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감리에 관한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

 

Ⅰ. 글의 첫머리에

변호사로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을 사는 데 법은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법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받기 위해서 법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변호사라고 하면 사기꾼이 조심한다. 법을 아는 사람을 상대로 사기 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어떤 거래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건축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설계감리를 한 다음 설계감리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변호사는 직접 소송을 하면 되지만, 건축사가 직접 소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은 금액 같으면 소송도 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금액이 적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때도 비싼 변호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우리나라 재판은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사건 수가 워낙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재판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재판은 대체로 장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여 건축주가 시공업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과정에서 설계감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해 오는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되지 않는 설계감리비를 받았을 뿐인데, 몇천만원 또는 몇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오면 건축사는 그 덫에 걸려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털면 먼지 나지 않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일단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후에 설계자와 감리자가 잘못한 부분을 문제 삼아 소송을 걸어오면 무과실, 무책임을 증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소송을 해온 원고측에서 피고의 고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은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이상 그 원인에 대해 설계감리자가 해명해야 하는 입장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송의 현장이다.

 

날이 갈수록 변호사 수가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면서 건축분쟁은 증가하고 있다. 건축사는 설계감리와 관련한 법적 분쟁에 어떠한 유형이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에 충분한 연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Ⅱ. 설계감리를 둘러싼 분쟁의 유형

그렇다면 건축사가 설계 및 감리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법적 분쟁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약정한 설계감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다. 계약금은 약정 당시에 받기 때문에 떼어먹히는 경우가 적은데, 중도금이나 잔금의 경우에는 설계나 감리에서 건축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거나, 건축주 측의 경제적인 사정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규모가 큰 경우에는 외주용역비도 적지 않게 들어가는데 설계감리비를 받지 못하면, 외주용역비는 이미 자신의 돈으로 지출한 상태이므로 건축사는 이중 삼중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건축주가 재건축조합인 경우, 부실한 회사인 경우, 종교단체인 경우, 설계계약체결 후 대표자가 변경되거나 해임된 경우에는 후임 집행부가 종전에 체결되어 진행 중인 설계감리계약을 인정하지 않거나 공연한 트집을 잡아 설계감리자를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건축사는 설계감리비 분쟁에 휩쓸리게 된다.

 

설계감리계약 체결 자체를 불분명하게 한 경우도 나중에 설계감리비를 받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건축주 사정으로 인해 공사가 도중에 중단되거나, 아니면 일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된 경우에도 감리비의 정산에 관해 다툼이 생기게 된다.

 

설계감리비 분쟁은 건축사가 건축허가를 대행하기로 하는 때에도 발생한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건축사만 믿고 건축하기로 하고, 건축사에게 건축허가부터 해달라고 위임을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건축허가가 어렵지 않고, 대부분 큰 문제 없이 허가가 나온다.

 

그러나 때로는 기속행위에 해당하는 건축허가도 이런 저런 사유로 허가가 장기간 지연되기도 하고, 행정청에서 허가신청을 반려하거나, 허가거부처분을 하기도 한다. 대규모 건축물이나 특별한 지역 내에서 특별한 용도로 사용할 건축물에 대해서는 국토계획법에 의한 개발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건축허가처분이 재량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완성된 건축물에 중대한 하자가 발생하여 건축주가 시공업자를 상대로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이다. 이때 건축주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시공업자 뿐만 아니라, 설계자와 감리자를 모두 함께 묶어서 공동피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시공업자의 잘못은 쉽게 판명이 날 수 있지만, 감리자와 설계자가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감리자를 상대로, ‘왜 철저하게 감리를 하지 않았느냐? 감리를 제대로 했다는 사실을 서류로 증명하라.’고 따지게 되면 억울하지만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다.

 

설계자의 경우에도 구조계산상의 하자 등을 이유로 철저하게 과오 여부를 따지기 시작하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많은 경우 구조기술사가 건축사가 지정하는 방식으로 구조계산을 한 결과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건축사는 구조기술사와 사이에 분쟁이 생기기도 하지만, 일단 건축사를 상대로 소송이 걸려오기 때문에 나중에 구상권을 구조기술사에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설계감리비는 건축주에게서 받아야 하는데, 만일 건축주가 완공된 건축물을 타인에게 양도하고, 설계감리비를 주지 않고 파산하는 경우에는 건축사는 설계감리비를 받을 곳이 없게 된다.

 

설계감리계약의 해제와 해지, 취소문제 등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 건축주와 건축사 사이의 법률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매우 복잡한 문제가 된다. 도중에 설계감리계약이 중단되거나 해제된 경우, 건축사는 자신이 그동안 한 설계감리비를 얼마나 청구해야 하며, 어떠한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지도 어려운 문제다. 채무자의 재산을 가압류하거나 가처분하는 보전처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Ⅲ. 설계계약과 감리계약의 법적 성질

건축관계자 간의 책임에 관한 내용과 그 범위는 건축법에서 규정한 것 외에는 건축주와 설계자, 건축주와 공사시공자, 건축주와 공사감리자 간의 계약으로 정한다(건축법 제15조 제2항). 국토교통부장관은 계약의 체결에 필요한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여 보급하고 활용하게 하거나, 건축사협회, 건설협회, 전문건설협회 또는 업종별공사업협회로 하여금 표준계약서를 작성하여 보급하고 활용하게 할 수 있다(건축사법 제15조 제3항).

 

설계라 함은, 설계자가 자기 책임 아래 건축물의 건축, 대수선, 용도변경, 리모델링, 건축설비의 설치 또는 공작물의 축조를 위하여, ① 건축물, 건축설비, 공작물 및 공간환경을 조사하고 건축 등을 기획하는 행위, ② 도면, 구조계획서, 공사 설계설명서, 그 밖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공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행위, ③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를 해설 조언하는 행위를 말한다(건축사법 제2조 제3호).

 

설계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는, 도급계약으로 보는 견해와 위임계약으로 보는 견해, 도급계약과 위임계약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혼합계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설계계약의 법적 성질이 문제되는 이유는, 나중에 소송을 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약정한 설계계약의 내용으로 보아 당사자가 어떤 취지로 계약을 체결한 것인지 해석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도급이나 위임에 관한 민법의 규정은 임의규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계약 당사자사이에 특별한 의사표시가 있으면, 그러한 의사표시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만일 당사자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불완전한 경우에는 민법의 도급이나 위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여 이를 보충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설계계약이 도급계약의 성격을 가지는 경우에는, 건축주는 설계자가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673조). 수급인인 설계자는 건축주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 외에는 일의 완성 전에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건축주는 언제든지 설계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민법 제689조 제1항). 건축주는 설계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완성된 목적물의 하자로 인하여 도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민법 제668조본문). 다만, 설계자가 부득이한 사유 없이 건축주에게 불리한 시기에 설계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건축주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민법 제689조 제2항).이러한 경우, 설계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설계계약이 종료되었다면, 설계자는 이미 처리한 사무의 비율에 따른 설계비를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686조 제3항).

 

설계계약 상의 이행청구권은 설계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으로서 민법 제 163조 제3호에서 정한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 설계계약해제로 인한 설계자의 손해배상청구권도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

 

Ⅳ. 설계감리비의 약정은 명확하게 해야 한다.

건축사가 의뢰인으로부터 설계감리를 맡는 경우에는, 상호 간에 건축사가 하여야 할 업무의 내용 및 범위와 의뢰인이 건축사에게 지급하여야 할 설계감리비의 금액 및 지급시기에 관하여 약정하게 된다. 보통은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구두로만 약정하고 돈만 받고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분쟁이 생기면 상호 간에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어떤 사안에서 건축사와 의뢰인은 설계비 잔금 지급에 관해 다음과 같이 약정하였다. 즉, 건축설계비 잔금은 공사착공 시 지급하고, 다만 공사착공이 건축허가일로부터 6개월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허가일로부터 6개월 내에 지급하기로 하였다. 이 사안에서 의뢰인은 건축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건축설계계약서를 자세하게 보면, 설계비 잔금은 공사가 착공되었을 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공사착공이 건축허가일로부터 6개월을 넘기는 경우에는 허가를 받은 날로부터 6개월 이내에 설계비 잔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한 것이다. 따라서 건축주는 건축허가 자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공사에 착공할 수도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설계비 잔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항변하였다.

