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59)

 

절대로 걱정하지 마. 그 여자가 그렇게는 절대로 못해. 내가 책임질 게.”

사장님은 사모님과 별거하고 있는 거예요? 저한테는 지금까지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잖아요?”

 

그 애기 해줄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장사를 했어. 군대를 다녀와서 열심히 이 장사, 저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있었어. 그러다가 35살에 결혼을 했어. 나 보다 5살이 어린 여자였어. 그 여자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셔서 혼자 살고 있다가 나와 만나서 결혼식을 올리고 살았어.”

 

근데 왜 별거하게 되었어요?”

그 여자와 3년 동안 같이 장사를 하면서 재미 있게 살았어. 그런데 그 여자는 도박에 빠져 가정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여자였어. 아이도 가질 생각도 하지 않고, 결혼 전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도박판을 다녔는데, 나와 결혼하고 3년은 도박을 하지 않고 견뎠는데, 내가 한번 술집 여자와 바람을 핀 것을 가지고 트집삼아 매일 나에게 잔소리를 하더니, 혼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옛날 하던 도박판에 다시 빠졌어.”

 

그래서요? 도박 때문에 별거한 거예요?”
나는 그 여자가 불쌍해서 도박을 못하게 하고, 끝까지 같이 살려고 했어. 그런데 도박판이라는 게 원래 그래.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야. 그 여자는 내가 벌어놓은 돈을 몰래 훔쳐다가 도박판에 가서 모두 잃고, 그것도 부족해서 도박 현장에서 돈을 빌려 잃어, 노름빚을 지게 된 거야. 처음에는 내 돈을 몰래 가져다가 갚었지만, 그게 잘 안 되니까, 돈을 빌려준 남자들에게 몸으로 떼우고 있었던 거야. 그런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 그것도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나중에 알고 보니까 무려 7명이나 되는 남자들에게 빚을 지고, 그 남자들은 완전히 내 와이프를 번갈아가면서 관계를 하고, 데리고 놀았던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 남자들을 혼내주셨나요?”

내가 만나보니까, 완전히 문신하고 깡패같은 놈들이 대부분이야. 감방도 들락날락하는 놈들이라 도저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와이프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어. 다시 한번 마음 잡고 잘 살아보자고 서로 울면서 다짐을 했어.”

 

그 다음에 어떻게 됐어요? 사모님은 마음을 잡았나요?”

서울 가서 3개월은 마음 잡고 살았어. 그런데 그 건달 중 젊은 놈 하나가 서울까지 찾아와서 다시 만나고 있었어?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놈은 도박채권자도 아닌데, 그냥 와이프하고 속정이 들었던 거래.”

 

여기까지 이야기하던 최 사장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옛날 생각을 하다보니 열이 나고,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세상에 그 여자처럼 나쁜 인간은 없을 거야. 내가 서울에서 장사를 하고, 살림집은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월세로 다세대주택을 얻어놓고 있었어. 그런데 지방에서 와이프와 붙어먹다가 서울까지 따라와서 연애를 하던 그 젊은 놈은 나와 같은 동네에 월세방을 얻어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월세방에 내 와이프를 들락날락하도록 하면서 같이 연애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와이프는 내가 가게로 출근하면 곧 바로 그 애인집에 가서 놀고 있었던 거야.”

 

정말 나쁜 사람들이네요.”

그래도 나는 이혼할 생각을 못했어. 그 여자가 인간적으로는 불쌍했고, 또 이혼하면 이혼남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웠어.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때 즉시 이혼했어야했어.”

 

최 사장은 도박이 문제가 아니라, 젊은 남자 애인 때문에 심한 배신감을 느껴 그 여자를 집에서 내쫓았다. 그 여자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집을 나가라고 하자. 그 젊은 애인과 같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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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8)

 

엘리스는 최순철 사장과 조용한 찻집으로 갔다. 엘리스는 심한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최 사장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사장님! 너무 실망했어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 사장님이 이끄는대로 따라갔던 것이고, 그동안 사장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었어요. 그런데 제가 언제 사장님이 싫다고 하는데, 사장님을 귀찮게 하고, 생활비를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여자분이 제 동영상과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건 언제 찍은 거예요?”


