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캠퍼스의 가을 분위기 때문에 고독을 심하게 느끼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대학의 가을은 풍성하면서도 심오했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저절로 깊은 사색에 빠지게했다. 교정에서의 삶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도서관 장서에 꽂혀있는 책들의 무게에 비례해서 삶은 바다 속으로, 심연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미경은 최고경영자과정수업을 마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자니 너무 서운했다. 벤치에 앉아 빨간 단풍잎과 노란 은행잎을 보고 있었다. 벤치 아래로 떨어진 낙엽을 발로 비볐다. 바스락 소리가 난다.

 

그건 낙엽이 보내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너는 아직 살아있는 거야. 무언가에 붙어있잖아?’ 낙엽의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미경에게는 ‘매달려야 할’ 그 무엇이 없었다. 낙엽 때문에 순간적으로 진한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거야.’ 다시 낙엽의 무리가 외쳤다. 미경은 그런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했다. 더 진한 외로움, 더 가득한 울분이 안에서 치밀어 올랐다.

 

미경은 학교 앞 호프집으로 갔다. 시끄러웠다. 음악도 빠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는데, 가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말로 우리나라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데, 제대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인생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이 중요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그걸 하면 끝나는 거야. 왜 그렇게 심각한 거지. 이 바보야!’

 

힙합과 랩에서 이렇게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경은 중얼거렸다. ‘여기가 한국인 거지? 라스베가스는 아닌 거지?’

 

미경은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취하고 싶었다. 맥주로 취하면 배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가뜩이나 요새 살이 쪄서 노이로제에 걸릴 판이었다. 그래서 소주를 시켜 맥주와 섞었다. 안주는 노가리와 땅콩이었다.

 

미경은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생은 상대적인 거라 어린 여대생들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 자신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늙어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얼굴은 몰라도 심장은 완전히 낡아빠져 사랑도 미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속수무책의 투명인간이었다.

 

미경은 이제 45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학교 앞에 와보니 완전히 나이 든 노인처럼 생각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손님으로 올 때는 미경도 어린 축에 속했는데, 대학교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젊은이들의 음성은 밝고 미소는 예쁘다. 미용실에 와서 자녀 자랑이나 하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경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한 시간쯤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있는데, 갑자기 강 교수가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강 교수는 미경을 보지 못한 채 호프집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막이로 들어갔다.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과 일행이었다. 그 여학생은 호리호리한 키에 무척 지적인 얼굴이었다.

 

미경은 그 여학생을 보자 순간적으로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아니 왜 저렇게 어린 여학생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오는 걸까? 저렇게 어리고 팔팔한 여학생을 데리고 다니니 나 같이 늙은 여자는 아무래도 매력이 없어보이겠지!’

 

미경은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대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요새 미술시장이 너무 상업적으로 변했어. 큰 일이야. 실제 비싼 값으로 팔리는 작품을 보면 내용은 별 것 아니잖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장해서 그런 거지.”

 

“정말 맞아. 예술은 순수해야 해. 그렇지 않고 상업적으로 작품 가격이 매겨진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성을 상실하는 거야. 그리고 타락한 거지.”

 

“김환기 화백의 작품, Universe 5 작품은 132억원을 호가했어. 제프 쿤스의 은색 고철덩어리 ‘토끼’는 1000억원대에 팔렸어.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피카소의 꿈(1932)도 모두 수천억원 대를 넘었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우리는 그런 혼탁한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그림만 그리자. 돈은 필요 없어. 원래 화가는 어렵게 살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이야.”

 

대학생들은 순수했다. 그런 순수성 앞에서 미경은 부끄러웠다. 미경은 술집에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도 생각되었지만, 강 교수가 자신을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인사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술에 취해 옳은 판단을 못하고 있었다. 상황이 복잡해지자 술을 더 마셨다. 술을 마시면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이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까지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머릿속으로 ‘정언명령’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잠깐 운전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 이 시간 내가 가는 곳까지 단속반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 콘트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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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2)

2선을 한 현재 시장인 경목월 시장이 여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고 탈락되자, 선거판은 사상 최대로 뜨거워졌다. 시청 국장을 역임한 백상무 후보와 오래 전부터 시장을 노리던 정국영 후보, 두 사람과 맹공희 대학 교수가 경합을 벌이게 되었다.

흥신소를 운영하는 김민첩 사장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정국영 후보를 돕고 있었다. 정 후보는 김 사장의 실력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상대 라이벌인 백상무 후보와 맹공희 후보의 약점을 알아내고, 비밀공작을 통해 상대 후보들의 선거법위반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도록 부탁했다.

만일 김민첩 사장이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해서 정국영 후보가 당선되면,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이런 약속은 서면으로 작성하고 공증까지 할 성질은 아니었다.

