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해설

 

가을사랑

 

[1] 개요

 

말라기(Malachi)는 선지자 말라기가 B.C 430년경 예루살렘으로 추정되는 유대 땅에서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라기라는 선지자는 경전으로 인정된 거룩한 문서들을 수집하고 보관하던 대회당의 회원이었다고 한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이다. 말라기는 이 책에서 형식적 신앙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사람들의 부흥을 간곡히 바라고 있다. 말라기서는 ① 사랑의 확증, ② 제사장들의 죄, ③ 백성들의 죄, ④ 심판의 경고, ⑤ 주의 날의 약속 등에 대한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말라기서가 씌여진 시대적 배경은 포로 귀환시대이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440년부터 410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여진다.

 

말라기(ykia;l]m'; 나의 사자;messenger)는 히브리 정경의 마지막 책이다. Malachi는 선지자들 중 마지막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구약을 매듭 짓고, 신약시대의 최초의 목소리인 엘리야 세례 요한을 연결시키고 있다. 저자는 말라기이며, 기원전 475년에서 45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어두운 시기였다. 기원전 539년 포로귀환으로 이스라엘은 재출애굽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번영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에게 보였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놓고 있다 시피했다. 그 문제점을 Caiser는 다섯 가지로 지적했다. 잡혼(2:11-15/느13:23-27), 십일조를 준수하지 않음(3:8-10/느13:10-14), 안식일을 준수하는 일에 관심이 없음(2:8-9/느13:15-22), 부패한 제사장들(1:6-2:9/느13:7-9), 사회적인 문제들(3:5/느5:1-13) 등이었다.

 

하나님은 Malachi를 통하여 포로귀환 이후 다시 사회적, 도덕적, 영적부패에 빠져가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꾸짖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순결함이 없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고통스런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운 통치 및 말씀의 순종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셨으며 사람들은 얼마나 주님을 멸시하고 더럽히고 괴롭혔는지를 밝히면서 아제라도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도륵 촉구하고 있다.

 

Malachi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식하라는 것, 바빌로니아의 포로기 이후에도 이스라엘의 안녕과 복지는 여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언약관계에 있어서 그의 말씀을 준수하는데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거룩하고 순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형식과 절차가 있어야 함을 강조함과 하나님께 순종의 마음이 없는 예배는 용납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2] 시대적 배경

 

말라기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이다. 말라기서를 끝으로 예수님의 출현시까지 약 400년간의 긴 침묵시대가 뒤따르게 된다. B.C 430년경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하였다. 이때 선지자 학개, 스가랴 등의 질책과 격려에 힘입어 이스라엘 성전을 재건하였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전을 건축하고 기도를 하고 있으면 자신들에게 곧 메시아 나라가 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수십년이 지나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영광은 나타나지 않고 종전과 똑 같은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점 나약해지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나태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3] 핵심 주제 

 

이러한 시기에 선지자 말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현재 닥치고 있는 고난의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의 죄악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선언한다. 말라기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커다란 사랑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전 예배를 모독하는 제사장들의 껍데기뿐인 형식주의 예배와 잘못된 율법교육, 백성들이 타락한 결혼과 이혼, 부정한 행실 드응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불신앙적인 가정에 대한 책망을 한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임하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약속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상기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이 오히려 하나님을 멸시하고 괴롭히는 것을 지적하면서 말라기는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을 것을 독려하고 있다.

 

 

[4] 성격

 

말라기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관한 예언이 전개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처음 오심은 세례 요한의 출현과 연결되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세상의 심판장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5] 교훈

 

말라기서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위기에 처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실 커다란 영광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나태한 상태에서 믿음이 적어지고, 갖은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7] 개요 

 

말라기서는 모두 4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제사장들의 죄악을 설명하고 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말 2:2), ‘너희가 눈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말 1:8)

 

제2장에서는 제사장들에게 임할 저주를 설명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말 2:3)’ 그리고 레위와 세운 언약을 상기시키고 있다.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을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말 2:5)’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말 2:13)’

 

제3장에서는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는 주의 사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말 3:1)’그리고 십일조 규례를 지키지 않은 죄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제4장에서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말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말 4:2)’‘보라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게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 4:5)

 

[9] 구체적 내용 

 

1. 제1장 

 

말라기 제1장은 ① 이스라엘의 감사할 줄 모르는 죄악에 대하여 꾸짖음(1:1~5), ② 그들의 불경건함을 꾸짖음(1:6~11), ③ 그들이 거룩하지 못함을 꾸짖음(1:12~14)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으로 경고하였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대상을 선택하신 다음 그 사랑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적 질서에 따라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사에 달려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장자인 에서를 선택하지 않고 야곱을 선택하여 장자의 기업을 주셨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야곱을 하나님의 사랑이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하여야 한다.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니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그러나 이것은 에돔의 커다란 교만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교만함을 미워하신다. 인간이 교만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낮추시기 위해 무너뜨린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죄를 계속해서 짓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이것은 인간의 심성이 얼마나 악하고 마비된 것인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이방 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계신다.

2. 제2장

 

제2장에서는, ①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책망하고(2:1~10), ② 유대인들이 이방 여자를 취하고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책망하고(2:11~16), ③ 사람들의 배교행위를 꾸짖고 있다(2:17).

