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젊잖은 남자

 

미경은 선우를 경제적으로 도우려니 휴일도 없이 다른 사람보다 일을 두배나 더 열심히 했다. 몸도 약한 데 너무 과로를 하니 자주 코피가 나왔다. 생리도 불규칙하게 되고 불면증까지 생겼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몇 년 있으면 외교관 부인이 되어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미경에게 어느 날 청천벼락이 떨어졌다. 며칠 동안 선우와 연락이 되지 않아, 선우의 자취방 주인을 찾아갔다.

 

“아 글쎄, 그 놈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어. 가짜대학생이었어. 전과자가 대학생이라고 속이면서 사기를 친 거야. 내 방세도 떼어먹고 도망간 거야. 경찰관이 잡으러 왔는데, 그걸 낌새채고 밤에 짐을 싸가지고 사라졌어. 학생도 무슨 피해를 봤으면 경찰에 신고해. 원 세상에 나쁜 사기꾼 같으니라고!”

 

미경은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그렇게 당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미경은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선우의 뻔뻔스러운 얼굴, 더러운 표정, 징그러운 몸짓을 잊는데 꼬박 석달이 걸렸다. 뿐만 아니라 장래의 ‘대사 부인’이라는 부러움의 대상에서, ‘가짜 대학생 제비족의 피해자’로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미경은 강 교수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좋지 않은 이야기는 모두 빼고, 그냥 평범한 이야기,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 현재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니면서 느끼는 보람을 이야기했다. 이혼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 교수를 존경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강 교수는 미경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TV에서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한국인과 현지인에 대한 현장 수색 작업에 관한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다. 실종된 지 벌써 7일이 지났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실종자에 대한 수색작업을 위해서, 군 수색대, 수색견 동원 수색팀, 민간 수색팀 등이 모두 동원되어 열심히 수색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자신도 등산을 좋아해서 전에 히말라야 등반을 해본 경험도 있다. 눈사태는 정말 무서운 모양이었다. 눈사태가 나면 10미터 정도씩 눈이 쌓이고, 그 위에 얼음까지 덮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눈 속에 파묻힌 실종자를 수색하는 방법으로는 일종의 지뢰 탐지기 같은 금속탐지기와 드론 열 감지기를 사용한다. 눈 속 4m 깊이에 있는 사람 체온까지 감지하는 열 감지 카메라와 줌 기능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도 투입되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또 쇼킹한 사건이 보도되고 있었다. 30살 된 남성이 어떤 업소에 가서 성매매를 했다. 남성은 성매매를 한 다음, 업소 주인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남성은 업주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에 성매매업소를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업주가 돈을 돌려주지 않자, 화가 난 남성은 업주를 살해했다. 그리고 업주의 시신에 불을 질렀다. 살해된 업주는 60살이 넘은 여자였다고 한다. 미경은 그 뉴스를 보면서 세상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성매매대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 몇푼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말인가?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냥 돈을 돌려주었더라면 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미경은 궁금했다. ‘저런 흉악범은 사형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제는 더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자꾸 저런 강력범죄가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강 교수는 사형제도에 대해 절대 반대한다고 했다. 그 사건은 범인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미경에게 남자를 조심하라고 했다. 미경은 그 동안 남자들에게 당한 폭력 피해를 떠올리면서 다시 몸서리를 쳤다.

 

세상이 어수선해서 그런지 뉴스를 보는 것이 겁이 날 정도였다. 현직 검사가 성매매 여성과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채팅 앱을 이용해서 성매수를 원하는 남성을 구한다는 글을 추적한 경찰이 오피스텔 현장을 급습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오피스텔 안에 있던 성을 매수한 남자는 다름 아닌 현직 검사였다는 것이다. 미경은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교수님. 남자들은 다 저래요? 검사면 무지하게 높은 사람 아니예요? 그런데 어떻게 직업 여성과 오피스텔에 들어가서 관계를 할까요? 저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건가요?”

 

미경은 옛날 자신을 농락했던 사기꾼 선우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선우는 미경에게, ‘출세하고 재벌이 되려면 남자는 정력이 세야 하는 거야. 정력이 약한 남자는 절대로 출세를 할 수 없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끝나는 거야.’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미경을 세뇌시켰던 것이다. 강 교수는 혀를 찼다.

