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40)

명훈 아빠는 무서웠다. 검찰청의 수사관은 매우 날카로왔다. 검사는 옆에서 
수사관이 조사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사관은 질문을 하면서 명훈 아
빠가 답변을 하면 그 내용을 컴퓨터로 치면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고 있
었다.

“명태주식회사 사장은 피의자로부터 하청을 받고, 하청대금 중 2억원을 리
베이트로 주었고, 그에 대한 증거로 은행송금자료를 제출하고 있는데 피의자
는 왜 이러한 사실을 부인하는가요?”

“부인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그것은 거래업체로서 일
시 빌려 쓴 것이고, 나중에 2억원을 모두 돌려주었습니다. 돈은 일부 자기앞
수표로 주고, 나머지는 5만원권 현금으로 주었습니다. 지금 증거자료를 찾고 
있는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성영성 사장이 하청을 주면서 처음부터 2억원의 리베이트
를 하청대금에서 떼어서 돌려달라고 해서 통장으로 보내 준 것입니다. 그 후 
성 사장이 저에게 반환한 사실은 전혀 없습니다. 성 사장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 사장은 명태 사장이 리베이트 준 사실을 검찰에 신고할 아무런 이유가 없
는데 왜 저런 진술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앞으로도 명태주식회
사와 거래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저렇게 하면 누가 하청을 주겠는가? 리베
이트야 업계의 당연한 관행이 아닌가?

리베이트라 함은 이 사건에서처럼 어떤 회사에 공사를 맡기고 공사대금을 20
억원으로 과다책정한다. 그리고 세금계산서를 발급한다.

공사를 맡은 업자는 부풀려진 공사대금 20억원 가운데 실제 자기가 받아야 
할 금액인 18억원은 진정한 공사대금으로 받아 쓰고, 처음부터 돌려주기로 
약정했던 2억원은 이른바 리베이트 명목으로 공사를 맡긴 회사에 현금으로 
돌려준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사를 맡긴 회사
에서는 2억원을 대표이사 개인 통장으로 받아 개인이 사용한다. 이것은 회사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며, 법인에 대한 업무상횡령죄가 되고 
탈세가 되는 것이다.

성 사장은 명태주식회사로부터 2억원을 개인통장으로 받았던 것인데, 리베이
트를 받은 객관적인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에 다시 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하
고 있는 것이다.

검사는 대질조사를 하면서 집요하게 파고 들었지만, 성 사장은 끝내 범죄사
실을 부인했다. 시청 공무원과의 대질조사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법인 자금
으로 애인 오피스텔을 얻어 준 부분도 심하게 추궁 받았다. 결국 명훈 아빠
는 8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79)  (0) 2020.11.20
작은 운명 (78)  (0) 2020.11.20
작은 운명 (92)  (0) 2020.11.19
작은 운명 (91)  (0) 2020.11.19
작은 운명 (39)  (0) 2020.11.18

 



작은 운명 (92)

진근의 아버지는 어느 날 경기도 외곽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평소 아버지 식당으로 자주 오는 단골손님과 같이 바람을 쐬러 나갔다. 그 여자는 강남에서 기획부동산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주로 지방땅을 대규모로 사들여서 개발계획을 내세워 쪼개 파는 일을 하는 회사였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수립한 대규모 관광단지에 관한 지역개발계획이 발표되면 이를 근거로 해서 그 지역에 있는 야산을 싼값에 사들인다.

그 다음에 지역개발계획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물론 신문에 발표된 관광단지추진계획기사를 곁들인다. 기획부동산회사에서는 아르바이트 홍보요원을 몇십명씩 고용하여 전화로 광고를 한다.

그러면 여유자금을 가지고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미끼에 걸린다. 평당 30만원씩 100평을 구입하라고 한다. 그러면 나중에 경치 좋고 관광단지 주변에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중간에 프리미엄을 받고 팔아주겠다고도 한다. 사람을 솔깃하게 만든다. 회사사무실에 가보면 인테리어를 아주 고급스럽게 해놓았다. 사무실이 으리으리하다. 전화를 걸었던 여자직원은 실제로는 부동산개발사업에 대해 잘 모르고 전화만 한 것이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나타나서 청산유수로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재테크방법을 설명한다. 그곳 부동산회사를 통해 돈을 번 성공사례를 말해주는데, 몇십억원 내지 몇백억원을 번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실명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어떤 국회의원 또는 장관, 법조인, 언론인 들을 암시해서 거론한다. 그 사람들은 이런 기획부동산을 통해서 서울에 빌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회사를 찾아간 사람은 몇 천만원의 돈밖에 여유자금이 없는 형편이니까, 그에 맞는 투자처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꼭 찝어서 말해 준다.

