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6)

공칠은 마침내 서울생활을 모두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기다렸다
는 듯이 말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했니? 네 적성에 공부는 맞지 않는 거
야. 너는 우리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어. 정육일을 
배우고, 식당 경영에도 신경을 쓰자.“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소와는 인연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일을 하
게 해주세요. 저는 원래 경찰관이 되려고 했어요. 대학은 포기했지만, 경찰
관 시험공부를 하게 해주세요.“

”경찰관 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야. 그리고 경찰관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일도 하지만, 남을 잡아넣고 음주단속을 해서 적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별로 
좋은 직업이 아냐.“

공칠은 아버지의 말에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꾹 참았다. ‘소를 죽이고, 소고기를 썰고, 소고기를 요리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이 훨씬 덜 죄를 짓는 거예요.’

공칠은 아버지 몰래 경찰관이 되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커피바리스
타가 되겠다고 말하고 커피학원을 다니기로 하고, 그 지역에서 제일 활발하
게 흥신소를 하고 있는 김민첩 사장을 찾아가서 아르바이트일을 하기로 했다
.

흥신소에서는 비록 공칠이 나이는 어리지만, 태권도와 권투 등 무술을 했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을 시켰다. 흥신소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는 오토바이면허를 타는 것이 급선무였다. 공칠은 열심히 해서 오토바이를 
배웠다. 곧 이어서 자동차운전면허도 땄다.

흥신소 사장인 김민첩은 이름 그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행동이 빨랐다. 어
떻게 그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민첩이라고 지었는지 모른다고 사람들은 혀
를 찼다.

민첩의 아버지는 민첩을 낳기 전에 부부 사이가 나빴다. 그래서 결혼하고 얼
마 되지 않아 다른 여자를 만나서 첩을 만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민첩의 어
머니는 임신을 하고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민첩의 어머니는 아들 이
름을 지으러 역학자에게 찾아갔다.

역학자는 민첩의 어머니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자네 아들 이름은 민첩이라
고 지어. 그래야 신랑이 더 이상 첩을 두지 않고, 현재 있는 첩도 3년 이내
에 떨어져나가게 돼. 민자는 첩을 밀어내서 신랑을 첩이 없는 상태, 즉 무첩
(無妾)으로 만든다는 뜻이야.”

그래서 민첩의 어머니가 우겨서 아들 이름을 민첩으로 지었는데, 정말 이상
한 일이 벌어졌다. 민첩이 세 살이 되던 해에 민첩의 아버지는 데리고 있던 
첩의 과거 애인이 감방에서 출소해서 옛애인을 만나 자신이 감방에 가있는 
동안 민첩의 아버지와 바람을 피었다는 이유로 얼굴에 염산을 뿌렸다.

그러자 그 여자는 민첩의 아버지가 강제로 강간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지금까
지 끌려다녔다고 허위자백을 했다. 그 여자 애인은 흥분해서 민첩의 아버지
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민첩 아버지를 만났다.

그 건달은 감방에서 몇 년을 고생해서 밖에 나와 마음 잡고 잘 살려고 했는
데, 옛애인이 이렇게 남의 첩으로 되어 있고, 남의 애인을 빼앗아 첩으로 데
리고 있는 놈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이 세상은 살 가치가 없는 
곳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남자는 민첩의 아버지에게 염산을 뿌리고 불을 질러 없애기로 준비를 하
고 민첩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런데 그 여자가 이런 위급한 상황을 민첩 아
버지에게 사전에 연락을 해주었다.

그래서 민첩 아버지는 그 지역에서 제일 무서운 폭력조직의 두목에게 돈을 
주고 그 건달을 막아달라고 SOS를 쳤다. 두목은 웃으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게 만들어줄테니까요.”

그러면서 두목은 제일 민첩한 행동대원 세명을 민첩의 아버지 집에 상주시켰
다. 며칠 있다가 마침내 첩의 옛애인이 민첩의 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민첩
의 아버지가 폭력조직배 세명과 같이 마중을 나갔다.

그랬더니 그 첩의 옛애인은 행동대원 중 한 사람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죽여주세요.” 민첩의 아버지는 어리둥
절했다. “선배님이 아는 사람인줄 몰랐어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그 첩의 옛애인은 감방에 가기 전에 그 행동대원의 애인을 건드렸다가 린치
를 당해 거의 죽을뻔 했던 사람이었다. 아무튼 민첩의 아버지는 이 일로 인
해 첩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대신 첩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댓가로 첩에게 3천만원을 위자료로 지급했다. 
그리고 조직폭력배에게 천만원을 주었다. 그 이후에는 바람은 피어도 고정적
으로 첩관계는 만들지 않았다.

