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꽃잎, 멀어진 사랑
가을사랑
매봉
정상 부근에 진달래꽃이 몇 그루 있다. 아직은 꽃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처음 피었을 때 그 화사함은 사라졌지만 아직은 꽃잎이 달려 있었다.
꽃의 계절인 4월이 가고, 나뭇잎의 세상인 5월이 왔기 때문이다.
떨어진
꽃잎을 보면서 떠난 사랑을 떠올리는 건 너무 센치한 일일까?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산마루에서 맞는 바람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거대한
산 속에서 한 인간은 아주 작은 개미처럼 느껴졌다. 그 작은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신을 모독할 수 있을 정도의 태산 같은 교만이 들어 있다.
늑대가 양으로 위장하는 위선도 부릴 수 있다. 인간의 양면성이다.
인간이란
참 묘한 데가 있다. 현재 처해 있는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좁은 사무실에서 느끼는 감성은 아주 삭막한 데, 넓은
자연 속에서 푸른 숲을 껴안고 있으면 마음도 넓어지고, 감성은 고무풍선처럼 뛰어 오른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졸업하고 몇 번 보지 못한 사이다. 어느 대기업체에서 25년간 근무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상무로 퇴직했다. 3년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놀고 있다가 1년 전에 어느 작은 벤처기업에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대기업에서는
퇴직금중간정산 때문에 막상 나올 때는 퇴직금도 거의 없었다. 그만 둘 때 사장으로부터 “그만 두면 무엇할 것인가?”라는 말 한 마디로 끝이었다.
벤처기업에서는 말이 부사장이지 결재라인에서도 벗어나 있고, 그냥 대외적인 업무만 거드는 정도고, 월급도 용돈 정도 받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고향이 영동인데, 대전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던 이야기였다. 영동에서 대전역까지 거의
1시간이 걸리고, 대전역에서 대전중고등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다.
어린
나이에 그런 통학을 6년간이나 계속 했다.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가? 옥천이나 영동에서 함께 기차통학을 하던 아이들은 동천회라고 해서 지금까지
계속 만나 친하게 지낸다도 한다.
그래서
기차 안에서 책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기차 안은 아주머니들이 광주리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시끄러웠고, 터널을 지날 때는 기차연기가 창문
안으로 들어왔고, 불빛은 흐렸다.
기차가
늦는 경우도 많아 기차통학하는 학생들은 늦게 와도 양해를 해주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차시간에 맞게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옥천이나
영동에서 겨우 대전까지 학교는 보냈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대전에서 하숙생활까지는 시킬 수 없었던 경우였다고 한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닐 때 나도 꽤 고생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나는 호강을 한 셈이었다. 집에서 한 30분 정도 되는 길을
걸어다녔으니 기차통학한 친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면 사실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W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달전부터 신장이 나빠져서 투석을 하고 있고, 신장이식수술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여름에 감기가
들었는데,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일을 하고 돌아다녔고 에어콘 바람을 많이 쐬어서 그랬다고 한다. 얼마나 절망에 빠져있을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는데.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5시경에
사무실에서 나와 청계산으로 갔다. 1시간만에 매봉에 올라갔다. 5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해서 내려오니 7시40분이 되었다. 후랏시 없이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해가 그만큼 길어진 것이다.
굴다리
밑에 아주머니들이 채소를 팔고 있었다. 한보따리에 4천원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싸냐고 물었더니,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하니까 떨이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채소는 내일 또 밭에서 뜯으면 된다고 웃고 있었다. 이런 아주머니들을 보면 뇌물로 1억씩 받는 사람들이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해야 한다. 4천원에 한보따리를 샀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양재동입구에
있는 하나로마트에 가보았다. 정말 대단한 규모였다. 물건도 많은 종류가 있었다. 24시간 영업을 한다고 한다.
라일락
향기와 아카시아 향기가 진하게 퍼지고 있는 밤이다. 산 꼭대기에서 본 꽃잎들이 떨어진 모습은 마치 잊혀진 사랑처럼 보여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슬픔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름답지만 그 밑바탕에는 항상 슬픔이 깃들어
있다. 평창군 허브농원에서 본 루피너스의 은은한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