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배우자의 외도로 협의이혼을 하려는 사람이 배우자로부터 위자료를 받아야 하는데 재산이 하나도 없을 경우, 대출, 급여차압으로 하려고 할 때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어떤 방법으로 확실하게 조치를 해야 할까요?

 

<답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협의이혼을 하는 경우, 위자료를 받는 방법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우선 협의이혼은 이혼사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부부 당사자가 합의하면 이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쪽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부정행위를 이유로 정신적 손해배상, 즉 위자료를 받을 생각이 있다면 이혼합의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재판을 해야 합니다.

 

만일 재판을 하지 않고, 먼저 이혼부터 합의로 하려면 위자료 문제는 꺼내면 안 됩니다. 일단 협의이혼부터 한 다음, 이혼신고를 하고,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은 날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청구를 하면 됩니다.

 

이때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면서 부정행위자의 월급 등을 가압류하면 됩니다. 상대방의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일단 판결문만 받아놓았다가 나중에 강제집행하는 방법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질문 2> 만나지 않고 문자나 카톡의 내용으로 상간녀나 상간남를 소송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이혼하려할 때 상대에게 위자료 신청이 가능한지요? 문자만 했을 때와 만나서 외도를 했을 때 위자료에 정상참작이 되는지요?

 

<답변> 남자와 여자가 간통을 하지 않고, 서로 문자를 자주 주고받거나, 전화통화를 자주 함으로써 객관적으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에서 배우자에 대한 불법행위로 정신적 손해배상인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판결하고 있습니다.

 

현재 법원에서는 이러한 경우, 위자료를 천만원 내지 천오백만원 선에서 결정합니다. 남편과 정신적 사랑을 한 여자를 상대로 아내는 동일한 금액의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만일 단순히 연애만 한 경우와 달리 실제로 배우자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간음까지 했다고 하면 보통 3천만원 정도의 위자료지급판결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배우자 있는 유부남이나 유부녀는 다른 이성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한 내역이 드러나거나, 문자 또는 카카오톡을 자주 주고 받아, 연인 사이로 인정을 받으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고, 이혼사유가 되기 때문에 아주 조심하여야 합니다.

 

위자료청구소송과정에서 법원을 통해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사실조회하면 모두 다 드러납니다.

실존철학에서 본 결혼의 의미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사르트르는 연인 보부아르를 젊은 시절 만나 사랑하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형식적이며 구속적인 기존의 결혼제도 속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집어넣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은 새로운 시도이었으며, 법과 윤리에 대한 반항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문학활동, 철학 연구, 소설 집필에 매진하면서, 평생 사랑의 밧줄을 끊지 않았다.

 

이들의 독특한 사랑의 방식을 사람들은 계약결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만들었던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 과연 두 사람은 그러한 운명적 사랑(amor fati)으로 인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난지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계약결혼, 변형된 사랑의 방식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사르트르는 20세기 실존철학을 대표한다. 보부와르 역시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실존주의에 입각하여 페미니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들의 계약결혼방식 역시 실존주의 시각으로 접근할 때 이해가 쉬어진다.

 

또한 두 사람은 많은 소설을 썼다. 이들의 글쓰는 소질은 남보다 뛰어난 것이어서,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사랑의 낭만성을 제도로써 경감시키지 않기 위해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결혼의 계약화를 시도하였던 것이라고 보여진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부르짖었다. 자동차, 의자, 선풍기 등은 모두 목적을 가진다. 특정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존재들의 필요성은 이미 정해져있다. 자동차는 사람들을 태워 이동시키는 것, 의자는 사람들이 앉는 것, 선풍기는 시원한 바람을 송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전혀 다르다. 인간은 만들어질 때(태어날 때)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 용도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고대 사회나 근세, 현대사회의 초기에 이르기까지에는 인간의 본질에 관해 다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중세나 근대까지만 해도 서양에서는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답고 선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태어난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그의 짝인 이브와 함께, 사탄인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이 절대로 먹지 말라고 명령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선과 악을 알게 되고, 결과적으로 인간은 선과 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악()도 저지르게 되었다.