 

그렇다면, 법원에서는 이와 같은 건축사와 건축주 사이의 각자 다른 주장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하였을까? 위 사안에서 건축사와 의뢰인이 계약체결 당시 계약이나 잔금지급채무의 효력을 공사착공 또는 건축허가의 성부에 의존케 할 의사로 위와 같이 약정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즉 건축설계계약 자체를 건축허가 또는 건축착공이라는 객관적 사실에 100% 의존시키는 조건부 계약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건축주가 건축사에게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맡길 때에는 비록 나중에 건축허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설계비는 지급할 의사로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보았다(대법원 1989. 6. 27. 선고 88다카10579 판결).

 

Ⅴ. 설계대금 기성금 산정은 어떻게 하는가?

갑은 갑 소유의 사업부지를 공동주택, 숙박시설, 업무시설, 문화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의 용도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을과 사이에 을이 개발계획의 작성, 개발계획 및 지구단위계획과 관련한 각종 영향평가도서의 작성, 각종 협의 및 심의도서의 작서, 건축계획 및 인허가 도서의 작성, 이와 관련된 인허가 업무 일체를 수행하고, 갑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

 

그후 갑은 을에게 기성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개발사업의 사업비 조달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보증하게 될 시공사들의 요청에 따라 을과의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병과 새로운 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갑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현재까지 확정되지 않아 증가될 지 감소될 지 알 수 없는 최종 건축허가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기성금을 산정하여야 한다면 최종 건축허가 시까지는 을이 지급받게 될 기성금의 액수를 특정할 수 없게 되어 사업 진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을이 기성금을 청구할 수 없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되므로, 최종 건축허가 면적을 기준으로 기성금을 산정할 수는 없다고 판결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12. 16. 선고 2010가합75469 판결).

 

발주자가 건설회사와 신축공사도급 및 분양위임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설계비부담을 면할 수 있다는 사정을 기초로 설계자와 설계계약을 체결하였는데 그 후 건설회사와의 공사도급계약의 체결이 확정적으로 결렬되었고 건축부지 중 타인소유부분의 건축부지 제공이 불분명한 사정을 설계자가 알게 된 이상 설계자로서는 발주자와의 협의로 설계의 속행 여부를 결정하여야 함에도 설계를 강행한 경우 설계보수 전액을 발주자에게 지급책임을 지우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불합리하므로 계약상의 보수액을 30퍼센트 정도 감액한 조치는 정당하다(대법원 1993. 9. 24. 선고 93다33272 판결).

 

건축주는 설계계약이 건축계획심의만을 받기 위하여 체결되었기 때문에 심의에 필요한 기본설계에 대한 보수만을 지급하면 충분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제반 증거에 비추어 이러한 건축주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은 건축주도 이 사건 설계계약이 정부의 오피스텔건축규제를 피하기 위하여 조기체결된 것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있는 이상 그 계약의 목적은 건축심의뿐만 아니라 건축허가까지를 위한 설계계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그 범위는 건축심의에 필요한 계획설계, 기본설계만에 국한되지 않고 실시설계까지 포함된다고 판단하였다.

 

저작자가 일단 저작물의 공표에 동의하였거나 저작자가 미공표 저작물의 저작재산권을 양도하거나 저작물의 이용 허락을 하여 저작권법 제11조 제2항에 의하여 그 상대방에게 저작물의 공표를 동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상 비록 그 저작물이 완전히 공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동의를 철회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0. 6. 13. 자 99마7466 결정).

 

Ⅵ. 설계자의 손해배상책임

건축사가 설계를 맡아 설계도서를 작성해서 교부하고, 그에 따라 공사가 진행된 경우 나중에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거나, 공사를 완료하기 전에 설계가 잘못된 경우에는 손해를 본 사람이 당연히 건축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건축사가 설계를 한 경우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 및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때가 있다. 건축설계계약은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일 완성된 목적물 또는 완성 전의 성취된 부분에 하자가 있으면, 건축주는 설계자에 대하여 하자의 보수에 갈음하여 또는 하자보수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667조 제2항). 즉, 건축사가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작성하여 제출한 설계도서 상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건축주는 설계자를 상대로 하자를 보수하여 다시 설계도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설계자가 자신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채무이행을 지체하는 경우, 채무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또는 설계자가 불완전한 이행을 한 경우에는 모두 건축주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을 지게 된다. 여기에서 채무불이행이라 함은, 원래 설계자가 건축주와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설계비를 받기고 약정하였기 때문에, 설계자는 당연히 설계계약을 제대로 이행할 계약상의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설계자의 설계계약상의 의무, 즉 채무에 대한 불이행에 대해 채무자인 설계자는 채권자인 건축주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이다. 물론 반대 당사자인 건축주는 설계자에 대해 설계비지급의무, 지급채무를 부담하는 것이고, 그러한 설계비지급채무를 불이행하는 경우에는 똑 같은 방식으로 설계자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이다. 설계계약은 이른바 쌍무계약이기 때문이다.

 

설계도서 작성의무의 불완전이행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의 구체적인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완성된 설계도서가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이나 성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 즉 설계도서에 객관적 하자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② 설계도서가 약정에 의해 구비하여야 할 성질이나 품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 즉 설계도서에 주관적 하자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③ 설계내용을 근거로 한 건축공사 견적액이 당초 예정한 건축공사비를 상당히 초과하는 경우, ④ 건축주의 요구사항이나 지시와 다르게 설계를 한 경우, ⑤ 설계도서의 잘못으로 그 설계도서에 따라 완성된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 등이 있다.

 

설계자의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① 설계가 건축주가 지시한 내용에 반하여 이루어지거나, ② 건축주의명시적인 지시에는 위반하지 않았으나, 완성된 건물 자체 설계의 하자가 존재하는 사실 등이 입증되어야 한다. 건축행위로 인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원인이 설계자의 고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면 설계자는 제3자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지게 된다.

 

건축설계계약이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 설계자의 건축주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은 목적물 인도일로부터 1년간 존속한다(민법 제670조). 설계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민법상 10년 또는 상법상 5년의 소멸시효에 해당한다. 설계자가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은 제3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하고, 설계자의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제척기간 경과로 소멸한다.

 

설계용역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는 공사도급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와 서로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한 독립된 채무이나, 양 채무는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가진 채무로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에 관하여는 일방의 채무가 변제 등으로 소멸하면 타방의 채무도 소멸하는 부진정연대의 관계에 있다.

 

수인이 공동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민법 제760조의 공동불법행위에 있어서 행위자 상호간의 공모는 물론 공동의 인식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객관적으로 그 공동행위가 관련 공동되어 있으면 족하고 그 관련 공동성 있는 행위에 의하여 손해가 발생함으로써 그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는 공동불법행위가 성립한다.

 

불법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위법한 가해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상 불이익, 즉 그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상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므로, 손해액을 산정함에 있어서는 먼저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를 상정하여야 할 것인데, 위법행위가 없었을 경우의 재산상태를 상정함에 있어 고려할 사정들은 위법행위 전후의 여러 정황을 종합한 합리적인 추론에 의하여 인정될 수 있어야 하고, 당사자가 주장하는 사정이 그러한 추론에 의하여 인정되지 않는 경우라면 이를 위법행위가 없었을 경우의 재산상태를 상정하는 데에 참작할 수 없다(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8다37414 판결).

 

Ⅶ. 감리계약에 따른 법적 책임

감리(監理)라 함은 건축주의 위임에 따라 건축공사나 건설공사가 설계도서 기타 관계 서류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를 확인하고, 시공관리 품질관리 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 감독하는 행위를 말한다. 건축사가 건축주로부터 받는 감리비는 구체적으로 공사감리계약에 의해 결정된다. 공사감리계약은 감리대상이 된 공사의 완성 여부, 진척 정도와는 독립된 별도의 용역을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위임계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건축법에 의하면 공사감리자는 공사를 완료한 때에는 감리완료보고서를 작성하여 건축주에게 제출하여야 하고, 건축주가 건축공사를 완료한 후 건축물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공사감리자가 작성한 감리완료보고서를 첨부하여 사용승인을 신청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사감리자의 감리업무는 감리대상 공사가 완료된 후 감리완료보고서를 작성함으로써 더 이상 당해 건축물에 대한 감리를 필요로 하지 아니하게 되어야 완료된다(대법원 1992. 11. 24. 선고 91누12172 판결 참조).

