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4)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윤석은 마치 자신이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럽 스타일의 제복을 입은 도어맨이 경례를 하면서 윤석을 맞았다. 웅장한 호텔 건물은 웬지 묵직해 보였고, 무게가 있었다. 그래서 윤석은 즐겨 이 호텔을 이용했다. 특히 1층 로비라운지는 천장이 높아서 마치 자신이 유럽 어느 도시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혜경은 미리 와 있었다. 오늘 따라 밝은 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늘상 들고 다니는 검은 색의 샤넬백이 유난히 돋보였다.
“무척 피곤해 보여요.”
“괜찮아. 손님이 많아서 하루 종일 바빴어. 잘 있었어?”
“네”
“식당은 괜찮아?”
“불경기라 손님이 많이 줄었어요.”
“하긴 요새 다 그렇다고 그래. 웬만한 곳은 모두 현상유지도 어렵대.”
“힘들어도 참고 열심히 해야지요. 뭘”

윤석은 혜경의 밝은 모습이 맘에 들었다. 혜경은 항상 미소를 띄고 세상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강남에 일식당을 오픈할 때부터 주위에서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잘 하고 있었다. 워낙 열심히 노력을 하고, 타고난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혜경의 식당에는 꾸준히 손님이 있었다.

혜경은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었다. 한눈을 팔지 않고, 자신의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일을 재미있어 했다. 하루 하루 재미 있게 보내다 보니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봄이었다. 혜경은 윤석이 원장으로 있는 줄 모르고, 친구 소개로 윤석의 병원을 찾아왔다. 혜경의 여동생이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같이 따라왔던 것인데, 알고 보니 윤석이 원장으로 있었고, 수술을 할 의사였다.

윤석이 혜경의 여동생을 만나려고 할 때, 혜경은 정말 놀랐다. 그렇게 해서 오랜만에 다시 윤석과 혜경이 연락이 된 것이었다.

윤석은 혜경의 여동생 수술을 최대한 성의를 가지고 열심히 해주었다. 윤석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드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가처럼 온 정성을 다 바쳤다. 간호사들도 그 수술 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졌다고 난리였다. 혜경의 여동생도 수술 결과에 아주 만족했고, 윤석에게 매우 고마워했다. 혜경은 윤석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식사대접을 한다고 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의미  (0) 2020.12.27
작은 운명 (38)  (0) 2020.12.27
작은 운명 (37)  (0) 2020.12.26
작은 운명 (36)  (0) 2020.12.26
작은 운명 (35)  (0) 2020.12.24


작은 운명 (37)

영식과 경희의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져가면서 중간에 다소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첫 번째는 영식의 부인이 어느 날 영식이 늦게 들어오던 날, 영식의 옷에서 여자 향수 냄새가 나서 의심을 하고 소지품을 뒤져보았다.

그랬더니 회사에서 회식을 하고 늦었다고 하면서, 주머니에서 신용카드 결제한 것이 나왔는데, 어떤 식당과 술집이었다. 그래서 영식에게 물었더니, 계속해서 회사에서 회식하고 들어왔다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 후 영식의 부인은 계속해서 의심의 눈으로 영식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식이 샤워를 하고 있는 사이에 부인은 영식의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는 것을 보았다. 경희와 주고받은 내용이었다. 별 내용은 없었지만, 일단 부인은 경희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부인은 영식에게 경희의 존재를 물었고, 난리를 쳤다. 그러자 영식은 그냥 몇 번 만나 식사만 한 사이라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썼다. 그리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영식은 이런 집안에서 있었던 상황에 대해 경희에게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로는 경희와의 관계에 대해 더욱 철저하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영식에게 경희가 있게 된 이후부터는 부인과는 절대로 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전에는 한 달이나 한 달 반 정도에는 한번 정도의 관계를 마지못해 가졌으나, 경희와 관계를 하면서부터는 거의 부인과는 관계를 하지 않고 지냈다.

부인도 특별히 영식에게 관계를 하자고 보채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섹스리스 부부가 된 것이었다. 그러자 부인도 점점 영식에게 있어서 경희라는 여자의 존재에 대해 심각한 관계라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한편 경희는 자신의 남편에 대해 영식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숨기고, 문제가 생길 상황이면 친구들과 짜고 알리바이를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핸드폰 관리도 아주 첮러하게 했다. 핸드폰에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남편이 절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동안은 절대로 영식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예전과 똑 같이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희 입장에서는 남편이 눈치채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평일 오후에 경희와 영식은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서울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서종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마침 늦가을이라 곳곳에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있었다. 북한강은 정말 아름답다.

서울 주변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곳이다. 그래서 강변을 끼고 러브호텔이 많이 들어서있다. 특히 무인텔도 있고, 익명의 사랑을 원하는 커플에게 있어서, 이런 외딴 곳에 떨어져있는 모텔은 비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장소로 최적합한 곳이다.

부부가 이런 곳에 와서 머물지는 않는다.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혼의 커플들도 많이 있겠지만, 평일 낮에 모텔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불륜의 관계인 경우가 많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은 거의 100%다.