최 사장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미안해. 엘리스! 모든 건 내 잘못이야. 엘리스가 잘못한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리고 엘리스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아니, 사장님! 지금 그 여자가 제게 내용증명을 보냈고, 일주일 이내에 전세금과 커피숍을 다 내놓지 않으면, 동영상을 저희 부모님댁으로 보내고, 인터넷에 올린다고 하는데 어떻게 걱정하지 않아요?”

 

최 사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지금 엘리스에게 난리를 치고 있는 문정옥이라는 여자는 지금부터 3년 전에 만나서 친하게 지냈어. 이혼하고 혼자 사는 여자야. 그러니까 내가 54살일 때 만났는데, 당시 그 여자는 48살이었어. 내가 와이프와 별거하면서 혼자 살고 있으니까,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해서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면서 가깝게 지냈어. 처음부터 우리는 선을 긋고 행동했어. 같이 만나서 잠자리도 했지만, 서로는 어디까지 친구로서 지내고,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기로 했어. 서로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고, 서로 싫어지면 아무 때고 그만 만나고, 서로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기로 하면서 만났어.”

 

그랬는데, 왜 저에게 와서 부인이라고 행세를 하지요?”

나는 엘리스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그 여자와는 더 이상 잠자리를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도 가끔 만나서 식사나 하고 술이나 마셨어. 그래서 나는 그 여자도 나에게 잠자리할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로 짐작하고 용인하는 거로 생각했어. 그런데 6개월 전에 갑자기 엘리스의 뒷조사를 해서 나에게 난리를 치는 거야. 나는 깜짝 놀랐어. 도대체 이 여자가 왜 이러나 싶었지?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그냥 울면서 나에게 배신을 당해서 죽겠다는 거야. 평소에 우울증세가 있어 나는 걱정이 됐어. 그래서 당분간 엘리스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그 여자가 엘리스 문제를 자신이 완전히 끊어놓겠다고 나선 거야. 나는 그 여자가 너무 흥분한 상태였고, 잘못하면 회사에 와서 망신을 주고, 엘리스에게도 해가 갈까 봐, 그 여자가 하는 대로 우선 내버려뒀다가 나중에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던 거야.”

 

그럼 저는 어떻게 하면 돼요? 지금 저도 변호사를 선임해 놓았어요. 돈을 5백만원이나 줬어요. 그리고 그 여자가 곧 인터넷에 동영상을 유포한다는 거예요.”

 

그 동영상은 엘리스 것이 아냐. 엘리스 얼굴도 나오지 않아. 그건 내 친구가 자기 애인 것을 찍어놓을 것을 나에게 보내주어 심심해서 가끔 보면서 삭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그 여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옮겨놓고, 그걸 엘리스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그 여자가 과도 깎는 칼을 들고 내 스마트폰을 뒤져 보고 그 동영상이 엘리스 거냐고 묻길래 아니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는 거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던 거야. 그 동영상에는 남자 얼굴도 안 나오고 여자 얼굴도 나오지 않아. 그냥 섹스하는 동영상과 여자 하체만 찍혀 있는 사진이야.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과학적 분석을 하면 엘리스 게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질 거야.”

