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11:30 여성가족부 출범식이 프레스센터 20층 홀에서 개최되었다.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을 비롯해서 한명숙 초대 여성부 장관, 지은희 제2대 여성부 장관 등이 참석하였다.

 

여성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 Family)의 가족정책 범위는 총괄기획 및 조정, 기존사업 확대강화, 신규사업 개발추진 등이다. 가족정택 추진을 위한 인프라를 확충한다고 한다. 가족정책 추진체계를 구축하고, 가족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가족친화적 직장문화를 확산시키고, 가족생활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출범식 진행에는 많은 여성단체 지도자 및 여성 원로들이 참석해서 성황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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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집을 나섰다. 시청 옆에서 회의가 있는데 시간을 맞추기가 애매해서 아예 일찍 회의 장소 부근에 가서 사우나를 하고 참석하기로 했다. 출근시간에 88올림픽도로를 탔다가는 대책이 없이 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조금만 일찍 나가도 시속 80킬리미터로 계속 달릴 수 있다. 서울에서 생활하려면 러시아워를 피해 출퇴근하는 것이 현명하다. 굳이 밀리는 시간에 차 안에 갇혀 있으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이 드는가?

 

불과 30분도 안 돼서 소공동 롯데호텔에 도착했다. 사우나는 아침 7시부터 연다고 한다. 고층에 있는 사우나에 들어가니 전망이 좋았다. 바로 앞에는 삼성화재건물이 커다랗게 보였다. 사우나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열탕에 들어갔다. 40도로 맞추어 놓았는데 탕에 들어가니 그 따뜻함이 아주 좋았다.

 

이발을 하고 텔레비젼을 보다가 9시경에 나왔다. 혼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시간에 맞추어 일어났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누워 있으면 곧 바로 잠이 들고 한 15분 있다가 저절로 잠이 깨서 일어나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오래간만에 호텔 사우나에 가 보았다.

 

9시 반부터 12시까지 회의를 했다. 2시간 반이나 지났는데 아주 빨리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정신을 집중해서 일을 하다보면 시간은 참 빨리 지나간다. 그렇지 않고 무료하게 있거나 누구를 기다리고 있으면 시간이 얼마나 더디 가는지 모르는데.

 

회의를 마치고 시청 옆 퓨전식당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오는 식당인데 분위기가 아주 세련돼 있었다. 일행들과 함께 스파게티를 주문해서 먹었다. 나 혼자 식사를 하게 되면 일부러 스파게티를 시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스파게티도 오랫만에 먹어 보게 되었다. 색다른 분위기에서 색다른 음식을 먹는 것도 기분전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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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동네 테니스코트에 갔다. 거의 매일 나오다시피 하는 몇 명의 회원들은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한다. 모처럼 나도 땀이 흠뻑 나오도록 테니스를 쳤다. 테니스는 아주 재미있는 운동이다. 게임을 하고 있으면 다른 잡념이 다 사라진다.

 

연두색의 테니스공을 보면서 나는 질그릇으로 만는 찻잔을 떠올렸다. 은은하게 우르는 찻물을 생각하면서 나는 테니스공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렇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게 정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다.

 

낮에 기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일부 노래방, 노래바에서 남성 호스트들이 여자 손님들을 상대로 유흥접대행위를 하고 심지어 2차로 나가 윤락행위까지 한다고 한다. 젊은 남자들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이렇게 즐기면서 쉽게 돈을 버는 일을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변화하는 성풍속의 현실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는 상업주의, 배금주의가 가져오는 불행한 현상이다.

 

유흥접객업소 허가도 받지 않고 그냥 노래방으로 신고한 후 남성도우미들을 고용해서 여자 손님들을 상대로 술을 따르게 하고 유흥을 돋구게 한 다음 2차까지 내보낸다고 한다. 얼짱 몸짱의 젊은 남성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서글픈 현실이다. 잘 나가는 스타급은 한달에 1000만원까지 벌기도 한다고 한다.

