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해설 (1)

 

 

가을사랑

 

 

Ⅰ. 개요

 

 

말라기(Malachi)는 선지자 말라기가 B.C 430년경 예루살렘으로 추정되는 유대 땅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라기라는 선지자는 경전으로 인정된 거룩한 문서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던 대회당의 회원이었다고 한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이다. 말라기는 이 책에서 형식적 신앙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사람들의 부흥을 간곡히 바라고 있다. 말라기서는 ① 사랑의 확증, ② 제사장들의 죄, ③ 백성들의 죄, ④ 심판의 경고, ⑤ 주의 날의 약속 등에 대한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말라기서가 씌여진 시대적 배경은 포로 귀환시대이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40년부터 41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말라기(ykia;l]m'; 나의 사자;messenger)는 히브리 정경의 마지막 책이다. Malachi는 선지자들 중 마지막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구약을 매듭 짓고, 신약시대의 최초의 목소리인 엘리야 세례 요한을 연결시키고 있다. 저자는 말라기이며, 기원전 475년에서 45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어두운 시기였다. 기원전 539년 포로귀환으로 이스라엘은 재출애굽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번영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 보였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놓고 있다 시피했다. 그 문제점을 Caiser는 다섯 가지로 지적했다. 잡혼(2:11-15/느13:23-27), 십일조를 준수하지 않음(3:8-10/느13:10-14),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에 관심이 없음(2:8-9/느13:15-22), 부패한 제사장들(1:6-2:9/느13:7-9), 사회적인 문제들(3:5/느5:1-13) 등이었다.

 

하나님은 Malachi를 통하여 포로귀환 이후 다시 사회적, 도덕적, 영적부패에 빠져가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짖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순결함이 없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고통스런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운 통치 및 말씀의 순종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셨으며 사람들은 얼마나 주님을 멸시하고 더럽히고 괴롭혔는지를 밝히면서 아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도륵 촉구하고 있다.

 

Malachi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식하라는 것, 바빌로니아의 포로기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안녕과 복지는 여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언약관계에 있어서 그의 말씀을 준수하는데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거룩하고 순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형식과 절차가 있어야 함을 강조함과 하나님께 순종의 마음이 없는 예배는 용납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Ⅱ. 시대적 배경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이다. 말라기서를 끝으로 예수님의 출현시까지 약 400년간의 긴 침묵시대가 뒤따르게 된다. B.C 430년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하였다. 이때 선지자 학개, 스가랴 등의 질책과 격려에 힘입어 이스라엘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기도를 하고 있으면 자신들에게 곧 메시아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수십년이 지나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영광은 나타나지 않고 종전과 똑 같은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점 나약해지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나태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Ⅲ. 핵심 주제

 

 

이러한 시기에 선지자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현재 닥치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선언한다. 말라기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커다란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전 예배를 모독하는 제사장들의 껍데기뿐인 형식주의 예배와 잘못된 율법교육, 백성들이 타락한 결혼과 이혼, 부정한 행실 드응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불신앙적인 가정에 대한 책망을 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임하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약속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고 괴롭히는 것을 지적하면서 말라기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을 것을 독려하고 있다.

 

 

Ⅳ. 성격

 

말라기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예언이 전개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은 세례 요한의 출현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의 심판장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Ⅴ. 교훈

 

말라기서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실 커다란 영광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태한 상태에서 믿음이 적어지고, 갖은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Ⅵ. 개요

 

 

말라기서는 모두 4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제사장들의 죄악을 설명하고 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말 2:2),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말 1:8)

 

제2장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임할 저주를 설명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말 2:3)’ 그리고 레위와 세운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말 2:5)’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말 2:13)’

 

제3장에서는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는 주의 사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말 3:1)’그리고 십일조 규례를 지키지 않은 죄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제4장에서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말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말 4:2)’‘보라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게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Ⅶ. 구체적 내용

 

 

1. 제1장

 

 

말라기 제1장은 ① 이스라엘의 감사할 줄 모르는 죄악에 대하여 꾸짖음(1:1~5), ② 그들의 불경건함을 꾸짖음(1:6~11), ③ 그들이 거룩하지 못함을 꾸짖음(1:12~14)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으로 경고하였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대상을 선택하신 다음 그 사랑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적 질서에 따라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사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장자인 에서를 선택하지 않고 야곱을 선택하여 장자의 기업을 주셨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야곱을 하나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하여야 한다.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니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에돔의 커다란 교만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함을 미워하신다. 인간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낮추시기 위해 무너뜨린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죄를 계속해서 짓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이것은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악하고 마비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이방 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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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8장

