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내역과 증거
가을사랑
이택순 경찰청장이 김승연 회장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교 동문인 한화 측 고위 인사와 보복 폭행 사건과 관련해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문제로 인해 경찰청장에 대한 한화측의 로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공적 사적 대화가 전화로 이루어지고 있다. 전화 또는 이메일 등에 의해 행해지는 의사소통 및 대화는 매우 편리한 반면에 그에 못지 않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말과 행동이 기계에 의해 항상 감시되고 있고, 기록되고 증거를 남기고 있다. 특히 도처에 설치되어 있는 CCTV는 인간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촬영해 보존하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직장에 출근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진이 찍히고 있는가? 대부분의 공공시설을 드나들면서 또 촬영된다. 심지어 몰래카메라에 의해 사생활의 치부가 노출되기도 한다. 모텔에서 불륜의 사랑을 나누던 남녀들의 성행위장면이 몰래카메라에 의해 찍혀 공갈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올려져서 곤혹을 치루기도 하는 세상이다.
전화 또는 휴대전화에 의한 통화내역은 상당 기간 자동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보통 6개월 동안은 통화료부과목적으로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 6개월이 지나면 그때부터 자동적으로 삭제된다. 엄청난 양을 계속 보관할 수도 없고, 보관할 필요성도 적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로 보낸 문자메시지 또는 음성메시지 역시 보존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한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수사기관에서는 이들의 내용을 감청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수사에 있어서 통화사실을 확인하고, 거래내역을 계좌추적에 의해 확인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범죄증거가 포착된다. 공무원 또는 그 가족들의 은행계좌를 압수수색하면 모든 금전거래내역이 확인된다. 연결계좌를 추적하면 공무원과 금전거래를 한 사람들의 계좌까지 확인이 가능하다. 한번 수사를 받아 본 사람들은 그래서 가급적 현금거래를 하고 온라인송금방식을 이용하지 않는다. 은행거래란 그 자체로 완벽한 증거로 남기 때문이다.
전화통화내역을 확인하면 두 사람 사이의 유착관계가 확인된다. 특히 부부 사이에 이혼소송이 시작되면 상대방 배우자의 휴대전화통화내역에 대한 사실조회신청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서 배우자가 다른 이성과의 전화통화사실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이다.
남녀 사이에 밤낮없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전화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이메일을 하고 있었다면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애인 사이로 강하게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신정아 씨 사건에서도 변양균 씨와 주고 받은 이메일이 검찰에 의해 압수되어 두 사람 사이가 부적절한 관계였다고 밝혀진 바 있다. 상상이나 했을까? 두 사람이 은밀히 주고 받은 이메일이 검찰에 의해 언론에 공개될 줄이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세상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아 일단 의심이 들면 요새는 이런 방법으로 부정사실을 확인하려고 한다. 전화를 불법으로 감청하거나, 통화내역을 떼어보거나, 불법녹음을 하기도 한다. 어떤 남편의 경우 부인의 행실이 의심스럽자, 부인의 차안에 녹음기를 설치해 놓았다. 그 녹음기에는 부인이 다른 남자와 대화를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한 것이 녹음이 되었다. 그것이 실제로 차안에서 함께 있으면서 한 대화인지, 아니면 남자는 밖에 있고, 여자가 혼자 차안에서 전화를 한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부인의 부정을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안에서 성행위를 하는 내용도 녹음이 되기도 한다.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다만 녹음의 방식이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어 녹음한 사람도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법원에 제출하기는 곤란한 상황이 된다. 녹음을 하는 당사자 본인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제3자간의 대화를 비밀녹음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인은 남편의 휴대전화와 남편 애인의 휴대전화 사이의 문자메시지를 일일이 포착하여 이혼소송 및 간통고소사건에서 증거로 제출하였다. 그 증거는 결정적인 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애인 사이의 문자메시지는 대개 뜨거운 욕정의 표현이 많고, 서로 간에 육체관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그런 내용이 나타나게 된다. 예컨대, 어제 밤의 일은 너무 좋았다든가, 느낌이 어쨌다든가 하는 식으로 표현된 메시지들이 성교사실을 강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한 증거가 물론 간통사실에 대한 직접증거는 아니지만 간접증거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간통사실은 그 이외에도 주고 받은 편지나, 메모지에의 기재 등에 의해서도 간접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이런 문제의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러다가 나중에 수사를 받거나 문제가 되면 상상치도 못하는 증거로 사용되고,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조심해야 한다. 부정한 일이나 떳떳하지 못한 일은 애당초 하지 말아야 하고, 낮말은 새가 듣고 ,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상기해야 한다. 자신이 무심코 한 대화내용이 녹음이 된 사실을 나중에 알고 그 녹취록을 보면 한심할 때가 많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상대방이 비밀녹음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비즈니스에 관한 대화, 중요한 대화는 그렇다. 그리고 상대방이 비밀녹음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3자가 적법하게 감청을 하거나 불법도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한다.
최근에 간편한 보이스펜, 휴대전화 자체의 녹음기능 강화, 전화대화녹음기계장치발달 등으로 개인들이 비밀녹음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녹음된 대화를 풀어서 녹취록으로 만들어주는 속기사들의 활동영역도 많이 늘어났다. 한 시간 정도 녹음분량을 녹취록으로 만들어주는데 20만원 정도가 든다.
세상이 무척 어지러워졌다. 선의로 개발되고 있는 과학기술은 이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