 

아담과 이브는 결국 지상에서의 천국인 에덴의 동상에서 추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2의 인간인 예수를 이땅에 보내서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면 불쌍한 인간을 다시 영혼구원하겠다는 언약을 하였다.

 

그러나 실존철학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태어난 것이라는 전제를 부정한다. 인간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성관계를 함으로써 수태되고, 출산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을 단순한 생리적, 생물학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한 인간의 출생에 어떠한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정말 우연히 태어나고, 생명을 얻었으며, 스스로 내재된 삶의 의지와 의식적 무의식적 신체 활동의 지속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혼자 태어나는 것이지, 다른 동물들처럼 동시에 수십명이 무리를 지어 태어나지도 않는다.

 

실존철학의 이전에는 인간의 본질을 꾸준히 탐구했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론(essentialism)에 대비되는 것이 이른바 실존론(existentialism)이다. 아무런 목적이나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난 인간은 그의 본질에 앞서는 실재하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단정했다. 자동차나 의자와 달리 인간은 특정한 목적이나 용도가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절대적인 완전한 자유 상태에 놓인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완전한 개별적인, 개인적인 자유를 가지고 이를 향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심지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죽음은 선택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부여받았지만, 그 대가로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은 무척 좋은 것만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선택은 매우 피곤한 일이며, 때로는 고통이다.

 

특히 선과 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 악과 악 가운데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그렇다. 선택을 잘못하면 인생은 망가진다. 한 사람을 잘못 선택해서 결혼하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사기꾼 한 사람을 잘못 만나 사기를 당하면 순식간에 거지 신세가 된다. 묻지마 살인범을 선택하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다.

 

이와 같이 개인의 선택에 따른 모든 결과와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간다. 그렇다고 인간이 이러한 자유를 포기하거나 상실하면 타인의 노예로 전락한다.

 

인간의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은 언제나 인간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집단, 사회의 공통선이나 오래 된 습속, 또는 윤리의식의 범주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옛날 적은 규모의 씨족사회나 부족사회에서의 인간들의 삶의 방식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간다. 몇십명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각 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은 대체로 집단의 공통의식과 생각, 도덕 규범에 따라 행해지도록 유전적 기질을 타고 나고, 여기에 학습과 경험이 덧붙여져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후 집단이나 사회의 규모가 커졌을 뿐, 기본적인 인간의 삶의 방식은 그 본질이 크게 변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이와 같이 끊임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하며서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치중립적인 실존은 서서히 의미 있는 인간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존은 대자존재(對自存在)로서 객관적인 상태의 자기 자신과 직면하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바라볼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이러한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나와 너를 분석하고, 결혼의 의미와 결혼생활이 두 실존에게 어떠한 선택을 강요하며, 두 사람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억압하고, 결혼으로부터 얻는 실존적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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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면 부부는 100% 남이 된다

 

우리 주변에는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는 평생 이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이혼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혼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혼은 인생 최대의 위기이다. 결혼할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극한상황이 닥친 것이다.

 

결혼할 때에는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려는 마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한 후의 생활, 삶에 대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특별한 걱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같다. 설사 꼭 마음에 드는 좋은 대학교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신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선택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므로, 4년 다닌 다음 졸업하면, 적당한 직장에 취직도 될 것이고, 우선 대학 생활 4년이 낭만도 있고, 고등학교 때까지의 구속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장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밤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은 전혀 다르다. 이혼은 대학교를 중퇴하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대학교를 그만 두거나, 아니면 본인이 잘못해서 대학교에서 강제로 내쫓는 것이다.

 

대학교를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해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당장은 답답한 상황이 된다. 본인은 대학교를 중퇴한다는 사실 때문에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고민을 한다. 자신의 장래가 불안하고 두렵다.

 

물론 중퇴하고 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 그리고 중퇴한 다음 더 이상 학교에는 다니지 않고, 사업을 해서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지금, 여기에서 본인은 대학교를 그만 두어야 하는 상황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친구들은 아무 걱정없이 대학교에 계속 다니면서 낭남을 즐기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행복해보인다.