민첩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지어준 그 역학자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
게 되었다. 다만, 아들 이름 때문에 남편이 첩은 떼어버릴 수 있었지만, 아
들을 부를 때 ‘첩아!’라고 첩자를 넣어서 부르는 것은 기분이 좋을 수 없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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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5)

공칠은 꿈에서 아버지가 너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저렇게 공칠과 싸우다가 
비참하게 죽어 한이 맺힌 소를 돈을 벌기 위해 이국만리 스페인에서 한국으
로 가져가려고 한다는 아버지는 그 소가 공칠이 죽인 소라는 사실을 전혀 모
르고 있었다.

공칠은 아버지에게 그 소를 한국으로 가져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아버지를 만류하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주먹으로 공칠을 때리는 것
이었다. 그때 죽었던 소가 다시 살아나 뿔로 아버지를 세게 받았다.

아버지는 빌딩 높이로 치솟았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 순간 
공칠은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때 공칠은 잠에서 깨어났다. 비록 꿈
이었지만 현실처럼 아주 생생했다. 공칠의 온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꿈은 공칠이 재수를 한 끝에 다시 대학교 시험을 보러가기 일주일 전에 
꾼 것이었다. 공칠은 그 꿈이 무슨 꿈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꿈의 해석을 부탁하지는 않았다. 왠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어떤 의미
에서는 그 꿈이 좋은 꿈일 수도 있을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 꿈은 공칠이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학입시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은 들었다. 공칠이 대학교 시험을 보러 가는 당일 아침 공칠은 시험장으
로 가기 위해서 고시원을 나와서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승용차가 도로 3차선을 달리다가 공칠이 횡단보도 앞에
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공칠쪽으로 뛰어들어 공칠을 차로 치었다.

운전자가 주행중에 스마트폰을 보다가 도로 우측으로 잘못 진행을 했고, 그 
때문에 아무 죄없는 공칠이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라고 있다
가 그 차 우측 밤바에 치어 넘어졌고, 공칠은 머리를 다치고 왼쪽 발목부위
가 분쇄골절이 되는 상해를 입었다.

공칠은 곧 출동한 경찰차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고, 그 때문에 대학입
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것은 사고 당시의 상황이었다. 공칠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왼쪽에서 도로 3차선을 
따라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매우 빠른 속력으로 공칠을 향해 질주해오는 것
이었다.

그 소는 바로 스페인에서 공칠과 투우장에서 혈전을 벌이다가 쓰러졌고, 그 
후 공칠의 아버지가 사서 한국으로 가져오려고 했던 바로 그 소였다. 공칠은 
환상을 보고 있었다. 그 소는 누런색깔이었다. 그런데 공칠을 실제로 친 자
동차는 빨간 벤츠차였다.

그런데 공칠에게는 그 빨간 벤츠 자동차가 누런색깔의 황소로 보였던 것이다
. 공칠은 자동차를 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우장에서처럼 오른쪽
으로 약간 비끼면서 손에 들고 있는 가방을 붉은 천으로 생각하고 자동차를 
향해 펼쳤다. 그 때문에 자동차는 공칠을 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되자 공칠은 더 이상 서울에 있는 것이 무서워졌고, 대
학입시를 치루지 못한 것도 소 때문이고,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소 때문이며
, 자신의 인생은 앞으로도 소 때문에 더 이상 잘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
게 되었다.

그러나 공칠로서는 이런 소의 콤플렉스를 아버지나 어머니, 기타 다른 사람
들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그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었다. 그건 잘못했다가
는 소들의 더 큰 복수를 받게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공칠은 이 모든 운명은 결국 자신의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업보 때
문에 자식인 공칠에게 모두 돌아오는 것이라고 더욱 공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공칠은 서울로 올가간 지 꼭 1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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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4)

공칠이 서울에 혼자 가서 일년 동안 재수생활을 한 것은 정말 혼돈상태였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정육점과 식당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었지만, 공칠에게는 매우 인색했다.

