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감리계약의 내용과 이행
가을사랑
Ⅰ. 서 설
건축사의 기본 업무는 설계와 감리다. 설계감리는 건축사가 건축법, 건축사법, 건설기술관리법, 주택건설촉진법 등의 관계 법령에 따라 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업무에 해당한다. 건축물에 대한 설계와 감리는 공공의 복지 및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법에서 엄격한 자격제를 실시하고,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라 하더라도 실제 설계와 감리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법령을 준수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건축사가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사전에 의뢰인과 계약을 체결한 후 그와 같은 계약의 이행으로서 건축물에 대한 설계와 감리를 하게 된다. 물론 건축사가 무상으로 설계와 감리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건축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설계감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축사는 의뢰인과 계약을 체결하고 권리의무관계를 명확하게 한 다음 본격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한편 설계감리를 의뢰하는 상대방은 설계감리용역을 제공받는 것을 대가로 설계감리비를 지급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역시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라 설계감리가 제대로 수행되었는지를 판단하고 대금을 지급하게 된다.
그런데 실무를 보면, 건축사는 비법률가로서 설계감리계약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준설계감리계약서를 사용하며 계약 체결시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고 서명날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니면 계약서를 단순한 형식적인 자료로 생각하고 서로 믿고 나중에 적당히 변경할 수 있는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의뢰인은 건축사가 아닌 설계감리에 대해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므로 계약의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뢰인 역시 설계감리계약서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대충 보고 도장을 찍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당사자간의 계약은 권리와 의무를 방생시키는 매우 중요한 법률행위이므로 체결 단계에서 쌍방의 의사표시가 명확하게 기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성립한 계약은 신의와 성실의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이행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계약의 진행과정이나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 당사자간에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설계와 감리의 정의 및 내용, 설계감리계약의 의의와 법적 성질, 구체적인 내용, 건축사 및 상대방이 계약에 따라 가지는 권리와 의무, 계약위반에 대한 책임, 계약의 해제 및 해지, 설계감리계약을 둘러싼 분쟁 사례를 순차로 살펴보기로 한다.
Ⅱ. 설계와 감리의 정의 및 내용
건축사라 함은, 국토교통부장관이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으로서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 등 건축사법 제19조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건축사업이라 함은 다른 사람의 의뢰에 따라 일정한 보수를 받고 제19조에 따른 업무를 업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건축사는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건축사법 제19조 제1항). 건축사는 건축사법 제19조 제1항의 업무 외에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① 건축물의 조사 또는 감정에 관한 사항, ② 건축법 제27조에 따른 건축물에 대한 현장조사, 검사 및 확인에 관한 사항, ③ 건축법 제35조에 따른 건축물의 유지·관리 및 건설산업기본법 제2조제8호에 따른 건설사업관리에 관한 사항, ④ 건축법 제75조에 따른 특별건축구역의 건축물에 대한 모니터링 및 보고서 작성 등에 관한 사항, ⑤ 건축사법 또는 건축법과 건축사법 또는 건축법에 따른 명령이나 기준 등에서 건축사의 업무로 규정한 사항, ⑥ 그 밖에 다른 법령에서 건축사의 업무로 규정한 사항을 수행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건축사의 자격과 그 업무에 관한 사항은 건축사법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법에 의해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는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업무만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건축사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관계 법령을 확인하고, 그 법령에 따라 철저하게 준수사항을 이행하여야 한다.
설계라 함은 자기 책임 아래(보조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를 포함한다) 건축물의 건축, 대수선, 용도변경, 리모델링, 건축설비의 설치 또는 공작물의 축조를 위한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
① 건축물, 건축설비, 공작물 및 공간환경을 조사하고 건축 등을 기획하는 행위, ② 도면, 구조계획서, 공사 설계설명서, 그 밖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공사에 필요한 서류(설계도서)라 한다)를 작성하는 행위, ③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를 해설·조언하는 행위 등이다.
공사감리라 함은 자기 책임 아래(보조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를 포함한다) 건축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건축물, 건축설비 또는 공작물이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고 품질관리, 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감독하는 행위를 말한다.