 

“저런 사람은 아주 드물 거예요. 요새 검사들이 그렇게 언론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데도 저렇게 성매매나 하고 있는 검사도 있다는 것이 정말 믿기 어려워요. 아마 결혼을 하지 못했던가, 아니면 부인이 있어도 관계를 하지 않는 관계라 그런지 모르지요?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예요. 저러다 걸리면 한 순간에 인생이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미경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강 교수 앞이라 긴장해서 그런지 술에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혀가 약간 꼬부라지고 가끔 고개를 테이블쪽으로 숙였다. 강 교수는 미경에게 술이 너무 과한 것 같으니, 그만 집에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리기사를 불렀다. 강 교수는 자상하게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미경의 차에 같이 타고 미경의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미경이 차 안에서 술 때문에 강 교수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 가만히 받아주었다.

 


작은 운명 (100)

한편 강교수 부인인 민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희 역시 공부는 아주 싫어했다. 그러다가 머리 좋은 강교수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강교수는 집안이 어려웠고, 민희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민희는 물론 결혼 전에 여러 차례 연애를 했고, 남자들과 성관계도 가졌지만, 강교수를 만나 결혼한 이후에는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고, 오직 강교수에게만 순정을 바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강교수는 결혼한 직후부터 서시히 민희가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고 핀잔을 주었다. 민희 부모가 대준 돈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도 강교수는 늘 민희가 지적이지 못한 점을 언급했다.

강교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 TV는 거의 보지 않았다. 강교수는 영어 좀 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미국 방송 CNN이나 BBC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그러면 민희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 방송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 그러면 강교수는 민희가 유치하다고 짜증을 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가면서 민희는 자신은 강교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맞지 않는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되면, 그건 더 큰 불행이 될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민희는 강교수와 각방을 썼다. 처음에는 아주 이상했다.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말을 들어봤지만,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한 두달 지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남편과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의 냄새도 싫었고, 코고는 소리도 싫었다. 특히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는 때에는 마치 돼지가 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돼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싫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민희는 강교수가 자신과는 관계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쓰면서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처음에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 여자를 만나서 박살을 내려고도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강교수가 그짓을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포기했다.

민희는 그래서 다시 옛날 처녀시절 연애하던 남자들의 낭만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작한 산악회 동호회에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너무 지성적이지 않은 남자, 너무 잘난 척 하지 않는 남자, 너무 똑똑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만나게 되니, 육체관계는 특별한 의미 없이 이어지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민희는 자신이 바람을 피는 것에 대해 만약에 강교수가 문제 삼으면 혼자서만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강교수의 뒷조사를 해서 이미 강교수의 불륜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 놓았다. 그래서 맞불 작전을 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두 사람은 아주 냉냉해졌다.

민희는 강교수를 볼 때마다, 다른 여자와 껴안고 뒹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완전히 동물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은 배꼽 이하는 동물과 똑 같다. 만일 증명사진을 얼굴만 나오는 상반신이 아닌, 하체만 나오는 하반신으로 찍어서 제출하면 실제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사진과 대조해서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민희 역시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실존의 방황’일 뿐, 그렇게 더럽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교수의 외도는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이며, 완전히 동물적인 ‘추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이혼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25. ROTC 출신 가짜 대위가 1년 만에 대위계급장을 달았다

 

미경에게 강 교수는 그야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적인 존재였다. 행동도 모범적이고, 아무런 흠이 없었다. 잠자리에서도 상대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면서, 분위기 있게 필요한 범위에서만 성행위를 하고, 일이 끝나면 말끔하게 뒤처리도 하는 남자였다.

 

미경은 대학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생도 아닌 교수님이라니, 그런 하늘 같은 존재인 교수님과 단둘이 사적으로 만나서 와인을 마시는 영광을 얻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미경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하고 곧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을 마치고 취직했다. 미용실 일은 힘들었다. 보조로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조금만 잘못했도 원장으로부터 눈물이 날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손님 머리를 잘못 잘라서 쫓겨날 뻔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머리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은 여자 손님은 자기 목이 잘린 것보다 더 화를 내고, 단골을 끊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멋을 부리고 미팅을 하고 있는데, 미용실 보조로 일하고 있으니 창피했다. 가끔 아는 친구들이 미경이 일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오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그 친구가 갈 때까지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특히 같이 온 남자 친구가 두꺼운 대학교 교재를 몇 권 들고 와서 미용실에서 기다리면서 젊잖게 안경을 쓰고, 영어로 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속이 상해 미칠 정도였다. 원래 공부 못하는 학생이 두꺼운 책을 폼으로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미경은 알지 못했다. 어떤 대학생은 옛날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커버를 씌워서 대학교 교재인 것처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장은 이런 미경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미경이 필요한 입장이어서 그런 것을 문제삼아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던 중, 미경은 말하자면 미경이 대학교 3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남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은 다니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매년 한 학년씩 올라가면 미경도 그에 따라 마음 속으로 학년이 올라갔다.