 

원래 하나님은 레위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세웠다. 레위는 제사장족으로서 특별히 그의 자손 중 아론을 상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셨다(대상 6:49). 그 언약은 하나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이었다. 제사장에게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불의가 없었으며, 화평과 정직한 중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지식을 지키고 율법을 구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레위의 언약을 파기하고 정도에서 벗어나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거치게 하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율법을 편벽되게 하였다. 율법을 편벽되게 하였다 함은 제사장들이 율법을 해석할 때나 시행하는 때에 가난한 자에게는 가혹하게 하고, 부자에게는 순하게 하는 불공정성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이 원본적인 제사장의 행동의 원리에서 이탈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을 범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제사장들을 백성들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신 것이다. 말라기는 여기에서 중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저주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고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제2장 10절부터는 백성들의 죄를 열거하고 있다. 첫째, 백성들은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고 있다. 유대난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성결을 욕되게 하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다. 또한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였다. 또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하기도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조에 대하여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고, 그들이 드리는 헌물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받지도 않으신다.

 

열조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기타 족장들로 더불어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을 의미한다(출 19:5~6, 24:8). 이와 같이 성별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도록 된 것이므로 이방 여자를 취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 여자를 취하는 경우에는 이방 우상을 수입하게 되고 그 결과 성민의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말라기는 백성들에게 경고한다. 그러므로 심령을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아야 한다.

3. 제3장

 

제3장은 ① 메시아의 길을 닦는 하나님의 사자가 올 것과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3:1~6), ②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악에 대한 책망(3:7~12), ③ 유대인들의 배교행위(3:13~15), ④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축복하시겠다는 약속(3:16~18)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장에서는 메시야와 선구자의 도래에 대한 예언과 하나님께 불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내는 사자의 임무는 성자 하나님이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즉 메시야의 오심을 세상에 선포하고 메시야의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사 40:3).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자는 바로 세례 요한임이 예수님과 공관 복음의 저자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증거하는 등 자신의 사역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메시야가 임하는 날은 환난의 날이며, 고통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다. 주님이 오실 그날에는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그 앞에 설 사람이 없다는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저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불과 잿물로 비유하였다. 불은 소멸시키는 것과 깨끗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잿물은 표백제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택한 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다. 메시야가 오는 목적은 연단을 통하여 레위 자손들을 정결하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택한 백성,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는데 있다. 선택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마술, 간음, 갈취, 부당이득 등 각종 악행을 행하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이름인 동시에 자기 백성과의 언약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 이름의 의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당신과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낙심하고 넘어지며 환난과 징계를 당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영원함을 기억하고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행하던 불순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회개의 촉구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것을 도적질하는 죄를 책망하셨다. 하나님이 것이라 함은 십일조와 헌금을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단지 그것을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로 십일조와 헌금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겨도 하나님께서 보상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평하고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이 명령대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호소를 분명하게 들어주신다. 진정한 성도라 함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성도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고 바른 길을 가르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아끼신다. 메시야가 오시는 날에 의인과 악인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4. 제4장

 

제4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을 전제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자발적으로 율법을 준수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당할 최후와 의인이 종국에 받게 될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의 율법을 지킬 것을 권면하며 그렇지 않을 때 그들에게 저주가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다시 주님께 돌아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는 한없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약속하셨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인 심판의 날이 오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초개 같이 불살라지듯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고 그 죄값을 보응하신다.

의로운 해는 치료하는 광선을 비춘다.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어가는 세상에 구원의 날개를 펼쳐 은총을 베푼다는 말이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될 것이다. 의인은 사망의 어두움에서 생명의 빛 가운데로 나올 것이며 그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들은 악인을 밟게 되고 악인은 재같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법과 법도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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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예언서

 

[1] 주요 내용

 

1. 고전적 문서예언서

 

고전적 문서예언서라 함은 기원전 8세기부터 5세기 사이에 활동하였던 예언자들의 예언을 기록한 문서를 의미한다. 성서에서는 후기예언서라는 이름으로 정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등 3개의 대예언서와 아모스, 호세아, 미가.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오바댜, 이사야(40~55장), 학개, 스가랴, 이사야(56~66), 말라기 등 12개의 소예언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고전적 예언서는 순수한 신탁수집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예언자들의 말이 구두로 선포되었고, 그 이후 2차적인 문학적 작업으로 모아진 것이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취급하고 있고, 당시의 세계역사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다.

 

예언자들의 소명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고 같은 종류의 제의적 기관에 속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개별적으로 나타났다.

 

예언자들은 동시대의 상황에 대한 비판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미래에 다가올 종말에 대해 예언하고, 종말에 대한 심판 이후에는 놀라운 전환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언자들은 임박한 심판은 죄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며, 사람들의 생활 전체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심적 모티브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다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프시며 구원하신다는 취지이다.

