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2)

불과 몇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영화 속의 장면이 현실화되었고, 영식은 그 주인공이 되었다. 사람은 순간적으로 추락한다. 본래 추락은 예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도 그렇고, 등산을 갔다가 발을 잘못 디뎌 추락하는 것도 그렇다. 고위 공무원이 뇌물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검찰청 앞에서 사진을 찍히는 것도 순간적인 추락이다.

이미 예고되어 있다면 그건 추락이 아니다. 추락의 순간성 때문에 인간은 순식간에 파멸되고 만다. 추락은 적당한 아픔을 주는 게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에 개구리를 메다 내치는 것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즉시 사망이라는 치명적인 결과가 추락의 본질이다.

설사 목숨은 건진다고 해도 그 치명적인 상처가 주는 공포심은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수시로 가위에 눌리고, 자신의 실존에 커다란 문신을 해놓고, 무거운 바위를 메달아놓은 것처럼 추락의 상흔은 영원히 존재한다.

우리나라 모텔은 많은 경우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시 쉬었다 가는 남자와 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는 주로 정식의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들어와 사랑을 나누고 떠난다.

방에 들어왔다가 불과 2-3시간의 짧은 여정을 마치고 나가는 나그네들은 삶의 긴 여정에 있어서 방황하는 철새들이다. 대실이라는 개념은 정해진 제한된 시간 동안만 방에 머물다가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성급하게 정사를 치루고 나간 방에는 사랑이 아닌, 욕망의 전차가 급하게 굉음을 내고 떠난 흔적이 남는다. 모텔 측에서는 그 더러운 욕정의 찌꺼기를 빨리 치우고, 시트를 갈고, 화장실 청소를 한 다음, 또 다른 손님을 받아야 한다.

다음 손님은 아직 전에 들어왔던 남자와 여자의 배설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오직 시트 천 하나만 깨끗하다는 이유로 다시 발가벗고, 그 위에서 허망한 욕정을 채우려고 발버둥친다. 분위기나 무드는 찾아볼 수 없는 시간이고 공간이다.

그들은 마땅히 머무를 둥지를 상실한 채, 삭막한 초원에서 순간적으로 도피하고, 커튼을 내려 어두운 공간을 만든 다음 그곳에서 실존의 고독함을 진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그들이 내는 신음소리는 환희라기 보다는 힘든 삶의 무게를 상징한다. 말초적인 쾌락을 얻는 것 같지만, 떠날 때 그들은 허무와 절망을 또 다시 가슴에 품고 나선다.

영식과 경희는 유부남, 유부녀로서 사랑을 나눌 때 주로 모텔을 이용했다. 우리나라 모텔은 미국의 모텔과는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모텔은 주로 도심지에서 벗어난 교외에 위치한다.

그야말로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다. 가족 단위나 연인끼리 여행하는 사람,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싼 편이다.

우리나라 모텔은 정 반대다. 주로 도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아니면 드라이브 코스 지점에 위치한다. 대개는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역 부근에 밀집되어 있다.

이용하는 사람들 중 여행자는 별로 없고, 주로 섹스를 하기 위해 남녀가 들어가는 곳이다. 들어갈 때부터 두 사람은 섹스를 할 의사의 합치가 되어 있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다.

모텔에 들어가면 일단 두 사람은 샤워를 하고 잠시 있다가 곧 섹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섹스가 끝나면 다시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나온다. 그 다음 곧 바로 헤어지거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신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모텔 이용 현황이다. 이곳에는 낭만도 없고 진정한 사랑도 부재한다. 오직 육체적인 쾌락을 위한 섹스의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109. 스님을 주례로 모시려면 신랑도 삭발을 해야 한다

 

강 교수는, ‘사람들의 수준은 이렇게 현저한 차이가 나는구나! 끼리끼리 사는 게 편한데,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과 맞추어 산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불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정혜는, ‘사람이 배워봤자, 거기서 거기지, 무슨 차이가 난다고 저렇게 교만하고 건방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점점 정이 떨어져 나갔다.

