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2)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영화 속의 장면이 현실화되었고, 영식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추락한다. 본래 추락은 예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도 그렇고, 등산을 갔다가 발을 잘못 디뎌 추락하는 것도 그렇다. 고위 공무원이 뇌물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검찰청 앞에서 사진을 찍히는 것도 순간적인 추락이다.
이미 예고되어 있다면 그건 추락이 아니다. 추락의 순간성 때문에 인간은 순식간에 파멸되고 만다. 추락은 적당한 아픔을 주는 게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에 개구리를 메다 내치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즉시 사망이라는 치명적인 결과가 추락의 본질이다.
설사 목숨은 건진다고 해도 그 치명적인 상처가 주는 공포심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수시로 가위에 눌리고, 자신의 실존에 커다란 문신을 해놓고, 무거운 바위를 메달아놓은 것처럼 추락의 상흔은 영원히 존재한다.
우리나라 모텔은 많은 경우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시 쉬었다 가는 남자와 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주로 정식의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들어와 사랑을 나누고 떠난다.
방에 들어왔다가 불과 2-3시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나가는 나그네들은 삶의 긴 여정에 있어서 방황하는 철새들이다. 대실이라는 개념은 정해진 제한된 시간 동안만 방에 머물다가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성급하게 정사를 치루고 나간 방에는 사랑이 아닌, 욕망의 전차가 급하게 굉음을 내고 떠난 흔적이 남는다. 모텔 측에서는 그 더러운 욕정의 찌꺼기를 빨리 치우고, 시트를 갈고, 화장실 청소를 한 다음, 또 다른 손님을 받아야 한다.
다음 손님은 아직 전에 들어왔던 남자와 여자의 배설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오직 시트 천 하나만 깨끗하다는 이유로 다시 발가벗고, 그 위에서 허망한 욕정을 채우려고 발버둥친다. 분위기나 무드는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고 공간이다.
그들은 마땅히 머무를 둥지를 상실한 채, 삭막한 초원에서 순간적으로 도피하고, 커튼을 내려 어두운 공간을 만든 다음 그곳에서 실존의 고독함을 진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그들이 내는 신음소리는 환희라기 보다는 힘든 삶의 무게를 상징한다. 말초적인 쾌락을 얻는 것 같지만, 떠날 때 그들은 허무와 절망을 또 다시 가슴에 품고 나선다.
영식과 경희는 유부남, 유부녀로서 사랑을 나눌 때 주로 모텔을 이용했다. 우리나라 모텔은 미국의 모텔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모텔은 주로 도심지에서 벗어난 교외에 위치한다.
그야말로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다. 가족 단위나 연인끼리 여행하는 사람,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우리나라 모텔은 정 반대다. 주로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아니면 드라이브 코스 지점에 위치한다. 대개는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역 부근에 밀집되어 있다.
이용하는 사람들 중 여행자는 별로 없고, 주로 섹스를 하기 위해 남녀가 들어가는 곳이다. 들어갈 때부터 두 사람은 섹스를 할 의사의 합치가 되어 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모텔에 들어가면 일단 두 사람은 샤워를 하고 잠시 있다가 곧 섹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섹스가 끝나면 다시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나온다. 그 다음 곧 바로 헤어지거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모텔 이용 현황이다. 이곳에는 낭만도 없고 진정한 사랑도 부재한다. 오직 육체적인 쾌락을 위한 섹스의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0. 냄새 난다는 이유로 젊은 애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다 (0) | 2020.12.31 |
---|---|
작은 운명 (10) (0) | 2020.12.31 |
109. 스님을 주례로 모시려면 신랑도 삭발을 해야 한다 (0) | 2020.12.30 |
작은 운명 (41) (0) | 2020.12.30 |
작은 운명 (9) (0) | 2020.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