게 구원의 선물을 거저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발견한다. 그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며 모든 선행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런 구원이었다. 종교개혁의 위대한 공헌 중 하나는 성경을 평민들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과 새롭게 번역된 성경 번역본들로 인해 일반 백성들도 성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성경을 알게 되자 성령은 그들에게 신선한 계시를 주셨다.


Ⅱ. 각성의 시대


18세기 가장 강력한 변화를 초래했던 대각성 운동의 뿌리는 영국의 웨슬리 운동과 유럽의 경건주의 부흥이었다. 대각성운동은 교회가 생명력 없는 형식주의에 빠지고 영적 생명력을 잃은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성결운동은 미국 내 감리교회에서 시작되는데, 열정과 개인적인 거룩함을 상실했다고 느낀 교회들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대각성 운동의 핵심 지도자는 뉴저지 주의 부흥운동에 영향을 받은 장로교 목사 윌리엄 테넷과 조지 휘트필드, 조나단 에드워즈였다. 케인 리지 부흥 20년 후 이 부흥운동의 영적 열정을 이어갈 또 다른 인물은 피니였다. 찰스 피니의 성결에 대한 정의는 죄가 없는 완전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어TG지만 사회적 행동을 낳는 완전한 신뢰와 거룩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피니의 신학에서 부흥주의와 거룩함, 그리고 개혁은 합쳐서 하나가 되었다. 포우비 팔머는 성결운동의 어머니로 불리운다.


성결운동은 미국 내 감리교회에서 시작되는데 열정과 개인적인 거룩함을 상실했다고 느낀 교회들 가운데 시작되었다. 1875년 케스윅의 영향을 받은 미국 성결운동은 제2의 축복중에서 오순절적인 측면들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케스윅 운동은 오순절 운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오순절 운동은 전천년설과 성령 세례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오순절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창출해냈다.


존 알렉산더 도위는 1896년 크리스천 카톨릭 교회를 창립하였고 영적 자유를 강조했지만 천년왕국에 치우친 개신 교회와는 달랐다. 도위의 운동을 통해 열정적인 오순절 회심자들이 나타났다.


마리아 우드워스 에터는 1885년경 구원, 성결, 성령 세례, 치유 그리고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포함하는 신학체계를 수립했다.


찰스 메이슨의 영적 사도적 지도를 따라 설립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교회’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오순절 그룹으로 성장했다.


웨일즈의 부흥은 이반 로버츠가 등장함으로써 대중적인 단계로 도약했다. 로버츠가 이끌었던 부흥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같이 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통성기도였다. 이와 같은 통성기도에는 어떤 혼란스러움도 없었다.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새로워졌고 소생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다. 웨일즈의 부흥에는 설교도, 예배순서도, 찬송가도, 오르간도, 헌금도, 광고도 없었다.


Ⅲ. 오순절 운동의 아버지 찰스 펄햄


윌리엄 세이모어가 현대 오순절 운동의 촉매제였다면 찰스 펄햄은 운동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스승인 찰스 펄햄은 오순절 운동의 경험과 신학의 시작이었고, 제자인 세이모어는 오순절 운동을 폭발시키고 전파한 사람이다. 두 사람 모두 성결운동의 자녀들이며 오순절 경험을 받고 성숙해졌다. 두 사람 모두 모든 능력과 영광을 지닌 초대 교회의 부활을 갈망했다. 오순절 운동은 인종간의 연합을 통해 탄생했다. 펄햄은 백인이었고, 세이모어는 흑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결국 인종적 편견과 파당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펄햄은 복음전도의 소명에 순종했으며 문호를 여는 모든 성결교회에서 설교했다. 펄햄은 자신의 사역이 죄와 병 모두에서 구원받는 사역이 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는 치유의 메시지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죄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병을 치유하시는 능력 사이에 유사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펄햄은 1902년 콜 카레 보미드바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구원, 치유, 성화에 관한 설교로 가득하였고, 오순절주의자가 쓴 최초의 오순절 신학 출판물이었다.


Ⅳ. 오순절 운동의 촉매, 윌리엄 세이모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산업지역 한 가운데 있는 막다른 골목길의 한 허름한 건물에서 오순절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건물은 이전에 감리교회로 사용되던 것으로서 이주사 거리 312번지에 있었다. 그 평범한 건물에서 인종적으로 서로 섞여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겸손한 일단의 무리들이 떨어지는 오순절의 불을 경험했다. 그곳의 지도자는 압도하는 풍채나 능변을 지닌 신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턱수염을 기르고 얼굴에는 천연두의 상처가 있는 텍사스 휴스턴 출신의 볼품없는 애꾸눈 흑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불타는 오순절의 메시지가 있었다.


젊은 세이모어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았고 주님만이 인류의 유일한 해방자라고 맏었다. 그는 민감하고 활기찬 젊은이였으며 진리의 말씀을 갈망했다. 초기 아주사 거리 선교센터는 다인종, 다민족의 성격을 띠었다.


Ⅴ. 윌리엄 세이모어의 설교


윌리엄 세이모어는 온유한 사람이었고 직선적이었지만 말을 할 때에는 약간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강단에서 혹은 강단 밖에서 때로는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듯 열정적이기도 했다. 세이모어는 자신을 설교자라기보다는 교사로 보았다. 아주사의 집회는 길었고 진행방식도 자발적이었다. 찬송이 있고 간증을 했다. 설교는 미리 준비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1906년 9월 사도적 믿음이라는 신문이 발행되었다.