 

강 교수는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이었지만, 결혼 초기에는 여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은 외계인의 수준이었다. 열심히 일을 하고, 학교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연히 부인도 자신을 인정해줄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더 이상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강 교수는 처갓집에서 그동안 도와준 은혜를 망각하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장인이 돈을 번 과정이 정당치 않다고 비난하거나,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죽으면 무엇하느냐는 어려운 종교적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부인과 각방을 쓰면서 가급적 늦게 귀가했다. 주로 학교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다. 결혼할 때에는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 아이를 갖자고 약속했으나, 그 후에는 정혜와 같이 공부에 친하지 않은 여자와 아이를 낳으면, ‘백치 아다다’의 소설 속 주인공이 호적에 올라갈 것을 염려해서 의도적으로 피임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혜의 옛 남자 친구 때문에 전쟁을 치뤘다. 그것은 정말 불행한 사건이었다. 결혼하고 꼭 일년이 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결혼 1주년 기념행사를 아주 특별하게 거행하기로 했다. 한달 전부터 치밀하게 행사를 준비했다. 행사프로그램은 강 교수가 만들었다. 비용은 정혜가 마련했다. 두 사람은 대형기획사 직원들처럼 행사 준비를 위해 회의도 많이 했다.

 

결혼식을 올린 날은 12월 12일이었다. 원래 결혼날짜를 잡을 때에는 강 교수의 의견은 전혀 반영이 되지 않았다. 워낙 재력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강 교수측은 결혼에 관해 아무런 발언권이 없었다. 돈 한푼 내지 않고 공짜로 결혼식을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옛날 노예가 농장에 팔려가는 신세와 비슷했다.

 

노예는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거래시장에 끌고 가서 그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넘기면 그만이지, 노예가 무슨 날짜를 택일해서 다른 주인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강 교수 부모는 전통적으로 절에 다니고 있었지만, 정혜 부모는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강 교수측은 오래 전부터 다니고 있던 절의 주지스님을 주례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어했다.

 

정혜 어머니가 그렇게 스님을 주례로 모시고 싶다면, 신랑도 스님처럼 삭발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느냐는 과격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꼭 하고 싶으면 신랑 측 참석자 전원이 삭발하고, 회색옷으로 통일해서 와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신부도 삭발을 시키겠다고 했다. 당시 야당 정치인들이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혜 어머니는 강 교수측에 삭발뿐 아니라 결혼식을 하기 전에 최소한 일주일은 단식을 하고 와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 부모는 자신들이 3대째 다니고 있는 절의 주지스님을 주례로 모시고 싶었다. 그래서 강 교수에게 삭발을 하자고 권유했다. 강 교수는 그때만 해도 젊었기 때문에 삭발을 하고 결혼식장에 나타나면 신랑이 폭력조직의 깍두기로 보일 것이 아니냐고 걱정했다.

 

또한 자신도 국회의원으로 오해받을 것이 아니냐고 했다. 옆에서는 그러면 삭발을 하고 가발을 쓰고 신랑입장하면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랬더니 정혜측에서는 주례를 서는 스님도 가발을 쓰고 올 것이냐고 물었다.

 

정혜 어머니도 서른 살이 될 때까지는 친정 부모를 따라 절에 다녔다. 그런데 남편 사업이 어려워서 부도 직전에 있을 때 동네 사람 따라 교회에 가서 100일 동안 새벽기도를 다녔더니 큰 공사를 따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다. 그 새벽기도 덕분에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고, 다시 사업이 활성화되었다.

 

그런데 그 후부터는 이상한 징크스가 생겼다. 전부터 같이 절에 다니던 사람들이 정혜 어머니에게 간청을 해서 하는 수 없이 절에만 갔다 오면 일주일 이내에 남편 회사에서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 중에 누가 병원에 다녀와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6일 동안 아무런 사건사고가 없어서 이번 주는 잘 지나가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있으면, 마지막 7일째 되는 날에 정혜 어머니는 생리통이라도 도져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을 10번이나 겪은 다음부터는 정혜 어머니는 더 이상 무서워서 절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정혜 어머니와 같은 절에 다니던 한 보살은 종교를 바꾸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무슨 변명을 하려고 그러느냐고 걱정을 했지만, 정혜 어머니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은 다음은 그때 가서 문제이고,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생리통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화를 냈다.