 

전방 군부대 내무반에서 무차별 총기난사로 여러 사람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잠을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피해자들, 그리고 갑자기 비보소식을 듣고 오열하는 유가족들. 사건 진상조사를 하고 향후대책을 세운다고 어수선한 군당국의 모습.

 

수사를 잘해 명성을 얻었던 여자 경찰관과 여성 최초로 지방경찰청장까지 올랐던 어느 경무관의 추락하는 안타까운 모습.

 

우리 사회가 너무 어수선하다. 모두들 차분하게 제 자리로 돌아가 욕심 부리지 말고 조용하게 살아가야 할텐데. 네탓 내탓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나부터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돌이켜 보고 방향을 확인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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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4]

 

 

 

 

6. 정리와 종결

 

졸업 후에는 오히려 공부가 안되었다. 시간은 많고 뚜렷한 자극이 없어 빈둥빈둥하다가 7월초 다시 해인사 원당암으로 내려갔다.

 

해인사의 여름은 정말 시원하였다. 시원한 계곡으로 목욕하러 다니고 가야산을 올라가 보고 매일 저녁 예불을 드렸다.

 

수양하는 자세로 몸과 마음을 끼끗이 하려고 애쓰면서 책도 열심히 보았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미숫가루를 마시면서 그 정성에 보은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조용한 산중에서 나의 갈 길을 확고히 하고 어떠한 난관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굳게 살아갈 결의를 공고히 하였다. 비록 시험에 떨이진다 해도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자위를 하면서 다만 성실히 노력할 것을 자신에게 거듭 약속하였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마음에서 산사생활을 마치고 한대교내의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성실했던 편이었다. 많은 논문을 참조해 가며서 동료들과 토의하였고, 차례차례 전 과목을 정리해 나갔다. 이때에 대학원에서 특별히 마련한 특강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부하고 견실하게 실력을 다져 나갔다.

 

12월 중순 다시 혜명도서실로 돌아와 집과 도서실을 잇는 직선코스를 시게추처럼 왕래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도서실의 많은 사람들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고, 집안 식구들의 최대한의 정성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고서도 책을 볼 수 있었다.

 

설동균 씨로부터 받은 수험잡지 약 120여권을 모두 뜯어 정리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하루 하루 충실하려고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부였다고 생각할 정도의 열성을 보였던 시기였다.

 

시험은 국사를 제외하고 대체로 무난히 치루었으나, 2차부담도 있었고 해서 발표일까지는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발표 당일의 격했던 감정은 극적이었다.

 

7. 하고 싶은 말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실로 고독하고 힘든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시험을 의식하며 같은 책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어야 했음은 서글픈 일이었고 쉽게 권태를 느끼는 일이었다.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이 시험을 마치고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된 지금 다시 한번 그때의 상태로 돌아가서 몇가지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기로 한다.

 

(1) 흔히들 고시에 필요한 요소로서 건강, 두뇌, 경제를 든다. 하지만 내가 볼때에는 대체로 이러한 요소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문제는 의지의 강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2) 1차를 경시하지 말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영어점수가 매번 최고 점수에 가깝게 나와 그 때문에 행정고시 1차에 3번이나 합격할 수 있었음에도 다른 과목을 너무나 소홀히 하여 사시 1차에서 3번이나 불합격하였다. 특히 어학이 부족한 노장들은 만전의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며, 적어도 1개월의 기간은 투입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3) 기본서는 한 권을 철저히 이해할 것이며, 논문은 되도록 광범위하게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문제집보다는(물론 예외적을 매우 잘된 문제집은 그 자체로 교과서보다 효과가 크다고 본다) 교과서를 여러 번 보고 문제집은 보충적으로 참조하며 논문은 이를 교과서와 문제집 사이에 삽입하거나 타이틀만 적어 넣은 방법을 권하고 싶다.