이 신문은 윌리엄 세이모어의 감독을 받으면서 신문기사 형태로 모임에서 말해진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사도적 믿음의 첫호에는 부흥에 대한 설명과 치유와 축사에 대한 간증, 그리고 찰스 펄햄이 보낸 개인적인 글과 그들이 믿는 교리의 목록, 세이모어의 부르심에 대한 설명, 그리고 윌리엄 세이모어이 최초의 설교인 보배로운 구속이 실렸다. 그 이후에는 많은 사람들의 글과 간증이 실렸다.


Ⅵ. 아주사 거리의 간증


하나님이 치유하시자 사람들은 지팡이, 목발, 약병 그리고 안경을 던져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새 방언을 말했고, 어떤 이들은 언어의 은사를 받고 외국으로 떠났다. 많은 교회들이 오순절을 위해 기도했고 오순절이 도래했다. 무당으로 귀신이 들려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자살 일보 직전에 있던 한 형제가 즉각적으로 귀신의 능력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죄 사함과 거룩함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구했으며 이제 다른 영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할 뿐만 아니라 찬양의 은사를 받았다. 주님은 새로운 목소리를 주시고, 옛노래를 새 방언으로 바뀟며, 천사들이 부르는 음악을 주셨다.


한 시각 장애인은 가정 모임에서 몇몇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듣고서 구원을 받았다. 그의 시력도 회복되었다.


Ⅶ. 아주사의 여인들


7월 주야로, 그리고 7년 넘게 로스앤젤레스 시와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은 이전에 축사로 사용되던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 아주사 거리 312번지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성령 외에 다른 지도자는 없다고 말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주사 선교회에서 역사하실 때 윌리엄 세이모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이모어 형제와 더불어 이 사역은 많은 여성들에게 의존했다. 이들은 사역에 있어서 세이모어를 후원했고 아주사의 일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중에는 제니 에반스 무어 세이모어, 애나 흘, 루시 패로우 등이 있었다. 루시 패로우는 기름 부음을 받은 시녀로 묘사되었으며 사역중에 안수를 했다. 이를 통해 구도자들은 오순절 경험을 했다. 수많은 여성 전도자들이 아주사에서 또는 아주사를 방문한 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 여러 곳으로 나아갔다. 


플로렌스 크로포드는 가장 영향력 있는 여인으로서 초창기 몇 년 동안 아주사의 영향력을 기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일조하였다. 그녀는 비록 보니 브래 가의 초창기 멤버는 아니었지만 아주사 거리 312번지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중요한 인물로 급부상하엿다. 루시 레더맨은 아주사 거리 선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사 중 한명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여인들이 아주사 거리의 부흥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을 통해 세이모어가 로스앤젤레스로 왔고 초기 사역의 기틀은 그들의 도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구하러 왔으며 그 능력이 임했을 때 그들의 삶은 변했다. 그들은 제재나 정죄함이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곳을 찾아왔다. 그들의 삶에 불이 임했을 때 그들은 능력을 받고 오순절의 메시지를 들고 미국과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누볐다. 그들은 분명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여인들이었으며, 그들의 뒤를 이을 수 많은 여성 복음사역자들에게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Ⅷ. 반대, 분열, 그리고 논쟁


아주사 거리 312번지에서 시작된 하나님이 강력한 역사도 1907년 첫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펄햄은 세이모어가 지도자의 영에 사로잡혔다고 주중했다. 아주사의 사역이 분열된 이유는 인종차별주의, 교리적 논쟁, 개인적 다툼 때문이었다.


펄햄은 아주사 부흥운동의 과도한 주정주의에 예민했고 아주사에서 목도한 것에 놀랐다, 그는 강단에서 너무나 심한 주정주의에 압도된 사람들의 열광적인 상태를 가혹하게 비난했다. 사람들은 펄햄에게 떠나달라고 요구했다. 펄햄은 회중이 최면술사와 강신술사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Ⅸ. 부흥의 파도를 넘어


아주사 부흥의 첫날부터 시작하여 지난 100년간 오순절의 메시지는 유례없는 확장을 맛보았다. 오순절주의자들과 은사주의자들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커다란 발전을 얻었다. 그들은 더 이상 가난하거나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 아니다. 정치인부터 시작해서 회사의 대표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주사 거리 312번지에서 폭발한 오순절의 경험으로 패러다임의 변환이 이뤄졌고 그것은 생명이 없고 의식적인 기독교에 새로운 에너지와 열정을 불어넣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앞서간 선구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들이 사역을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에너지를 바쳐야 한다.


Ⅹ. 하나님이 당신에게 준 선물, 방언


방언은 인간에게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확신을 준다. 방언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방언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 민감해지도록 만들어준다. 방언은 믿음을 북돋아준다. 방언으로 기도를 많이 하면 입술을 성령께 순종시키는 것이 쉬워진다. 방언을 하면 영적으로 새로워진다. 방언을 하는 또 다른 유익은 증인이 되는 능력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상명령에서 방언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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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방법론 

 

가을사랑

 

‘설교, 누구나 잘 할 수 있다’라는 책은 소재찬 교수님의 저서로서 2005년 생명의 말씀사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다. 여기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설교방법론에 대해 연구하기로 한다.