 

2. 예언서 연구사

 

19세기 이전까지는 율법과 예언서의 관련성에만 주력해왔다. 그 어떤 예언자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전권을 위임받은 적이 없으며, 예언자는 모세의 토라(율법)를 넘어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말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예언은 율법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예언자의 특성을 최초로 발견한 둠(B. Duhm)은 예언자들은 율법과 무관한 자유인이며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창조적인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하며, 예언자의 개인성을 강조하였다. 예언자들의 창조적 개인성은 이스라엘종교를 자연종교와 제사종교의 수준에서 윤리종교로 발전시켰다고 이해한다.

 

궁켈(H. Gunkel)은 예언자의 황홀경체험을 강조하였으며 예언선포의 양식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첫 번째 양식은 심판행위를 선포하는 위협(미래선포)의 말이고, 두 번째의 양식은 그 심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책망(고발 또는 근거)의 말이다.

 

폰 라트는 예언의 전승에 대한 매임과 동시에 전승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내지는 독립성이라는 양면을 강조하고 있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전승과의 대화일 뿐 아니라 전승과의 비판적 대화 또는 전승을 새롭게 현실화하는 대화라고 본다. 뷔르트바인은 예언자들은 성소에서 직업적으로 일하는 성소예언자들이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이다.

 

볼프는 최초의 문서예언자 아모스의 선포에서 독특성을 발견하였다. 자기 백성에게 심판을 선포한 아모스의 메시지는 전혀 새로운 메시지라는 것이다. 슈미트도 백성 전체를 향한 심판선포는 고대 근동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스스로도 알지 못하던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3. 예언 선포의 의도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어느 한 계층, 특히 가난하고 억압받는 계층을 옹화기 위해 사회를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사회변혁을 목적으로 사회비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선포 가운데 사회비판이 갖는 기능은 백성 전체에 임할 심판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있다. 사회비판의 본질적인 의도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여 임박한 심판의 정당성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에게서는 이스라엘을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예언자들은 소명체험에서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파국을 맨 먼저 경험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예언자들은 그러한 파국의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의와 부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곧 다가올 파국이 바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예언자들의 주된 과제였다.

 

예언자들은 윤리적 교사가 아니며, 심판이 온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개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용서를 알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의 임무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에 임할 파국을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예언자의 과제는 윤리적 갱신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정당성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4. 예언서의 양식

 

예언양식은 연설공식, 연설양식, 이야기체양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연설공식에 속하는 대표적인 양식은 메신저공식, 하나님발언공식, 말씀사건공식이 있다. 메신저공식이란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는 표현을 가르킨다. 이는 예언서에서 약 360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식의 기능은 그때그때의 명령자에게 의존하는 메신저나 편지 발신자에게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발언공식은 ‘야훼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가르킨다. 이 공식은 예언자의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예언 선포의 원천이 야훼임을 밝혀두고, 또한 그분이 메시지의 실행에도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말씀사건공식이란 ‘야훼의 말씀이 누구에게 임하였다’는 표현구를 가르킨다. 이 공식은 예언적 말씀을 수령하는 맥락과 관련된 이야기체에서도 사용되며, 예언문헌에서 예언적 말씀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연설양식은 예언문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양식이다. 예언자들은 자신에게 특유한 연설양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삶의 자리로부터 기원한 양식을 차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예언자의 연설양식에는 심판의 말씀, 재판연설, 화외침, 권고말씀, 논쟁말씀, 구원말씀 등이 있다.

 

이야기체양식에서는 언제난 자기보고(1인칭 단수)인지 아니면 타자보고(3인칭 단수)인지의 여부가 구별되어야 한다. 이야기체양식에서는 특정한 삶의 자리를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이야기가 문학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체양식에는 소명이야기, 환상이야기, 상징행위이야기 등이 있다.

 

5. 예언서의 자연환경 이해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께 반역하였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 단절된 관계가 원래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다. 에덴의 동산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가 밀착된 화해의 관계이었는데 이것이 파괴되어 불행하게 되었다. 이처럼 왜곡된 인간관계를 본래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이 구원이다.

 

인간과 하나님이 관계파괴로 인하여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외되었고,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적대적인 관계로 변했다. 인간과 자연의 깨어진 관계로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고통당하는 오늘의 현실은 다시 낙원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자연은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료성가대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은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가꿈과 돌봄의 대상이다. 자연은 인간과 동료이며 인간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다.

 

자연은 인간과 달리 스스로 타락하거나 죄를 짓지 않는다. 자연이 하나님의 법도인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폐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황폐화된 자연을 본래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을 가꾸고 돌보는 것이다.

 

6. 예언서의 윤리사상

 

구약의 윤리와 관련된 성서본문은 오경을 비롯하여 구약 전반에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미가 제6장 8절은 예언자적 에토스의 정수라고 불리워진다.

 

미가 6장 6절부터 8절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먼 하나님에서 가까운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다. 정적인 하나님에서 역동적인 하나님으로 바뀐다.

 

미가 제6장 6~8절을 중심으로 예언서의 윤리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언서의 윤리는 철저히 신율적인 윤리이다. ② 예언서의 윤리는 윤리적인 삶의 원천이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회고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③ 예언서의 윤리는 윤리와 제의가 하나님을 보여준다.

 

예언서의 윤리사상에 따르면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는 신앙과 별개의 어떤 것이 아니고, 신앙과 직결되어 있다. 신앙인은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 신학적 차원에서도 진정하게 윤리적이어야 한다.