 

과학적으로 밝혀지는 건 나중 문제고, 제 이름과 같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 저는 끝장나고 매장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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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7)

 

강 변호사는 먼저 통지서를 상세하게 작성했다. ‘엘리스와 최순철 사장은 1년 동안 내연의 관계를 유지했다. 최 사장은 엘리스와 부첩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아파트 전세금을 준 것이고, 커피숍을 차려준 것이다. 이것은 나이 차이가 서른 살이나 나는 남자가 어린 여자를 데리고 놀기 위해서 돈을 준 것으로서 법률상 증여에 해당한다. 그리고 설사 증여사실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도, 돈을 준 이유와 동기가 부첩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불법이기 때문에 민법상 불법원인급여(不法原因給與)에 해당한다. 따라서 최순철 사장은 엘리스로부터 위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 그리고 최순철 사장의 부인은 더군다나 위 돈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엘리스는 부인을 만난 이후에 부인과 약속한 대로 최순철 사장에게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금과 커피숍은 돌려줄 수 없다.’는 취지였다.

 

강 변호사는 이런 통지서를 엘리스에게 보내 검토해달라고 했다. 엘리스는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끝부분에 ‘전세금과 커피숍은 돌려줄 수 없다’는 내용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래서 아주 잘 되었다고 했다.

 

강 변호사는 이런 통지서를 최 사장 부인 주소로 발송했다. 그랬더니 일주일이 지난 다음, 최 사장의 부인 문정옥이 찾아왔다.

 

정옥의 말은, ‘나는 최 사장의 부인이 아니고, 3년 동안 최 사장과 깊게 사귀고 있는 여자다. 그런데 최 사장이 엘리스를 만나고 나서 엘리스에 푹 빠져 자신에게 소홀하기 때문에, 엘리스를 떼어놓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최 사장에게 엘리스와 헤어지라고 했더니, 자신은 이제 엘리스가 싫어져서 더 이상 안 만나려고 하는데, 엘리스가 계속 만나자고 하면서 생활비를 달라고 해서 골치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사장은 엘리스에게 준 전세금과 커피숍을 정옥 자신에게 양도하면서 알아서 받아가지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옥은 그러면서 변호사 선임해서 그 돈을 떼어먹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자신에게 비장의 무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최 사장이 당신과 연애하면서 찍어놓은 나체 사진과 섹스 동영상이 나에게 있어. 만일 전세금과 커피숍을 넘겨주지 않으면 이것을 당신 부모님에게 보내고, 인터넷에도 공개할 거야.”

 

엘리스는 기가 막혔다. 그 나이 먹은 영감이 언제 섹스 동영상과 나체 사진을 찍어놓았다는 말인가? 엘리스로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사진을 찍는 것을 보지도 못했고,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엘리스는 정옥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알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최 사장님은 그런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요. 아마 다른 여자 사진일 거예요. 잘 확인해 보세요.”

“아무튼 시간을 딱 일주일 줄테니까. 그때까지 어떻게 할 것인지 확실하게 답해줘. 그렇지 않으면 너 죽고, 나 죽을 테니까. 알았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계집애가 어떻게 간도 크게 2억원도 넘는 돈을 날로 먹으려고 하니?”

 

엘리스는 강 변호사를 만났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만일 최 사장측에서 그런 사진이나 동영상을 몰래 찍었다면 그 자체로 형사처벌돼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런 성적 수치심을 자아내는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면 그건 구속까지 될 수 있어요. 절대로 그런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들이 법으로는 돌려받지 못하니까, 괜히 공갈을 치는 거예요.”

 

이 상황에서 엘리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최 사장 회사를 찾아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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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6)

 

그런 일이 있은 후 엘리스는 연애를 하던 최순철 사장과 연락을 하지 않고 5개월이 지났다. 그러면서 카페를 열심히 운영했다. 대학교 앞에 있는 ‘8시의 햇살카페는 독특한 이미지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자리를 잡았다.

 

서양화를 전공한 미모의 젊은 사장이 운영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 대학의 젊은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졸업한 음대생과 미대생들이 단골로 다니기 시작했다. 손님이 많아지자, 엘리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대학교 미대 졸업생에 대해서는 100% 무료로 해줬다. 다만, 졸업증명서를 사전에 확인해야 무료회원으로 등록을 해주었다.

