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오늘은 관악산 등산을 가는 날이다. 고등학교 총 동창회에서 마련한 관악산 등산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가려다가 입술도 불어터있는 상태여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입술이 화제가 될 것이 귀찮아 가는 것을 포기했다. 지난 번 지리산 산행때 무리를 해서 나타난 증상이다.

 

입술에 이 정도 부풀어 오른 것을 가지고도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것이 꺼려지는 걸 보니,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의 고민이 얼마나 큰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직접 겪어 보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늦게 화현면에 갔다. 화현3리에 시골집이 있다고 하기에 구경을 갔다. 물어 물어 그 번지를 찾아갔다. 시골에서는 번지수를 가지고 집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동네 사람들도 잘 모른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 겨우 찾았다. 개를 많이 키우고 있었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나갔는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개가 사나워보였다. 대지는 200평이고, 밭이 400평이 있다는 것인데, 바로 옆으로 고속화도로가 지나고 있어 매우 시끄러웠다.

 

그냥 구경만 하고 돌아왔다. 가을 논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볏단이 놓여 있었다. 벼나락만 털어가고 볏집은 그대로 논에 널어 놓았다. 추수가 끝난 시골은 평안해 보였다.

 

운악산 포도를 팔고 있기에 한 박스를 사왔다. 10킬로그램에 3만3천원이다. 이달말이면 포도도 끝물이라고 한다. 나는 포도를 참 좋아한다. 과일중에서도 제일 좋아한다. 특히 운악산 포도는 신맛이 적고 물이 많아 좋아한다. 그런 포도가 이제 끝물이라고 하니 약간 서운한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시골로 가서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가끔 시골을 가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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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점 없는 높은 하늘, 차가운 기운이 있는 시원한 바람, 낙엽이 밟히는 촉감.

 

이런 것으로 표현되는 가을날씨, 나는 아름다운 산행을 했다.

 

어제 저녁 여의도에 갔다. 자문위원으로서 당번이었다. 가서 일을 보고 있는데, J 선배가 왔다. 자신이 당번이라는 것이다. 벽에 붙어있는 표를 보니 내가 당번이었다. 그러나 J 선배는 그 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고, 자신이 팩스로 받은 표에는 자신이 당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즉시 양보를 하고 나왔다. 더 이상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한 사람이 양보하면 문제는 간단히 끝나는 일이다.

 

밤에 동대문 시장에 갔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계속해서 휴대전화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가고 있었다. 게다가 난폭운전을 해서 몹시 불안했다. 날씨가 추워져서 등산복을 투터운 것으로 사왔다. 마침 마음에 두는 것이 눈에 띄여 즉시 샀다.

 

동대문 시장은 밤에 휘황찬란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다닌다. 상인들도 밤늦도록 물건을 팔고 있다. 가끔 가보는 시장 분위기에 빠져본다. 12시 다 되어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오늘 새벽 7시에 양재역 수협 앞에서 버스를 탔다. 오늘 산행은 백두대간 13회차라고 한다. 충청북도 영동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대향면 사이를 가르는 구간이다. 중간에 황학산이 있다. 산행은 우두령에서 시작되었다.

 

우두령 절개지를 따라서 바람재, 넓은 헬기장을 지나 형제봉을 올랐다. 그 다음 황학산 정상에 올랐다. 황학산은 1,111미터다. 황학산 정상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새로 들어온 회원들이 음식을 아주 정성들여 많이 가지고 왔다. 맛있게 먹었다. 직지사 쪽으로 하산했다. 6시간 정도 산행을 했다.

 

가을은 가을이었다.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갈대밭을 지날 때 바람이 몹시 불었다. 갈대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었다. 갈색의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산의 능선을 지날 때는 바람이 아주 세찼다. 추웠다. 모자가 바람에 날려갈 정도였다.

 

바람이 없는 곳을 지날 때는 따뜻한 날씨다. 한쪽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한쪽은 햇볕의 따스함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세상 살이도 그런 것이리라. 마지막 코스에서 급경사를 내려올 때는 발가락이 아팠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분이 등산배낭을 보고 어디를 다녀 왔느냐고 묻는다. 황학산을 다녀왔다고 하니 직지사 있는 곳 아니냐고 물으면서, 등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개인택시 기사 7 사람이 모임을 만들어 이틀 일하고 하루 쉴 때면 연천에 있는 고대산을 자주 간다고 한다. 의정부에서 갈아타면 기차가 가는데, 산 입구에 보신탕집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17년 동안 쉬지 않고 사람들과 등산을 했다고 한다.