그러면 어리석고 투자경험이 없는 어리숙한 손님은 그 자리에서 가보지도 않고 관련 서류도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땅을 공유지분 형태로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3백만원을 계좌이체로 입금시킨다.

그리고 계약서 한 장 들고와서 곧 몇 배의 수익을 볼 것처럼 꿈에 부푼다. 하지만 그 땅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개발은 되지 않고 땅값은 오히려 떨어진다.

개발계획은 원래 수립했다고 해도 경제적 여건이 되어야 개발에 착수하는 것이고, 장기적인 국토이용계획은 꼭 실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우 장기적인 계획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투자자는 억울하다면서 찾아가서 싸우기도 하고, 사기죄로 고소도 하지만 법이란 무조건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는 완전한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은 등기부상 공유지분만 가지고 앞으로 10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78)  (0) 2020.11.20
작은 운명 (40)  (0) 2020.11.20
작은 운명 (91)  (0) 2020.11.19
작은 운명 (39)  (0) 2020.11.18
작은 운명 (38)  (0) 2020.11.18

 


작은 운명 (91)

진근(남, 32세, 가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했다. 영어나 수학은 취미가 없었지만, 책을 참 좋아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권씩은 빼놓지 않고 읽었다.

그러니까 1년에 100권은 최소 읽은 것 같았다.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았다. 매일 책만 읽고 있으니까 학교 성적은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진근은 오히려 책은 읽지 않고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을 우습게 보았다. 대화를 해보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시야도 매우 좁았다. 사고도 아주 제한되어 있어 답답했다.

게다가 책도 읽지 않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멋이나 부리는 여자 친구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 친구는 사귈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진근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좋아서 돈을 잘 벌었다. 처음에는 돼지갈비집을 작은 규모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제주도 흙돼지고기를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가져다가 양념을 잘 해서 팔았는데 그게 힛트를 쳤다.

식당 이름도 특이하게 ‘제주똥’이라고 지었다. 제주도에서 인분을 먹고 자란 돼지라는 의미이었는데, 사람들은 간판을 보고, ‘통’이라고 쓸 것을 간판업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실수로 ‘똥’이라고 잘못 써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제주통’이라고 이심전심으로 불렀다.

그런데 심뽀가 나쁘거나, 어렸을 때 똥오줌을 잘 가리지 못했던 사람들은 ‘똥’에 한이 맺혀서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들으라고 ‘제주또~~옹’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 액센트를 ‘똥’‘에 두었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경찰서에서 진근 아버지 간판에 ’똥‘이라고 쓴 것을 두고 문제삼기도 했다.

아버지 식당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는 아버지가 군사독재정권에 평화적인 투쟁방법으로 ’대통령‘의 가운데 글자인 ’통‘ 대신 ’똥‘이라고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닌지 특별조사를 했고, 혹시 상호등록을 했는지 여부도 확인까지 했다.

아버지 성향이 의심스럽다면서 조상 중에 6.25 전쟁 중에 부역을 한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다행이 아버지는 명함에는 ’제주통‘이라고 써놓았다. 경찰관은 아버지에게 이름을 바꾸는게 어떠냐고 종용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름 때문에 경찰에 불려가서 조사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 정도면 벌써 아버지 사회적 체면은 땅에 떨어졌고, 품위 있던 명예는 똥이 되었기 때문에 오기가 발동해서 징역을 가면 갔지 상호는 절대 바꿀 수가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런 시비가 벌어지고 있을 때 대통령이 마침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해서 경찰에서도 더 이상 아버지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지역에서 유명해졌다.

독재정권에 맞서서 목숨을 걸고 ‘똥’을 지켜냈다는 칭송이 자자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아버지 식당에 와서 매상을 올려주려고 했다. 갑자기 장사가 잘 되자, 아버지는 신바람이 났다.

모든 것이 돼지똥 때문이라고 믿은 아버지는 돼지가 똥을 누는 사진이나 그림을 수십장 그려 식당 안에 도배를 했다. 사람이 대변을 보는 것과는 달리 돼지가 똥을 넣는 사진이나 그림은 귀엽고 자연스러웠다.

그것을 보고 돼지갈비를 먹는 식욕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식욕이 넘쳤다고들 했다. 아주 극소수의 변비환자들만 그 사진을 보고 짜증을 내고 들어왔다가 그냥 가기도 했다.