 

7.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와 미가전승

 

예레미야는 호세아의 성취되지 않은 구원의 약속을 계승한 것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미가의 심판선고 역시 계승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미가의 심판선포가 미가의 시대에서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세아의 영향으로 주로 예레미야의 초기 활동시기에 주어진 반면에 미가의 영향은 예레미야의 활동의 초기는 물론 그 이후에도 발견된다. 그러나 두 예언서의 선포에서 나타난 일치점과 변화, 공통점과 차이점들로 보아 미가전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수용은 문서적인 의존보다는 오히려 구전전승에 의존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8. 예언서의 금식 이해

 

이사야 58장 5~7절은 올바른 금식에 대한 정의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금식은 경제적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공동체 전 구성원이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금식으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비하가 아니라 억압당하는 자의 자유이다. 하나님은 동료에 대한 실천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야 58장 8~12절은 올바른 금식이 수여하는 축복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면 그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구원은 축복의 상태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관계의 지속으로 묘사된다.

 

이사야 58장 13~14절은 안식일 준수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안식일은 단순히 휴식하는 날이 아니고 성스러운 날이다. 안식일은 인간의 날이 아니라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야 하는 하나님의 날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엄격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계명의 준수가 축복의 약속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고, 기쁨이 되고 원기회복의 표지와 즐거움으리 표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금식은 나의 모든 것을 올 스톱하고 하나님께 올 인하는 것이다. 진정한 금식은 동정적인 정의실천을 의미한다.

 

9. 예레미야서와 신명기사가의 관계

 

예레미야서의 신명기사가적 편집이론은 최근까지의 대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의 신명기사적 편집연구에 있어서 최근의 연구경향은 세부적으로 계속된 이어쓰기 이론과 다중편집 이론이 주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이상과 현실을 순환하는 자로서의 예언가였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의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는 내지 선교사였다. 그는 최대의 정치신학자이었으며 고통의 신학자이었다. 그리고 최초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했던 사람이었다.

 

[2] 느낀 점

 

차준희 교수님께서 쓰신 ‘최근 구약예언서 이해’(프리창아카데미, 2008년)라는 책 구약의 예언서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사실 구약의 예언서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지금과 시대적 배경이 많이 다르고, 오래 전의 일일 뿐 아니라, 예언서가 장기간의 시간을 배경으로 복잡한 역사적 상황에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반인들이 구약의 예언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여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각 분야별로 정리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문서예언서를 문학적, 연대적, 내용적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예언자들이 어떠한 소명을 가지고 공적인 출현을 했는지, 그들이 미래에 관하여 선포한 내용들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한 예언자들이 동시대인들을 고발하면서 어떠한 고통을 겪게 되었는지 등에 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예언서 연구사에서는 19세기 이전 단계에서의 연구방법론과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내용을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특히 볼프와 그 제자들은 예언이해는 예언자의 전승의 수용과 재해석이라고 보고 있으며, 문서예언의 과격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예언선포의 의도에 관하여, 사회비판인가, 회개촉구인가, 미래선고인가에 관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예언서의 양식에 관하여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예언서의 자연환경 이해 부분에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로 나누어 이 모든 관계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언서는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가 신앙과 직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현세적인 윤리적인 삶을 무겁게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레미야가 미가로부터 어떠한 전승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매우 심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호세아의 성취되지 않은 구원의 약속을 계승한 것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미가의 심판선고 역시 계승하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켰다. 이는 미가의 심판선포가 미가의 시대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간 전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수용은 문서적 의존보다는 구전전승에 의존했다고 보야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이사야에서 설명하고 있는 올바른 금식과 금식으로 인한 축복이 어떠한 것인지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금식이나 안식일준수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와 신명기사가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끝으로 예레미야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구약의 예언서에 관한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서이다. �은 시간에 구약의 예언서 전체에 관한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서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구약 예언서 이해[요약 및 감상] - (5)

 

가을사랑

 

Ⅰ. 요약

 

8. 예언서의 금식 이해

 

이사야 58장 5~7절은 올바른 금식에 대한 정의를 담고 있다. 하나님이 바라는 금식은 경제적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공동체 전 구성원이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금식으로 의도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비하가 아니라 억압당하는 자의 자유이다. 하나님은 동료에 대한 실천적인 사랑을 요구하고 있다.

 

이사야 58장 8~12절은 올바른 금식이 수여하는 축복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응답해주시면 그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구원은 축복의 상태로 묘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대화관계의 지속으로 묘사된다.

 

이사야 58장 13~14절은 안식일 준수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안식일은 단순히 휴식하는 날이 아니고 성스러운 날이다. 안식일은 인간의 날이 아니라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야 하는 하나님의 날이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엄격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계명의 준수가 축복의 약속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고, 기쁨이 되고 원기회복의 표지와 즐거움으리 표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금식은 나의 모든 것을 올 스톱하고 하나님께 올 인하는 것이다. 진정한 금식은 동정적인 정의실천을 의미한다.