영식과 경희, 두 사람은 자주 다니는 모텔에 들어가 진한 사랑을 나누었다. 옆 방에서도 방음이 되었을텐 데, 정사를 나누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경희는 다소 민망했다. 영식은 그 소리에 더욱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뜨거운 정염을 불태우고 난 다음 잠시 허망한 침묵에 들어갔다.

이 때 방에 구내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종업원이었다. 영식의 자동차를 다른 사람이 살찍 부딪혀서 접촉사고를 냈으니, 주차장으로 와보라는 전화였다. 영식은 옷을 대충 입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때 방문에는 경희의 남편과 다른 남자가 한 명 서있었다. 그리고 모텔 종업원이 옆에서 호실을 가르키고 있었다. 경희 남편은 곧 바로 영식을 붙잡고 방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종업원은 밖에 있고, 다른 남자도 방안으로 들어왔다. 큰소리가 나면서 곧 방안으로 사람들이 들어닥치자, 경희는 옷을 벗은 상태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남편이 온 것을 알고 혼비백산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때 느꼈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말 순간적인 상황의 변화에 심장이 떨어져 나갈 뻔 했다.

그들은 방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영식과 경희에 대해 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 방안에 있는 크리넥스에 묻은 정액까지 증거로 수집했다. 샤워한 수건까지 증거물로 가방에 넣었다.

경희가 누워있는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붙이고 속까지 샅샅이 뒤졌다. 경희는 그야말로 100% 알몸이었다. 가슴과 음부까지 다 노출되었다. 남편과 일행의 이와 같은 행동은 정말 매우 거칠고 야만적인 것이었지만, 그 야만성은 간통이라는 부도덕성 때문에 순간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였고, 아무도 그에 대해 저항하지 못했다.

남편은 경희의 뺨을 몇 차례 때렸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경희가 딱히 맞을 일을 하지도 않았지만, 배울 만큼 배운 지성인이었고, 원래 성격이 남과 잘 싸우거나 특히 누구를 때리는 버릇은 없었다.

남편은 경희를 보자 무의식적으로 그냥 손이 올라갔다.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자신이 한때 사랑했고, 몸을 섞었고, 아이까지 낳은 여자다.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여자, 그것도 자신의 아내이자 자녀의 엄마인 여자가 다른 남자와 모텔방에서 누워있는 것을 보고 폭행을 했다. 더군다나 클리넥스를 보니 사정까지 한 것이 틀림없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38)  (0) 2020.12.27
작은 운명 (14)  (0) 2020.12.27
작은 운명 (36)  (0) 2020.12.26
작은 운명 (35)  (0) 2020.12.24
106. 남자가 바람을 피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  (0) 2020.12.23


작은 운명 (36)

영식은 가정적으로 별 불만은 없었다. 그냥 괜찮은 직장에서 중견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자녀도 별 탈없이 착실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인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주부였다.

경희는 남편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놀기를 좋아했다. 일만 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아무 말도 없이 잠만 자다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주말이면 골프와 낚시를 다니느라고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경제적인 여유는 있었지만 도대체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

문학을 꿈꾸었던 경희는 아름다운 소재로 대화하는 것을 원했지만, 결혼한 이후 남편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돈이 생기지 않는 시와 소설 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을 글쟁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한심한 족속으로 치부했다.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 경희는 절망했다. 그 절망의 벼랑끝에서의 몸부림이 오래 가다 보니 많이 지쳤다. 친구들이 부부동반으로 음악회를 가고 시적인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사랑이라는 추상성과 낭만성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하지를 절감하면서도 그 의미를 남편과 나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숨이 막혔다.

그런데 영식은 경희 남편과는 달랐다. 여자에 대해 매우 자상하고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경희를 만나도 자신이 모든 돈을 쓰며, 식당이나 찻집도 싸구려가 아닌 고급으로 골랐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만났다. 술을 마셔도 가급적 와인 같은 것을 찾았다. 실당도 돼지갈비집이 아닌 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곳을 택했다.

그러면서 경치 좋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갔고, 뮤지컬이나 연주회 같은 곳을 데리고 다녔다. 그럴 때면 경희는 마치 처녀 시절도 돌아간 것 같았다. 화장도 제대로 하고, 옷도 제대로 골라 입었다. 여자에게 그런 분위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남편은 이런 영식에 비하면 너무 비문화적이었다. 분명 대학까지 나온 사람인데, 지성인이라고 하기도 곤란했다. 밖에서 친구들과 돌러 다닐 때는 골프도 치고, 고급 술집에도 다닌다.

그런데 집에서 가족들과 무엇을 하려면, 꼭 돈을 아끼자고 하고, 쩨쩨하게 논다.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 같은 것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경희는 하는 수 없이 여자 친구들과 같이 아주 드물게 문화생활을 했다. 그런 것이 불만으로 쌓여만 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와 영식은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다 보니, 가까워졌고 어느 날 자동차 안에서 영식이 경희의 손을 잡게 된 것을 계기로 마침내 육체관계까지 하게 된 것이다. 자동차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드라이브를 나가 한적한 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다 보면, 서로 절제하지 못하고 깊은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자동차를 둘이 타고 다니는 것이 위험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몸을 섞고 서로의 정신적 교감을 위해 노력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수십 차례 주고 받았다. 더 이상 통화를 하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 마지막 순간의 아쉬움은 매일 되풀이되면서도 늘상 비슷했다.