 

감리계약이 도중에 종료된 경우 그 사무에 대한 보수를 정함에 있어서는 기간으로 보수가 정해진 경우에는 감리업무가 실제 수행되어 온 시점에 이르기까지 그 이행기가 도래한 부분에 해당하는 약정 보수금을 청구할 수 있다. 후불의 일시불 보수약정을 하였거나 또는 기간보수를 정한 경우에도 아직 이행기가 도래하지 아니한 부분에 관하여는 감리인에게 귀책사유 없이 감리가 종료한 경우에 한하여 이미 처리한 사무의 비율에 따른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2001. 5. 29. 선고 2000다40001 판결).

 

이 경우 감리사무의 처리비율은 관련 법규상의 감리업무에 관한 규정 내용, 전체 감리기간 중 실제 감리업무가 수행된 기간이 차지하는 비율, 실제 감리업무에 투여된 감리인의 등급별 인원수 및 투여기간, 감리비를 산정한 기준, 업계의 관행 및 감리의 대상이 된 공사의 진척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를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대법원 2000. 8. 22. 선고 2000다19342 판결 등 참조).

 

공사감리자가 공사시공자가 설계도서대로 시공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공사시공자에 대하여 부적절한 지도를 하는 등 감리의무를 위반함으로써 건축물에 하자가 생긴 경우에는 건축주에 대하여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또한 공사감리자가 감리를 잘못하여 건축주 이외의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제3자에 대하여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감리자의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여 건축주가 감리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감리행위가 끝난 때로부터 10년의 기간이 지나면 시효의 완성으로 인해 청구권이 소멸된다. 감리계약이 상법의 적용을 받는 경우에는 5년의 상사시효에 해당한다.

 

건축주 이외의 제3자가 감리자에 대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그 제3자가 감리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의 기간 내에 청구권을 행사하여야 한다. 감리행위가 끝난 시점부터 10년이 지나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제척기간이 경과하기 때문에 행사할 수 없게 된다.

 

Ⅷ. 설계감리자의 손해배상책임

공사가 끝난 후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 건축주는 시공업자뿐 아니라, 감리자와 설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법률적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건축사 A는 건축주 B와 설계감리계약을 체결하면서, 감리비를 포함하여 설계보수액을 정하였다. 건축사는 건축주의 행정적인 절차의 대행뿐만 아니라 공사현장에서 월 5회 이상 출장하여 시공자가 설계대로 시공하는지 여부에 대한 감시, 감독 및 조언을 하고 지적사항을 건축주에게 통지하도록 약정하였다. 아울러 건축사는 착공시부터 준공시까지 착공신고, 기초중간검사, 단열중간검사, 설비중간검사, 공정보고, 감리일지 작성, 허가조건의 이행확인 등의 업무를 시공자와 협의하여 이행하기로 하는 사항도 포함하여 서면으로 약정하였다.

 

공사가 끝나고 확인한 결과 완성된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하자에 대하여 건축주 B는 시공회사 C와 건축사 A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에서는 이 사건 건물에 발생한 하자는 시공회사의 시공상의 과실과 감리자인 건축사 A의 감리상의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건축사 A는 공동불법행위자인 시공회사와 각자 건축주 B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감리를 담당했던 건축사는, 약정상 자신은 공사현장에 상주하면서 실질적으로 감리업무를 수행하는 상주감리자가 아니라, 건물의 설계업무에 부수하여 관청에 제출할 서류의 작성 및 제출행위만을 대행하는 법정감리자에 불과하였으므로, 신의칙상 건축주는 건축사에 대하여 건물의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건축사가 수행한 감리업무의 내용 등 제반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약정에 따라 건축사가 맡기로 한 감리업무는 단순히 감독관청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의 대행뿐만 아니라 공사에 관한 시공지도 및 시공확인, 현황조사, 공정관리, 품질관리, 안전관리 등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공사감리업무도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건축사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서울민사지방법원 2000. 5. 17. 선고 99가합63195 판결).

 

공동불법행위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과실비율이 달라 배상할 손해액의 범위가 달라지는 경우, 적은 손해액을 배상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손해액의 일부를 변제한 경우에는 많은 손해액을 배상할 의무 있는 사람의 채무 중 그 변제금 전액에 해당하는 부분이 소멸하는 것은 물론이나, 많은 손해액을 배상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손해액의 일부를 변제하였다면 그 중 적은 범위의 손해액을 배상할 의무가 있는 사람의 채무는 그 변제금 전액에 해당하는 채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범위의 손해배상 책임만을 부담하는 쪽의 과실비율에 상응하는 부분만큼만 소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5. 7. 14. 선고 94다19600 판결 참조).

 

Ⅸ. 건축설계업체 낙찰자 지위확인소송

재개발조합이나 재건축조합에서 건축설계업체를 선정할 때에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복잡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조합에서는 건축설계업체를 선정할 때 입찰을 하여 선정으로 하고, 그에 따라 조합에서 특정 업체를 선정하고 건축설계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총회에서 의결을 한다. 이때 경쟁업체 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선정되지 못한 업체에서 선정된 업체에 대해 조합에서 선정의결한 것이 무효라는 소송을 거는 경우가 있다.

 

갑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건축설계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을 공고하였다. 조합에서 배포한 입찰지침서에서는, 입찰에 참가한 업체가 홍보활동을 하거나 경쟁업체를 비방하는 등으로 이행각서, 입찰지침서의 내용을 위반할 경우 이 사건 입찰 공고, 입찰지침서, 이행각서의 해당 규정에서 그 위반업체의 입찰을 무효로 하고 있다.

 

병은 홍보전단을 배포하는 등으로 홍보활동을 하고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홍보전단에 경쟁업체인 을을 비방하는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입찰지침서 및 이행각서의 내용을 위반하였다.

 

법원에서는 이 사건 입찰 공고 등에서 정한 규정을 위배한 하자가 입찰절차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침해될 정도로 중대할 뿐만 아니라 병도 이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또는 누가 보더라도 이 사건 결의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이 분명한 경우에 한하여 이 사건 결의가 무효가 된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갑이 병을 이 사건 사업의 건축설계업체로 선정하고 병과 건축설계계약 체결을 승인한 이 사건 결의는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무효라고 인정하였다(청주지방법원 2011. 2. 9. 선고 2010가합5165 판결).

 

Ⅹ. 글을 맺으며

날이 갈수록 건축사 업무와 관련된 법적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건축사는 업무와 관련하여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법대로 한다는 것이다. 종래 업무처리를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

 

설계감리계약서를 체결할 때 여러 가지 상황을 예상하여, 보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특약사항을 기재하는 것이 좋다. 의뢰인과의 모든 업무 관련 연락은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함으로써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증거로 사용하여야 한다. 요새는 많은 사람들이 비밀녹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대화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설계 및 감리업무과정에서 잘못하여 나중에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관련 법령을 숙지하고 충실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법적 분쟁이 발생하면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변호사비용을 아끼려고 나홀로 소송을 하다가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변호사로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을 사는 데 법은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법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받기 위해서는 법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면, 변호사라고 하면 사기꾼이 조심한다. 법을 아는 사람이니까 사기를 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어떤 거래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법률가 아닌 건축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설계감리를 한 다음 제대로 설계감리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변호사는 직접 소송을 하면 되지만, 건축사가 직접 소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은 금액 같으면 소송도 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금액이 적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비싼 변호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우리나라 재판은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그 이유는 사건수가 워낙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재판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재판은 대체로 장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여 건축주가 시공업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과정에서 설계감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해 오는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되지 않는 설계감리비를 받았을 뿐인데, 몇천만원 또는 몇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오면 건축사는 그 덫에 걸려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털면 먼지 나지 않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일단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후에 설계자와 감리자가 잘못한 부분을 문제삼아 소송을 걸어오면 무과실, 무책임을 증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물론 소송을 해온 원고측에서 피고의 고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은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이상 그 원인에 대해 설계감리자가 해명해야 하는 입장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송의 현장이다.