 

9. 예레미야서와 신명기사가의 관계

 

예레미야서의 신명기사가적 편집이론은 최근까지의 대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의 신명기사적 편집연구에 있어서 최근의 연구경향은 세부적으로 계속된 이어쓰기 이론과 다중편집 이론이 주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이상과 현실을 순환하는 자로서의 예언가였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의 균형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그는 내지 선교사였다. 그는 최대의 정치신학자이었으며 고통의 신학자이었다. 그리고 최초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했던 사람이었다.

 

Ⅱ. 느낀 점

 

차준희 교수님께서 쓰신 ‘최근 구약예언서 이해’(프리창아카데미, 2008년)라는 책 구약의 예언서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사실 구약의 예언서들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지금과 시대적 배경이 많이 다르고, 오래 전의 일일 뿐 아니라, 예언서가 장기간의 시간을 배경으로 복잡한 역사적 상황에서 씌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반인들이 구약의 예언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여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각 분야별로 정리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문서예언서를 문학적, 연대적, 내용적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예언자들이 어떠한 소명을 가지고 공적인 출현을 했는지, 그들이 미래에 관하여 선포한 내용들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또한 예언자들이 동시대인들을 고발하면서 어떠한 고통을 겪게 되었는지 등에 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예언서 연구사에서는 19세기 이전 단계에서의 연구방법론과 그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연구방법론의 내용을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특히 볼프와 그 제자들은 예언이해는 예언자의 전승의 수용과 재해석이라고 보고 있으며, 문서예언의 과격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예언선포의 의도에 관하여, 사회비판인가, 회개촉구인가, 미래선고인가에 관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예언서의 양식에 관하여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예언서의 자연환경 이해 부분에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로 나누어 이 모든 관계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언서는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가 신앙과 직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현세적인 윤리적인 삶을 무겁게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레미야가 미가로부터 어떠한 전승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는 매우 심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호세아의 성취되지 않은 구원의 약속을 계승한 것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미가의 심판선고 역시 계승하고, 그것을 계속 발전시켰다. 이는 미가의 심판선포가 미가의 시대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간 전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수용은 문서적 의존보다는 구전전승에 의존했다고 보야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한 이사야에서 설명하고 있는 올바른 금식과 금식으로 인한 축복이 어떠한 것인지를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우리가 금식이나 안식일준수에 관하여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와 신명기사가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끝으로 예레미야신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구약의 예언서에 관한 매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서이다. �은 시간에 구약의 예언서 전체에 관한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서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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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가을사랑

 

페르시아는 성경에 파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파사제국의 왕 다리오는 메대와 바사지방을 다스렸다. 다리오의 사위인 고레스가 바사 왕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도록 승낙하였다. 유대인들은 바벨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데 이때가 기원전 516년이다. 말라기, 스가랴, 학개와 같은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페르시아 왕국의 전성기였다. 33장으로 구성된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기서는 기원전 475년부터 450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알렉산더가 소아시아에 진군한 시기는 기원전 333년이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에서 애굽까지 헬라문화를 전파했다. 마게도냐에서 일어난 알렉산더 왕은 소아시아, 터키지방을 지나 안디옥을 지나 팔레스탄, 시리아, 애굽까지 진군했다. 알렉산더 왕은 애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항구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후 안티고누스가 지배를 하였고, 그 후 새롭게 일어난 것이 툴레미 왕조였는데, 툴레미 왕조는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툴레미 왕조는 기원전 320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애굽에 왕궁을 두었는데 유대인들을 애굽에 정착하게 하고 호의를 베풀었다. 이때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으며, 70인역이라는 성경이 만들어졌다. 애굽의 알렉산드리야는 유대사상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셀류쿠스 왕조가 동시대에 일어났으며 시리아 왕조가 알렉산더 제국을 계승하게 되었다. 기원전 199년까지 애굽과 전쟁하여 팔레스타인지방을 점령하고 헬라문화를 이식시켰다. 셀류쿠스 왕조는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제국을 지배하였다. 셀류쿠스가 영토를 넓히려고 애굽을 침범하였고, 유대인들을 핍박하였다.

 

셀류쿠스는 유대인들의 이름도 헬라어로 바꾸게 하고 히브리사상을 매도하였다. 북쪽 지역에 있던 셀류쿠스 왕조는 남쪽에 있던 툴레미 왕조를 침략하였는데, 툴레미 왕조는 유대사상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와 반대로 셀류쿠스 왕조는 유대사상을 멸시하는 입장이었다.

 

