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9)

강 교수는 미경의 애인이라는 남자가 한 말이 귀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미경이 배에도 내 이름이 있어. 확인해 봐. 이 바보야!” 정말 충격이었다. 강 교수는 미경의 배에 어떤 글자가 문신으로 새겨져있는 것을 보지는 못했는데 이상했다.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일까? 도대체 미경은 어떤 여자일까? 이 남자와 짜고 내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었나?’ 강 교수는 어쩔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관계 횟수를 거짓말로 줄여서 50번 했다고 하면서 5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남자는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더니 크게 인심을 썼다. “그래. 이번 한번은 내가 크게 봐줄 게. 둘이서 50번밖에 하지 않았다는 말은 분명히 거짓말이지만, 내가 인정해주겠어. 그리고 한번에 10만원도 말이 되지 않아. 요새 물가가 얼마나 비싸졌는데, 한번 하는데 10만원은 상식에 반해. 하지만 내가 크게 양보해서 10만원으로 계산할 게. 다만, 앞으로 다른 곳에 가서 이렇게 터무니없이 깍으려고 했다가는 당신 양쪽 다리가 부러질 거야! 나니까 특별히 봐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

강 교수는 하는 수 없이 각서를 썼다. “본인은 귀하에게 선미경과 성관계를 한 데 대해 위자료로 500만원을 일주일 이내에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건달은 엄하게 타일렀다.

“앞으로는 절대로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를 만나지 말아요. 교수가 그러면 안 돼요. 교수는 사회에서 지도층 인사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모범적으로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어요? 학생들은 교수를 하나님처럼 받들고 믿고 배우고 있는 것 아니예요? 한번 더 나쁜 짓을 하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교수직을 박탈하고 한국에서 떠나도록 영원히 매장시킬 거요. 알았지요? 정 성욕을 참을 수 없다면 차라리 거세를 해요.”

사기꾼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적어도 군대에서 소대장 정도는 하지 않았나 싶었다. 강 교수는 죽고 싶었다. ‘내가 어쩌다 그 미용실 원장과 연애를 하다가 이렇게 망신을 당하고, 돈을 뺏긴단 말인가? 정말 사람 한번 잘못 본 죄로 이렇게 되었네. 쯧쯧...’

122. 강제로 애인과 성관계를 맺은 남자가 집행유예를 받다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다르자, 경찰에서는 상수와 암내를 동시에 불러 대질조사를 했다.

“이 사람은 제가 싫다고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말했는데도,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 저를 때리고 억압해서 제멋대로 제 배위에 올라가서 관계를 하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2주 상해를 입었습니다. 팔과 다리에 멍이 들고, 목에도 상처가 났습니다. 그때 강제로 당할 때, 성교 자체도 무척 아팠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당하느니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 후에도 저에게 고소취소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계속 협박하고 있습니다. 징역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이 여자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저는 이 여자를 때린 사실도 없습니다. 왜 제가 때렸겠습니까? 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가 하자고 하면 당연히 해줄 줄 알고 이 여자에게 하자고 했던 것이고, 제가 하자고 하니까, 이 여자는 별로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저를 받아주었고, 그 때도 도중에 이 여자가 흥분을 해서 더 오래 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만은, 갑자기 성관계가 끝나자 옷을 입고 밖에 나가 경찰에 저를 신고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자에게 상처가 났다고 하는 것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목에 상처는 제가 강제로 한 것이 아니고, 이 여자가 원해서 목을 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팔과 다리에 멍이 들었다는 것도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이 여자가 원래 성격이 급해서 여기 저기에 부딪혀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저와 연애를 오래 하는 사이에서 그 전날도 성관계를 여자가 원해서 했었는데, 갑자기 강간이라고 고소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조사하던 경찰관이 주의를 주었다. “우리나라 법이 부부 사이라고 하더라도 강제로 하면 처벌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강제로 했느냐, 아니면 동의를 받고서 했느냐가 중요하지, 다른 이야기는 불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가 났다면 그것이 강간을 하는 과정에서 난 것인지 여부가 중요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요점만 말씀하세요.”

 

두 사람은 서로 말밖에 다른 증거는 없었다. 아무튼 여자의 말이 신빙성이 있어보였기 때문에 경찰에서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세상에서 상수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상수는 법원에서 집행유예판결을 받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여자에게 합의금으로 천만원을 주고, 더 이상 그 여자에게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써주었다.

 

이 때문에 상수는 엄청난 상처를 받고 손해를 보았다. 이 일로 상수는 여자가 무서워졌다. 그리고 법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가끔 그 여자를 죽이고 싶었다.

