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68)

수범의 아버지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교도 진학하지 못하고 힘든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왔다. 수범의 할아버지가 무리한 개발사업을 하다가 모든 재산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수범 아버지 황정성(53세, 가명)은 일식당에 취직해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그렇게 해서 45살부터는 혼자 일식당을 차려서 수범 어머니와 운영을 해서 자리를 잡았다. 수범 아버지는 낚시를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말이면 낚시를 가서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조용한 곳에서 낚싯대를 세워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면, ‘저런 것을 왜 하고 있을까? 얼마나 심심하고 답답할까? 차라리 공기 좋은 곳에서 걸으면 운동이라도 될텐데... 낚시하는 사람은 정말 한심하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낚시를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낚시를 물고기가 물어서 낚싯꾼과 물고기가 밀고 당기고 하는 촉감을 느껴본다면 그런 이야기를 쏙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낚시를 하면 명상법을 배우게 된다.

몇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서 낚시끝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얗게 되고, 맑아진다. 세상에서 보는 온갖 추하고 더럽고 야비한 못된 인간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 인간의 오욕(五慾)에서 벗어나 바다나 강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성은 이번에 아들 수범이 어이없는 일을 당한 것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도대체 왜 그런 불행한 일, 꿈속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어떤 불행한 일을 당하면 불안해진다. 공황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매우 비이성적인 상태가 된다. 그 상태에서 불행한 현상이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으려고 애쓴다.

정성은 몇 달 전에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 공철의 일을 떠올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공철의 불행이 정성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정성과 공철은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젊었을 때 두 사람은 같은 일식당에서 일을 배웠는데, 정성은 끝까지 생선요리를 참고 배웠다.

그런데 공철은 워낙 여자를 좋아해서 일식당에서 근무하면서도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말썽만 일으켰다. 공철은 일을 하다가도 몸매가 좋은 여직원이 들어오면 그 여자 엉덩이를 여직원이 새로 들어오면 그 여직원이 일을 할 때 움직이는 엉덩이를 쳐다보느라고 비싼 생선회가 가득 담긴 큰 그릇을 땅에 떨어뜨려 박살낸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적은 월급을 모두 털어서 여직원을 꼬시는데 다 써버리고, 돈이 떨어지면 친구인 정성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아무튼 공철의 여자 꼬시는 기술은 탁월해서 새로 들어오는 여직원은 보름쯤 지나면 당연히 공철의 여자가 되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었다.

그러면 기존에 있던 여직원은 기분이 나빠져서 말도 없이 식당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그렇게 연애를 끊임없이 해서 늘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면서도 공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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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2)

“피의자는 명태주식회사 대표이사에게 하청을 주고, 나중에 리베이트로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있지요?”
“그런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명태 대표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명태주식회사 법인계좌에서 피의자 개인계좌로 2억원이 들어온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그건 제가 일시 자금이 필요해서 빌렸다가 다시 돌려준 것입니다.”
“피의자가 돌려 준 증거는 있는가요?”
“현금으로 돌려주었기 때문에 증거는 없습니다.”
“명태 대표이사는 리베이트로 2억원을 주었고, 다시 돌려받은 사실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는 돌려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명훈 아빠는 명태주식회사 사장이 이미 다 진술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왜 조사받은 사실을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을까? 왜 리베이트를 주었다고 자백을 했을까? 그럴 사람이 아닌데...’
명태 사장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회사 이름이 ‘명태’라 재수가 없어 그렇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왜 하필이면 명태라고 지었을까? 차라리 ‘동태’라고 하지? 아니면, ‘생태’로 하든가? 동태나 생태는 괜찮지만, 명태는 ‘명태눈깔’이라는 표현처럼 죽은 생선 같아서 그런 이름 가지고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명태를 회사 이름으로 하는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야 없을 것 같았다.
검사는 그 이외에도 시청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추궁했다. 그런 뇌물죄 부분이 종국적인 검사의 목표같았다. 또한 법인 자금 5억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에도 혐의를 두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법인 자금 5억원 중 1억원으로 애인이 사용하도록 오피스텔을 얻어준 것에 대한 자료도 수집해 놓은 것이었다. 도대체 사업을 하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먼지 터는 것처럼 파고 들어가 조사를 하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검사는 일단 조사를 마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라고 했다. 정 사장은 10시간에 걸친 조사에 지쳤다. 너무 힘이 들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묻고 따지고 추궁하는 검사가 무서웠다. 옆에서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개별적인 신문에 코치는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검사는 조사를 마치고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필요하면 또 부를 것이라면서 조사받은 사항을 관련자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일종의 공갈이었다. 증거인멸을 하지 말고, 말을 맞추어서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누가 회사 비밀을 검사에게 소상하게 이야기해준 것일까? 누구일까? 회사 내부에 있는 사람의 소행같았다. 조사받느라고 지쳐 집에 도착하니 명훈과 명훈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되었어요? 조사 잘 받았어요?”
“글세. 모르겠어. 어떤 〇이 투서를 한 것 같아. 회사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빠. 왜 무슨 일이 있으세요?”
“명훈이는 가서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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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7)