 

이혼의 위기에 처한 사람은 첫 번째, 대부분의 사람들도 결혼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봐서는 부부는 모두 행복해 보인다. 특히 어린이날 부부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서울대공원에 놀러와서 만면에 웃음을 띄고 있는 장면을 보면, 세상 사람들 99%가 결혼해서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신혼 초기에는 그렇던 부부도 3년이 지나면 많이 달라진다. 서로 맞지 않아 다투고, 같이 있어서 좋거나 행복하지 않다.

 

성관계도 마지 못해 하는 것이고, 결혼했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생활한다. 단순한 가족으로서의 생활이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연인으로서의 애정행위의 연속은 아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야 현재 심각한 부부 간의 갈등국면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

 

두 번째, 이혼을 할 것인지, 그냥 참고 살 것인지 하는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모든 상황을 좋합적으로 판단해서 오로지 본인의 관점에서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부부는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이혼하면 완전한 남이 된다. 자녀가 있어도 부부 사이는 100% 타인이 되는 것이다. 이혼하면 대부분 사이가 더 나빠진다.

 

오랫동안 나쁜 관계로 지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더 이상 정이 남아있지 않는다. 그래서 이혼할 때 부부는 서로 한푼이라도 더 가지고, 상대에게는 한푼이라도 덜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경우에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으로부터 돈을 많이 받아 자녀들과 살 궁리를 하게 된다. 남편은 아내에게 돈을 많이 주면, 그 돈을 가지고 있다가 건달 남자를 만나 다 빼앗길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혼할 때에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직 본인과 자식 걱정만 하면 된다. 절대로 상대에게 양보할 필요가 없다. 상대를 불쌍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서로가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이니까, 불쌍한 것은 두 사람 모두 똑같다.

 

세 번째, 이혼하는 사람들은 결혼생활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서로 참고 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과 미움은 모두 변하는 것이고, 시간이 가면, 아무리 뜨겁던 사랑도 식고, 아무리 미워하던 사람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게 된다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좋기는 부부도 한번도 화해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네 번째, 이혼할 때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재산을 분할하는 문제이다. 이혼 이야기가 나오면 차분하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산을 많이 받는 방법을 연구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부부 사이에 상대방의 재산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남편이 돈관리를 하면서 아내에게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내는 집에서 남편의 부동산, 동산, 주식, 예금 등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상대의 재산을 알지 못하면 이혼하면서 제대로 재산분할을 받지 못하게 된다.

 

네 번째, 이혼할 때 자녀의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우리는 TV에서 어린 자녀를 외국으로 입양보내고, 그 후 외국에서 자란 아이가 성장하여 성공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와서 친부모를 찾는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본다.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외국의 사례를 보면, 성공한 자녀들이 나중에 친부모가 나타나도 아무런 정을 느끼지 못한다면서 만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티브 잡스라고 한다. 이혼은 입양과 같지는 않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자녀에게 못할 일을 하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어린 자녀로 하여금, 부모가 이혼함으로써 불안하게 만들고,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평생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는 것이다. 때문에 이혼하더라도 부모는 자녀의 문제에 대해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배려해주어야 한다.

 

네 번째는 이혼하면 혼자 생활해야 한다. 갑자기 생활 패턴이 180도 달라지는 것이다. 싱글 라이프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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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의 위기에 서서

 

이혼은 인간이 선택하는 가장 고독한 결단이다. 이처럼 중요한 인생의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신중하여야 한다. 절대로 즉흥적으로 결정하면 안 된다.

 

개인의 삶의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실존철학적 배경이 필요하다. 주먹구구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실존철학에서는 인간은 아무런 목표나 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고 본다. 특정한 목표가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가진다.

 

인간은 절대적인 자유를 가진 존재로서, 그때 그때 구체적인 상황에서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실존은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게 된다.

 

인간이 하는 선택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실존 자신의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그러한 선택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맞게 선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실존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무한책임을 부담한다. 그러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인정받는다.

