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사람을 피하라


가을사랑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셨습니다.  처음에는 빛을 창조하신 다음, 빛에서 어두움을 떼어내셨습니다. 빛은 낮이라고 하고, 어두움은 밤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빛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이 항상 뒤따라 있게 됩니다. 아침이 지나면 저녁이 오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계속해서 존재합니다. 어두움은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요?


어두움은 마귀와 사탄, 시기와 질투, 좌절과 절망으로 나타납니다. 각종 범죄와 거짓말, 속임수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어두움과 어둠의 세력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의 세력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 생명과 신체가 위험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은 겉으로 보면 평탄하고 안전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위험한 길로 들어서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겨울에 눈이 쌓인 등산을 갔다가 자칫 잘못하면 눈 속에 빠져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공장에서 화재가 나 많은 사람이 사망하기도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고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길에서 택시로 부녀자를 납치하여 강간하고 물건을 빼앗은 다음 살해하여 강에 던져버립니다.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거액의 보험에 가입한 다음 부모를 살해합니다. 애인이 변심했다고 공기총으로 쏴 죽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현실입니까? 그뿐 아닙니다. 평생 모은 돈을 가까운 친척에게 맡겼다가 사기를 당해 거지가 됩니다. 진실한 사랑인 줄 알고 몸을 섞었는데 알고 보니 꽃뱀과 제비족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하고 온갖 헌신을 다했는데 배우자는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배신을 합니다.


집을 팔아 아들을 대학을 보냈더니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한 다음 부모를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뼈가 빠지라 고생을 해서 회사를 키워놓았더니 사장이 갑자기 필요 없다고 해고를 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은 애써 이런 불행한 일, 나쁜 일, 억울한 일에 대해 외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는 별로 해당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들은 정말 재수 없는 사람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태평하게 살아갑니다. 그냥 신문이나 TV에서 보고 가십거리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날씨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갑자기 암에 걸릴 수 있듯이 이런 사회적 암현상은 우리에게 언제나 닥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가 암을 사전에 예방하려고 노력하듯이 세상의 악한 일, 잘못된 일에 대해 사전에 그 실상을 알고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을 당해 고통 받고 신음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평생 나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욕심만 채우고, 동물적인 자세로 살아갑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며 남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전혀 없습니다. 세상을 비뚤게 보며 살아갑니다.


의리도 없고 신의로 없습니다. 남을 이용하고 그때그때 배신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습니다.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시편 11:2)"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을 나누어 놓은 것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악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들은 환경에 따라 더욱 번창하고 활동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도 안중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충고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가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지 않습니다. 사형제도가 폐지되거나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법현실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여건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배신한 이후 인간은 타락했습니다. 가인은 마침내 아벨을 살인하기까지 합니다. 그 후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각종 음란을 마음껏 하고, 도둑질, 거짓말, 불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시편 12:2)"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 모르는 혼돈 속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은 좋은 지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물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하에 하나님께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고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을 무시하고 멸시하며 학대했습니다.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못하거나 약하면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


이러한 인간의 현실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실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그때그때 징계를 내리기도 하고, 인간을 벌하기도 했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동산에서 추방하고, 바벨탑을 무너뜨려 의사소통이 되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세상 마귀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범죄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데살로니가후서 3:1~3)" 


우리는 세상의 악에서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악에서 우리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악을 판별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람을 잘 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잘못 본 죄는 무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무엇을 잘못했을까요? 오직 한 사람을 잘못 본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잘못된 일이고,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사람을 정확하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판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래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던 선악과의 비밀이었습니다. 선악과는 그래서 에덴의 동산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실과는 인간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만은 절대로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실과였습니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이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선과 악은 하나님께서 직접 구별하시기로 했던 것이며. 인간은 오직 하나님이 정해 놓은 대로 선만을 행하고 악은 알 필요도 없고 악을 행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고 제멋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의 구별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선과 악의 구별이 명백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그때그때 인간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의해 정해질 수 있다는 불합리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과 도덕의 실종, 윤리의식의 마비를 초래하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은 그래서 나쁜 일, 악한 일을 하면서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자의적인 기준으로 자신이 하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합리화될 수 있고 스스로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범죄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고 변명을 하려고 애씁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자신은 그것을 필요한 악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한 약속을 상황이 달라지면 거침없이 바꾸어 버립니다. 선거공약은 무용지물이 되고,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은퇴선언은 아무 의미도 없어집니다. 고위 공직자들이 검찰에 출석할 때에는 결백을 주장하다가 48시간 조사를 받고 나오면 뇌물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고개를 떨굽니다. 부부간에도 애정의 신뢰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기사건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남이야 죽든 말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입니다. 재벌들은 한 푼이라도 더 자식들에게 상속을 해서 영원히 이 땅에서 잘 먹고 편하게 살도록 해주기 위해 편법증여를 하고, 기업체의 CEO들은 분식회계를 하고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빼돌려 놓음으로써 회사는 망해도 자신의 가족들은 평생 잘 살게 만듭니다. 그 대신 공적자금은 맥없이 날라 가고 평생 고생한 직원이나 근로자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땅투기 주식투기나 일삼으면서 더 큰 복을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렇게 쉽게 번 돈은 결국 그 땅을 팔아 손해를 보거나 주식시장에서 깡통을 찬 사람들의 돈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사악하고 나쁜 사람들을 만나면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사람들을 피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정말 누가 나쁜 사람인지 눈을 똑바로 뜨고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을 피할 수 있도록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건져 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시편 7: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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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마음