공칠 아버지의 인생관이 그랬기 때문이다. 자식이 돈가치를 모르고 제멋대로 쓰면 나중에 나이 들어 반드시 망하고 고생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공칠에게 꼭 필요한 돈만 보내주었다.

그 흔한 신용카드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싸구려 고시원에서 생활하도록 했고, 용돈은 아주 적게 주었다. 공칠은 아버지의 생활철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소를 많이 죽이면서 벌고 있는 돈을 아끼지 않고, 흥청망청 쓴다면 소들이 언젠가는 무자비한 복수를 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상하게 공칠은 꿈에 소를 많이 보았다. 꿈에서 소들은 아주 무서운 형상으로 공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소들은 스페인 같은 곳에서 싸움터로 나가기 직전에 몸을 풀고 있다가 공칠을 무섭게 째려보았다.

어떤 소는 투우장에서 상대 투사가 공칠로 생각하고 반드시 공칠을 뿔로 쳐서 짓밟아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다. 공칠은 강제로 붙잡혀가서 그 소와 투우장에서 싸워야했다.

경기장에서 주는 붉은 천은 그 자체로 두려움이었다. 공칠이 받아서 가지고 나가는 붉은 천은 소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천의 빨간 색 때문에 오히려 공칠은 벌벌 떨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고 나가자마자 소와 싸우기도 전에 그 천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천속에는 무슨 피인지 가득 들어있었다.

공칠은 벌벌 떨면서 소와 마주섰다. 소의 눈은 공칠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공칠도 하는 수 없었다. 소를 노려보았다. 왜 자신이 소와 싸워야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칠은 아버지와 스페인여행을 간 것이었다.

그것도 꿈속에서 생전 처음 아버지와 해외여행을 간 것인데, 공칠은 스페인에 간다는 아버지의 말에 자신은 절대로 스페인에 가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스페인에 가서 반드시 투우장에 가서 소와 사람이 싸우는 경기를 구경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래야 아버지가 경영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이 불처럼 번창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꿈속에서 스페인을 가게 된 것인데, 단체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44명이었는데, 그중 아버지와 공칠을 빼고는 나머지 42명은 모두 여자관광객이었다.

아버지와 공칠은 아주 새하얀 옷을 입었는데, 여자관광객 42명은 모두 아주 빨간 옷으로 통일해서 입고 있었다. 핸드백과 하이힐까지 모두 붉은 색이었다. 심지어 여자들이 사용하는 손수건도 붉은 천으로 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칠은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스페인에 입국심사를 할 때 공칠은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여자들은 모두 소띠였다.

12살 차이, 24살 차이, 36살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소띠에 해당하는 것을 알았다. 공칠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공칠이 스페인 남자들에게 붙잡혀서 투우장에 투우사로 나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같이 간 42명의 여자들은 경기장에 같이 갔는데, 경기장에 들어서자 모두 얼굴이 소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공칠과 소가 싸움을 시작했을 때, 그 여자들은 모두 소를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의 언어로 소를 응원하고 있었다. “으으으매에매, 으음, 음매음매매, 음음!!!‘ 그것은 소들이 몇만년전부터 사용해오던 전세계 공통의 소의 언어였다.

그 뜻은, ‘저 놈을 죽여라. 저 나쁜 악마를, 저 놈을 무자비하게 죽여라. 저 나쁜 우리의 적을 없애라.’ 이런 의미였다. 공칠은 경기장에서 누군가 확성기로 소의 언어를 한국말로 통역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는 경기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투우사와 소가 하는 말, 그리고 투우사를 응원하는 팀과 소를 응원하는 팀의 말을 공평하게 국제통역이 통역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관중석에서 공칠을 응원해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 소가 이기고 공칠이 패배하여 죽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공칠은 배수진을 쳤다.

이곳에서 약하게 마음 먹으면 자신은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열심히 배우고 익힌 무술을 떠올렸다. 태권도와 권투였다. 공칠은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집어던졌다.

그 칼을 같이 간 여자관광객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행해 세게 던졌다. 그 칼은 순간 아주 샛빨간 색으로 변한 다음 창공을 몇 바퀴 세게 돌았다.