 

개인이 이혼을 하기로 결정하고, 이혼을 선택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독한 실존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다. 다만, 이혼은 개인의 단독행위가 아니라, 상대가 있는 합동행위이다. 이혼은 두 사람의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사건이다.

 

이혼에 따른 모든 책임은 두 사람이 져야 한다. 비록 한 사람은 이혼을 원하고, 다른 사람은 원치 않지만, 법에 의해 강제로 이혼을 당하는 경우에도 이혼의 효과는 두 사람에게 똑같이 돌아간다.

 

이혼은 개인의 심리문제, 부부 두 사람의 심리문제, 자녀 및 다른 가족에 대한 심리문제를 포함하는 복잡한 심리적 문제이다.

 

따라서 이혼을 생각할 때에는 이러한 심리학을 공부해야 하고, 특히 가족심리상담, 가족치료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다.

 

또한 이혼은 법적 문제이며, 윤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혼법과 윤리학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는 정보의 시대다. 인터넷을 통하면 무수한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우리 한번쯤 이혼에 대해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해보자. 그것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혼학 세미나>

 

76사랑학 세미나가 개최된다. 나는 이번 세미나에서, ‘이혼에 관해 주제 발표를 한다. 그래서 한달 전부터 이혼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우선 윤진수 교수님이 쓴, ‘친족상속법 강의교과서에서, ‘혼인과 이혼부분을 정독하였다. 그리고 이혼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읽었다.

 

또한 이혼에 관한 심리상담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미국에서는 결혼 및 가족상담’ ‘자녀, 결혼 및 가족 치료전문상담사, 전문치료사가 많이 있다. 그러한 전문가들이 이혼에 대해 쓴 칼럼들이 많다. 또한 이혼에 관한 국내외 유튜브 방송도 많다.

 

우리 사회를 보면, 과거에는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가급적 이혼을 하지 않으려고 참고 살았다. 그러나 사회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사람들의 사랑과 성, 결혼과 이혼에 대한 생각과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엄격한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탈피하고, 남존여비사상과 남녀차별의식은 거의 사라졌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을 하는 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성에 대한 개방적인 분위기도 한몫하면서, 간통죄가 폐지되고, 인터넷 등을 통한 이성간의 교제 기회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꼭 한 사람과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결혼제도의 구속력은 약화되고 있다.

 

이혼해도 혼자 살 수 있는 경제적 여건과 자립 능력도 좋아졌고, 자녀에 대한 애착관계도 과거와는 다른 강도이기 때문에, 이혼결정을 가로막는 많은 요소와 장애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이혼을 쉽게 하고, 많이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혼의 장점과 좋은 점을 강조하면서, 부부가 서로 맞지 않으면,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이 편하고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신혼이혼부터 중년이혼, 황혼이혼, 사후이혼까지 결혼생활의 전 과정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이혼이 행해지고 있다.

 

여기에 곁들여 별거, 졸혼, 무늬만 부부, 섹스리스 부부, 양해된 불륜 등이 낯설지 않은 결혼의 일탈, 변형 형태로 늘어나고 있다. 사르트르와 보봐르가 했던 계약결혼도 있다.

 

이혼의 원인은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간단히 말하면, 부부 두 사람이 서로 맞지 않아,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민법에서는 재판상 이혼 사유로 부정행위 등 여섯 가지를 규정하고 있지만, 결론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인해 부부관계가 파탄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의 책임이든 간에 부부가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사랑도 하지 않고, 성관계도 하지 않고, 남처럼 지내면서, 한집에서 매일 같이 지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관계에 있으면서도 일단 부부로 남아있으면, 법과 윤리면에서 아주 엄격한 책임과 의무를 진다. 배우자 있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친하게 지내거나, 정신적 사랑만 해도 위자료를 물어주어야 하고, 이혼사유가 된다.