 

그러자 공짜로 와서 커피를 마신 미대 졸업생들이 양심이 있어 가만 있을 수 없다고 해서 하나 둘씩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엘리스에게 기부했다. 그래서 카페는 많은 그림들이 걸리기 시작했고, 마치 화랑처럼 꾸며졌다.

 

더군다나 카페가 있는 대학교 출신 미대생들의 그림만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었다. 과거를 잊고 다시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 엘리스에게 어느 날 내용증명이 왔다.

 

지난 번 찾아왔던 최순철 사장의 부인이라는 여자가 보낸 통지서였다. ‘자신은 최순철 사장의 부인이다.

 

지난 번 엘리스가 자신에게 더 이상 최순철을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주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위반하여 엘리스가 최순철을 만났기 때문에 각서대로 아파트 전세금과 커피숍을 최순철의 부인인 자신에게 돌려달라.’는 취지였다.

 

엘리스는 기가 막혔다. 자신은 그 부인에게 각서를 써준 다음, 지금까지 최순철에게 전화를 한 일도 없고, 더군다나 만난 사실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그때 마침 최순철과 사이도 소원해졌고, 나이 먹은 영감을 만나서 잠자리를 해주는 것도 싫어졌지만, 엘리스가 먼저 그만 만나자고 하면 최 사장이 자신이 해준 아파트 전세나 카페를 모도 내놓으라고 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인데, 그 부인이 나타나서 앞으로만 만나지 않으면 된다고 해서 행이라고 생각하고 지냈던 것이다.

 

그후 최 사장으로부터 일체 연락이 없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부인으로부터 이런 내용증명을 받게 된 것이었다. 엘리스는 급한 마음에 무작정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강석흥 변호사는 젊은 사람이었다. 서른 다섯이었다. 엘리스의 설명을 듣더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다 막아주겠다고 했다.

 

엘리스는 생애 처음으로 만난 변호사였다. 그전까지는 TV에서나 변호사를 보았지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변호사가 손님으로 온 적은 없었다.

 

그동안 오래 다녔던 교회에도 변호사가 신자로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너무 신뢰가 갔기 때문에 엘리스는 500만원의 착수금을 주고 사건을 강 변호사에게 맡겼다.

 

변호사를 선임은 했지만, 법을 전혀 모르는 엘리스로서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잘못하면 아파트도 뺏기고, 카페도 뺏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엘리스가 먼저 최 사장에게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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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5)

 

아버지는 엘리스를 낳고 어머니와 장시간 논의를 한 끝에 이름을 홍알새로 짓기로 했다. ‘새롭게 알기’ ‘새로운 지식이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알기 새로운 것에서 알자와 새자를 따왔다. 어머니는 ,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에서 알새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엘리스를 낳고 6개월이 지나도록 호적신고를 하지 않고 있던 아버지는 어느 날 식당에서 친구들을 만나 술안주로 홍어를 먹고 있었다.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너무 귀엽고 예쁜 딸을 낳았다고 자랑을 하니까 친구들이 호적에 올렸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아직 못 올렸다고 하니까 호적에 올리기 전에는 딸 자랑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아버지 딸이라는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술을 마시다 말고 곧 바로 구청으로 달려가서 호적신고를 했다. 퇴근시간 6시를 5분 남겨놓고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렇게 엘리스의 이름을 알새로 정했던 것인데, 아버지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호적신고를 하다가 홍어알로 잘못 신고를 했다.

 

1년 후에 호적에 어알로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아버지는 알새로 고쳐달라고 사정도 하고, 항의도 했지만 아버지가 자필로 신고서에 어알이라고 써놓은 증거가 보존되어 있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영어로 표기를 하고 있다가 나중에 미국 시민권자가 되려고 마음 먹고 생각해 낸 이름이 엘리스였다.

