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동에서>

갑자기 비가 내린다
들어갈 때는 안 그랬는데
상황은 언제나 변한다
갑자기 생기는 거다

법정은 조용하다
수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고
원망과 증오가 폭발하고 있는데도
모든 것은 고요 속에 억눌린다

문을 나서면 얼마나 달라질까
정신은 가벼워질까
더 혼탁하고 무거워질까
거리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우울한 표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빗소리를 들으며
단풍을 본다
물에 젖은 가을잎이 차분하다
운명을 받아들이며
마지막 축제로 향한다

한때 청춘이었다
젊음을 불태우기도 했다
감성에 이끌려 초원으로 갔고
벌판에서 벌거벗은 채
허공을 향해 발버둥쳤다

그곳에는 세월이 있다
선명한 흔적으로 남았다
삭막한 아스팔트에서
비정한 시선을 피하면서
먹을 것을 찾아 나선 산짐승처럼
쳇바퀴를 돌고 있던 시간이
빗물 속에 묻혀 있다

비가 그치면 걸을 거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성 때문에 억눌리지 않았던 것처럼
현실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가을 속으로 나아갈 거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가 떠난다면>  (0) 2020.11.11
사랑의 탑  (0) 2020.11.11
<너를 부르는 시간>  (0) 2020.11.10
<바닷가에서>  (0) 2020.11.10
<아무리 아파도>  (0) 2020.11.10



<너를 부르는 시간>

꽃잎이 눈처럼 날리던 그날 밤
꽃잎 속에서
나는 너를 만났고
조용한 미소에 취해
꽃길을 걸었다

눈이 부셔 눈물이 나던
화사한 벚꽃 아래서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서 울었다

속삭이며 불러보았던
서로의 이름이
가지에 걸렸다
낯선 연이 걸려 있던
같은 자리에 매달려
달빛에 젖고 있었다

지는 벚꽃을 따라
떠나간 사람
순백의 자리에
거리의 공허함만 남아
사랑의 촛불을 켜면
나는 다시 너의 이름을 부른다

가슴을 찢는 아픔들이
비에 젖은 꽃잎들과 함께
유리창을 수놓고 있다
멀리 떠나간 그리움이
불꽃을 피우는 시간
꽃잎들이 빗물 위로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탑  (0) 2020.11.11
공덕동에서  (0) 2020.11.11
<바닷가에서>  (0) 2020.11.10
<아무리 아파도>  (0) 2020.11.10
<작품 감상>  (0) 2020.11.10

 


<바닷가에서>

바닷가의 아침은 고요하다
거칠었던 파도도 가라앉고
밤새 가냘픈 미소를 지었던 달도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시간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그린다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작은 배가 돌아오고
그 뒤를 갈매기들이 따라왔다

어부들을 마중나간 아낙네들은
해가 뜨는 동편을 보며
퍼득이는 멸치들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오늘도 살아있음을 기억한다

상큼한 날갯짓을 보며
낭만을 꿈꾸었던 우리에게
새들은 지독한 현실 앞에서
사랑이 질식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너무 넓어 사랑을 찾지 못한 채
흰 물결에 몸을 맡기고
조개처럼 파편이 되어 뒹구는
슬픔을 모래사장에 묻는다

바닷가의 아침은 아프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의 탑이
무너지고 있는 이른 시간에
신음소리를 내지도 못한 채
두 마음은 갈매기들의 눈빛을 본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덕동에서  (0) 2020.11.11
<너를 부르는 시간>  (0) 2020.11.10
<아무리 아파도>  (0) 2020.11.10
<작품 감상>  (0) 2020.11.10
<달빛 아래서>  (0) 2020.11.10




<아무리 아파도>

사랑한다면
벚꽃 아래에서는
아무 말 하지 말자

정말 사랑한다면
벚꽃 아래에서는
단지 눈물만 흘리자

순수!
아무리 아프더라도
꽃잎이 떨어지는 밤에는
우리 순백의 눈송이를 뭉치자
그리고
창공을 향해 던지자

너와 내가
함께 걸었던
그 꽃길에는
우리가 켜놓았던 사랑의 촛불이
밤새 타고 있다

사랑!
둘이 만들었지만
함께 나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도
우리는 낯선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사랑한다면
떨어지는 벚꽃을 위해
오늘 밤
진한 와인에 취한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자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를 부르는 시간>  (0) 2020.11.10
<바닷가에서>  (0) 2020.11.10
<작품 감상>  (0) 2020.11.10
<달빛 아래서>  (0) 2020.11.10
<한강의 가을>  (0) 2020.11.10

 



<작품 감상>

내 시선이 이 작품 앞에 멈추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이 작품에서
사랑의 미묘함, 복잡성, 추상성을 발견한다.