Ⅲ. 설계감리계약의 의의
계약이라 함은 사법상의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당사자의 합의를 뜻한다. 계약은 당사자의 청약에 따른 상대방의 승낙으로 성립한다. 청약이라 함은 일방이 타방에게 일정한 내용의 계약을 체결할 것을 제의하는 상대방 있는 의사표시를 말한다. 청약 자체는 법률행위는 아니다. 이에 대해 상대방이 승낙을 하여야 법률행위로서의 계약이 성립한다.
승낙이라 함은 청약에 대응해서 계약을 성립시킬 목적으로 청약자에 대해 하는 청약수령자의 의사표시를 말한다.
계약의 일반적 효력요건으로서 당사자가 행위능력이 있어야 하고, 계약의 목적이 확정성 가능성 적법성 사회적 타당성을 가져야 하며, 의사표시에서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고 의사표시에 하자가 없어야 한다.
성립된 계약을 기초로 당사자간에 채권 채무를 인정하는 것, 다시 말하면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계약의 주된 효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설계감리계약이라 함은 건축사가 의뢰인과 설계와 감리에 관한 책임을 부담하기로 하고, 의뢰인은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말한다.
설계감리계약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계약에 해당하는 법률행위이다. 따라서 계약으로서의 성립요건과 효력발생요건을 구비하고 있어야 효력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설계감리계약을 해석하는 경우에는 언제나 계약의 일반적인 해석방법에 따라야 하고, 그 이외에 설계감리계약의 특별한 성격에 따른 해석이 추가되어야 한다.
쌍무계약이라 함은 계약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는 채무를 부담하는 계약을 말한다. 설계감리계약은 쌍무계약에 해당하기 때문에, 쌍방 당사자의 채무는 상호 의존적 관계에 있고, 그 성립과 이행, 존속에서 상호 견련성을 가진다. 이러한 쌍무계약적 성격은 민법에서 동시이행의 항변권과 위험부담으로 표현되고 있다. 계약의 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는 출연을 하는 계약이 유상계약이다.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성립하는 계약이 낙성계약이다.
Ⅳ. 설계감리계약의 법적 성질
설계감리계약은 도급계약인가, 위임계약인가? 이에 대하여는 견해가 대립될 수 있다. 설계감리계약을 도급계약으로 보면, 설계감리자는 수급인으로서 무과실의 담보책임을 지게 된다.
이러한 설계감리자의 담보책임의 존속기간은 1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건축주는 완성된 목적물의 하자로 인하여 도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도 설계감리계약을 해제할 수 없게 된다.
설계계약은 설계도서의 완성이라는 건축사가 부담하는 의무를 전제로 도급인인 건축주가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도급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도급계약과 마찬가지로 설계계약에서는 도급인과 수급인이 있다.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는 용역업무를 건축주가 도급인의 입장에서 건축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건축사는 수급인의 입장에서 책임지고 약정된 내용대로 설계라는 용역을 제공하는 것이다.
건축사가 제공하는 용역의 내용은 다른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 정하는 것과 다르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하여 그 결과물인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만 하면 되는 근로계약과 다르고, 일의 완성이라는 목적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위임계약과 다르다는 것이 도급계약설의 논거다.
반면에 설계감리계약을 위임계약으로 해석하게 되면, 설계감리자는 수임인으로서의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로 건축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설계자의 손해배상책임은 5년의 상사시효에 해당한다.
설계감리계약의 법적 성질에 대해서 대법원은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1999년 11월 3일, 서울고등법원은 설계계약을 위임계약이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설계자가 설계계약을 해제한 경우에 건축주가 그 설계도서에 따라 건축공사를 계속한 사안에서 설계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 사안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설계계약의 법적 성질에 관하여 위임계약이라는 전제하에 해제의 소급효를 제한하였다.
한편 대법원은 위 서울고등법원의 결정에 대한 상고심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설계계약 해제의 소급효를 제한하는 결론에는 동의하였지만, 설계계약을 위임계약이라고 해석한 서울고등법원의 의견에 대해서는 아무런 당부 판단을 하지 않았다(대법원 2000. 6. 13. 자 결정).