 

Ⅰ. 설교의 기대

 

설교라 함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이성적인 논리와 감성적인 표현으로 외치는 것이다. 설교는 성도들로 하여금 영원한 믿음을 갖고 내세를 향하여 진군하도록 호령하는 것이다.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메시지를 감동과 기쁨으로 받고 싶어 한다. 성도들은 설교를 통하여 자신들의 어두운 내면이 물러가고 밝고 빛나는 내면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기독교 설교는 유대교와 로마 카돌릭과 전혀 다른 기독교만의 독특한 장점이 되어 왔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어떤 의식적 행사를 통해서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설교를 통해서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위대한 사역이 되어야 할 감동의 설교는 오히려 목회자에게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목회자들은 뛰어난 설교자들의 설교집을 통해서 신선한 도전을 받으며 그 속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깊이와 넓이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게 된다. 설교자들은 자신의 설교 내용을 향상시키기 위해 새로운 아이템, 새로운 지식을 더하려고 노력한다.

 

Ⅱ. 설교의 일반적 요소

 

설교자들은 설교를 향상시키기 위해 세 가지 아이디어를 추구한다. ① 성경 추구, ② 예화 추구, ③ 간증 추구가 바로 이것이다. 성경 추구는 성경적 아이디어 중심의 설교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적 아이디어란 성경으로 설교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해석능력을 향상시키고, 성경의 문맥과 흐름을 찾아내서 내용을 만들고 그것을 성경에 인용한다. 예화 추구는 신앙과 삶의 주변에 있는 시사적 예화들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특별한 신학적 성경적 지식이 없어도 간단하게 설교자의 논리에 힘을 실어 주는 예화는 현대 목회자들이 애용하는 가장 긴요한 설교의 내용이 되었다. 간증 추구는 사람들의 삶과 신앙 가운데 아름다운 이야기, 가슴 아픈 이야기, 자랑스런 이야기 등 감동적인 사연을 알려주는 방법이다.


Ⅲ. 설교의 전환능력


설교전환능력이라 함은 일반적 지식과 정보,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지식과 정보를 설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로 바꾸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설교에 나타난 설교의 정보와 지식의 수준은 청중의 삶의 차원에서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필요했던 쉬운 내용들이었다.


청중들의 삶에 실체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만들고 또한 그 내용을 청중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전달해서 청중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들이 신앙적 결단을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설교의 내용이 설교를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고 설교의 관점이 설교를 향상시킨다. 위대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관점을 갖고 자신에게 알맞은 내용들을 찾아서 그것을 정리하고 설교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Ⅳ. 설교의 관점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기록하였고, 이러한 관점은 성경 저자에게 그대로 나타났다.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기록하기 전에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일을 부여하시면 종은 분명한 관점을 가지고 그 사역을 하게 된다. 자신의 사역적 관점을 발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설교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 강할수록 설교의 관점이 강하게 나타난다. 위대한 설교자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은 분명한 설교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다. 명설교자의 설교가 청중에게 쉽게 잘 들리고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설교에서 강력하게 흐르는 관점이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좋은 설교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무릅을 꿇고 설교의 관점을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교의 관점에는 목적의 관점과 활용의 관점이 있다. 목적의 관점은 설교자를 위한 것이다. 활용의 관점은 성도들에게 믿음을 촉후한다.


Ⅴ. 포인트위드


설교에서 포인트위드라 함은 설교자가 의도한 내용과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방편으로 사용하는 핵심 단어이다. 설교자는 설교에서 목적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포인트워드를 중심으로 설교의 전체적인 논리와 내용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설교에서 포인트워드는 설교자의 의도를 분명히 해주며 목적지향적인 설교를 만드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포인트워드는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를 잘 듣게 만든다. 설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설교의 향상은 얼마나 목적지향적인 포인트워드를 잘 컨트롤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포인트워드의 개대효과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설교의 목적을 분명히 해준다. ② 포인트워드를 사용하면 청중들은 설교의 내용이 쉽게 들린다. ③ 설교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잘 된다. ④ 설교의 확신이 강하게 나타난다. ⑤ 접촉점이 분명하다. ⑥ 포인트워드는 성도들이 신앙과 삶에서 추구해야 하는 단어이다. ⑦ 포인트워드로 설교를 작성하면 쉽고 빠르게 작성할 수 있다. ⑧ 설교에 다양한 효과를 사용하는데 용이하다.


성경은 포인트워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는 성경을 통해서 포인트워드이 활용과 비중, 사용량을 보는 것은 포인트워드에 대한 눈을 뜨고 설교에서 활용하는데 무척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성경은 목적성을 가지고 기록되었고 이러한 목적성은 포인트워드로 나타난다.


성경을 읽으면 그 내용에서 목적성을 느낄 수 있다. 그 강한 목적성 때문에 성도들은 믿음이 생긴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은 믿음 향상의 지름길이 된다. 설교도 목적성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 만약 설교의 목적성이 상실되면 성도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 설교를 통해서 믿음을 갖기 힘이 든다. 설교도 성경처럼 목적성이 있게 해야 한다.