 

8. 글은 맺으며

 

체계없이 생각나는 단편들은 적어 보았다. 그 동안의 수럼기간을 돌이켜 보면 주위에서 애쓰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6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헌신적이었던 뒷바라지, 형님 내외분, 누님 및 동생들의 정성과 격려는 계속해서 힘이 되어 주었다.

 

또한 모교인 서울법대의 교수님들과 한양대법대학장이신 김기선 교수님 및 동대학 여러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기타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합격의 영광을 미희에게 돌리고 수험생 제위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이만 졸필을 놓기로 한다.

 

[1977년 12월 28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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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난과 성숙 

 

졸업반이 되자 마음은 조급해졌고 군대문제 대학원문제가 화급한 과제로 던져졌다. 삼양동에서 신림동까지 통학을 하느라 애를 먹었고, 또 다시 어수선했던 집안 분위기는 도대체 책을 붙잡고 있게 하질 않았따.

 

공부할 장소도 적당하지 않고 해서 빈둥 빈둥하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고 무기력감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천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 때 느끼던 착잡한 심정은 지금도 또렷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가 덩어리진 채로 던져진 것이었다.

 

그러던 중 8춸초 집 근처에 있는 혜명고시원(구 아이템플고시원 - 미아리 삼거리 소재)에 등록을 했다. 에어콘까지 설치되어 있는 깨끗한 신축건물이라 공부하기에 최적한 곳이었다. 

 

이 곳에서 만난 고교선배인 채규옥 씨와 서울대 출신의 설동균 씨와 함께 trio를 구성하여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잊은 채 자료를 정리하고 서로 문제를 출제하여 실전에 대비한 훈련도 하였다. 그러면서 또 다시 총 174매에 달하는 방대한 논문 '불법행위법체계의 신형상과 소송상 입증책임문제'에 착수 약 2개월에 걸쳐 이를 완성 'FIDES'에 게재 발표하기도 했다.

 

같이 졸없축제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던 모 여학생이 돌연 계약해지를 통고하여 쓸쓸히 도서관의 trio로써 외곽만 걷돌았고, 남들의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 같은 것들이 공부에 시달리는나에게 매우 자극적인 것이었떤 당시였지만 18회 사시에의 도전은 끈질긴 것이었다고 회상되어진다.

 

12월초 한양대학교 대학원 입시가 있었다. 많은 대학동기들이 상호경쟁한 기이한 시험이었으며, 불합격할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예상외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눈이 하얗게 온 천지를 덫은 날 마지막 졸업시험을 치루고 관악캠퍼스를 내려 오면서 나의 진로, 인생을 깊이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우선은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사념이 몸 전체를 감싸도는 것이었다.

 

한양대학원에 들어간 대학 동기 몇 명이 그룹을 형성 합천 해인사 길상암에 도착한 것은 12월 20일 경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산사생활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고, 휘몰아쳐 오는 산곡의 강풍, 캄캄한 새벽에 하는 식사, 얼음장을 깨서 하는 세면 등 많은 고시생들이 으례히 하는 일이건만, 이러한 생활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역경이었다.

 

18회 1차시험의 부담은 제대로 2차 시험을 보려는 나에게 몹시 신경을 쓰게했으나 그런대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단체생활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산사생활에 익숙해지려고 할 때에 우리는 또 다시 장소를 옮겨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주지스님과의 마찰로 인해 우리는 대구에서 1차시험을 치른 뒤 서울 근교의 퇴계원에 있는 한대 기숙사에 들어가야먄 했다.

 

낯선 분위기 속에서 이를 악물고 책과 싸웠다. 영철군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열심히 책을 보는 동안 어느 정도 시험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퇴계원의 들판에 서서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 속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묘한 착각을 일으켰고 그 때 느꼈던 고독감은 정말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다.