 

법률상 부부는 부양의무, 동거의무, 정조의무, 자녀양육의무 등을 진다. 아울러 법률상 부부는 바람을 피지 말아야 하는 의무, 배우자나 배우자의 존속을 학대하여서는 안 되는 의무를 부담한다. 배우자를 폭행 협박해서는 안 되는 의무도 있다.

 

물론 이혼이 아주 불가피한 경우도 많다. 구체적인 사연을 들어보면, 누구나 그 상황이 되고, 그 입장이 되면 이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혼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수긍이 간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이혼했을 때, 이혼 후의 달라지는 상황이나 환경, 조건 등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특히 이혼에 따른 자녀의 문제를 제대로 고민하지 않고,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결정을 너무 성급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 걱정이다.

 

이혼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을 때, 이혼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것 저것 모든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야 한다. 이때 혼자 고민해서는 안 된다.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 상의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종교인, 심리상담사, 가족학 전문가, 사회복지사, 인생의 지혜를 가진 사람 등과 진지한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변호사와 같은 법을 하는 사람을 먼저 만나면 안 된다. 이혼문제는 법으로만 따질 문제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혼을 결정할 때 역시 최우선 요소는 자녀이다. 물론 자녀의 인생은 따로 있겠지만, 자녀를 낳은 사람은 부부이기 때문에, 최소한 다른 자녀들처럼 자신이 낳은 자녀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보호와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경제문제다. 이혼하고 갈라서면 말이 그렇지 혼자 사는 것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재산분할문제와 자녀양육비 등을 충분하게 논의하고 확보한 다음 이혼하여야 한다.

 

세 번째, 이혼하고 그 다음의 싱글 라이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을 잡은 다음에 이혼하여야 한다. 혼자 살면 불편하고, 외롭기 때문에 다시 이성을 만나지만, 좋은 사람 만나는 것은 초혼 때부터 열배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내가 이혼에 관한 주제 발표를 하고, 그에 관한 토의를 할 생각이다. 이혼을 하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 이혼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혼의 장점과 단점,

 

이혼해서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 분석, 이혼하지 않고 참고 살았을 때 무엇이 억울한가? 이혼의 심리적 요인과 상담기법 등이 주된 내용이다.

 

이런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사랑학에서는 일차로 결혼에 관한 법, 이혼에 관한 법을 연구합니다. 자녀들이 결혼할 때 알아두어야 할 법과 문제를 부모님들이 먼저 공부해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결혼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지금 좋으니까, 그냥 결혼해서 혼인신고를 하고 살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넘게 따로 생활한 남자와 여자가 갑자기 한 집에서 24시간 붙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혼생활은 돈이 있거나 사회적 능력이 있거나, 공부 잘 했다고 잘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첫 번째, 우선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사회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주부로 생활하는 부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무시 당하고 살 여자가 별로 없습니다.

 

두 번째, 남자가 너무 소심하거나, 완벽주의자이거나, 결벽증이 있거나, 쩨쩨하면 안 됩니다. 여자는 이러한 남자의 성격에 얼마 있지 않아 질식합니다.

 

세 번째, 성격이 나쁘거나 질이 좋지 않은 남자도 안 됩니다. 집에 와서 늘 직장 상사나 반대 파 정치인들을 욕하는 남자, 친가 부모나 형제를 욕하고 사는 남자, 남이 망하기를 좋아하는 남자는 여자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네 번째, 남자가 자기 재산이나 예금, 돈을 여자에게 밝히지 않고, 딴 주머니를 차면 여자로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빨리 이혼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남자가 다른 여자만 보면 눈이 뒤집어지는 경우, 빨리 내쫓아야 합니다. 이런 남자는 끝이 일찍 보입니다.

 

여섯 번째, 게을러서 돈을 벌지 못할 것 같은 남자도 희망이 없기 때문에 내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일곱 번째, 종교에 너무 열심이어서 현실은 무시하고 사후 세계만을 바라보고 사는 남자도 문제입니다.

 

여덟 번째, 집에 와서 밥만 먹고 진지한 대화를 하지 않는 남자도 싹쑤가 노랗습니다.