성경은 설교보다 몇 배 또는 몇 십 배의 목적성이 나타나며 포인트워드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 점을 설교자가 잘 배워야 한다. 성경을 해석하 f때에는 포인트워드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본문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저자의 의도를 분명히 알아야 해석을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유대인들에게 천사나 모세보다 더 뛰어난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명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한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이라는 포인트워드 시각으로 모든 사람들의 신앙적 행동을 하나하나 판단한다.


이 판단의 시각은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자들에게 믿음을 주시는 주권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역사로 나타나기 보다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열심과 헌신을 가졌다는 관점에서 기록되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라고 촉구하고 싶었던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관점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아브라함의 삶 전체를 믿음의 시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의 모든 행동을 믿음이라는 포인트워드로 연결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모든 구약의 인물들을 믿음이라는 포인트워드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들이 신앙적 행동을 순종이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나 헌신이라는 다른 신앙적 유사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주장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구약의 신앙과 전통 속에서 증명하고 있고,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신앙인들도 믿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섬겼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사역자가 공동으로 사역해야 하는 교회에서 사역 간에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사랑의 포인트워드를 사용한다.


목회적 포인트워드라 함은 설교할 때에 성도들을 하나님께 잘 인도하기 위한 목회적 관점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목회자가 목회를 목적으로 하는 핵심적인 단어이다. 목회자의 관점은 하나님을 모르면 가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도들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하나님을 깊이 알았다면 성도들의 아픔에 눈을 돌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치료해 주어야 한다.


포인트워드는 신학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목회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목회자는 목회적 관점을 배워야 한는데 성경만한 교과서가 없다. 성경은 구원을 위한 책이지 인간의 끝도 없는 상상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한 백과사전이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님은 목회적 관점에서 인간의 삶과 신앙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잃어버린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해 준다. 목회자에게는 성경을 통해서 사역의 원리와 관점의 원리를 배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다.


모든 인간은 다 문제를 지니고 있다. 모든 인간은 삶과 신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나온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신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미래의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신다. 또한 이를 위해 교회와 목회자를 오늘까지 보낸다.


성령님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쉬지 않고 도우신다. 인간의 심각한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문제의 유일한 해답이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 그 문제가 변하여 신앙의 길로 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목회적 포인트워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과 신앙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그들의 삶과 신앙을 돌보는 것이다. 다양한 성도의 문제를 접하고 해결하는 목회 현장에서 하나의 목회적 포인트위드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자주 사용한 목회적 포인트워드 중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 이외에도 기도, 예배, 감사, 생명 등이 목회적 포인트워드로 사용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목회적 포인트워드는 믿음이다.


예수님은 만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서 항상 분석하고 판단했다. 목회적 포인트가 목회와 설교에서 강하게 나타날 때에 성도들은 자신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갈라디아서의 목회적 포인트워드는 믿음이다. 야고보서의 포인트워드는 행함이다.


설교에 나타난 목회적 포인트워드가 다양한 이유는 각 목회자들이 경험한 신앙 체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각 설교자가 다양한 목회적 포인트워드를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포인트워드를 만드는 방법]

(1) 핵심 단어를 찾으라

(2) 인간의 헌신적인 포인트워드를 찾으라

(3) 하나님의 주권적 포인트워드를 찾으라

(4) 두 가지 포인트워드를 적절히 사용하라.


[자신만의 포인트워드 찾기]

(1) 체험에서 발견

(2) 성경에서 발견

(3) 기도에서 발견

(4) 목회에서 발견


[포인트워드의 플러스, 마이너스 유형]


(1) 플러스 포인트워드

플러스 포인트워드의 개념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성경이 추구할 수 있는 신앙적 포인트워드다. 플러스 포인트워드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게 만든다. 플러스 포인트워드의 효과는 ① 설교자가 성도들을 이끌 수 있는 분명한 신앙적 실체를 플러스 포인트워드로 줄 수 있다. ② 성도들에게 신앙의 분명한 길을 제시한다. ③ 성도들에게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다. ④ 성도들에게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분명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가르쳐 줄 수 있다. ⑤ 목회자가 어떤 목회를 하고 있는지 그 철학과 방향과 내용을 플러스 포인트워드로 알려 줄 수 있다.


(2) 마이너스 포인트워드

마이너스 포인트워드의 개념은 거짓, 미움, 방종, 음란, 불의. 시기, 다툼, 살인 등의 부정개념들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시는 것들이 마이너스 개념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사유가 된다. 성도들이 마이너스 포인트워드로 살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다. 마이너스 포인트워드의 효과는 ① 성도들이 버려야 할 실체를 마이너스 포인트워드로 줄 수 있다. ② 성도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가르쳐준다. ③ 성도들에게 왜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를 왜 해결하지 못하는지를 가르쳐준다. ④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진노하는지 알려 준다. ⑤ 목회자가 목회적으로 무엇을 거부하고 싫어하는지를 분명히 해준다.


위대한 설교자들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포인트워드를 잘 활용한다. 설교자가 두 가지를 조합해서 설교하게 되면 목적 지향적 설교가 된다. 이런 경우 청중이 정확히 알아듣는 설교가 가능해지고 성도들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통해서 영적 사고와 분별력을 갖게 되고 영적 지혜를 갖게 된다.