수범은 절망했다.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에도 그랬지만, 나중에 형이 확정되어 정식으로 교도소 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범은 그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도대체 고의이든 과실이든 수범이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형법상 인식 없는 도구에 불과했다. 악질적인 마약조직에서 수범을 순간적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괌공항에서 수범에게 짐을 들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할머니도 마찬가지로 마약조직에 이용 당했던 여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이미 상습적으로 마약을 운반해주는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고, 오직 수범만 일회용으로 이용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법은 냉정하고 인정 사정 없다.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수범을 검거했으면 마약운반책으로 처벌하면 그만이지, 수범의 억울한 변명 내용을 인간적으로 귀담아 들어주고 무혐의석방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실제로 뉴스를 보면 이런 마약조직들에 의해 이용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수범 아버지가 아들 사건이 문제가 된 이후에 뉴스를 유심히 보니 이런 사건도 있었다.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남자 2명이 내복에 마약을 숨겨서 밀반입하다가 검거되었다. 두 남자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혐의로 각각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말이지 수범은 사전에 이러한 마약조직에 포섭된 운반책도 아니었다. 마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관계도 없는 대학생으로서 단순히 괌에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중 철저하게 이용당했던 피해자였다.

수범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어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거나 징역을 살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자포자기상태가 되었다. 미국 교도소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한국말도 잊어버리게 되었다. 미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같은 감방에 있는 미국 사람들의 눈빛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교도관들의 냉정한 태도와 엄격한 말씨는 완전히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미국 교도소에서는 처음 입소하면 정신교육을 시킨다고 운동장에서 30미터 정도의 정사각형 선을 그어놓고 둥근 원통에 4가지 색깔의 벽돌을 열장 정도 넣어서 운반을 시킨다.

무거운 벽돌이 들어있는 원통을 순차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재소자들은 인생을 포기한 중죄인들이었다. 그들은 별로 말도 없었다. 수범은 그 긴 세월 징역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미국 교도소생활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물론 언어였지만, 시간이 가면서 더 어려운 것은 음식이었다. 한국 음식에 익숙해있던 수범에게 미국 교도소에서 주는 음식은 정말 역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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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6)

그때까지만 해도 수범은 법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에, 그냥 공항상태에 빠져있을 뿐,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빠지면 머리가 백지상태가 된다.

아무리 배우고 똑똑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위기에 대처하는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아도 소용 없다.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되면 동물적 본능만이 인간을 지배하고 이성과 지혜는 순간적으로 실종되고 만다.

괌(Pacific Islands, Guam)은 서태평양, 마리아나 제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미국의 영토다. 미국의 50개 주에 속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준주(準州, incorporated organized territories)이다.

인구는 17여만명으로서 주민들은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898년 미국에 할양되었다. 1941년 일본에 의해 점령된 적이 있지만, 1944년부터 미국이 관리하고 있다.

이곳 사법경찰권은 모두 미국 법집행공무원들이 담당하고 있다. 수범의 친구들은 여행을 포기하고, 호텔에 머물면서 한국에 있는 수범의 부모님께 사정을 알렸다. 수범의 부모님은 곧 한국에서 괌으로 출발했다.

수범은 미국 세관직원에 의해 마약밀수범으로 체포되었고, 엄중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수범은 한국어를 하는 통역관에 의해 한국말로 조사를 받았다.