 

미경은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ROTC라는 제도가 있었을 때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이 서울의 어느 대학교 앞에서 하숙을 하면서 사기를 치고 있었다. 청년은 그 대학교 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미모의 여자들을 꼬셔서 돈을 뜯어내고 몸을 농락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대학교 앞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남학생들이 ROTC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자세하게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대학교를 다니면서 ROTC 훈련을 받으면, 졸업하면서 군대에 소위로 들어가서 장교로 복무를 하고 제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군사훈련을 받으니 몸 자세도 꼿꼿하고 걷는 것도 제식훈련을 해서 남자답고 멋이 있어보였다. 그러다보니 같이 가는 여자들도 키도 크고, 예쁘고, 집안도 있어보였다.

 

그래서 청년은 ROTC 옷을 남대문시장에 가서 구했다. 그리고 매일 ROTC 복장을 하고 여자들을 만날 때, 자신도 ROTC를 받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졸업하면 군대에 소위로 근무할 것이라고 자랑을 했다.

 

하숙방에는 모의권총이나 군인들이 쓰는 철모, 군사지도, 나침반, 단검 등을 구해놓았다. 그리고 전쟁에 관한 중고책도 사서 읽었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에 관한 책을 많이 보았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여자들은 청년의 말에 속아서 청년에게 돈도 꾸어주고, 같이 잠자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그 청년은 소정의 기한이 차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고, 군대에 들어가 소위가 되어야 하는 계산법이 나왔다.

 

그래서 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대문에 가서 장교 복장을 사서 입고 다녔다. 계급장은 소위로 달았다. 그런데 그 청년은 군대를 전혀 모르니까,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하려면 일정한 근무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6개월 단위로 자신의 계급을 올렸다. 6개월마다 소위에서 중위로 올라가고, 다시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을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가상으로 졸업한 후 1년이 지나자 그 청년은 현역 장교복장을 하고, 대위 계급장을 달고 다녔다.

 

물론 여자들은 모두 그 청년이 군대에 들어가서 대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청년은 서울에서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하고 있어서 하숙집을 옮길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청년은 고향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청년의 옆좌석에 실제 현역 병장이 탔다. 가짜 대위인 그 청년은 진짜 병장에게 반말로 말을 걸었다. 진짜 병장의 성은 진씨였다.

 

“어. 진 병장, 어디 가는 거야?” “예. 대전에 가는 길입니다.” “응. 그래. 요새 군대생활 힘들지 않아?” “좀 힘듭니다. 그래도 이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괜찮습니다.”

 

병장은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현역 대위가 자꾸 말을 걸어오니 피곤했다. 그래서 병장은 영등포역에서 내렸다가 바로 다른 칸으로 옮겨서 가짜 대위와 헤어지려고 했다. 그랬더니 가짜 대위는 화를 냈다.

 

“이 자식이 어디서 내려? 너 대위가 얼마나 높은지 모르고 이렇게 까부는 거야? 혼좀 나볼래.” 그러면서 가짜 대위는 진짜 병장의 멱살을 잡았다.

 

“왜 이러십니까? 이거 놓으십시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너 임마, 대위한테 대들어? 너 진짜 병장 맞아? 가라로 계급장 단 거 아냐? 너 같은 놈이 병장까지 올라갈 수는 없어.”

 

가짜 대위는 진짜 병장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몇 대 때렸다. 힘이 센 병장은 곧 가짜 대위의 손을 꼭 잡고 제압을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철도청 공안을 불러 가짜 대위와 진짜 병장은 다음 역에서 내렸다.

 

폭행사건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가짜 대위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청년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자들로부터 사기를 치고 성관계를 맺고, 돈을 뜯어냈다는 사실로 조사를 받았지만, 피해자인 여자들이 모두 경찰에 출석을 거부하고, 피해를 본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그 청년은 가볍게 처벌받고 나왔다.