남녀 사이의 아쉬움은 지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리움은 몸을 섞으면서 더해갔다.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잘 몰랐다. 육체에 대한 그리움인지, 같이 있던 그 분위기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처절한 극한상황에서의 탈출에 대한 것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고, 한적한 공원에서 과감한 행위를 시도하기도 했다. 만나면 곧 시도되는 퍼포먼스는 매우 동물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남자와 여자는 사회적 체면을 무시하고 실존의 몸부림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만과 원시상황, 동물로서의 변환은 모두 자연스럽게 용납되었다.

관계를 하면서도 경희는 아직 나이가 있었기 때문에, 피임에는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가는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외도를 하면서 남편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성적 만족도 얻었다. 그래서 오히려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도 가정을 잘 지키고,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도 예전보다 훨씬 더 원만하게 꾸려나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결혼하고 다른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진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아무리 남편과의 관계가 불만스러웠다고 해도, 이미 결혼한 몸이고, 아이들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있었기 때문에 외도는 어디까지나 TV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예외적인 일, 사랑의 일탈,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 주인공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14)  (0) 2020.12.27
작은 운명 (37)  (0) 2020.12.26
작은 운명 (35)  (0) 2020.12.24
106. 남자가 바람을 피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  (0) 2020.12.23
105. 너무나 성격이 다른 부부가 사는 법  (0) 2020.12.22


작은 운명 (35)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때 마다 처음과 똑 같은 망설임과 힘겨운 시도를 해야 하고, 그 힘든 노력을 되풀이해야 한다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 거기에 탐닉하지 않을 것이다.

낯선 이성과의 육체관계는 오로지 분위기 탓이다. 배우자와의 그것과 본질은 동일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행위의 장소와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똑 같은 실체를 놓고, 행위자만 그것을 애써 아주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지각하는 것에 불륜의 특징이 있다.

내용이 같은 실체를 행위자가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에 불과한 것을 본질이 전혀 다른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점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고,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 저명인사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수사나 재판까지 받는 것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되는 모습을 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리석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가? 그러한 연애, 성관계로 인해 그 사람이 얻은 행복감, 만족감, 감성적인 성취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러한 외도 또는 불륜, 의미 없는 사랑은 단순히 동물적인 섹스를 했다는 아렴풋한 기억뿐, 더 이상 아무런 흔적이나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불륜으로 문제가 생기고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면, 그 상대에 대한 증오감, 원한이 쌓이고 쌓여 육체관계 자체에 대한 더러움, 형이하학적인 경멸감까지 증폭될 것이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재벌들의 사생활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사랑에 대한 열정 때문에 연애를 하였지만, 막상 상대 여자가 혼외 자식이라도 낳게 되면, 두고 두고 골치 아프게 된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 많은 재산의 상속과정 때문에 가정의 행복은 산산조각 나고 만다.

동물의 Sex와 달리 인간의 Sex란 반드시 종족보존의 번식을 위한 본능적 욕구와는 다르다. 사실 인간은 Sex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이 문제는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Sex에 탐닉하여 Sex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Sex는 마약 이상으로 중요하며, 그 느낌의 다양성과 풍부성을 예찬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대개의 불륜에서 Sex에 대한 편견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그러한 자신의 견해와 인식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결코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다. 깨달았다고 해도 그 다음부터는 습관성이 가져온 구속력 때문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고 해도 상대방의 이해관계와 감정이 있기 때문에 벗어날 수도 없다. 그게 불륜의 시작과 끝이고, 인과관계의 사슬이다.

불륜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상상에 그쳐야 한다. 다른 이성과의 관계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가 구속되고, 영향을 받게 되는 전인격적인 문제, 몸과 마음 전체에 연관된 환경의 변화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106. 남자가 바람을 피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

 

정혜는 남편이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문화적 소양이 결여된 한심한 인간으로 보았다. 일만 하는 매우 이기적이고 감성이 없어 불쌍하다고 했다. 정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결혼한 다음 바람을 피는 남자가 나오면 몹시 흥분하면서 분개했다.

 

부잣집 딸과 결혼한 다음 나중에 바람 피는 주인공은 빨리 죽어야 한다고 저주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뒷바라지를 해서 판사나 의사를 만들었는데, 출세하니까 다른 여성 법조인이나 여성 의사와 결혼하는 장면이 나오면 방금 전에 맛있게 먹은 스테이크와 와인을 모두 토해냈다. 그 바람에 비싸게 새로 구입한 쇼파에 지독한 냄새가 배기도 했다.

 

이런 장면을 몇 번 옆에서 지켜 본 강 교수는 자신이 바람을 피는 것을 정혜가 알게 되면, 아내가 그 자리에서 기가 막혀서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되면 강 교수는 아내 정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살인죄나 업무상과실치사죄, 또는 자살방조죄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지 않나 걱정을 했다.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보았다. 변호사는 한 달 동안 법률검토를 했다고 하면서, 그런 경우에는 강 교수가 바람 핀 행위와 아내의 사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강 교수는 절대로 징역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아주 명쾌한 유권해석을 해주었다.