 

결국 정혜 어머니는 절에 가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그 다음부터는 더욱 분발해서 금요일 철야기도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새벽기도 때도 교인들 가운데 제일 먼저 나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목사님 눈도장을 찍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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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1)

유부남과 유부녀가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무방비상태다. 자신의 배우자들이 무엇을 의심하고, 은밀한 관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아니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만약 들켰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당장 자신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사랑의 감정을 나누고, 육체적인 쾌락과 순간적인 쾌감을 느낄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나미가 들이닥쳤다. 화산이 폭발하고 성난 이리떼가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그게 법과 현실의 괴리다. 윤리규범과 상식적인 법감정의 차이다.

어찌 되었든, 경희는 나름대로 많은 것을 갖춘 젊은 여자다. 교양도 있고, 센스도 있고, 성관계에 있어서도 영식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런 여자를 남자라면 당연히 보호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위해로부터 막아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갑자기 닥친 상황에서 남자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식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남편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경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경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게 사람의 이중성격이다.

일이 잘못되면 두 가지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취한다. 감사와 원망, 이 두 가지는 항상 따라다닌다.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가 우세하면 다른 한 쪽은 묻혀 버린다. 그냥 사라져 버린다.

남편이 그렇게 의심하고 뒤를 쫓는다는 것을 예상했으면 당연히 자신에게 이야기해 주고, 만나지 말든가 더 조심했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영식은 경희를 탓했다. 물론 속으로만 탓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영식은 경희로부터 그녀의 남편이 경희를 의심하고 뒤를 쫒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

물론 경희 자신도 남편이 자신을 의심하고 사람을 시켜서 현장까지 잡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식에게 일체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다.

영식은 유부남이었지만 경희를 만날 때 자신의 부인이 경희 남편처럼 크게 문제 삼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식은 경희의 경우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경희 남편의 성격이나 예상되는 행동은 오직 경희만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희로서는 영식을 만날 때, 적어도 경희 남편이 경희가 바람을 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 조심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영식은 이런 상황에서 경희를 탓하는 것은 결코 인간적인 사고나 행동은 아닐 것이다. 태초부터 사람들은 남의 탓을 하기 시작했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으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자 아담과 이브는 뱀의 탓과 먹으라고 권한 이브의 탓을 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가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했다. 이브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뱀의 탓으로 돌렸다(창세기 3장 12절-13절).

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그와 같은 변명과 남의 탓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에도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끊임없이 남의 탓을 한다.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이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이든 남의 탓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이 먹어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이불을 들추고 사진을 찍고, 때리고 욕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을 떠나서 얼마나 수치스럽고 혼란스럽겠는가?



작은 운명 (9)

은영이 일일주식회사에 들어온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림은 중학교 때부터 남다른 소질을 보여 열심히 했고, 그래서 전공으로 삼았으나, 막상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가 어떻게 일일주식회사에 사원으로 들어왔는데, 입사한 지 얼마 있지 않아 사장 눈에 띄어 비서로 발탁되었다. 사장은 은영을 보고, 자신의 취향에 딱맞는 얼굴과 몸매,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회사 다른 임원들이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비서실에서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은영은 비서로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사장 비서로서 차심부름이나 하고, 개인적인 심부름만 하는 정도였다. 그 이상으로는 은영의 입장에서 회사 업무를 처리할 능력도 없었다.

회사에서 사장 비서는 상당한 힘을 가진다. 임직원들이 비서에게 잘 보여야 편하기 때문에, 비서는 사장 이외의 사람들에게 굽실거릴 이유가 없다. 만일 회사 임직원들이 비서에게 잘못 보이면, 비서는 사장에게 그들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모함을 한다. 그러면 사장은 비서의 말만 듣고 임직원을 해고하기도 한다. 아니면 한직으로 내쫓아버린다.

