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습관이었다. 사실 그런 대화를 했다고 해서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가면서 방수 씨도 별 재미가 없었다. 더 이상 하고 싶지도 않은 심리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단번에 끊지도 못했다. 사람이란 이상하다. 한번 들어진 습관은 하루 아침에 끊지 못한다.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반복하는 말과 행동이 있다. 누구에게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런 잘못된 습관이 남아있다. 그런 잘못된 습관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의지가 약해 평생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약한 모습이다.


어느 날 저녁 퇴근길에 방수 씨는 또 의상실 여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주인이 빨리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해서 응답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좋아서 받아주는 것은 아니었다. 방수 씨는 별 생각 없이 계속해서 음담패설을 했다.


한 10분 정도 전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관이 나타났다. 그리고 전화기를 빼앗았다. 어디에 전화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상대방이 의상실 주인임을 확인한 경찰관은 이른바 미란다사항을 고지하고 경찰서로 연행했다.


미란다원칙이란 경찰관이 현행범인을 체포할 때 피의자에게 범죄사실 및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야 한다는 법원칙을 말한다. 사실 체포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런 미란다사항을 고지 받아야 특별한 방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체포하는지 조차 알려주지 않고 체포당하면 곤란하고,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방수 씨가 즉시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무슨 해결방법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방수 씨는 경찰관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고, 경찰서에 가서 피의자로 인지되었고, 피의자신문조서를 받았다. 방수 씨늘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는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212조의 규정이다.


경찰에서는 이미 피해자인 의상실 주인으로부터 진정서를 제출받았고, 범인을 잡아달라는 요청을 받아 내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찰관은 방수 씨에 대한 현행범인체포서를 작성하였다. 체포한 장소는 공중전화박스였고, 인치한 장소는 경찰서 수사과 지능팀 사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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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란전화


                                                           가을사랑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방수 씨(38세, 가명)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부인도 있고, 어린 자녀도 있었다. 부모님들도 모두 계셨다. 큰 돈은 없었지만, 몸도 건강했고, 특별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여건이었다. 서울의 소시민이었다.


삶의 권태이었을까? 딱 하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때로 묘한 상황에서 이상한 심리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는 데, 특수한 환경에서 자칫 잘못하면 매우 비정상적인 일을 하게 된다. 일반 사람들은 상식적인 잣대로 그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강력하게 비난하게 된다. 그게 사회 현실이다.


방수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가는 길에 있는 의상실 가게 주인이 아주 예쁘고 매력있는 것을 보았다.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상실에는 샵의 전화번호가 밖에 적혀 있었다.


그래서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의상실에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문의를 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다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음란패설을 이야기했다. 성적인 발언을 계속했다. 상대 여자는 전화를 끊었다. 방수 씨는 연 이어 몇 차례 전화를 했다.


그 다음 날 퇴근 길에 방수 씨는 또 의상실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50살은 넘어 보였지만, 전화대화였기 때문에 나이차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짜증을 냈다. 그러나 일방적이기는 하였지만 상대방이 여자고, 대화내용이 성적인 것이었으므로 묘한 감정이 일었다.


삭막하고 답답한 도시에서 한 개체로서의 실존이 느끼는 허망함, 초라함, 권태로움 같은 것에서 잠시라도 일탈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매일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한달 동안 20여 차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이제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 음담패설을 받아주는 것은 전혀 아니었고,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해라,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지금 녹음하고 있다라는 식의 경고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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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내리는 빗소리가 인간들의 부질없는 욕심을 제압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언어들이 빗방물에 밀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비가 와서 강의를 하는 데 지장이 없을까 걱정을 했는 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의실 내의 조명이 아주 환했다. 밖에 비가 오는지 어떤지 전혀 들리지도 않았다. 연구실은 그야말로 연구실이다. 학생들 이외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기 좋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강의시간이 몹시 기다려진다. 열심히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내용을 말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학문을 깨우쳐가는 그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흐뭇해지기 때문이다.


아침에 서초동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서둘러 일을 보고, 학교로 향했다. 11시가 조금 넘어 출발해서 11시50분경에 도착했다. 위원회에 참석해서 회의를 했다. 학생들을 위해서 해줄 좋은 방안들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했다.