사랑의 정점에는 언제나
차가운 이성이 가려진다.
짦은 기간의 열정,
그로 인해 감성이 타오르고,
두 존재는 가깝게 다가간다.

그렇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다.
일시적으로 교차한다고 해서
하나의 유기체가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랑은 아프다.
사랑은 혼자 고뇌하고,
절망은 혼자 깊어진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없는 건 아니다.
무색무취의 회색지대가 있다.
아주 오랫동안
침묵속에 걸어야 하는
메마른 건기를 지나야 한다.

청색의 희망이 있다.
아주 진한 남색의 바다가 펼쳐진다.
무감각했던 피부가 껍질을 벗고
가을 색에 물들어가는 시간,
사랑은 고통을 망각하고
한 조각 설탕이 된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닷가에서>  (0) 2020.11.10
<아무리 아파도>  (0) 2020.11.10
<달빛 아래서>  (0) 2020.11.10
<한강의 가을>  (0) 2020.11.10
<너 때문이야>  (0) 2020.11.10

 



<달빛 아래서>

벚꽃 아래서
눈이 부셔 눈물이 난다

피아노 건반에 떨어지는
꽃잎들은
사랑의 아리아를 들려주고
우리는 꽃잎을 손안에 넣고
서로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어도
이미 익숙해진
표정과 몸짓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사랑이 개여울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음을

가까이 다가길 수 없는
저 높은 까치집에 숨은
너의 마음은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하는
낯선 타인의 심장일 뿐
박동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여
슬픈 가슴을 꽃잎에 쌓아
곁에 두고 잠에 든다

달빛 때문에
눈이 부셔 눈물이 난다

너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달빛은
내게 구원처럼 다가오고
우리는 달빛을 미소 안에 넣은 채
서로를 껴안는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무리 아파도>  (0) 2020.11.10
<작품 감상>  (0) 2020.11.10
<한강의 가을>  (0) 2020.11.10
<너 때문이야>  (0) 2020.11.10
너의 이름  (0) 2020.11.09

 


<한강의 가을>

작은 가방 하나 매고 나섰다.
성수대교남단에서 시작했다.
늦은 가을, 더 늦기 전에 강물을 보고 싶었다.

11월의 한강은 파랬다.
하늘색과 구별하기 어려웠다.
강물은 싱싱해 보였다.
사랑과 미움을 모두 담은 채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동호대교가 나오고, 한남대교가 나온다.
한남대교를 지나면서부터 고수부지는 넓고 아름다웠다.
반포대교를 전후로 아주 넓고 잘 가꾸어져있다.

가을나무들이 진하게 물들어있다.
은행잎의 노랑, 단풍잎의 빨강.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나올 정도다.
자연은 저렇게 아름다운데,
인간은 그렇지 못한 이유는 무얼까?

왜 세속에 찌들어,
욕망의 노예가 되고,
남을 미워하고,
사랑을 거부하면서 살아갈까?

중간에 커피를 한잔 마셨다.
선선한 날씨에 따뜻함이
가슴속까지 내려온다.

동작대교, 한강대교, 한강철교를 지나면 여의도에 다다른다.
63빌딩 앞까지 걸어갔다.
성수대교에서 63빌딩까지 12킬로미터가 된다.
3시간 정도 걸었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대부분 개인적인 내 삶의 생각이다.
너무 아름다운 가을 날
걸었더니 머리가 맑아졌다.
돌아올 때는 택시를 탔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품 감상>  (0) 2020.11.10
<달빛 아래서>  (0) 2020.11.10
<너 때문이야>  (0) 2020.11.10
너의 이름  (0) 2020.11.09
서초역에서  (0) 2020.11.09



<너 때문이야>

오래 된 향나무를 둘러싼 것은
풀과 벌레가 아니야
차가운 아스팔트
무표정한 행인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퀴뿐

낮아지길 원치 않아도
반드시 내려가야 오를 수 있어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오는 작은 나무들
그들에게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걸까
이제는 늦은 가을날의
낙엽 하나 보이지 않네

흔들리는 공간에서도
너의 동행을 느껴
지금 같이 가고 있는 거야
혼자가 아냐
차창 밖에 버려진 거야
우리를 붙잡을 수 없어
너무 빠르게 질주하니까

무엇을 바꾼다는 건
언제나 작은 설레임과 두려움
2호선에서 8호선이야
3이 아니고 8인 것은
암사동을 원하기 때문이지

환승은 너를 버리는 것이 아냐
똑 같은 너를 다시 찾는 거야
백 넘버가 달라졌다고
네가 아닌 건 아니잖아

정신 없이 달리다가
캄캄한 공간을 헤치고 나아가다
갑자기 정지하니까 이상해
종점이니까 나가라는 거야
내쫓기듯이 밖으로 나왔어
암사 벌판의 공기는 맑았어
이제야 강한 쇠사슬에서 벗어난 거야