“저는 어떤 할머니로부터 부탁을 받고, 잠깐 그 짐을 들어다주고 있었을 뿐이예요. 그 짐 안에 마약이 들어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어요.”
“그 할머니를 여기 cctv에서 확인해 줄 수 있나요?”

세관직원은 수범에게 수범이 동선을 따라 촬영된 cctv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범에게 짐을 맡긴 할머니의 모습은 전혀 cctv에 나타나지 않았다.

수범이 본 할머니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여자 모습도 없었다. 범인들은 몇 사람이 짜고 조직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부러 할머니의 모습이 cctv에 잡히지 않게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순간적으로 다른 옷을 위에 걸치고 공범으로부터 모자를 건네받고 짙은 선글래스를 끼고 아무 짐 없이 그냥 세관검색대를 통과한 것이었다. 수범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짐 안에는 못쓰는 헌 옷가지뿐이었다. 그 안에 마약이 대량 들어있었다.

“학생을 거짓말해도 소용이 없어. 이렇게 마약이 압수되었고, 학생이 마약이 든 가방을 들고 나왔으니까. 이런 경우에는 초범이고 대학생이니까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면 석방시켜줄 거야.”

통역관은 한국 사람 같았다. 한국말을 아주 잘 하는 나이 든 사람이었다. 수범은 그 통역관을 믿었다.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마약이 든 것을 알면서 어떤 사람의 부탁을 받고 들고나오려고 했던 것입니다.”

수사관은 수범을 상대로 더 상세한 자백을 받았다. 물론 그 자백은 100% 허위자백이었다. 공범에 대해 상세한 허위자백을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천달러를 받기로 했다고까지 자백했다.

이 사건으로 수범은 1심법원에서 징역 7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항소심은 미국 본토에 있는 항소심법원에서 진행되었다. 수범의 부모님은 미국 변호사도 선임했지만, 미국법은 마약사범에 대해 아주 엄격했고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통역관의 잘못된 코치로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지만, 통역관이 그런 식으로 유도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되면 한국인으로서는 한국에서 수형생활을 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힘이 든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특히 교도소 음식을 먹을 수 없다. 교도소 내 미국인 수형인들에게 체격 작은 외국인은 공포에 질려 수형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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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5)

사람의 운명은 이렇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아주 이상한 일을 당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망가지기도 한다. 수범의 경우가 그렇다. 바로 몇 분전까지만 해도 수범은 아주 행복했다.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님 덕에 대학교를 편하게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름 방학에 친구들과 함께 괌으로 일주일 여행을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악마 같은 여자가 하필이면 수범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이면 다른 사람 아닌 수범에게 말을 걸었고, 수범에게 마약이 든 짐을 부탁하여 세관직원의 검색을 통과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다행이 세관직원이 마약을 검색해내지 못하고 그냥 통과시켰다면 그 여자는 수범으로부터 짐을 건네받고 단지 말 한마디, ‘Thank you.’라고 서툰 영어발음으로 끝내고 바쁜 걸음으로 서둘러 공범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급히 갔을 것이다.

그때는 수범이 무어라고 생각하든 말든 상관 없는 일이다. 왜 짐을 부탁할 때는 다 죽어가던 할머니가 세관을 통과한 다음에는 20대 수영선수 이상으로 몸을 꼿꼿이 하고 수범보다 더 빨리 걸어갈 수 있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성취감에 듣떠 지금까지 늙고 병들어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하는 여자로 위장하여 쇼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수범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일을 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허약한 할머니를 위해 별것 아닌 도움을 준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이런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밑바닥에 깔려있다. 어떤 행위의 양방향 대척점에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심리와 인식이 놓여있다. 두 인간이 서로 교차하여 행하는 말과 행동에는 언제나 내심의 의사와 동기가 숨어있다.

그러한 내심의 의사와 동기는 상대에게 솔직하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대체로 그런 것은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상대방도 그런 것을 그때마다 정확하게 알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순수하지 않는 사람이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하고, 상대를 이용하는 행위, 그리고 상대가 이용당하는 과정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숨은 의도, 악한 마음, 악한 행동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적으로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상대의 나쁜 의도는 보통 사람들은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당하고 피해를 본다. 그런 시행착오를 살면서 누구나 몇 번은 겪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사람은 성장하고 성숙한다.