대부분 불법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에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그야말로 상호 간에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지켜져야 한다.

김민첩 사장은 직원들을 불러놓고 지시를 했다. “우리 회사는 이번 시장 선거에서 여당 공천과정에서 정국영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다. 따라서 라이벌인 백상무 후보와 맹공희 후보의 뒷조사를 개시해서 그들의 비리와 약점, 잘못을 샅샅히 파헤치기로 한다. 그리고 아르바이트생들을 동원해서 상대 후보 진영에 침투시켜, 상대 후보나 그들의 선거운동원으로부터 돈을 받거나 향응을 받은 다음 증거를 확보하여 이를 정국영 후보 진영에 넘겨주기로 한다. 알았나? 각자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정국영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져야 한다. 만일 이러한 공작이 노출되면 정국영 후보도 끝이고, 우리 회사도 문을 닫아야 한다. 알았지?”

이들은 마치 영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첩보작전, 공작활동을 하는 사람들 같았다.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비장한 표정으로 작전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리에 행해져야 하고,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했다가 무덤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 그것이 생명이다.

공칠은 고민에 빠졌다. 우선 자신은 세 후보 중에서 오직 백상무만 알고 있다. 다른 후보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공칠은 우연히 백상무의 과거 비밀을 알고 있다. 그것도 오직 공칠이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이다.

그 비밀을 지금 회사를 위해서, 아니 김민첩 사장을 위해서, 상대 후보진영에 넘겨야 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있다. 물론 공칠이 이런 비밀을 김민첩 사장에게 누설하지 않으면 끝이다. 다른 각도에서 다른 정보를 알아내면 그만이다. 고민은 깊어졌다. 공칠은 일단 백상무를 만나기로 마음 먹었다.

“백후보님! 지금 판세가 어떻습니까? 당선될 가능성이 높습니까?”
“글쎄요. 맹공희 교수는 별거 아닌데, 정국영 후보가 만만치 않아요. 돈도 많고, 지역에서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예요.”

“정국영 후보의 약점이나 문제는 없나요?”
“지금 우리 진영에서도 정 후보의 뒷조사를 하고 있고, 조직을 동원해서 그에 관한 제보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워낙 약은 사람이라 어떨까 싶어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정 후보의 비리나 약점을 찾아볼까요?”
“어떻게요? 그런 방법이 있나요?”
“예. 후보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알아볼게요.”

이렇게 해서 공칠은 자신의 사장인 김민첩의 지시와는 정반대로 정국영 후보의 뒷조사를 혼자 시작했다. 그리고 김민첩에게는 확인되지 않고, 증거를 찾을 수 없는 막연한 소문만 주어듣고 서면으로 첩보를 수집한 것처럼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그때마다 김민첩은 회의를 하면서 짜증을 냈다. “김공칠 실장이 수집한 자료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공지의 내용 아닌가? 도대체 이런 식으로 정보수집을 못하면 안 되는 거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빨리 목숨을 걸고 열심히 백상무의 뒤를 캐봐. 분명 여자관계가 있을 거야. 젊은 연예인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그리고 시청에서 국장을 하면서 건설회사와 유착되어 뇌물을 많이 먹었다는 것 같아. 부동산투기도 많이 했는데, 다른 사람 이름으로 했대. 알았지!”

“예. 알았습니다. 그런데 백상무는 핸드폰도 차명으로 쓰면서 수시로 바꾸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서울대학교를 나와서 머리도 비상하고, 아주 치밀하게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하지만 열심히 해서 곧 좋은 성과를 낼게요.”

“이번에 꼭 성공해야 해. 우리 회사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야. 알았지!”
공칠은 이번 선거에서 김민첩 사장이 왜 저렇게 열심히 정국영 후보를 도와주려고 난리를 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굉장히 중요한 이권이 달려있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작은 운명 (81)

시장은 너무 억울했다. 자신이 여자를 다루는데는 그 누구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숱한 여자와 연애를 하고 바람을 피고, 관계를 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만큼 시장은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으로서 남자도 그렇지만 특히 여자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경목월 시장은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사람을 잘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원을 뽑을 때도 매우 신중했다. 정식 직원으로 계약을 하기 전에 최소한 3개월의 인턴기간을 두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로 그 사람의 인간성을 테스트해보았다. 일부러 돈을 떼어먹을 수 있게끔 어리숙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사람의 관상을 보았다. 사주팔자를 정확하게 물어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역학자에게 반드시 검수를 받았다.

만일 그 역학자가 ‘이 사람은 사장님과 맞지 않으니 절대로 쓰지 마세요. 잘못 쓰면 큰일 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경 사장은 반드시 들었다. 가까운 사람이 직원 채용부탁을 해와도, 역학자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장관이나 국회의원 청탁도 들어주지 않았다.