 

날이 갈수록 변호사 수가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면서 건축분쟁은 증가하고 있다. 때문에 건축사는 설계감리업무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어떠한 유형이 있고,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사전에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에 충분히 연구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설계자의 손해배상책임

 

건축사가 설계를 맡아 설계도서를 작성해서 교부하고, 그에 따라 공사가 진행된 경우 나중에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거나, 공사를 완료하기 전에 설계가 잘못된 경우에는 손해를 본 사람이 당연히 건축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건축사가 설계를 한 경우 설계를 의뢰한 건축주 및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때가 있다. 건축설계계약은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만일 완성된 목적물 또는 완성 전의 성취된 부분에 하자가 있으면, 건축주는 설계자에 대하여 하자의 보수에 갈음하여 또는 하자보수와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667조 제2항).

 

즉, 건축사가 설계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작성하여 제출한 설계도서 상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건축주는 설계자를 상대로 하자를 보수하여 다시 설계도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설계자가 자신에게 책임 있는 사유로 채무이행을 지체하는 경우, 채무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 또는 설계자가 불완전한 이행을 한 경우에는 모두 건축주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을 지게 된다.

 

여기에서 채무불이행이라 함은, 원래 설계자가 건축주와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설계비를 받기고 약정하였기 때문에, 설계자는 당연히 설계계약을 제대로 이행할 계약상의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자의 설계계약상의 의무, 즉 채무에 대한 불이행에 대해 채무자인 설계자는 채권자인 건축주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이다. 물론 반대 당사자인 건축주는 설계자에 대해 설계비지급의무, 지급채무를 부담하는 것이고, 그러한 설계비지급채무를 불이행하는 경우에는 똑 같은 방식으로 설계자에 대해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이다. 설계계약은 이른바 쌍무계약이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에는, ① 이행지체, ② 이행불능, ③ 불완전이행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설계도서 작성의무의 불완전이행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의 구체적인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완성된 설계도서가 통상 갖추어야 할 품질이나 성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 즉 설계도서에 객관적 하자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② 설계도서가 약정에 의해 구비하여야 할 성질이나 품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 즉 설계도서에 주관적 하자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③ 설계내용을 근거로 한 건축공사 견적액이 당초 예정한 건축공사비를 상당히 초과하는 경우, ④ 건축주의 요구사항이나 지시와 다르게 설계를 한 경우, ⑤ 설계도서의 잘못으로 그 설계도서에 따라 완성된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 등이 있다.

 

건축행위로 인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그 원인이 설계자의 고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면 설계자는 제3자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을 지게 된다.

 

건축설계계약이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지는 경우, 설계자의 건축주에 대한 하자담보책임은 목적물 인도일로부터 1년간 존속한다(민법 제670조). 설계자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민법상 10년 또는 상법상 5년의 소멸시효에 해당한다.

 

설계자가 제3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은 제3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하고, 설계자의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제척기간 경과로 소멸한다.

 

이러한 설계용역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는 공사도급계약상의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와 서로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한 독립된 채무이나, 양 채무는 동일한 경제적 목적을 가진 채무로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에 관하여는 일방의 채무가 변제 등으로 소멸하면 타방의 채무도 소멸하는 부진정연대의 관계에 있다.

 


설계감리에 관한 분쟁 예방방법

 

변호사로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을 사는 데 법은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법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받기 위해서는 법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변호사라고 하면 사기꾼이 조심한다. 내가 법을 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같다. 그리고 내가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어떤 거래를 할 때에도 법을 아니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런데 법률가 아닌 건축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 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 수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설계감리를 한 다음, 제대로 설계감리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변호사 같으면 직접 소송을 하면 되지만, 건축사는 직접 소송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적은 금액 같으면 대체로 소송도 하지 못하고 포기한다. 금액이 적지 않으면, 하는 수 없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때는 비싼 변호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소송이 끝날 때까지 건축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우리나라 재판은 매우 천천히 진행된다. 그 이유는 법원에서 하고 있는 재판 사건수가 워낙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 재판의 속성이 그렇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번씩 열리는 재판은 대체로 장시간 걸리게 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설계감리를 한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여 건축주가 시공업자를 상대로 소송하는 과정에서 더 나아가 설계감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해 오는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얼마 되지 않는 설계감리비를 받았을 뿐인데, 몇천만원 때로는 몇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오면 건축사는 그 덫에 걸려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털면 먼지 나지 않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일단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후에 소급해서 설계자와 감리자가 잘못한 부분을 트집잡아 소송을 걸어오면 무과실, 무책임을 증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물론 소송을 해온 원고측에서 피고의 고의 과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은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이상 그 원인에 대해 설계감리자가 해명해야 하는 입장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 소송의 현장이다.

 

날이 갈수록 변호사 수가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공유되면서 건축분쟁은 증가하고 있다. 때문에 건축사로서는 설계감리업무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어떠한 유형이 있고,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며, 사전에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평소에 충분히 연구를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계감리 분쟁  (0) 2019.03.09
설계자의 손해배상책임  (0) 2019.03.08
설계비 기성금 산정기준  (0) 2019.02.24
건축설계업체 낙찰자 지위확인소송  (0) 2019.02.24
<설계감리비에 관한 분쟁>  (0) 2019.02.22

갑은 갑 소유의 사업부지를 공동주택, 숙박시설, 업무시설, 문화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의 용도로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을과 사이에 을이 개발계획의 작성, 개발계획 및 지구단위계획과 관련한 각종 영향평가도서의 작성, 각종 협의 및 심의도서의 작서, 건축계획 및 인허가 도서의 작성, 이와 관련된 인허가 업무 일체를 수행하고, 갑은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였다.

 

그후 갑은 을에게 기성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 개발사업의 사업비 조달을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보증하게 될 시공사들의 요청에 따라 을과의 용역계약을 해지하고, 병과 새로인 설계용역 계약을 체결하였다.

 

갑과 을이 이 사건 개발사업의 추진 계획, 진척도, 사업 변동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이 사건 용역계약 제7조에서 기성금 지급의 기준을 정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을이 수행한 실질 업무수행의 진척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이 사건 용역계약 제7조에서 정한 기성금 지급의 기준이 일응의 기준이 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며, 갑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현재까지 확정되지 않아 증가될지 감소될지 알 수 없는 최종 건축허가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기성금을 산정하여야 한다면 최종 건축허가시까지는 을이 지급받게 될 기성금의 액수를 특정할 수 없게 되어 사업 진행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을이 기성금을 청구할 수 없게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되므로, 최종 건축허가 면적을 기준으로 기성금을 산정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12. 16. 선고 2010가합75469 판결).

 

 

건축설계업체 낙찰자 지위확인소송

 

갑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건축설계업체선정을 위한 입찰을 공고하였다. 재개발조합은 공고에서 입찰 또는 선정에 관련된 세부사항은 현장설명회에서 배부하는 입찰지침서에 의한다고 정하였다. 설계업체인 을과 병은 갑의 조합사무실에서 개최된 현장설명회에 참석하여 갑으로부터 건축설계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지침서를 교부받았다. 을과 병은 갑에게 이 사건 입찰 공고 및 입찰지침서 등에서 제출하도록 요구된 입찰참여신청서, 이행각서 등을 제출하였다.

 

이 사건 입찰에 참가한 업체가 홍보활동을 하거나 경쟁업체를 비방하는 등으로 이행각서, 입찰지침서의 내용을 위반할 경우 이 사건 입찰 공고, 입찰지침서, 이행각서의 해당 규정에서 그 위반업체의 입찰을 무효로 하고 있다.

 

그런데 병은 홍보전단을 배포하는 등으로 홍보활동을 하고 조합원들에게 배포한 홍보전단에 경쟁업체인 을을 비방하는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입찰지침서 및 이행각서의 내용을 위반하였다. 다만 이 사건 결의가 입찰지침서 및 이행각서를 위반한 입찰 업체를 이 사건 사업의 건축설계업체로 선정하고 그 업체와의 건축설계계약 체결을 승인하였더라도, 이 사건 입찰 공고 등에서 정한 규정을 위배한 하자가 입찰절차의 공공성과 공정성이 현저히 침해될 정도로 중대할 뿐만 아니라 정림건축 등도 이러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또는 누가 보더라도 이 사건 결의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행위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이 분명한 경우에 한하여 이 사건 결의가 무효가 된다고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갑이 병을 이 사건 사업의 건축설계업체로 선정하고 병과 건축설계계약 체결을 승인한 이 사건 결의는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하여 무효라고 할 것이다(청주지방법원 2011. 2. 9. 선고 2010가합5165 판결).

