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 아토피성 피부질환이 생겨 고생을 한다. 약국에도 열심히 다니고, 피부과 전문의에게도
찾아갔다.
처음에는 병원이나 약국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가려워 견디기
어려우니까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된 것이다.
병이 나도, 의사나 약사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고, 더 나아가 약이나 진료의 효능을 별로
믿지 않아 그랬다. 뿐만 아니라, 병을 빨리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한 어리석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원래 피부치료제는 독하다고 한다. 그리고 잘 모르는 의사에게 가면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고 시간만 끌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는 의사를 통해 부탁을 하고 찾아갔다.
몹시 친절하게 해 주었지만, 치료과정에서 그 의사도 신뢰를 잃었다. 사람이 신뢰를 쌓기는
어려워도 잃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고 신뢰의 어려움이다.
결국 M은 종합병원인 어느 병원에 찾아갔다. 1차 진료를 받았다는 종이쪽지 한 장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니 안됐다.
그런데 병원에 갔다 와서는 더 풀이 죽었다. 젊은 여자 의사는 먼저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M은 조직검사는 안 받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약 처방전만 써주고 더 이상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도도한 태도로 빨리
나가라는 취지였다고 한다.
안 보아도 나는 그 장면이 눈에 선했다.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대개 그렇다.
자신의 의견에 문외한이 받아 들이지 않고, 불필요한 질문을 자꾸 반복하고 있으면 짜증을 내고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M은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 받아가지고 왔다. 약은 먹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연고를 발라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사의 태도에 대해 불평을 했다. 나 보고 사무실에서 손님들을 만나면 아주 잘 대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몸이 아파 찾아간 환자에게, 그리고 사건 때문에 골치 아파서 찾아간 사건의뢰인에게 얼마나
잘 해주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바빠서 그랬거나, 아니면 환자가 잘 모르면서 자기 고집을 부리거나, 하찮은 질문을 반복하므로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그러나 M은 그렇지 않았다.
교만하고, 불성실하고, 비인간적이라는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그런 욕을 먹고 있는지 되돌아 보아야겠다.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 주어야겠다.
더군다나 무료봉사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를 받고 그들의 일을 해주는 입장에서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해주고, 친절하게 대하며,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당연한 직업상의 의무고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출근을 하려니 마음이 몹시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