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59)
길자는 행복했다. 50살이 될 때까지 이런 꽉 찬 느낌은 처음이었다. 자신의 몸에 빈 공간은 전혀 없었다. 코치의 뜨거움이 길자의 차가움을 제압하고 뜨거운 용광로 안에 집어던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길자는 완전히 새로운 여자가 되었다.
그 일은 꼭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코치가 술에서 깨어나 보니 길자가 자신을 껴안고 자고 있었다. 코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순간적인 욕정을 참지 못하고 길자를 껴안고 진한 사랑을 나누었다.
길자도 잠이 깼다. 두 사람은 그 일을 하면서 진한 애무와 키스를 반복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길자는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일을 마친 다음 길자는 깊은 잠에 빠졌다.
한 시간 정도 더 자고 길자가 일어났을 때 코치는 이미 원룸을 나간 상태였다. 길자는 피곤해서 그냥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숨이 막힐듯한 작은 공간에서 길자는 자신의 초라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발가벗은 자신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동물적 욕망에 사로잡혀 발버둥쳤던 자신이 너무 미웠다. 헤어날 수 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가서 시야도 흐려졌다.
방에서는 아주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 혼자 살고 있는 공간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짙은 공기가 깔려있었다. 검은 악령이 급히 언덕에 뛰어오른 다음 폐속 깊은 심연으로부터 분무기가 뿜어내는 시커먼 색깔이 온 벽에 채색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전까지만 해도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의 부존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 같으면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남자라서 가능한 것 같았다. 여자라면 자신의 홈그라운드에 들어와서 자신을 만족시켜준 낯선 사랑의 주인공을 홀로 남겨두고 냉정하게 외출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길자는 나이 들어 또 다시 남자의 속성을 오해하고 이렇게 자신의 몸뚱이를 함부로 팽개친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나이 많다고 코치가 완전히 무시하고 짓밟은 것 같아 기분도 나빠졌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간단히 샤워를 했다. 빨리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코치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길자는 코치의 방에서 이것 저것 하나씩 범인이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수사관처럼 코치의 물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코치가 입는 옷, 내복도 살펴보았다.
사진첩이 있었다. 어떤 여자와 찍은 사진이 50여장 있었다. 오직 한 여자였다. 그 여자가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코치와 어떤 관계일까? 방에 여자의 옷이나 물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옷장 맨 안쪽 구석에 성인용품이 있었다. 코치가 사용하는 자위기구였다. 언뜻 보기에 흉측했다. 비릿한 냄새가 배어있었다. 순간 불쾌했다. 길자는 그것을 보자, 어제 밤 자신이 코치의 성적 도구인 인형(sex doll) 역할을 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하지만 코치는 분명 그짓을 할 때 길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자위기구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길자는 몹시 궁금했다. 코치 같은 남자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섹스를 할 여자가 있을 텐데, 왜 이런 자위기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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