셀류쿠스 왕조는 제우스신을 하나님의 신과 같은 위치에 놓고 이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박해하였는데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이러한 셀류쿠스 왕조의 유대인탄압정책에 맞서서 유대인들이 일으킨 혁명이 마카비 혁명이다. 이 무렵 제사장 맛다디아가 일어나 헬라식으로 제우스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이단들을 무너뜨렸다. 제사장 아들이 5명과 함께 일어나 헬라식에 반항을 하였다가 피신하였다. 이들은 숨어서 정통파 유대인들을 규합하여 저항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안식일에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유대사상을 고수하려고 안식일에는 헬라인들이 공격을 해와도 대항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많은 죽임을 당했다. 아들 중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비가 일어나 유대인들을 규합하고 군대를 많이 보유함으로써 헬라파를 많이 격파하고 제우스 신을 부수고 새 성전을 세웠는데 나중에 시리아 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시리아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마카비는 진격을 하자고 했지만 부하들은 화친을 맺고 마카비는 쫓겨나 전사를 하고 형제 요나단이 다시 일어났으나 시리아 군데에 정면으로 붙지 않고 화친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기 전 시리아군대의 힘을 얻어 유대 제사장이 되었고, 대제사장의 직무를 받게 되었다. 그 뒤에 형제들이 계속하여 혁명시대를 이끌어갔고, 마지막으로 시몬 하스모니안이 일어났으나, 지나치게 야망에 찬 나머지 사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후 시몬의 셋째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가 왕조를 이끌어갔고, 그 다음 하스몬 왕조가 일어났다. 시리아 정부는 유대인들이 시리아에 종속되고 전쟁시 출정한다는 조건으로 힐카누스 정부를 승인하였는데 이 지역이 에돔지역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헬라문화를 수용하고자 하는 부류가 있었는데 이들을 사두개인이라 불렀다. 유대사상을 전승받은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다. 힐카누스는 기원전 104년에 죽고 그 자녀들 시대에는 마카비의 혁명은 사라졌다. 자녀들의 분쟁으로 힐카누스의 장자 유다 아리스토 볼로스, 형제 얀네우스가 번갈아 가면서 분쟁하면서 유대를 다스렸다. 그 중에 두 형제를 왔다 갔다 하던 미망인 알렉산드리아가 있었는데 이 미망인에게 통치가 넘어가 7년간 유대를 통치하였다.

 

사두개인은 아리스토 볼로스를 좇아서 헬라적이고 바리새인은 힐카누스를 좇아서 유대적이었다. 나라에서는 유대 모세 율법으로 한 히브리 중심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서로 사상이 다른 부류들이 공존하였다.

 

로마시대가 되면서 사두개파에서는 아리스토 볼로스, 바리새파에서는 힐카누스를이 각각 유대의 제사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헬라사상이 확산되었다. 이스라엘은 로마가 다스리는 시리아에 있는 한 행정구역에 해당하였다. 안티파터가 로마로 피신한 것은 기원전 41년으로서 그는 힐카누스와 손을 잡아 로마를 칭송하였다. 그가 헤롯의 아버지이며 안티파터는 헤롯을 언제인가 왕으로 세워 주겠다는 밀명을 로마로부터 받았다.

 

로마가 다스리게 되자 안티파터는 헤롯을 데리고 유대인의 왕이란 창호를 받아 로마에서 왕위를 받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이 헤롯은 예수님 탄생 때 유아학살과 아내들이 많고 말을 듣지 않으면 살해하는 악행을 했으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들이 좋아 하는 성전을 지었다. 이 성전이 헤롯 성전이며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할 때 함께 하였다.

최근 구약 예언서 이해[요약 및 감상] - (4)

 

가을사랑

 

Ⅰ. 요약

 

6. 예언서의 윤리사상

 

구약의 윤리와 관련된 성서본문은 오경을 비롯하여 구약 전반에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미가 제6장 8절은 예언자적 에토스의 정수라고 불리워진다.

 

미가 6장 6절부터 8절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먼 하나님에서 가까운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다. 정적인 하나님에서 역동적인 하나님으로 바뀐다.

 

미가 제6장 6~8절을 중심으로 예언서의 윤리사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언서의 윤리는 철저히 신율적인 윤리이다. ② 예언서의 윤리는 윤리적인 삶의 원천이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회고하는 것에 있다고 한다. ③ 예언서의 윤리는 윤리와 제의가 하나님을 보여준다.

 

예언서의 윤리사상에 따르면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는 신앙과 별개의 어떤 것이 아니고, 신앙과 직결되어 있다. 신앙인은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 신학적 차원에서도 진정하게 윤리적이어야 한다.

 

7. 예레미야의 성전설교와 미가전승

 

예레미야는 호세아의 성취되지 않은 구원의 약속을 계승한 것처럼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미가의 심판선고 역시 계승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미가의 심판선포가 미가의 시대에서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세아의 영향으로 주로 예레미야의 초기 활동시기에 주어진 반면에 미가의 영향은 예레미야의 활동의 초기는 물론 그 이후에도 발견된다. 그러나 두 예언서의 선포에서 나타난 일치점과 변화, 공통점과 차이점들로 보아 미가전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수용은 문서적인 의존보다는 오히려 구전전승에 의

존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최근 구약 예언서 이해[요약 및 감상] - (3)

 

가을사랑

 

Ⅰ. 요약

 

5. 예언서의 자연환경 이해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께 반역하였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이 단절된 관계가 원래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다. 에덴의 동산에서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가 밀착된 화해의 관계이었는데 이것이 파괴되어 불행하게 되었다. 이처럼 왜곡된 인간관계를 본래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이 구원이다.

 

인간과 하나님이 관계파괴로 인하여 인간과 인간이 서로 소외되었고, 그 결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적대적인 관계로 변했다. 인간과 자연의 깨어진 관계로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며 고통당하는 오늘의 현실은 다시 낙원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자연은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료성가대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연은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가꿈과 돌봄의 대상이다. 자연은 인간과 동료이며 인간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이다.