지금까지 대기업의 비서로 들어가 출세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여자로서 그룹의 회장에 잘 보이면, 해외여행을 수행하고 다니다가 정을 통하고 아예 애인으로 신분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이라도 하나 낳으면 완전히 팔자를 고친다.

은영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났다. 그리고 그 여파로 아버지는 감방까지 갔다왔다. 징역을 1년 살고 나왔다. 은영은 동생 2명과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입장이 되었다. 아버지 옥바라지도 모두 은영의 몫이었다.

이때 만난 사람은 유부남이었다. 은영에게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은영은 자연스럽게 그 유부남의 애인이 되었다. 은영은 집안 사정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 사람과 연애를 했고,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처음 어느 작은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에도 그 남자는 은영에게 명품 가방이나 옷을 사주고, 돈을 넉넉하게 주어서 회사에서는 은영이 부잣잡 딸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은영이 예뻐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상하게 처음 취업했던 회사에서도 남자 상무가 치근덕거렸다. 회식 자리에서도 그 상무는 은영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노래방에도 데리고 가고, 꼭 은영을 택시에 태워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은영은 그런 것이 느끼하고 싫었다. 나이 든 상사가 자신에게 성희롱을 하는 것같고, 여자로서 생각하고 꼬셔서 성관계를 하려는 의도를 간파하고는 정말 싫었다. 그래서 그 회사에서도 몇 달만에 그만두었다.

다만, 직장이 아닌 밖에서 만난 유부남인 애인과 연애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 유부남의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유부남과 결혼한다는 생각도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답답한 현실에서 남자 친구 정도로 생각하고 나중에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헤어질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은영은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1년 만에 은영의 가까운 여자 친구와 애인이 되면서 은영을 멀리했다. 그때 은영이 받은 충격은 정말 대단했다. 정말 자신이 좋아했고, 순수한 첫사랑이었고, 첫경험이었다.

물론 그 남자친구와 은영의 여자 친구는 그 후 헤어졌지만, 은영은 이 일로 인해서 남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남자로부터 받은 트라우마가 무의식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를 별로 믿지 않게 되었고, 섹스에 대한 관념도 무뎌졌다.

108. 영화관에서 코를 골다가 망신을 당한 대학 교수

 

그 다음 날 신문을 보니 강 교수의 눈에 이런 기사가 들어왔다. ‘어떤 공무원이 직장 동료와 불륜을 맺었다는 혐의로 직장에서 파면되었다. 법원에서는 직장 내의 불륜행위가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 공무원의 업무수행에 영향을 줬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간통죄가 위헌으로 선언된 이상 이는 윤리위반의 문제일 뿐, 더 이상 형사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위 정도가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해당 공무원에 대한 파면처분은 비위행위 정도에 비해 과중해서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강 교수는 이 기사를 보고 정말 명판결이라고 쾌재를 불렀다. 판결을 한 판사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꿰뚫고있는 현명한 사람이며, 불륜을 한 공무원을 파면처분한 행정청의 담당자들은 구태의연한 성윤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데, 공무원이 불륜을 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덕과 윤리문제이지, 법으로 공무원을 파면시키면 되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강 교수는 바쁜 와중에도 그 판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정성껏 작성해서 발송했다. 물론 자신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본명이 아닌 가명을 사용했다.

 

편의상 강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정성교라고 했다. ‘성교’라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라서, 성교를 한글로 쓰지 않고, ‘聖橋’라고 썼다. ‘saint bridge'라는 의미였다.

 

아무튼 강 교수는 사랑과 섹스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연구심과 학구열이 높았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이 강의하는 과목에 대한 연구는 할 시간이 없었고, 강의 시간에도 불필요한 잡담이나 많이 했다.