 

강 교수가 아는 유명한 신학대학교 원로 교수는 그렇게 되면 강 교수는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져 활활 타는 유황불에 던져져서 매우 극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고, 지옥에서는 다른 여자를 구경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여자 좋아하다 성폭력범으로 감방에 들어가서 징역 사는 동안 성관계를 하지 못하는 것도 상당히 고통스럽고 힘들 텐데, 그런 징역은 1년 내지 2년이면 끝나고 다시 나와서 또 성관계를 할 수 있겠지만, 지옥에서는 아무런 기한이 없는 영원한 형벌이라 지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여자와 살을 섞지 못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해서는 큰일 난다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강 교수는 이 교수님 말씀에 귀가 번쩍 뛰었다. 다만, 바람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서 유황불에 반드시 떨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강 교수는 조심스럽게 신학교수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교수님!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있었던 간통죄도 폐지되고, 혼인빙자간음죄도 폐지되었는데, 남자가 바람 좀 피웠다고 지옥에서 그렇게 심하게 할까요? 지금은 조선 시대와 달라서 프리섹스이고 오직 성적 자기결정권만 문제되니까, 혹시 지옥에서도 정상참작이 되어서 일년 정도 성관계를 금지하는 정도로 처리되지 않을까요?”

 

그랬더니 신학교수는 매우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심도 있게 연구를 해서 결론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학교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받고 ‘지옥론’에 관한 서적을 모두 찾아서 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강 교수가 잘 알고 있는 연세 많은 스님이 계셨다. 강 교수는 스님에게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연락을 했더니, 스님은 마침 절에서 내려와 강 교수 있는 곳에서 가까운 식당에 계셨다. 스님은 전립선암 판정을 받으셔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스님. 제가 만일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요?”

"교수가 왜 바람을 피워?“

“아니, 제가 지금 바람을 피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으로 결혼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연애를 하고 성관계를 하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요? 그리고 사실은 저희 아버님도 어머니 이외에 다른 여자와 바람을 많이 피웠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60살 때 30살 먹은 다방 여종업원을 건드려서 아이까지 낳았고, 그 아이는 외국으로 입양까지 시키셨어요. 그래도 아버님은 천국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용한 사주역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요.”

 

스님은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다 쓸데없고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야. 나는 절에 있기 때문에 금욕을 하고 지내다 보니 전립선이 나빠졌어. 그래서 남자는 절대로 금욕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 바람 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냐. 문제는 결혼해서 부인이 있는 사람이 바람을 피고 부인과 사이가 나빠지거나 가정에 소홀하게 되니까 문제인 거지. 그러니까 부인 몰래 바람을 피는 기술을 배워야 해. 그리고 바람을 피더라도 가정에도 잘 하고, 상대 여자에게도 마음 아프지 않게 잘 해줘. 그게 남자의 도리야. 옛날에는 왕이 수백명의 여자들을 잘 데리고 살았잖아?”

 

강 교수는 나중에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든지 상관 없지만, 혹시 어렵게 딴 교수 자리가 날라가지 않을까 고민을 했다. 교수 파면도 그렇고, 혹시 골프 치러 갔다가 벼락이 치고, 골프 아이온 채 때문에 네 명의 플레어어 가운데 강 교수만 머리 정수리에 벼락을 맞아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모두 미신이고 현대 과학문명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제쳐버렸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는 아주 정확한 유권해석을 받기 위해 유명하다는 역학자를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역학자는, “당신 사주와 관상, 손금, 발바닥금, 체형, 음성 등을 종합해 볼 때, 당신은 어쩔 수 없이 바람을 많이 피게 타고 났어. 그것 때문에 언젠가는 큰 화를 당할 거야. 그리고 당신에게는 절대로 좋은 여자는 나타나지 않아. 모두 이상한 여자들만 나타나서 달라붙을 거야. 그렇지만 타고난 운세와 운명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할 생각도 하지 마! 그걸 피하려고 하면 더 큰 화를 당하게 되는 거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 대목에서 강 교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왜 이상한 여자들만 내게 나타난다는 것이지? 정말 더러운 운명을 타고났네!’

 

강 교수는 워낙 어려운 환경에서 처가의 도움으로 박사가 되고 교수까지 되었기 때문에 바람을 필 때도 매우 조심스럽게 했다. 일단은 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최선의 노력을 했다.

 

여러 가지 연구를 해서 외도에 대한 증거를 사전에 없애버리고, 구체적인 실행과정에서 불필요한 증거를 남기지 않도록 했다.

 

우선 증거란 무엇인가 관해 법률서적을 샅샅히 뒤져보았다. 결혼한 다음 배우자의 부정행위의 개념과 범위에 관한 법서와 대법원의 판례, 지방법원의 판결을 모두 검토했다. 증거인멸죄에 관한 논문도 찾아서 읽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무상 어떤 증거가 문제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인터넷 서치를 광범위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증거란 매우 단순한 것들이었다.

 

남자의 와이셔츠에 루즈를 묻혀온다든가, 남자의 내복에 이상한 분비물의 흔적이 남았다든가, 핸드폰에 남아있는 문자메시지, 카톡메시지, 메신저메시지 등이었다.