 

분명 다른 남자를 새로 만났기 때문에 상수를 때어버리려고 한 수작 같았다. 하지만 수사권이 없는 상수는 그 여자의 뒷조사를 할 수도 없었고, 해보았자 아무런 조치를 할 권한이 없었다. 그냥 가슴에 불덩이를 담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이 지난 다음, 상수는 암내가 다른 젊은 남자와 팔장을 끼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은 상수는 쫓아가서 암내를 때렸다. 그랬더니 그 남자가 곧 바로 상수를 발로 찼다. 두 남자는 서로 엉켜서 싸웠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싸움을 말려서 싸움은 오래 가지 않고 끝났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상수가 더 많이 맞아서 상해진단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쌍방폭행으로 처리가 되어 서로 합의하고 말았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그냥 끝내고 말았다. 하지만 상수는 그 후에도 꿈속에서 그 여자가 악마로 자주 나타나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꿈에서 그 여자를 상수가 칼로 죽이는 장면이 나타나서 속이 무척 후련했다. 그 후에는 이상하게도 더 이상 그 여자가 꿈에서 보이지 않았다.

 

121. 내연의 관계에 있는 여자로부터 강간죄로 고소를 당한 남자

 

암내는 미경 오빠와 10개월 전에 만나서 연애를 했다. 두 사람은 암내의 집에서 같이 자기고 하고, 미경 오빠 집에 와서 자기도 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서 성관계를 했다.

 

선상수는 화물차 운전을 하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다. 암내도 마트에 가서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재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외로우니까 같이 연애를 한다는 기분으로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수는 자신이 남자이고, 암내가 잠자리를 해주고, 또 만나면 밥도 해주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적은 돈이지만 매달 생활비조로 돈을 주었다. 그리고 가끔 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주었다. 암내는 다른 여자들과 달라서 색을 무척 밝히는 편이었다. 상수가 피곤하다고 해도 일단 만나면 무척이나 귀찮게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상수는 암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다 보니, 몸살도 나고 심지어는 병원에 입원까지 한 적도 있었다. 상수도 다른 것은 몰라도 여자와 잠자리하는 데에는 자신이 있는 남자였다. 두 사람은 속궁합이 잘 맞아서 성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암내가 상수를 필요로 하는 형국이었다.

 

이렇게 10개월을 서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추석 명절을 지내고 어느 금요일 저녁에 상수는 집에서 암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밖에 나가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저녁 7시면 퇴근하는 암내가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들어왔다. 인상을 쓰고 들어오는 꼴이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유를 물어봐도 대답이 없었다. 밖에 나가서 외식을 하자고 해도 싫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상수는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면을 곱빼기로 시키고, 탕수욕도 주문했다. 배달이 와서 상수는 냉장고에 있는 소주와 맥주를 꺼내 마셨다. 암내는 식사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상수는 화가 나서 술을 많이 마셨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쇼파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암내가 밖으로 나가려는 소리 때문에 상수는 잠이 깼다. 그래서 일어나서 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다. 그러면서 암내를 데리고 침대로 갔다. 강제로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눕히고 잠을 자자고 했다. 암내는 발버둥을 치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상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물론 가끔 싸우기도 하고, 며칠씩 냉각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상수는 잠자리를 해주면 암내가 속상한 것이 풀릴 것으로 생각하고 시도를 했다. 암내는 아주 단호했다. 상수는 암내를 주먹으로 몇 차례 때렸다. 그리고 암내를 짓누르고 공격했다.

 

암내는 당하면서 계속 발버둥을 치고 두 손으로 상수를 밀치려고 했다. 상수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계속 밀어붙였다. 암내는 나중에는 이빨로 상수의 팔을 물었다. 너무 세게 물어서 팔에서 피가 났다. 상수는 흥분된 상태에서 아픈 것도 참아가면서 진한 사랑을 했다.

 

그러면서 암내의 목에 키스마크까지 하는 무모함을 보였다. 상수가 사정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자, 암내는 옷을 주워입고 밖으로 나갔다. 30분이 지난 다음 동네 지구대에서 경찰관 2명이 암내와 같이 상수의 집에 와서 임의동행형식으로 지구대로 끌고 갔다.

 

그런 다음 지구대에서는 순찰차에 태워 상수를 경찰서로 인계해주었다. 암내는 상수에게 당한 다음 112신고를 하여 상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상처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상수는 기가 막혔다. 법을 모르니까 무섭기만 했다.

 

여자는 상해진단서까지 떼어서 정식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리고 상수를 만나주지 않았다. 상수에게는 과거에 싸움사건으로 징역을 1년 6개월 살고 나온 전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찜질방에서 잠을 자다가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여자를 더듬었다는 이유로 성추행범으로 벌금을 500만원 낸 사실도 있었다.

