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기
가을사랑
서울의 한 지역에서 계원 1,200여명을 관리하던 계주가 잠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30년 넘게 계를 운영하던 계주가 잠적함으로써 피해액은 100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피해자들 중에는 장애인으로서 청소일을 하던 66세된 여자도 있고, 파출부로 일하던 54세의 여자도 있다고 한다. 피해자들은 계주를 업무상배임죄와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를 했고, 경찰은 계주에 대해 출금금지조치를 했다고 한다.
이런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은 사기죄를 엄벌해야 한다고 하면서, 60년대에 성행했던 재테크수단인 계를 왜 오늘날에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금융기관을 이용하면 안전한데 위험한 계를 하면서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하는 욕심이 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충고도 많았다.
그러면서 도주한 계주를 인터넷등에 공개수배하고, 사진을 올려 빨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나라에 사기꾼들이 너무 많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사기꾼들이 너무 쉽게 법망을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고 하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사기꾼들은 사기를 친 다음, 재산을 다 빼돌리고 잡히면 징역을 몇 년 살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므로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이와 유사한 계사기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사후처리가 거의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사기꾼은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발언도 빠지지 않고 있었다. 사기사건에 대한 형량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사회가 존속하는 한 사기는 끊임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기본적인 문제는 거래의 허술함에 있다. 서로 믿고 중요한 금전거래를 아주 허술한 방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계는 그야말로 신용을 전제로 한 금전거래다.
오로지 계주의 신용만을 믿고 거액을 건네주는 것이다. 계원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전체 계원들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있다. 계금을 타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계불입금을 제대로 붓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몇 사람이 계불입금을 붓지 않으면 계는 유지될 수 없다. 계주가 법률상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계주가 고의적으로 곗돈을 태워주지 않는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지지만, 곗돈을 타간 사람들이 계불입금을 내지 않아 연쇄적으로 계가 깨지는 경우에는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지 않고, 사기죄를 인정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한 민사사건으로 돌아가게 되면 손해배상을 받을 길은 전혀 없게 된다. 판결문을 받아보아야 집행할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면 계주는 거액을 챙기고 처벌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계주는 겉으로만 재력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실제로는 자기 명의로 재산을 해놓지 않고 있다. 오랜 기간 계를 잘 운영했다는 신용은 보이지 않는 허상이다. 그 속을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추상적으로 무조건 믿으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계주가 나쁜 마음을 먹게 되면 더 신용이 있는 것처럼 과시하고 어느 날 특정 시점을 잡아 거액을 챙기고 달아난다. 외국으로 가던 국내에서 잠적하던 신병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다. 피해자들은 망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속이 상해 홧병이나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가정은 엉망이 된다. 그러다가 보면 건강도 잃게 된다.
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지 알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가급적 빨리 계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20개월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기 위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급적 늦은 순번으로 곗돈을 타려고 한다. 이런 순수한 심리상태를 이용하는 것이 악질적인 계주들이다. 허무인의 이름으로 앞번호를 모두 타서 거액을 챙기고 달아나면 앞으로 탈 계원들은 모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자를 손해보더라도 지금부터 빠른 시일에 곗돈을 타 놓고 보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그런 사정이 안 되면 계주를 만나 정확한 계원들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특히 이미 곗돈을 타간 계원들의 신용상태, 계금불입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곗돈을 타간 사람들로 하여금 물적 담보를 제공하게 하거나 인적 보증을 서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거액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는 입장이므로 사실 이런 보증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
계를 든 사람들은 자신의 곗돈을 탈 때까지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된다. 계주를 믿는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허상을 믿고 곧 거액을 손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나 마찬가지다. 계주를 무엇 때문에 믿으려고 하는가? 계주는 어디까지나 계주일 뿐이다.
계주라는 인격체를 믿지 말고, 계주가 나중에 책임지고 곗돈을 태워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보장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법률적으로 확인하고 따진 다음 확실한 보장책이 마련되어 있으면 그때 그 보장책을 믿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계는 알게 모르게 많이 운영되어 왔고, 서민들의 재테크수단이었다. 계를 잘 해서 돈을 번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계를 하다 깨져서 집안이 망하고 거지가 된 사람은 더 많다. 계를 하더라도 왜 위험한지를 잘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형계사기사건이 보도될 때마나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