 

판결 주문은, ‘갑의 OOOOOOOO일 자 임시총회 결의 중 종합건축사사무소 병을 건축설계업체로 선정한 결의 및 위 회사들과의 건축설계계약 체결을 승인한 결의는 각 무효임을 확인한다.’로 선고되었다.

 

<설계감리비에 관한 분쟁>

 

건축사업무를 하면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애써 일을 하고 설계비와 감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규모가 큰 경우에는 외주용역비도 적지 않게 들어가는데 설계감리비를 받지 못하면, 건축사는 외주용역비는 이미 자신의 돈으로 지출한 상태이므로 이중 삼중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설계감리비 분쟁은 건축사가 건축허가를 대행하기로 하는 때에도 시작한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건축사만 믿고 건축하기로 하고, 건축사에게 건축허가부터 해달라고 위임을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건축허가가 어렵지 않고, 대부분 큰 문제 없이 허가가 나온다.

 

그러나 때로는 기속행위에 해당하는 건축허가도 이런 저런 사유로 허가가 장기간 지연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행정청에서 허가신청을 반려하거나, 허가거부처분을 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건축물이나 특별한 지역 내에서의 특별한 용도로 사용할 건축물에 대해서는 국토계획법에 의한 개발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는 건축허가처분이 재량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여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건축사가 설계계약을 체결할 때, 너무 자신 있다고 큰소리를 친 경우에는 건축주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건축주가 재건축조합인 경우, 부실한 법인인 경우, 종교단체인 경우에는 설계계약체결 후 건축주 내부에서 대표자가 변경되거나 해임된 경우에는 후임 집행부가 종전에 체결되어 진행 중인 설계감리계약을 부정하거나, 설계감리자를 교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건축사는 설계감리비 분쟁에 휩쓸리게 된다.

 

또한 설계감리계약 체결 자체를 불분명하게 한 경우도 나중에 설계감리비를 받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건축주의 사정으로 인해 공사가 도중에 중단되거나, 아니면 일시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된 경우에도 감리비의 정산에 관해 다툼이 생기게 된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완성된 건축물에 중대한 하자가 발생하여 건축주가 시공업자를 상대로 하자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이다. 이때 건축주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시공업자 뿐만 아니라, 설계자와 감리자를 모두 함께 피고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시공업자의 잘못은 쉽게 판명이 날 수 있지만, 감리자와 설계자가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감리자는 ‘왜 철저하게 감리를 하지 않았느냐? 감리를 제대로 했다는 사실을 서류로 증명하라.’고 따지게 되면 억울하지만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설계자의 경우에도 구조계산상의 하자 등을 이유로 철저하게 과오 여부를 따지기 시작하면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많은 경우 구조기술사가 건축사가 지정하는 방식으로 구조계산을 한 결과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건축사는 구조기술사와 사이에 분쟁이 생기기도 하지만, 일단 건축사를 상대로 소송이 걸려오기 때문에 나중에 구상권을 구조기술사에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설계감리비는 건축주에게서 받아야 하는데, 만일 건축주가 완공된 건축물을 타인에게 양도하고, 설계감리비를 주지 않고 파산하는 경우에는 건축사는 설계감리비를 받을 곳이 없게 된다.

 

설계감리계약의 해제와 해지, 취소문제 등도 간간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 건축주와 건축사 사이의 법률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매우 복잡한 문제가 된다.

 

도중에 설계감리계약이 중단되거나 해제된 경우, 건축사는 자신이 그동안 한 설계감리비를 얼마나 청구해야 하며, 어떠한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해야 돈을 받을 수 있는지도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채무자의 재산을 가압류하거나 가처분하는 보전처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경우의 효력

 

근로계약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우 처분문서인 근로계약서의 문언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는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경우 근로계약기간이 끝나면 그 근로관계는 사용자의 해고 등 별도의 조처를 기다릴 것 없이 당연히 종료함이 원칙이다.

 

다만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경우에도 예컨대 단기의 근로계약이 장기간에 걸쳐서 반복하여 갱신됨으로써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 등 계약서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기간을 정한 목적과 채용 당시 계속근로의사 등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근무기간의 장단 및 갱신 횟수, 동종의 근로계약 체결방식에 관한 관행 그리고 근로자보호법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계약서의 문언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볼 것이다.

 

이 경우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 계약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이다(대법원 2007. 9. 7. 선고 2005두16901 판결).

 



땅을 사면서 건물을 신축하려고 했던 매수인

 

갑은 을과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매수인 을은 그 토지 상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한 목적에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지급하였다. 을은 매매계엑을 체결한 후, 그 토지 상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하여 설계비 일부와 신축공사비 중 공사계약금을 지급하였다.

 

이런 상태에서 토지매매계약이 해제되었다. 매수인 을은 매도인 갑에 대하여 토지 취득 목적을 매도인이 계약 체결 당시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으로서 매도인은 매수인이 제3자에게 지출한 설계비와 공사계약금을 배상하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사안에서 토지 매도인은 매수인이 토지를 취득하는 목적은 알고 있었지만, 더 나아가 매수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하기 전에 벌써 토지 상에 건축공사를 하기 위해서 설계사무소와 설계계약을 체결하고 설계비 일부를 계약금으로 지급하였다는 사실과 공사업자와 신축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공사계약금을 지급하였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고 항변하였다.

 

대법원에서는 어떤 판단을 하였을까? 부동산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계약해제와 관련하여 부담하는 손해배상에 관한 판결이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토지매도인은 소유권이전의무의 이행기까지 최소한 매수인이 설계계약 또는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그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6. 2. 13. 선고 95다47619 판결).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매매대금을 완불하지 않은 토지의 매수인이 그 토지 상에 건물을 신축하기 위하여 설계비 또는 공사계약금을 지출하였다가 계약이 해제됨으로 말미암아 이를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입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는 이례적인 사정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설시하였다.

 

그러면서, ‘설사 토지의 매도인이 매수인의 취득 목적을 알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

 

이 사안을 보면, 토지의 매매에 있어서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유의하여야 할 점이 있다. 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자신이 이 토지를 사게 되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건축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만일 자신의 의도대로 매수하려는 토지에 건축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취지를 기재하고, 이를 조건부로 계약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것을 불분명하게 하고, 그냥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매매로 인한 토지 소유권도 넘겨받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비도 주고, 공사비도 일부 주고 나서, 나중에 매매계약이 해제되었으니까 매도인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매도인 역시 특정 건축이 목적이고, 만일 그러한 건축이 불가능하거나 추진되지 않으면 매수인이 계약을 해제하갰다는 의사표시를 하게 되면 그러한 모든 조건을 상세하게 계약서에 써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실에서 법적 분쟁은 쌍방간에 적당히 계약하고, 특히 서면으로 명확하게 해놓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사회생활하면서 유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과 싸우고 소송하느라고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변호사 좋은 일만 시켜준다.

 


공사중지가처분결정에 관한 이론과 실무

 

Ⅰ. 글의 첫머리에

우리 사회에는 도로, 항만, 철도, 공항 건설 등 대형건설공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층 빌딩부터 아파트, 단독주택에 이르기까지 건축공사도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건설이나 건축공사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인근 토지나 주변 사람들에게 공사기간 동안 분진이나 소음, 안전 상의 위해 등 피해를 크건 작든 간에 줄 소지가 있다. 이러한 경우 건축분쟁이 생기게 된다.

 

피해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도록 행정청이나 사법기관에 공사중지처분을 청구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건축허가를 내준 허가관청의 입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막대한 예산과 비용을 들여 이미 설계를 마치고, 허가까지 받아 착공한 공사를 도중에 중단시키기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법원에 공사중지처분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되고, 공사가 계속 진행되면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어 공사중지가처분신청까지 하게 된다. 법원에서 공사중지가처분결정을 하게 되면, 그 시점부터 공사는 진행할 수 없게 된다.