 

이 사건도 사실은 상수가 찜질방에 술을 마시고 잠을 자러 갔다가, 먼저 매트리스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데, 나중에 바로 옆자리에 어떤 젊은 여자가 남자 애인과 둘이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런데 상수는 깊은 잠이 들어서 옆에 있는 여자가 다른 여자인 줄 모르고, 꿈결에 오른 손으로 여자의 비밀스러운 부위를 만지고, 오른 팔을 여자 가슴 위로 올려놓았다.

 

여자도 술을 마시고 와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기 애인이 만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가 나중에 계속 만지니까 깨어서 보니 나이 든 남자라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여자는 옆에서 자고 있는 남자 친구를 조용히 깨워서 이런 불법적인 신체접촉을 알렸다. 남자 친구가 증거를 잡기 위해서 비스듬하게 일어나서 상수가 또 공격을 해오는 상황을 포착하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수는 코를 세게 골면서 또 여자의 비밀 부위를 더듬었다. 남자는 사진을 찍고 상수를 깨웠다. 상수는 잠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큰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잠결에 한 일이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남자 친구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찜질방 주인에게 신고를 했고, 곧 이어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입건되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변명을 해도 상수는 성추행혐의를 인정받았다. 일부러 자는 척하면서 여자의 몸을 만졌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억울했지만 상수는 벌금 500만원을 확정받았고, 그 과정에서 여자 피해자에게 합의금으로 또 500만원을 주었다.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자다가 봉변을 당한 것인데, 그 후부터는 상수는 찜질방에 가서 눕더라도 젊은 여자가 오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바꾸었다. 상수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옆으로 가거나, 다른 남자 옆으로 옮기면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또한 찜질방에서도 혹시나 싶어서 아주 두꺼운 겨울장갑을 끼고 잠을 잤다. 그리고 다리는 수건으로 묶어서 여자 위에 다리를 걸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했다.

 

그 후 상수는 길을 가다가 어떤 여자 대학생을 스쳐지나갔는데, 그 여학생이 상수가 자신의 히프를 더듬었다고 신고를 해서 재판까지 받고 무죄판결을 받은 전력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경찰에서는 죄질도 불량하고, 성범죄의 습성이 있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다. 상수는 암내와 합의를 하려고 가운데 사람을 넣어서 대화를 하려고 했다. 여자는 절대로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돈을 준다고 해도 필요 없다고 했다.

 

상수로서는 도대체 그 여자가 왜 이런 식으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 절대로 만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을 테니 돈 500만원을 받고 합의해 달라.”고 말해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는 병원에 가서 진단서도 끊었는데, 목에 키스마크한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팔과 다리에 멍이 들은 사진도 첨부했다.

 

강간상해죄는 무시무시한 범죄인데, 이렇게 상수를 고소한 것이었다. 상수는 죽고 싶었다. 만일 이 문제로 징역을 갈 것 같으면, 차라리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120. 여자 승무원을 좋아하다가 딸 이름을 잘못 짓게 되다

 

미경 오빠 말을 들어보니 정말 황당했다. 선상수는 10개월 전에 친구 소개로 방암내를 만났다. 상수는 55살이었는데, 부인이 죽고, 외롭게 혼자 살면서 매일 저녁 술이나 먹고 건강관리를 잘 못하고 있으니까 불쌍해서 고등학교 동창이 여자를 소개해주었다.

 

58살로 20년 전에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아들 한명이 있었는데, 전 남편에게 보내고 전혀 왕래가 없다고 했다. 몸매가 예쁘고 동안이어서 40살도 안 되어보였다. 다만,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암내 부모가 딸의 이름을 ‘암내’로 지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암내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항공사 스튜어디스를 좋아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어떤 스튜어디스든지 간에 넋이 빠지도록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스튜어디스를 보면, 일부러 자꾸 승무원 호출벨을 눌렀다. 물을 달라고 하든가, 머리가 깨질 것 같으니 비상약을 달라고 했다. 기내식을 먹을 때에는 1회용 고추장을 여러 번 달라고 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고, 또 화장실 문 여는 방법을 모른다고 내숭을 떨면서 승무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안에서 인터폰으로 승무원을 호출해서 혼자 힘으로는 문을 열지 못하니 밖에서 열어달라고 했다.

 

자꾸 귀찮게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여자 승무원이 오지 않고, 남자 승무원이 왔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승무원을 부르지 않았다. 꼭 복도석에 앉아 여승무원이 복도를 다닐 때에는 엉덩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오른쪽 다리를 복도쪽으로 내놓아서 여승무원 다리에 닿게 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암내 아버지는 꼭 한국 여승무원에게만 눈독들 들였지, 외국 항공사 여승무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게 다행이었다. 만일 외국 항공사 소속 여승무원에게 그런 식으로 추태를 부렸다가는 성추행범으로 교도소에서 냄새 나는 미국 음식만 먹다가 체중이 절반으로 줄었을 것이었다.