[포인트워드의 5가지 영향력]

(1) 성경을 보는 관점을 갖게 한다.

(2) 설교 작성을 쉽게 한다.

(3) 스피치에 영향을 준다.

(4) 청중에게 깊은 초점과 기억을 준다.

(5) 설교의 열매가 잘 맺는다.


Ⅵ. 포인트워드로 연설한 사람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짧은 연설의 한 분에서 ‘꿈’이라는 포인트워드를 사용해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며 청중들을 환호케 하며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꿈은 영원히 남아 있어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오늘도 강력하게 살아 있다. 미국이 인권의 나라가 된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인종의 벽을 넘어 ‘꿈’이라는 포인트워드로 하나가 되고 자신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963년 6월 26일 전쟁과 분단의 아픔으로 상처 입은 서 베를린에 가서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라는 주제로 연설을 하였다. 케네디의 포인트워드는 독일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고 그가 사용한 포인트워드로 독일 국민은 울었다. A, B, C 형 포인트워드는 좌절에 빠지고 찢겨진 고통 속에서 그들을 건져내는 위대한 역할을 했다.


인도의 민족운동 지도자 간디가 1920년 8월 12일 비협력, 비폭력 운동을 주제로 5분 정도 한 연설을 인도 국민과 전 세계의 가슴에 오랫동안 기억된 명연설이었다.


Ⅶ. 포인트워드로 설교한 사람들


스펄전은 침례교인이었고 캘비니스터였으나 여전히 그는 청교도의 전통과 장로교, 회중교회 등의 모든 교파에 상관없이 설교의 황제라고 불린다. 스펄전의 설교는 매주일 출판됐고, 3,600편의 설교와 49편의 주서과 그 외 격언, 일화, 기도 등이 있다. 청중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듣기 위해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임마누엘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먼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B형 포인트워드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까지 포함하면 75번 나온다. A형 포인트워드는 연합, 하나님, 거하심, 육신의 몸, 성육신, 결합 등으로 75번이나 나온다 이 설교에서 포인트워드는 총 177개 사용된다.


Ⅷ. 예화에서 포인트워드 사용방법


좋은 예화를 찾는다고 좋은 설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화도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좋은 예화가 된다. 많은 설교자들이 좋은 예화를 찾아 삼천리를 헤맨다. 때로 좋은 예화를 발견하게 되면 그 예화를 사용하기 위해 미리 작성한 설교 내용까지 바꾸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예화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예화든 설교자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좋은 예화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Ⅸ. 포인트워드로 설교 구성하기


1. 서설


포인트워드로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먼저 구성이라고 하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 구성이란 설교의 기초적인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다. 구성에서 청중을 영적으로 돌보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이것에 대한 대안을 가져야 한다. 청중을 바르게 양육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과 신앙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영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어야 한다.


2. 서론에서 포인트워드


설교의 서론에서 정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한다. 지금 이 설교를 하는 필요성을 서론에서 제기해야 한다. 목회적 포인트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서론에서 제기되고 그 문제를 전체적인 설교의 구성에서 해결해야 한다.

 

3. 본론에서 포인트워드


A,B,C 형 포인트워드가 본론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적으로 나타나면서 문제의 심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목회적 포인트워드가 플러스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결의 과정이다.


4. 결론에서 포인트워드


결론에서는 A, B, C 포인트워드의 상관관계의 논리적 결말이 밟혀지고 목적을 지향하는 B형이 해결되게 된다. 목회적 포인트워드가 문제를 해결하고 그 목회적 포인트워드를 바라보고 신앙과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설교의 본론과 결론을 통해서 청중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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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와 풍유의 해석


가을사랑


박형용 교수님이 지은 성경해석의 원리는 현대신학대학원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이중 비유와 풍유의 해석 부분에 대한 요점을 발췌 정리해 본다.


1. 비유의 의의


비유라 함은 자연이나 일상생활로부터 이끌어 온 은유나 직유인데, 그 비유의 생생함이라 특이함으로 듣는 자를 사로잡고 그 비유의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듣는 자의 마음에 충분한 의심을 남겨두므로 적극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 비유란 도덕적 또는 종교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보통 생활 속에서 얻어진 짧은 이야기를 말한다. 각각의 비유는 하나의 요점을 가지고 있으며 비유를 풍유와 동일하게 취급하려고 할 때에는 왜곡의 결과를 가져온다. 비유는 사실적이고 자연과 생활의 참다운 사건들과 경험으로 구성된다. 비유의 목적과 내용은 지상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하늘에 관한 것이다. 모든 비유의 근거는 창조의 법칙에 따라 지상적인 것이 하늘의 것의 모형이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예수님은 자연적인 것을 비유하여 하늘의 영적인 뜻을 설명하였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비유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다. ① 비유는 진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이점이 있다. ② 비유는 편견을 제거할 수 있다. ③ 비유는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감추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④ 비유는 단순히 교훈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심오한 신학적 기초도 가지고 있다.