 

그것도 영어로 Alice Hong이라고 했던 것인데, 아버지는 끝내 알리세를 고집했다. 아버지는 영어가 서툴러서 Alice알리세지 어떻게 엘리스라고 읽을 수 있느냐고 화를 냈다.

 

어머니도 옆에서 딸 편을 들다가 하마터면 몇 대 맞고 집에서 쫓겨날 뻔했다 그래서 엘리스 홍은 20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 뜻대로 알리세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독자적으로 엘리스 홍이라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엘리스는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많은 돈을 들여서 마침내 미술대학교 들어갔다. 서양화를 전공한 엘리스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림밖에 몰랐다. 그 어떤 남자들이 와서 꼬셔도 넘어가지 않았다.

 

피카소를 꿈꾸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파리로 유학을 가려고 했다. 아버지도 엘리스의 뜻대로 모든 뒷바라지를 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엘리스가 대학교 졸업반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집안은 그래서 엉망이 되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는 전무라는 사람이 다 횡령과 배임을 해서 파산지경으로 만들었다. 엘리스는 그래서 근근히 대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꿈을 접었다.

 

하는 수 없이 커피를 배워서 커피숍에 취직을 했다. 그러다가 돈이 많은 사장을 만났다. 26살 때 만난 사장은 무려 56살이었다. 사장과 1년 동안 연애를 했는데, 사장은 엘리스에게 작은 아파트도 전세로 얻어주고, 커피숍까지 차려주었다.

 

그렇게 1년 반을 편하게 지냈는데, 그 사장의 부인이 이런 사실을 알고, 찾아왔다. 부인은 엘리스에게 조용히 떨어져 나가라고 했다. 엘리스도 동의했다. 엘리스는 그 부인이 전세금도 빼앗고 커피숍도 못하게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건 모두 엘리스가 그동안 고생한 대가라고 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그 부인은 엘리스가 사장의 아이를 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것같았다. 엘리스는 그렇지 않아도 사장이 시간이 가면서 싫어졌고, 같은 또래의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잘 됐다고 생각했다.

 

엘리스는 부인이 요구하는 대로 앞으로는 절대로 사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만일 한번이라도 더 만나면 전세금과 커피숍을 부인에게 돌려주겠다고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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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4)

 

앨리스 홍은 카페 영업을 시작할 때면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가 부른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틀었다. 엘리스는 그리스 메조소프라노 성악가의 중성적인 음성을 좋아했다.

 

<카테리니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속에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가고 당신은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 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이 노래는 그리스의 민주화의 상징인 음악가, 미키스 레오도라키스가 만들었다. 카테리나는 그리스 민병대의 최종집결지다. 11월에 8시 기차를 타고 사랑하는 남자가 떠나고, 매년 11월이 되면 기차역에서 옛사랑을 아파하는 여자가 부르는 노래다.

 

엘리스 홍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난 황생선을 잊지 못했다. 너무 가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엘리스는 자신이 생선을 보호해주지 못해 끝내 한국을 떠난 생선에게 대한 죄책감 때문에 살 수 없었다.

 

특히 사랑했던 남자의 이름 그대로 ‘생선(生鮮)’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엘리스가 보살펴주지 않고 물을 주지 않으면 미국처럼 사막이 많은 나라에서는 곧 말라죽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생선을 보호해주었어야 했다. 생선은 너무 착한 남자였다. 그래서 오늘도 엘리스는 떠난 생선을 생각하면서 아그네스 발차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엘리스가 운영하는 카페, ‘8시의 햇살’이름도 생선이 지어준 것이었다. 생선은 엘리스가 처음 카페를 오픈한다고 할 때 카페 이름에 ‘8’이라는 숫자를 넣자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노래 제목에서 따온 것 같다. 카페 이름을 가지고 고민하던 중 생선은 나중에는 아예 ‘8시 기차’로 하자고 했으나, 엘리스가 반대했다.