사회생활 초기에 함부로 사람을 믿었다가 실패하고 손해를 본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큰 공사를 맡아서 하청을 주는 회사 사장의 관상이 너무 좋지 않다고 해서 그 역학가가 극구 반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너무 크고 아까워서 하청을 주었다가 나중에 10억원의 손해를 보았을 뿐 아니라 리베이트 문제로 그 하청업자가 물고들어가는 바람에 검찰조사까지 받고 하마터면 징역까지 갈 뻔했다.

그 다음부터는 어떤 경우에도 역학가의 말은 곧 진리고 이정표였다. 그래서 기왕에 결혼한 부인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새로 만나 몸을 섞는 여자의 경우에는 반드시 역학가의 심사가 가장 중요한 선발요소였다.

그래서 신인을 발굴한 경우에는 최우선적으로 그 역학가에게 같이 가서 두 사람의 사주팔자와 관상, 체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과연 두 사람의 개별적인 운세, 인생 전체의 개괄적 운명, 두 사람 사이의 속궁합, 겉궁합 등을 정밀하게 분석을 받았다.

역학가는 두 사람 앞에서는 크게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나중에 사장만 따로 만나서 솔직한 감정의견을 제시해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면으로 상세하게 써서 주기도했다.

시간이 가면서 요령이 생기자 경 사장은 역학가의 설명을 비밀녹음해서 수없이 반복해서 듣고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실패하지 않고, 나쁘고 악한 사람, 재수 없는 사람을 만나서 손해를 보지 않고 속을 썪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유부녀 과장과의 문제는 정말 재수없는 일이었다. 경 시장은 별로 관심이 없는데, 그 여자가 이상하게 접근하면서 묘한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상은 그 여자 과장의 입장에서는 이번 선거에서도 경 시장이 여당으로 출마하면 당연히 3선의 시장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가깝게 지내서 나중에 인사상 이익을 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게 된 것이었고, 무능하고 의처증이 심한 과장의 남편에게 제대로 걸린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은 자신에 대한 뒷조사를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이 얼마나 투명한지, 시장이라는 자리가 공인이기 때문에 일반인과는 전혀 달리 사생활이 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그 지역의 시민들은 시장의 모든 것을 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장의 여자관계까지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스캔들이 언론에 한번 노출되면 대상자는 살아남기가 어렵다.

먹이를 한 번 문 사자는 사자 스스로 죽기 전까지는 이빨에서 먹이감을 놓치지 않는다. 동물의 본능이다. 비록 자신의 몸이 소멸해도, 한번 문 먹이는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초원의 진리다.

그래서 경 시장은 고지가 바로 저긴데, 안타깝게도 재수 없는 암초에 걸려 하루만에 추락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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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0)

이번 시장 선거는 초반부터 매우 뜨거웠다. 기존에 시장을 하던 사람은 삼선에 도전하려고 했는데, 막판에 정당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me too에 연루되어 물의를 일으켰다. 시장으로 있을 때 유부녀인 시청 과장과 사이에 스캔들이 루머로 확산되었다.

그 유부녀 과장의 남편이 지역 언론에 폭로했다. 그 유부녀 과장은 남편과 사이가 나빠 별거하고 있었는데, 시장과 같은 교회를 다니면서 자주 만나게 되고, 가깝게 지내자 남편이 의심을 하고 시장실에 찾아가 행패도 부렸던 모양이다.

시장과 유부녀 과장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었지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시내 모텔 바로 옆에 있는 카페에서 일요일 오후 시간에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물론 시장과 과장의 수상한 만남에 대해서는 김민첩 사장이 늘 하던대로의 추적감시망에 걸려서 입수된 것이고, 이 사진은 김 사장이 돈을 받고, 그 유부녀 과장의 남편과 시장 부인에게 넘겨준 것이었다.

그러자 유부녀 과장의 남편이 이 사진을 가지고 시장을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려고 하였지만, 시장은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돈을 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시장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 돈을 주게 되면 더욱 불륜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돈을 줄 수도 없었다.

시장 부인의 입장에서는 비록 그런 불륜이 사실이라고 해도, 늙은 시장이 부인과 평소 관계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시장으로 당선이 되어 돈만 벌어오고 자신은 시장 부인으로서 폼을 잡고 살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자 적극적으로 시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시장 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남편은 결혼한 다음부터 지금까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은 전혀 없다, 오직 부인과 일밖에 모른다. 자신은 남편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남편의 결백을 주장했다.

유부녀 과장도 시장과는 업무상 만난 것이고, 교회일을 상의한 것일뿐 남녀관계는 전혀 아니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런 스캔들은 선거판에서 상대 라이벌에게 교묘하고 무자비하게 악용되었다.