 

가을사랑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와는 전혀 다릅니다.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몸은 건강한지, 튼튼한지, 힘이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병원에 가면 청진기를 대고, 혈액검사도 하고, 심장검사도 합니다.

 

X-Ray를 찍어보기도 하고, MRI 촬영도 해봅니다. 조직검사도 해봅니다. 그러면 대개 결과가 나오고 육체의 질병도 확인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처방도 나옵니다. 수술을 하거나 암세포를 제거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 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정신의학적으로 정신상태를 진단한다고 해도 정확한 진단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육체는 정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는 정신의 노예입니다. 육체는 정신이 명령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육체를 끌고 다닙니다. 산으로 가고 싶으면 산으로 끌고가고, 바다로 가고 싶으면 바다로 끌고갑니다.

 

술집으로 끌고 가고, 도서관으로 끌고갑니다. 정치판으로 끌고가기도 하고, 노름판으로 끌고가기도 합니다. 창녀와 몸을 섞게도 만들고, 교회로 데리고 나가기도 합니다. 정신이 잘못하면 육체는 아주 추하게 되고 고생을 하게 됩니다. 정신이 육체를 잘못 콘트롤하면 육체는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법을 위반하여 감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을 보면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그래서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는 말이 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일은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합니다. 마음을 크게 먹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좁은 마음으로는 편협한 사고와 행동을 가져오게 되며 대인관계도 원만치 못하게 되고, 세상을 비뚤게 보게 됩니다. 매사에 불평이나 하고, 불만을 표출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조직에서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성간에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주관만 강해서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항상 얼굴은 찌푸리고 있고, 인상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만 나쁘게 합니다.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하면 듣는 사람은 두번 다시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음의 크기는 본인이 결정합니다. 얼마나 스케일이 큰 사람인지는 육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체구는 작아도 마음이 큰 사람이 있고, 체격은 큰데 마음은 밴댕이 속처럼 좁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급적 마음의 크기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아파트 평수는 몇십평이 되도록 해놓고 마음 평수는 한평도 못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동차는 배기량이 큰데 가슴의 배기량은 100CC도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이아반지는 몇 캐롯이나 되는데 가슴 속에는 동반지 하나가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으면 불쌍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넓게 하고 가슴을 활짝 열고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전서 6:11~13)."

 

바울의 권면처럼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마음을 넓힌다는 것은, 우선 가슴 속에 이해심을 가득 채운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마음이 넓어집니다.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기심에 가득 차있고,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욕망과 정욕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붙잡고 이루고 해소시킬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능력이 있어 그것을 모두 다 채운다고 해도 남는 것은 허망함과 추악함, 야비함, 저속함 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젊었을 때 잘 나가고 돈을 많이 벌고, 잘 놀았다고 해도 얼굴에는 기름때만 흐르고 지극히 이기적으로 살다가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몇십억원의 유산을 남겨주면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순간부터 상속재산을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서로 원수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못마땅해서 죽기 전에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시키면 그 재산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다 횡령을 하고 없애 버립니다.

 

좋은 곳에 쓰라고 한 유언의 취지는 얼마 안가서 몰각되어 버리고 맙니다. 죽은 다음 묘비명을 그럴듯하게 써놓아봤자 시간이 가면 비석도 풍상에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넓은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적은 돈이라도 남에게 베풀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그때그때 블로그에 적어 놓으면 그 양은 엄청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남의 잘못을 신랄하게 따지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아주 날카롭게 비판하는 비평가들을 보면 대체로 자신의 내면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생 남의 잘못만 찾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하는 기술이 탁월하게 향상되어 있는 사람은 옳은 사람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우리는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 하노라(고린도전서 2:7)"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선 2:10~11).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모르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러한 삶은 동물과 다를 바 없고, 사단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났고 가진 것이 많아도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을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합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4~7)"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가슴 속에 품은 채 살아가십시요.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물질만능의 풍조 아래서 극심한 생존경쟁을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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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

 

가을사랑

 

 

사람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냥 태어난 대로 살면 되지 또 무엇이 필요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질문보다는 보다 합리적인 측면에서 올바른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육체를 받아가지고 태어난다. 한 평생 건강한 육체, 질병없는 육체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육체는 우리의 삶의 기본적인 도구이며 수단이다. 어쩌면 삶 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일 수도 있다.