 

 

가을사랑

 

 

제28장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다. 멜리데에서의 바울의 증거와 로마에서의 바울의 증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제28장은 결코 사도행전의 끝이 아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다른 사도들에 의해 지구끝까지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

 

바울은 단지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증언하고 그의 종이 되어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했던 선구자에 불과하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수 많은 종들이 선교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이적을 행하고 있다. 성령의 부르심을 받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 일행이 풍랑에서 구조된 후 멜리데 섬에서 머물게 되었다. 토인들이 불을 피워놓았는데 바울이 나무를 불에 넣으니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멜리데 섬의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렸는데 바울이 안수하여 고쳐주었고, 많은 병든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다.

 

바울은 이처럼 죄인으로서 로마로 끌려가는 과정에서도 기도로써 주변 사람들을 풍랑의 위기에서 구해주었고,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며, 병든 사람들을 안수로 고쳐주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사렛 예수가 주님이라는 사실을 증언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고, 그의 성령으로 인간이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애썼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 바울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인으로 내어 주었고, 로마인들은 자신을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아주려고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여 자신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던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죄 없음을 확인하였다.

 

바울은 그 후 로마에서 2년 동안 셋집에 머물면서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 이로써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주 예수의 복음은 당시 세계의 중심도시였던 로마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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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7장

 

가을사랑

 

 

바울은 이달리아로 가기로 작정이 되어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라는 사람에게 맡겨졌다.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에서 출발하여 시돈을 거쳐 무라 성에 이르러 니도와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였다. 그후 라새아 성을 지나 그레데 항구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광풍을 만났다.

 

바울은 배에 탄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사자가 바울에게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셨다.”고 말했다는 것을 전해주었다.

 

바울은 또한 굶주린 사람들에게 떡을 떼어 주었는데 27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 결국 배는 바울의 말처럼 섬에 도착하여 구출되었다.

 

바울은 배가 광풍을 만나 풍랑에 흔들려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불안에 떨고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의지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열심히 기도한 덕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의지한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어찌 사람의 힘으로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이때 우리가 의지할 곳은 오직 한 곳이다.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 분이다.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보살펴 주신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배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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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6장

 

가을사랑

 

 

사도행전 제26장은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가이사랴에서는 베스도 총독의 참여하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천부장들, 시중의 높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바울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재판이 열리면서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었다. 바울은 자신이 젊었을 때에는 유대인 종교의 가장 엄한 파에 속하는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바울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믿지 않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박해를 하였다.

 

그리고 외국에까지 가서 예수교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중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는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히브리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누구시니이까?”“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게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하셨다.

 

바울은 예수를 박해하러 다마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며, 그의 종이 되었고, 그의 증인이 되기 위해 땅끝까지 전도를 하러 다닌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설명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현재 전도하고 있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라는 것이었다(행 26:22~23).

 

바울의 이러한 변론을 듣고 아그립바는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고 하였다.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바울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고 말했다.

 

바울의 재판에서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를 하였기 때문에 그 재판에서 석방시켜 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다시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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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5장

 

가을사랑

 

베스도 총독이 부임한 지 3일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갔더니, 대제사장들이 바울을 고소하면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주기를 청원하였다. 유대인들은 베스도 총독이 자신들이 요구대로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면 그 중간에서 바울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만일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면 바울은 살해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스도 총독은 이들의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10일 정도 지난 다음 베스도는 가이사랴에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재판을 하기 전에 베스도는 먼저 바울에게 물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재판을 받겠느냐?”이와 같이 물은 것은 대제사장들이 청원하였던 것을 염두에 두고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들이 고소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이사에게 호소합니다.”바울의 이러한 변론에 베스도는 가이사에게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

 

바울이 말한 가이사에 대한 호소는 로마 시민에게 인정된 중요한 권리였다.가이사는 로마 황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 황제였다. 네로 황제는 서기 54년부터 68년까지 14년 동안 통치하였다.