 

밤에 기름난로에 끓여먹던 라면은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고, 하루 2개씩 먹던 날계란은 매우 고소하였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만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집념은 잠이 들지도 못하게 하였고 추운 줄도 모르게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차 수석을 기대하고 있었던 내가 1차 합격자의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그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식구들이 격려는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다.

 

한번도 2차시험을 치뤄 보지도 못한 채 졸업장을 받아 들고 나는 실업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하 연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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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2]

 

 

 

4. 침묵과 자각

 

3학년이 되자 좀더 착실한 생활을 하여야겠다고 마음 먹고 학교 도서관의 고정좌석을 맡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여전히 무질서한 생활의 타성은 쉽게 고칠 수 없는 것이어서 장난삼아 소개받은 S대학교의 K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date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던 K와 결별을 선언하게 된 것은 1학기가 끝나던 무렵 너무나 각박했던 나의 현실에 대한 절실한 자각 때문이었다.

 

방학을 맞아 7월과 8월 두 달은 시험공부와는 관계없는 논문준비에 전념하였다. '이중매매의 체계적 고찰'이라는 제하의 약 120매 정도의 논물을 완성 서울법대의 'FIDES'에 게재 발표하였다.

 

이어 가을이 다가오고 캠퍼스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 학원은 소요에 휩싸였고 또 다시 조기방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45ㅐ월의 준비계획을 구상하여 17회 사시를 향하여 전력투구하기로 하고 공부방을 정리한 것은 12월초의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책만 보기로 하고 일체의 외출을 삼가하였다. 가끔 아령과 역기로 몸을 풀면서 방안에서만 칩거하였다.

 

그러나 공부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단없이 엄습해 오는 고독감, 그리고 시험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와 불안감, 현실적인 경제적 곤란 때문에 겪는 정신적 고통, 이러한 모든 것들이 책을 보고 있는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점차로 몸은 약해지고 머리는 피곤해졌다. 동네 제재소 앞 포장마차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바이트 불과 소주병들은 일생 최고로 마음을 아프게 했고, 자리를 박차고 배회하던 삼양동 골목길의 외등에서 발하던 희미한 불빛은 젊은 가슴에서 용출하는 대상없는 분노와 울분을 흡수할 수가 없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준비기간도 다 지나가고 17회 시험이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커다란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었다. 즉 16회 때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 치른 1차시험에서 비록 불합격하기는 하였으나 과히 나쁘지 않은 성적이어서 방심한 나머지 약 13 -4일 정도 밖에 1차에 할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시가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르던 그 당시에는 황급한 심경에서 2차에 급급했던 것으로 주관식문제집 8권만을 가지고 거의 전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1차 발표가 있던 날 중앙청에서 1 문제 차이로 불합격된 사실을 알고 눈이 내리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모든 것이 장난 같이 허무함을 느꼈고, 어쩐지 불운하여 아무리 해도 시험은 영영 안 될 것 같은 에감이 들었다. 아뭏튼 이때의 1차 불합격은 나 자신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일대사건이었다.

 

 

[이하 연재 계속됩니다]

 

 

                                       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1]

 

 

 

*** 이 글은 가을사랑이 1977년 사법시험 제19회에 합격하고, 1978년 2월 월간고시[사법시험준비 수험잡지/ 법지사 발간]에 게재했던 사법시험 합격기입니다.

 

 

 

1. 글의 첫머리에

 

돌이켜 고시합격의 노정을 생각해 보면 무수히 많은 선배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무엇인가 조금씩 사고하고 배워가며 방황하다 보니 우연히 합격의 고개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때묻은 고시복을 툭툭 털어 버리면서 한 해를 정리하려 하니 그 동안 시험을 전후한 많은 사연들과 함께 아쉬움과 미련히 불현듯 몸 전체를 휘감아 돈다.

 

지극히 평범한 과정이었고 자신이 처해 있었던 환경이 예외가 아니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역시 고시라는 거울에 비추어질 때에는 인내로써 극복된 고통이 걸어 온 발자취마다 점점이 새겨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 한 번쯤 반추해 보고 싶었던 지난 몇년 동안의 생활을 사고와 행동, 그리고 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간단히 적어 보기로 한다.