 

육체가 병들거나 약해지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삶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건강이며 육체인 사실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몸만 건강하고 힘이 넘친다고 해서 밀림 속의 타잔처럼 살아갈 수만은 없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육체만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하다. 육체는 그 효용에 있어 한계가 있고, 나이가 들면 어차피 병약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다. 정신이 중요하다. 정신이 병들면 육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정신병은 그래서 무섭다. 정신이 잘못되면 스스로 불속에도 뛰어 들어가게 된다. 육체의 병은 수술을 통해 고칠 수 있지만, 정신의 병은 현대의학에서도 아직은 불치의 병에 속한다.

 

동물은 정신병이 거의 없다. 광견병이 있지만,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대개의 동물들은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사람만이 고등동물이며 만물이 영장이기 때문에 고도의 정신체계를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하며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정신쳬계가 고장이 나거나 이상하게 될 소지가 많은 것이다. 건전한 정신, 건강한 정신은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본받은 영을 가지고 있다. 그 영은 인간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이 고장나면 영의 세계에서 추방되기 때문이다. 악에 빠지지 않고 사탄과 마귀가 지배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투쟁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영이 작동을 하지 않으면 그 인간은 죽은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영은 절대로 소멸하지 않는다. 비록 육신이 죽어도 영은 살아서 움직인다. 그 영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다. 영의 세계는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4차원적인 영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우매함을 드러낼 뿐이다.

 

어린 아이의 눈에는 단순한 일차원적인 세계밖에 보이지 않지만, 나이가 들면 적어도 3차원의 세계까지는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적으로 눈이 떠지면, 영안이 생기면 그 사람은 3차원을 넘어서 4차원의 세계까지 들어가 볼 수 있고, 예견할 수 있으며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종교란 이러한 4차원의 세계를 논하고 있는 곳이다.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서 또 다른 무엇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믿음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반인들과 다른 선지자들이 이미 체험했고, 그 체험을 전해주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이다.

 

이와 같이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은 우리 삶의 근본을 형성하고 있는 3대 요소다. 문제는 이와 같은 fundermental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3대 구성요소로 형성된 구체적인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개별적으로 주어진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영혼이 어떻게 움직이고 살아가며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전혀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 사람의 의지와 노력, 믿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진다. 영혼은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 영혼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 영혼이 타락하지 않고, 영혼답게 사는 것이다. 그 결과는 나중에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기독교의 원리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공명정대하게 엄격한 심판을 하신다. 그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다. 그 법이 유일하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의 법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영적 세계에서 적용되는 법만이 유일한 기준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이르기 전까지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충분한 배려를 하신다. 그래서 영혼이 지켜야 할 법을 주셨다.

 

그것이 율법이다. 모세를 통해 인간이 지켜야 할,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고 영혼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십계명을 주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십계명을 시내산에서 돌판에 새겨진 명령으로 받았다. 그것을 하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서 전해 주었다. 십계명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그런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인간이 그 율법을 다 지킬 수는 없었다. 인간은 원죄를 타고 났을 뿐 아니라 어리석고 사악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고 타락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이땅에 보내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이땅에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다. 인간들은 그때 비로소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 수 있는지, 죄와 악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죄에서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 없이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함받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에 대한 대속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의 죄가 사망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인해 인간은 더 이상 율법에 억매여 죄만 짓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생명의 법을 얻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십자가에 못박고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새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또 다른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혜와 열정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없으면 안 된다. 지혜롭게 하나님의 소명을 다하는 열정이 없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개인에게 부여된 소명을 열심히 다하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혜가 없으면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한다. 자신의 몸도 보호하지 못하고 가정도 유지하지 못한다. 지혜가 없으면 남자는 여자에게 이용당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이용당한다. 지혜가 없으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친구 따라 강남이나 다닌다. 술이나 마시고, 게임이나 하고, 도박이나 한다. 하루 종일 인터넷에 매달려 아주 좁은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운동은 하지 않아 병약해진다.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어 사기나 당한다. 힘들게 벌어서 한방에 날려 버린다. 주식에 날리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꾸어주어 사기를 당한다. 부동산사기에 휘말려들고, 다단계사기에 재산을 날린다. 사이비종교단체에 전 재산을 헌금하고 가족들은 생고생을 시킨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주로 구치소에 가 있거나 병원에 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술에 취해 술집에 있거나 대낮에 모텔에 들어가 음란한 짓이나 한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고 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린도전서 15:32~34)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 지혜는 그런데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쁜 지혜는 없는 것만도 못하다. 지혜는 올바는 지혜, 선한 지혜여야 한다. 그러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으로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지혜는 대개 일을 그르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에게 화를 가져온다. 자신은 약다고 행동하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기를 치는 것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탈세를 하는 것이고 부정부패에 해당한다. 간통에 해당하고 사기에 해당한다.

