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떠나지 못하고>
떠난다고 하면서
차마 건너지 못하고
잊는다고 다짐하면서도
더욱 선명해지는 건
가을바람 탓이다
나를 스쳐간 바람조차
정이 들었고
멀리 날아간 낙엽까지
가슴을 붉게 물들였다
달빛에 녹아 떨어지는
삶의 애환들이 파편처럼
은행잎과 뒤섞이고
몸으로 그렸던 그림들은
희미한 가로등 아래
추위에 떨고 있다
사랑을 잃고 살아가는 건
그리움을 붙잡고
보고픔을 부르며
이별을 바라보는 일이다
헤어짐은 그리움 때문에
그리움은 헤어짐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