 

그건 너무 노골적이고, 더군다나 기차로 하면 카페가 아니라, 기차표를 판매하는 곳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햇살로 정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엘리스의 카페에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 노래가 주제였고 테마였다.

 

카페 영업시간에 최소한 이 노래는 8번 이상 흘러나왔다. 그래서 이 카페 단골 학생들은 대부분 이 노래의 가사를 알게 되었다. 벽에도 노래 가사를 적어놓았고, 아그네스 발차의 사진과 미키스 레오도라키스의 사진도 크게 여러 군데 붙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스는 그러나 이 노래를 부른 다른 가수들, 특히 한국 가수의 경우에는 절대로 이름이나 사진을 올리지 않았다.

 

이 노래는 그리스말로 된 원곡 그대로 그리스 성악가가 불러야 제맛이지, 한국이나 베트남, 콩고 성악가가 서툰 그리스말이나 자국어로 번역해서 부르면 오히려 노래 자체를 망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엘리스는 모든 팝송도 마찬가지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탐 존스, 비틀즈, 마이클 잭슨 등이 부른 노래도 꼭 영어로 된 노래만 들었다.

 

다만 어떤 여학생은 이 카페에서 애인과 데이트를 많이 했는데, 이 노래 때문인지 애인이 8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군대에 갔는데, 군에 들어가서 3개월만에 군화를 거꾸로 바꿔 신고 여학생을 배신했다고 하면서, 카페에서 재수 없는 노래를 계속 틀어서 자신의 첫사랑을 빼앗겼다면서 카페 문을 닫을 수 없느냐는 항의를 해왔다. 엘리스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문제를 제기하는 여학생의 꼬라지를 보니까, 저렇게 매력 없고 재수 없게 생긴 여자를 데이트한 남자가 기차를 타기 전에 버리지 않은 것도 남자가 결단력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았고, 특히 저런 여자가 엘리스의 카페에 단골로 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분 나빴다. 카페의 명예를 훼손시킨 악의적인 처사였다.

 

하지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항의나 이의신청, 헛소문에도 불구하고 엘리스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를 계속 틀었고, 단골 손님들은 점점 늘어났다.

 

번호표를 뽑아서 대기하는 학생수가 100명이 넘어서 지구대에서 사고가 발생할까봐 경찰관이 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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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3)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외제 명품 옷에 샤넬 백을 들고 있었다. 타고 온 자동차도 최하가 BMW였다. 어떤 사람은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커다란 밴에 운전기사를 데리고 왔다.

 

그 밴에서는 연예인들이 옷도 갈아입고, 장거리를 갈 때에는 누워서 자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아주 진한 검정색 밴이었다.

 

그리고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를 소개하면 소개비로 그 사람의 투자금액의 10%를 영업수당으로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아버지는 흥분했다. 그까짓 호프집을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생활비밖에 나오지 않는다.

 

더 나이 먹기 전에 돈을 벌어야 노후에 고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선을 비롯한 자녀들 결혼자금도 만들어야 한다. 최소한 결혼할 때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줘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돈 3천만원의 현금을 몽땅 투자했다. 그랬더니 매달 말, 놀랍게도 3백만원의 수익금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도 해서 2억원을 대출받아 추가로 투자했다. 그리고 자신의 형제 및 사촌까지 투자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10%의 소개비까지 받아먹었다.

 

매달 들어오는 수익금 때문에 호프집 영업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워낙 수익금이 커서 호프집에서 버는 돈을 껌값이었다. 돈도 흥청망청 썼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둘이서 유럽 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났는데, 어느 날부터 들어와야 할 수익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놀라서 물어보았더니 사업이 약간 꼬였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끌더니 그 회사는 마침내 부도를 내고 사장부터 간부들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버지는 채권단에 가입해서 열심히 쫓아다녔지만, 받아낼 돈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해 아파트는 경매로 날라갔다. 호프집 보증금도 차압당했다.