 

먼저 하나님께 그 나라와 의를 구한 다음 지혜를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린도전서 14:20) 우리는 사도 바울의 말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는 지혜에 대해 설명한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야고보서 3:13~18).

 

야고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혜에는 위로부터 나오는 지혜가 있고 아래로부터 나오는 지혜가 있다. 아래로부터 나오는 지혜는 세상적이며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다. 그런 지혜는 인간의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지혜, 잔머리쓰는 것을 말한다. 시기라 함은, '타인의 우위, 성공, 재산 등과 관련된 불만이나 탐심의 감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런 얕은 지혜는 더욱 악한 일만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로부터 나오는 지혜, 즉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경건한 지혜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우리는 하나님께 보다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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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사랑

 

 

요셉은 형들의 악한 생각으로 어린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으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기막힌 시련을 요셉은 참고 견뎌냈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에게 그런 시련이 없었거나, 그런 시련을 극복하지 못했다면 요셉은 다른 형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시골 양치기로 살았을 것입니다. 

 

우스 땅에 살던 욥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가족들과 평안하게 살다가 갑자기 엄청난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가족을 잃고 재산은 날라가고 몸은 중한 병에 걸려 신음하게 됩니다. 그런 상태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저주를 견디지 못하고 그 시련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러한 시련을 잘 참고 견디어 나중에는 더 커다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개인적인 시련을 극복한 성공사례는 역사상 많이 나타납니다. 신앙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어려운 역경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해서 성공하고 위대한 인물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에 닥쳐오는 시련과 고통!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가시를 안고 살며 숱한 가시에 찔려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본질이라고 생각됩니다.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는 연습을 할 필요도 있습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방에서만 생활하고 있으면 점차 나약해져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가 됩니다.

 

그런 사람은 육체도 병약해지고, 정신도 나약해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젊없을 때 고생은 일부러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고생을 한 사람은 평생동안 그때 쌓은 저력을 가지고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잣집에서 고생을 하지 않고 자란 사람은 나중에 약간만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맙니다.

 

인생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고, 불행이 있습니다. 평안함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양면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위험합니다.

 

먼저 우리는 밝은 면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야 합니다. 맑은 날씨에는 그 날씨에 할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 구름이 끼고 폭우가 쏟아질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은 보기에 따라 좋은 점, 밝은 점, 행복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나쁜 점, 어두운 점, 불행한 점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망원경이나 현미경처럼 크게 보느냐, 작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 필요 이상으로 너무 어두운 측면만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하루도 밝게 살지 못합니다. 사회에 적응도 하지 못합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법과 제도에 얽매여 웃음도 잃어버립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부족한 사람, 죄를 짓고 사는 죄인으로 바라보고, 무시합니다. 더럽다고 상대하지 않고 혼자서 고결한 척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본질을 무시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혼자서 살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계처럼 일만 하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적절한 긴장의 이완과 휴식도 필요하고, 지나친 경쟁속에서 장기간 생활하다 보면 인간성을 상실하고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권태에 빠지거나 삶에 회의를 느끼면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주어진 삶의 환경 가운데 인간적인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긍정적인 인생관을 지녀야 합니다. 현재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이론은 간단하지만, 행동은 복잡합니다.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말과 행동이 달라 위선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정직하게 살기도 힘이 듭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도 말이 쉽지 그런 노력을 꾸준히 하기도 어렵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비슷합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습니다. 각자가 장점이 있는 면이 있고, 약점이 있는 면이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인간미가 부족하고 건강이 좋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성격이 독선적이고 비뚤어졌을 경우도 많습니다.

 

지적 능력은 약간 부족하지만 정적인 면이 강하고 성실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현재 상황을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발전을 생각해야 합니다.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멘토로 삼아야 합니다. 어려운 역경을 헤쳐나간 위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닥쳐오는 시련은 살아있기 때문에 맞게 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게 합니다.