 

2. 낭만과 방황

 

마른 체격과 허약한 체질에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수척해진 상태에서 서울법대에 입학한 것은 1972년 봄이었다.

 

동숭동 교정에서 시작된 대학생활은 꿈과 낭만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입생이 겪는 경험이겠지만 술 담배 미팅 등으로 인한 생활의 방만은 나로 하여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했고, 하고 싶은 많은 유익한 일들이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은 자신에 대한 회의를 파도처럼 몰고 왔다.

 

민법총칙과 형법총론을 소지하고 마치 대단한 법학이나 연구하는 것으로 착각했고, 미구에 위대한 법학자가 될 것은 필지의 사실로 오인하고 있었다.

 

법서를 한 두권 들고 거리를 육신이, 삭막한 황야를 정신이 방황하며 낭만을 찾아 급급하고 있었던 이 무렵 고시란 실로 막연한 추상적인 개념이었을 뿐, 어떤 실감 있는 형상은 아니었다. 대학 초기부터 불가피하게 강요 되었던 과외지도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아 갔고 무거운 심리적 압박감을 가하고 있었다. 

 

결국 책을 차분히 보기에 부적합한 주위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막연히 무언인가 되겠지 하는 심리 속에서 보낸 대학 1학년 생활은 낭만적인 방황이었던 것으로 규정지어진다.

 

3. 회의와 성장

 

2학년이 되어도 생활은 여전하였다. 학교강의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때때로 있는 미팅과 술좌석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남는 시간은 피로를 풀기 위한 수면에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공부와 시험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심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나는 조용한 전진을 하고 있었다. 허약한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태권도반과 유도반에 가입하였고, 매일 아령과 Bench Press를 하였다. 몸이 눈에 띌만큼 나아졌고 이 때의 운동 덕분에 그 후 시험공부할 때에도 건강에는 과히 신경쓰지 않아도 좋았던 것이다.

 

2학년 가을 학원은 소요로 수업이 중단되었고, 10월 한달은 완전한 공백 속에서 많은 사고를 하면 보냈으며 그 가운데 겨울을 맞았다.

 

열정적으로 학구적이었던 신영철군(사법연수원 8기)과 16회 1차를 목표로 동숭동 거소에서 포진을 짰다. 둘이서 밤늦도록 책을 보고 상호문답의 형식으로 약 2개월간의 계획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사정변화가 생겨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1차 준비는 전면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3학생을 지도하면서 매일 집 뒤의 동산에 올라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관조하고, 관악 캠퍼스 신축현장을 거닐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회의하고, 그러면서 현실의 작은 문제들은 덮어 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복잡한 가정내의 문제로 며칠씩 고심하며 거의 절정에 다달았던 집안의 경제문제로 마음 아파하며, 목전의 시험은 단지 나를 괴롭히는 괴물에 불과하였을 뿐 이를 요리할 하등의 능력도 없었다.

 

부모님들의 절실한 기대에 할 수 없이 시험장에 가기로 하였지만 전날 포도주 한 병을 놓고 구성진 섹스폰 연주의 적과 흑의 블루스, Gloomy Sunday를 들으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발이 젖을새라 쓸어주는 식구들의 눈물겨운 정성 속에 치른 시럼이었나 역시 예상대로 낙방하고 말았다.    

 

[이하 다음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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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음할인은 매우 위험한 방법이다

 

 


철수 씨는 퇴직금 등을 모아 2억 원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사업을 잘 하고 있다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자신의 회사에서 생산하는 물품을 납품하고 거래처로부터 받은 약속어음을 할인해 주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월 3부 이자로 3개월 동안 선이자 1800만 원을 공제하고 3개월 후 지급기일에 틀림없이 결제해 준다는 것이었다. 친구 회사는 경영이 잘 되어 날로 번창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철수 씨는 은행이자가 너무 적어 은행에 예금하고 있어야 거의 이자가 없는 상황에서 솔깃하고 친구에게 돈 1억8천200만 원을 빌려 주었다. 그 대가로 약속어음을 2억 원 짜리 1매를 받았다.