 

아버지 형제 및 사촌들도 아버지 때문에 모두 거지가 되었다면서 아버지를 원수로 생각했다.

 

맨 처음 아버지를 끌고 들어간 보험회사 직원은 초반에 투자했다가 모두 다 빼낸 상태였다. 그리고 다른 새로운 다단계회사에 출근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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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2)

 

생선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대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하던 호프집이 그럭저럭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뒷바라지로 음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음대에 들어가려면 렛슨도 받아야 하고,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는 늘 불평을 했다. ‘여자도 아닌 남자 녀석이 음악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취직이 불가능할 텐데, 나중에 장가도 갈 수 없을 것 아니냐?’

 

더군다나 실용음악도 아니고, 성악을 하면 돈을 벌 수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방탄소년 같은 아이돌이 될 가능성도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생선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놀다가 음대에 간다고 하니까 한심하게 생각은 했지만, 하는 수 없이 대학에 보내주었다.

 

생선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기타를 들고 다니고, 드럼 같은 것을 배웠다. 이 때문에 생선을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음대에 들어가서 성악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원래 커다란 소질이 없어서인지 별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4학년이 될 때까지 다수의 여학생들과 연애를 했다.

 

그런데 4학년이 되면서 아버지가 다단계에 빠져 파산을 했다. 식당을 오래 해서 자리를 잡고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보험회사 직원이 끌고 들어가서 다단계회사에 투자를 하게 되었다.

 

그 회사는 달러나 유로화 같은 외화를 쌀 때 사거, 비쌀 때 파는 방법으로 단기차익을 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투자하면 한 달에 10%나 되는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투자설명회에도 참석했다.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도 사무실이 으리으리했다. 회장이 있고, 사장이 따로 있었다. 외환전문가라고 하는 외국인도 있었다. 회사 벽에는 주로 영어로 많은 것을 써놓고 있었다.

 

설명회 때 몇 사람이 나와서 자신들이 이 회사에 투자해서 단기간에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성공담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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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1)

 

지수는 음악대학에 들어가서 1학년 말에 같은 음대 졸업반 선배를 만나 데이트를 했다. 성악을 전공하는 황생선은 지수를 무척 사랑했다.

 

생선과 지수는 거의 매일 만났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매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생선은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지수는 생선을 만나 음악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두 사람은 깊은 관계에 들어갔으나, 이상하게 생선은 별로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관계는 했지만, 생선은 체력도 약했고, 어떤 면에서는 여성스러운 면이 많았다. 지수도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고 생선을 좋아했다. 생선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년 동안 놀고 있을 때도 지수는 계속해서 만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일년 정도 사랑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생선은 지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수는 미칠 것 같았다. 여기 저기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지만 생선의 근황을 알 수는 없었다.

 

생선은 원래 부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다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학교 앞에서 원룸을 얻어 혼자 생활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한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돈이 없어서 지수를 만날 때도 모든 데이트 비용을 지수가 냈다. 지수로서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둘이서 모텔을 갈 때도 모텔 비용을 지수가 내야하는 것이었다. ]

 

체격이 크고 인물이 훤한 생선은 가만 있고, 체격이 아담한 여학생이 모텔비가 얼마냐고 묻고 현금으로 계산을 하니, 모텔 주인은 지수가 남자를 밝혀서 자기 돈을 써가면서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텔 주인에게. ‘지금 이 사람은 취업준비중에 있어서 그래요.’라고 설명하기도 그랬다.

 

생선은 뻔뻔하게 빨리 모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프로트 주변을 예의 살펴보고 그곳에 있는 생수나 커피를 챙겨서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었다. 그래도 지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선과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러다가 생선은 갑자기 연락을 끊고 한 달 후에 미국에서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지수에게! 그동안 같이 지낸 시간, 너무 행복했어. 우리 사랑을 평생 잊지 않을 거야. 갑자기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따라왔어. 미안해. 사전에 연락을 하지 못한 거. 이해해 줘.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을 거야.”