2. 비유해석의 원리


① 비유에는 예수님께서 설명하고자 하는 영적인 교훈이 있다. ② 비유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비교되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 ③ 비유의 역사적 형편과 그 비유를 들은 청중들이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때 비유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다. ④ 비유의 중심된 진리와 예수님의 교훈의 기본적인 요소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⑤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함에 있어서 비유의 메시지와 그리스도 자신을 분리시키면 안 된다. ⑥ 예수님이 왜 그런 비유로 가르쳤는지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⑦ 일반화된 어록이 비유 속에 있을 경우 그 어록은 권고의 메시지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⑧ 비유를 해석할 때 극단적인 해석은 피해야 한다. ⑨ 억지해석은 피해야 한다. ⑩ 분명하고 절대적인 비유 해석법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⑪ 비유를 교리 구성의 주된 근거나 절대적인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3. 풍유의 의의


풍유의 해석은 본문 속에 감추인 특이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그 감추인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풍유의 해석은 본문의 뜻과 전혀 다른 해석자의 주관적 의미를 본문의 의미인 양 다루게 된다.


4. 풍유의 해석원리


① 풍유는 성경에서 정당하게 사용된 언어의 표현법 중의 하나임을 인식해야 한다. ② 성경 본문에 이미 해석이 주어진 것을 적어 보면 전체 풍유해석에 큰 도움을 준다. ③ 풍유는 그 지역 형편이나 역사적 설화의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해서는 안 된다. ④ 청중이나 독자가 누구였는지 명백하게 진술할 수 있어야 한다. ⑤ 왜 풍유로 말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⑥ 원저자가 강조하고자 한 비교의 기본 요점들을 찾아야 한다. ⑦ 그 진리들이 오늘날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5. 표상과 ‘더 충만한 의미’


(1) 표상의 의의


표상은 현재의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사용하여 미래에 나타날 원형인 인물이나 또는 사건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2) 모든 표상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요소


① 표상은 그 자체가 실재 역사적인 것이어야 한다. ② 표상은 항상 미래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 ③ 표상과 원형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어야 한다. ④ 표상은 하나님이 계획한 것이어야 한다. ⑤ 표상과 원형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⑥ 표상과 원형의 관계는 하늘의 실재가 땅의 그림자로 되는 경우도 있다.


(3) 표상의 구분


표상은 인물, 제도, 직책, 사건, 행위 등으로 구분된다.


6. 더 충만한 의미


더 충만한 의미는 하나님에 의해 의도되었으나 인간 저자에 의해서는 의도되지 않은 부가적이고 더 깊은 의미를 뜻한다. 더 충만한 의미는 계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경 본문의 말씀이 더 충분한 계시나 발전에 비추어 연구될 때 성경 본문의 말씀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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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원의 영성


가을사랑


4차원의 영성은 조용기 목사님께서 쓴 책이다. 제1부는 ‘4차원 영적 세계로의 초대’, 제2부는 ‘당신 안의 4차원 영적 세계를 바꾸라’로 구성되어 있다. 제2부는 생각, 믿음, 꿈, 말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믿음 부분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1. 당신의 믿음을 이렇게 바꾸어라


우리에게 보이는 3차원의 모든 것들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부정적이고 혼란스럽게 흔들어 놓는다. 세상을 살아가다가 갑자기 앞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때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직시하지 말고 4차원에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큼을 보시고 은혜로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을 주신다. 또 기적을 베푸신다.


믿음이란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은 절대적인 조건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이다. 우리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보아야 한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의 실상이기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볼 때 우리 삶 속에 그것들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의 믿음을 이런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마가복음 9:23)


2. 바라봄의 법칙을 따르라


목표를 바라보되, 있는 것처럼 바라보라. 실체를 바라보라. 마음 속에 소원을 품은 후, 이미 이루어진 현실로 믿고 기도하라. 기적을 체험하고 싶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4차원의 영성인 바라봄의 믿음법칙으로 믿어야 한다. 바라봄과 믿음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 바라보는 것은 4차원이지만 3차원을 바꾸는 믿음과 연결될 때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의 실상이며 증거인 것이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이것은 자연법칙일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법칙이기도 하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다. 심으면 반드시 거둘 것을 기대해야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시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7 ~9)받은 줄로 마음에 확신이 들어오고, 받았다고 생각이 되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바라보게 될 때까지 기도하였으면 이제는 기도의 말을 달리해야 한다.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믿어지는 그때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1~2)


3. 부정적으로 유혹하는 환경과 싸우라


믿음을 포기하도록 하는 수많은 유혹들이 있다. 싸워 이기라.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하라. 뜨겁게 부르짖어 기도하라.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인내하려 해도 세상이 인정하는 상식과 지식은 우리를 커다란 절망으로 데려간다.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여 믿음을 굳건히 하고 앞으로 나타날 기적을 기다리려 해도 이 환경의 압박은 계속 우리를 짓누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겨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능히 이겨낼 힘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할 때에는 받은 줄로 믿어질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범위가 넓은 응답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구하고 기도해서 얼음벽을 녹여 마음에 확신이 들면 받은 줄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4. 3차원 인생의 짐을 주께 맡기라


불안한 시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시대이지만 염려를 내려놓으라.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라. 오직 주님만 바라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를 건질 자는 우리의 목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5. 항상 믿음으로 사는 법을 학습하라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학습하라. 성령님을 만나고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믿음의 사람들을 가까이 하라.