연일 지역 언론에서 난리를 쳤고, 그 때문에 마침내 현 시장은 소속 정당의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시장은 물론 유부녀 과장과는 깊은 관계에 있지 않았지만, 평소에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

원래 시장이 되기 전에 그 지역에서 건설회사 사장으로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고급 술집의 젊은 마담은 늘 사장의 애인이었다. 사장은 본인의 건설회사에서 짓는 오피스텔 몇 개를 회사 이름으로 해놓고, 마음에 드는 애인으로 하여금 공짜로 살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그 애인과 헤어지면 자연스럽게 회사 직원을 시켜 오피스텔을 명도받았다. 새 애인에게 다시 그 오피스텔을 사용하게 해주었다. 가구도 다 셋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자는 그냥 몸만 들어가면 되었다. 아주 편리했다.

오피스텔 전기료와 관리비 역시 모두 회사에서 자동이체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핸드폰도 회사 명의로 해서 애인으로 근무하는 동안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애인과의 조건은 ‘절대로 끝까지 달라붙지 않는다. 임신은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생활은 각자 한다. 사장의 가정은 지킨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사장이 63세가 되도록 이런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연애조건을 크게 위반한 여자는 그 지역에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재수 없게 나이 들고 얼굴도 별로이며, 아무 관계도 없는 유부녀 과장과 억울한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고, 망신만 당했다. 그것이 너무 억울했다.

그 때문에 영광스러운 민선 시장 3선의 고지 바로 앞에서 처참하게 미끄러지고 말았다. 또한 그 지역에서 자신의 여자 실력을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은 시장의 여자보는 눈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줄 알고 실망할 것이 걱정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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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9)

다음 날 공칠은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그 남자는 공칠에게 어제 있었던 일은 비밀로 붙여 달라고 하면서 돈을 주려고 했다. 공칠은 감각적으로 그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다. 시청 국장이었다.

“미안하네, 젊은 이! 어제는 내가 실수했네. 이해해 주고, 이건 내 성의니까 받아뒤요.”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돈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장소가 워낙 으슥한 곳이어서, 가끔 성폭행도 일어나고 해서, 제가 자진해서 위기에 처한 여자들을 구해주기 위해 하는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여자분은 사모님이신가요?”

“응. 맞아요. 우리 집사람이예요. 모처럼 같이 밖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데이트를 하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아 그래요. 미인이시던데요. 그리고 선생님과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어디선가 많이 익은 얼굴이예요. 혹시 연예인 아닌가요?”
“응. 왕년에 대학 다닐 때 축제 때 미스 OO대학 메이퀸으로 뽑힌 적도 있어요. 그런 말 들으니까 멋쩍구먼. 하하...”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것도 좋은 인연인데, 앞으로 자주 연락하고 지내도록 해요. 내가 밥도 살테니까...”

이렇게 헤어졌다. 이번 일은 공칠로서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공칠에게도 좋지 않을 것 같은 직감이 들어서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공칠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런데 그 후 1년쯤 지나서 그 지역 시장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공칠이 만났던 그 사람이 시장 후보로 출마한 것이 아닌가?

마침 공칠이 모시고 일을 하는 김민첩 사장은 반대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평소에 반대 후보와 김민첩 사장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대 후보 정국영의 부인으로부터 김민첩 사장이 남편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받은 일이 있었다. 김 사장은 이년 전에 이런 뒷조사를 해서 정국영이 젊은 여자 애인에게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준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정국영의 부인에게 전해주면 성공보수로 500만원 더 받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민첩은 워낙 약은 사람이었다. 그 수집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정국영에게 가서 협상을 했다.

“이 자료를 당신에게 줄 테니, 2천만원을 달라. 그러면 당신 부인에게는 증거를 못찾은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겠다.”
이렇게 협상을 해서 김 사장은 정국영에 대해 수집한 자료를 부인에게 전달하지 않고, 모두 정국영에게 주었다. 그 대가로 천5백만원을 받았다.

그런 다음부터 두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이 술도 마시러 다녔고, 각자의 애인을 대동하고 같이 여행도 다녔다. 서로의 비밀을 지켜줄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바람 피는 취향도 비슷하고, 돈도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이 바람을 피워도, 가까운 학교 동창과는 피지 않는다. 그것은 비밀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마음 놓고 같이 바람을 피러 다니는 것이다. 골프를 같이 치러가기도 하고, 해외여행도 이렇게 팀을 짜는 것이다.