 

또는 복제폰이나 비밀녹음장치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또는 흥신소에 의뢰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도 있었다. 몇 달 동안 이런 분야의 연구를 하니 강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남자가 바람 필 때 증거를 남기지 않는 방법과 문제점’으로 학위논문을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내용으로 대학에서 강좌를 개설하거나 어디 돌아다니면서 공개강의를 할 수는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개인적인 문제였고,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36)  (0) 2020.12.26
작은 운명 (35)  (0) 2020.12.24
105. 너무나 성격이 다른 부부가 사는 법  (0) 2020.12.22
104. 대학교 앞에서 커피숍을 차려 인기를 끌다  (0) 2020.12.21
작은 운명 (34)  (0) 2020.12.20

105. 너무나 성격이 다른 부부가 사는 법

 

그런데 강 교수 부인은 결혼하기 전이나 결혼하고서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전까지는 강철민이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강 교수 18번은, ‘쨍하고 해뜰 날’이었는데, 그 노래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2절까지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반주가 없어도 잘 불렀다.

 

강 교수는 언젠가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자신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늘 음지에서만 살았는데, ‘쨍하고 해뜰 날’을 18번으로 정하고 꾸준히 불렀더니, 108번째 그 노래를 부른 그 다음 날, 부잣집 외동딸을 만나서 팔자를 고쳤다는 경험담을 자랑 삼아 이야기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도 좋아했는데, 강철민은 ‘처갓집 재산은 우리 것’으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이런 노래는 처갓집 재산을 탐내는 것처럼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자, 강 교수는 그 후부터는 ‘내 땅은 장인 것’이라고 가사를 전격적으로 바꾸었다.

 

강 교수는 늘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사람은 좋은 노래, 밝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 젊었을 때 요절한 가수 노래는 절대로 불러서는 안 된다. 어두운 노래, 부정적인 노래를 부르면 그렇게 운명이 비뚤어진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에, 강 교수는 배호나 남정희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대신 80세 넘게 건강하게 살고 있는 원로가수들의 노래를 즐겨 따라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80세까지 살았어도 장수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강 교수는 외국에서 100세 넘게 가수활동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아직까지 그런 최장수가수는 찾지 못했다.

 

한번은 영국의 그룹, 런던 보이스의 음반을 선물로 받았다. 런던 보이스(London Boys)는 에뎀 에프라임과 데니스 풀러로 구성된 영국의 유로댄스 듀오인데, 1996년 1월 21일 같은 날 교통사고로 두 사람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음반을 아예 소각해버렸다.

 

강 교수는 사랑이 파탄나는 노래도 절대로 부르지 않았다. 주로 행복한 사랑, 복을 가져오는 찬송가만을 좋아했다. 때문에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는 부르지 않았다. 윤덕심이 부른 ‘사의 찬미’와 같이 죽을 사자가 들어간 노래는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강 교수가 박사까지 딴 다음 매우 고차원의 지식인인 것처럼 위세를 떨고, 잘난 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여전히 옛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다. 한국인의 전통과 보수적인 태도를 굳건히 고수하고 있었다.

 

강 교수의 부인 정혜는 워낙 학교 다닐 때부터 책을 싫어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에도 모든 책은 처음 샀을 때와 똑 같이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노트 필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과목에 노트는 한 권만 있으면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무 일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정혜의 친구들은 정혜가 수업시간에 전혀 펜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들으면 모두 자동으로 암기가 되는 천재인 것으로 오해했다. 그런데 중간고사를 보니까 시험지 답안지에도 펜을 아주 최소한 사용했기 때문에 반에서 꼴찌를 한 것을 보고, 정혜가 필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암기를 해서가 아니라, 필기할 능력조차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혜는 미술시간에도 물감을 아끼느라고 여백을 많이 남기고 그렸다. 처음에는 미술선생님도 정혜의 그림이 피카소 같은 추상화를 초현대식으로 그리는 독특한 화풍으로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게으르고 귀찮기도 하고, 가급적 물감을 적게 쓰려는 심보를 가진 것으로 알고 무척 미워했다.

 

정혜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시나 소설 같은 문학에는 아예 취미가 없었다. 시는 김소월의 ‘나보기가 역겨워’ 하나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초등학교 때 배운 ‘섬그늘’ ‘오빠생각’ 등의 동요가 전부였다.

 

그런 동요도 초등학생들이 부른 것만 좋아했고, 나이 든 가수 이선희나 박인희가 부른 동요는 듣지 않았다. 나이 든 가수가 부른 동요를 들으면 옛날 유치한 감성이 날아가버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정혜는 영화나 드라마는 아주 좋아했다. 특히 CGV가 등장한 이후에는 관객수가 많다고 하는 영화는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보았다. 드라마도 ‘사랑과 전쟁’을 비롯해서 애정관계를 다루는 것은 모두 보았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의 이름과 나이, 데뷔연도, 주요 등장작품, 영화 감독의 신상에 대해서는 특별히 노트를 하나 만들어 세세하게 기록해가면서 외웠다. 이렇게 정혜가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필기를 노트에 잘 하는 것을 보고, 강 교수가 그런 방식으로 가계부를 써보자고 제안했다가 그 날 정혜는 흥분해서 하마터면 살고 있는 집에 방화를 할 뻔 했다.