 

며칠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있었는데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을 듣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베스도는 바울을 불러 아그립바 왕앞에 세웠다. 여기에 나오는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1세의 아들 말커스 율리어스 아그립바 2세를 의미하며 유대에서 약 50년을 통치하였다. 성전의 지배권 또는 대제사장의 임명권까지도 행사하였으며 서기 100년경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기 때문에 헤롯의 마지막 왕이라고도 불리운다. 베스도 총독은 여전히 자신은 바울에게서 마땅한 죄목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바울에 대한 재판은 바울이 정치적인 선동과 소요를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벨릭스는 오랜 경험에 비추어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난이 종교적인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 내부의 종교적인 분쟁을 조정하고 자신의 관할 구역 안에서 평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재판을 연기시켰다. 벨릭스가 총독으로 근무하는 동안 가이사랴 지방에서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에 강한 적대감이 형성도어 있었다. 벨릭스 총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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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예언서 이해 (2)

 

가을사랑

 

Ⅲ. 미래 선포

 

1. 종말

 

고전적 문서예언서에서는 동시대의 상황에 대한 비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이다. 예언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말이 도래하였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이 고전적 예언의 새롭고 가혹한 메시지이다.

 

2. 전환

 

그러나 이러한 종말이 모든 것이 끝나는 시점은 아니다. 하나님은 완악하고 멸망이 임박한 백성들의 공동체 가운데서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는 작은 신앙공동체를 모으신다.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로서 강대국인 아시리아를 사용하셨고, 아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게 된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혹독한 고통 가운데에서 놀라운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3. 새로운 사건

 

새로운 사건은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의 마음 속에 기록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종말과 전환, 그리고 새로운 사건을 가져오시는 분이다.

 

Ⅳ. 동시대인에 대한 고발

 

1. 기능

 

예언자들은 임박한 심판이 죄로 인한 것이라고 증언한다. 예언자의 현실비판은 심판의 이유를 제시하는 기능을 한다.

2. 주제

 

예언자들의 고발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회생활의 전 영역을 포괄한다. 예언자들의 구체적인 고발의 대다수는 심판의 정당성을 증명한다.

 

3. 중심 모티브

 

이스라엘의 모든 죄와 그것 때문에 위협 받았던 모든 재앙은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을 거절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Ⅴ. 예언자의 고통

 

1. 시련

 

예언자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역경을 당했다. 아모스는 부르짖는 사자 앞에 있는 공포를 느꼈고, 호세아는 미친 바보로 조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사야는 청중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고, 하나님께 몹시 실망하기도 했다.

 

2. 혼동

 

참된 예언자들은 거짓예언자들과 당시에는 제대로 구별되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미가 때부터 성전에서 공직을 맡고 있는 다른 예언자들과의 사이에서 심한 갈등이 생겨났다.

 

3. 고난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예언자들이 겪는 고난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는 공격에서 생겨나는 고통도 있지만, 자신의 사명에 대한 회의가 들때 받는 고통도 있다.

 

* (주) 차준희 지음, 최근 구약예언서 이해, 프리칭아카데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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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4장

 

가을사랑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와 함께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그들은 바울이 천하에 퍼진 유대인들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이 괴수라이며, 성전을 더럽게 하였다고 고소하였다.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12일밖에 되지 않았고, 그들은 바울이 성전에서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고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변론하였다.

 

총독 벨릭스가 바울이 믿는 도에 관해 자세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건처리를 연기하였다. 며칠 후에 벨릭스는 그의 아내와 함께 바울을 불러 그리소도 예수를 믿는 도를 들었다.

 

벨릭스는 팔레스타인의 총독으로서 서기 52년부터 60년까지 통치를 하였다.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는 모습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이 재판 받는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 장로들은 고소사실을 벨릭스 앞에 제시한다. 이것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산헤드린이 예수님에 대하여 고소한 것과 비슷하다(눅 23:1~2).

 

바울은 예루살렘에 구호품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모금하였다는 바울 서신의 언급에서 간접적으로 확증할 수 있다(롬 15:25~28). 벨릭스는 뇌물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벨릭스의 베스도 위임이 끝날 때까지 바울을 가이사랴의 감옥에 2년 동안 구류시킨다. 서기 58년부터 60년까지 사이의 기간 동안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성전모욕죄로 고소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고소사건은 모라재판으로까지 발전되었고, 이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로마에서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는 위대한 성과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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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예언서 이해 (1)

 

가을사랑

 

Ⅰ. 고전적 예언

 

1. 문학적 기준

 

고전적 예언이란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와 12예언서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성서의 정경부분으로서 후기 예언서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반하여 전기 예언서라 함은 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 등으로서 더 오래된 고대 이전의 예언서들을 말한다. 고전적 예언서는 묵시문학이라고 부르는 미래에 관한 새로운 형태의 예언서들과도 구별된다. 그러나 후기 예언서에 속하는 모든 본문들이 고전적 예언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2. 연대적 기준

 

고전적 예언이 나타나는 시기는 기원전 8세기 중기부터 기원전 5세기라고 할 수 있다. 신아시리아제국이 세력을 넓혀갈 때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아모스와 호세아가 나타나서 활동하였고, 남 왕국 유다에서는 이사야와 미가가 나타나 활동하였다.