공칠은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시장 선거에서 후보로 나온 그 사람을 찾아가서 만났다. 백상무 후보는 깜짝 놀랐다. 아무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공칠이 찾아오니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아니 어쩐 일이요? 그동안 잘 지냈소?”
“예. 저는 원래 하던대로 지역 환경정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장선거에 나오셨다면서요?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하하. 없어요.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당선되면 한번 만나요. 같이 지역발전을 위해 상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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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8)

공칠은 그 지역의 시장이나 농협조합장, 교장선생님 등을 선정한 다음, 꾸준히 그들의 뒷조사를 했다. 그런 다음 틈이 나면 대상자들을 미행했다. 공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그들의 사생활을 감시했다.

그리고 그 지역에 있는 몇 군데 으슥한 데이트 장소를 찾아서 차안데이트 하는 것을 감시했다. 공칠은 이런 일을 계속하다 보니 완전히 전문가가 되었다.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손바닥처럼 꿰어차고 있었다.

강변 고수부지 가운데 연인들이 차를 세워놓고 데이트하는 곳이 있었다. 공칠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멀리 세워놓고 그곳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망원경으로 차량을 살펴보면 차가 약간씩 움직이는 것이 포착된다.

그러면 공칠은 매복을 하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그 차량에 다가간다. 차안에서 연인들이 카섹스를 하는 장면을 촬영한다. 그리고 문을 열게 한 다음, 경찰에 신고할 테니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카섹스를 하던 남자와 여자는 놀라서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사정한다.

“한번만 봐주세요.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을게요.”
“당신들 부부 아니잖아!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러면 돼? 청소년들이 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용서 못해. 잠깐 기다려요. 곧 경찰이 올테니까.”

그러면 차안에 있는 남자는 지갑에서 돈을 꺼낸다. 10만원이다. 공칠은 마지 못해 그 돈을 받으며 웃는다.
“나는 이곳 자원봉사환경감시원입니다. 이번만 봐줄테니 앞으로는 절대로 나쁜 짓하면 안돼요.”

공칠은 이렇게 그 지역에 있는 몇 군데 은밀한 데이트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카섹스하는 사람들을 단속해서 얻는 수입이 짭짤했다. 하루에 평균 3대를 잡으면 30십만원은 충분히 부수입이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100만원도 받았다. 아마 그 사람은 공무원이거나 학교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공칠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수법도 세련되고, 대담해졌다. 그래서 환경단속직원인 것처럼 복장도 공무원 비슷하게 작업복에 명찰도 새겼다. 물론 이름은 가명이었다. 처음에는 ‘최환경’이라고 썼지만,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서 ‘박공해’로 하다가, 나중에는 ‘문미세’로 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공해의 주범이라는 뉴스를 듣고 만든 이름이었다.

하기야 단속되는 사람들은 공칠의 옷만 보고 말지, 이름까지 자세히 들여다 볼 여지가 없었다. 대개 눈을 밑으로 하고 공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횄다. 만일 당동하게 공칠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공칠은 큰소리로 혼을 냈다.
“이 사람이 어디를 빤히 쳐다봐? 혼이 나야겠구면.”

그러면 그 남자는 놀라서 곧 바로 시선을 밑으로 깔았다. 공칠은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왜 성관계를 이런 오픈된 곳에서 하느냐? 그건 안 된다.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다.’

그는 이런 확신과 사명감을 가지고 추운 겨울날에도 매일 단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현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랬는지, 문을 열고 신고를 한다고 해도 끝내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 젊은 남녀가 있었다.

공칠은 하는 수 없이 경찰에 112신고를 했다. 얼마 후 순찰차가 와서 그 차를 인솔해 지구대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떠났다. 경찰관은 공칠이 추운데 고생한다고 격려를 하고 갔다.

어느 봄날 공칠은 해가 진 다음 자신이 감시하는 은밀한 곳으로 갔다.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나무 뒤에서 데이트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밤 10시경 검은 에쿠스 차량이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차량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공칠은 살금살금 차량 뒤로 다가갔다. 차량 뒷좌석에서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하고 있었다. 칠흙같은 어두움이었지만, 평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적외선카메라로 촬영을 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그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공칠은 차량 앞을 가로막고 서있었다.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자는 창문을 조금 열고 돈을 주겠다고 했다. 공칠은 문을 열라고만 했다. 남자는 문을 열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었다. 삼십분 정도 실강이를 하다가 공칠이 용변을 보러 잠시 차 옆으로 간 사이에 차는 급히 출발했다.

마침 오토바이를 가까운 곳에 세워놓았기에 공칠은 그 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무려 5킬로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가서 그 차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 차를 정차시켰다. 공칠의 오토바이 실력은 한국에서는 거의 최고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갈고 닦은 실력때문이었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그 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내렸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주먹과 발로 공칠을 때렸다. 공칠은 넘어졌다. 그 사이에 뒷좌석에 타고 있던 여자는 차에서 내려 길 건너편으로 뛰어갔다.