반면에 어떤 40년된 만성 변비환자는 아버지 식당을 단골로 다니다가 변비를 완전히 고치는 기적을 맛보기도 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40)  (0) 2020.11.20
작은 운명 (92)  (0) 2020.11.19
작은 운명 (39)  (0) 2020.11.18
작은 운명 (38)  (0) 2020.11.18
작은 운명 (35)  (0) 2020.11.13




작은 운명 (39)

명훈 아빠는 다시 검사실로 출석했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들어갔다. 검사는 다시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고지했다. 제1회 조사받은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서 설명해 준 다음,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명태주식회사 박국경 사장을 들어오게 해서 대질조사를 시작했다.

대질조사(對質調査)라 함은 검사가 피의자와 참고인을 동시에 앉혀놓고 조사하는 것을 말한다. 피의자가 진술한 내용을 참고인에게 ‘피의자가 진술한 이 부분의 진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실은 어떠한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그러면 참고인이 그에 대해 진술을 한다.

‘피의자가 하는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이렇게 된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이런 것이 있다.’라는 식으로 진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검사는 피의자와 참고인의 진술을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상에, 각각 진술자를 표시하고 진술내용을 기재한다.

대질조사의 목적은 서로의 주장이 다를 때 두 사람을 동시에 조사함으로써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다. 특히 고소사건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을 동시에 조사함으로써 피의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하는 것이다. 많은 사건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은 대질조사를 하면 100% 상반되는 내용의 진술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이 거짓말한다고 비난한다. 먼저 피고소인이 말한다. “고소인은 입만 떼면 거짓말하는 사람이예요. 악질이예요. 검사님 믿지 마세요. 저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요.”

이에 대해 고소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뭐라고! 검사님. 저 사람은 숨만 쉬면 거짓말이 저절로 나와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얼마나 거짓말만 하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 정말 무서운 사람이예요. 내가 사기 당한 피해자인데 왜 거짓말을 해요?”

이런 식이다. 뇌물사건에서 대질조사하는 것은 공무원은 돈을 절대로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뇌물을 준 업자는 돈을 주었다고 하니까 두 사람을 동시에 조사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다르면 검사는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두 사람을 동시에 심리테스트를 하면 진실반응과 허위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수사에 참고자료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거짓말탐지기 측정은 반드시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야 가능하다. 당사자가 거짓말탐지기 측정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더 이상 강요하지 못한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92)  (0) 2020.11.19
작은 운명 (91)  (0) 2020.11.19
작은 운명 (38)  (0) 2020.11.18
작은 운명 (35)  (0) 2020.11.13
작은 운명 (74)  (0) 2020.11.13

500



작은 운명 (38)

병원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갔다. 명훈은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은영에게 물었다.
“은영아! 지금 나 사랑하는 거야?”
“응, 오빠. 많이 사랑해. 오빠만 사랑하고 있어해. 그러니까 나 버리지 마! 정말 잘 할게. 아이도 잘 자라고 있어. 오빠 닮은 아이 낳아 똑똑하게 잘 키울거야.”
“그런데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듣고, 나를 괴롭히지 말아야 할 거 아냐? 나는 지금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어. 엄마 아빠는 매일 이 문제로 싸우고, 나보고 나가서 죽으라고 해. 그러니까 일단 아이를 떼고, 우리 차분하게 사랑하면 안 될까? 내가 평생 책임질게.”
“오빠. 그런데 오빠를 어떻게 믿어. 그동안 나를 못본 척하고 버렸었잖아? 그럼 아이를 수술할 테니 혼인신고만 해줘. 그러면 내가 믿을 수 있잖아? 제발 부탁이야. 나도 오빠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
“아니, 지금 내가 학생인데, 어떻게 혼인신고를 해. 그게 무엇 때문에 급해. 사랑은 그냥 믿는 거지. 사람을 못 믿고 의심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어떤 책에서 읽었어. 나는 그 말을 믿어. 원치 않는 아이를 몰래 임신하고 일방적으로 낳겠다고 하는 건 나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수술하고 앞으로 서로 믿고 잘 지내자. 부탁이야.”
“그럼 수술하면, 나를 사랑하고 버리지 않는다는 약속을 내가 믿게끔 해줄 방법을 찾아봐. 나도 생각해 볼게.”
“응 알았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런데, 그 아이 정말 내 아이는 맞는 거야? 나는 몇 번 안 했잖아? 우리 엄마 얘기로는 자기가 다른 남자와 동거도 하고 낙태수술도 여러 번 했다고 그러던데. 내 애기가 절대 아니라고 그랬어.”
“그건 나를 떼어버리려고 거짓말하는 거야. 믿지 마. 나는 동거도 안했고, 낙태도 안했어. 오빠가 첫사랑이고, 처음 관계를 한 거야. 아이도 처음 생긴 거고.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 병원에 가서 같이 확인시켜 줄게. 내가 처녀로서 오빠와 첫 관계를 했다는 사실과 이번이 첫 번째 임신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어.”
“정말 내가 첫 번째 남자고 내 아이가 맞다면 내가 책임질 거야. 그렇지 않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명훈은 갑자기 은영의 말이 사실로 여겨졌고,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은영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생각이 문득 이상한 정을 느끼게 했다.
“오빠 내 말을 믿어. 그리고 모든 여건을 초월해서 우리 사랑하면서 잘 살면 좋겠어. 내가 잘 할게.”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91)  (0) 2020.11.19
작은 운명 (39)  (0) 2020.11.18
작은 운명 (35)  (0) 2020.11.13
작은 운명 (74)  (0) 2020.11.13
103.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남자 교수의 슬픈 이야기  (0) 2020.11.12


