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4)
정 사장은 간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정신 없이 잠을 잤다. 오늘은 출장 마지막 날이라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다. 그래서 시내 백화점에 가서 쇼핑이나 하고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아침 8시경 정 사장은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어서 속이 아팠다. 그래도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호텔 방은 가관이었다. 탁자에는 와인병이 널리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먹다 만 안주가 쾌쾌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정 사장은 분명 은영이 방에 들어와 같이 술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더 이상 자세한 일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 사장은 걱정이 됐다. 혹시 자신이 은영에게 실수라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으나, 별로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일어날 때 보니, 옷도 다 벗고 완전 나체로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은영이 방에 있을 때 내가 발가벗고 추태를 부린 것은 아니었을까 걱정도 되었다.
샤워를 마친 다음 정 사장은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옷을 입었다. 그리고 시계를 차려고 보니 시계가 없었다. 아차 싶었다. 그 비싸고 귀중한 시계를 어디에서 잃어버린 것일까?
분명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올 때에도 자신은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떻게 시계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정 사장의 방에는 은영이 혼자 들어와서 같이 술을 마신 일밖에 없다.
하기야 나이를 먹었고, 특히 어제 저녁 식사 때부터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치매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밖에서 시게를 풀어놓고 호텔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아무리 방안, 여기 저기를 찾아보았다. 테이블 위, 화장대 위, TV 옆, 방바닥 등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정 사장은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같이 출장 온 김 이사를 불렀다.
“김 이사. 이상하다. 내 시계가 없어졌어.”
“어디에서 없어졌을까요? 어제 식당에서 식사를 하시고, 2차로 술집에는 가지 않고, 바로 룸으로 들어오셨잖아요? 그 다음 외출하셨었나요?”
“아냐. 저녁 먹고 곧 바로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잔 거야. 이상하다. 분명 내가 시계를 차고 들어온 것 같은데... 밖에서 시계를 풀어놓을 일이 없었잖아?”
“사장님 방에 호텔 직원이 들어왔었나요? 혹시?”
“아니 아무도 안 들어왔었어. 다시 한번 잘 찾아봐.”
“에. 그런데 이 좁은 방에 어디 있을 곳이 없습니다. 제가 프로트에 가서 알아볼 게요.”
김 이사는 방을 뒤지면서 쇼파 자리에 여자 스카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분명 일본에 출장와서 은영이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였다. 그것을 경황이 없던 정 사장도 미처 치우지 못한 채, 김 이사를 시계 때문에 방으로 불러서 시계를 찾아보도록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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