 

허가청이나 법원에서 공사중지명령을 하거나 공사중지가처분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객관적으로 현재 진행중인 공사로 인하여 어떠한 피해가 이미 발생하였는가, 그리고 향후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가에 관한 증거가 필요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공사중지에 관한 법원의 판결을 중심으로 어떠한 경우에 공사중지결정을 하였고, 어떠한 경우에는 공사중지결정을 하지 않았거나, 공사중지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취소되었는지 등에 관해 알아보기로 한다.

 

Ⅱ. 공사중지에 대한 법적 근거

건축공사에 대한 중지조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건축법과 주택법에 공사에 대한 중지명령을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사업주체 및 공동주택의 입주자ㆍ사용자ㆍ관리주체ㆍ입주자대표회의나 그 구성원 또는 리모델링주택조합이 주택법 또는 주택법에 따른 명령이나 처분을 위반한 경우에는 공사의 중지, 원상복구 또는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주택법 제94조). 이러한 공사중지 등의 명령을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주택법 제104조 제13호).

 

공사감리자도 일정한 경우 건축공사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것은 공사감리자의 권한이자 의무에 해당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감리자의 입장에서 공사과정에서 위법사항을 발견하고 묵인하거나 방치하면 책임을 지게 된다.

 

공사감리자는 공사감리를 할 때 건축법과 건축법에 따른 명령이나 처분, 그 밖의 관계 법령에 위반된 사항을 발견하거나 공사시공자가 설계도서대로 공사를 하지 아니하면 이를 건축주에게 알린 후 공사시공자에게 시정하거나 재시공하도록 요청하여야 하며, 공사시공자가 시정이나 재시공 요청에 따르지 아니하면 서면으로 그 건축공사를 중지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사중지를 요청받은 공사시공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즉시 공사를 중지하여야 한다(건축법 제25조 제3항).

 

공사감리자는 제3항에 따라 공사시공자가 시정이나 재시공 요청을 받은 후 이에 따르지 아니하거나 공사중지 요청을 받고도 공사를 계속하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허가권자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건축법 제25조 제4항).

 

건축허가에 관한 허가권자는 공사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허가권자는 대지나 건축물이 건축법 또는 건축법에 따른 명령이나 처분에 위반되면 이 법에 따른 허가 또는 승인을 취소하거나 그 건축물의 건축주ㆍ공사시공자ㆍ현장관리인ㆍ소유자ㆍ관리자 또는 점유자에게 공사의 중지를 명하거나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건축물의 철거ㆍ개축ㆍ증축ㆍ수선ㆍ용도변경ㆍ사용금지ㆍ사용제한, 그 밖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건축법 제79조 제1항).

 

허가권자는 제11조, 제14조, 제41조와 제79조제1항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할 때, 허가권자의 공사중지명령을 받고도 불응하여 공사를 강행하는 경우 로서 행정대집행법 제3조제1항과 제2항에 따른 절차에 의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곤란한 때에는 해당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대집행할 수 있다. (건축법 제85조 제1항).

 

제25조제3항을 위반하여 공사감리자로부터 시정 요청이나 재시공 요청을 받고 이에 따르지 아니하거나 공사 중지의 요청을 받고도 공사를 계속한 공사시공자에 대하여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건축법 제110조).

 

Ⅲ. 일조권침해를 원인으로 하는 공사중지처분

기존의 건물이 있는 토지 인접지에서 높은 고층 건물을 짓게 되면 일조권침해가 문제된다. 이때 피해자 입장에서는 공사중지를 요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조권이 문제된다고 해서 무조건 공사를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 공사중지가 가능한지 실무상 기준을 따져보아야 한다.

 

일조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위법한 것으로 평가되어 그 방해사유의 제거 내지 예방으로 공사금지를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우에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일조권침해를 이유로 인접한 토지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공사금지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일까? 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은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일조침해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수인할 정도를 넘어서는지의 여부는 피해의 정도, 피해이익의 성질 및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 가해행위의 태양, 가해행위의 공공성, 가해방지 및 피해 회피의 가능성, 공법적 규제의 위반 여부, 지역성, 토지 이용의 선후관계, 교섭경과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일조침해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 자체의 금지를 구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 행사 자체를 전면적으로 제한하게 되는 점에 비추어 위와 같이 수인한도를 넘는지 여부에 대하여 더욱 엄격히 심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법원도 인정하고 있다.

 

아파트 신축으로 일조피해를 입게 되는 아파트가 동향이어서 이미 일조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인 점, 일조침해를 이유로 공사금지를 구하는 경우에는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보다 수인한도를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하는 점 등에 비추어 연속일조시간이 30분 미만이고 총 일조시간이 1시간 미만인 세대만이 수인한도를 넘는 것으로 보아 그 구분소유자가 건축공사의 금지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한 사례가 있다(부산지법 2009. 8. 28. 자 2009카합1295 결정).

 

토지에 관하여 저당권을 취득함과 아울러 그 저당권의 담보가치를 확보하기 위하여 지상권을 취득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해 지상권은 저당권이 실행될 때까지 제3자가 용익권을 취득하거나 목적 토지의 담보가치를 하락시키는 침해행위를 하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저당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확보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제3자가 비록 토지소유자로부터 신축중인 지상 건물에 관한 건축주 명의를 변경받았다 하더라도, 그 지상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원이 없는 한 지상권자로서는 제3자에 대하여 목적 토지 위에 건물을 축조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토지 위에 건물을 신축중인 토지소유자가 토지에 관한 근저당권 및 지상권설정등기를 경료한 후 제3자에게 위 건물에 대한 건축주 명의를 변경하여 준 경우, 제3자가 지상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원이 없는 한 지상권자는 제3자에 대하여 목적 토지 위에 건물을 축조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대법원 2004. 3. 29. 자 2003마1753 결정).

 

Ⅳ.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숙박업건물공사중지처분

유치원 인가에 위법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유만으로 유치원 인가가 무효로 될 정도로 하자가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고 유치원 인가가 취소되지도 아니한 이상, 교육법 제81조 소정의 학교에 해당하는 그 유치원에 관하여 학교보건법 제5조 및 학교보건법시행령 제3조에 기하여 이루어진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의 설정공고는 여전히 그 효력을 가진다.

 

유치원 출입문으로부터 학교보건법시행령 제3조 소정의 학교환경위생절대정화구역인 50m 이내에 위치하여 신축 공사중인 숙박업 건물은 학교보건법 제6조 제1항 제11호에 의하여 정화구역 안에서 절대적으로 설치하여서는 아니되는 시설이다.

 

법원은, 학교보건법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보면 유치원의 인가에 위법사유가 있고 또한 원고들의 숙박업 건물 신축공사가 중지되는 경우 원고들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것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유치원 인가를 받고 교육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유치원으로부터 50m 거리 안의 학교환경위생절대정화구역 내에 학교보건법이 건전한 교육환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시설로서 그 설치를 금지하고 있는 숙박업 건물의 존치를 허용하여서는 아니된다 할 것이므로, 그와 같은 금지시설의 방지조치로서 학교환경위생절대정화구역 내에 위치한 원고들의 숙박업 건물 신축공사의 중지를 명한 처분은 재량권을 일탈 또는 남용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Ⅴ. 공사중지명령이 적법하다고 인정한 경우

주차장 용지에서 공작물축조신고를 하여 신고필증을 받고 주차장용 건축물의 부속시설로서 옥외 골프연습장을 위한 철탑을 설치하여 현재 90% 이상 완공된 상태에서 행정청이 도시계획 행정상의 공익을 위한 공사중지명령을 한 경우,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한다거나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 아니라고 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3두9770 판결).