그리고 그 여자관광객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칼 혼자 여자들은 찌르고 베고 있었다. 여자들은 소의 언어로 난리를 치고 있었다. 공칠은 경기를 하다 말고 칼이 죽음의 광란을 벌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칼은 다시 창공으로 치솟더니 경기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여자들이 모두 죽었는 줄 알았는데, 칼이 사라지자 그 여자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 말짱한 상태로 더욱 흥분하여 공칠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공칠은 칼을 버린 상태에서 들고 있던 붉은 유인천도 땅에 버리고 맨주먹으로 소와 격투를 벌였다. 태권도 발차기와 주먹치기, 이단점프 발차기, 뒤돌려차기로 소를 괴롭혔다.

소는 스페인 소라 그런지 대한민국의 태권도 실력 앞에서 맥을 못추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공칠의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태권도복에 매고 있는 검은 띠 앞에서 소는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칠은 오른 주먹으로 소의 심장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소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군중들이 공칠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공칠은 무서워서 경기장을 도망쳐 빠져나왔다.

묵고 있던 호텔로 뛰어갔다. 호텔 앞에 이르자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공칠과 싸우다가 죽은 소를 싼값에 사왔다고 좋아하면서 그 소를 한국으로 가지고 가서 비싸게 팔려고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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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3)

정훈의 친척 중에 최공칠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칠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자 정육식당까지 차렸다.

그동안 정육점을 하면서 좋은 소고기를 판매해왔는데, 정육점을 계속 하면서 고깃집까지 같이 하니까 손님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인근 식당은 타격이 컸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공칠이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믿는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정육점을 오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칠이 들은 바에 의하면 비록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동물의 목숨을 끊는 것은 잔인한 행위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육식을 하지 말고 채식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매일 날선 칼을 들고 소고기를 정육하는 것을 보고 저렇게 자꾸 소의 살을 칼로 도려내고 있으면 언젠가는 그 피의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낚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특히 먹기 위해 낚시하는 것이 아니고, 취미로 고기를 미끼로 낚아서 죽이는 것은 큰 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교통사고를 당한다든지, 갑자기 비명횡사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냥도 마찬가지다. 취미로 산에 가서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반드시 화를 면치 못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공칠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종교적 교리고, 우리가 먹고 사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야. 정육점은 생업일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직접 도축을 하는 건 아니잖니? 그리고 지금까지 소고기 회사나 돼지고기 회사, 닭고기 회사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고 재벌이 되었는지 알아? 어차피 인간은 육식과 채식을 같이 하는 동물이야. 채식만 하는 소나 말과는 달라. 동시에 하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된 거야.”

아버지 설명을 들으니 그럴듯했지만, 공칠은 여전히 아버지가 정육점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공칠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힘이 센 건달 친구들로부터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공칠 아버지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일진회에서는 공칠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칠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일진회에 가입하면 공부도 못하고, 모범생이 되는 것을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일진회 멤버 6명이 공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공칠이는 그 다음 날부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우선 태권도와 권투를 배웠다.

공칠이 일진회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다음 혼자서 공부보다는 무술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본 일진회 간부들은 더 이상 공칠을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공칠에게 앞으로는 괴롭히지 않을테니 공칠도 일진회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공부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원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한계가 있어 그랬는지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은 포기하고 아버지가 하는 정육점과 정육식당을 가업으로 이어받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공칠에게 집요할 정도로 가업을 물려받으라고 강요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이어받으면 크게 성공은 하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망할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아버지의 아들이 도시로 나가지 않고, 생활하는 곳에서 그대로 아버지의 농사를 이어받으면 점진적으로 생활이 나아진다. 아버지가 식당을 하면 아들이 그곳에서 일을 배워 나중에 식당을 이어받으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는 농사 짓는데 아들은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해서 성공하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아들 역시 아버지가 농사짓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보고 조금이라도 배웠지만, 공부에 관해서는 아버지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거나 들은 바가 없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야 되기 때문에 물론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는 식당을 하는데, 아들은 전기공사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나 공칠은 아버지의 생각이 낡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말을 듣지 않았다. 특히 정육점은 살생을 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사상적 신념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굶어죽으면 죽었지 정육점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공칠은 서울로 올라가서 대입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1년 동안 재수를 한 다음, 자신은 공부로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이상하게 다른 친구들은 재수하면 실력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데, 공칠은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더 떨어지고 성적이 더 나쁘게 나오는 것이었다.