세상 사람들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삶의 진리를 비로소 깨닫는다. 그리고 상대를 의심한다. 그러면서 어떤 촉이 생기고, 상대의 시커먼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반면에 이렇게 똑똑해지지 못하고 평생을 남에게 속고 당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운명의 여신이 보낸 악마의 손길은 이 순간에 한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곳 괌에서 수범에게 뻗쳤고, 수범은 아무 죄 없이 그 악마가 쳐놓은 덫에 걸려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인간은 자신에게 닥치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아무 대책 없이 사냥꾼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하고, 날카로운 덫에 걸려 생명을 잃기도 하고, 재산을 날리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기도 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자신보다 강한 다른 동물에 의해 공격 당한다. 자신보다 약한 다른 동물을 포획하여 먹으려고 하는 강한 동물은 상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리를 내지 않고 다가가 갑자기 공격한다.

아니면 상대가 볼 수 없도록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먹이를 향해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달라들어 목덜미를 물어뜯는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식용으로 할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서 최고의 두뇌를 가졌다는 인간에 의해 놓여진 덫과 미끼, 그물과 망에 의해 24시간 밤낮없이 전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생명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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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4)

한국의 어떤 대학생이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괌에 놀러갔다가, 공항에서 나갈 때 어떤 동양계 할머니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간단한 영어로 할머니의 짐을 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할머니도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손짓 몸짓으로 한국 대학생에게 자신은 허리도 아프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세관 밖으로 들어다 달라는 것이었다.

대학생은 할머니가 불쌍해서 자신의 짐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캐리어를 같이 들고 이동했다. 할머니는 대학생의 뒤를 따라서 힘겹게 쫓아오고 있었다.

대학생은 불쌍하고 힘없는 할머니를 비록 처음 보는 외국인이었지만 작은 봉사라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순간적인 보람을 느꼈다. 대학생 일행 다른 두 사람은 간단한 세관검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대학생 수범의 차례가 되자, 미국 세관직원은 수범의 짐을 모두 열어보라고 했다. 수범의 짐은 그러니까 두 개의 캐리어가 된 것이었다. 수범은 시키는대로 두 개의 짐을 열고 보여주었다.

그러자 세관직원은 다른 직원을 불러서 수범을 별도의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수범의 짐과 그 할머니의 짐도 세관직원이 끌고 갔다. 수범은 그 짐 중 하나는 자신의 짐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짐이라고 설명을 해야 하는데, 영어가 짧아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수범에게 짐을 맡기고 뒤를 따라오고 있던 할머니를 찾았으나 할머니는 이미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황한 수범은 미국 세관직원에게 할머니라는 단어도 입에 나오지 않았다. ‘grandmother'라는 단어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은 오직, ’mother'나 ‘father'뿐이었다. 또 확실하게 생각나는 것은, ’student' 'love' 'sex' 등이었다.

짐을 맡긴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했지만, 수범의 머릿속은 하얗게 겁에 질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세관직원은 꼼꼼히 수범의 짐을 뒤지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범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캐리어는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맡긴 캐리어는 이를 잡는 것처럼 샅샅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직원은 어디선가 커다란 사냥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수범의 짐을 풀러놓고 냄새를 맡게 하고 있었다. 사냥개는 이상한 태도를 보이면서 마치 무슨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날뛰는 것이었다.

삼십분쯤 있다가 세관직원은 갑자기 수범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창문이 전혀 없는 작은 방에 넣어놓았다. 핸드폰도 압수되고 신분증, 여권, 비행기표, 지갑 모두 압수되었다.

먼저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두 명은 영문도 모르고 마냥 밖에서 수범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범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세관직원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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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3)

철준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록 처음 만났지만 겉모습과 말하는 젊잖은 태도가 충분히 믿음이 갔기 때문에 정 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매달렸다. 철준이 경화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정보라고는 오직 이름과 미국 휴대전화였다.

“예. 사장님 저는 이 사람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으니, 좀 도와주세요.”
“알았어요. 이따 저녁 7시에 이곳에서 만나요. 그때까지 내가 알아보고 올테니까요.”
“예. 정말 고맙습니다. 꼭 좀 알아봐 주세요.”