 

아홉 번째, 책 한권 읽지 않고, 매일 페이스북이나 하는 남자도 앞날이 훤합니다.

 

열 번째, 주식이나 비트코인, 다단계에 투자해서 거지가 되는 남자도 아예 일찍 헤어지는 것이 좋습니다.

 

이외에도 지적할 사항이 100가지 더 있지만, 지면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페친 여러분께서 특별히 추가하고 싶으신 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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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날이 갈수록 이혼이 많아지고 있다. 모두 이해가 간다. 결혼한 이상 누군들 잘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오죽하면 가정을 깨는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겠는가?

 

일반인들은 법을 잘 모른다. 혼인신고할 때, 간단히 신고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이혼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협의이혼의 경우에는 비교적 간단하다. 협의이혼도 숙려기간이 문제다. 법에서 숙려기간을 1개월 내지 3개월 둔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현실적으로 숙려기간 때문에 당초 이혼하려는 의사를 번복해서 이혼을 하지 않은 케이스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 숫자가 많지 않다면, 숙려기간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이혼을 신청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숙려기간을 두는 것을 원하면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숙려기간 적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공연히 숙려기간을 두어서 그 기간 동안 불편하게 하고, 당사자들이 더욱 감정이 악화되고, 빨리 혼인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 숙려기간 1개월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재판상 이혼도 마찬가지다. 부부가 서로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을 청구하면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판결을 해주어야 한다. 재산분할도 부부간에 분할하는 것이므로 일반 모르는 사람들간의 소송과는 달리 신속하게 결정을 해주어야 한다. 친권 및 양육권 지정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부간의 문제를 너무 복잡한 절차로 진행하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하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변호사 비용이 착수금이나 성공 보수 때문에 너무 많이 지출이 된다.

 

돈이 없고, 법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절망하고 있다. 하루 빨리 우리나라 이혼법과 이혼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 사랑학, 이혼학, 가족학 세미나 연구회에서는 이혼에 관한 법과 제도, 대법원 판례를 알기 쉽게 정리하여 회원들에게 배포할 생각이다. 많은 참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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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이혼하지 마라!

 

인간은 출생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사망의 시기별, 단계별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개인의 생애를 단순하게 시간대로 구분한 것이다.

 

개인의 학교 생활에만 초점을 맞추면,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런 단계로 일정한 기간 동안 생활을 한다.

 

이러한 개인의 생애나 학교 생활은 모두 한 사람의 문제이며,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 하에 진행된다.

 

그러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결혼생활은 전혀 다르다.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합의하여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예측이 전혀 불가능하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하는 결혼생활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종료시키는 이혼제도가 있다. 이혼이 중간에 개입하는 경우, 개인의 결혼생활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된다.

 

혼인(first marriage) 신고 결혼 생활 결혼 파탄 이혼 신고 재혼인 신고(second marriage) 재결혼 생활 재결혼 파탄 재이혼 신고 재재혼인(third marriage) 신고 재재결혼생활 재재결혼 파탄 재재이혼신고

 

이것은 개인이 학교 생활을 각 단계에서 아무 때이고, 더 이상 상급 과정으로 진학하지 않으면, 학교 생활이 종료되는 것과 같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 것으로 끝난다.

 

마찬가지로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더 이상 혼인하지 않으면 한번의 결혼, 한번의 이혼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이혼뿐 아니라, 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사망하는 경우에도 결혼생활은 종료된다. 이른바 배우자가 사망함으로써 과부나 홀아비가 되는 것이다.

 

오래 된 용어이기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과부또는 홀아비라는 단어는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이혼한 사람은 돌싱이라는 비교적 세련된 용어가 생겼는데, 아직까지 과부나 홀아비에 대한 적절한 용어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과문한 탓일게다.

 

우리는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이혼 위기 이혼 결심 이혼 진행 이혼 신고 이혼 이후>로 단계를 구분하여 고찰할 것이다.