 

자신은 한달에 용돈을 4만원만 쓴다고 한다. 소주도 3일에 한병씩 한달에 10명만을 마신다고 한다. 부인이 슈퍼에서 소주 10병을 사다 놓으면 3일에 한병씩 꺼내 마신다고 한다. 자녀 2명은 모두 출가시키고 두 부부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코펠을 준비해서 산행을 하면, 찌게도 끓여 먹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나도 언제 한번 고대산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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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전 11시에 서울구치소로 갔다. 세 사람을 만났다. M 씨는 항소심 공판이 거의 끝나는 상황이다. 몹시 불안해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을 잘못 만나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운명이라고 믿고 있었다.

 

C 씨는 1심에서 3년 6월을 받았는데 항소심에서 2년으로 감형이 되었다. 무척 고마워하고 있었다. 내년 말경 출소한다고 한다. 어떻게 견디겠느냐고 하니, 지금까지 지내온 것으로 보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대답했다. 표정도 밝아 보였다.

 

재무분석사 시험 준비를 하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현재 누범 방에 있는데, 경제사범이라 봉사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봉사를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게 들어와 있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 선임할 여건도 안 되어 안타깝기만 하다고 한다.

 

Y 씨는 검찰의 부당한 법적용에 대해 분개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공판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밝힐 수 있을 것인지 고심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다.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접견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이 없어 차 있는 곳까지 오느라고 비를 맞았다. 높은 담장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절망뿐이다. 그 안에서 희망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높은 담장 한쪽에는 경비를 서는 사람이 초소 안에 있었다. 무엇을 감시하고 있는 것일까?

 

바깥 세상과 차단된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하루는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고, 구금된 상태에서 느끼는 무력감은 갈수록 커지는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마음을 믿고 있었다. 가족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비를 맞고 나오는데 잘 아는 변호사를 만났다. 머리가 새치도 하나 없이 너무 까많게 보여 어떻게 흰 머리가 하나도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발이라고 한다. 순간 미안했다. 공연히 그런 불필요한 질문을 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빨리 걸어나와 비를 덜 맞아야 하는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비를 맞고 걸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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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지리산 산행을 무리하게 한 탓으로 입술 주변이 부풀어 올랐다.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함 때문에 얻은 후유증이다. 몸살이 난 것은 아니었으나 피곤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래서 힘든 산행을 해냈다는 뿌듯함 때문에 기분은 좋다. 콘디션도 나쁘지 않다.

 

어제 수요일 점심은 나 선생님과 함께 피자를 시켜 사무실에서 먹었다. 나 선생님이 피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후 4시에는 IPMG 회의를 했다.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 특히 이 회장님이 참석했다. 좋은 방안을 많이 논의했다.

 

학장님께서 오셔서 함께 늘푸른 식당으로 갔다. 장 선생, 윤 선생 등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호프집에 가서 향후 운영방안을 논의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오늘 오후 3시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갔다. 차별조정위원 위촉장을 수여받고, 위원장님 등과 간담회를 하고 돌아왔다. 사무총장실에 가서 차를 마셨다. 대학 동기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법무담당관도 법무부에서 오래 근무했던 분이라 잘 아는 사이다.

 

성차별조정위원으로 김 교수, 안 교수 등과 다시 함께 일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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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빈 검찰총장의 퇴임식이 있었다. 어느 여자 검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았다.

 

대호빌딩 선궁에서 동우회 편집위원 모임이 있었다. 전에 서울 회장을 지낸 L 변호사님이 참석했다. 송태호 선생이 '뚜벅이의 풍월'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출간했다. 시집을 증정받았다. 송 선샌은 '동강의 빠른 물결'이라는 시집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시집을 냈다고 한다. 고량주를 몇 잔 마시고 나니 약간 술기운이 올랐다. 오래 된 지인들이라 참 마음이 편하다.

 

퇴근 후에 명일동에 있는 이마트 부근에 가서 바람을 쑀다. 대성문고에 가서 책을 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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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산행을 통해서 나는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해지면 얼마나 나약해지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 단련되지 않은 체력으로 무리한 산행을 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나는 다른 회원들이 나보다 세시간 이상 단축해서 전코스를 주파하는 것을 보고 그걸 알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도 별로 힝을 들이지 않고 산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힘이 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모두 참고 견디는 것뿐이겠지. 천왕봉 올라가는 마지막 코스는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천왕봉에 올라가 주변 경치를 보니 올라갈 때의 힘든 일은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사람처럼 민감한 존재는 없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을산을 보면서 낙엽과 단풍 속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시 한편에 대한 시상이 떠오르기를 바랬다. 그러나 막상 한밤중에 시작된 산행에서 그런 여유는 모두 사라졌다. 당장 힘이 들고, 위험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아야 하고, 졸렵고 갈증이 나는 상태에서 시상은 그림의 떡이었다.