 

시련은 우리를 진주로 만드는 모래입니다. 거친 모래는 값진 진주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주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징계하시더라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주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시련은 우리에게 닥치지 않는다는 믿음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자녀에 대한 징계는 사랑의 매이기 때문에 결코 자녀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징계를 잘 받고 넘어가면 더욱 칭찬을 받고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더 잘해야 하고, 만일 시련을 당하면 그때는 또 시련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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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행을 피하라

 

가을사랑

 

 

가끔은 세상을 살아가다가 멈추어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냥 하루 하루 맹목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달이 잠깐 사이에 지나가고, 어느듯 한 해가 지나가게 된다. 돌이켜보면 2007년도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달력에 2008년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면 새삼스럽게 그런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10년의 세월도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이를 먹는 것이 그렇게 빠르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우주 자연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정말 짧다. 순간적인 찰나에 비유되기도 한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우주 가운데 어디일까?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내 삶은 보람있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걸어왔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란 뚜렷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는 삶이란 시간이 가고 늙게 되면 허무함만 남기게 된다. 인생이 나름대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지 않으면 동물의 생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전도서 기자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도서 3:19~21)"

 

맞는 말이다. 인생에 관한 분명한 주관적인 인식이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자고, 섹스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나중에 돌이켜보면 동물적인 삶과 다를 게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을 많이 벌어 쌓아두고 자신의 이기적인 쾌락만을 즐기고, 남을 전혀 고려치 않는 개인적인 행복이나 추구한 인생은, 원숭이가 좋은 밀림 속에서 맛있는 바나나나 평생 먹고, 암컷 원숭이와 섹스를 많이 하다가 죽는 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원숭이가 힘이 세서 수컷들 중에서 왕노릇을 하고 잘난 척을 하면서 살다 죽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 있어서 목적을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는 동물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주신 영이 있고, 그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살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그 안에 들어와 내재하고 계시는 성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의 몸은 그래서 깨끗하게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음식도 조심해서 먹어야 하고, 질병에 걸리지 않게 건강관리도 잘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도록 하신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육체를 잘 보존해야 한다.

 

몸을 막 굴리고 게으른 상태에서 나쁜 음식이나 많이 먹고, 운동도 하지 않고, 술과 담배나 많이 해서 기운이 없이 만들고, 과도한 섹스나 해서 몸을 망가뜨리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이요,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우리의 마음은 더욱 그렇다. 선한 행동을 해야 하고, 선한 생각을 해야 한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악한 생각, 악한 마음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사탄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허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많은 법을 성경을 통해 주셨다. 그것이 이른바 율법이라고 하는 성경의 법이다. 성경의 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악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성경의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

 

성경의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며 선악과를 우리 마음대로 따먹는 것이다. 선과 악을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된다. 선과 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선악과를 통해 우리에게 선을 분명하게 긋고 계신 것이다.

 

에덴의 동산에서 선악과는 인간이 쳐다보고 그 선악과가 가르키는 대로 선과 악을 구별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 그 자체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준대로 선과 악을 나누어 놓으셨다. 선악과는 그 자체로 존재해야 비로소 기능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선악과를 인간이 따서 먹어버리면 선악과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세콤을 떼어서 부셔버리면 세콤은 단순한 물건에 불과한 것과 같다. 그렇게 되면 선악과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을 행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무시된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선악과를 눈으로 보지 않게 되고, 선과 악의 구별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마음대로 결정하려고 한 것이다. 자신의 판단과 기준으로 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한 죄악이다. 그 자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에게 불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교만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태도를 용서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즉시 아담과 이브를 에덴의 동산에서 동쪽으로 내쫓으셨다. 그리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세기 3:24).

 

아담은 왜 에덴의 동편으로 내쫓겼는가? 왜 서편이 아니고 동편이었을까?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이다. 해를 볼 수 있는 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를 보시고 징계를 하시면서도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내쫓으신 것은 아담으로 하여금 회개하면 다시 에덴의 동산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남겨 놓으셨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내쫓겼으면 아담은 결코 다시 동산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서쪽에서는 해가 짐과 동시에 어둠의 세계가 되며 영원한 어둠 속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인간은 그 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찾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다시 새사람으로 부활하여야 한다. 그래야 예수님처럼 영원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시 부활한 새사람은 과거 율법의 노예로부터 생명의 법을 따르며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을 받아 영적인 존재로 하나님과 다시 만날 수 있다. 멀리 떠났던 탕자가 다시 아버지께 돌아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었버렸어도 아버지의 은혜만은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도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면 세상 모든 것을 잃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다.