 

민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그 사건이 종결되자 다시 여자들을 만나서 자신은 군대 헌병대에서 억울한 조사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여자들이 궁금해하자, 같이 근무하는 남자 소령이 자신과 동성애를 하자고 하여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자신을 워커발로 차서 자신이 그 남자 소령의 급소를 차서 상관폭행죄로 영창에 일주일 가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그 청년은 대위에서 멈추고, 더 이상 소령으로 진급하지 않았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7. 오피스텔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젊잖은 남자  (0) 2021.02.25
작은 운명 (100)  (0) 2021.02.18
작은 운명 (89)  (0) 2021.02.09
작은 운명 (88)  (0) 2021.02.09
작은 운명 (87)  (0) 2021.02.09


작은 운명 (89)

그래서 이혼한 다음에도 대체로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전생에 무슨 잘못을 많이 했는지, 만나는 남자마다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럽고 미경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해를 했다.

그리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려부셨다. 그런 남자들은 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 성질대로 살고, 잘못되면 감방에 가도 좋다는 배짱이었다. 미경은 쉽게 그런 남자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미용실을 크게 하고 있는 공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한번 이혼한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남자 때문에 사회적으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개 몇 달 사귀다 헤어졌다. 그리고 한 동안은 굳게 결심을 하고 죽을 때까지 남자 친구를 두지 않기로 했다. 몇 번이고 다짐했다. ‘앞으로 한번 더 애인을 두면 내 성을 갈겠다.’

미경은 언젠가 사주역학을 잘 보는 사람에게 찾아갔다. 가까운 여자 친구와 둘이서 사주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용하다는 역학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전생에 남의 첩으로 살았어. 그때 자네 때문에 본처가 제명에 못죽었어.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이 다 놈팽이고, 건달이었을 거야. 그렇지? 뻔해. 내 눈은 못 속여.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놈들만 나타날 거야. 조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제명에 못 죽어.”

미경은 놀랐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사주와 관상,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고, 들어보았지만, 지금처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추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남자를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해요?”

역학자는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을 따져보는 듯 했다. 그러더니 미경의 일행을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한 30분 정도 역학자는 방안에서 혼자서 큰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같았다. 딸랑거리는 소리도 나고, 무언가 부르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 다음 다시 미경을 들어오라고 했다.

“금년 가을에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자네하고 잘 맞아.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돼. 잘 잡아. 그 사람은 키가 작을 거야.”

미경은 이 말이 뇌리속에 박혔다. ‘금년 가을. 키 작은 남자!’ 무언가 운명의 기적소리가 들리고, 백마 탄 왕자가 몸을 단정하게 한 공주를 찾아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100)  (0) 2021.02.18
125. ROTC 출신 가짜 대위가 1년 만에 대위계급장을 달았다  (0) 2021.02.10
작은 운명 (88)  (0) 2021.02.09
작은 운명 (87)  (0) 2021.02.09
작은 운명 (86)  (0) 2021.02.06


작은 운명 (88)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싸움을 하면 대부분 말리는 사람이 있게 되고, 더 싸움이 계속되면 누군가 경찰에 112신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싸움은 끝이 나고, 더 이상 피해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다르다. 말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만일 한쪽이 수그러들지 않고 죽기 살기로 대들면 싸움은 계속되고,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

가끔 신문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남편이 아내를 실컷 두들겨팬 다음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 아내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위험한 것이다.

결국 미경은 결혼생활 10년 만에 마침내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건달이 쉽게 협의이혼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변호사를 선임해서 10개월만에 겨우 이혼판결을 받았다. 이혼하면서 그때까지 번 돈 절반도 빼앗기고 말았다.

미경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도대체 법도 법이 아니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자를 잘못 만나서 10년간 고생을 했는데, 무엇 때문에 재산을 분할 당하고, 이혼녀로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느낀 것은 판사들은 남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릴 의사가 없는 것같았다. 매우 기계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여자가 고생해서 번 돈과 남자가 번 돈을 아주 똑 같은 잣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미경은 이혼을 한 다음, 한 동안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용실에 단골로 오는 남자손님들도 이상하게 싫었다. 마지못해 남자 손님의 미용을 해주어도 속으로는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었다.

그러다가 또 1년 정도 지나자 미경은 옛날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남자를 만났다. 이상하게 남자답게 거친 스타일에 쉽게 빠졌다. 미경이 넘어가는 남자들은 대개 이랬다. 별로 돈도 없고, 사회적 능력은 부족해 보이는데, 겉으로 매우 의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남자를 좋아했다. 머릿속은 비어 있는데, 술을 마시면 눈물을 흘릴줄 아는 남자, 여자가 속상해 하면 끝까지 옆에 있어주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걱정해 주는 남자,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근육이 튼튼한 남자, 골프에 미친 남자를 좋아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5. ROTC 출신 가짜 대위가 1년 만에 대위계급장을 달았다  (0) 2021.02.10
작은 운명 (89)  (0) 2021.02.09
작은 운명 (87)  (0) 2021.02.09
작은 운명 (86)  (0) 2021.02.06
작은 운명 (85)  (0) 2021.02.06