 

강 교수는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성에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강의에 꼭 필요해서 불가피하게 성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잘 못하는 독일어로 했다. 성기를 말해야 하는 경우에는 라틴어로 했다. 그래서 다른 교수들이 강의 도중 말을 잘못해서 학생들에게 성희롱으로 대자보에 이름이 올라가거나 me too 운동 때 파면되고 감방에 가는 경우에도 강 교수는 성에 관해 아주 초연한 모범적인 교수로 학내외에서 칭송이 자자했다.

 

강 교수는 워낙 인물이 좋았고, 정치나 사회문제, 기타 학교 재단의 비리, 사회적 위선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감 없이 했고, 벤츠 스포츠카를 뚜껑 열리는 것을 타고 다녔고, 이태리 명품 옷이나 가방, 선글래스, 시계 등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일부 머리가 빈 학생들 사이에서는 명 교수라고 인기가 좋았다.

 

특히 학교 앞에서 원룸을 얻어 남학생과 여학생이 share를 하면서 동거를 하고 지속적인 성관계를 아무 부담없이 하고 있는 학생들은 강 교수를 대부(godfather)로 부르면서 극도의 존경심을 표했다.

 

학생들이 강 교수를 대부라고 부르는 것을 몰래 알게 된 강 교수는 그 다음부터는 영화 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 역을 맡았던 영화 배우 말론 브란도의 흉내를 내고 다녔다. 그랬더니 강 교수의 인기는 천정을 뚫고 창공까지 날아갈 정도였다.

 

이런 기이한 현상을 보고 그 대학교의 다른 교수들도 강 교수의 성공사례를 모방하여, 어떤 여교수는 마릴린 몬로, 남자 교수는 파바로티 흉내를 냈지만, 기본적으로 바탕 얼굴과 체형이 뒷받침되지 못해 모두 실패했고, 학생들로부터 오히려 저질 교수라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그 교수들 모두 사실상 강 교수 때문에 빚게 된 참사로서 실질적인 피해자였다.

 

다시 강 교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보자. 강 교수는 결혼하고 나서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부인 정혜가 한국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같이 영화관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같이 간 적이 있다.

 

영화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강 교수는 시작할 때부터 ‘The End’ 자막이 나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도중에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과 성관계를 하고 골아떨어져 코를 고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마침 강 교수가 주인공과 비슷한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정혜를 비롯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코를 고는 소리로 알고 있다가 주인공이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도 강 교수는 계속 똑 같은 강도로 코를 골고 있었다. 강 교수 주변의 관객들은 영화스피커가 고장난 것으로 잘못 알았다.

 

강 교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탄 오토바이가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아서 부르릉 소리가 크게 날 때를 맞취서 방구를 세게 뀌었다. 이때는 영화 스피커소리와 똑 같아서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주인공이 코를 골던 장면은 끝나고,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범인을 추격하고 있는데 왜 스피커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가 계속 나느냐? 엉터리 영화다!”라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강 교수는 잠에서 깨었다. 강 교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더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맞아요. 엉터리 영화다. 돈을 환불해주세요.”

 

옆에 있던 정혜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혜는 속으로, ‘이런 사기꾼 같은 인간이 내 남편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코를 골았으면 빨리 코골이수술을 해서 코를 골지 말아야지, 어떻게 지가 잘못해놓고 죄 없는 영화관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냐?’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정혜는 남편인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당신이 코를 곤 걸 몰랐어요?”

“무슨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있었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그 머리 하얀 남자가 코를 골아서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

 

이런 식으로 한국 영화를 싫어하니, 강 교수는 영화를 보아도 주인공 이름은 하나도 알 수 없고, 그들이 극중에서 하는 말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토리도 뻔하고, 대사도 유치했다. 그걸 진지하게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재미 있고,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는 정혜를 비롯한 젊은 남녀 쌍쌍의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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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성관계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지 못하게 하다

 

강 교수가 TV를 보고 있으니, 고위공직자가 별장에서 여자와 춤을 추고 성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검찰에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사진에 찍힌 남성과 문제가 된 고위공직자가 동일한 인물인지에 대해 논쟁이 되고 있었다. 동영상 판독이 과학기술로는 명확하게 되지 않는 것인 모양이었다.

