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86) 주유소 사장의 동네 매복작전
그래서 방송국을 찾아가서 “나는 TV에 출연한 적이 없는데, 왜 내가 나훈아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방영되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원래는 최 사장은 방송국에 항의하러 갈 때, 맨손으로 가서는 별로 항의의 효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동네 이장으로부터 경운기 1대를 빌려서 플랭카드를 붙이고 가려고 했다.
<내가 너훈안데, 어떤 놈이 사칭하냐!!!> <엉터리 방송국 해체하라> <못 살겠다, 갈아보자> <방송사 사장 하야하라> 이렇게 네가지 구호를 쓴 플랭카드를 경운기 앞 뒤, 옆에 붙이고 가려고 준비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걸쳐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경운기를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 막상 하루를 열심히 달려보니, 25킬로미터밖에 못갔다. 그런 속력으로 죽을 힘을 다해서 서울까지 달려가면, 최소한 20일은 걸릴 거리였다.
특히 문경새재고개를 넘다가 경운기가 뒤집어지는 날에는 경운기 수색작업을 하는데 최소한 두달은 걸린다는 전문가 의견이었다.
그리고 반장이 빌려준 경운기는 벌써 30년째 쓰고 있어, 서울까지 갈수는 있어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엔진이 파열될 것이라는 경운기제조회사 상무의 말이었다. 그러면 항의시위를 끝내고 경운기를 화물차에 싣고 와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최 사장은 하루만에 다시 경운기를 돌려서 고향으로 가서 이장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전투복 차림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최 사장은 해병대를 지원했다가 조건이 맞지 않아 못갔다. 대신 공수부대를 들어갔다.
그런데 낙하훈련을 받기 위해 특별훈련을 받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끝내 낙하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수부대에서 퇴교를 당하고, 전방에 있는 수색대 요원으로 끌려가서 많은 고생을 했다. 전방 철책선에서 매복작전에 많이 참여한 경험을 쌓았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제대하고 나서도 한 동안 밤 12시가 되면 마을 입구에 가서 으슥한 곳에 숨어가지고 혹시 괴한이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을 상대로 해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관찰하곤 했다. 최 사장 입장에서는 그러한 남성은 이른바 적이었다.
그리고 피해 여성은 아군이었다. 아군을 지키기 위해, 적의 동향을 살피고, 적이 군사분계선을 침범해서 들어오면 매복해 있다가 즉시 사살하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었다.
최 사장은 한동안 이런 매복작전과 성범죄인수색작전 및 아군여성보호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자원봉사였고, 국가에서 도움을 준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한번은 거꾸로 어떤 나이 먹은 여자가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가 으슥한 곳에 숨어있는 최 사장을 보고, 순간적으로 나이 먹은 여자만 골라서 강간하는 변태성욕자로 오인을 했다. 그래서 그 여자가 까무라칠 정도로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치자, 멀리서 정식으로 순찰을 돌던 해병대전우회 노병 두 사람의 필사적인 추격을 받게 되었다.
최 사장은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갔다. 도망 가다가 동네 사람들이 산돼지를 잡기 위해 파놓은 깊은 함정에 빠졌다. 밤이 어두워서 해병대전우회원들은 최 사장을 끝내 검거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그때 나이 먹은 피해 당할 뻔했던 할머니는, “글세, 한 달 전부터 이상한 젊은 놈이 매일 밤 이 시간이면 으슥한 곳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검은 털모자를 눌러 쓴채, 까만 라이방을 쓰고, 내가 귀가하는 것을 지켜보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서 지나쳤는데, 오늘을 그 놈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는 것 아니겠쑤. 하마터면 오늘 나는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하고, 저승으로 가서 억울한 원혼이되어 이 동네를 10년간 떠돌뻔 했쑤. 지금도 간이 떨려서 이따 집에 가서 잘 때에는 간 위에 벽돌을 두 장 얹어놓고 자야할 것 같아.”
“할머니 어떤 신음소리였나요?”
“글세, 내가 치매가 있어서 똑 같은 소리를 흉내낼 수는 없는데, 아무튼 무서운 신음소리야.”
그때 이상한 큰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매우 기분 나쁜 울음소리였다. 할머니는, “맞아 저 소리야. 그 놈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울부짓던 그 소리야.” “아니, 할머니. 저 소리는 우리 동네에서 매일 우는 큰 새소리예요.”
“그리고 할머니 금년에 춘추가 어떻게 되세요?” “응 아흔 두 살이야.” “아니 그런데 젊은 남자가 할머니를 강간하려고 했을까요? 하하하~” 할머니는 갑자기 화를 냈다.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작년에도 어떤 술 취한 놈이 내 허리를 껴안고 추행을 해서 한동안 허리가 아파서 누워있었어. 그리고 요새는 변태들이 많아서 남자 놈이 어린 여자애들을 좋아하는 변태도 있고, 거꾸로 나 같이 나이는 많지만 여자로서 매력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반변태도 있는 거야. 자네들은 아직 인생을 잘 몰라서 그래! 더 살아 봐. 그러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크게 깨달을 거야.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 없이. 그리고 해병대 갔다온 것 맞아? 옷을 보니까 해병대 옷인데, 내 손자도 해병대 다녀왔어. 그런데 해병대 출신이라면서 둘씩이나 뛰어가더니 그래 반변태 한놈 못잡고 빈손으로 돌아왔어. 우리 손자 같으면 강력범인 체포에 실패하면 책임을 지고 물에 빠져 죽었을 거야. 그런데 자네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오다니, 정말 한심해. 해병은 원래 전통적으로 귀신도 잡는 것이 영원한 해병이야. 자네들 같은 사이비 해병대가 있으니까, 6.25전쟁 때 남한이 북한에게 밀려서 부산까지 내가 피난 같다 온 거야. 아무튼 조금이라도 고생했으니까, 큰 돈은 아니지만, 내 성의니까 받아 둬.”
할머니는 속주머니를 한참 뒤지더니 천원짜리 한 장과 5백원짜리 동전 두 개를 건네주었다. 해병대원은 할머니의 성의니까 하는 수 없이 받았다.
한편 매복작전을 하다가 아군에게 적으로 오인을 받아 도주하다가 멧돼지 함정굴에 떨어진 최 사장은 그 장소가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곳이어서 아무리 고함을 쳐도 소용 없었다. 그래서 그 함정에서 일주일간을 버티다가 어떤 산삼 캐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