철준은 왠지 이 사람을 통해서 경화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고 생기가 돋았다. 시내를 걸어서 구경을 하다가 어느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특별히 사고 싶은 물건은 없었다. 대부분은 한국에서 수입을 하고 있었고, 물건의 품질도 한국이 낫고 값도 싸보였다. 쇼핑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남자 혼자 백화점 안을 구경하는 것도 별로 재미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백화점 입구에서 경찰 순찰자가 서있고, 경찰관 2명이 동양계로 보이는 나이 든 여자를 수갑을 허리 뒤로 채워서 포승줄로 묶고 있었다.

대낮에 백화점 앞에서 무슨 일인가 싶었다. 구경꾼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어서 그런지 관심도 갖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었다.

철준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그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50살 정도로 보였는데, 그렇다고 거지 행색을 아니었다.

아마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힌 것 같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영어를 모르기 때문에 철준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미국 경찰관에게 사건 내용을 물었다가는 공무집행방해죄로 철준도 그 자리에서 수갑을 차거나 여자 범인의 공범이나 기둥서방으로 오해를 받아 함께 순찰타에 태워질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미칠 정도였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관들은 연약해 보이는 여자 범인을 무슨 살인범처럼 아주 심하고 가혹하게 대하고 있었다. 경찰은 여자를 순찰차에 태우고 사이렌을 울리면서 현장을 떠났다.

철준은 미국법이 얼마나 무섭고 미국의 법집행이 얼마나 인정사정 없이 냉정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느꼈다. 전에 철준은 주변사람들로부터 몇 가지 사건을 들은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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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2)

철준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골아떨어졌다. 꿈속에서 가위에 눌려있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경화 비슷하게 생긴 여자가 철준의 가슴 위에 앉아 강하게 누르면서 철준을 쏘아보고 있었다.

순간 철준은 너무 무서웠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도 아닌 중간 형태의 괴물이었다. 철준이 일어나려고 두 손으로 밀어도 그 여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철준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무엇 때문에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입을 꽉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뚝뚝 철준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울고 있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제끼고 큰 소리를 내며 웃는 것이었다. 철준은 소름이 짝 끼쳤다. 식은 땀을 흘렸다. 다시 그 여자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데 철준은 무슨 말인지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된 것 같았다. 철준이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서 그 여자를 밀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뒤로 넘어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철준은 살았다 싶어서 아주 통쾌함을 느꼈다.

그 여자는 사라지고 철준은 꿈에서 깨었다. 너무 무서웠다. 꿈이어서 천만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여자 때문에 철준의 팬티가 흠뻑 젖어있었다. 평소보다 양이 두 배나 되었다.

무슨 꿈이었을까? 경화가 죽은 것일까? 아니면 철준을 저주하고 있는 것일까? 철준은 식은 땀을 씻으며 작은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냈다. 다시 술에 취하고 싶었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러 코리안 레스토랑으로 갔다.

철준은 혼자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외롭게 앉아 있었다. 이제는 미국에서의 방황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다. 경화가 없는 LA도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앉아 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한국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잘 못보던 분인데요.”
“예. 저는 이곳이 처음입니다. 곧 서울로 돌아갈 겁니다.”
“그래, 관광은 잘 하셨습니까? 무척 피곤해 보이시네요.”
“예. 그저 그러네요. 근데, 사장님은 이곳에 사시나요?”
“예. 저는 이민온 지 벌써 30년이나 되었어요. 이곳 터주대감이지요.”
“아 그래요.”
“이곳에는 아는 분이 계신가요?”

그 사람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꾸 철준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30년이나 LA에서 생활한 교포라고 하기에 혹시 경화에 대해 물어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은 제가 아는 사람이 LA에 사는데, 이번에 온 기회에 한번 만나볼까 했는데,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이 되지 않네요.”
“아! 그래요. 혹시 누군지 말해주시면 제가 알아볼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워낙 이곳에서 오래 살고 발이 넓어서 한국 사람들은 대개 다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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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1)