 

세상에서 누릴 수 있었던 온갖 부귀영화를 모두 다 잃어버리는 순간에도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깨닫고 마음의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동안의 시간들은 이 순간의 기쁨으로 모두 다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신을 이용하고 빼앗고 농락을 하려고 했지만, 자식에게 아버지와 같은 관계인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죄많은 우리 인간을 자신의 자녀로서 다시 그 따뜻한 품안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유일한 구원이다. 다시 새사람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다시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지 않을 것이다. 다시 에덴의 동산에 들어가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 즉 선악과는 절대로 손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뱀이 유혹하더라도 선악과는 쳐다만 볼뿐,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선과 악을 그대로 따르면서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할 것이다. 

 

완전히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탕자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제멋대로 살았던 과거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착한 자녀가 될 것이다. 새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특히 음행과 관련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음행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다. '간음하지 말찌니라'(출애굽기 20:14). 술에 취하지 말고 음란한 생각을 품지 말라. 정신을 맑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은 인생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무척 힘든 명령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명령을 왜 하고 계신지 깨달아야 한다.

 

주변을 보라, 술을 많이 마셔 간암에 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술에 취해 음주운전을 하다가 구속되고, 싸움을 하다가 다치거나 다른 사람을 폭행하여 징역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술을 좋아해서 유흥방탕에 빠져 돈도 못벌고 고생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가장이 술에 취하면 가족들은 생계가 어려워진다.

 

술은 많은 경우 범죄의 원인이 되고 사고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건강을 치명적으로 해치고, 건전한 가정생활을 망치게 하는 주범이다. 술이 주는 낭만적인 분위기는 매우 일시적이다. 술은 중독성이 있어 한번 빠지면 평생 끊기 어렵다. 그러므로 술을 끊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술에 취하지 말라. 가급적 술을 절제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음행은 에이즈에 감염되게 만든다. 성매매를 하다가 커다란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욕정을 참지 못하고 강간을 하거나 강제추행을 하다가 파렴치범으로 처벌되기도 한다. 성범죄자는 이제 인적 사항이 공개되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다.  간통을 하다가 적발되면 애인의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간통죄로 구속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건전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마음으로라도 간음하면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음란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 9~10).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린도전서 6:1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곤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쫓지 말라"(데살로니가전서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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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

 

가을사랑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귀한 신분에 맞게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면, 자기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자기 마음을 고상하게 가꾸게 된다. 그리고 소중한 자신의 영혼이 삶에 있어서 어두움을 물리치고, 밝은 빛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자기를 비천하게 생각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비하시키면 안 된다. 자신을 비하시키는 것과 겸손한 것은 다르다. 고귀한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지만, 겸손한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자신을 비하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처음부터 비관적인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축복받아 행복하게 사는데 자신은 불행하게 태어났고, 자신은 평생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끝날 운명이라고 믿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자포자기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하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텐데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고 있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현재 처한 상황에서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값없이 받은 선물이다. 

 

비록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많지만, 현재 주어진 것을 따져보면 그 자체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목숨이 있는 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생명은 이 지구 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다. 그 어느 것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이다.

 

우리의 생명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대통령 자리와 바꾸겠는가? 아니면 재벌 그룹의 회장 자리와 바꾸겠는가? 최고 정상에 있는 연예인의 자리와 바꾸겠는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가진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다. 그 생명은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이다. 무상으로 받은 것이 생명(life)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고 해도, 생명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재벌이 죽음에 임박해서는 하나님께 간절히 빌 것이다. 며칠 만 더 살게 해달라고. 그러면 몇백억원이라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그렇다고 그 재벌의 생명이 며칠 더 연장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값진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셨으므로 조금이라도 돌아다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치 않으면 병을 얻게 되고 두 발로 걸어다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귀한 생명과 육체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지으심을 받은 존재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일진대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 몸에 거하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주셨지만, 하나님은 우리 몸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성령으로 이끄시려고 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고린도전서 3:16~18) 

 

그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보살피기 위해 우리의 몸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마음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서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무시하고 세상의 법에 따라 무질서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세속을 따라 인간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을 우상으로 여기고, 순간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며 남보다 더 잘 살기 위해 극도의 이기적인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하나님의 율법보다 세속적인 법칙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살게 된다. 남이야 죽든 말든 전혀 괘념치 않고 자기 혼자 잘 났다고 교만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제멋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온갖 악행에 빠지게 되고, 죄만 짓게 된다. 나중에 죽을 때 허무한 상태가 되며,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된다.