 

피고가 원고들의 이 사건 주차전용 건축물에 대한 건축허가 및 설계변경으로 인한 변경허가의 신청에 대하여 도시계획법 등 관계 법령의 적법 여부를 검토하여 이를 허가해주고, 이 사건 철탑에 대한 원고들의 공작물 축조신고에 대하여 신고필증을 발부해 준 것만으로는 이 사건 토지에 옥외 골프연습장을 위한 이 사건 철탑을 설치할 수 있다는 공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원고들이 위 건축허가 등에 따라 이 사건 주차전용 건축물을 건축하고 이 사건 철탑을 설치하여 현재 90% 이상 완공된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처분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도시계획 행정상의 공익이 원고들이 입게 되는 불이익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이 사건 처분이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한다거나 재량권의 한계를 일탈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어느 지역주택조합에 대해 교육지원청에서 시청에 주택건설사업계획승인 조건인 ‘학교용지 기부채납 및 도시관리계획 결정이후 실제 공사착수미이행’을 이유로 공사중지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시에서 조합에 공사중지명령을 내리자, 조합에서는 도 행정심판위원회에 ‘주택건설공사 공사중지명령 집행정지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도 행정심판위원회에서는 <피신청인인 시가 신청인에 대해 한 공사중지명령은 동 처분에 대한 행정심판의 본안사건의 재결서가 신청인에게 송달될 때 까지 이를 정지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환경권에 관한 헌법 제35조의 규정이 개개의 국민에게 직접으로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법상의 권리로서의 환경권이 인정되려면 그에 관한 명문의 법률규정이 있거나 관계법령의 규정취지 및 조리에 비추어 권리의 주체, 대상, 내용, 행사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될 수 있어야 한다.

 

인접 대지 위에 건축중인 아파트가 24층까지 완공되는 경우, 대학교 구내의 첨단과학관에서의 교육 및 연구 활동에 커다란 지장이 초래되고 첨단과학관 옥상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 등의 본래의 기능 및 활용성이 극도로 저하되며 대학교로서의 경관·조망이 훼손되고 조용하고 쾌적한 교육환경이 저해되며 소음의 증가 등으로 교육 및 연구 활동이 방해받게 된다면, 그 부지 및 건물을 교육 및 연구시설로서 활용하는 것을 방해받게 되는 대학교측으로서는 그 방해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수인할 정도를 넘어선다고 인정되는 한 그것이 민법 제217조 제1항 소정의 매연, 열기체, 액체, 음향, 진동 기타 이에 유사한 것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떠나 그 소유권에 기하여 그 방해의 제거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1995. 9. 15. 선고 95다23378 판결).

 

이 경우 그 침해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수인할 정도를 넘어서는지 여부는 피해의 성질 및 정도, 피해이익의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 가해행위의 태양, 가해행위의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 방지조치 또는 손해회피의 가능성, 공법적 규제 및 인·허가 관계, 지역성, 토지이용의 선후 관계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Ⅵ. 공사중지가처분의 필요성과 허용범위

가처분에는 채무자의 적극적 행위를 금지하는 가처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축공사로 인한 인근 건물에 대한 위해발생이나 일조권침해 등을 이유로 공사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이 있다. 이러한 가처분은 성질상 임시의 지위를 구하는 가처분에 해당한다.

 

공사금지가처분은 단순한 부작위를 명하는 것으로서 가처분의 내용을 채무자에게 고지함으로써 족하고, 별도의 집행이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채무자가 이러한 공사금지가처분에 위반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하는 경우에 집행방법이 문제된다.

 

토지의 소유자가 충분한 예방공사를 하지 아니한 채 건물의 건축을 위한 심굴굴착공사를 함으로써 인접대지의 일부 침하와 건물 균열등의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공사의 대부분이 지상건물의 축조이어서 더 이상의 심굴굴착공사의 필요성이 없다고 보여지고 침하와 균열이 더이상 확대된다고 볼사정이 없다면 토지심굴굴착금지청구권과 소유물방해예방 또는 방해제거청구권에 기한 공사중지가처분을 허용하여서는 아니된다(대법원 1981. 3. 10. 선고 80다2832 판결).

 

신청인이 이 사건 공사중지 가처분의 피보전권리로서 들고 있는 것은, 인접지 및 그 지상건물의 소유자인 신청인의 토지심굴 굴착금지 청구권과 소유물 방해제거 또는 소유물 방해예방청구권임이다.

 

이러한 권리를 피보전권리로 하는 가처분신청의 상대방은 소유권의 내용의 실현을 방해하는 사정을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지위에 있는 자이거나, 이러한 방해를 할 염려가 있는 자라야 할 것이다.

 

신청인은 신청인 소유의 토지의 침하 및 건물의 균열등과 그러한 위험이 생기게 된 원인은 피신청인이 그 인접대지에 건물을 건축하기 위하여 토지를 심굴함에 있어서 충분한 방어공사를 하지 아니한 채 굴착공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후 건축공사를 계속함에 있어서도 인접하고 있는 신청인 소유의 토지와 건물에 대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데에 있다는 점을 이 사건 가처분신청의 이유로 하고 있다.

 

한편 위 건축공사는 건축주인 피신청인과 수급인 사이에 도급인인 피신청인이 제시하는 설계서 및 시방서 대로하고, 수급인은 항상 도급인인 피신청인의 감독관및 감독원의 지시에 따라 공사를 하며, 시공상 도면 및 시방서에 불분명한 점이 있으면, 도급인의 지시에 따라 시공하도록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Ⅶ. 공사중지가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이 이루어졌고, 이를 인용하는 가처분결정이 발령되어 채무자에게 송달되었는데, 그 후 채무자가 본안소송의 제소기간 경과를 이유로 가처분취소를 구한 사안에서, 위 가처분결정은 부작위를 명하는 것으로서 채무자에게 결정 내용이 고지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고, 달리 채무자가 가처분결정 무렵 부작위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는 한 효력발생 시점에 실질적으로 집행된 것과 동일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어서 그때부터 본안소송의 제소기간이 진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가처분이의절차에서 법원의 심리대상이 되는 것은 가처분신청의 당부로서 그 변론종결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가처분신청이 이유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가처분결정을 유지하게 된다(대법원 2006. 5. 26. 선고 2004다62596 판결).

 

가처분으로 인하여 채무자가 입는 손해가 지나치게 크거나 채권자의 피보전권리가 금전적 보상만으로도 종국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은 채무자의 신청에 따라 담보를 제공하게 하고, 가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민사집행법 제307조).

 

공사금지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피신청인이 가처분 이후에 신청인에 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설계를 변경하고 가처분의 대상이 된 지역의 지하굴착시에는 폭약으로 발파하지 아니하고 팽창력에 의하여 바위를 갈라지게 하는 무진동 파쇄제를 사용하여 굴착하기로 계획하고 있고, 신청인 소유의 건물 자체는 지하층이 지하의 암반 위에 기초되어 있는 한편 피신청인이 건축하고자 하는 건물은 지하 6층 지상 18층의 오피스텔로서 50%가 이미 분양되어 있으며, 가처분결정의 대상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지하굴착공사가 거의 완료되어 있다면 가처분결정이 취소되어 공사가 속행될 경우 신청인 소유의 건물이 입게 될 추가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으리라고 보여지나 가처분결정이 유지될 경우 피신청인은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는 점을 인정할 수 있어 위와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신청인에게 “특별사정”이 있다고 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1992. 4. 14. 선고 91다31210 판결).

 

가처분취소사유로서 민사소송법 제720조가 규정하는 특별사정은 피보전권리가 금전적 보상에 의하여 그 종국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정 또는 채무자가 가처분에 의하여 통상 입는 손해보다 휠씬 큰 손해를 입게 될 사정 중 어느 하나가 존재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중 후자의 사정이 있는지 여부는 가처분의 종류, 내용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채무자가 입을 손해가 가처분 당시 예상된 것보다 훨씬 클 염려가 있어 가처분을 유지하는 것이 채무자에게 가혹하고 공평의 이념에 반하는지 여부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가처분결정이 취소되어 공사가 속행될 경우, 신청인 소유의 건물이 입게 될 추가피해가 그다지 크지 않으리라고 보여짐에 비하여, 가처분결정이 유지될 경우 피신청인은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할 수 없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결국 피신청인은 가처분에 의하여 통상 입을 손해보다 휠씬 큰 손해를 입게 될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된다는 판단이다.