 

사람은 극한상황이 되면, 당장 발가락이 아픈 것,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은 것,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편하게 쉬고 싶은 것만 생각난다. 다른 문제는 이차적인 것이었다. 현실적을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문학이나 예술은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지리산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면, 산이 알록달록 채색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는 단풍, 많이 물이 들어있었다. 나는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 보면서 멀리 떠 있는 구름 한떼를 보고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다음에 또 가고 싶다. 이번처럼 무리한 코스는 안 되고, 나에게 맞는 하루 코스로 6-7시간 정도면 좋겠다. 다음에는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찍어두어야겠다.

 

지금 생각해도 마지막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주었던 우 00 산악대장님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힘이 들때, 절망에 처했을 때 남을 도와주면 그토록 고마움은 가슴 속에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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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등산대장은 천왕봉을 넘으면 내려가는 길인데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지도를 나누어주었다.

 

천왕봉을 지나서 내려가는 길도 무척 험했다. 어렵게 내려갔는데 또 중봉, 써리봉이라는 높은 봉우리들이 나왔다. 다시 올라가야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치발목 대피소까지 무척 힘이 들게 갔다. 더군다나 장터목 대피소에서 물이 거의 떨어졌는데, 물을 구하지 못했다. 생수를 팔지 않는 것이었다.

 

목이 말라 빨라 치발목 산장에 도착해야 하는데, 너무 길이 멀었다. 그곳을 지나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 대답이 달랐다. 곧 나온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물을 기대하고 어렵게 도착해 보니 물은 팔지 않았다. 포카리스 비슷한 이온음료수만 팔아 몇 캔을 샀다.

 

치발목 대피소를 지나니 완전히 지쳤다. 빨리 버스가 있는 곳으로 와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두 사람만 남아 길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외로운 산행을 했다. 치발목 대피소에 이르기 전에 핸드폰 밧데리가 다 떨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통화가 되지 않는 산 속 같은 곳에서는 주파수가 맞지 않아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곧 바로 밧데리가 나간다는 설명이었다. 정말 그랬다. 별로 사용도 하지 않고, 어제 밤 새로 갈아끼어놓았는데 모두 나갔다.

 

등산대장에게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 주고 먼저 버스가 출발하도록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답답했다. 그래서 중간에 어떤 사람의 핸드폰을 빌려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이 안됐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나중에 시간이 되면 등산대장에게 우리의 사정을 설명해주고, 우리가 대원사쪽으로 잘못 방향을 들어 가고 있으니 버스가 먼저 출발하도록 전해 달라고 했다.

 

그 남자 세사람은 우리와 이야기한 후 아주 빠른 속도록 우리 앞에서 사라졌다. 대원사 가는 길은 매우 험해보였다. 기나긴 산속 계곡을 따라 몇 시간을 가야할 것처럼 보였다. 아주 절망했다. 힘은 다 빠지고, 등에는 무거운 배낭이 있고, 갈 길은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험했다. 견디기 어려웠다.

 

돌길을 많이 걸어 발바닥이 아팠고, 발톱이 아파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자연히 속도는 떨어지고, 다리는 휘청거렸다. 언제 마을로 내려갈지 알 수가 없었다. 물도 없고, 답답했다. 깊은 산속에서는 물 한방울 구경할 수가 없었다.

 

지쳐서 앉아 있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전쟁중에 병사들이 이래서 죽는가 보다 싶었다. 몇달씩 전쟁터에서 피곤은 쌓이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음식을 제대로 못머고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는 것이 이해가 갔다.

 

무제치기 폭포를 지나니 이정표가 나왔다. 대원사 및 유평리 가는 이정표와 새재산장을 가는 이정표였다. 나는 어떤 등산객의 설명을 듣고 당연히 유평리로 알고 선택했다. 그런데 한참 험한 길을 가다 보니 유평리 사인판은 없고 대원사만 4.9킬로미터라고 씌여져 있었다. 아래 계곡을 보니 몇 키로를 가야할 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라고 믿었다. 몹시 당황했다. 두렵기도 했다. 길을 잃고 헤매면 어쩌나 싶었다. 일행도 불안해하고 몹시 지쳐 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새재산장이라는 이정표도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냥 대원사 쪽으로 가지로 했다. 한참 가다 보니 유평리 마을 사인판이 보였다. 유평리 아을 쪽으로 가는데 산속은 어두워지는 기미가 보였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다.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갑자기 등산대장이 나타났다. 다른 등산객이 끝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주어서 내가 그곳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마중을 나온 것이었다. 대장은 나를 보자마자 배낭을 받아 맸다. 정말 고마웠다.