 

이런 화려한 과거 때문에 암내 아버지는 첫딸을 낳았을 때, 이름을 스튜디어스로 지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그건 너무 부르기가 어렵고 쓰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영어로 호적에 올리려고 했더니 구청에서 영어로는 못 올린다고 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승무원을 생각해냈다. ‘방승무원’으로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약간 이상하다는 긴급여론조사결과가 나와서 아버지는 고민 고민하다가 마침내 가장 근접한 ‘안내’로 결정했다.

 

‘방안내’로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안’자를 ‘암’자로 신고했다. 그래서 ‘방암내’로 되었던 것이다. 방암내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어서 이름을 얻었는데 학교 다닐 때에는 친구들이 자꾸 ‘암내야’ 또는 ‘암내’라고 부르면 주변 사람들이 무슨 이상한 냄새가 나는 여자인줄 오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발정기인 ‘암컷 개’인줄 착각을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내’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내’라고 하면, 암내를 부르는지, 자기 자신을 말하는지 헷갈려서 많은 사연이 생겨났다. 가령 학교에서 도난사고가 났는데, ‘내가 도둑질했다’고 하면 말하는 학생이 자신이 직접 도둑질을 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내(암내의 약칭으로서 방암내를 가르킴)가 도둑질을 한 범인이다”라는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또는 “내가 남자친구와 잠을 잤다”고 하면 대화를 하는 여학생이 잠을 잔 것인지, 내(방암내)가 잔 것인지 모호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방암내도 나중에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학원에도 다녔다.

 

아버지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국내 굴지의 항공사에 취업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름 때문에 그랬는지 암내는 스튜어디스가 되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이 승무원 되는 것을 보고 죽으면 원이 없다고 늘 말을 하였지만, 암내는 아버지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했다.

 

그래서 암내는 그 후 절대로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뿐 아니라 여자 승무원들이 눈에 띄는 공항 부근에도 일체 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암내는 외국 여행을 가지 못하고, 다만 제주도에는 배를 타고 몇 번 다녀왔다.

 

 


작은 운명 (69)

명훈 아빠는 변호사와 함께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검사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변호사와 며칠 동안 수사에 대비해서 준비를 했다. 검사가 물을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사항을 변호사가 미리 만들어 명훈 아빠에게 묻고 이에 대해 답변 연습을 했다.

변호사는 법률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고, 더군다나 검사생활까지 했기 때문에 익숙한 일이지만, 명훈 아빠는 사업만 하고, 술이나 먹고, 여자들과 연애만 했기 때문에 막상 수사에 대비해서 변호사와 예행연습을 하려고 하니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을 물을지도 몰랐고, 핵심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들어도 잊어버리고 횡설수설하게 되었다. ‘누가 투서를 한 걸까?’ 압수수색을 당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업계의 관행이었다. 주변에 비슷한 경쟁업체도 다 그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모든 법을 다 지키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철저하게 법을 지키고, 모범적으로 하게 되면, 곧 바로 다른 경쟁업체에 밀려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때로는 편법으로,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훈 아빠는 다른 사람들 다 그러는데, 왜 하필 나만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원망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는 없었다. 그리고 꼭 명훈 아빠만 당하는 것인지도 불명확했다.

“지금부터 조사를 하겠습니다. 편의상 사장님을 피의자로 호칭하겠습니다. 피의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진술을 거부하겠습니까? 그리고 변호사가 조사에 참여할 것입니까?”

갑자기 피의자라는 호칭이 나오자, 어리둥절했다. TV에서 ‘피고인(被告人)’이라는 용어는 많이 들어봤다. 피고인이란 재판받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사관은 갑자기 피고인이라고 하지 않고, 피의자(被疑者)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의미를 물어볼 상황도 아니었고, 이유도 없었다.

일상의 대화에서 이렇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보통은 상대방을 ‘선생님’ ‘아주머니’ 이렇게 부르지, 전혀 관계 없는 피의자라고 이름은 빼고 부른다는 것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진술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온 변호사님이 참여할 것입니다.”
“피의자는 명태주식회사 대표이사에게 하청을 주고, 나중에 리베이트로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있지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리베이트를 받을 사실이 없습니다.”

“명태주식회사로부터 피의자 개인계좌로 2억원이 들어온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그건 제가 일시 자금이 필요해서 빌렸다가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돌려 준 증거는 있는가요?”

