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4월을 보내며>
이제 4월을 보낸다
코로나와도 싸웠지만
봄꽃을 가슴안에 들이고
다시 밖으로 보내느라고 힘들었다
꽃을 보고
꽃잎을 어루만지며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나의 감성이 죽지 않았음을
꽃에게 중얼걸렸다
봄이 온 것은 나 때문이다
꽃이 핀 것도 나 때문이다
봄꽃이 지는 것은 너 때문이다
<봄날의 꿈>
꿈을 꾸고 있을 때
갑자기 봄날이 왔다
온몸으로 거부해도
아무리 저항해도
봄날은 가까이왔다
술에 취해 몽롱할 때
환하게 꽃이 폈다
너무 눈이 부셔
꽃을 꺽으려 기어갔다
손발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꽃은 더 멀어져갔다
새벽에 호숫가에 새가 않는다
아무 울음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 속에서
고독의 피를 흘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
호수의 신음소리에 집중한다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본다
밤새 빗물이 가슴속을 적셨다
떨어진 목련꽃의 처연한 모습
가냘픈 벚꽃잎이 눈꽃처럼
온몸을 감싼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
<홀로 남는다는 것>
언덕 위에서 지는 해를 본다
너무 붉고, 너무 커서
가슴에 담을 수 없다
4월의 마지막 바람이 분다
아무런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겁다
너와 걷던 그 길에
작은 발자국은 사라지고
무의미한 언어들이
떨어진 꽃잎 위를 뒹굴고 있다
홀로 남는다는 것
사랑과 고독의 경계가 흐려지고
술에 취한 것처럼
곧 떠오를 달의 그림자를 찾아
소나무 위를 본다
너로부터 남겨진 것들
두꺼운 껍질을 벗고
내 가슴속을 파고 드는
알몸의 실루엣에서
허망함이 강물 위로 떨어진다
<깊은 곳에 남겨진 것은>
은은한 트럼펫소리가 들려온다
영화 <대부>의 OST다
눈물이 흐른다
더 때문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부드러운 선율을 따라
너의 가슴을 느끼고 있다
차가운 정적이 흐른다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다
사랑이 뿌리를 내릴 곳은 없었다
그래도 너였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너의 그림자가 쓰러졌다
아픈 신음소리만 남기고
사랑의 흔적은 사라졌다
갑자기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울린다
너를 끝까지 껴안지 못한 건
우주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철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 남은 건
너의 숨결뿐이다
네가 끝까지 저항했던
사랑의 순결이 피를 뿌린다
거친 파도에 묻혀
심연속으로 가라앉는다
<떠나는 시간>
언제부터인가
너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어
작은 불씨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이 되었어
네가 던진 연한 미소
너의 가슴속의 응어리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렸어
오늘 밤에는
밤새 술에 취해
광란의 춤을 출 거야
짚시의 붉은 피를 따라
가시밭길을 걸을 거야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침묵은 호수밑으로 가라앉고
떠나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는
순간에서 영원으로
먼 기적소리에 묻혀버리고
나는 멍하니 서있는 거야
<사랑이 빛날 때>
사랑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
빛 때문에 사랑이 빛날 때
우리 두 눈을 감자
아무 말 하지 말고
서로 껴안은 채
깊은 잠에 빠지자
꿈속에서 먼 길을 떠나자
아무도 없는 무인도를 향해
저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가자
작열하는 태양 아래
우연히 만나 오아시스에서
고독의 샘물을 들이키고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말자
<사랑의 빛>
네 가슴엔 별이 있었어
아무도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그 별 때문에 눈이 부셨어
별이 빛나는 밤에
말없이 울었던 건
사랑이 아파서였어
아픈 사랑 때문에
강을 건널 수 없었어
눈물에 젖은 편지 위로
벚꽃잎이 수북이 쌓였어
세월의 애증을 담고
철새를 따라 멀리 날아갔어
빙점의 편지를 읽을 때
기나긴 여로의 끝에 서서
운명적인 만남과 마주쳤어
풀밭에 앉아 마주하는 시간
언어는 침묵하는 거야
모든 걸 강물에 던지고
발가벗은 물고기들이
사랑의 빛을 어루만지고 있어
<진정한 사랑>
지금까지 살면서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해 억울한가?
그건 100% 자신의 탓이다.
사랑의 가치를 모르고,
사랑의 마력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후회하지 마라.
사랑 없어도 살 수 있고,
사랑 있어도 죽는 것이므로,
그냥 지금처럼 살아라.
진정한 사랑을 맛본 사람은,
그 사랑의 추억을 껴안아라.
꿈속에서 사랑을 되새김질하라.
그럼으로 사랑의 진주를 만들어라.
<봄날의 고독>
봄날이 올 때
우리 청춘은 뜨거웠지
열정을 가슴에 담고
냉정을 머리에 넣고
숨이 차도록 뛰어갔어
너의 무게에 짓눌렸어
너의 눈빛에 얼어붙었어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다시 너를 껴안아도
시간은 정지할 거야
풍차는 멈춰설 거야
봄날이 갈 때
벚꽃은 눈물을 흘리고
목련은 피를 토했어
가슴에 새긴 문신은
빗물에 더욱 선명해졌어
기차는 저 혼자 떠난 거야
바람을 따라 가는 길에
무거운 쇳소리는
사랑을 짓누르고 있어
그림자는 언제나 동행하지 않아
너를 찾아 나선 밤에
진한 고독이 몸부림치고 있어
<의미 없는 동행>
너에게 가는 길은 험했어
낭떠러지에 고고하게 핀 한송이 꽃
어렵게 다가갔어
꺾으려고 했던 건 아냐
그냥 가까이 가서
향기를 맡고
가지에 매달리려고 했던 것뿐이야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침묵은 계속되고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쳤어
밧줄은 끊어지고
나는 한없이 한없이 추락했어
다시 너의 미소를 찾아나섰어
너는 보이지 않아
너의 부재는 곧 시간의 정지였어
모든 것이 멈춘 상태에서
우리의 기억은 빙점 아래로
끝없이 가라앉았어
그래도 음악은 멈추지 않아
차가운 포옹은 싫어
의미 없는 동행도 거부한 채
밤새 쌓아올린 사랑의 탑은
스스로 무너져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