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에 의한 방조범
가을사랑
인터넷 포털 사이트 내 오락채널 총괄팀장과 위 오락채널 내 만화사업의 운영 직원에게, 콘텐츠제공업체들이 게재하는 음란만화의 삭제를 요구할 조리상의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던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들에게 음란만화의 삭제를 요구할 조리상 의무가 있다고 하여, 구 전기통신기본법(2001. 1. 16. 법률 제636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8조의2 위반 방조죄의 성립을 긍정하였다(대법원 2006.4.28. 선고 2003도4128 판결, 전기통신기본법위반/ 인정된죄명:전기통신기본법위반방조).
이 사건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유무선 전기통신사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갑 주식회사의 인터넷 포털서비스 사이트 내 오락채널을 총괄하는 팀장 을과, 위 오락채널 내 만화사업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직원 병은 위 사이트를 무료사이트에서 유료사이트로 전환하기 위하여 그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성인만화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유료사이트 전환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영리의 목적으로 성인만화방 등을 비롯한 성인대상 채널을 중점적으로 관리하였다.
갑 주식회사는 콘텐츠 제공업체들과 사이에 위 성인만화방에 게재되는 만화 콘텐츠 이용자들로부터 그 이용료를 받아 그 수익금의 40-50%는 갑 주식회사가, 50-60%는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나누어 갖는 공동사업을 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계약에 따르면, 콘텐츠 제공업체들은 위 성인만화방에 게재될 만화 콘텐츠의 수집, 가공, 개발, 입력, 갱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갑 주식회사는 위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이 만화 콘텐츠에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시스템의 유지 관리 및 운영 업무를 수행하기로 하되, 각자의 분담 업무에 관하여 상호 협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갑 주식회사의 담당직원들인 을과 병은 사전에 콘텐츠 제공업체들과 협의를 함으로써 위 성인만화방에 대체로 어떠한 내용의 콘텐츠가 게재될 것인가를 사전에 예상하였고 그 콘텐츠의 뷰잉(viewing)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는 등 게재의 편의를 적극적으로 도모하였으며, 사후에 콘텐츠의 실제 게재 여부 및 정상 서비스 여부에 관하여 확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화 콘텐츠가 저장된 서버에 대한 시스템상 사용 및 보안권한 설정권을 보유하는 등 일반적 통제권한을 보유하여 콘텐츠의 내용을 실시간에 지속적으로 쉽게 검색·파악할 수 있었고, 이러한 것들이 을과 병의 주요 업무내용이었다.
갑 주식회사는 콘텐츠 제공업체들과 사이에 제공업체들은 콘텐츠에 사회윤리를 침해하는 내용의 정보를 담아서는 안 되며 이러한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약정하였고, 병은 이러한 해지권을 근거로 실제 일부 만화들에 대하여 직접 삭제를 하거나 콘텐츠 제공업체에 요구하여 삭제하게 하였다.
병은 이 사건 만화들 중 일부가 게재된 것을 알았고, 을도 성인만화방에서 어떤 내용의 만화가 게재되어 제공되고 있는지 알았으며 직접 검색을 하여 문제가 되는 만화는 병에게 삭제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하였고, 음란성의 수위를 조절하도록 지시하면서도 이 사건 만화들은 안이하게 생각하여 방치하였다.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갑 주식회사의 담당직원인 을과 병은 콘텐츠 제공업체들이 위 성인만화방에 게재하는 만화 콘텐츠를 관리·감독할 권한과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할 것이고, 따라서 이 사건 음란만화들이 지속적으로 게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이를 게재한 콘텐츠 제공업체들에게 그 삭제를 요구할 조리상의 의무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을과 병에게는 위와 같은 작위의무가 인정되므로 구 전기통신기본법 제48조의2 위반 방조죄에 해당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 형법상 방조행위가 부작위에 의하여도 성립하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또한 형법상 부작위범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에 관하여 대법원은 설시하고 있다.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의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작위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부작위에 의하여도 성립되는 것이다(대법원 1984. 11. 27. 선고 84도1906 판결, 대법원 1995. 9. 29. 선고 95도456 판결 등 참조).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그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면, 작위에 의한 실행행위와 동일하게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작위의무는 법령, 법률행위, 선행행위로 인한 경우는 물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의무가 기대되는 경우에도 인정된다(대법원 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 1997. 3. 14. 선고 96도1639 판결, 2003. 12. 12. 선고 2003도5207 판결, 2005. 7. 22. 선고 2005도3034 판결 등 참조).
한편 법률의 착오에 관한 형법 제16조의 규정 취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형법 제16조에서 “자기가 행한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한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법률의 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범죄가 되는 경우이지만 자기의 특수한 경우에는 법령에 의하여 허용된 행위로서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그릇 인식하고 그와 같이 그릇 인식함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대법원 2006. 1. 13. 선고 2005도8873 판결 등 참조).
이 사건에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이 사건 만화들 중 ‘에로 2000’을 제외한 나머지 만화에 대하여 심의하여 음란성 등을 이유로 청소년유해매체물로 판정하였을 뿐 더 나아가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16조의4 제1항에 따라 시정요구를 하거나 청소년보호법 제8조 제4항에 따라 관계기관에 형사처벌 또는 행정처분을 요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위 위원회들이 시정요구나 형사처벌 등을 요청하지 아니하고 청소년유해매체물로만 판정하였다는 점이 곧 그러한 판정을 받은 만화가 음란하지 아니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의 나이, 학력, 경력, 직업, 지능 정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들의 행위가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