그 남자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공칠과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주면서 그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 공칠은 그 남자가 차도 좋고, 생긴 것도 공무원이나 대학 교수처럼 보여서 믿고 그 차를 그대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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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7)

어느 작은 도시에 최공칠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공칠이 아버지는 정육점을 경영하면서 비교적 돈을 많이 벌었다. 아버지는 돈을 벌자 정육식당을 차렸다. 아버지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공칠이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믿는 불교는 살생을 금지하고 있는데, 왜 정육점을 오래 하고 계신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종교적 교리고, 우리가 먹고 사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 정육점은 생업일 뿐이야. 그리고 내가 직접 도축을 하는 건 아니잖니?”

공칠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힘이 센 친구들로부터 일진회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집에 돈도 있었기 때문에 일진회에서는 쓸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칠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일진회에 가입하면 공부도 못하게 되고, 모범생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거부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일진회 멤버 5명이 공칠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집단폭행을 했다. 생전 처음으로 심하게 폭행을 당한 공칠이는 그 다음부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다. 태권도와 권투를 배웠다.

그리고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원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머리에 한계가 있어 그랬는지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으면 대학은 포기하고 아버지 정육점이나 이어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공칠은 서울로 올라가서 대입학원에 등록을 했다. 1년 동안 재수를 한 다음, 마침내 공부로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경찰관이 되려고 했던 꿈은 끝내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제일 활발하게 흥신소를 하고 있는 김민첩 사장을 찾아가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김민첩 사장은 이름 그대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행동이 빨랐다. 과거 경력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부하 직원들은 모두 공수부대나 해병대 출신만 뽑았다. 김 사장은 전화도청기술도 가지고 있었고, 핸드폰을 복제하는 기술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김 사장은 또한 경찰공무원이나 시청공무원들과도 긴밀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무원들을 접대하는 고급 술집에서 한달에 절반은 술을 마시는 것 같았다.

인물도 왠만한 탤런트 같아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김 사장은 부인과는 별거를 하면서 수시로 애인을 바꾸면서 생활했다. 주로 그 지역에서 돈이 많은 여자들이 김 사장에게 목을 매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이 타고 다니는 외제차는 마치 김 사장의 것처럼 보여졌다. 김 사장의 사생활은 엉망이었지만, 그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나 자부심은 대단했다.

김 사장은 평소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도 꾸준히 했지만, 몸에 좋다는 뱀탕을 즐겨먹었다. 이런 베테랑 사장 밑에서 열심히 일을 배운 결과 공칠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흥신소에서 정식으로 맡아서 처리하는 업무 이외에 공칠은 혼자서 독자적으로 하는 일이 있었다. 그 지역에서 행세하는 사람들의 뒷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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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0)

명훈 엄마는 요새 아주 죽을 맛이다. 몸무게도 5킬로그램이나 빠졌다. 그동안 살이 쪄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수없이 시도를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런데 이번에 명훈이 임신문제로 골치를 썪고있는데, 갑자기 명훈 아빠 회사에 대해 검찰의 특별수사가 시작되었다. 잘못하면 회사가 부도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고 명훈 엄마가 운영하는 약국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고 방심했다가는 인근 경쟁약국에서 손님을 다빼앗갈 상황이었다. 밤에 잠도 잘 못잤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심해서 안정제를 먹지 않고는 잠에 들지 못했다. 너무 약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때로는 술을 마셨다.

오늘도 밤 11시경 술을 마시고, 겨우 눈을 붙이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혹시 검찰청 아닌가 싶어 떨리는 가슴으로 받았다. 목소리가 매우 날카로운 중년의 여성이었다.

“여보세요 명훈씨 어머니 되세요. 저는 아드님에게 강간 당한 여자의 친구되는 사람인데요. 며칠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합의를 하지 않고 있는 거지요? 명훈씨가 부모님께 말씀드려 곧 합의한다고 그랬는데요.”
“뭐라고요? 강간이라고요? 우리 아들이 강간을 했다고요? 무슨 말이예요?”
“이상하네요. 아드님이 말 않든가요? 벌써 5일이나 지났는데요. 빨리 배상하지 않으면 경찰서에 고소장을 낼 겁니다. 아드님과 상의하고 연락주세요. 제 번호는 지금 찍혀있지요?”

명훈 엄마는 하마터면 쓰러져 뇌출혈이 일어날 뻔했다. ‘강간이라니! 명훈이가 강간을 했다니? 명훈아! 이 불쌍한 인간아! 너도 사람이냐?’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명훈 엄마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급히 명훈을 찾았다. 명훈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명훈 엄마는 절망했다. 엎친데 겹친다고 했다. 세상에 좋지 않은 일은 언제나 동시에 들이닥친다. 좋은 일은 멀리 간격을 떨어뜨리며 오지만, 나쁜 일은 함께 몰아닥친다.

