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로움


가을사랑



[본문말씀]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7~22)


[해설]


로마서 제4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예를 들고 있다. 우리들의 육신의 조상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로 여기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켜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얻었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게 된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는 인정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오직 율법만은 따르는 사람들은 의롭다 할 수 없는 것이다. 율법만 준수하면 의롭게 된다고 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지는 것이라고 바울은 단정하고 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고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다. 이와 같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일이다.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불법을 사하여 주시고, 죄를 가리우시고 나아가 복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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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믿음


가을사랑


[본문말씀][보[본문말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28~31)


[해설]


성경에는 사람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계명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계명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도 있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러한 율법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율법만 지키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실까? 바울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고 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율법만 지켰다고 해서 사람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율법적인 행위 이외에 더 나아가 믿음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에 의지하는 것이 우리들이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모르더라도, 성경을 보지 않고 있어도, 기본적인 양심과 도덕율을 가지고 있다. 그 정도의 양심은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도덕율은 사회에서 법이나 제도로 규율하거나 교육을 통해 습득하게 된다.


그러나 엄격한 종교적인 율법 아래에서 그 율법에 매여 생활하고 율법을 준수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노예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타의에 의해 강요되는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의 내심 속에 있는 사악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고, 기회만 있으면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의롭게 되는 영광을 얻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율법도 굳게 세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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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준수

 

[본문말씀]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롬 2:12~16)


[해설]

로마서 제2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신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그것이 인간이 타고난 원죄이다. 원죄를 타고 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누구나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동물과 달리 사람들은 뱀이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선과 악을 구별할 능력이 있고, 더 나아가 악을 고의적으로 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동물과 달리 더 많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사람들은 대규모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였고, 욕정을 일으켜 강간을 하였으며, 재산을 탐내 남을 사기 쳐서 망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악한 인간에 대해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옳은 길로 인도하고 회개하도록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과 오래 참으심을 거꾸로 업신여기고 자기 마음대로 방탕한 생황을 하며 회개할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심판이 나타날 진노의 날에 자신이 받을 하나님의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젠가 심판의 날에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바로 이 점을 알리고 있다.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거스리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신다.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환난과 고통을 주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준다.


율법을 모르고 범죄를 저지르면 그 사람은 망하게 되어 있다. 그 사람은 율법을 모르고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율법과 상관없이 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율법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때 영원한 생명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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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지 않은 일

 

가을사랑

 

 

[본문말씀]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해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서기 57년에 3개월에 걸쳐 쓴 서신이다. 헬라어로 된 원제목,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프로스 로마이우스)에서 유래되어 로마서로 불리워진다. 로마서는 모두 1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서 제1장에서는 바울의 인사말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인사말에서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되었다. 인사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로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인간의 타락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생각이 허망해졌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고 우둔하게 되었다. 우상을 섬기고, 정욕을 참지 못하고 몸을 더럽히고 있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님 보다 인간이 만든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각종 죄악과 잘못을 범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날에도 수 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있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어떠한 죄악에 빠져 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인간의 주관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가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한다. 그러면 수 많은 죄악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알면서 지은 죄, 모르면서 지은 죄, 우리가 만들었던 우상들, 교만함, 탐욕 들이 그동안 우리로 하여금 어두움에 빠지게 하였고,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시야를 가렸던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곧 바로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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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깨달아라


가을사랑


[본문말씀]


그들이 이렇게 견해가 서로 엇갈린 채로 흩어질 때에 바울은 이런 말을 한 마디 하였다.


“성령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러분의 조상에게 하신 말씀은 적절합니다. 곧 이런 말씀입니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구원의 소식이 이방 사람에게 전파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그것을 듣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꼭 두 해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행28:25~31)


[해설] 


신약의 사도행전은 모두 2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8장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다. 사도행전은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성장과 발전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사역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전도를 했는지를 기재해 놓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인 기록을 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고, 예수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전도를 했다는 사실을 읽게 되면 감동을 받게 된다. 살아있는 예수님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장면들이다.