회의를 마치고 학교 앞 남부햄부대찌게집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우산을 쓰고 캠퍼스를 걸어가는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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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단산


                                                   가을사랑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많은 고통을 수반한다. 생사병로의 고통 뿐만 아니라, 험한 세상에서 힘든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밀림지대와 같은 환경 속에서 사느냐 죽느냐의 순간 순간을 극복해야 한다.


삭막한 세상에 살면서 그래도 푸근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하고, 누군가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 혼자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쉽게 절망하고 허무에 빠진다.


날씨가 무척 더워졌다. 검단산을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땀을 많이 흘렸다. 인생 고행길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힘은 들어도 산을 오르면, 눈속에는 파란색이 많이 들어온다. 귓속에는 아름다운 새소리로 가득찬다.


어쩌면 그렇게 고울까?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는 마치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다. 세상에서 최고의 소프라노 목소리도 그 새소리만은 못한 것 같이 느껴졌다. 파란색은 눈을 시원하게 했다. 나뭇잎들의 색깔이 너무 너무 고왔다.


중간에 바위에서 졸졸 흐르는 약수물을 마셨다. 검단산은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강을 끼고 있어 산에 오르면 바라다 보이는 강물 때문에 시원함을 대번 느낄 수 있다.

 

강 건너에는 예봉산과 운길산이 우뚝 서있다. 검단산은 해발 657미터로서, 백제시대에 검단선사가 은거했기 때문에 검단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에니메이션 고등학교 부근에 차를 세우고 가파른 산행을 시작했다.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 선생의 산소에 이르렀다. 杞溪 兪氏라고 씌여 있었다. 어머니 성과 본이 같다. 자연히 눈길이 끌렸다.

 

고개 넘어 약수터까지 갔다. 약수터 주변에 걸터앉는 긴의자가 있었다. 그곳에 누웠다. 베개가 없어 불편했지만,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 누워 하늘을 보니 참 좋았다.


나뭇잎들 사이로 하늘이 조금씩 보였다. 녹색의 커튼 뒤에 조금씩 보이는 하늘색은 나뭇잎색에 가려 빛이 나지 않았다. 하늘에서는 파란 눈꽃이 떨어질 것처럼 느껴졌다. 저 무수히 많은 나뭇잎들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연상시켰다.


그 속에서 우연히 눈에 띈 하나의 나뭇잎에 집중하고 싶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에 있어도, 하나의 존재와 하나의 나뭇잎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관계는 한번 맺어진 인연으로 결코 끊어질 수 없는 작은 영토를 이루고 있었다.


검단산에 올라가서 바라본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멀리서 보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와 저 강물을 보았을 것이다. 강물 속에 삶의 힘든 고통과 서글픔을 모두 빠뜨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삶의 에너지를 몸속에 넣었을 것이다. 몇백전 전에도 이름 모를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와서 자신의 삶에 담겨있던 한을 토해냈을 것이다.


검단산을 내려오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산에서 내려오면 다시 도시의 소음이 귓전을 때린다. 답답하게 지어놓은 아파트단지들. 길가에서 팔기 위해 늘어놓은 물건들의 현란한 색깔들. 그리고 마침 지방선거가 있어 거리에 어지럽게 걸어놓은 현수막들. 모두가 애국자고 지방을 위해 목숨을 바칠 구호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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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산


                                                가을사랑

 


계곡길을 따라 걸어가는 건 작은 행복이었다. 모든 나무들이 이제는 완전히 정장을 했다. 나무 전체가 파란잎으로 둘러쌓였다.

 

산에 가서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계절에 따라 너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늦은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은은한 모습, 그건 하나의 예술일 수 있고, 허무와 슬픔을 경험하게 해준다.

 

겨울에 잎새 하나 남아 있지 않고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 그건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모두 떠나고 외롭게 남아 있을 것이라는 자연의 철학을 보여준다.

 

긴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새 잎이나온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온 세계가 파란색깔에 뒤덮이는가 싶게 만든다.

 

이런 계절의 변화를 산 속에 들어가 나무 가까이서 바라보고 느끼는 건 건강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다.  

 

햇볕을 많이 쐬지 않고 오랜 시간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맑게 들리고 있었다. 맑은 물 속에는 작은 고기들도 보였다.