이것을 雪上加霜(설상가상)이라고 한다. 눈도 내리고 서리도 얼어서 더욱 춥게 만든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misfortune on top of misfortune’ ‘to make matters worse’ ‘as if to rub salt in the wound’라고 한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명훈 엄마는 명훈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너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43살이나 처먹은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이태원 클럽에 가서 24살 된 어린 아이와 같이 모텔에 갈 수 있냐? 처음부터 계획적인 꽃뱀이 틀림 없어. 그리고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냥 가면 되지 친구를 불러서 때리고 강압적으로 각서를 받는 건 정말 악질이야. 근데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명훈 엄마는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까지 아빠와 상의할 처지가 아니라서 혼자 해결하려고 개인적으로 아는 여자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아이가 꽃뱀에 물렸어요.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 꽃뱀에 물리면 큰 일 난다. 꽃뱀은 겉모습을 화려하지만, 그 속에 아주 강한 독을 품고 있다. 일단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다.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도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여자가 꽃뱀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 여자는 순수한 성범죄 피해자일 수 있다.

꽃뱀인지, 피해여성인지는 법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가해자의 부모가 판단할 권한은 없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모든 책임은 명훈에게 있는 것이지, 명훈이 돈 10만원을 주며서 술에 취한 자신을 부추겨 모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는 요구를, 함께 술을 마신 일행으로서 거절하지 못하고 데려다 주었다가 순간적으로 당한 경우에, 그 여자가 갑자기 꽃뱀으로 돌변했다고 보기는 너무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명훈 엄마는 피해자의 나이와 가해자의 나이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그리고 43살이나 되는 가정 주부가 술집에서 만난 24살 되는 대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여자를 꽃뱀, 아들은 선의의 피해자로 단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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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71)

“큰일 났네요. 빨리 합의해야 해요. 고소를 하면 구속될 수도 있고,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어 골치 아파요.”
여자 변호사는 수없이 이런 사건을 겪어봐서 그런지 숨도 쉬지 않고 진단을 내렸다. 의사 같으면 청진기라도 대보고, 소견을 말할 텐데, 여자 변호사는 범인도 만나보지 않고, 그냥 범인의 어머니 말만 잠깐 듣더니 성범죄자로 단정짓고,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도 될 수 있다는 확진을 내린 것이다.

“우리 아이는 술에 취해 어떻게 모텔에 갔는지도 모른다고 해요. 폭력을 행사한 것도 없고요. 실제 관계도 하지 못했대요. 그런데 이 여자가 밖으로 끌고 나와서 친구와 함께 억압으로 강요해서 사실확인서를 써주고 왔대요. 그 사실학인서는 부르는대로 썼는데 지금 그 여자가 가지고 가서 아이는 어떤 내용을 썼는지 잘 기억도 못해요.”

“억울하지만, 일단 시인하는 각서를 써주었고, 모텔에서 성교를 시도했다면 성폭력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아요. 술 취했다는 변명도 별로 참작이 안 돼요. 대개 강간이란 술마시고 하는 거니까요.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린 다음, 삽입을 시도했다면 강간죄의 기수(旣遂)가 되는 거예요. 강간죄에 있어서는 삽입이 되면 기수가 되는 것인데, 여자가 이미 들어왔다고 우기면 무조건 인정하고 말아요. 그것이 안 들어갔다고 CCTV를 찍어놓지는 않았을 거 아니예요? 그리고 설사 삽입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정되어도, 그때는 기수가 아니고 미수범(未遂犯)으로 인정되지만, 우리 형법상 강간죄는 기수범이나 미수범이나 거의 똑 같은 처벌을 하고 있어요.”

“정말 이상하네요. 여자 OO에 남자 OO가 들어가지도 않고 닿기만 해도 강간으로 본다는 게. 그리고 그런 경우 여자에게 무슨 피해가 있는 거예요? 상처가 나지도 않고, 그냥 물로 씻으면 끝나는 건데. 그 여자는 43살이나 먹었고, 애까지 낳았는데, 어린 남자 것이 거기 좀 닿았다고 해서 무슨 피해가 있고, 그걸 처벌할 가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아무튼 빨리 합의하세요. 합의하지 않고 고소를 당하면 징역을 가든, 집행유예를 받든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고, 보호관찰도 받고, 성폭력범죄인으로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어요. 인생 망치게 되요. 취직도 못하게 되요.”
“정말 억울해요. 왜 세상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43살 주부가 미쳤다고 클럽에 가서 술이나 마시고 남자와 모텔을 가요. 옛날 같으면 남편이 알까봐 지가 먼저 쉬쉬할 텐데. 세상이 말세예요.”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법은 법이예요? 피해자가 고소하면 문제가 되는 거지요? 여자가 신고도 안하고 넘어가면 끝나는 거예요. 일단 그 여자를 만나보세요.”
“얼마면 합의가 될까요?”
“글쎄요. 민사와 달라서 형사사건에 대한 합의금은 사실 일정한 기준이 없어요. 그 여자가 어디 다쳤다고 진단서까지 끊으면 강간상해죄, 강간치상죄가 되어 더 큰일 나요. 진단서가 없으면 일단 천만원 정도 선에서 이야기해보세요.”