 

신아시리아로부터 바벨로니아제국으로 넘어가던 변혁기인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에는 나훔, 하박국, 스바냐, 예레미야, 오바댜, 에스겔, 이사야, 스가랴, 학개, 말라기 등이 활동하였다.

 

3. 내용적 기준

 

고전적 예언서가 고전 이전 예언이나 묵시문학과 구별되는 주요한 특징은 순수한 신탁수집물로서 개별적인 신탁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암 7:10~17). 고전적 예언자들의 말은 원래 구두로 선포되었고, 그 이후 2차적인 문학적인 작업을 통하여 모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사 8:16, 30:8). 고전적 예언자들의 신탁수집물들은 그 이전 시대에 있었던 법규전승과 지혜문학이라는 영역의 수집물과도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시대부터 신명기를 거쳐 포로기 이후 시대의 제사장적 단편에 이르기까지의 율법의 말씀은 그 근본적인 권위를 모세에 두고 있고, 전도서에까지 이르는 지혜의 말씀은 솔로몬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고전적 예언서는 개인의 이름을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유래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개인적인 가진 율법규정과 지혜의 말씀들과는 달리 고전적 예언서들은 분명한 역사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예언서가 선포하는 메시지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전체에 미치고 실제로 그 당시 세계역사적인 상황 안에서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다. 예언은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취급하고 있다.

 

Ⅱ. 소명과 파송

 

1. 소명

 

고전적 예언서의 예언자들의 사역동기는 다양하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활동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모스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사자가 으르렁거렸다.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야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누가 예언하지 않겠는가?”(암 3:8). 예레미아도, “나는 어리기 때문에 말할 줄 모릅니다.”(렘 1:6)고 저항하면서도 예언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들였기 때문이었다.

 

2. 직업

 

일반적으로 고전적 예언자들은 직업적인 성소예언자들이나 제사장들에게 강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이었다. 고전적 예언자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만 예속되어 있었고, 계속해서 그러한 관계가 유지되었다.

 

3. 공적 출현

 

고전적 예언자들은 본질적으로 그들이 선포한 주제에 대한 관계에서만 상호간에 연결될 뿐이며 사적 또는 조직적인 연관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제1차적인 역사적 도구이었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안으로 전례 없는 새로운 것을 가져다 주셨다.

 

* (주) 차준희 지음, 최근 구약예언서 이해, 프리칭아카데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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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3장

 

가을사랑

 

 

천부장은 유대인들이 무엇 때문에 바울을 상대로 송사를 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다. 바울은 자신이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면서, 자신은 바리새인이고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인하여 자신이 심문을 받는다고 변론하였다. 이런 변론으로 인하여 그곳에 모여 있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분쟁이 생겼다. 부활을 믿은 바리새인들은 바울을 지지하여 바울에게는 악한 것이 없다고 편을 들었다.

 

그 다음 날 유대인들이 바울을 직접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이러한 살해음모를 바울의 생질이 미리 알고 바울에게 고하여, 천부장도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어 바울을 무장한 군인들로 하여금 호위하게 하여 벨릭스 총독에게 안전하게 보냈다.

 

바울은 예수님이 주 그리스도이라는 사실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은 엄격한 율법주의자들로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만이 있을 뿐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고 주장하는 바울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바울이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믿음이 악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바울은 이러한 분쟁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하셨다(행 23:11).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 많은 사람들의 핍박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살아계심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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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제22장

 

가을사랑

 

 

바울이 히브리말로 자신의 일에 대하여 변론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교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넘겼는데, 다메섹에 가는 도중에 예수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기에 그 말을 듣고 다메섹에 가서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였다.

 

바울의 변론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난리를 쳤다. 이에 천부장이 바울을 채찍질하여 신문하라고 지시하였는데, 바울이 백부장에게 자신이 로마사람임을 밝혔다. 그러자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사람인 것을 알고 그를 결박한 것을 두려워하였다.

 

바울은 대적자들이 자신을 핍박하려는 동기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심오한 신학적인 논증을 하기 보다는 다메섹 도상에서 겪었던 자신의 체험을 히브리 방언으로 증거하고자 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신이 한 사역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따른 것이어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대적들의 훼방은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할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내세우지는 않았으나 복음의 유익을 위하여 또는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로마시민권을 사용했다. 로마시민은 형벌을 당하기 전에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고문을 당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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