북한산 대남문에서 북한산성매표소로 가는 5.5킬로미터의 계곡길을 걸었다. 모든 마음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걸었다. 눈에는 파란잎들만 들어오고, 귀에는 물소리만 들렸다.


작은 활자만 보다가, 컴퓨터 글씨만 보다가 눈을 나뭇잎이나 가지, 바위, 하늘을 보는데 집중했다. 세상이 넓게 보였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치와 원리가 자연과 더불어 크게 보이고 있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구기동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관악산을 가려고 했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대남문까지 올라가는 데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약간 힘이 들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끝까지 올라갔다. 

 

이제 마음껏 우거진 숲을 보면서, 어느 곳에서 읽었던 달과 별의 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달과 별은 서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가 보완하는 입장에서 오래 오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관계가 흔들리면, 그건 불행일 수 있다.   


산행을 마치고 북한산성매표소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생맥주와 팥빙수를 먹었다. 시원했다. 버스를 타고 구파발까지 와서 3호선 전철을 탔다. 더운 날씨에는 버스나 택시보다 전철을 타니 넓고 시원해서 좋았다.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승객들도 많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수동면사무소 부근으로 갔다. 운수농장 주인을 만났다. 개를 80여마리나 키우고 있었다. 개들이 좁은 사육장에 있는 모습이 무척 불쌍해 보였다. 주인은 그 집에서 선대로부터 150년 동안이나 살아왔다고 한다. 미사리 둑방을 거쳐서 돌아왔다.

 

명일동 주양쇼핑 부근에 쪼끼쪼끼 생맥주집이 있다. 항상 손님이 많은 곳이다. 더군다나 가게 앞에 테이블이 여러 개 있어 시원한 저녁이면 그곳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는 기분이 보통이 아니다. 나도 그곳에 앉아 생맥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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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아가는 모습


                                                  가을사랑


 

 

헌법재판론 강의도 이제 4번만 하면 1학기가 끝난다.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걱정도 많았다.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느 정도 가르쳐야 될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한 학기 강의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공부도 많이 했다. 강의안을 만든 것도 A4 용지로 400쪽이 넘는다. 학생들이 열심히 강의를 듣는 모습을 보니 보람도 느낄 수 있었고,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그러면서 나로서도 공부도 많이 되었다.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에서의 일이 바빠 눈코뜰새 없이 보낸 몇 달이었다. 사건 때문에 울고 웃는 의뢰인들과 문제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 틈이 나면 산을 찾았고, 강을 바라보았다. 숲 속에서 듣는 새소리는 기쁨을 주었고, 파란잎들은 내 생명을 느끼게 해주었다. 4월의 꽃앞에서는 눈물도 글썽거렸다.


살아온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철학을 깨달은 건 내가 능력이 부족해 그런 것일게다. 내 감성대로, 많은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겠다는 건, 내가 어느 정도 인간적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1년 넘게 계속해 온 블로그 ‘가을사랑’도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붓고 있다. 다만,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여러분들이 나를 시인이나 작가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혹여 내가 블로그의 글을 통해 교만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 블로그는 어디까지나 나의 생활기록이며, 내가 보고 느낀 삶의 체험들을 정리해 놓는 장소에 불과하다. 더 늙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기 위한 공간이다.


오늘 오후에도 어둡기 전에 청계산 매봉에 올랐다. 누가 뭐래도 말이 없는 산에 올라 인생을 깨닫고 더 늦기 전에 삶의 솔직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2시간 가까운 산행에도 몸이 별로 피곤하지 않은 건 마음을 비웠기 때문일까? 솔바람에 흔들리는 잎새에서는 사랑이라는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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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진 꽃잎, 멀어진 사랑

 

                                                   가을사랑

 

 

매봉 정상 부근에 진달래꽃이 몇 그루 있다. 아직은 꽃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처음 피었을 때 그 화사함은 사라졌지만 아직은 꽃잎이 달려 있었다. 꽃의 계절인 4월이 가고, 나뭇잎의 세상인 5월이 왔기 때문이다.


떨어진 꽃잎을 보면서 떠난 사랑을 떠올리는 건 너무 센치한 일일까?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산마루에서 맞는 바람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거대한 산 속에서 한 인간은 아주 작은 개미처럼 느껴졌다. 그 작은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신을 모독할 수 있을 정도의 태산 같은 교만이 들어 있다. 늑대가 양으로 위장하는 위선도 부릴 수 있다. 인간의 양면성이다.