바울이 탄 배는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몰타섬에 도달하게 된다. 배는 다 부서져 버렸고, 사람들은 널빤지나 부서진 배 조각을 타고 뭍으로 나가 구조되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는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타이타닉 호는 현대적인 통신과 기계장치를 갖춘 배였지만, 바울이 탔던 배는 2000여년전 아주 구식의 배였다. 그런 배가 난파되어 몰타섬에 닿게 되었고, 그들은 기적처럼 살아남게 되었다.


그 섬에서 바울 일행은 3개월 정도를 지내고 다시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갔다. 마침내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서 신도들의 환영을 받았다. 로마에서 바울은 전도를 계속하였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엄숙하게 증언하였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관하여 전도하였다. 바울은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였다. 바울이 인용한 구절은 신약 이사야서 제6장 9절과 10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이사야서 6:9~10)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기는 하지만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존재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인간의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모르는 사람은 교만하거나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신다. 이런 곳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깨닫고 세상을 배우면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힘든 풍랑을 스스로 찾아 떠나는 것과 같다.


그 후 바울은 로마에서 이방인들을 위해 예수님을 전도했다. 이년 동안 바울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 버리고 셋방에서 전도사역을 담당했다. 바울이 좋은 집에서 살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좋은 집에서 편하게 호강을 하면서 살았다면 오히려 사역의 의미가 반감되지 않았을까 싶다.


바울은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고 사도행전은 끝맺음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미완성 부분은 그 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다른 사도들의 사역에 관한 역사로 채워져야 할 여백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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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고 안심하라


가을사랑



[본문말씀]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0~26)


[해설]


바울 일행은 이달리야로 가기로 하고, 알렉산드리아 배를 탔다.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러, 행선하기가 위태롭게 되었는데, 바울은 이때 이번 행선이 화물과 배뿐 아니라 배에 탄 사람들의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고 예언했다.

 

바울은 선지자였다. 그래서 그는 앞날을 내다볼 수 있는 식견이 있었다.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지혜가 있었다. 그는 이달리야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가 도중에 풍랑을 만나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백부장인 율리오는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과 선주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행선하였다. 그러다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는 배의 기구를 모두 던져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어떤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적인 판단에만 의존해서 어떤 중요한 일을 하다가는 얼마 안 있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게 된다.  


바울의 충고를 듣지 않고 무리한 항해를 시도했던 사람들은 얼마 안 있어 커다란 풍랑에 직면하게 된다. 며칠 동안 큰 풍랑에 휩쓸린 상태에서 배에 탄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바울이 배에 탄 사람들에게 말했던 내용이다.


“안심하라. 너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을 것이다.”바울은 하나님의 사자가 하는 말을 들은 대로 전해 주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와 같은 어려운 역경에 처하는 일을 겪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해와 별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끝났다고 비관하게 된다.


인간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지고,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곧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고민을 하고 불안해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인생을 끝내야 하는가? 여기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간절히 기도한다. 열심히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움을 청한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 함으로써 구원을 받으려고 애쓴다. 연약한 인간이 그를 창조하시고 그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불쌍한 인간을 고난에서 구출해 주시고, 그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어둠의 세력인 사단의 장난을 뿌리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마귀와 악마를 멀리 쫓아버리신다.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말씀을 해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우리는 역경에 빠졌을 때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응낙을 받게 되면 담대해질 수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약속을 받고, 담대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바로 이것이다. 안심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자신의 소망대로 모든 것이 될 것을 굳게 믿고, 그럼으로써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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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에서 빛으로


가을사랑


[본문말씀]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이니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로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하더이다(행 26:14~18)