 

이혼학을 한자로 쓰면 이렇다. <離 婚 學> 나도 오랫동안 한자를 썼기 때문에, 옛날에는 제법 많은 한자를 썼다. 그러나 한글전용이 된 이후에 한자를 거의 쓰지 않다보니, 지금은 읽을 수는 있어도, 막상 한자로 쓰라고 하면 자신이 없어졌다.

 

게다가 한자 중 복잡한 글자를 보면, 옛날에 어떻게 저런 것을 다 외워서 쓸 수 있었던 것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혼이라는 한자, 離婚만 봐도 그렇다. 얼마나 복잡한가? 그것은 이혼이 그렇게 복잡하다는 뜻이다. 이혼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두 사람은 얼마나 많은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으며, 현실에서 지옥의 강을 건너고 있는가?

 

이혼은 지옥이다’ ‘이혼은 전쟁이다’ ‘이혼은 잔인하다’ ‘이혼은 최악의 사랑이다이런 한탄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이혼과정도 만만치 않다. 그냥 쿨하게 협의이혼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이혼을 하려는 사람과 이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싸운다.

 

이혼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한푼도 주지 않고 내쫓으려는 인간과 가급적 많이 받아가지고 나가려는 사람이 싸운다. 서로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선량한 사람들도 싸우고, 서로 불쌍한 자녀들을 맡지 않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악한(惡漢)들도 싸운다.

 

이혼학(離婚學)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다. 적어도 혼인학(婚姻學)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결혼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요새 비혼(非婚)이 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늦게 결혼하면 된다. 만혼(晩婚)이다.

 

하지만, 이혼은 그렇지 않다. 이혼을 하고 싶어도 혼자는 못한다. 상대가 동의를 해야 가능하다. 법으로 이혼판결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서로 원수가 되면서 하는 방법이다.

 

결혼은 굳이 막을 필요가 없다. 결혼은 행복을 위한 것이므로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겠다는데, 옆에서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혼은 다르다. 옆에서 가급적 이혼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혼은 자녀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고통이 따르고, 현실적으로 불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옆에서 아무리 어드바이스를 해주어도, 당사자들은 끝내 이혼한다. ‘오죽하면 이혼할까?’ 맞는 말이다. 두 사람은 충분히 심사숙고했을 것이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옆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이혼을 만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이혼을 할 때에는 하더라도, 옆에서 이혼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러한 반대의견을 참고하면서 이혼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자녀가 싸우고 본가에 와서 이혼하겠다고 하면 부모가 더 앞장을 선다. ‘그런 놈과는 빨리 헤어져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해서 좋은 경우도 많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부모나 자녀들도 많다.

 

왜냐하면 이혼의 부작용, 후유증, 단점은 결코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런 이혼문제에 있어서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서구화되지 않은 과도기 상태이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아직도 이혼에 대해 보수적인 것같다. 주변에서도 보면, 초혼인 아들이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노인들이 많이 있다.

 

이혼학에서는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함으로써 파경에 이르지 않고, 이혼이나 별거를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제시한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 이혼하지 않고 다시 관계가 복원되거나 재건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또한 끝내 이혼할 수밖에 없는 부부들에게는 건강하게 이혼하는 법을 제시한다.

 

이혼학에서는 이혼하는 법적 절차와 재산분할, 자녀의 친권 및 양육권, 양육비 부담, 위자료, 면접교섭권 등의 문제를 연구한다.

 

이혼학에서는 이혼한 후의 싱글 라이프에 관해 연구하고, 재혼의 문제점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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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학의 목적

 

이혼학의 목적은 가급적 이혼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혼은 곧 가정의 해체를 의미한다. 가정이 해체되면 부부뿐 아니라 자녀를 포함하여 다른 넓은 의미의 가족 구성원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이 가기 때문이다.

 

이혼을 막거나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처음 단계에서 결혼할 때 배우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최우선이다. 서로 맞지 않는 두 사람이 결혼하면 아무리 한쪽에서 노력을 해도 맞출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20년 내지 30년 이상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서로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의무를 부담한 채, 서로 참고 견디면서 화목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과 달라서 요새 젊은 사람들은 극도의 개인주의, 이기주의에 물들어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모두 자신이 잘 났고, 옳다고 생각한다.