공칠은 그 원인을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거나 노력을 적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버지가 소를 자꾸 죽이고 있기 때문에 소의 영혼이 피의 복수를 하고 있고, 그 대상이 아버지는 칼을 들고 있어 무서워서 아버지에게는 못하고 만만한 공칠, 즉 비무장상태인 자신에게 복수를 무섭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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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①

별이 빛나고 있다. 어두운 밤에 별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아주 작게 느껴진다. 존재라고 하기에도 곤란할 정도다. 거대한 우주속에서 인간은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 그 초라함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운명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영혼의 고향은 어디인가? 알 수 없다. 누가 그에 대해 자신 있는 결론을 내리고, 근거를 제시한다고 해도 아무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결국은 불가지론에 빠지고 만다.

영혼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영혼에 빛이 있다는 사실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다. 영혼에서 나오는 빛은 별이 뿜어내는 빛 보다 강렬하다. 영혼은 살아 있는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별과 달리 사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유기체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 한 개의 별이 반짝인다. 별은 출생과 관련이 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별 하나가 빛을 잃는다. 별은 죽음과 관련이 있다. 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사랑하면 두 개의 별이 동시에 빛난다. 그 사랑은 어느 하나의 별에서 다른 별로 옮겨간다. 그럼으로써 두 개의 별은 하나가 된다. 사랑은 새로 탄생한 별에 영원한 흔적을 남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별을 보아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찾은 아름다운 별속에 자신들의 사랑을 묻어야 한다. 그래야 변하지 않는다. 평생 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그 별에 묻힌 사랑은 영원히 보존된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이고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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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소설 쓰기

정말 쓰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많은 일들, 그리고 검사생활을 하면서 보고 들었던 사건들, 변호사로서 함께 웃고 울었던 숱한 사연들... 이런 사건을 통해 내 시선으로 보았던 우리 사회를 진솔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기술하는 것은 안 된다. 당사자들의 프라이버시가 문제된다. 그래서 소설 형식을 빌었다. 모든 사건을 직접적인 사건과는 무관하게 바꾸었다. 단지 그 사건에서 추출할 수 있는 골격만 간추렸다.

그리고 내 입장에서 사건을 파고 들었다 .당사자들의 심리상태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그랬더니 모든 사건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소설의 제목을 처음에는 ‘사랑의 모진 운명’으로 정했다. 그러나 점차 써내려가다 보니 제목이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바꿨다. ‘작은 운명’으로 바꿨다. 하지만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작은 운명’은 영어로 번역하면, ‘small destiny'다. 운명(運命)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이다.

운명은 숙명이라고도 한다. 운명은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불가피한 필연의 힘이며, 누구라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절대적인 힘으로 비합리적·초논리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그리스인은 운명을 모이라(moira), 아난케(ananke), 티케(tyche)라고 부른다. 라틴어에서는 파툼(fatum), 포르투나(fortuna)라고 부른다.

나는 운명에 ‘작은(small)이라는 형용사를 붙였다. 무슨 의미일까? 운명을 의도적으로 제한하려고 한 것일까? 그건 아니다. 운명은 인간이 스스로 어떠한 작용을 할 여지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운명이라는 의미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다. 소설의 주인공의 운명을 아주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국한하고 싶어서다.

‘작은 운명’을 써가면서 나는 한 두 사람의 친구를 끌어들이고 싶다. 같이 소설을 써내려갈 사람을 찾고 싶다. 같이 상의하면서 소설의 방향을 잡고, 소설의 주인공들의 삶을 규정짓고 싶은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친구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단지 문을 열어놓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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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2)

명훈 아빠는 너무 억울했다. 고생해서 이제 잘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놀지도 못하고 악착같이 일만 했는데 이렇게 구속되고 회사가 부도나게 되니까 너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부인과도 말하기 싫다. 집에서 부인에게 수사받는 상황과 앞으로의 일을 털어놓고 걱정해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돈을 많이 주고 선임했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변호사는 남의 일이기 때문에 명훈 아빠처럼 크게 걱정도 하지 않는다. 먼저 전화를 해오는 일도 없다. 꼭 명훈 아빠가 먼저 전화하고 찾아가야 그제서야 비로소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상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외로웠다. 그렇다고 형제들에게 말을 해봤자, 창피하기만 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의 바깥 생활, 사업, 대외관계는 언제나 이렇다.

모든 것이 자신의 짐이다. 자기만의 지게에 올려져있는 무거움이다. 점점 공황상태가 되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신감을 잃는다. 우울증세도 나타나고, 대인기피증세도 나타난다.