 

그러다가 견디기 어려운 시련에 닥치게 되면 자포자기하여 자살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아무런 보람도 느끼지 못하고 지극히 세속적인 속물로 늙어가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몸과 영혼을 올바르게 보전하는 관리책임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뿐인 몸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저 욕정을 충족시키는 동물적인 존재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 돈을 버는데 급급한 속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자신의 몸을 잘 관리하여 건강하게 유지하고, 마음을 경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바램이요 소망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처럼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올바르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라. 그것이 세상 살아가는 첫번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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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법


가을사랑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전혀 다른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모른 채 인간의 머리와 힘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절대전능하신 능력자로 믿고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방법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세속적으로는 잘 먹고 잘 살고 마음 편안하게 장수하기도 합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많은 자식들을 낳아 성공도 합니다. 죽은 다음에는 그 사람의 공덕비가 세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고, 자신보다 훨씬 우월하며 자신의 의지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서 사는 것이 보다 나은 방법이 아닐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믿고 따르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흐트러지지 않고 바른 길을 찾아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쉽게 걸어가는 넓은 길, 편한 길이 아니라 좁은 길, 고생하는 길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어리석은 방법 같아도 나중에 세월이 흐르면 그것이 매우 현명하며 안전하고 튼튼한 길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 빛을 발하는 등대와 같은 존재를 바라보면서 사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세상을 한 평생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가치관을 상실한 채 표류하다 보면 권태에 빠지고, 교만에 빠져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생각하지도 못한 고난과 고통을 받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 풀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그때는 절망에 빠져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이럴 때 연약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 위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긍정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게 만듭니다.


항상 부정적이고, 콤플렉스를 느끼며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고 세상에서 성공하지도 못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넷째,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아무리 출세하고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허무한 것입니다. 죽을 때 돈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높은 권좌에 있어도 무한정 그것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에게 가혹하게 대하고, 혼자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나중에 죽을 때 후회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고, 보람 있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어린 아이가 나이 든 할아버지의 큰 뜻을 깨닫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는 다는 것은 그런 생각조차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우리에게 상상도 하지 못할 능력을 주십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우리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2:11~12)

그것은 하니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토기쟁이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던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지 우리의 의사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하고 믿는 자세로 하나님의 품안에서 우리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법과 명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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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한 마음


가을사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에 대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조금만 잘났어도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똑똑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대학교를 다니면 세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것으로 믿습니다. 얼굴이 잘 났고, 몸매가 좋으면 우월감이 넘칩니다. 재벌집 자녀로 태어나면 아무 고생도 모르는 상태에서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권력을 잡으면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고 거침없는 말투로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 생각하고 그 결과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교만에 빠지는 것은 첫째,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사악하게 대하는 습관을 가져옵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셋째, 그러면서 커다란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넷째, 그 결과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교만은 커다란 죄악입니다. 교만에 빠져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으셨다는 사실도 부정합니다. 이 세상을 혼자 힘으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불쌍한 인생으로 무시합니다. 평생 영원토록 자신은 그와 같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서 살아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건강을 허락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천재지변이나 예상치 못한 인재는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내일 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대통령을 지낸 후 감옥에 가기도 하고, 떵떵거리던 재벌이 순식간에 부도가 나고 구속됩니다. 권좌에 앉아 세상을 호령하던 장관도 재판을 받게 됩니다. 건강하던 사람들도 하루 아침에 암판정을 받아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결혼해서 잘 살던 사람들도 이혼법정에 서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별 것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질그릇처럼 자기 뜻대로 지으신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린도전서 4:6).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에 따라 살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면서 이 땅에서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25)" 그렇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부족한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하다고 자랑해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건강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한 순간에 잘못 판단하거나 나쁜 사기꾼 한 사람을 만나 그룹이 부도가 납니다. 장관 자리에서 구치소로 자리를 옮깁니다. 등산이 취미인 사람이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갑니다. 세상은 그 누구도 큰소리를 칠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 아래 매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현재의 상황은 미련하고 지혜 없으며, 약한 몸에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해도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고 마음 먹으면 우리는 그 어떤 지혜 있고, 강한 사람들 보다 더 지혜를 얻게 되고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천한 사람과 멸시 받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택하여 있는 사람들을 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인간적인 교만으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7~29)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태어났고, 평생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본받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평강을 주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 땅에서 소멸하는 비참한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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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분별력


가을사랑


[본문]

여러분이 배운 교훈을 거슬러서, 분열을 일으키며, 올무를 놓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 하십시오.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수셔서 여러분의 발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롬 16:17~20).