작은 운명 (35)

“술에 취해 모텔에 어떻게 갔는지도 모른대요.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고요. 실제 관계도 안했대요. 그런데 여자들이 나중에 강압적으로 요구해서 사실확인서를 써주고 왔대요. 사실확인서는 부르는대로 썼는데 지금 그 여자들이 가지고 가서 우리 아이는 어떤 내용으로 썼는지 잘 기억도 못해요.”

“억울하지만, 일단 시인하는 각서를 써주었고, 모텔에서 성교를 시도했다면 성폭력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요. 술 취했다는 변명도 별로 참작이 안 돼요.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팬티를 내린 다음, 삽입을 시도했다면 강간죄의 기수(旣遂)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강간죄에 있어서는 삽입이 되어야 기수가 되는 것인데, 여자가 이미 들어왔다고 우기면 무조건 인정하고 말아요. 그것이 안 들어갔다고 CCTV를 찍어놓지는 않았을 거 아니예요? 설사 삽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도, 그때는 기수가 아니고 미수범(未遂犯)으로 인정되지만, 우리 형법상 강간죄는 기수범이나 미수범이나 거의 똑 같은 처벌을 하고 있어요.”

“정말 이상하네요. 들어가지도 않고 닿기만 해도 강간으로 본다는 게. 그리고 여자에게 무슨 피해가 있는 거예요? 상처가 나지도 않고, 그냥 물로 씻으면 끝나는 건데. 그 여자는 45살이나 먹었고, 애까지 낳았는데, 어린 남자 것이 거기 좀 닿았다고 해서 무슨 피해가 있고, 그걸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아무튼 빨리 합의하세요. 합의하지 않으면 징역을 가든 집행유예를 받든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고, 보호관찰도 받고 성폭력범죄인으로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어요. 인생 망치게 되요. 취직도 못하고요.”

“정말 억울해요.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주부가 미쳤다고 클럽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남자와 모텔을 가요. 옛날 같으면 남편이 알까봐 지가 먼저 쉬쉬할 텐데. 세상이 말세예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법은 법이예요? 피해자가 고소하면 문제가 되는 거지요? 여자가 신고 안하고 넘어가면 끝나는 거예요. 일단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얼마면 합의가 될까요?”
“글쎄요. 민사와 달라서 형사사건에 대한 합의금은 사실 일정한 기준이 없어요. 그 여자가 어디 다쳤다고 진단서까지 끊으면 강간상해죄, 강간치상죄가 되어 더 큰일 나요. 진단서가 없으면 일단 천만원 선에서 이야기해보세요.”

“예? 천만원이나 되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뭘 피해 봤다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줘야 해요. 성매매는 한번에 15만원 내지 20만원이라고 하던데, 텐프로 고급 룸살롱 아가씨도 50만원이면 된다던데, 45살 먹어 늙어빠진 가정주부를 하지도 못하고 천만원이나 물어줘야 해요. 정말 법이 너무한 거 아네요?”
“글쎄요. 아무튼 현실에서 강간사건의 합의금은 그런 거예요.”