“예? 천만원이나 되요.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뭘 피해 봤다고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줘야 해요. 성매매를 하면 한번에 15만원 내지 20만원이라고 하던데, 텐프로 고급 룸살롱의 아가씨도 50만원이면 된다던데, 43살 먹어 늙어빠진 가정주부를 하지도 못하고 천만원이나 물어줘야 해요. 정말 법이 너무한 거 아네요?”

“글쎄요. 아무튼 현실에서 강간사건의 합의금은 그런 거예요.” 변호사는 명훈 엄마를 잘 알고 지내고 있지만, 이번에 말하는 것으로 보아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지금 성범죄가 얼마나 무겁게 처벌되는지 전혀 모르고 있어 답답하다. 자기 아들만 생각하고, 피해를 당한 여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야. 빨리 합의하고 신고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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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0)

강 교수는 미경의 애인이라고 자처하는 건달에게 각서를 써주고 나서 곧 바로 미경을 만났다. 미경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미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 남자는 3년 전에 몇 달 동안 애인 사이로 지냈는데, 저를 심하게 폭행하고 평생 저를 자신의 소유로 한다고 일방적으로 자기 몸에 제 이름을 써놓고 보여주면서 저에게 책임지라고 강요했어요. 깡패짓이나 하면서 저로부터 돈이나 뜯어가고 다른 여자들과 바람 피고 또 도박과 사기행각을 벌이다가 징역을 살던 나쁜 사람이예요.”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왜 나에게 미리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남자가 미경씨와 나와의 관계를 문제 삼을 수 있었다면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

“그 사람은 징역 가기 전, 그러니까 지금부터 2년 반 전에 저와 완전히 헤어지는 합의서를 쓰고, 제가 마지막으로 돈 천만원을 주고 끝을 냈던 거예요. 그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저의 미용실에 나타나서 제 근황을 묻고 돌아갔는데, 교수님과 저와의 관계를 어떻게 알고 교수님을 찾아갔는지는 정말 미스테리이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 남자가 나를 찾아온 거예요?”
“아마 제 주변에 교수님과 저와의 관계를 알고 시기질투하는 여자들이 그 남자에게 정보를 준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아무튼 교수님께 죄송해요. 하지만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그 돈 5백만원은 제가 대신 물어줄 게요.”

미경의 말은 모두 진실로 들렸다. 그러나 강 교수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그 남자가 말한 것처럼 미경의 배에 그 남자의 이름이 써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참지 못하고 미경의 집으로 같이 가서 미경의 옷을 벗게 하고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이 미경의 배에는 아무런 문신이 없었다. 강 교수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미경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미경도 강 교수가 자신을 믿고 그 남자 문제로 미경을 미워하지 않고,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은 그래서 곧 바로 이어서 서로 껴안고 진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사실은 미경의 오른쪽 겨드랑이 속에는 그 남자가 강제로 새겨준 문신이 있었다. 그 남자는 미경의 그곳에 아주 작은 글씨로, ‘강철’이라고 써놓았다. 그것도 예쁜 글씨로 써놓은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글씨로 엉망으로 써놓았다.

강철은 그 남자의 이름은 아니었고, 그 남자가 깡패사회에서 불리우는 별명이었다. 강 교수는 그 남자가 미경의 배위에 문신을 해놓았다고 확실하게 말했기 때문에, 당연히 미경의 배만 살펴보고 더 이상 다른 부위는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경은 조만간 그 문신을 없애는 수술을 성형외과에 가서 받으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 강 교수와 관계를 하면서도 그곳이 신경이 쓰여서 미경은 절대로 자신의 팔을 위로 들지 않았다. 반드시 차렷자세로 체위를 유지해야했다.

강 교수는 흥분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미경의 체위나 자세를 가지고 겨드랑이에 문신이 새겨져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미경은 나이가 50인데도 처녀 뱃살 같았다. 우윳빛이었고 부드럽고 탄력이 있었다.

강 교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오히려 미경에게 더 깊은 정이 갔다. 물론 500만원은 강 교수가 주고 끝을 냈다. 사기꾼은 500만원을 뜯어낸 다음에는 연락이 없었다. 아마 또 다른 사건으로 감방에 갔을 것 같다는 것이 미경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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