 

강 교수는 이 사건이 너무 재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람을 피는 일에도 중요한 연구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연구교까지 동원해가면서 그 사건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분석했다. 강 교수는 이 사건을 통해서 깨달았다.

 

‘아! 세상에는 정말 비밀이 없구나! 잘 아는 사람들과 별장에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노는 장면까지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세상에 공개가 되다니, 정말 믿을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강 교수가 별장성접대의혹사건 때문에 큰 충격을 받고 있는데, 언론에서는 또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비슷한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두 명의 남자가 호텔 침대에서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이 유포되었다. 동영상 중 한 명은 유력 정치인 A장관으로 지목됐다. 얼굴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또 다른 주인공을 자처하는 남자가, "A장관이 맞고, B호텔에서 자신의 동의 없이 동영상이 촬영됐다"고 공개 주장하고 나섰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국가로서 동성애는 여전히 처벌대상이다.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은 "해당 동영상을 정밀 분석했으나 해상도가 낮고, 프레임이 부족해 남성 두 명 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동영상이 실제 촬영된 것은 맞지만, 수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아무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 보도를 보면서 강 교수는 자신이 직접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가서 검찰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포기했다.

 

말레이시아 동성애 장면 촬영사건에서도 보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전 세계적으로 섹스동영상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과거에 유명 인사, 연예인들의 섹스동영상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섹스동영상촬영은 법에 금지되어 있고, 처벌대상이 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강 교수는 바람을 필 때 모텔에 들어가면서부터 여자의 핸드폰의 전원을 끄도록했다. 물론 자신의 핸드폰도 전원을 끄고 그것을 상대방 여자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그것은 법원에서 재판을 할 때 방청객들이 녹음이나 녹화를 못하도록 경고를 하는 것과 같았다. 강 교수는 그렇게 하는 이유를 같이 모텔에 들어가는 여자에게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전원을 켜놓으면 잘못하면 저절로 배우자의 전화로 연결될 소지도 있고, 위치추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론이었다.

 

한번은 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혼자 사는 여자와 연애를 하는데, 갑자기 그 여자가 섹스동영상을 찍어놓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에 그러한 분쟁이 조정이 되지 않아서 도중에 성관계를 중단하고 모텔에서 밖으로 철수한 일도 있었다.

 

그때 강 교수는 그 여자의 숨은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석달간 서로 만나지 않도록 합의서를 썼다. 물론 전화나 문자메시지도 금지행위에 포함시켰다. 그랬더니 그 후 석달이 지난 다음 다시 만났을 때 그 여자는 모텔에 들어갈 때 아예 밧데리를 분리해서 강 교수에게 주었다.

 

강 교수는 자신의 학습효과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즉시 나타난 데 대해 대만족을 표시하고, 그날은 평소보다 세배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여자를 만족시켜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침을 제대로 준수한 데 대해서 감사의 표시로 밖에 나가 한우 투플러스 명품 안심고기를 10인분 시켜 둘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식사값만 무려 50만원이 나왔지만, 강 교수는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이차로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 각 5천씨씨를 마셨고, 안주로 프라이드 치킨 세 마리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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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5)

윤석과 혜경은 저녁 식사를 하고, 이태원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이태원은 역시 이태원이다. 아직도 일부 부대가 남아있고, 외국인 주거지역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영어로 된 간판이 많고, 외국거리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 있는 술집으로 가서 두 사람은 술을 많이 마셨다. 이상하게 혜경이 먼저 술에 취했다. 혜경은 오늘 따라 말을 많이 했고, 왠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술에 취한 혜경은 윤석에게 자신은 하얏트 호텔에서 자고 갈테니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윤석은 알았다고 하면서 택시를 잡아 하얏트 호텔로 갔다. 그리고 호텔로 가서 다시 혜경을 데리고 지하 1층으로 가서 술을 더 마셨다.