그러다가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수사대상이 되면 보통 사람들은 공황상태가 된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만 생각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만 생각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희망은 없다. 모든 것이 절망이다.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다.

명훈 아빠는 늦은 시간이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늦어서 사방은 고요하다. 적막이 견딜 수 없었다. TV를 켰다. 그리고 술을 찾았다. 그동안 집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TV에서는 어떤 고위공직자가 사업하는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명훈 아빠는 생각했다. ‘아, 저렇게 높은 위치에 있던 공직자도 구속되니까 저렇게 초라해지고 비참해지는구나. 법원에서는 무죄라는데, 검찰에서는 왜 구속하고 재판에 회부했을까? 억울한 사람도 저렇게 오랫동안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무죄로 겨우 석방되는데, 나는 무죄도 아니고 정말 큰일 났다.’

갑자기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를 받다가 자살한 사람들은 뉴스에서 많이 보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명훈 아빠는 자신의 문제가 되자, 너무 무서웠다. 자살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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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41)

명훈 아빠는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공황상태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검찰에 의해서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변호사도 특별한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상대방과 말을 맞추지 못하도록 일체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명태주식회사 사장도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고, 뇌물 혐의를 받는 시청 공무원에 대한 조사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을 때 피의자로서 가장 난감한 것이 공범과 말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에서는 나중에 공범 상호간에 말을 맞추려고 했다는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특히 뇌물사건에 있어서는 그렇다.

요새는 사람들이 많이 약아져서 뇌물이나 부정한 돈을 주고 받을 때 은행계좌이체를 하지 않는다. 수표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나중에 명확한 증거가 잡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세상 물정이 어둡거나 뇌물 받아먹는데 심취해 있어 뇌물사건수사나 재판에 관한 신문기사를 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수표를 받거나 서로 만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은행계좌이체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거액의 상품권을 받아 사용하면서 백화점 고객 장부에 사용내역이 기재된 것 때문에 뇌물죄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검찰에서 특별수사를 통해 공무원이나 뇌물을 준 업자의 장부나 은행계좌, 전화통화내역 등을 샅샅이 뒤지면 어떤 형태로든 증거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뇌물사건이나 배임수재사건 등의 수사에 있어서 검찰은 당사자 쌍방 간에 증거를 인멸하거나 말을 맞추어 범죄를 부인하는 상황을 예상하고 이를 추적하는 것이다.

회사 비자금을 5억원 만들어 사용했다는 부분도 검찰에서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속이 무서워서 도망갈 수도 없다.

도주하면 곧 바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위험이 있다. 증거를 인멸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주 외국으로 피해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러면 회사는 부도난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사건 수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밤에 잠도 못자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자신은 구속되어 징역을 몇 년 살고, 회사는 부도나고, 신문에 나면 명예는 추락한다. 앞으로 관청 일은 더 이상 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이 너무 허망하게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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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9)

선희는 직장 상사의 딸을 낳은 다음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살았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아이를 키우는 맛에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직장 생활도 하지 않고, 아이 아빠가 주는 생활비와 양육비를 가지고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하면서 지냈다. 처음에는 선희 부모님은 선희가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 먹은 사장 아이를 낳고 말하자면 첩생활을 하는 것을 보
고 속이 상해 난리를 쳤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결국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희가 알아서 하라
고 하고 손을 뗐다.

그러나 선희 고등학교 친구들이 나이 먹어도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살고 있
는 것을 보든가, 아니면 일찍 좋은 남자 만난 신났다고 하면서 결혼식을 화
려하게 하고 내노라 하고 잘 살던 여자 아이들이 아이 낳고 몇 년 지나지 않
아서 이혼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그 중에는 이혼하면서 남편이 돈이 없어서 돈 한푼 받지 못하고 몸만 쫓겨나
오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건달과 결혼해서 독한 성병만 남편에게서 옮고 남편이 바람핀다
고 바가지 긁었다가 가정폭력을 당해 코뼈가 부러지고, 고막이 파열되고, 친
정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친구들을 생각하면 선희는 천만다행이었다. 아이 아빠는 그래도 재력도 
있고 사회적 능력도 있었고, 특히 여자에 대한 책임감과 배려심이 있었다. 
비록 기혼자라 결혼은 하지 못해도 선희가 아이와 같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
와주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다음 선희는 이런 식으로 살아봐야 남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남자들을 만났다. 선희
는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야 남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돈을 내고 상대를 소개받았다.