 

자연은 인간과 달리 스스로 타락하거나 죄를 짓지 않는다. 자연이 하나님의 법도인 자연의 순리대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황폐화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황폐화된 자연을 본래의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자연을 가꾸고 돌보는 것이다.

말라기 해설 (3)

 

가을사랑

 

3. 제3장

 

제3장은 ① 메시아의 길을 닦는 하나님의 사자가 올 것과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3:1~6), ②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죄악에 대한 책망(3:7~12), ③ 유대인들의 배교행위(3:13~15), ④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축복하시겠다는 약속(3:16~18)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장에서는 메시야와 선구자의 도래에 대한 예언과 하나님께 불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보내는 사자의 임무는 성자 하나님이신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즉 메시야의 오심을 세상에 선포하고 메시야의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여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사 40:3). 여기에서 하나님이 사자는 바로 세례 요한임이 예수님과 공관 복음의 저자들에 의해 증명되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며 오실 메시야에 대하여 증거하는 등 자신의 사역을 충실하게 이행하였다.

 

메시야가 임하는 날은 환난의 날이며, 고통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다. 주님이 오실 그날에는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그 앞에 설 사람이 없다는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며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은 저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를 불과 잿물로 비유하였다. 불은 소멸시키는 것과 깨끗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잿물은 표백제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택한 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고 있다. 메시야가 오는 목적은 연단을 통하여 레위 자손들을 정결하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적은 택한 백성,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는데 있다. 선택받은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마술, 간음, 갈취, 부당이득 등 각종 악행을 행하는 이스라엘의 행위를 심판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이름인 동시에 자기 백성과의 언약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 이름의 의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인데 이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당신과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 낙심하고 넘어지며 환난과 징계를 당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영원함을 기억하고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전에 행하던 불순종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는 회개의 촉구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것을 도적질하는 죄를 책망하셨다. 하나님이 것이라 함은 십일조와 헌금을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단지 그것을 관리하고 있는 청지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로 십일조와 헌금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겨도 하나님께서 보상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평하고 하나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이 명령대로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의 호소를 분명하게 들어주신다. 진정한 성도라 함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성도들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고 바른 길을 가르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아끼신다. 메시야가 오시는 날에 의인과 악인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4. 제4장

 

제4장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을 전제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자발적으로 율법을 준수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당할 최후와 의인이 종국에 받게 될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의 율법을 지킬 것을 권면하며 그렇지 않을 때 그들에게 저주가 돌아갈 것이라는 경고를 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다시 주님께 돌아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를 원하시며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는 한없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약속하셨다.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인 심판의 날이 오면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초개 같이 불살라지듯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고 그 죄값을 보응하신다.

의로운 해는 치료하는 광선을 비춘다.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죽어가는 세상에 구원의 날개를 펼쳐 은총을 베푼다는 말이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될 것이다. 의인은 사망의 어두움에서 생명의 빛 가운데로 나올 것이며 그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그들은 악인을 밟게 되고 악인은 재같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법과 법도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신다.

최근 구약 예언서 이해[요약 및 감상] - (2)

 

가을사랑

 

Ⅰ. 요약

 

3. 예언 선포의 의도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어느 한 계층, 특히 가난하고 억압받는 계층을 옹화기 위해 사회를 비판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사회변혁을 목적으로 사회비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선포 가운데 사회비판이 갖는 기능은 백성 전체에 임할 심판의 근거를 제시하는데 있다. 사회비판의 본질적인 의도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여 임박한 심판의 정당성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포로기 이전의 예언자들에게서는 이스라엘을 심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예언자들은 소명체험에서 환상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파국을 맨 먼저 경험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예언자들은 그러한 파국의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의 불의와 부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곧 다가올 파국이 바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예언자들의 주된 과제였다.

 

예언자들은 윤리적 교사가 아니며, 심판이 온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회개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용서를 알리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의 임무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이스라엘에 임할 파국을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예언자의 과제는 윤리적 갱신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정당성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4. 예언서의 양식

 

예언양식은 연설공식, 연설양식, 이야기체양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연설공식에 속하는 대표적인 양식은 메신저공식, 하나님발언공식, 말씀사건공식이 있다. 메신저공식이란 “야훼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는 표현을 가르킨다. 이는 예언서에서 약 360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식의 기능은 그때그때의 명령자에게 의존하는 메신저나 편지 발신자에게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하나님발언공식은 ‘야훼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가르킨다. 이 공식은 예언자의 선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예언 선포의 원천이 야훼임을 밝혀두고, 또한 그분이 메시지의 실행에도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말씀사건공식이란 ‘야훼의 말씀이 누구에게 임하였다’는 표현구를 가르킨다. 이 공식은 예언적 말씀을 수령하는 맥락과 관련된 이야기체에서도 사용되며, 예언문헌에서 예언적 말씀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연설양식은 예언문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양식이다. 예언자들은 자신에게 특유한 연설양식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삶의 자리로부터 기원한 양식을 차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예언자의 연설양식에는 심판의 말씀, 재판연설, 화외침, 권고말씀, 논쟁말씀, 구원말씀 등이 있다.