작은 운명 (87)

강교수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인생의 목표가 오직 돈과 출세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 여자도 추가되었다. ‘돈과 출세, 여자’ 이 세가지를 누릴 수 있는데까지 누려야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러면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강교수는 자신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전임강사에서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학교에서 강의를 열심히 하거나 연구를 더 한다기 보다는 외부로 나아가 일반 기업체의 자문역할이나, 사회적 활동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나가 얼굴을 많이 알렸다. 그런 까닭에 오직 교수로써 외골길을 걷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 유명해졌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과대포장되었으며, 경제적 수입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여자들이 따르게 되었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여자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강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개설한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6개월 코스인데, 지역 사회에서 돈이 있고, 괜찮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있는데, 여자들 역시 비즈니스를 하거나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최고경영자과정은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기 보다는 사교모임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들어온 선미경사장이 있었다. 당시 강교수가 45살이었고, 선사장은 50살이었다. 선사장은 미용실을 경영하는 원장이었다.

나이는 5살 위 연상이었지만, 선사장은 미용사로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외모나 몸매는 거의 연예인 수준이었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골프도 잘 쳤다.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소문도 있었다. 강교수가 먼저 선사장에게 집적거렸다. 선사장은 가방끈이 짦아서 그랬는지, 대학 교수라고 하니까 무조건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때까지 선사장은 이혼한 전남편도 건달이었고, 그 후 만난 몇 명의 남자들도 모두 건달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여자가 미용사로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처음 남편도 부인에게 기대는 마음 때문에 그랬는지, 골프나 치러다니고, 하는 사업마다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잘 나가는 부인을 두고 있는 처지에서 느는 것은 폭력과 의처증이었다.

전 남편은 술이나 마시고, 와이프의 뒷조사나 하러 다녔다. 의처증은 참 무서운 질병이다. 남편은 심한 콤플렉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미경을 의심했다. 새 옷을 사가지고 들어오면, 어떤 놈이 사준 것이냐고 밤새도록 들볶았다. 미경이 자신의 신용카드로 긁은 것이라고 영수증을 보여줘도 소용없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 X이 지 카드로 사줬겠어? 당연히 당신 카드로 긁게하고, 현금으로 당신 주었겠지.’ 그러면서 핸드폰의 통화기록을 확인하였다. ‘분명히 여러 차례 통화를 했겠지? 그리고 카톡을 했을 거야. 그런데 내가 볼까봐 집에 들어오기 전에 다 지웠을 거야? 누군가 말해! 그 X이 돈이 많은 X이야?’

이러면서 수사관처럼 밤새도록 신문을 하면, 미경은 그 다음 날 피곤해서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리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의처증이 심해지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프로세스다.

그런데 부부 사이의 폭력은 폐쇄된 공간에서 시간의 제한 없이 이루어지는 무한게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보통 싸움은 밖에서 이루어지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자연히 싸움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모이게 된다. 남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재미 있는 일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묘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싸움을 구경하는 것, 불구경을 하는 것, 교통사고가 나서 부서진 자동차를 보는 것, 다른 사람이 사업하다 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 정치인이 잘난 척하다가 감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을 즐겨한다.

사회 저명인사가 위선을 떨다가 가면이 벗거지고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 바람둥이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고, 쾌감을 느끼고 즐긴다. 자신의 작은 행복보다 더 큰 위안을 주고, 기쁨을 준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89)  (0) 2021.02.09
작은 운명 (88)  (0) 2021.02.09
작은 운명 (86)  (0) 2021.02.06
작은 운명 (85)  (0) 2021.02.06
작은 운명 (84)  (0) 2021.02.05


작은 운명 (86)

맹 교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남자가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하면 그 자체가 구속이고, 가정에 매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비록 신부는 되지 못했지만, 독신으로 지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을 하는 것이 꿈이고 소망이다.”

이런 말을 하는 맹 교수는 학생들에게 신부님처럼 순결한 이상주의자로 비쳤다. 맹 교수는 그래서 그런지, 강의시간에도 여학생들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학생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냉하게 대했다. 여학생이 교수실로 상담을 하러 와도, 반드시 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짧은 시간 상담하고 돌려보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도 소문이 나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맹 교수가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45살 늦은 나이에 어렵게 맹 교수 한명을 늦둥이로 나아서 애지중지 키웠다. 올해 85세인데, 맹 교수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5년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였다. 아버지는 그래서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자식들이 나타나서 상속권을 주장할까 봐 몇 년 동안은 아주 노심초사했다.