 

그런데 지급기일에 은행에 지급제시를 했으나 자금부족으로 어음은 부도가 나고 말았다. 어음을 발행한 회사는 부도가 났고, 곧 이어 친구의 회사도 부도가 났다. 철수 씨는 어음발행인을 상대로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했으나 무혐의처분이 되었다.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회사는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 판결을 받아야 강제집행할 재산을 거의 없었다. 결국 철수 씨는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약속어음을 받고 할인을 해 주었으나 돈을 모두 날리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어음을 받고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 준다. 약속어음은 그야말로 채무의 변제를 약속하는 증서에 불과하다. 자금이 없으면 지급하지 못한다. 그로 인한 책임은 민사책임을 진다. 민사책임은 재산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수표와 달리 어음을 부도낸 것만으로는 처벌이 되지 않는다. 어음을 발행해서 이를 담보로 돈을 빌릴 당시에 그러한 채무를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이 되어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지급의 의사와 능력을 교묘하게 거짓말로 꾸며 검사를 속이기 때문에 사기죄의 법망을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돈을 떼어 먹히고 억울한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약속어음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려면 어음의 결제능력을 철저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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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주식 인수형태 투자의 위험성

 


철수 씨는 영자 씨가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는 좋은 사업을 한다고 해서 솔깃하게 되었다. 영자 씨는 이미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자금이 조금 부족한 데 매출은 아주 자신 있다. 정부 기관에서 특허기술을 높이 평가해서 엄청난 양을 주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철수 씨는 영자 씨가 같은 사교모임의 회원이고 BMW를 타고 다니는 등 재력도 있어 보였고 신용도 있어 보여 3억 원을 투자했다. 영자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의 주식을 2배수로 계산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회사 운영은 어려워졌고, 영자 씨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철수 씨는 회사의 주식만 가지고 있는 상태였고, 사기죄도 성립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런 손해배상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회사 경영 악화로 부도가 난 경우 형사처벌은 매우 어렵다. 회사에 출자한 경우 대표이사 개인은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이 없다.

 

주식회사의 경우에 회사의 경영권은 주주총회의 의결을 통해 과반수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 의해 행사된다. 소액주주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면 회사 내부 사정을 알기도 어렵다.

 

주식회사에 투자하는 형태는 주식을 소유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주식이란 회사의 자산가치를 나타내는 의미가 있지만, 회사 경영이 악화되어 부도가 나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휴지조각이 된다.

 

돈만 대고 기술을 모르거나 직접 경영에 참여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투자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나중에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아무런 배상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사업은 직접 경영에 참여하여 100% 올인을 해야 겨우 성과가 날 가능성이  있게 된다.

 

단순히 자본만 대고 경영에 참여할 사정이 못 되거나 사업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실제 경영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 정 투자하고 싶으면 개인적인 책임을 확실하게 보장 받는 방법으로 회사 대표이사 개인의 보증을 받고 투자하면 된다. 

 

*** 가을사랑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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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바위를 흔들면서

 

 

 

 

토요일 오전 8시경 구기동에 도착해서 등산을 시작했다. 출발 전에 택시에서 내려보니 등산용구를 길에서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등산화가 2만원이다. 전에 동대문시장에서 샀던 등산화를 한 번 신었더니 조금 커서 그런지 내려올 때 발이 불편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등산화를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그냥 올라갈까 하다가 등산화를 보고 하나 샀다. 어떻게 동대문시장 보다 더 싸게 파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아저씨 하는 말, "나는 한 번에 싸게 많이 사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싸게 판다." 