감리계약은 설계계약과는 약간 다르다. 감리계약은 도급계약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대법원은 도급계약이 아닌 준위임계약이라고 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도급계약보다는 위임계약에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즉, 감리계약은 감리대상이 된 공사의 완성 여부, 진척 정도와는 독립된 별도의 용역을 제공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위임계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감리계약을 위임계약으로 볼 때 수임인인 건축사는 위임인인 건축주로부터 위탁받은 사무를 처리할 의무를 진다. 이 경우 건축사는 위임의 본지(本旨)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도급과 달리 위임에 있어서는 일의 완성이 아니라, 그냥 맡겨진 사무를 처리하면 된다.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대충하거나 불성실하게 해서는 안 되고,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 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반드시 일을 완성한 것도 아니고, 위임인의 목적이나 의도에 부합하는 성과가 나지 않아도 일을 맡은 수임인은 자신이 할 도리만 다했으면 법적 책임은 없다.
Ⅴ. 설계감리계약을 체결할 때 유의사항
설계감리계약서에 상세하게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계약의 이행방법도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다. 당사자는 이러한 계약의 효력을 존중해야 한다. 계약의 문언을 잘 읽어 오해하지 않도록 하고, 계약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신의 의무사항을 철저하게 이행하여야 한다.
건축사에게 설계감리계약은 나침반, 항해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계약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늘 계약서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건축사는 의뢰인과 설계계약, 감리계약을 체결한다. 의뢰인(Client)은 전문직업인과 거래를 할 때 상당히 긴장하지만 대부분은 전문가를 믿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약정서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할 때 그냥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중에 이런 계약서나 약정서의 효력이 종종 다투어지는 것이다. 계약서에 따라 자신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하고,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주된 계약상의 의무다.
의뢰인은 이에 대한 대가로 설계비를 지급하여야 한다. 건축사가 고심 끝에 작성한 설계도서를 기초로 건축주는 행정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시공자는 이러한 설계도서에 따라 건축행위를 하게 된다.
시공자는 오직 설계도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시공하여야 한다. 설계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설계자에게 설계변경을 요청하고, 행정청으로부터 설계변경허가를 받은 다음 시공을 계속해야 한다.
건축사가 설계도서를 작성하면서 실수를 해서 제대로 공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든가, 구조계산을 잘못해서 건축물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경우, 설계도서 작성기한을 어긴 경우, 사용승인을 받지 못하게 된 경우 등에는 건축사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된다.
감리계약도 마찬가지다. 계약서 기재 내용과 법령의 규정이 종합적으로 적용되어 감리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감리를 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러한 계약상의 감리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책임을 지게 된다.
Ⅵ. 설계감리계약상의 권리와 의무
Ⅶ. 계약불이행책임의 내용과 범위
설계감리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기본적으로 건축사가 계약대로 설계감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와 의뢰인이 설계감리비용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더 나아가 중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설계감리계약을 중단하거나 해제 또는 해지하는 경우도 있다.
계약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설계감리계약의 내용에 좋은 의무를 이해하지 않는 경우가 계약불이행에 해당한다.
계약불이행이라 함은 주관적으로 계약당사자가 자신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데에 고의 또는 과실, 즉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고, 객관적으로 그 의무불이행이 위법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고의란 행위의 결과 및 위법성을 의욕하는 것이고, 과실은 행위자가 그에게 요구되는 주의를 태만히 함으로써 행위의 결과를 인식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계약에 따른 채무불이행의 유형에는 이행지체, 이행불능, 불완전이행이 있다.
이행지체라 함은 채무가 이행기에 있고 또 그 이행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채무자가 그의 귀책사유로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행지체의 경우에는 채권자는 채무자에 대해 급부에 대한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채권자는 채무자의 이행이 지체로 인해 입은 손해에 대해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행불능이라 함은 채권이 성립한 후에 채무자의 귀책사유로 인하여 그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이행불능의 경우에는 그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행지체나 이행불능의 경우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계약해제가 되면 채권자는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Ⅷ. 설계감리계약의 해제와 해지
설계계약은 체결할 때 적법하고 공정하여야 하며, 당사자가 진정한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계약 체결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 계약은 취소될 수 있다.
설계계약이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는 아예 무효로 간주된다. 효력이 애당초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법의 정신은 아파트신축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른바 알박기를 하여 시행사로부터 거액을 뜯어내는 토지매매계약에 있어서 무효로 판정하는데서 나타난다.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중대한 착오가 있었던 경우에는 사후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런데 설계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이를 건축사가 무효 또는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건축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설계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가 중요한 법적 사유다.