변호사는 평소 명훈 엄마를 잘 알고 지내고 있지만, 이번에 명훈 엄마가 말하는 것을 보니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성범죄가 얼마나 무겁게 처벌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답답하다. 자기 아들만 생각하고, 피해를 당한 여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야. 빨리 합의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39)  (0) 2020.11.18
작은 운명 (38)  (0) 2020.11.18
작은 운명 (74)  (0) 2020.11.13
103.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남자 교수의 슬픈 이야기  (0) 2020.11.12
작은 운명 (34)  (0) 2020.11.12


작은 운명 (74)

영순은 너무 아파서 일단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렇게 심하게 맞아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공철에게 맞은 것도 맞은 것이지만, 그보다 더 분한 것은 명성에게 당한 것이었다.

영순은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져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죽으면 자신만 억울한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 영문도 모르는 자식에게 못할 짓이었다.

영순은 친한 친구 경화를 만나 상의했다. 경화의 남편은 전직 경찰관이었다. 경화 남편은 퇴직한 후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경화는 경찰관과 오래 살았기 때문에 법에 대해서도 웬만한 것은 변호사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또한 남편 동료 경찰관들이 아직도 현직에 있어 필요하면 그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공철에게 맞은 부분에 대해서는 진단서를 끊어놓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명성이 잘 때 그짓을 한 것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 게.”

경화는 먼저 명성을 만났다.
“아니. 어떻게 친구 부인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건 영순씨가 오해하는 거예요. 그날 영순씨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제가 부축해서 모텔방에 데려다주었고, 제가 나오려고 하니까 술에 취해 저를 남편으로 착각했는지, 끌어당기면서 자신의 옷을 다 벗고 껴안으려고 해서 제가 뿌리치고 나왔던 거예요. 영순씨는 모텔에 가기 전부터 심하게 토를 했고, 모텔방에 들어가자마자 곧 토를 했어요. 그래서 심하게 악취를 풍겼는데, 저는 그 냄새가 역겨워서 견딜 수 없어 바로 나오려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영순씨가 나를 남편으로 잘못 알고 자꾸 붙잡고 매달려서 불쌍해 보였지만, 악취 때문에 오래 있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영순씨는 제가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의 부인인데, 제가 그런 짓을 할 입장도 아니예요. 영순씨가 왜 그런 착각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네요.”

“아니. 영순이는 명성씨가 안에 한 내용물까지 채취를 해놓았어요. 그것을 DNA검사하면 곧 드러날텐데 왜 거짓말을 해요?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빌면 되는 것 아니예요?”

“제가 했으면 했다고 하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런데 정말 하지 않았어요. 내가 무엇 때문에 친구 부인일뿐더러, 더군다나 나이 든 여자, 그것도 술에 취해 토하고 있는 여자와 할 이유가 있어요? 그건 나를 잘못 본 거예요. 나는 솔직히 말해서 지금 젊은 애인이 있어요. 나보다 스무살이나 어리고 예쁜 애인이 있어요. 그 애인하고 자주 하는데, 왜 늙은 여자하고 하겠어요. 영순씨가 만일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이렇게 엉터리 주장을 하면 나는 하는 수 없어요.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고죄로 고소를 하겠어요. 가서 분명히 말하세요. 이렇게 생사람 잡으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명성은 이렇게 말한 다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갔다. 경화는 이상했다. 영순이 거짓말 할 리도 없고, 명성이 저렇게 완강하게 부인하는 것을 보면 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명성 생긴 모습이 젊은 애인 두고 놀아날 사람이지, 나이 든 여자를 넘볼 남자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103.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남자 교수의 슬픈 이야기

 

맹 교수는 독신이었다. “남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하면 그 자체가 구속이고, 가정에 매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비록 신부는 되지 못했지만, 독신으로 지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꿈이다.”

 

맹 교수는 신부처럼 순결한 이상주의자로 비쳤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맹 교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위행위 조차도 해보지 않은 고결한 성인이라고 소문이 났다.

 

지역에서 맹 교수가 이처럼 완벽한 총각이라는 소문이 나자 성당에서도 유명해져서 로마 교황청으로 보내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뭐 대단하다고 맹 교수가 대통령 후보로 나가야 한다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청원을 지지하는 사람은 모두 18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요새 세상에 숫총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면서, 그런 남자는 재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자가 능력이 없어서 40살이 되도록 여자관계를 못했으면 창피하게 생각하고 조용히 살아야지, 왜 총각이라고 떠들고 다니냐는 것이었다. 지역의 한 신문사에서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최종적으로 편집부장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한 여성 기자가 심층적으로 취재해서, ‘남자의 순결, 그 현대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200매에 달하는 장문의 기사를 준비했지만, 편집부장은 신문사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그 원고를 폐기하도록 했다. 그후 그 여성 기자는 끝내 고집을 부려서, ‘여성의 순결의 현대적 의미’를 기사화했다가 그 신문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무튼 맹 교수 때문에 지역사회에서 불거진 ‘남자의 순결, 동정’ 문제는 한 동안 적지 않는 파장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지역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남자의 동정은 돼지의 동정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맹 교수는 강의시간에도 여학생들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없었다. 여학생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냉하게 대했다. 여학생이 교수실로 상담을 하러 와도, 반드시 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짧은 시간 상담하고 돌려보냈다.