말씀이 믿음을 붙잡아 주는 것이며, 믿음이 흔들릴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의 진리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깨달아지고 그러한 체험이 있어야 어떠한 시련과 환난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용기의 힘이 생겨나는 것이다. 4차원의 믿음은 성령님에 의해 성장한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내는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이며 성령님이 만들어 주시는 작품이다. 성령님은 인생의 절망의 순간순간마다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안내하시며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며 하늘나라를 확장하고, 세상과의 싸움을 더 쉽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또 우리 자신이 믿음의 힘이 되어 많은 영혼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에는 믿음의 동역자를 찾으라. 그들의 기도로 도움을 얻는 것도 지혜이다. 연합된 믿음의 기도는 확신과 평안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 하늘 천국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항상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야 한다. 현실이 어둡고 캄캄하다 할지라도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종국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주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항상 믿음으로 사는 영적 습관이 생겨야 한다. 말씀을 통해 믿음 성장의 방법을 찾고, 성령님과 함께 교제하며 믿음의 키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그 믿음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믿음으로 사는 법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평생토록 학습하고 배워가야 한다. 그래서 습관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노력한 사람들이다. 4차원의 믿음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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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의 신학

 

가을사랑

 

유진 메릴(Eugene Merrill)교수외 4인이 공저한 ‘구약신학’은 한국에서 류근상 교수님이 크리스챤출판사에서 2009년 번역출판하였다. 이 책은 제1장 오경의 신학, 제2장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의 신학, 제3장 사무엘 및 열왕기의 신학, 제4장 역대기의 신학, 제5장 에스라-느헤미야 및 에스더의 신학, 제6장 지혜서 및 아가서의 신학, 제7장 시편의 신학, 제8장 이사야의 신학, 제9장 예레미야 및 예레미야 애가의 신학, 제10장 에스겔 및 다니엘의 신학, 제11장 소선지서의 신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제8장 이사야의 신학 부분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Ⅰ. 이사야서의 개요

 

이사야는 주전 8세기부터 종말론적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라고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및 모든 나라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역사 속에 인격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사야서의 신학적 메시지는 여호와는 이스라엘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심판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정화한 다음 그들을 새로운 언약관계로 회복시키는 방법으로 성취한다는 데에 있다.

 

Ⅱ. 아사야 1장 내지 39장의 신학

 

1. 하나님과 그의 백성

(1) 언약의 파기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들을 파기하고 불순종하며 범죄를 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은 사회경제적으로 극심하게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 가난한 자를 착취한 자들은 동족에 대한 학대에도 불구하고 성일이면 제물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 종교에 빠졌다. 앗수르의 위협이 가시화되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2) 심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앗수르는 여호와의 중요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이스라엘 땅의 소산은 멸망당할 것이며, 거민들은 죽거나 포로로 잡혀갈 것임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궁극적인 목적은 백성들의 성결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정결케 하는 속성은 언약 백성들에 대한 약속의 하나로, 이사야 신학이 심판에서 구원으로 옮기는 기초를 형성하고 있다.

 

(3) 구원과 회복

하나님이 심판은 이스라엘 역사를 영원히 중단시키지 않는다. 심판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조치에 불과하다. 이사야의 미래적 언약 공동체에 대한 이상의 핵심은 메시아이다. 메시아라는 왕적 호칭은 이스라엘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능력과 군사적 용맹을 강조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특별히 메시아라는 왕에게 그의 신을 부으셔서 지혜롭고 능률적인 통치를 하게 하신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머물기 때문에 왕은 비범한 분별력과 그의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전적 헌신의 자세를 소유한다. 메시아의 통치는 그의 지혜와 능력과 하나님의 기준에 대한 충성으로 말미암아 절대적 공의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임재하심에 대한 증거 외에도 임마누엘은 유다 왕국에 대한 궁극적인 구원을 미리 예시한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며, 그들을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하심을 상기시켜준다.

 

2. 하나님과 열방들

 

(1) 심판

하나님은 애굽, 앗수르 및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이나 블레셋, 모압, 아람, 에돔, 아라비아 및 두로 등 주변 군소 위성국가를 포함하여 고대 이스라엘 당시의 주변국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 심판에 관하여는 질병, 불, 삼림이 베임을 당함, 홍수, 폭우 및 부르짖는 사자의 공격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은유가 사용된다. 이사야 3&;36-38은 이 심판에 대한 예언의 성취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2) 회복

여호와께서는 시온산에 자신의 우주적 통치자를 세우실 때 그는 우주적 평화와 성결한 예배를 촉구하신다. 모든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은 그들의 불만을 해결하실 것이며, 한때 위협적이었던 나라들도 전쟁 준비를 그치고 보다 건설적인 일에 온 힘을 바칠 것이다. 한때 가장 적대적인 세력을 형성했던 나라들도 함께 동참하여 여호와를 섬길 것이다.

 

Ⅲ. 이사야 40-66장의 신학

 

1. 하나님과 그의 백성

(1) 포로민들의 형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포로민들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첫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불의한 결정이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인해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다. 둘째,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짓밟힌 나라의 축소판인 예루살렘을 인격화하여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백성들을 위함 미래적 계획 속에 회복과 언약적 갱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약속하셨다. 셋째,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셨다.

 

(2) 이스라엘의 미래적 회복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며 그들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회복에 대한 그의 약속은 믿을 수 있다. 여호와의 말씀은 신실하다.