다행이 아버지는 바람은 많이 피웠어도, 재수없게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런 점에서는 아버지를 높이 평가했고, 존경했다.

주변에는 별로 재산도 없는 남자들이 무능력한 여자들을 건드려, 이른바 혼외자를 만들어서 깨끗해야 할 호적을 더럽혀놓고, 자식들간에 불화를 일으키고, 부인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천당도 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불행한 사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맹교수의 어머니는 나이 50에 소위 말하는 과부가 되었다. 사실 과부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나이 들면 대부분 남편이 먼저 죽는데, 좀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었다고 50살이 된 여자보고 ‘과부’라고 부르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이혼해서 그렇건, 사별해서 그렇건, 남편이 없고 혼자 사는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다.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전직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건 이해가 가지만, 영부인을 죽을 때까지 전직 대통령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맹교수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맹교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나서, 아들을 키우면서 커피숍을 했다. 뒤늦게 커피 배리스터 자격을 따고, 커피에 연구를 했다. 남편이 남겨 놓은 돈으로 가게를 작게 오픈했다.

그 가게는 지금 맹교수가 재직중인 대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비록 나이는 50살이었지만, 비교적 동안이었고, 아담한 몸매에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 든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대학 앞인데도 시간이 가면서 젊은 학생들은 잘 오지 않고, 나이 먹은 대학 교수나 부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주된 단골이 되었다.

맹교수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혼자 꾸준이 책을 보고 연구를 해서 문학이나 예술에 관해 대화를 나누어보면, 미국 유학을 3년간 엉터리로 다녀온 사람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고, 교양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좋아하는 대학 교수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강의가 끝나면 커피숍에 와서 서너시간씩 혼자 않자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실상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커피숍 주인인 맹교수 어머니를 지켜보거나 감상하는 것이었다.

젊은 대학생들의 관점에서 보면, 50살이 넘은 아주머니를 뭐가 좋다고 몇 시간씩이나 옆에서 보고 있느냐고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나이 든 남자와 나이 든 여자 사이에는 그런 묘한 감정의 기류, 전기가 통하는 모양이었다.

처음 1년 동안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던 맹 교수 어머니 옥자씨도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움직여갔다. 특히 대학 교수라는 추상적인 관념의 이미지에 이끌린 것같다. 그녀는 마침내 60살이 된 교수의 품에 안겼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88)  (0) 2021.02.09
작은 운명 (87)  (0) 2021.02.09
작은 운명 (85)  (0) 2021.02.06
작은 운명 (84)  (0) 2021.02.05
124. 택시 기사 실수로 남자 친구와 헤어진 아가씨  (0) 2021.02.05



작은 운명 (85)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판세는 더욱 불분명해졌다. 처음에는 백상무와 정국영 두 사람이 각축적을 벌였는데, 시간이 가면서 맹공희 교수가 치고 올라왔다. 특히 맹교수는 젊고,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아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이 먹은 여자들도 그런 맹교수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맹교수는 40세의 나이에 시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백 후보와 정 후보 진영에서는 너무 나이가 어려서 무슨 시장을 하겠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50대 후반이나 60살이 넘어야 세상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면적은 64만㎢로 한반도의 2.9배, 인구 6,500여만명, GDP 2조7,900여달러로 세계 6위인 나라의 대통령이 될 때 나이가 40세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맹교수는 결코 시장이 되기에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맹교수 지지자들은 이제는 나이 든 사람들은 양로원이나 가 있어야지, 정치나 단체장을 한다고 머리 하얗고, 허리 구부정한 상태에서 옛날이야기나 하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수나 진보와 같은 이념적 대결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젊은 맹교수를 노골적으로 좋아했다. 그는 음성도 부드럽고 좋아서 아나운서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매사에 완벽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는 주변에 모든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주택단지 내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경제의 민주화, 서민경제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자동차는 벤츠를 타도 다녔다. 그것도 빨간 색 벤츠였다. 대학에서도 그래서 학생들은 그를 BR이라고 불렀다. Bentz Red라는 뜻이었다.

대학의 신입생 중 일부는 선배들이 맹교수를 비알(BR)이라고 부르니까,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빌어먹을’이라는 비속어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처음에는 맹교수가 강의도 잘 못하고, 인간성이 나쁜 교수인 줄 알고 있다가 시간이 가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빨간 벤츠’는 신세대의 성공 신화가 되었고,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다.