[QT]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들 중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악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를 파멸시키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년에 서울 홍대입구에서 있었던 택시강도강간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의 경우에는 갑자기 길을 가던 선량한 여자들을 납치하여 돈을 뺏고 강간을 한 후 죽여 강물에 던져버리는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보험금을 타먹기 위해서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아도 있습니다. 계획적인 사기를 쳐서 수많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망하게 하는 사기꾼들도 많습니다. 순진한 애정을 이용해서 등을 치는 꽃뱀과 제비족도 도처에 널려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악마와 사탄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물이 들 위험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와 같이 사람을 분별해서 피해를 보지 않고 시련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제대로 못해 패가망신하고, 평생 고생하며, 세상을 기피하는 우울증에 빠져 살게 됩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는 절대로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람을 무조건 믿고 사기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취지에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항해서 분열을 일으키고 거짓 주장을 함으로써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려는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감언이설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사함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못 박아 소멸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옛사람으로부터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애로운 은혜로 대속을 받아 죄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생명의 법에 따라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성령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 세례는 우리의 죄 많은 옛사람을 성령으로 깨끗이 씻어버리고 옛사람의 잘못된 삶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법, 은혜의 법에 따라 믿음과 소망, 사랑을 가지고 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은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처럼 선지자들의 깨달음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죄 많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죄 없는 양처럼 속죄를 하기 위해 번제로 희생되셨습니다. 그 고귀하고 값비싼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었고, 죄에서 구원받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슬기로운 지혜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일에 대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순진한 태도를 보여 그로부터 자신을 멀게 해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악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악인에 대한 응징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사실 우리가 악인을 처치할 수도 없습니다. 처치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더 다치게 됩니다.

악인은 매우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해서는 더 큰 악을 초래하게 됩니다. 끊임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피의 복수가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다가는 우리는 더 큰 환난과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강도를 당해 가족이 죽음을 당했다고 가정할 때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 범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직접 살해를 한다고 하면 살해된 범인의 가족들은 또 피의 복수를 할 것이고 다시 이쪽에서 복수를 하면 그에 대한 재복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는 끊임없이 몇 백 년간 집안끼리 살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기를 당했을 때 그 사기범이 재산을 다 빼돌리고 무자력자가 되었을 때 민사상으로는 해결방법이 없고, 오직 형사처벌만 가능할 때 사기범을 처벌하기 위해 몇 년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허망한 배신감, 법에 대한 불신감, 인간에 대한 회의, 두려움만이 남게 됩니다. 얻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당했을 때 빨리 그 악의 결과에서 벗어나 악을 멀리하고 피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악을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지 않더라도 악인을 그 자체로 징계하고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 부분을 명확하게 단언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셔서 여러분의 발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롬16:20)’ 우리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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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가을사랑

 

 

 

[본문]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QT]

 

보통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매우 급급한 실정입니다. 먹고 살기 바쁘고, 자신의 건강을 유지관리하기도 어렵고, 가족을 부양하기도 벅찹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루 하루 보내다 보면 세월만 가고 나이 먹고 병들고 늙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인생은 매우 허무하고 생의 마지막에 후회스럽게 됩니다. 현실에 집착하다 보면 세상 욕심에 빠져 몸과 마음을 제멋대로 굴리게 되고, 남는 것은 병든 몸과 황폐화된 정신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상실할 채 방황하다고 인생을 끝내고 마는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자신이 어디에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은 따지고 보면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왜 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면 나중에 어떤 보상을 받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아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형상(形像  image)대로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 그 뜻에 무조건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은총을 받아 우리의 삶이 밝은 곳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고, 마음의 평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선물로 주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많은 것을 구하며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과 고난도 불평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때로 채찍질도 하시고 시련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하므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나중에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의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갑자기 닥친 불행도 나중에 복이 될 수 있고, 그런 불행을 극복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깊이 있고, 믿음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운 시련을 당하더라도 이를 꿋꿋하게 헤치고 나올 수 있는 인내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절대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몸 가운에 작은 세포 하나, 핏줄 한 부분만 잘못되어도 우리는 생명을 잃게 됩니다. 순간의 사고를 당해도 우리는 사망하거나 불구가 됩니다.

 

나쁜 사람 한 사람만 잘못 만나도 우리의 사업체나 가정은 순식간에 박살이 나고 맙니다. 현대사회처럼 사건과 사고가 많은 때는 없었습니다. 천재지변뿐 아니라 인재도 수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범죄로 인한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이용 당하고 배신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날이 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지고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의 배금주의 풍조가 사회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의식은 급격하게 실종되고 있고, 혼자만 잘 먹고 편하게 살면 그만인 세상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목적의식을 상실하고,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표류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놓치면 우리는 어두운 밤에 등대를 보지 못하고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불행한 처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기쁨과 평강(平康 peace)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가능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가 받아 충만해질 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항상 주만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를 믿고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믿음 위에 소망을 가지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며 가족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예수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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