 

상대와 생각이 다르거나 성격이 다르면, 자신의 생각이나 성격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상대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에 따르도록 하려고 한다.

 

상대 역시 똑 같은 입장이기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은 갈등관계가 되고, 서서히 사이가 나빠진다. 조금도 양보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배우자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또한 자기 자신의 성격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파악하고, 상대와 맞추어 나갈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서로 맞출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종교가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종교가 없거나, 종교를 가지고 있어도 적당한 수준이면 괜찮다. 그러나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과 독실한 불교인도 나중에 종교면에서 절충하기는 어렵다. 연애감정에 빠져 나중에 종교도 맞추겠다고 해놓고 정작 결혼한 다음에는 종교적인 문제로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사회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특수한 종교단체에 들어가서 가정도 버리고, 이혼도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종교단체에서는 이를 말리는 배우자나 가족을 사탄이라고 규정짓기 때문에 이런 경우 가정은 깨지고 만다.

 

이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어린데, 매일 새벽기도 나가고, 아이들 돌봄도 소홀하고, 가사를 팽개치는 여자 때문에 이혼하는 남자도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교회 십일조나 건축헌금, 감사헌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해야 한다고 우기는 남편 때문에 아내가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는 결혼생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혼생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검소하고 절약을 해야 한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이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에서도 아무렇게나 어지럽혀 놓아서도 안 된다. 화장실도 깨끗하게 써야 하고, 치약도 제대로 짜서 써야 한다. 불도 제대로 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하나씩 보면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상대는 짜증이 나는 일이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으면 상대는 미워지고 나중에는 싫어지는 것이다.

 

결혼생활은 기본적으로 부부가 가정에 충실하여야 할 것을 요구한다. 밖에 나가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정과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배려하고, 헌신하기를 요구한다.

 

이러한 충실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배우자는 가정에 대한 애정,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단정한다. 특히 몇 년이 지난 부부의 경우, 일차적인 이상징후는 성관계에서 나타난다.

 

종전에 하던대로 하지 않고, 갑자기 횟수가 줄어든다든가, 성관계를 기피한다든가, 해도 적당히 한다든가 하면, 벌써 이상해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태가 더 지속되면, 각방을 쓰게 되고, 각방을 쓰기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섹스리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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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학 강의

 

우리는 결혼이라는 말은 쉽게 그 의미가 전달된다. 결혼식을 떠올리면, 신랑과 신부가 모두 행복에 겨워서 환한 미소를 짓고, 무지개빛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하객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그들이 자녀를 낳고 가정을 꾸미며, 백년해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을 떠나 첫날밤을 치루며,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사회적 특권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혼’은 전혀 다르다. 이혼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남자와 여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고, 설사 알았다고 해도 직접 물어보기가 곤란하다.

 

이혼했다고 하면 두 사람이 이혼신고를 하고, 각자 따로 떨어져 생활하고, 돌아온 싱글의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이 떠오를 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이 복잡한지, 생활이 힘들어졌는지, 새로운 사랑을 하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결혼은 공개된 행위이고, 이혼은 공개되지 않는 행위이다. 결혼은 널리 알릴수록 좋고, 이혼은 널리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은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혼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

 

왜 그럴까? 결혼과 이혼이 이와 같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혼학은 이혼을 테마로 하는 학문이다. 이혼학에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① 어떠한 경우에 결혼 생활이 파탄났다고 하는 것인가? ② 결혼 생활의 파탄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③ 결혼 생활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④ 이혼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⑤ 이혼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가? ⑥ 자녀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⑦ 이혼 후의 생활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⑧ 이혼 과정 및 이혼 후의 아픔과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⑨ 이혼 후 새로운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 ⑩ 재혼 후 다시 이혼하는 경우는 무엇 때문인가?

 

이러한 열 가지 질문에 대해 이혼학은 답변을 해야 한다. 올바른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이혼에 관한 법, 윤리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가족학, 여성학, 가족복지학 등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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