 

갑자기 가스레인지를 켜고 화장지를 찾아서 강 교수는 그 자리에서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정혜의 생각은 그 큰 부자인 친정어머니도 가계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평생 알지 못하고 잘 살고 있는데, 친정집 경제규모가 100분의 1도 안 되는 주제에 무슨 가계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돈도 잘 못벌면서 찌질한 인간은 바로 불로 태워서 곧 바로 지옥의 유황불로 직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강 교수는 정혜 혼자 불을 내서 혼자 죽으려는 것으로 커다란 오해를 했던 것이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35)  (0) 2020.12.24
106. 남자가 바람을 피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  (0) 2020.12.23
104. 대학교 앞에서 커피숍을 차려 인기를 끌다  (0) 2020.12.21
작은 운명 (34)  (0) 2020.12.20
작은 운명 (32)  (0) 2020.12.17

104. 대학교 앞에서 커피숍을 차려 인기를 끌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맹 교수 어머니는 비록 유학은 가지 못했지만, 국내 순수한 독학파로서 교양도 높았고, 문학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었다.

 

영어는 잘 못했지만, 간단한 일상의 용어는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를 익혀서 혼자 아시아 여행도 다닐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혼자서 하는 배낭여행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언제나 단체관광코스를 택했다. 그것은 자신의 미모 때문에 혹시 외국 여행을 갔을 때 그곳 성범죄자들이 한국에서 온 미스코리아 진으로 잘못 보고 납치를 해서 결혼식을 올리거나 아니면 강제로 끌고 가서 강간하고 바다에 던져질 위험성을 크게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맹 교수 어머니가 커피숍을 경영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녀를 좋아하는 대학 교수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강의가 끝나면 커피숍에 와서 서너시간씩 혼자 앉아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실상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커피숍 주인인 맹 교수 어머니를 지켜보거나 감상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이런 교수들은 공연히 헛물을 켜고 있는 것이었다.

 

맹 교수 어머니 입장에서는 손님으로 와서 차를 마셨으면 빨리 나가줘야 다른 손님들이 와서 매출이 느는데, 나이 든 교수들이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오래 앉아 있으면 매출이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커피숍 분위기가 혼탁해져서 젊은 대학생들이 들어왔다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바로 나가기 때문이었다.

 

어떤 대학생은 커피숍 분위기 때문에 중증 고혈압 환자처럼 현기증을 느끼고, 계단을 시속 100미터로 거북이처럼 기어나가기도 했다. 여학생회에서는 대학교 앞에서 커피숍을 하려면 분위기를 젊고 세련되게 하고 영업을 해야지, 늙고 병든 닭장처럼 분위기를 만들고 학교의 명예에 손상이 간다는 이유로 맹 교수 어머니 커피숍을 폐쇄시켜 달라는 청원서를 만들어 학생들이 500명 서명을 받아 대학교 총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대학교 총장은 이런 청원서를 보고 직접 맹 교수 어머니 커피숍을 둘러보았으나, 맹 교수 어머니가 너무 지적인 외모에 차분한 말씨, 소프라노 같은 음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너무 과격해서 잘못 청원을 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청원서를 묵살해버렸다.

 

젊은 대학생들 관점에서 보면, 50살 넘은 아주머니를 뭐가 좋다고 몇 시간씩이나 옆에서 보고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이 든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묘한 감정의 기류, 전기가 통하는 모양이었다.

 

처음 1년 동안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던 맹 교수 어머니, 서옥자도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움직여갔다. 특히 대학 교수라는 추상적인 관념의 이미지에 이끌린 것 같이 보였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늙은 교수의 품에 안겼다.

 

옥자가 사랑하게 된 교수는 강철민이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오래 있다가 한국에 와서 한 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지방 도시에서 교수가 되었다. 워낙 소신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해서 학교 재단 측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강 교수가 살아온 과거를 보면,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해서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유학갈 돈은 없는 처지였다. 외국에 나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어느 부잣잡 외동딸이 나타났다.

 

그녀는 공부를 워낙 싫어해서 고등학교때부터 늘 꼴찌를 맡아놓은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공부가 뱀보다 더 싫었다.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느니, 차라리 뱀사육장에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 나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강철민을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공부 잘하는 머리 좋은 강 교수에게 모든 것을 바치게 되었다. 그 집에서는 강철민을 사위 삼고 많은 돈을 들여 젊은 부부를 미국으로 보냈다.

 

강철민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난 다음부터는 자기 부인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저렇게 머리가 나쁠 수 있을까? 아마 침팬지 DNA가 들어간 모양이야. 공부를 안 한 것과 머리가 기본적으로 나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야. 운동을 하지 않는 것과 운동신경이 나쁜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 거야.’ 철민은 시간이 가면서 이런 의식이 강해졌다. 그런 상태에서 부인을 보면, 사람 같지 않고, 꼭 지능지수가 부족해서 제대로 먹이를 못찾아먹는 침판지 같이 보였다.