“현금으로 돌려주었기 때문에 증거는 없습니다.”
“명태 대표이사는 리베이트로 2억원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돌려받은 사실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는 돌려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명훈 아빠는 명태주식회사 사장이 이미 다 진술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왜 조사받은 사실을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리베이트로 주었다고 자백을 했을까? 그럴 사람이 아닌데...’ 명훈 아빠는 명태 사장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회사 이름이 ‘명태’라 재수가 없어 그렇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왜 하필이면 명태라고 지었을까? 차라리 ‘동태’라고 하지? ‘동태’면 살아있는 기분인데, ‘명태’는 꼭 죽어있는 것같았다.


작은 운명 (68)

지현은 명자와 이런 저런 상의를 했다. 뱃속에 아이는 하루 하루 자라는데, 빨리 결론을 내려야했다. 명훈 엄마 태도를 봐서 절대로 결혼은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명훈 역시 지현을 싫어하고, 애만 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두 사람 머리로서는 도저히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현은 명자에게 정숙이를 만나서 같이 상의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아무래도 돈 많은 정숙이 발도 넓고, 아는 사람도 있을 것 같으니, 두 사람은 정숙의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정숙을 만났다. 정자는 은영의 설명을 다 듣더니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아주 좋은 기회야. 무조건 아이를 낳는다고 통보하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마. 전에 이런 비슷한 케이스를 봤어. 어떤 돈 있는 집안에서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어. 그 아들이 술집에 나가는 여자와 연애를 했는데 임신을 한 거야. 남자는 전혀 몰랐어. 그런 사실을.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계속 만났어. 병원에서 임신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 남자의 아이라는 확신이 들자, 남자에게 말했어.”

“아이를 낳아서 혼자 키우고, DNA검사를 해서 가정법원에 친부확인소송을 걸어서 판결을 받은 다음, 당신의 가족증명부에 자식으로 올려놓고, 양육비를 19세 될 때까지 법으로 받아내고, 당신이 죽으면 자식으로서 재산상속을 받게 하겠어요.”

“당신이 결혼하면 아이와 함께 축하하러 가겠어요.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에게 물어볼 거예요. 왜 우리 아이 아빠와 결혼하느냐고 젊잖게 물어볼 거예요.”

“이렇게 말했더니, 그 남자는 자신의 부모에게 전해주었어. 그랬더니 남자 부모가 큰일 났거든. 아들이 좋은 집에 장가가기도 어렵게 되었고, 양육비를 매달 70만원만 잡아도 19년 동안 물어줘야지, 죽으면 상속권도 있다고 하지, 총각이 호적에 자식이 올라가지. 인생 조지는 거잖아? 그래서 남자 집에서 3억 원을 주고 합의를 했대. 그러자 여자는 아이를 낙태하고 그 돈 가지고 치킨집을 차려서 지금 잘 살고 있대.”

“그러니까 지현이 너도 정말 좋은 기회를 잡은 거야. 네가 그동안 착하게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열심히 천사처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 같다.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고 3억 원 받고 합의해줘. 그 사람들 돈이 많다면 즉시 합의할 거야. 요새 3억원은 돈도 아니야. 벤츠 한 대 값밖에 안 돼. 강남에서는 시원찮은 아파트 전세도 못얻는 돈이야. 말로 하지 고 내용증명으로 보내. 놀래서 즉시 합의할 거야. 돈 많이 받으면 우리 셋이서 술 같이 먹자. 옷도 한 벌씩 사줘. 알았지!”

“글세 그게 통할까?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고 공갈죄로 고소하지 않을까? 집 앞에 가서 일인시위를 할까? 아빠 사무실에 찾아가서 피켓 들고 서 있을가? 엄마 약국에 가서 드러누울까?”
“아냐 일단 기다려 봐. 곧 무슨 연락이 올 거야. 그 남자 집안이 막 사는 사람들이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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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7)

명훈이 피해자의 여자 친구가 불러주는대로 사실확인서를 다썼더니, 이름 위에 손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인주는 부근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주 작은 것을 사왔다. 명훈은 그런 인주통은 처음 봤다. 너무 작고 예뻤다. 지장을 찍기 전에 망설였다. 겁이 났다.

“삽입은 하지 않았고, 사정도 하지 않았는데요? 고쳐주세요.”
“이 미친 X이 어디 대고 주둥이를 놀려? 내 친구가 당했다고 말하는 거 다 들었잖아? 귀가 처먹었나? 거짓말을 아주 밥먹듯이 하는구나. 그럼 경찰에 가서 정식으로 조사를 받아볼까? 조용히 합의하는 것이 좋지 않아? 안 그래 이 나쁜 XX야!”