계약이 체결된 후 당사자 한쪽이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다른 계약 당사자는 그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계약 체결 후 이행지체 또는 이행불능의 상태가 되면 이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존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반대 당사자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바로 계약해제제도이다.
설계계약이나 감리계약에 있어서도 이러한 계약의 해제와 해지는 명백하게 인정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건축사가 해제할 수 있는지 그 요건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한 해제의 효과는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건축주와 같은 의뢰인이 설계감리계약을 해제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오직 건축사의 입장에서만 검토한다. 물론 건축주도 당연히 해제사유가 있으면 설계감리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계약의 해제와 해지는 모두 계약에 특유한 제도이다. 두 제도 모두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을 당사자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해소시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러나 해제는 일시적 계약에 대해서 인정되고, 해지는 계속적 계약에 대해 인정되는 점에서 구별된다.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지의 권리가 있는 때에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이러한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가 있다.
이러한 계약의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소급하여 그 효력을 잃는다. 따라서 당사자는 계약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며, 이행하지 않는 채무는 더 이상 이행할 필요가 없고, 이미 이행된 급부는 서로 원상회복을 하여야 한다. 계약해제에 따른 손해배상은 채무불이행에 기초한 것, 따라서 이행이익을 지향한다는 것이 통설이고 판례다.
설계계약의 경우를 보자. 설계계약을 체결했는데, 건축주가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할 능력이 없어진 때에는 건축사는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일반 표준계약서에는 건축사가 설계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설계계약에서 법정해제권 이외에 별도로 약정해제권을 부여한 것이다. 특별해제권은 건축주가 동의하여 설계계약서가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다. 건축사가 건축주를 상대로 설계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하여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사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건축주가 건축사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그 대가의 지불을 지연시키는 경우다. 건축주가 약정한 보수를 제때에 지급하지 않으면 일정한 기간을 주고 이행을 최고(催告)한 다음 그래도 불이행하면 그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② 건축주가 계약 당시 제시한 설계요구조건을 현저하게 변경하여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명백할 때다. 여기에서는 ‘현저하게 변경’하여야 한다는 매우 추상적인 기준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③ 건축주사 건축사의 승낙 없이 계약상의 권리 또는 의무를 양도한 경우다. 설계계약상의 설계도서에 관한 협의권한이나 설계도서사용권 등을 임의로 양도한 경우를 말한다. 또는 보수대금지급의무를 제3자에게 임의로 인수시킨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④ 건축주가 건축사의 업무수행상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아니하여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곤란하게 된 경우다. 실제로는 이런 경우는 거의 상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⑤ 건축사의 사망 실종 질병 기타 사유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한 경우다. 기타 사유라 함은 그야말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만든 제반 사유를 말한다. 어떠한 경우이든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이상 건축사는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설계계약은 도급계약에 해당하므로 민법상 특별한 해제사유의 적용을 받게 된다. 즉 수급인인 건축사가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인 건축주는 손해를 배상하고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는 민법 673조의 규정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건축주가 계약을 해제하는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완성한 때에는 아직 인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해제는 인정되지 않는다.
도급에서 수급인이 부담하는 목적물의 인도의무는 목적물을 완성하여야 할 의무에 종속된 것에 지나지 않고, 또 이 경우에는 도급인에게 해제를 인정할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이미 지출한 비용과 일을 완성하였더라면 얻었을 이익이 포함된다. 도급인이 파산한 때에도 수급인에게는 해제권이 부여된다.
Ⅴ. 설계계약해제를 하는 방법
건축사가 어떠한 해제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계약해제를 하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설명하면 일단 자신이 해제하려고하는 이유를 쓰고, 그에 대한 증거자료를 첨부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설계계약을 해제할 것이니 그에 대한 정리를 어떤 방법으로 하자는 취지를 써서 내용증명방식으로 건축주 등 상대방에게 우편으로 송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약해제는 건축주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설계계약의 체결이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건축주와 건축사 두 사람의 합치된 의사표시에 의해 성립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제에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없다. 상대방의 동의(同意)를 받아서 하는 설계계약의 해제는 물론 가능하나 이것은 합의해제라고 하는 이른바 해제계약에 의해 하는 것이다.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제의 권리가 있는 때에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이러한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
계약해제 사유가 발생하였더라도 이러한 해제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는 해제권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 따라서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부담하면서 채무자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해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써 한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해제의 의사표시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이지 못한다.