코리아타운에서는 영어가 필요없었다. 한국어로 된 간판이 많았다. 성철규 코치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미국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hellow나 okay, thank you, good morning은 확실하게 귀에 들어왔다. 그러나 맥도날드에 가서 주문할 때도 미국인은 너무 빨리 무어라고 말하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메뉴사진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가르키면 원하는 것을 먹을 수는 있지만, 버거셋트에서 콜라를 커피로 바꿔달라는 말 같은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버거셋트에서 커피를 선택하는 일은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니까 종업원은 철규를 무시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기분이 나빴는데, 철규는 강한 삶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과 난관을 극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일부러 종업원에게 자꾸 이것 저것 말을 걸어서 native speaker의 원어민 발음을 익히려 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미국에 오기 전에 tv에서 개그콘서트나 야구 경기를 보는 대신 cnn을 열심히 보거나 이태원이나 홍대 앞에 가서 미국 사람을 친하게 지내서 생맥주를 마시면서 영어회화를 배울 걸 그랬다는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한국 교포나 유학생들이 미국 레스토랑에서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물론 가만히 들어보고 있으면 한국 교포나 유학생들이 발음은 미국 원어민이 하는 발음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건 철준에게도 쉽게 구별이 되는 부분이었다.

미국에서 며칠 있으면서 느낀 것은 영어가 듣기 부드럽고 말할 때 입모양이 예쁘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무슨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철준은 서울에 돌아오면 헬스장에서 코칭을 할 때 가급적 영어를 많이 사용해야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졌다.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에 가는 즉시 홍대앞에 가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경화를 만나러 왔는데, 경화의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고,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아무런 방법도 없었다. 철준은 시차가 바뀌어 밤과 낮이 거꾸로 돌아가니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울에서처럼 24시간 영업을 하거나 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이나 식당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싸구려 모텔의 작은 방에서 잠도 오지 않는데 틀어박혀있는 것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모텔에 최종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위스키, 화이트 와인, 캔맥주를 잔뜩 샀다. 물론 안주도 많이 샀다. tv를 켜놓고 혼자 술을 마셨다. 채널도 많지 않았지만, 영어로 하는 방송이라 그림만 보는 것이니까 재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서울에서처럼 성인방송을 틀어주는 것도 아니었다. 상업성 광고는 엄청나게 화려하게 하고 있었다. 고독했다. 실존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철준은 경화와의 첫만남부터 그동안 두 사람이 겼었던 희로애락을 떠올렸다.

그리고 목숨과 바꿀 정도로 사랑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순수한 사랑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여자의 연약함과 비겁함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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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0)

더 소지품을 뒤지다 보니 일기장이 있었다. 코치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기장에 손으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일기장은 한 권밖에 없었다. 매일 쓴 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아서 쓰고 있었다.

일기를 읽어나가다 보니 코치의 모든 비밀이 눈앞에 환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코치는 37살이었다.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고 있었다. 3년 전에 사진 속의 ‘경화’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경화 부모의 강력한 반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고 경화는 미국으로 떠났다. 경화 이모가 미국에 살고 있어서 코치와 떼어놓기 위해서 경화를 이모집으로 강제로 보낸 것이었다.

코치는 아직까지 경화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경화는 몇 달 전에 미국에서 돈많은 교포 2세와 결혼했다. 경화도 미국 가서도 코치를 사랑했다. 그래서 코치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미국에서 코치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코치는 어렵게 비행기표를 끊어 미국으로 갔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코치는 출발했다. 처음 가보는 미국에 혼자 공항에서 내려 기다렸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기 바로 직전까지 코치는 경화와 전화를 주고 받았다.

그런데 막상 로스앤젤러스 공항에 도착해 보니 경화는 보이지 않았다. 경화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져있었다. 코치는 더 이상 연락할 다른 연락처가 없었다. 경화가 살고 있는 미국 주소도 몰랐다. 미국 경찰에 신고할 사항도 아니었다.

코치는 미칠 것 같았다. 열네시간 걸려서 고된 비행을 했고, 또 사랑하는 경화를 만날 생각에 약속한 날부터 열흘 동안이나 밤낮없이 경화만 생각하고 들떠서 왔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만일 경화가 고의적으로 코치를 농락하는 행위였다면 코치는 경화를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치는 그 순간, 다른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혹시 경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더 강해서 코치는 미칠 것 같았다. 일단 시내로 들어가 코리아타운으로 갔다. 이왕 간 김에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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