 

(3)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도구를 사용하실 것이다. 즉, 바사의 통치자 고레스와 이상적 이스라엘 및 새로운 모세로 묘사되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한 종이다.

 

(4) 언약의 갱신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자기 백성들의 미래적 구원에 대해 선포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구원에 관한 약속을 신뢰하라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사야가 약속한 마지막 회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한 선행조건은 언약갱신이다.

 

(5)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미래적 성화

이사야 자신은 이스라엘의 반역적 성향이 그의 종말론적 이상이 완전히 성취되기까지 연기될 것이라고 말한다.

 

2. 하나님과 열방들

 

(1) 심판

고레스를 통해 하나님은 고대 열국 가운데 많은 나라에 심판을 가져올 것이다. 고레스를 일르키실 것이라는 선언에서 하나님은 열방과 그들의 신을 꾸짖으신다. 열방의 어떤 신도 이와 같이 행할 자 없으며 누구도 바사 왕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거역할 수 없다.

 

(2) 구원

여호와의 종의 주요 사역 가운데 하나는 열방에 공의를 베푸는 것이다. 열방은 이 기쁜 소식에 기쁨과 찬양으로 화답해야 한다. 열방에 대한 이사야의 진술을 회개에 대한 촉구에서 절정에 이른다. 열방에게 자신의 절대주권의 증거를 보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해를 제시하신다. 이사야는 열방이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으로 돌려보내어 예루살렘을 재건하게 할 것이며 여호와께 공물을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은 사자들을 먼 나라에 보내시어 그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선포하게 할 것이다.

 

Ⅳ. 결론

 

창세기 1-11장은 인간의 반역이 어떻게 창조질서를 붕괴하였으며, 저주와 죽음과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후손을 통한 전 세계적 회복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시내산 언약을 통해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부터 한 나라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이사야와 다른 사람들이 분명히 지적하는 대로 이스라엘은 이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순종과 공의의 모범을 보이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세계적 축복의 통로가 되는데 실패하었다. 이와 같은 반역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 백성들 및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결국은 성취될 것이다. 이사야에 의하면 하나님의 순종하는 종으로서 이상적 이스라엘은 소경과도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다시 한번 결박을 풀고 새 언약을 줄 것이다. 그는 또한 열방들을 복종과 축복의 장소로 인도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사야의 메시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성경 역사와 모든 종말론의 초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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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의 원리

 

가을사랑

 

박형용 교수님이 지은 ‘성경해석의 원리’(2002년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성경해석의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성경해석의 필요성, 성경 해석 역사의 교훈, 본문의 중요성, 해석자, 성경해석원리, 성경해석의 실제적 지침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성경해석원리에 관한 부분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1. 문법적 - 역사적 - 정경적 해석방법

 

(1) 성경해석과 교회

 

성경은 교회의 책이요, 기독교 공동체에서 읽혀지는 책이다. 성경해석과 교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현재의 성경 66권은 정경으로 수납된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성경을 정경(Canon)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정경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당시 교회의 자연적인 표현을 통해 그의 섭리로 역사를 주관하셔서 현재의 정경이 성립될 수 있도록 만드신 것이다.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서 있다. 즉 교회는 성경이 있기 때문에 존재가 가능하다. 교회는 본문을 지배할 수 없고 오히려 본문에 근거해서 존재한다. 교회의 본문 해석, 즉 성경 해석은 항상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지만 성경 자체는 오류가 없다.

 

(2) 문법적 - 역사적이라는 용어

 

문법적 - 역사적이라는 말은 해당 언어의 문법적 법칙과 역사적 사실과 형편을 터득하여 저자가 전하려고 하는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문법적이라는 말과 역사적이라는 말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언어란 역사적인 형편과 환경에 의해 그 뜻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문법적 해석법

 

해석자는 역사적인 연구를 통해 성경 저자가 사용한 언어의 문법을 습득한 후 그 문법을 해석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문법적 - 역사적 해석에서 중요한 원칙은 일반적으로 단어나 문장이 한 문맥에서 한 뜻만 내포한다는 사실이다. 문법적 연구는 항상 그 언어의 법칙과 원리를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이다.

 

(4) 역사적 해석법

 

역사적 해석법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근거로 한다. ①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적인 방식으로 주어졌다. ② 어떤 말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그 말을 쓸 때에 불어넣은 정신을 포착하여야 한다. ③ 저자와 저자의 글을 바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다. ④ 장소, 시대, 환경 등은 기록된 글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 해석방법은 성경의 각 책을 연구하는 데 그 책이 쓰여진 역사적 형편에 비추어 연구함으로 본문의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로서 출발하게 된다.

 

(5) 정경적 해석법

 

정경적 해석법은 성경의 신적인 기원을 인정하며 성경의 통일성을 근거로 하여 설립된 것이다. 정경적 해석법은 정경 66권이 종결된 것으로 생각하고 정경 66권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한다. 또한 이 방법은 계시의 점진성을 인정하는 해석방법이다. 정경적 해석법은 성경 66권이 여러 가지 문학적 장르로 기록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문법적 역사적 해석방법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6) 성경해석원리의 요약

 

1) 문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2) 성경 원어의 어휘와 문법을 익혀야 한다.

3) 성경 원저자의 뜻을 찾도록 해야 한다.

4)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배경을 성경 해석에 참조해야 한다.

5)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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