[해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 서서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하면서 한 말이다. 바울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헤롯 아그립바 2세는 당시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이자 사법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대제사장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은 종교문제에 대해서 총독에 대한 자문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이 처음에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예수교의 성도들을 탄압하는 일을 하였으나,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됨으로써 회심하여 개종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본 일과 장차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날 일에 바울로 하여금 사환과 증인을 삼으로 함이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예수님이 바울을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예수님을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시려고 했던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으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하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게 하고, 사단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구원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저지른 원죄를 타고 났기 때문에, 항상 밝은 곳에서만 머물지 못하는 속성이 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하여 죄악에 빠뜨리고, 어둠의 세력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문제를 가져온다. 그래서 지구상에는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고, 배고품과 질병, 증오와 범죄가 떠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어두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밝은 빛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다. 마귀 사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자신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설명하였다. 바울의 변론을 들은 왕과 총독은 바울에게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고 하였다. 결국 바울은 이 재판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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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상소


[본문말씀]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사흘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줄곧 졸랐다. 그들은 그에게 제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길에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바울을 죽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말과 자기도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한 다음에, 그러나 만일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여러분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를 고발하시오라고 말하였다(행 25:1~5)


[해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을 쓴 누가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누가는 바울의 동료였다. 사도행전은 서기 85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 제 25장은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재판을 받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가이사랴에는 로마 총독 벨릭스가 서기 52년부터 60년까지 근무를 했고, 그를 이어서 베스도가 부임하여 총독으로 서기 60년부터 62년까지 근무하였다. 바울에 대한 재판은 이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


전임 총독이었던 벨릭스는 바울을 2년 동안이나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바울은 서기 58년부터 60년까지 2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벨릭스 총독이 떠나고 그 후임으로 베스도 총독이 온 다음, 베스도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바울이 황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기 때문에, 바울을 황제 법정에서 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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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과 악인의 부활

 

 

가을사랑

 

 

[성경본문]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

 

[해설]

 

- 바울은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사도행전 24장은 이와 같이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재판받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을 고소한 사람은 대제사장 아니니아였다. 아나니아는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를 데리고 벨릭스 총독에게 와서 바울을 고소했다.

 

변사 더둘로는 바울이 유대인들을 소요케 하였고, 성전을 더럽게 한 나사렛 이단의 괴수요 염병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더들로의 주장에 유대인들은 모두 맞다고 지지를 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예수교를 좇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다 믿으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가졌고, 의인의 부활을 믿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해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이 없도록 살아야 한다. 물론 그런 생활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인간은 원죄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육신의 정욕과 물질적인 욕망에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쉴 새 없이 새로운 우상이 나타난다. 그 우상에 정신을 팔리게 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새로운 우상에게서 멀어지는 삶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다. 예수님이 장사한 지 사흘만에 다시 사신 것처럼 부활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면 크리스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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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과 바리새인

 

가을사랑

 

 

[본문]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행 23:1)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8)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해설]

 

- 사도 바울은 3년에 걸친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위험하다고 만류했으나 바울은 이를 듣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예루살렘에 들어가 전도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성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대의 천부장이 이를 알고 달려가서 바울을 구출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들이 유대 공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유대 공회를 산헤드린이라고 부른다.

 

바울이 살고 있던 시기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1세기 지난 때였는데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파괴한 이단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구주로 인정하는 바울을 탄압했던 것이다.

 

예루살렘의 유대 공회에 들어가 예수님을 전도하려던 바울이 체포된 후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 바울은 헬라 말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론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시에는 여러 가지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도 로마 시민이었으므로 이를 알게 된 천부장은 바울의 신병을 보호한 상태에서 총독 벨릭스에게 보냈다.

 

바울의 말을 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분쟁이 생겼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산헤드린이라는 유대 공회에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 함께 있었다. 사두개인은 부활이나 천사나 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파괴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부활이나 천사나 영의 존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자신은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며,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 때문에 자신이 심문을 받고 있다고 변론했을 때 바리새인들은 바울을 옹호하면서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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