 

호텔 커피를 두 사람이 마시는 비용으로 몇 년을 신을 등산화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백화점에 가지 않고 편하게 등산로 입구에서 사서 즉석에서 운동화와 바꿔 신고 즉시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신던 운동화는 아저씨에게 맡겨놓고 돌아갈 때 찾겠다고 했다. 쾌히 승낙을 받았다.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산오름을 시작했다.

 

최근에 등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등산은 참으로 좋은 레저고 스포츠다. 뿐만 아니라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 건강에도 이처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잘은 못하지만 좋아하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여간 감사한 게 아니다. 평지를 아무리 많이 걸어도 땀은 별로 나지 않는다. 미사리 경정장 뒤 뚝방길을 자주 걸어봐서 안다. 그런데 등산은 30분만 해도 땀이 흠뻑 난다. 그렇게 좋은 것 같다.  

 

등산을 하러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속에 젖어 아기자기한 이야기거리가 생긴다. 생수가 500원이고 등산때 먹고 마실 것을 사다 보면 세상 물정도 알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 전에는 호텔에서 손님을 만나 커피 한잔에 만원 가까이 하고 식사비도 1인당 10만원씩 해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더욱이 카드로 결제를 하고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더욱 무감각해지는 것이었다.

 

특히 기사를 데리고 다니면 더욱 그렇다. 물건을 살 일도 거의 없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등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 직접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얻는 것이 많아졌다.

   

토요일에 다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인파가 많지 않아 좋았다. 그런데 벌써 산에 갔다가 내려오는 부지런한 사람들도 보였다. 구름이 많아 비가 내릴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6월의 날씨라 그런지 땀을 많이 흘렸다. 깔딱고개에 올라가는 코스도 만만치 않았다. 별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가니 힘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참고 올라갔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 아닌가?

 

문수사를 들렀다. 주지 스님은 출타하고 안계시다고 했다. 내가 잘 아는 혜정스님인데 계시면 차나 한잔 할까 했는데 안계시다고 하니 그냥 등산을 계속했다. 절에서 바라다보이는 앞 경치가 너무 좋았다. 대남문으로 해서 비봉까지 갔다가 승가사 쪽으로 내려왔다. 중간 중간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자연이란 참으로 신비하다.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바위가 산 꼭대기 위에 불안정하게 올라가 있을 수 있는지?

 

나는 바위를 흔들어보았다.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바위에 비하면 나는 아주 연약한 존재다. 그러나 나는 바위를 흔들어 본다. 그건 내 의지다. 내 희망이다. 바위가 흔들릴 가능성은 이차적인 문제다.

 

바위는 참으로 묵직한 느낌을 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단순하다. 아무런 꾸밈도 없다. 그저 바위일 뿐이다. 아무도 상대하지 않겠다는 단호함도 엿보인다. 홀로 고고함을 유지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바위는 그래서 본받을 점이 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곧곧하다.

 

대남문에서 비봉까지 가는 코스도 단조로지 않고 아주 좋았다. 오래 전에 한번 그 코스를 가본 기억이 있는데 다시 가보니 더 좋은 것 같았다. 승가사 밑에 약수터가 있었다. 물은 떨어졌고 날씨는 덥고 갈 길은 먼 상태에서 약수터를 만나니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역시 산행에는 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산 밑에 내려오니 음식점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룹으로 술을 마시면서 '위하여'를 외치기도 했다. 조용한 산에서 명상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5시간 가까이 있다가 속세로 내려오니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세속을 떠나 있으면 있을수록 나중에는 도저히 세상에 적응을 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상의 일조차 마음에 들지 않게 되니 말이다. 거대한 바위를 흔들어보는 마음과 뭍사람들의 떠듦에 기분이 상하는 마음은 너무 차이가 있어 보였다. 지나친 무거움과 지나친 가벼움의 대칭이었다.

 

산행을 하면서 울창한 숲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바다에서도 어떤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은 모래알들을 보면서 산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는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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