여자 친구는 정말 경찰 출신이거나 남편이 현직 경찰관인 것이 틀림없었다. 여자 친구는 증거로 필요하니 명훈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서 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명훈의 승낙이나 동의도 받기 전에 그냥 명훈의 머리를 잡고 한줌 뽑았다. 명훈은 눈물이 났다. 무지하게 아팠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냥 맞아는 봤지만, 머리카락을 강제로 뽑혀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세상에 남자 머리도 뽑는 사람이 있구나!’

여자 친구는 그것을 비닐봉지에 조심스럽게 담았다. 명훈은 TV에서 강간범의 수사에 있어 DNA검사를 한다고 하면서 남자의 정액이나 침 같은 체액, 또는 머리카락, 음모 등을 채취한다는 것을 들어는 보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아줌마가 무슨 권한으로 갑자기 강제수사를 하는지 전혀 영문을 몰랐다.

그래도 만일 명훈이 그 여자의 횡포에 이의를 달면 당장 파출소로 가자고 할 판이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당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명훈은 아직도 술이 완전히 깬 상태는 아니었다.

마치 꿈 속에서 어떤 여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명훈의 옆에는 순한 양도 몇 마리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낯선 뱀 두 마리가 슬슬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명훈의 아래 물건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명훈은 소스라쳤다. 다시 눈을 떠보니 그 여자 두 사람이 명훈을 불쌍하다는 듯이 비웃고 있었다.

명훈은 지루하고 지겨웠다. 다 끝난 줄 알고 일어나려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명훈에 대한 상세한 인적 사항, 개인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백지에 적고 있었다. 녹음까지 하고 있었다.

생년월일, 주소, 부모 성명, 나이, 직업, 재산 정도, 성병 유무, 자동차 종류, 연식, 여자 친구 관계, 학교 이름, 과 명칭 전화 번호 등등 수없이 많은 사항을 물었다.

명훈이 대답을 하지 않거나 엉터리로 답변을 하면 여자 친구는 곧 바로 112신고를 할 태세였다. 명훈은 완전히 겁을 먹고 강제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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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6)

여자는 명훈을 믿고 모텔방 의자에 앉았다. 10분쯤 지나 여자가 나가겠다고 하자. 명훈은 갑자기 여자를 붙잡고 침대에 눕혔다. 여자는 안 된다면서 뿌리쳤다. 명훈은 술에 많이 취한 상태에서 흥분했기 때문에 그냥 여자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그 위로 올라갔다. 여자는 싫다면서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성병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고 했다. 여자는 에이즈라고 소리치면서 울었다.

명훈은 피임기구를 쓰면 된다고 하면서도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그냥 여자에게 시도했다. 여자가 강하게 저항하자 술에 만취된 명훈은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사태는 여기에서 끝났다.

여자는 명훈에게 욕을 하면서 명훈의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일어섰다. 명훈은 아직도 술이 덜 깨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술에 취해서 그랬으니 용서해줘요.”
“안 돼, 용서 못해. 신고할 거야.”

여자는 자신의 일행이었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했다. 삼십분 후에 여자 친구가 왔다. 그 친구는 명훈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 그 친구의 파트너와 둘이서 클럽 부근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라는 전화를 받고, 곧 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때까지 명훈은 술에 취해 누워있었다.

“아니 이 미친 X 봤나? 너 유부녀를 강간하면 얼마나 징역을 살려고 그랬어? 너 몇 살이나 먹었니? 이 아줌마는 43살이야.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새파란 X애가 자식이 둘이나 있는 엄마뻘 되는 아줌마를 강간했어? 너는 콩밥을 많이 먹고 그 안에서 썩어야 해. 자 빨리 경찰서로 가자. 요 앞에 오면서 보니까 파출소가 있더라.”

명훈은 그때서야 사태의 중대성, 심각성을 인식했다. 옷을 주워입고 물을 마셨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아주머니, 잘못했어요. 죽을 죄를 졌어요. 하지만 안 했잖아요? 하려다가 못한 거예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피해자의 친구는 매우 노련했다. 어느 맥주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백지를 얻어다가 사실확인서를 쓰도록 했다.

그리고 핸폰으로 대화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마치 여자 변호사거나 경찰관 같았다. 최소한 법대를 다니고 고시공부를 몇 년은 한 것처럼 법을 많이 알고 있었고, 매우 논리적이었다. 명훈은 평소 자신의 엄마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지금 이 여자에 비하면 십분의 일에도 못미치는 것이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은 많고, 똑똑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자 이렇게 써. 내가 부르는 대로. 알았지. 이 강간범아!”
“예. 쓸게요. 근데 저는 강간범은 아니잖아요? 정말 하지 않았다니까요? 그냥 하려고 하다가 술에 취해 못한 거예요. 아줌마,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들어가지 않은 건 맞잖아요? 아줌마가 그거 끼고 하라고 해서 그거 찾다가 그만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강간범이예요?”