 

유평리 마을에서 회원들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평마을 어떤 막걸리집인데, 그 동네에는 감이 엄청 많이 열려 있었다. 잎은 다 떨어지고 감만 몇백개씩 달려 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감을 두개 먹었다. 그리고 그집 주인이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대원사 앞을 지나 관광버스 있는 곳으로 왔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새벽 3시부터 산행을 시작해 오후 4시 45분까지 무려 14시간 동안이나 산행을 계속했던 것이다. 지치고 지쳤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면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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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산 속에서 한 밤중에 후랫쉬를 꺼보았다. 무시무시한 암흑세계다. 그런 상태로 밤을 새우게 되면 무서워도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머리 위 후랫쉬는 비취는 구멍이 작아도 아주 밝기가 강했다. 걸으면서 아주 넓은 반경을 비춰주고 있었다.

 

회원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왔다면서 지리산 산행을 몇 차례 했다고 해서 이번 산행에 넣어 주었는데, 올라가면서 계속 말을 하기 시작해, 대장이 산행 때 오르막길에서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아야 호흡도 조절이 되고,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분은 계속 대화를 하면서 올라가다가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밀금폭포 부근 매표소에서 세석 대피소를 거쳐, 촛대봉으로 올라갔다. 촛대봉에서 삼신봉을 거쳐, 연하봉에 올랐다. 그 다음 장터목 대피소에 이르렀다. 장터목 대피소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가 쌀쌀해서 준비해 간 음식을 풀밭에서 먹는 것이 불편했다.

 

장터목 대피소에 들어가니 드러누워 눈을 붙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그곳에 맨마루바닥에 누워 눈을 붙였다. 잠을 자지 않고 산행을 하니, 몸도 무척 피곤하고 졸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곳에서 30분 정도를 자고 나오니 우리 등산팀 중에서 맨 끝 후미가 되었다. 나와 또 한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에 올라가는 길은 무척 험하기도 하고, 힘이 들었다. 아주 지친 상태였다. 천왕봉에 올라가기 직전에 누가 내 이름을 불러 쳐다보니 L 씨였다. 창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L 씨가 10여명과 함께 산행을 온 것이었다. 반가웠다.

 

나머지 일행도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제 저녁때 가까운 곳에 와서 잠을 자고 아침 산행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10시반에 출발해서 새벽 3시부터 산행을 계속 하고 있다고 설명하니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마침내 힘들여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은 해발 1915미터로서 남한 육지내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이를 악물고 등산을 하고, 그런 산악회에 끼지 않으면 나 혼자서는 결코 이런 곳에 올라와 그 좋은 경치를 구경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리산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나는 단풍이 들어가는 아룸다운 산의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저 아름다운 산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 복잡한 곳을 떠나지 못한다. 아니면 돈과 권력이 워낙 무거워 그 무게에 눌려 쉽게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돈에서 벗어나고, 명예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산에 올라가 맑은 공기를 쐬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다시 느껴 보았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르고 내리면서 서로 인사도 잘 한다. 개중에는 아주 무표정하게 사람을 만나는 걸 귀찮게 생각하고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그랬다.

 

가을산행을 옷을 수시로 입었다 벗었다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바람이 강해 무척 추웠다. 그러다가 조금 내리막길을 걸으면 따뜻해서 잠바를 벗어야 했다. 그러다가 숲 속에 들어가 햇볕이 비추지 않으며 또 추웠다.

 

그래서 배낭도 무거웠다. 허리도 아프고 등도 아팠다.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되고, 무단투기를 하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해지고, 국립공원 사법경찰관에 의해 단속이 된다는 취지였다. 그것도 수시로 계속해서 되풀이 하고 있었다.

 

모처럼 힘들여 높은 곳에 올라온 등산객들에게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 계도를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계속 반복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았다. 시민들 의식수준도 많이 달라졌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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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엄청난 무리였다. 그게 이번 산행에 대한 결론이다.

 

금요일 점심은 삼성생명 지하 1층에 있는 일식당 미야꼬에서 했다. 업무 때문에 L 부장을 만났다. 다이에 앉아 초밥을 시켰다. 다이가 일본말인데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나중에 멍게로 만든 밥이라고 하면서 별미를 내놓았다. 맛이 특이했다. 전복 내장으로 만든 밥은 약간 비린내가 나는데, 멍게로 만든 건 그런 냄새가 없었다.