인간이란 참 묘한 데가 있다. 현재 처해 있는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좁은 사무실에서 느끼는 감성은 아주 삭막한 데, 넓은 자연 속에서 푸른 숲을 껴안고 있으면 마음도 넓어지고, 감성은 고무풍선처럼 뛰어 오른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졸업하고 몇 번 보지 못한 사이다. 어느 대기업체에서 25년간 근무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상무로 퇴직했다. 3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있다가 1년 전에 어느 작은 벤처기업에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대기업에서는 퇴직금중간정산 때문에 막상 나올 때는 퇴직금도 거의 없었다. 그만 둘 때 사장으로부터 “그만 두면 무엇할 것인가?”라는 말 한 마디로 끝이었다. 벤처기업에서는 말이 부사장이지 결재라인에서도 벗어나 있고, 그냥 대외적인 업무만 거드는 정도고, 월급도 용돈 정도 받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고향이 영동인데, 대전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던 이야기였다. 영동에서 대전역까지 거의 1시간이 걸리고, 대전역에서 대전중고등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어린 나이에 그런 통학을 6년간이나 계속 했다.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가? 옥천이나 영동에서 함께 기차통학을 하던 아이들은 동천회라고 해서 지금까지 계속 만나 친하게 지낸다도 한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 책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기차 안은 아주머니들이 광주리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시끄러웠고, 터널을 지날 때는 기차연기가 창문 안으로 들어왔고, 불빛은 흐렸다.

 

기차가 늦는 경우도 많아 기차통학하는 학생들은 늦게 와도 양해를 해주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차시간에 맞게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옥천이나 영동에서 겨우 대전까지 학교는 보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대전에서 하숙생활까지는 시킬 수 없었던 경우였다고 한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도 꽤 고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나는 호강을 한 셈이었다. 집에서 한 30분 정도 되는 길을 걸어다녔으니 기차통학한 친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사실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W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달전부터 신장이 나빠져서 투석을 하고 있고, 신장이식수술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 감기가 들었는데,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일을 하고 돌아다녔고 에어콘 바람을 많이 쐬어서 그랬다고 한다. 얼마나 절망에 빠져있을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데.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5시경에 사무실에서 나와 청계산으로 갔다. 1시간만에 매봉에 올라갔다. 5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해서 내려오니 7시40분이 되었다. 후랏시 없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해가 그만큼 길어진 것이다.

 

굴다리 밑에 아주머니들이 채소를 팔고 있었다. 한보따리에 4천원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싸냐고 물었더니,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떨이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채소는 내일 또 밭에서 뜯으면 된다고 웃고 있었다. 이런 아주머니들을 보면 뇌물로 1억씩 받는 사람들이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해야 한다. 4천원에 한보따리를 샀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재동입구에 있는 하나로마트에 가보았다. 정말 대단한 규모였다. 물건도 많은 종류가 있었다.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한다.

 

라일락 향기와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게 퍼지고 있는 밤이다. 산 꼭대기에서 본 꽃잎들이 떨어진 모습은 마치 잊혀진 사랑처럼 보여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슬픔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름답지만 그 밑바탕에는 항상 슬픔이 깃들어 있다. 평창군 허브농원에서 본 루피너스의 은은한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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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바라보게 된다. 내 손에 작은 가시만 박혀도 다른 사람의 허리가 부러진 통증보다 더 심각하게 느끼게 된다.


때로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느껴본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고, 취미가 다르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까워질 수도 없다. 물과 기름이 함께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위에는 오로지 돈과 물질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쾌락과 이익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의 대화가 매우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 분위기가 이런데 혼자서 고상하게 살려고 하면 적응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된다. 심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구수회 모임에 갔다. K 씨, 문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5시에 부동산회의를 했다.

 

저녁에는 미사리 둑방을 걸었다. 미사리 경정장 뒷편에 강변을 따라 만들어놓은 둑방길은 정말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대로변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공기가 맑고 좋다. 대로변과 한강 사이에 경정장이 있기 때문이다.