그러자 여자 친구가 갑자기 명훈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 일어나서 멱살을 잡고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피해자인 여자는 옆에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명훈을 노려보는 눈이 꼭 피를 찾는 이리나 늑대 같았다. 무서웠다. 사나운 독사눈이었다.

명훈은 지금까지 살면서 수많은 여자를 만나서 성관계도 하고 데이트도 하고, 술도 마셔봤지만 이렇게 무서운 눈빛에 쏘여본 적은 없었다. 그 눈빛에 오래 쏘이면 심한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명훈의 경험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났을 때 여자의 눈빛은 대체로 부드러웠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이렇게 살의(殺意)를 느끼지는 못했다. 몇 대 맞고 나서 파출소 가자는 말에 놀란 명훈은 그 여자가 하자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사실확인서, 본인은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어디 소재 모텔 몇 호실에서 피해자 OOO을 강제로 억압하여 침대에 눕히고, 피해자의 치마를 걷어 올린 상태에서 팬티를 내린 다음 본인의 OO를 피해자의 OO에 삽입하여 강제로 성교를 하였고, 사정까지 하였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범죄행위로 인한 모든 민사 형사책임을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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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5)

세 사람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현과 명자는 불편한 자리였지만, 워낙 고급스러운 일식당에서 최고급 사시미와 정종을 먹고 좋은 대접을 받으니 기분은 좋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런 고급 사시미를 먹어볼까? 그리고 지현은 잘 먹어야 명훈씨 2세를 튼튼하게 낳을 것이라고 믿었다.

“차 안 가지고 왔지요? 내 차로 모시도록 할 게요. 나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여기 좀 더 있다가 갈 게요.”
“아니예요. 저희들끼리 가겠습니다.”
“아니, 타세요. 나는 어차피 여기 더 있어야 하니까. 우리 기사가 모셔다 드리도록 할 게요.”

곧 벤츠 차량이 왔고, 은영과 명자는 거의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차에 올라탔다. 벤츠 600이었다. 길거리에서도 잘 못보던 차였다. 사실 벤츠 600은 비싸서 웬만한 사람은 사지 못한다.

너무 강하게 권하니까 얼떨결에 떠밀려 들아가다시피 타게 되었다. 그리고 차는 출발했고, 명훈 엄마는 손을 흔들고 다시 일식당으로 들어갔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오늘 만나서 지현의 입장을 명확하게 표시했으니, 알아서 할 거라고 믿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양복을 깔끔하게 입은 기사가 물었다.
“봉천동으로 가주세요. 고맙습니다.”

기사는 친절하게 뒤를 돌아다보며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순간 지현은 기절할 뻔했다. 그 기사는 바로 그 남자였다. 친구 정숙의 애인이었던 순철이었다. 지현을 강간하고 끝내 거짓말로 화간이라고 우기던 사람, 그 인간성 나쁜 인간이었다. 그런데 오래 된 일이라 그런지 순철은 지현을 정확하게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현은 그 남자를 대번 알아보았다. 그는 체격이 좋고 얼굴도 잘 생겼다. 하지만 지현을 강간하고 무책임하게 거짓말하고 달아난 악마였다. 순간적으로 지현은 얼굴이 흥분해서 빨갛게 되었다. 옆에 있는 명자는 영문도 모르고, 술기운이 올라와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현은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아냐 저 X이 나를 알아보면 큰일인데, 오래 돼서 나를 못알아보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 나도 모른 척하고 내려야겠다.’
지현은 명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 이름을 부르면 안 돼. 내가 아는 사람이야. 조용히 있다가 빨리 내리자.”

봉천동에서 내리면서 지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둘러 내렸다. 기사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썼다. 지현은 내려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명자에게도 더 이상 그 기사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편 명훈은 요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못 생겨서 밥맛인 지현과 당시 이상한 상황에서 몇 번 데리고 놀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스타일을 완전히 구겨버렸다.’

그리고 새로 만나 마음에 드는 돈 많은 집 아이인 제니도 이번에 지현이가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요새는 전화도 받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고 있는데, 명훈이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예전처럼 가까운 친구들과 이태원 클럽에 가서 놀고, 자유분방한 여자들과 노는 것밖에 할 일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남자 친구 형석과 강남에 있는 클럽에 갔다. 웨이터의 소개로 두 여자를 합석해서 꼬셨다. 그 중 한 여자가 마음에 드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일행 네 사람은 밖으로 나와 2차로 술을 마셨다.