 

강 교수는 일부러 부인 앞에서 영어나 독일어로 된 원서를 읽었다. 성경도 한글 성경은 시시하다고 보지 않고, 독일어로 된 성경이나 라틴어로 된 성경원본을 놓고 앉아서 독일어나 라틴어로 기도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꼭 방언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독일 사람을 만나도 인사말만 독일어로 몇 마디 하고, 나머지는 영어로 하거나 한국말로 했다. 사실 독일어로 기도하는 것도 부인이 옆에 있을 때만 몇 마디 하다가, 부인이 부엌으로 과일을 가지러 가면 곧 멈추고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강 교수는 부인 앞에서는 음악도 클래식을 들었다. 아니면 오래 된 옛날 팝송을 들었다. 그 나이에 다른 사람들이 즐겨듣는 배호 노래나, 남진 노래는 수준이 낮아서 못듣는다면서 그런 트롯트 음악이 나오면 얼굴을 찡그리고, 곧 배가 기울어 물에 빠져 죽을 사람처럼 괴로워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6. 남자가 바람을 피면 죽어서 어떻게 될까?  (0) 2020.12.23
105. 너무나 성격이 다른 부부가 사는 법  (0) 2020.12.22
작은 운명 (34)  (0) 2020.12.20
작은 운명 (32)  (0) 2020.12.17
작은 운명 (26-1)  (0) 2020.12.02


작은 운명 (34)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남이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혼자 타고 다니는 자가용들이 줄로 늘어서 있어도 바빠서 택시를 못잡고 있는 사람에게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 호의를 베풀려고 했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회는 매우 달라졌다. 외롭고 고독을 느끼게끔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사실 말로만 그렇지 옛날과 같은 인정이 넘치는 사회는 아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도입된 지 오래 되었고,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변모하다 보니,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 그리고 가정만 생각하고 이웃과도 단절하고 친구도 없고, 의리도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런 극한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영식과 경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영식은 마침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영식이 사실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별로 뚜렷한 방향 없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던 중이었다.

차안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낯선 이성끼리 좁은 공간에서 특별한 대화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 적절한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중단되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성격상 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습관인데, 그래도 가만히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식은 대낮에 밖에 있는 이유를 회사일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대치동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릴 때 경희는 고맙다고 했고, 나중에 차라도 대접하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했다. 그때 영식은 경희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로가 다시 만난다는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차를 한번 태워줬다는 이유로 다시 만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달 쯤 지나서 경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차를 한잔 사겠다는 취지였다. 영식은 만사 제쳐놓고 경희를 만났다. 남자들은 집에서는 부인에게 따뜻하거나 자상하게 대하지 않아도 밖에서는 외간여자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성의를 다 한다.

집에서는 생활이니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짧은 시간이니까 정성을 기울여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가정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가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거꾸로 한다. 물론 안팎으로 잘 하는 능력 있고 매너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말이 경희가 산다는 것이었지, 가장 분위기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도, 돈을 낸 것도 모두 영식이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상한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경희는 남편이 있었지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울해졌던 경희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차안에서 말없이 운전만 하고 갔던 영식의 생각이 떠올라 그냥 전화를 했던 것이다.

경희는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과 별로 재미가 없다는 사정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처녀 시절의 아름다운 문학소녀로서의 꿈, 그 꿈을 이루지 못한 현실적인 아쉬움 등등을 문학적 표현을 사용해 가며 이야기를 아주 감칠맛 있게 잘 했다. 경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영식은 마치 어렸을 때 동화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식과 경희는 가끔 술도 마시고, 강변고수부지에서 바람도 쑀다. 그러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그것은 마약처럼 습관이 되었다. Drug과 Sex, Bribery는 일단 시작을 하면 쉽게 빠지고, 벗어나지 못하는 습관성을 가진다.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그것을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를 스스로는 갖지 못한다.

몇 번 하다 보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자신과 결합해서 일체가 되기 때문에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채 조건반사적인 무의식적인 행동과 같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5. 너무나 성격이 다른 부부가 사는 법  (0) 2020.12.22
104. 대학교 앞에서 커피숍을 차려 인기를 끌다  (0) 2020.12.21
작은 운명 (32)  (0) 2020.12.17
작은 운명 (26-1)  (0) 2020.12.02
작은 운명 (30)  (0) 2020.11.29


작은 운명 (32)

문학이나 예술은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이 전부다. 그림도 취미가 없고, 음악도 대중가요를 따라 부르는 정도다. 쇼팽의 피아노소나타나 클래식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걸핏하면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아무 실속도 없는 모임에 가서 술이나 실컷 퍼마시고 취해서 들어오기 일쑤다.

어떤 때는 집에서 부인이 애써 저녁 준비를 해놓았는데, 아무 연락도 없이 늦게 들어온다. 심지어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면서 밖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들어오기도 한다.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가운도 안 입고, 그냥 런닝 팬티 바람으로 돌아다닌다. 어린 자녀들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이것을 따지면, 집에서 편하게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강변을 한다. 아무리 부부 사이지만, 이렇게 처신을 해서는 남편으로서의 품위도 없고 무게도 없다. 여자는 점점 실망만 커진다.

주말에는 거실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야구중계나 바둑대국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부인이나 자녀들과는 거의 대화가 없다. 집안의 제사 날짜나 물어보는 정도다. 남편이 부모나 형제에 대한 흉이나 보고 직장 상사의 단점이나 부인에게 털어놓고 산다.