그런 다음 호텔 방을 하나 잡아서 혜경 보고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 혜경은 알았다고 하면서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방으로 들어갔다. 윤석은 로비라운지에서 커피를 시켜 창밖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술도 좀 깨고,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조용히 커피를 마시고 싶기도 했다.

하얏트 호텔 로비라운지에서 보는 한남동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로비에서는 피아노 연주를 조용히 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난 다음, 윤석은 일어나기 전에 혜경에게 전화를 했다. 잘 자라는 말을 하고, 이제 자신은 집으로 들어간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혜경은 전화를 받았는데, 울고 있던 목소리였다. 그러면서 알았다고 하면서 윤석에게 조심해 들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윤석은 그런 전화를 받고 그냥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일단 집으로 전화를 해서 오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고 아주 늦을 것이니 먼저 자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혜경의 방으로 올라갔다. 혜경은 그러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냥 돌아가라고만 했다. 윤석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이태원으로 가서 혼자 술을 마셨다. 혜경은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윤석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윤석은 마음이 아팠다.

혜경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혼자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윤석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고, 상의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서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윤석은 그냥 혜경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작은 운명 (40)

지금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간통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결혼하자고 꼬여서 음행의 상습 없는 여자의 정조를 빼앗는 행위를 예전에는 범죄로 규정하고 징역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혼인빙자간음죄도 없어졌다.

혼인빙자간음죄가 없어졌기 때문에, 예를 들면 가짜 의사 행세를 하면서 여자를 꼬여서 결혼할 것처럼 몇 달 동안 육체관계를 하고 나중에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 처벌할 방법이 없다.

설사 검사를 사칭했다고 해도, 검사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으면 처벌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런 거짓말로 여자로부터 정조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돈까지 편취를 했다면, 그것은 정조사기죄가 아니라, 재물사기죄라는 재산범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녀 간의 육체관계가 폭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면 형법에서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예전과 달리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도 당당한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간통이 범죄가 아니고, 단지 민사상 위자료만 물어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통하다 걸리면 기껏해야 1천만원이나 3천만원 정도 물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돈 있는 사람들도 있다. 더군다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제적 무자력자의 경우는 더욱 한심하다.

그 사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기도 어렵지만,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받아야 강제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그래서 배째라고 나오면 상간자를 상대로 돈을 받아낼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상간자를 때리면 때린 사람만 상해죄나 폭행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그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도 당당한 경우가 많다. ‘내가 당신 아내와 성관계를 한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범죄는 아니다. 그러니까 억울하면 나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하면 되지, 왜 여기 와서 큰소리냐. 이 바보 같은 사람아. 당신이 그런 식이니까 아내가 바람을 피는 것 아니냐? 이혼하면 되지 이런 식으로 해서 여자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어리석은 사람아!’

물론 말로 이렇게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상간자는 남편 되는 남자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세상이다. 세상이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영식과 경희는 달랐다. 영식은 크게 맞는 않았지만 심한 공포심을 느끼며 무한한 절망에 빠졌다. 매우 비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영식의 아내가 경희문제를 가지고 따질 때, 그만 만날 것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영식은 현장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경희의 남편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았다.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이해가 되었다 만일 영식의 아내가 그런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면 영식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영식의 경우는 더 심한 태도를 보였을 것 같았다.

영식은 경희의 남편과 그 일행, 그리고 모텔 종업원, 세 남자를 보면서 오직 자신만이 비정상적인, 나락에 추락한 불쌍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자신은 이미 남자의 대열에서 이탈한 초라한 존재가 된 것이었다.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왜 이렇게 추잡한 존재로 추락했을까? 섹스라는 것이 매우 더럽게 느껴졌다. 구역질나는 존재였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내가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던 것일까?’