 

한번은 어떤 공부를 아주 싫어하는 여학생이 맹 교수에게 상담을 하러왔다. 맹 교수 강의를 듣는 여학생이었는데, 수업시간에는 긴 머리를 아예 책상에 대고 깊은 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 맹 교수가 강단에서 서서 보면, 무슨 검정색 쇼파 방석을 책상 위에 깔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여학생은 어떤 유부남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상담을 하러 온 것이었다. 맹 교수는 한번도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어 자신은 그런 상담은 할 능력이 없다고 간단히 답변했다. 그랬더니 그 여학생은, “교수님이 성관계를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네요? 하지만 제 문제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이고,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오히려 맹 교수를 인생 상담하고 돌아갔다.

 

맹 교수는 이 여학생이 교수의 성관계를 거론한 것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맹 교수는 그 여학생이 혹시 자신을 짝사랑해서 다른 핑계를 대고 맹 교수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맺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서 순결을 빼앗기고 동정을 상실해서 큰 일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여학생이 너무 섹시하게 옷을 차려입고 와서 매혹적인 눈빛으로 맹 교수를 흥분시켰기 때문이었다. 그 여학생은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가슴도 거의 다 보이는 식으로 앞으로 머리를 숙이고 맹 교수와 마주 앉아 섹시한 음성으로 대화를 했다.

 

그 여학생이 돌아간 다음, 맹 교수는 성경을 펼쳐놓고 악마의 손길에서 벗아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소금을 한 봉지 사다가 연구실 문 주변에 뿌렸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주술적 방법이었다.

 

맹 교수는 부모에 대한 효성도 매우 지극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85세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했다. 어머니는 45살에 어렵게 맹 교수를 늦둥이로 나아서 애지중지 키웠다. 맹 교수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5년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였다. 아버지는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자식들이 나타나서 상속권을 주장할까 봐 몇 년 동안은 아주 노심초사했다.

 

다행이 아버지는 바람은 많이 피웠어도,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그런 점에서는 아버지를 높이 평가했고 존경했다. 여자들을 건드려 사생아를 만들어서 호적을 더럽히고, 자식들 간에 불화를 일으키고, 부인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지옥으로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 남자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맹 교수 어머니는 나이 50에 과부가 되었다. 사실 과부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나이 들면 대부분 남편이 먼저 죽는데, 좀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었다고 50살 된 여자보고 ‘과부’라고 부르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이혼해서 그렇건, 사별해서 그렇건,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다.

 

맹 교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나서, 커피숍을 했다. 뒤늦게 커피 배리스터 자격을 따고, 커피 연구를 했다. 남편이 남겨 놓은 돈으로 가게를 하나 오픈했다. 그 가게는 지금 맹 교수가 재직중인 대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비록 나이는 50살이었지만, 비교적 동안이었고, 아담한 몸매에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 든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대학 앞인데도 시간이 가면서 나이 먹은 대학 교수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주된 단골이 되었다.

 

맹 교수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혼자 꾸준히 책을 보고 연구를 해서 문학이나 예술에 관해 대화를 나누어보면, 미국 유학을 5년간 엉터리로 다녀온 사람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고 교양이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영어나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 미국이나 유럽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유학가서 외국 사람들은 잘 안 만나고, 주로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교포들과 한국말로 식사나 하고, 쇼핑이나 해서 외국에서 살면서도 영어보다는 한국말을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잘하는 경우가 있다. 요새는 외국에서도 한국 방송을 볼 수 있어, 주로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나 한국 아이돌의 노래와 춤을 주로 본다.