맹 교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남자가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하면 그 자체가 구속이고, 가정에 매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비록 신부는 되지 못했지만, 독신으로 지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을 하는 것이 꿈이고 소망이다.”

이런 말을 하는 맹 교수는 학생들에게 신부님처럼 순결한 이상주의자로 비쳤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맹 교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성관계는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위행위 조차도 해보지 않은 신부님 이상으로 고결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다.

맹 교수는 그래서 그런지, 강의시간에도 여학생들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학생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냉하게 대했다. 여학생이 교수실로 상담을 하러 와도, 반드시 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짧은 시간 상담하고 돌려보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도 소문이 나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맹 교수가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45살 늦은 나이에 어렵게 맹 교수 한명을 늦둥이로 나아서 애지중지 키웠다.

올해 85세인데, 맹 교수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5년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였다. 아버지는 그래서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자식들이 나타나서 상속권을 주장할까 봐 몇 년 동안은 아주 노심초사했다. 



작은 운명 (84)

한편 백상무 후보에 대해서는 시청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뇌물을 먹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지역에서 오피스텔 허가를 내주면서 업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친척의 이름으로 오피스텔 한 채를 공짜로 분양받았다는 소문이 났다.

이런 소문을 근거로 김민첩 사장은 공칠에게 이 사건을 신속하게 조사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김민첩 사장은 공칠에게 이 사건 조사용역비로 500만원을 개인적으로 주었다.

공칠은 지시에 따라 백상무 후보가 관여하였다는 오피스텔에 대한 심층조사에 들어갔다. 공칠은 경찰도 아니고, 감사원 공무원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무슨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조사해 들어갔다.

그러면서 지역 신문 기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기자들도 아주 좋아했다. 뜨거운 선거판에 유력한 후보의 뒷조사를 한다고 하니, 특종 욕심에 들떠있었다.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공칠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공칠은 이러한 증거를 곧바로 김민첩 사장에게 가져다주지 않고, 먼저 백상무 후보를 만났다.

“제가 이번에 이러 이러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태양오피스텔사업과 관련해서 국장님으로 재직할 당시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피스텔 한 채를 후보님 친척 명의로 공짜로 받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자료를 정국영 후보에게 주어야 할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백상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도 무척 괴롭습니다. 차라리 선거를 포기하는 것이 좋이 않을까요?”

“최 선생! 우리 이렇게 합시다. 지금 선생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모두 말밖에 없는 겁니다. 물적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이런 문제가 터지면 큰일입니다. 내가 당선되면 선생의 은혜를 잊지 않고, 4년 동안 챙겨줄 테니 모든 걸 덮어주세요. 그리고 이 자료는 저를 주시면 어떨까요?”

“예. 알았습니다. 후보님. 저도 후보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를 위해서도 후보님이 당선되었으면 합니다. 상대 정국영 후보는 워낙 지저분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칠은 이렇게 타협을 보고, 김민첩 사장에게는 껍데기 자료만 가져다 주고, 이 정도 자료만 가지고 문제를 삼았다가는 거꾸로 백상무 후보측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김민첩 사장은 크게 실망했지만, 하는 수 없다고 단념했다.

지역에서는 정국영 후보와 백상무 후보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루머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번 선거에서만은 me too 운동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서는 크게 미치지 않아서인지 두 사람의 여자문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보통은 후보로 나온 사람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진 여자들이 들고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두 사람 모두 여자를 잘 다루었거나 관리를 잘 했거나, 적어도 이용해먹고 나몰라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124. 택시 기사 실수로 남자 친구와 헤어진 아가씨

 

미경은 전에 미용실 손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 손님은 어느 날 술에 취해 택시를 탔다. 택시 탈 때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를 확인하고 탔다.

한참 가다가 잠이 깨어서 밖을 보니 자신의 집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천국제공항터미널까지 거의 다 가고 있었다. 아가씨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택시 기사가 나를 외국에 팔아먹으려고 인천공항으로 끌고 가는 것 같다.’ 그 택시 기사는 추워서 빵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뒷좌석에서 봐서는 나이가 들었는지, 젊은 사람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아저씨, 지금 왜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는 거지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아니, 손님이 가자고 한 것 아니예요?” “제가 왜 공항으로 가요? 외국 나갈 것도 아닌데? 지금 여권도 없단 말이예요?”