초원에서의 밤은
모든 움직임을 거부하지
잠시 약육강식의 게임이 중단되는 거야
하지만 인간은 다른 거야
어두워지면 더 시끄러워서

불을 피우고
동물의 사체를 놓고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거야
술에 취해 낯선 사랑을 껴안기도 하고
대상 없는 울분을 터뜨리기도 해
비정상적인 동물들이
초원에서 너무 멀리 뛰쳐 나온 거야
그래서 너와 나는
조용한 찻집에서 머무는 거지

이룰 수 없는 것을 꿈이라고 해
참을 수 없는 것을 아픔이라고 해
너는 그냥 웃었어
나도 따라서 웃었어
의미는 없었을 거야
아무런 의미도 보이지 않았어

가을이 깊어가고 있어
서울의 밤은 온통 들떠 있어
단풍 때문이야
낙엽 때문이야
그리고 너 때문이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빛 아래서>  (0) 2020.11.10
<한강의 가을>  (0) 2020.11.10
너의 이름  (0) 2020.11.09
서초역에서  (0) 2020.11.09
<사랑의 진실>  (0) 2020.11.08

 


너의 이름

우리가 만들었던 사랑의 꽃이
겨울바람에 날리고 있다
다가가면서 불렀던
너의 이름
애타도록 불러도
메아리만 남긴 채
강물에 뿌려졌던 사랑의 파편들

사랑이 그곳에 있다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고
쥐어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그 사랑의 아련함
비련의 그 사랑

사랑했기에 불러보았던 이름
우리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불타는 화산 속으로
어지럽게 빨려드는
사랑의 화살들

어두워지면 가라앉을까
눈이 내리면 식을 수 있을까
너를 향한 그리움
너를 찾는 애절함
오늘도 너의 이름을 부른다

사랑은 아픔을 주고
사랑은 슬픔을 준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눈물의 강을 만들고
너로 인해 가슴이 메어지면
이 밤은 나 혼자만의 밤이 된다

오늘 눈이 내리면
그 자리에 서서
밤을 새우자
나뭇잎에 내리는 눈꽃들이
네 미소처럼 가슴에 쌓이는
별을 헤이는 밤에는
오늘도 너의 이름을 부른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의 가을>  (0) 2020.11.10
<너 때문이야>  (0) 2020.11.10
서초역에서  (0) 2020.11.09
<사랑의 진실>  (0) 2020.11.08
순수의 색깔  (0) 2020.11.06



서초역에서

오래 된 향나무를 둘러싼 것은
풀과 벌레가 아니다
차가운 아스팔트
무표정한 행인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퀴들 뿐

낮아지길 원치 않아도
반드시 내려가야 오를 수 있다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오는 작은 나무들
그들에게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걸까
바닦에는 늦은 가을날의
낙엽 하나 보이지 않는다

흔들리는 공간에서도
너의 동행을 느낀다
지금 같이 가고 있는 거야
혼자가 아냐
차창 밖에 버려진 거야
우리를 붙잡을 수 없어
너무 빠르게 질주하니까

무엇을 바꾼다는 건
언제나 작은 설레임과 두려움이다
2호선에서 8호선이야
3이 아니고 8인 것은
암사동을 원하기 때문이지

환승은 너를 버리는 것이 아냐
똑 같은 너를 다시 찾는 거야
백 넘버가 달라졌다고
네가 아닌 건 아니잖아

정신 없이 달리다가
캄캄한 공간을 헤치고 나아가다가
갑자기 정지하니까 이상하다
종점이니까 나가라는 거야
내쫓기듯이 밖으로 나왔어
암사 벌판의 공기는 맑았어
이제야 강한 쇠사슬에서 벗어난 거야

초원에서의 밤은
모든 움직임을 거부한다
잠시 약육강식의 게임은 중단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거야
어두워지면 더 시끄러워지는 거야

불을 피우고
동물의 시체를 놓고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거야
술에 취해 낯선 사랑을 껴안기도 하고
대상 없는 울분을 떠뜨리기도 해
비정상적인 동물들이
초원에서 너무 멀리 뛰쳐 나온 거야
그래서 너와 나는
조용한 찻집에서 머물고 있는 거야

이룰 수 없는 것을 꿈이라고 해
참을 수 없는 것을 아픔이라고 해
너는 그냥 웃었어
나도 따라서 웃었어
의미는 없었을 거야
아무런 의미도 보이지 않았어

가을이 깊어가고 있어
서울의 밤은 온통 들떠 있네
단풍 때문이야
낙엽 때문이야
그리고 너 때문이야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 때문이야>  (0) 2020.11.10
너의 이름  (0) 2020.11.09
<사랑의 진실>  (0) 2020.11.08
순수의 색깔  (0) 2020.11.06
남한산성에서  (0) 2020.11.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