 

뉴스도 외국 현지 뉴스는 못 알아들으니까 안 보고, 한국의 뉴스만 봐서 한국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자세하고 심층적으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정치 경제 군사 외교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은 운명 (34)

명훈 엄마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아빠를 깨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술 취해 곤히 자고 있는 사람을 갑자기 깨어서 아들이 강간을 했다는 말을 하면 명훈 아빠는 크게 놀라서 뇌출혈이 일어나거나 심장마비를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고, 그것도 골든타임을 놓치면 공원묘지로 영원히 떠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명훈 엄마는 약사이기 때문에 이런 돌발사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명훈 아빠를 깨우는 것은 포기했다.

명훈 엄마는 급히 명훈을 찾았다. 전화는 꺼져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엎친데 겹친다고 했다. 세상에 좋지 않은 일은 언제나 동시에 들이닥친다. 좋은 일은 멀리 간격을 떨어뜨리며 오지만, 나쁜 일은 함께 몰아닥친다.

이것을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한다. 눈도 내리고 서리도 얼어서 더욱 춥게 만든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misfortune on top of misfortune’ ‘to make matters worse’ ‘as if to rub salt in the wound’라고 한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명훈 엄마는 명훈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너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45살이나 먹은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이태원 클럽에 가서 24살 된 어린 아이와 같이 모텔에 갈 수 있냐? 처음부터 계획적인 꽃뱀이 틀림 없어. 그리고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냥 가면 되지 친구를 불러서 때리고 강압적으로 각서를 받는 건 정말 악질이야. 근데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명훈 엄마는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까지 아빠와 상의할 처지가 아니라서 혼자 해결하려고 개인적으로 아는 여자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아이가 꽃뱀에 물렸어요.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 꽃뱀에 물리면 큰 일 난다. 꽃뱀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아주 강한 독을 품고 있다.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다.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도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여자가 꽃뱀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 여자는 순수한 성범죄 피해자일 수 있다.

꽃뱀인지 피해여성인지는 법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가해자 부모가 판단할 권한은 없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모든 책임은 명훈에게 있는 것이지, 명훈이 돈 10만원을 주면서 술에 취한 자신을 부추겨 모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는 요구를, 함께 술을 마신 일행으로서 거절하지 못하고 데려다 주었다가 순간적으로 당한 경우에, 그 여자가 갑자기 꽃뱀으로 돌변했다고 보기는 너무 무리가 아닐까?

그러나 명훈 엄마는 피해자 나이와 가해자 나이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45살 가정주부가 술집에서 만난 24살 대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여자는 꽃뱀, 아들은 선의의 피해자로 단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큰일 났네요. 빨리 합의해야 해요. 고소를 당하면 구속될 수도 있고,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어 골치 아파요.”
변호사는 수없이 이런 사건을 겪어봐서 그런지 숨도 쉬지 않고 진단을 내렸다. 의사 같으면 청진기라도 대보고 소견을 말할 텐데, 변호사는 범인도 만나보지 않고, 범인의 어머니 말만 잠깐 듣더니 성범죄자로 단정짓고,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도 될 수 있다는 확진을 내리는 것이다.


102. 교수가 누드화를 그리는데, 모델은 모두 외국 여성으로 하였다

 

맹 교수는 바이올린 연주실력도 상당하고, 틈틈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피카소풍이어서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맹 교수는 자신이 애써 그린 그림을 고아원이나 양로원 에 기부는 해도,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파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 나중에 자신이 죽을 때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서 수중에 남아있는 모든 그림은 불에 태워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대상은 모두 외국 여자였다. 한국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맹 교수는 누드화를 그릴 때 외국 여자를 모델로 해서 그리면 아무리 오랜 시간 그려도 괜찮은데, 한국 여자를 모델로 해서 그리면 성욕을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맹 교수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렇다면 차라리 여자를 모델로 하지 말고 남성을 모델로 하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맹 교수 말은, 언젠가 한번 그런 시도를 했다가 모델인 남성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맹 교수를 강간하려고 했기 때문에 크게 봉변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남성은 누드 모델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큰소리로 떠들었다.

 

아무튼 맹 교수가 최근에 그리고 있는 누드화는 대부분 그림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대체로 마네킹을 그린 것 같이 보였고, 예술적 가치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모델들은 대개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것처럼 지저분해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돼지나 뱀을 그리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워낙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이 강하고 고집이 셌기 때문에 맹 교수는 절대로 그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맹 교수는 매년 헌혈을 하고, 불쌍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연탄나르기, 집짓는 봉사활동, 모심는 농촌봉사활동 등도 열심히 했다. 대학교에 출퇴근할 때에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고 빙판길에 넘어져서 왼쪽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때 넘어지면서 걸어가던 여학생 다리까지 부러뜨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맹 교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지만, 학생들이 학교측에 강력하게 청원을 해서 사표는 반려되었다.