모두 다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가 되면서 헤어져야 하는데, 명훈은 파트너에게 자신은 술에 취해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겠으니, 클럽에 붙어있는 호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수고비로 10만원을 주었다.

여자 입장에서는 테이블에서 워낙 명훈과 남자 친구가 돈이 많고 능력 있다고 허풍을 떨었기 때문에 잘 대해주는 게 좋다는 생각에서 호텔까지 데려다 주려고 따라갔다. 호텔 방에 들어가자 명훈은 조금만 이야기하다가 가라고 애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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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62)

낙태에 대해서는 명훈 엄마 역시 약사로서 반대하는 강한 개인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명훈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특히 약학을 공부했고 약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한번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 워낙 피임을 잘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낙태도 하지 않았다.

명훈 엄마도 결혼 전에 현재의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 사실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약대생으로서 누구보다도 피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절대로 임신의 위험성 있는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 결혼한 후에도 명훈을 낳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다음에도 아주 철저하게 피임을 했다. 그래서 한번도 실패를 하지 않는 성공률 100%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당하자 갑자기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도대체 여자가 어리슥한 남자와 몇 번 잠자리를 하고, 아이를 임신해서 평생 팔자를 고치겠다는 나쁜 의도에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지금까지 낙태를 허용하자는 사람들은 인간의 어리석은 임신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구원자의 목소리였다. 반면에 낙태를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현실을 너무 모르고,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는 무책임하고 공허한 메아리였다.

명훈 엄마는 자신의 아들 문제가 되자, 원치 않는 임신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만일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 때문에 겪을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명훈 아빠가 바람을 피면서 다른 여자들로 하여금 낙태를 하도록 한 경험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훈 엄마는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다른 여자의 문제이지,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정자가 못된 여자의 난자와 만나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냥 지저분하고 용납 못할 저급한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일과 남의 일을 엄청나게 다른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바로 이런 이중잣대로부터 비롯된다.

며칠 후 명훈 엄마는 다시 지현을 만나기로 했다. 이번에는 고급 일식당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지현은 친구 정숙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명품 옷과 명품 백, 귀걸이 등을 빌렸다. 정숙은 지현의 고등학교 친구로서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잘 살고 있었다. 지현과 정숙은 고등학교 때부터 둘도 없는 친한 사이였다. 서로의 모든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지현이 처음 남자를 알게 된 것도 정숙의 애인에게 당한 것이었다. 정숙은 자신의 남자 친구로부터 지현이 강간 당한 사실을 알고, 자신의 애인인 남자를 지현과 같이 만나서 소주병으로 머리를 쳐서 상해를 입히기도 한 의리파였다.

지현이 정숙의 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숙은 지현을 의심했다. 그것은 정숙의 남자 친구가 지현을 강간해놓고, 정숙에게는 지현이 자신을 유혹해서 하는 수 없이 넘어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숙이 지현으로부터 상세한 사건 경위를 들어보니, 사실은 그 남자가 지현을 강압적으로 강간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 사람이 만나 정숙으로부터 소주병으로 머리를 세게 맞아 피까지 흘리면서도 그 남자 친구는 지현을 강강한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만일 강간을 했으면, 왜 지현에게 상처가 없었느냐? 그리고 여자가 끝까지 반항하면 어떻게 남자가 삽입을 할 수 있느냐? 지현이 동의를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나를 믿어달라. 나는 정숙이만 사랑한다.’고 강변했다.

정숙은 그 남자가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정숙은 그 남자와 관계를 끊었다. 지현과 정숙은 그러한 일이 있고 나서 더 친해졌다. 두 여자가 한 남자와 비록 따로 따로 있었던 일이고, 서로의 의사연락이나 인식은 없었지만, 동일한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상호관련성을 가지게 하고, 무엇인가 동질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는지 모른다.

지현에 대한 것은, 그것이 강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른다. 아무튼 정숙은 자신이 남자 친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지현의 처녀성을 상실시킨 데 대해 그때는 무척 미안해했다.

언젠가는 정숙은 지현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그 남자가 여자를 잘 다루고 테크닉도 좋았는데, 너는 어땠어? 좋았어?” “무슨 미친 소리야? 나는 강제로 당했던 거고,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무엇이 무엇이었는지도 전혀 기억 못해. 그 남자는 동물 같은 X이야.”

그 일 이후 물론 정숙은 그 남자 친구와 헤어졌고,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날 때는 절대로 지현을 비롯해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여자가 애인을 만날 때, 친한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는 것은 잘못하면 자신의 애인을 여자 친구에게 빼앗길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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