Ⅵ. 계약해제의 효과
그러면 계약해제의 효과는 무엇인가?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의무가 있다. 당사자 서로의 원상회복의무에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며 계약의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계약의 해제는 계약관계를 해소하여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그 효력을 상실하고 그에 따라 채권채무도 소멸하는 결과, 아직 이행하지 않은 채무는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미 이행한 채무는 계약체결전의 상태로 회복시켜야 한다.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 당사자는 계약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며, 이행하지 않은 채무는 이행할 필요가 없고, 이미 이행된 급부는 서로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Ⅸ. 구체적인 분쟁 사례
1. 설계우수현상광고에 당선된 건축사의 권리
건축주가 건축설계에 관한 우수현상광고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에 건축사가 그에 응해 최우수자로 당선되었다. 이때 건축주는 반드시 최우수자로 당선된 건축사와 설계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에 대해서는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있다. 대법원 2002. 1. 25. 선고 99다63169 판결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건축설계 우수현상광고에서 당선자가 보수로서 받는 '기본 및 실시설계권'이라 함은 당선자가 광고자에게 우수작으로 판정된 계획설계에 기초하여 기본 및 실시설계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당선자는 계약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뿐, 우수현상광고에 당선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광고를 낸 건축주와 당선자인 건축사 사이에 설계계약이 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수현상광고를 낸 광고자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당선자의 설계계약체결청구에 응할 의무를 지게 되며, 당선자 이외의 제3자와 설계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한 당사자 모두 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광고자가 일반 거래실정이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보여지는 사항을 계약내용으로 주장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사를 추진할 수 없는 등으로 인하여 계약이 체결되지 못하였다면 당선자는 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광고자는 설계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을 계약에 포함시키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를 들어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설계계약체결이 사실상 무산되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때 광고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선자에게 손해배상을 하여야 할 책임을 진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2001. 6. 15. 선고 99다40418 판결에서, 공사금액이 수백억이고 공사기간도 14개월이나 되는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건설하도급공사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사금액 외에 구체적인 공사시행 방법과 준비, 공사비 지급방법 등과 관련된 제반 조건 등 그 부분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으리라고 보이는 중요한 사항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져야 비로소 그 합의에 구속되겠다는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하도급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교섭당사자가 견적서, 이행각서, 하도급보증서 등의 서류를 제출하였다는 것만으로는 하도급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이 판결에서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였다.
광고자가 최우수당선자에 대하여 설계계약을 체결할 것을 거부하는 행위는 계약상의 채무불이행책임뿐만 아니라, 위 대법원판결에 따라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손해배상책임도 질 가능성이 있다.
어느 일방이 교섭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 내지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였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의 체결을 거부하여 손해를 입혔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계약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대법원 2013.6.13. 선고 2010다65757 판결).
2. 설계감리비지급청구권의 소멸시효
건축사가 의뢰인에게 받게 되는 설계감리비청구는 3년이라는 단기소멸시효에 걸리게 되어 있다(민법 제163조 제3호 참조).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채무불이행시로부터 진행한다.
우수현상광고의 광고자로서 당선자에게 일정한 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계약의 종국적인 체결에 이르지 않게 되어 상대방이 그러한 계약체결의무의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경우 그 손해배상청구권은 계약이 체결되었을 경우에 취득하게 될 계약상의 이행청구권과 실질적이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취득하게 될 이행청구권에 적용되는 소멸시효기간에 따른다.
우수현상광고의 당선자가 광고주에 대하여 우수작으로 판정된 계획설계에 기초하여 기본 및 실시설계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 이러한 청구권에 기하여 계약이 체결되었을 경우에 취득하게 될 계약상의 이행청구권은 "설계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으로서 이에 관하여는 민법 제163조 제3호 소정의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므로, 위의 기본 및 실시설계계약의 체결의무의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역시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5. 1. 14. 선고 2002다57119 판결).
Ⅹ. 맺는 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건축사는 설계감리계약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연구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계약을 체결할 때 정확하게 문안을 확인하고 서명날인하여야 한다. 계약이 체결된 다음에는 법적 효력을 이해하고 신의와 성실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이행하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계약을위반하는 경우에는 계약해제를 하고 그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