 

맹 교수의 자전거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 여학생은 그 해 있었던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출전하려고 비싼 돈을 들여서 코칭을 받고 있었는데, 재수 없게 맹 교수 옆을 지나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대회에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여학생은 정말 재수가 없는 여자 같았다. 그 전 해에도 미스코리아 지역예선대회에 나가려고 준비를 다 해놓고 있다가 그 전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뒤에서 큰 트럭이 택시를 들이받아 병원에 입원하느라고 출전을 못했다. 한번은 재벌 4세의 남자를 소개팅으로 만나려고 했다가 식중독을 일으켜 대신 친구를 내보냈고, 그 친구는 여학생 대신 재벌 4세 남자를 만나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결국 헤어질 때 10억원의 거액의 이별위로금 내지 전별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 여학생과 맹 교수는 같은 정형외과를 다니면서 서로 가깝게 되었고, 서로 얼짱이라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사고는 천재지변으로서 맹 교수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자전저 사고를 계기로 만나서 서로 연인이 되었다는 가짜뉴스가 한 동안 떠돌기도 했다.

 

원래 제대로 하면 사고를 야기한 맹 교수가 그 여학생의 치료비를 물어주어야 했지만, 그 여학생 아버지가 부동산투기로 돈을 많이 벌고 있어, 여학생 집에서 오히려 맹 교수를 동정하고, 사고처리과정에서 자신을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여학생의 부상에 대해 깊이 마음 아파하고, 자주 만나서 위로해주었던 정상을 참작해서, 여학생 아버지는 맹 교수에게 타고 다니라고 최고 비싼 자전거를 하나 사서 보냈다.

 

그 자전거는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것인데 무려 천만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전거를 여학생이 직접 타고 가지고 와서 맹 교수에게 전해 주려고 하다가, 오는 도중 어떤 중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여학생 자전거와 부딪쳐서 또 사고가 났다.

 

여학생으로부터 핸드폰으로 사고 소식을 들은 맹 교수는 강의를 하다 말고 그냥 뛰어나가 자신의 자전거로 급히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수업을 재미 없게 듣고 있던 학생들은 맹 교수 집에 불이 나서 가족들이 모두 타죽은 것으로 알았다. 아니면 맹 교수가 무슨 큰 죄를 저질러서 집에 검사와 검찰수사관들이 갑자기 압수수색을 나온 것으로 알았다.

 

그렇게 허겁지겁 여학생에게 달려가던 맹 교수는 앞에서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던 전동 킥보드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맹 교수는 옆으로 나가자빠졌지만 아픈 통증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킥보드로 사고를 낸 깡패 같은 건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곧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 깡패는 자신이 잘못해서 맹 교수의 자전거를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맹 교수에게 무슨 약점이 있는가 싶어서 맹 교수를 붙잡고 음주운전 아니냐고 따졌다. 그리고 사고를 냈으면 킥보드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했다.

 

맹 교수는 수업 하다가 왔는데, 무슨 음주운전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전거 타는데 무슨 음주운전이냐고 마랬다. 깡패는 맹 교수의 입에서 더러운 악취가 너무 심하게 나서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음주측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 교수는 기가 막혔다. 화가 나서 당잘 폭행을 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잘못 먼저 때렸다가는 그 깡패의 체형으로 봐서 맹 교수는 갈비뼈 열대 이상은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빨리 여학생에게 가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으므로 맹 교수는 그 깡패에게 현금 10만원을 꺼내주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깡패는 웃으면서 앞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전동 킥보드가 최우선이니까 진로를 양보하고 사고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다 하면서 조심해서 다니라고 훈시를 했다.

 

맹 교수는 알았다고 하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렸다. 그 깡패를 향해서 뒤로 돌아서 침을 세 번 크게 뱉었다.

 

맹공희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주변 모든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맹교수가 젊은 나이에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호화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경제의 민주화, 서민경제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자동차는 벤츠를 타도 다녔다. 그것도 빨간 색 벤츠였다. 학생들은 그를 BR이라고 불렀다. Bentz Red라는 뜻이었다. 신입생 중 일부는 선배들이 맹교수를 비알(BR)이라고 부르니까,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빌어먹을’이라는 비속어로 이해하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처음에는 맹교수가 강의도 잘 못하고, 인간성이 나쁜 교수인 줄 알고 있다가 시간이 가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빨간 벤츠’는 신세대의 성공 신화가 되었고,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