 

이야기체양식에서는 언제난 자기보고(1인칭 단수)인지 아니면 타자보고(3인칭 단수)인지의 여부가 구별되어야 한다. 이야기체양식에서는 특정한 삶의 자리를 제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이야기가 문학적인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체양식에는 소명이야기, 환상이야기, 상징행위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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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약 예언서 이해[요약 및 감상] - (1)

 

가을사랑

 

Ⅰ. 요약

 

1. 고전적 문서예언서

 

고전적 문서예언서라 함은 기원전 8세기부터 5세기 사이에 활동하였던 예언자들의 예언을 기록한 문서를 의미한다. 성서에서는 후기예언서라는 이름으로 정경의 일부가 되어 있다.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등 3개의 대예언서와 아모스, 호세아, 미가. 나훔, 스바냐, 하박국, 오바댜, 이사야(40~55장), 학개, 스가랴, 이사야(56~66), 말라기 등 12개의 소예언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고전적 예언서는 순수한 신탁수집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예언자들의 말이 구두로 선포되었고, 그 이후 2차적인 문학적 작업으로 모아진 것이다.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을 취급하고 있고, 당시의 세계역사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다루고 있다.

 

예언자들의 소명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직업은 다양했고 같은 종류의 제의적 기관에 속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개별적으로 나타났다.

 

예언자들은 동시대의 상황에 대한 비판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예언의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미래에 다가올 종말에 대해 예언하고, 종말에 대한 심판 이후에는 놀라운 전환이 예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언자들은 임박한 심판은 죄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며, 사람들의 생활 전체의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심적 모티브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다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프시며 구원하신다는 취지이다.

 

2. 예언서 연구사

 

19세기 이전까지는 율법과 예언서의 관련성에만 주력해왔다. 그 어떤 예언자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전권을 위임받은 적이 없으며, 예언자는 모세의 토라(율법)를 넘어서는 그 어떤 메시지도 말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예언은 율법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예언자의 특성을 최초로 발견한 둠(B. Duhm)은 예언자들은 율법과 무관한 자유인이며 하나님과 직접 통하는 창조적인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하며, 예언자의 개인성을 강조하였다. 예언자들의 창조적 개인성은 이스라엘종교를 자연종교와 제사종교의 수준에서 윤리종교로 발전시켰다고 이해한다.

 

궁켈(H. Gunkel)은 예언자의 황홀경체험을 강조하였으며 예언선포의 양식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였다. 첫 번째 양식은 심판행위를 선포하는 위협(미래선포)의 말이고, 두 번째의 양식은 그 심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책망(고발 또는 근거)의 말이다.

 

폰 라트는 예언의 전승에 대한 매임과 동시에 전승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내지는 독립성이라는 양면을 강조하고 있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전승과의 대화일 뿐 아니라 전승과의 비판적 대화 또는 전승을 새롭게 현실화하는 대화라고 본다.

 

뷔르트바인은 예언자들은 성소에서 직업적으로 일하는 성소예언자들이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이다.

 

볼프는 최초의 문서예언자 아모스의 선포에서 독특성을 발견하였다. 자기 백성에게 심판을 선포한 아모스의 메시지는 전혀 새로운 메시지라는 것이다. 슈미트도 백성 전체를 향한 심판선포는 고대 근동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스스로도 알지 못하던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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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

 

2. 제2장

 

(1) 불충성에 대한 책망

 

제2장에서는, ① 제사장들이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지 않는 것을 책망하고(2:1~10), ② 유대인들이 이방 여자를 취하고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책망하고(2:11~16), ③ 사람들의 배교행위를 꾸짖고 있다(2:17).

 

원래 하나님은 레위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세웠다. 레위는 제사장족으로서 특별히 그의 자손 중 아론을 상대로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맺으셨다(대상 6:49). 그 언약은 하나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이었다. 제사장에게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불의가 없었으며, 화평과 정직한 중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사자로서 지식을 지키고 율법을 구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이 레위의 언약을 파기하고 정도에서 벗어나 사람들로 하여금 율법을 거치게 하고,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고, 사람들에게 율법을 편벽되게 하였다. 율법을 편벽되게 하였다 함은 제사장들이 율법을 해석할 때나 시행하는 때에 가난한 자에게는 가혹하게 하고, 부자에게는 순하게 하는 불공정성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라기 시대의 제사장들이 원본적인 제사장의 행동의 원리에서 이탈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도리어 율법을 범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제사장들을 백성들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신 것이다. 말라기는 여기에서 중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저주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고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 백성들의 죄

 

제2장 10절부터는 백성들의 죄를 열거하고 있다. 첫째, 백성들은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고 있다. 유대난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성결을 욕되게 하고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다. 또한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였다. 또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하기도 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조에 대하여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고, 그들이 드리는 헌물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받지도 않으신다.

 

열조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기타 족장들로 더불어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을 의미한다(출 19:5~6, 24:8). 이와 같이 성별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도록 된 것이므로 이방 여자를 취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이방 여자를 취하는 경우에는 이방 우상을 수입하게 되고 그 결과 성민의 자격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말라기는 백성들에게 경고한다. 그러므로 심령을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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