 

피신청인이 공사를 게속함으로 인하여 신청인이 입게 될 손해는 금전보상이 어렵기 때문에 공사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별사정은 신청인의 피보전권리가 금전적 보상에 의하여 그 종국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정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피신청인이 이 사건 가처분에 의하여 통상 입는 손해보다 휠씬 큰 손해를 입게 될 사정이 있음을 이유로 하는것이므로 신청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

 

신청인은 이 사건 공사가 각종 행정법규를 위반하여 시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나, 공사에 행정법규위반의 점이 있다 하더라도 피신청인에게 이 사건 가처분의 취소를 구할 특별사정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공사로 인하여 인접한 토지 상에 있는 건물에 균열이 발생하여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향후 공사를 계속하는 경우 건물의 균열이 확대 심화됨으로써 인근 건축물의 소유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초래될 우려가 있는 경우, 공사로 인해 소음 진동 분진 등의 사생활침해가 인근 주민들의 수인한도를 넘는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사가 완공되었을 때 일조권침해가 명백한 경우에는 공사금지가처분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Ⅷ. 건축공사중지명령의 취소

행정청이 침해적 행정처분을 함에 있어서 당사자에게 행정절차법이 정한 바에 따라 사전통지를 하거나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지 아니하였다면 사전통지를 하지 않거나 의견제출의 기회를 주지 아니하여도 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한 그 처분은 위법하여 취소를 면할 수 없다( 대법원 2000. 11. 14. 선고 99두5870 판결).

 

사업계획승인에 따른 주거지역 내 종합체육시설 공사 중 그 위법을 이유로 한 공사중지처분이 재량권의 일탈 또는 남용에 해당한다고 한 사례가 있다.

 

종합체육시설업사업승인 및 주택건설사업승인에 따른 주거지역 내 종합체육시설 공사 시행중 그 위법을 이유로 행해진 공사중지처분에 대하여, 그 위법이 행정관청의 종합체육시설업사업승인에 기인한 것으로 행정관청에게도 그 책임이 있는 점, 사업주가 그 건축물에 설치하려 한 각 체육시설이 모두 개별적으로는 그 설치가 가능한 신고체육시설에 해당하여 그 위법 상태는 행정관청이 그 종합체육시설업사업승인을 그 승인의 근거가 된 체육시설의설치이용에관한법률에 따라 취소하여 동일인이 아닌 수인이 위 각 체육시설을 각각 신고체육시설업으로 운영하도록 하거나 그 각 체육시설 중 수영장 등 일부 시설을 다른 용도로 변경케 함으로써 제거될 수 있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사중지처분의 해제조건으로 그 사업주에 대하여 그 건축물 자체에 대한 건축축소계획의견서의 제출을 요구하였다면 그것은 법위반 상태에 비추어 과잉된 처분인 점, 지하 2층 지상 6층의 그 건축물의 건축공사가 지상 3층까지의 골조공사만 시공된 상태에서 그 공사중지처분이 행하여짐으로써 그 사업주가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점 등에 비추어, 그 공사중지처분에 의하여 얻게 되는 공익을 고려하더라도 그 처분은 비교교량의 원칙에 위배되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하였거나 이를 남용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법 1997. 4. 10. 선고 96구29511 판결:확정).

 

도시재개발법상 토지의 사용수익권이 제한되고 장차 재개발조합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가 있는 재개발구역 안의 토지 소유자가 관리처분계획의 인가·고시 이후 재개발사업구역 안의 토지의 소유자라는 이유로 토지의 인도를 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토지의 인도를 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여 재개발조합에 대하여 그 토지에서 재개발사업에 따른 공사의 중지를 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1999. 11. 11. 자 99마3102 결정).

 

Ⅷ. 공사중지명령해제신청거부처분취소

원심은, ① 행정청은 원고에 대하여 토석채취허가를 하면서 ‘토석채취허가지 진입도로와 관련 우회도로 개설 등은 인근 주민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민원발생에 따른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 후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조건을 부가한 사실, ② 이후 피고는 산지관리법 제31조 제8호(그 밖의 허가조건을 위반한 경우)에 따라 원고에 대하여, ‘우회도로 개설 건에 대하여 현재까지 주민과의 협의사항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라는 중지사유와 ‘우회도로 개설 등 주민과의 협의사항이 이행 완료될 때까지’라는 중지기간을 명시하여 이 사건 허가에 따른 공사를 중지하라는 내용의 공사중지명령을 한 사실, ③ 이에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공사중지명령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제1심에서 패소판결을 선고받은 뒤 2012. 5. 31. 항소를 취하하여 그 판결이 확정된 사실, ④ 그 후 원고의 이 사건 공사중지명령의 해제신청에 대하여, 피고가 거부 통지를 한 사실 등을 인정하였다.

 

행정청이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행한 공사중지명령의 상대방이 그 명령의 취소를 구한 소송에서 패소함으로써 그 명령이 적법한 것으로 이미 확정되었다면, 이후 이러한 공사중지명령의 상대방은 그 명령의 해제신청을 거부한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그 명령의 적법성을 다툴 수 없다. 그와 같은 공사중지명령에 대하여 그 명령의 상대방이 해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명령의 내용 자체로 또는 그 성질상으로 명령 이후에 그 원인사유가 해소되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사건 공사중지명령에 대한 원고의 해제신청이 그 명령 이후에 그 원인사유가 해소되었다는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그 해제신청을 거부한 이 사건 거부처분을 그 처분사유가 없다거나 재량권을 남용한 처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대법원 2014. 11. 27. 선고 2014두37665 판결).

 

원심은, ○○빌딩의 높이를 15층으로 제한한 지방법원 판결이 확정된 이상 19층으로 건축하도록 한 ○○빌딩에 대한 당초의 건축허가는 실효되었으므로 ○○빌딩의 높이를 15층으로 한 설계변경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피고 및 피고보조참가인의 주장에 대하여, 위 판결은 원고와 참가인 사이에만 그 효력이 미치는 것이므로, 원고가 15층 이상으로 건물을 축조할 경우 참가인이 위 판결의 효력에 기하여 민사적인 수단으로 그 공사를 저지할 수 있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당초의 건축허가가 위 판결에 의하여 변경되거나 실효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배척하였다. 대법원은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정당하다고 인정하였다(대법원 2005. 4. 14. 선고 2003두7590 판결).

 

행정청이 행한 공사중지명령의 상대방은 그 명령 이후에 그 원인사유가 소멸하였음을 들어 행정청에게 공사중지명령의 철회를 요구할 수 있는 조리상의 신청권이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그 신청을 받은 행정청으로서는 상당한 기간 내에 그 신청을 인용하는 적극적 처분을 하거나 각하 또는 기각하는 등의 소극적 처분을 하여야 할 법률상의 응답의무가 있다.

 

원고는 이 사건 공사중지명령을 받은 이후 이 사건 도로가 더 이상 주차장의 주진출입로로 이용되지 않도록 함과 아울러, 흙막이 공법도 참가인의 동의가 필요 없는 스트러트 공법으로 설계변경함으로써 이 사건 공사중지명령의 원인사유가 소멸하였음을 이유로 공사중지명령의 철회를 신청하였고, 피고가 사실심 변론종결시까지 이에 대하여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바, 피고의 위와 같은 부작위는 그 자체로 위법하다고 할 것이다.

 

Ⅸ. 글을 맺으며

실무상 공사중지문제는 자주 일어나고 있다. 어떤 공사로 인해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상대방이 진행하는 공사를 중지하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때 일차적으로는 허가청에 진정서를 제출하거나 고발장을 내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민원에 의해 허가청에서 공사중지명령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행정청으로서는 이런 명령을 내리는 것이 무척 망설여질 것이다.

 

허가청에서 공사중지명령을 하지 않으면, 민원인은 법원에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법원에서 가처분사건으로 심리를 거쳐 공사중지여부가 결정된다. 법원에서도 공사를 계속함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게 되는 손해가 심대하거나 사후에 보상이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공사중지가처분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공사를 중지시켜서는 건축주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공사중지가처분결정을 하지 않는다. 만일 공사중지가처분결정을 한 경우에도 건축주가 이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게 되면, 사정변경이 있는지 여부 등을 가려서 가처분을 취소하기도 한다. 공사중지문제는 양 당사자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이므로 허가청이나 법원에서도 매우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정할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