주식 투자를 조금 했다가 하종가를 치게 되면 세상이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남에게 무척 인색하고 오직 돈밖에 모르는 성격이다.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도 별로 의리도 없어 보이고, 매우 이기적인 것처럼 보인다.

적십자비를 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어떤 곳에서 사회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를 하는 것은 결혼한 이래 본 적이 없다. 결혼 전에는 늘상 불쌍한 사람 걱정을 하고, 심지어 아프리카 사는 딱한 사정 때문에 눈물도 글썽이던 사람이 결혼한 다음에는 너무 다른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도대체 여자가 볼 때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부인이 혼자 집에서 TV 드라마를 보면 다른 남자들은 전혀 다르다. 의젓하고 품위 있고, 고상하다. 여자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애정 표현을 끊임 없이 한다. 매사에 진지하고, 여자들이 좋아하게끔 인간적이고 순수하게 말을 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그런 탤런트들과 비교해 보면, 자신의 남편은 정말 형편 없는 속물 중의 속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대체 이런 남자와 어떻게 앞으로 남은 긴 인생을 같이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

그러나 이런 남자들은 결국 자신의 책임 때문에 집에서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밖에 나가서 다른 여자를 만나면 신바람이 나서 난리를 치는 것이다. 무척 안타까운 현실이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4. 대학교 앞에서 커피숍을 차려 인기를 끌다  (0) 2020.12.21
작은 운명 (34)  (0) 2020.12.20
작은 운명 (26-1)  (0) 2020.12.02
작은 운명 (30)  (0) 2020.11.29
작은 운명 (29)  (0) 2020.11.29


작은 운명 (26-1)
정 사장이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가관이었다. 방안 작은 탁자에는 와인병이 많이 놓여 있었다. 먹다 만 안주도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제 밤 박 과장을 불러서 같이 술을 마신 것은 기억이 나는데, 그 후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쇼파에는 박 과장이 매고 있었던 보라색 스카프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박 과장에게 어떤 실수를 한 것이 걱정도 되었다. 아무런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잘 모르는 일이라 걱정이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려고 나서려는데 손목시계가 없었다. 지갑이나 다른 물건을 다 있는데, 시계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박 과장이 그런 짓을 할 리는 없고, 그렇다고 어제 저녁에 방에 들어올 때 분명히 시계를 차고 있었던 기억도 났다. 그런데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 귀신이 곡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박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혼자서 10분 이상 다시 찾고 찾았지만 끝내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정 사장은 하는 수 없이 같이 간 김 이사에게 연락해서 방으로 오라고 했다. 사정을 이야기 들은 김 이사는 곧 바로 프로트 데스크로 가서 정 사장이 숙박하고 있는 방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CCTV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밤 1시가 넘어서 박 과장이 정 사장의 방에서 나오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손에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데, 복도 주변을 조심스럽게 두리번 거리면서 문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열고 나와서 급하게 엘리베이터쪽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김 이사는 놀랐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여비서가 왜 그 늦은 시간에 정 사장 방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래서 언제 들어간 것인지 CCTV를 돌려보았다. 박 과장이 정 사장 방으로 혼자 들어간 것은 그러니까 저녁 10시 조금 넘어서였다. 박 과장은 무려 세시간 동안이나 정 사장 방에 들어가 있다가 새벽 1시경에 나와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정 사장 시계가 분실되었다는 것이다.
CCTV상에는 박 과장이 정 사장의 시계나 다른 물건을 들고 나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목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긴팔의 불라우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 이사는 정 사장에게 이런 사실을 CCTV에서 확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김 이사는 다시 정 사장 방으로 올라가서 방 안을 샅샅히 뒤져보았다. 시계는 침대 옆으로 떨어져 벽 쪽 밑에 있었다. 정 사장이 술에 취해 침대 위에 있던 시계를 밀어서 떨어뜨린 것 같았다.
“사장님. 여기 있습니다. 왜 이곳에 떨어져 있을까요?”
“글세, 이상하다. 내가 샤워를 하고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분명히 시계를 풀러놓고 침대로 갔을 텐데...”
“어제 밤에 술을 많이 드신 것 같네요. 이렇게 많은 술을 혼자 드셨습니까?”
“응, 어제는 이상하게 술생각이 많이 나서 혼자 늦게까지 마셨어. 지금 속도 좋지 않아. 그래도 식사를 하러 가지.”
김 이사는 쇼파에 놓여 있는 여자 스카프가 박 과장 것임을 알았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정 사장과 박 과장이 정사를 벌였다는 증거를 확인하기 위해 휴지통도 보았지만, 성관계 뒤처리를 하는데 사용한 크리넥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김 이사는 겸연쩍기도 해서 시계를 찾아준 다음 곧 바로 호텔 식당으로 먼저 내려갔다. 그곳에는 박 과장을 비롯한 다른 잭원들이 모두 먼저 와서 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 과장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김 이사나 정 사장 모두 시계사건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고, 일행의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특이 사항 없이 무사히 일본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34)  (0) 2020.12.20
작은 운명 (32)  (0) 2020.12.17
작은 운명 (30)  (0) 2020.11.29
작은 운명 (29)  (0) 2020.11.29
작은 운명 (28)  (0) 2020.11.29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