남자들은 여자를 만날 때 너무 많은 것을 따지고 있었다. 우선 외모를 많이 
따졌다. 그 다음 사회적 능력을 따졌다.

직업이 있는지, 돈을 있는지를 따졌다. 말로는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오직 
인간성만 보고, 성격만 본다고 해놓고 막상 실전에 들어가서는 외모와 능력
만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희는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실망하고 남녀간의 진정한 사랑은 없
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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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8)

기획부동산회사에서는 실제로 많은 돈을 벌기도 한다. 지하철역이 생기는 지
역의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하여 상당한 차익을 남기고 되파는 것이다.

특히 공단이 들어서거나 대규모 택지개발이 되는 곳을 재빨리 정보를 입수해
서 그 지역의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입한다.

뿐만 아니라 유치권 등의 복잡한 경매물건을 찾아서 다른 사람들이 선뜻 입
찰에 참여하지 못하는 부동산을 권리분석하여 싼값에 낙찰을 받아 다시 매도
처분을 한다.

진근의 아버지 용구용(남, 60세, 가명)과 기획부동산에서 근무하는 윤선희 
실장(여, 50세, 가명)은 죽이 맞아서 부동산투자로 돈을 벌기 위해 자주 만
나 서울 근교의 땅을 보러다녔다.

구용은 식당일 때문에 바빴기 때문에 주로 평일 오전에 일찍 선희와 같이 땅
을 보러다녔다. 그러다나 선희가 머리가 좋고 일을 잘하는 것을 보고 선희에
게 낮에는 기획부동산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구용의 식당에 와서 
지배인으로 일을 하도록 시켰다.

선희의 도움으로 구용의 ‘돼지똥’ 식당은 몇 개의 체인점을 내게 되었다. 
그 중 한 개는 아예 선희가 가맹점주가 되어 운영을 맡아서 했다. 선희는 고
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회사 사장의 아들을 한명 낳았다.

사장이 선희를 꼬여서 임신을 시킨 것이었다. 선희가 24살이었을 때 사장은 
처음에는 술을 먹이고 술에 취한 선희와 관계를 맺었다.

선희는 그때까지 처녀로 있다가 비록 술에 취해 강제로 당한 것이었지만, 관
계를 가진 다음 이상하게 그 사장에게 정이 들었다.

그래서 임신한 것을 알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더니 사장은 절대로 아이를 낳
아서는 안 된다고 난리를 쳤다. 선희는 그럴수록 아이에 더욱 애착을 하게 
되었고, 끝내 아이를 낳았다.

사장은 하는 수 없이 선희에게 아이에 대한 양육비책임을 지기로 하였고, 아
이는 선희 호적에만 올리도록 했다.

사장은 선희에게 아파트 24평형 한 채를 사주었고, 양육비와 생활비를 지급
할 것을 공증을 해주었다. 다만, 나중에 사장에 대한 상속권은 포기하는 것
으로 각서를 받아놓았다.

그렇게 낳은 딸이 지금 25살이 되었는데, 딸이 열 다섯살 되던 해에 그 사장
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병원에 입원해서 한 달만에 한많은 이 세상
을 떠났다.

알고 보니 사장은 돈을 많이 벌어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후 여러 
군데서 사기를 당해 끝내 사업은 부도나고 남겨놓은 재산은 빚밖에 없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것도 사장이 사기를 당해 속을 썩였고, 매일 술과 담배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사장은 젊었을 때 정력에 좋다는 뱀탕을 많이 먹고, 녹용과 사슴피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정력을 주체할 수 없어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일주
일에 다섯 번은 반드시 여자관계를 했어야 했다.

이런 저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선희는 처음에는 사장이 미웠지만, 그래도 
죽었다고 하니까 오직 불쌍하고 딱한 생각만 들었고,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
실은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그 사장의 딸은 아버지 피를 닮지 않아서인지, 아주 착
하고 성실하고 신앙심 깊게 성장하고 있었다.

선희 자신도 그렇게 착한 것도 아니고 성실하지도 않고 신앙심이 깊지도 않
고, 선희는 남자를 좋아하는 편인데 어떻게 해서 사장과 선희 사이에서 태어
난 딸이 나타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돌연변이라는 말이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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