 

두 사람은 지구대까지 가서 택시 요금 때문에 싸움을 했다. 나중에 진상을 조사해보니, 아가씨가 택시를 탈 때 남자 친구가 택시를 잡아주고 아가씨에게 ‘잘 다녀와. 한 달 있다가 봐.’라고 말을 했다.

 

그때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이 전화로 남자 친구에게, ‘응. 지금 인천공항가고 있어. 잘 갔다올게.’라고 말하는 것을 택시 탄 여자가 말을 하는 것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 드라마 대사를 듣고, 택시 기사는, ‘인천공항요?’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고, 그 여자 손님은 자신의 남자 친구에게 창문을 열고. “예!‘라고 간단하게 대답을 해서 착오가 생겼던 것이다. 모든 것은 여자가 술에 취해 계속해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 아가씨는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아가씨는 남자 친구를 불러서 따졌다.

 

“당신 때문에 망신을 당했어요. 그때 택시 탈 때, 왜 내 집을 정확하게 택시 기사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마터면 인천공항에서 중국행 비행기를 실려갈 뻔했잖아요?”

 

“아니, 그때 당신이 술을 마셨지만 정신이 말짱한 상태였잖아? 그래서 알아서 가는 줄 알았지?”

“어쨌거나 이제 당신과는 끝이예요. 여자의 생명 신체를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해서 위험에 처하게 만든 죄는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아무리 울고불고 사정해도 나는 어쩔 수 없어요. 나도 당신을 자르는 심정이 매우 고통스럽지만 이럴 때는 단호하게 처리해야 하라는 것이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이예요. 옛날 제갈량도 마속이라는 장수가 위나라 장합에게 크게 패배하자, 제갈량은 군령을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였다고 해요. 이게 바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건데, 나도 어쩔 수 없어요.”

 

아가씨의 남자 친구가 만일 옛날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서 읍참마속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 아가씨를 설득시켜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그 남자 친구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지내서 아가씨가 갑자기 읍참마속이라는 어려운 문자를 쓰니까 아가씨 말대로 하지 않으면 아가씨 고향 읍에 있는 참가마 속에 남자 친구를 떠밀어넣어서 목숨을 잃게 하겠다는 뜻으로 알았다.

 

어렸을 때 한번 불에 다리를 데어본 아픈 경험이 있는 남자 친구는 뜨거운 불구덩이 참가마 속으로 들어가느니 아깝지만 여자 친구를 보내고 자신은 불을 좋아하지 않고 대신 물을 좋아해서 수영을 취미로 하는 다른 여자를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자는 울고 불면서 자신은 고의가 아니고 단순한 실수였다고 하면서 한번만 용서를 해주면 앞으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아가씨의 행선지를 종이에 써서 기사에게 보여주고 기사가 확실히 알았다는 서명날인을 받아서 자신이 보관하고 있겠다고 다짐했으나, 아가씨는 그런 남자 친구의 모습에서 더 없는 비굴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가씨 생각은 ‘고의로 알고 짓는 죄보다는 자신이 죄를 짓는지도 알지 못하고 죄를 저지르는 것’이 더욱 나쁘고 피해가 크다는 지론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 아가씨는 조건이 좋았던 남자 친구와 그날로 완전히 헤어졌다고 한다.

 

때로는 남자와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같이 모텔에 가고, 그곳에서 서로가 무엇을 했는지도 불분명한데, 나중에 술에서 깨어난 여자가 ‘분명히 네가 술에 취한 나를 건드렸을 거야!’라고 주장하면, 남자는 억울하지만 준강간죄로 징역을 가기도 한다.

 

서로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여자로부터는 ‘성교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사 동의를 했다고 해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무엇을 구체적으로 동의했는지 서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경이 술에 취해 테이블에서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다가 눈을 떠보니, 갑자기 강 교수가 미경의 앞에 앉아 있었다. 강 교수는 일행들과 이야기를 한 다음 술값을 내주고 집에 가려고 하다가 혼자 있는 미경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용히 그 앞에 앉아 미경이 술에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경이 잠에서 깨자 강 교수는 미경을 데리고 부근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갔다. 강 교수와 미경은 분위기 있는 와인바로 갔다. 강 교수는 술이 세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경은 자신이 교수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85)  (0) 2021.02.06
작은 운명 (84)  (0) 2021.02.05
123. 캠퍼스의 가을 분위기 때문에 고독을 심하게 느끼다  (0) 2021.02.04
작은 운명 (82)  (0) 2021.02.04
작은 운명 (81)  (0) 2021.02.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