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가을날의 오후
우리는 은행잎을 밟으며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그렇게 보냈던 시간들이
다시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잊혀졌던 건 아픔이었고
되살아났던 건 슬픔이었다
오늘
첫눈이 내렸다
순백의 눈물이 흐른다
온몸에서 너를 꺼내 창공에 던진다
너의 흔적을 지우려고
밤새도록 눈을 맞는다
첫 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가을날의 오후
우리는 은행잎을 밟으며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로 했다
그렇게 보냈던 시간들이
다시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잊혀졌던 건 아픔이었고
되살아났던 건 슬픔이었다
오늘
첫눈이 내렸다
순백의 눈물이 흐른다
온몸에서 너를 꺼내 창공에 던진다
너의 흔적을 지우려고
밤새도록 눈을 맞는다
사랑이 운다
사랑이 운다
너무 사랑하기에
너무 뜨겁게 사랑하기에
오늘도 우리는
사랑을 위해 운다
사랑은 소리 없이 운다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을 붙잡기 위해
사랑을 껴안기 위해
눈물을 삼키며
남 모르게 운다
사랑은 밤에 운다
사랑이 보이지 않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목련꽃 위에 눈물을 떨구며
밤새워 운다
사랑은 혼자서 운다
사랑이 떠난 빈 자리에
남겨진 추억을 붙잡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운다
첫 눈
아직은 낙엽이 있는데
단풍도 붉고 은행잎은 노란데
눈이 내린다
첫눈이 내린다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고 있다
오래 기다렸다
너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겨울을 꿈꿀 때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눈이
너와 함께 가까이 왔다
하얀 눈을 맞으며
너의 순수를 껴안는다
강변에 남은 빨간 겨울 장미가
저 혼자 가슴을 열고
첫눈을 빨아들인다
눈이 쌓인 곳에
붉은 꽃잎이 떨어졌다
첫경험의 기억이 피어나고
우리들의 동행은 계속된다
사랑했어요
창밖을 보아요
눈이 펑펑 내리고 있네요
수북이 쌓인 눈 위에
빨간 장미꽃들이
우리 사랑의 선혈처럼
떨어져 있어요
정말 사랑했어요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였어요
당신은 아주 고귀한 별이에요
사랑에 짓눌린
이 가슴을 풀어주세요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제발 따사로운 손길로
이 아픔을 감싸주세요
결코 잊지 않을래요
당신이 남긴 흔적을,
풀밭 같은 내 마음을
어루만졌던 촉감을
아주 먼 훗날
슬픈 기억으로 남기겠어요
동백꽃
파도는 동백꽃을 향했다
작은 섬에 숨어있는 꽃을 찾아왔다
오직 하나의 대상을 위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다
무수히 많은 바람을 견디며
낯선 갈매기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파도는 계속 나아갔다
파도는 마침내 섬에 이르러
자신의 몸을 던졌다
만남을 위해
그리움을 불태우기 위해
바위에 부딪치며 울었다
파도가 부딪칠 때
바위도 함께 울었다
꽃은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파도 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일까
달빛에 취해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꽃은
어둠속에서도 가슴을 채워줄
정열의 화신을 기다렸다
파도는 지쳐 쓰러졌다
하얀 거품을 뿜으며
슬픔을 바다에 뿌리고 있었다
파도의 눈물 때문에
촉촉이 젖은 바다에는
진한 사랑이 표류하고 있었다
바다는 짙은 어둠속에 묻히기 시작했다
먼곳에서 촛불이 켜졌다
파도는 꽃을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하고
달빛을 맞은 꽃잎은 파르르 떨었다
짙은 안개가 내리고
파도와 꽃 사이에는 안개가 깔려
서로를 잡을 수도 없고
껴안을 수도 없는 안타까움에
파도는 거칠게 몰아쳤다
꽃잎은 바람을 핑계로
바다로 몸을 날렸다
파도는 꽃잎을 껴안았다
파도에 실려 넘실대는 꽃잎을
바람이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에 젖은 꽃잎과 파도가
문득 정지해 있었다
<새의 추락>
커피잔에 작은 떨림이 전해진다
낙엽을 밟으며
가을을 짓누르고
강가를 걷는다
사랑을 만지고 싶어
사랑을 느끼고 싶어
너에게 다가갔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텅 빈 그곳에는
의미 없는 언어만이 뒹굴고
차가운 미소가 달빛에 가려
발길을 멈추게 했다
먼 곳에서
작은 새가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슬픈 날갯짓을 한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켜지며
새는 강으로 추락한다
사랑이 부서지며
강물이 커다란 떨림을 울린다
첫 눈
고독을 커피에 타서 마실 때
첫눈이 내린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 때문에
연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그때도 눈이 내렸어
서로 좋아 어쩔 수 없었을 때
보고 싶어 밤새도록 기다렸을 때
그 시간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어
첫눈은 언제나 잠시 내리다 말아
손을 잡았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첫눈처럼 사라지고
허전함이 엄습해 온 거야
첫눈은 그래서 고독을 따라 멀어져갔어
어디선가 같은 눈을 보고 있을 거야
눈 속으로 네가 보여
눈을 맞는 네가 아주 작아 보여
옛추억에 눌려서 그럴까
가슴 속에 담겨진 아쉬움 때문일까
둘이 아닌 하나라서 그럴까
곧 또 다시 눈이 올 거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 거야
그땐 같이 눈사람을 만들어
떨어져 있어도 만들 수 있잖아
진한 그리움이 눈을 뭉쳐줄 거야
눈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 거야
눈을 맞으며
눈이 내리고 있어요
우리 처음 만날 때도
뿌연 가로등 아래서
눈을 맞으며
서로를 보았지요
영원을 다짐하면서
그건 꿈이었어요
당신과 둘이서
눈 위를 뒹굴며
사랑이라는 불꽃을
피어오르게 했던 시간
문신은 바로 심장에 새겨졌어요
순간이었어도
행복이라고 믿어요
말없이 바라보던
서로의 가슴 속에
강한 바람이 스쳤지나갔던
그 겨울의 풍경들
머물지 못해
아쉬움만 남기고
지금껏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던 달빛의 차가움
오늘도 텅 빈 가슴을 시리게 하네요
겨울의 잉태
삶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죽음은 어디에서 마무리되는가
겨울은 삶을 잉태하고
봄에 싹을 피운다
침묵하자
긴 잠을 자도록
명상보다 깊은 겨울 잠
꿈에 취하고
사랑에 취하자
눈 밑으로 들어가자
미움과 허물이 덮이도록
맑은 정신으로
서로를 보자
하얀 눈을 맞으며
겨울의 고요함
얼어붙은 대지에
봄이 올 때까지
서로를 부둥켜 안자
두 날개로 날 때까지
우리 사랑하자
진한 사랑을 하자
겨울은 우리의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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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곳에서
그렇게 그곳에 머물렀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멍하니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허망함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고
깊은 곳에 숨어있던 뜨거운 욕망이 치솟아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겨울 앞에 선 나목처럼
사랑과 미움의 사치스러움에서 벗어나
그 무엇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지금까지 집착했던 몇 가지 일들이
의미 없음이나 적은 가치로 전락했다
깊은 절망에 빠져
실종된 정신을 찾아 거친 벌판을 방황했다
갑자기 눈이 내린다
정지된 시간을 손에 잡은 채
추상화된 너의 존재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