자신은 인격도 없는 아주 하등동물로서 그냥 세포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사람의 인격은 배우고, 스스로 절제하고, 바르게 살아야 형성되는 것일 뿐 아니라, 옷을 입고, 나체 상태에서 음부를 노출시킨 상태에서는 인격 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식은 지금 인격을 상실한, 아니 애당초 인격이 없었던, 비인격자 내지 무개념자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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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미

 

사랑은 외로울 때 안식처를 찾아가는 것이다. 내 마음이 평안하게 쉴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사랑을 느낀다. 사랑 때문에 나는 고독에서 벗어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는다. 길을 걸으며 길의 의미를 깨닫는다. 바로 네가 옆에 있기 때문이다. 함께 걷는 동반자, 나는 너 때문에 시간을 잊어버리고, 공간을 새롭게 볼 수 있다. 사랑 때문이다. 사랑이 주는 의미라고나 할까.

 

내 옆에 존재하는 너는 어떤 의미일까? 비록 너의 얼굴을 잊어버려도, 너의 음성을 기억하지 못해도, 너는 내 곁에 서 있다.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그것이 너의 나에 대한 의미이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너는, 영원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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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8)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경희의 남편 자신에 대한 자학행위였다. 여자의 순결성, 지조가 망가진 데 대한 분노였다. 매우 이상한 형태의 심리작용이었다.

경희 남편은 경희에게 상해를 가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냥 뺨만 때렸을 뿐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아내에 대한 실망감, 미움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의 혼돈상태였다.

그러나 경희 남편은 영식에게는 죽일 것처럼 포악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몇 대 때리지는 못했다. 같이 갔던 일행과 모텔 종업원이 가운데서 말렸기 때문이었다. 남편에 대한 폭행은 왜 했을까?

그것은 아내를 빼앗긴 데 대한 분노였다.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도둑맞은 데에 대한 억울함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모텔 방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던 상황에 대한 수치심, 더러움이었다.

한 밤중에 자고 있는데 도둑이 침입하여 금고에 있는 1억원의 현금을 훔쳐갔다고 생각해 보자. 주인은 그런 사실을 알고 심한 충격을 받아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린 돈 때문에 너무 아깝고 억울해서 오래 동안 잠도 잘 못자고, 괴로워한다.

하물며 자신의 부인을 도둑맞은 심정은 어떨까?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육체, 그리고 정신, 영혼을 모두 한꺼번에 도둑맞은 피해자인 남편은 아주 깊은 절망감에 빠져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간통죄가 형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배우자 있는 사람이 배우자 이외의 다른 사람과 성교를 하면 징역을 보내는 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에 왜 법에서는 간통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불륜의 사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남자와 여자를 감방에 집어넣었던 것일까?

징역형의 목적이 범죄인인에 대한 교정과 교화에 있다고 하면, 간통범죄인은 징역을 살면서 무엇을 회개하고, 어떤 범죄성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를 해야 했던 것일까?

한 때 날리던 인기연예인들도 많이 간통죄로 구속되고, 그로 인해 연예계를 떠났다. 그들은 유부남과 유부녀를 사랑했던 죄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그런 간통죄가 불합리하고,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형법이 남녀 간의 애정관계에 관여하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적 고려가 지배적이었고, 끝내 국회가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간통죄는 헌법위반이라는 다수의견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간통죄가 없어진 지금에도 경희와 같이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거나, 육체관계를 하면, 여전히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형법상 범죄행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형법 이외의 다른 법률, 즉 민법에 따라 배우자에 대한 부정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간통죄가 존재하던 시절에는 간통현장에서 수많은 불상사가 있었다.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나체로 있는 장면을 목격한 남편은 이성을 잃고 공격을 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가해자들은 잘못이 있었기에 꼼짝 못하고 당했다.

난폭한 남편은 상간자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척추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칼로 찔러 살인도 했다. 자신의 아내의 음부를 불에 담군 인두로 지진 사건도 있었다.

현장에서 들킨 간통행위자들은 당황하여 모텔방에서 뛰어내리다가 척추를 다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내를 빼앗긴 남편이 가해자인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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