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사실 배가 부른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전에 그냥 하루 하루를 맹목적으로
살고 있다. 목숨이 붙어 있기에 살아가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또한
작은 고통이나 걱정이 있어도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말보다는 그 순간에서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랄뿐이다. 삶에 있어서 걱정거리가 생기면 갑자기
세상은 캄캄해지고, 마음은 가라앉고, 모든 현상이 어둡게만 보인다. 그래서 고통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 의미를 지닌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깊이 생각할 겨를 없이 그냥 시간이 흘러갔다. 공부도 해야 했고, 일도 해야 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볼 시간도 없었다.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좋으면 좋다고 느끼고 싫으면 싫어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결국 허무였고, 무의미였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인생의 권태를 느끼게 되고 허무주의자가 될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짧은 인생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보람을 찾고, 가치를 느낄 수 있느냐 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짧은 인생이
헛되지 않도록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때로
절망 때문에 어두워지는 경우가 있어도 밝은 빛을 찾아야 한다. 그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행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다. 행복이란 불행과
대칭되는 말이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불행하지 않아 행복한데, 그 행복을 인정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고 믿는 것이 문제다. 지금 이 시간 크게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니 불행하더라도 그 고통이 일시 소강상태에 있거나 그 불행이 가슴에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행복하다고 믿어라. 그건 진정 행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복은 불행하지 않은 상황,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순간,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행복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 느껴지는
인식작용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보는 시각, 인식하는 방법에 따라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이렇게 객관적으로는 불행한 것이 분명한데도 주관적으로 불행을 뛰어넘어 비불행, 행복이라고 인식하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동물과 다른 점이고, 철학적인 사유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셔서 몸이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W와 J를 차에 태우고
양재동까지 데려다 주고 왔다. 하루 종일 피곤한 상태로 지냈다. 4시경 장부장님 일행을 만나 회의를 했다. 출판사 장사장님의 방문이 있었다.
5시
반경 서초동을 출발해서 용인 삼성에버랜드로 갔다. 해가 지기 전에 에버랜드 입구에 늘어서 있는 벚꽃과 개나리꽃을 보았다. 너무 아름다웠다.
입구에 있는 청주보쌈 식당에 갔다. 보쌈과 파전, 막국수를 시켜 먹었다. 음식맛이 좋았다.
에버랜드에
들어가니 날씨가 다소 쌀쌀했다. 바람도 불었다. 그러나 한참 걸으니 많이 풀렸다. 밤인데도 사파리월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곰과 사자, 호랑이
들이 보였다. 8시반부터 퍼레이드가 있었다. 휘황찬란한 복장에 경쾌한 음악, 신나는 율동을 오래 구경했다.
늦은
시간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모여있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구미에서 수학여행을 왔다고 한다. 오늘 올라와서 내일 간다고
한다.
옛날에
나도 서울에 수학여향을 왔었다. 남산을 갔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 아무 걱정도 없이 재미있게 놀러다녔던 시절이 새삼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