 

발신인도 황생선이 아니라, Mr. Fish Yellow로 영어로 쓰여있었고, 발신지 주소는 번지는 없고 Street까지만 적혀 있었다. 하늘 나라에서 온 편지 같았다.

 

지수는 울음도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그렇다고 자신이 생선에게 이용 당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몸속에 들어박힌 그 놈의 정 때문에 괴로웠다. 그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생선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칸초네로 알려진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즐겨불렀다.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n'aria serena doppo na tempesta! Pe' ll'aria fresca pare già na festa...>

 

정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1년 동안 만나 모든 것을 공유했던 두 사람 사이에 남겨진 것은 정이었다. 지수는 그 정을 떼어내기 위해 1년을 고생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가슴도 많이 아팠다. 잊을 만하면, 오 솔레 미오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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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50)

 

조장은 매우 답답했다. 현옥과 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려보냈는데 그 후부터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내도 일체 반응이 없었다. 며칠 지난 다음 현옥의 원룸에 가보았다. 문은 잠겨있었다. 조장은 생각했다.

 

분명 다른 남자가 생겼구나! 나와 관계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오랫동안 하자고 안하는 걸 보면 확실한 거야.’

 

현옥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져서 조장은 지수를 만났다. 한 동안 지수와도 냉각기를 거쳤다. 그것은 지수가 너무 매달리고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조장이 지수에게 푹 빠졌다. 지수의 사이즈가 작고 아담해서 좋았다. 그리고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어린 소녀같았다. 그리고 지수는 플롯을 전공했다. 중학교 때부터 플롯을 해서 연주 솜씨가 대단했다.

 

전국 콩쿠르 대회까지 출전했다고 한다. 물론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승은 한번도 못했지만, 그래도 지방에서 전국 대회에까지 나갔으니 사람들은 지수를 플롯의 여왕’, ‘플롯계의 김연아라고 극찬했다.

 

조장은 여러 번 지수와 단 둘이서 지수의 연주를 들었다. 첫 번째 연주는 조장이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서 풀밭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들었다. 강변이 보이는 호젓한 곳에서 아베마리아를 들었다. 조장은 황홀했다. 그런 신비스러운 장면은 생전 처음이었다.

 

너무 감동이 되어서 눈물까지 흘렸다. 지수는 체격은 작았지만, 가슴이 풍만했다. 눈을 감고 있다가 눈을 떴을 때 조장의 눈에는 지수의 가슴이 클로즈업되었다. 눈이 부셨다.

 

한 시간을 그렇게 보낸 다음 두 사람은 차를 탔다. 해는 지고 어두워졌다. 조장은 숲 속으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음악을 틀었다. 그러면서 지수의 옷을 벗겼다. 지수는 아무 저항이 없었다. 차 뒷좌석에서 지수를 소유했다.

 

플롯 연주 때문에 조장은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욕정을 콘트롤할 수가 없었다. 그 후 몇 달 동안 조장은 지수에게 푹 빠졌다. 기존에 만나던 모든 여자들을 끊었다.

 

그런데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데, 지수는 머리가 좋지 않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추었는데, 공부를 아주 싫어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산수(算數)’수학(數學)’을 구별하지 못했다.

 

롯데리아에 가서도 만원짜리를 내고 햄버거 셋트메뉴가 6,850원이면 잔돈 계산을 하지 못했다. 조장은 즉시 암산을 할 수 있었다. 3,150원인데, 지수는 꼭 4,250원으로 계산해서 아르바이트생이 1.100원을 적게 준다고 컴플레인을 했다.

 

그러면 조장이 즉시 지수를 깨우쳐주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때마다 조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했다.

 

전자계산기가 나왔으니 망정이지, 만일 옛날 주판기 시대에 지수가 태어났더라면 지수는 시장을 가거나 햄버거가게에 가더라도 주판을 두 개는 들고다녀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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