 

미사리 안에도 허클베리핀과 리버라는 카페가 있다. 강변에 있는 조용한 카페다. 내가 둑방을 걸을 때는 그 카페 부근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산책을 할 때 오가며 자주 보는 카페들이다.

 

대략 왕복 7킬로미터 정도를 걷고 돌아온다. 차를 타고 나오다가 문득 카페에 가서 음악을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로마(ROME)카페에 갔다. 2층으로 되어 있는 로마카페는 노래하는 가수들의 무대가 높이 올라가 1층에서는 위를 쳐다보고 보아야 한다.

 

라이브카페이기 때문에 매 시간마다 처음 30분 정도 가수들이 출연하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음악을 들었다. 출연한 가수들이 유명하다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다. 이덕진 가수도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다. 내가 아는 가수들은 모두 옛날 가수들뿐이다. 젊은 가수들을 잘 모르니 세상이 변하는 흐름을 못 따라가는 것이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불경기라 그런지 아니면 미사리 카페촌의 인기가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라 손님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안타깝다. 

 

내부 시설을 잘 해놓았고, 음악도 좋았다. 1시간 정도 음악을 듣다가 밖으로 나왔다. 한강이 보이고, 강 건너 덕소에는 아파트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웬지 달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별 하나만 보였다. 별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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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다. 숲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오페라하우스에 갔다.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저녁 8시부터 조수미 독창회가 있었다. 조수미 무대데뷔 20주년 기념(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공연이 있었다.

 

성남아트센터는 정말 잘 꾸며놓았다. 산 밑에 공기도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야외주차장도 넓었다.

 

성남시향에서 연주를 맡았다. 조수미(JO SU MI)의 공연은 매우 세련되어 보였고, 화려했다. 천상의 목소리는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조수미는 20년전인 1986년 10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리골레토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금년 3월달에 조수미씨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마지막 부분에 그런 멘트와 함께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부를 때는 눈시울을 글썽이고 있었다.

 

비올라를 연주하는 C를 만났다. C가 참 대견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벌써 정식 단원이 되어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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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깊이 있는 수심을 느끼게 해 주는 이 글을 나는 여러 차례 읽었다.


1. 세속이란 과연 무엇을 두고 일컫는가?

스쳐 지나갔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들여다 본다.

별수 없는 물상에 얽매어 5분만 이야기해도 지루해지는 속(俗)스러움.

조건이 바뀌면 배신하고 자기보다 나을 성싶으면 시기질투로 오류를 만들고,

인생의 내밀한 감동따위는 아예 센치멘탈로 치부하며 오락가락 마음을

옮겨다니는 하이에나들.

표피적인 치레와 허상에 찌들은 그 숱한 군상들.

순수한 본연을 잃고 浮漂같은 삶이 눈에 걸린다.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하이에나는 다르다.

시시한 군상들이 무리를 지으려 애쓴다.

나약할수록 무리짓는 일을 숭배한다.

혼자 있으면 두려워 무리가 지시하는대로 타습에 안주한다.

우주의 숨결은 상서롭고 아름답다. 원칙과 예의와 발전을 기약한다.

고독한 자가 킬리만자로의 정점에 우뚝 서서 저 찬란한 태양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 

 

세상에는 세속적인 면이 강하게 존재하고, 지배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세속을 떠나면 벌써 현실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이에나는 그 자체로서 비난을 받을 게 아니다. 그 행동양식은 생존법칙에 의해 규율되는 당연지사다. 표범은 나름대로, 하이에나는 역시 자신의 법칙대로 살아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2. 인생의 환절기에는 자칫 나약해지기 십상이련가?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시절에 등파고랑으로 번뇌가 끓듯이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의 세찬 파도를 탄다.  

고독하라! 절망하라! 절망하라! 고독하라!

웅대한 만년설이 덮힌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본래 지닌 제왕의 위상으로 만물을 사랑하고 불태웠던 신념을 다시 곧추세웠으며, 대지를 적시는 촉촉한 사랑과 생명력의 신비와 그대의 아름다운 시혼으로 인생을 點火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을 씹으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고독을 삼키고, 때로는 고독을 내뱉을 뿐이다. 그리고 절망한다. 그게 인간의 태생적 한계다. 그러나 고독과 절망 속에서도 표범은 다시 한번 대지를 바라본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우리에게 희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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