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는데도, 가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그랬다. 그래도 가슴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가을, 마음껏 눈물을 흘려보고 싶은 가을, 그래서 꼭 껴안고 싶은 가을을 떠올리고 있다. 저 멀리서 구름이 밤하늘을 가르고 있다.
2학기에 들어서 지금까지 세 번째 강의를 했다. 오늘 어느 학생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이란 참 편리하고 유용한 도구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쉽게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매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편지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형법각론 월요일 3시 수업을 듣고 있는 1학년 000입니다.
제가 이렇게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의 수업방식이 탁월하고 효과적이라는 확신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교수님의 이와 같은 수업방식이나 철학이 변함없이 계속되어 저의 후배들에게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메일을 띄워 보냅니다.
솔직히 형법각론이라는 과목에서 처음으로 법학이란 과목에서 부드러움이랄까 어떤 좋은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1학기 때 형법총론을 공부할 때나 민법총칙, 법학개론 등을 공부할 때 느꼈던 막막함 같은 것이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사라지고 "한번 해 보자. 공부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1학년을 데려다 놓고 논술형이다 약술형이다 시험양식도 알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무지한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방대한 양의 시험분량을 주고는 시험을 쳤기 때문에 법학에 대하여 꼴도 보기 싫을 만큼 어려워하는 마음이 많았지만 차근차근 저희들의 지식과 경험의 분량을 예상하셔서 법학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게 해주시려는 교수님의 배려가 느껴져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음이라 아는 것이 없어 답답하시기도 하시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저희들을 끝까지 법학이라는 딱딱한 학문을 새로 보고 그에 흥미를 갖도록 많은 조언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부성 립서비스로 비춰질까 두려운 가운데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시험에 붙는 것이 장원급제처럼 신분의 급상승을 의미할 정도로 힘들던 시절 합격하셔서 검사로 지내셨던 분에게 그러한 시절의 거들먹거림이나 교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겸손한 언행에 존경을 표합니다.
앞으로 저 또한 성실한 학생으로 맡은바 학업에 충실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편지를 보면 우선 참 잘 썼다는 인상을 받는다. 매우 짜임새 있고, 하고 싶은 말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다. 물론 교수에게 보내는 학생의 입장에서 가급적 좋은 말, 듣기에 기분 좋은 용어를 선택해서 쓴 것 같기는 하다.
학생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으면, 내가 실제 그에 미치는지 못미치는지를 떠나서 교수로서의 위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학생들이 교수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 언행에 더욱 조심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메일을 받고,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인 수업이 될 것인지 더 연구해야겠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고, 앞으로 진로에 도움이 되게 할 수 있는지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나 스스로 강의경험이 많지 않아 부족한 것이 많은 상태다.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집중해서 듣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