 

L 부장은 무척 바쁜 사람이다. 식사 시간 도중에서 연신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 그만큼 찾는 전화가 많다. 주방장과 대화를 해보니, 요새는 일식당이 잘 안된다고 한다. 사람들의 접대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술도 적게 마신다. 그래서 비싼 일식집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오후에 최 박사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최 박사는 TV와 라디오에 많이 출연한다. 어느 연기자와 함께 와서 이런 저런 문제를 상의했다. 워낙 부지런해서 하는 일도 참 많은 사람이다. 성격도 아주 좋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함께 좋은 일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구체적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5시 반에 엘지아트센터에서 박 변호사의 따님 결혼식이 있어 참석했다. 연수원 동기인 최 부장을 만났다. 박 변호사와는 연수원 동기일 뿐 아니라, 옛날에 여의도에서 함께 살아 이웃사촌이었다. 꽤 오래 됐는데도 그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걸 보면 사람이란 25세 정도에 형성된 성격이나 인격이 그래도 평생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밤 10시 반에 서초역 부근 수협은행 앞에서 버스를 탔다. 지리산 산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무박2일 등산에 끼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밤 10시에 출발한다고 잘못 알고 10시까지 도착했으나, 아무도 없어 전화로 다시 확인하니 10시 반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30분간을 길에서 하는 일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그런 여유 있는 30분의 시간이 단순한 낭비는 아니었다. 양재역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구경을 했다. 무릅 밴드를 사려고 약국을 찾았으나, 약국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군데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끝내 무릅 밴드는 사지 못했다.  

 

그동안 등산 다닐 때마다 느꼈던 등산 등에 쓸 지갑을 구한다고 하면서 미루어 왔는데, 양재역 지하철에 들어가니 지갑 파는 곳이 있어 만원짜리 접는 지갑 하나를 샀다. 이번에 써 보니 매우 편리했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지갑은 등산 때 땀에 젖어 가죽이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구겨지기도 해서 불편했다. 양복에 넣고 다니는 지갑과 등산용 지갑은 다른 것이다.

 

버스는 새벽 3시경 목적지에 도착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밀금폭포 부근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마침 등산대장에게 동대문시장에서 사가지고 와달라고 전화로 부탁한 야간등산용 후랫시를 받았다. 머리에 쓰는 것인데 7만9천원이다. 불이 아주 밝았다. 머리에 쓰니 편리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산행에서는 지난 번 설악산 야간 산행때 사용했던 손후랫쉬도 함께 가지고 등산을 했다.

 

날씨가 쌀쌀했다. 잠바를 가지고 가지 않았더라면 고생을 할뻔 했다. 밤날씨는 산에 들어가니 더욱 쌀쌀했다. 10월 중순의 가을날씨의 위력을 느꼈다. 처음에는 선두에 섰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맨 마지막이 되었다. 등산을 할 때 선두에서 떨어지면 곤란하다.

 

세상 사는 일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조직생활을 할 때 동기들 중에서 선두에 서는 것과 뒤에 처지는 것은 산행과 비슷하다. 어차피 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처져 있다는 생각이 결코 유쾌하지 않다.

 

세석 대피소에 이르니 6시 반이 넘어 날이 훤해졌다. 원래 사람들은 촛대봉에 가서 일출광경을 본다고 했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아 일출광경을 보지 못했다. 날씨가 어두워지는 것도 한 순간이고 환해지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후랫쉬가 필요없게 되었다.

 

깜깜한 밤에 산길을 걸을 때 후랫쉬에 우리는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래서 너무나 소중했다. 그러나 날이 조금 밝아지자 후랫쉬는 아무 필요 없는 귀찮은 물건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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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좋고, 시간은 적다.

 

가을은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 10월 12일(수요일)에는 점심 시간에 동방생명 지하 일식당으로 갔다. 두 사람을 만나 업무 협의를 했다. 일식당이 깨끗했다. 남대문 앞에서 내려 도로를 걸어가는데 말쑥하게 차려 입은 직장인들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번화한 지역이다.

 

K 씨는 대그룹에 들어가 상무로 일하고 있었다. 몹시 바뻐 보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유능한 사람들을 업무차 만나 함께 일을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오후 2시경 서초동을 출발했다. 출판사를 하는 장 사장과 함께 차를 타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탔다. 모처럼 만나 할 이야기가 많다 보니 어느 새 목적지에 닿았다. 해미에서 예산방향으로 조금 가다 보니 한서대학교 캠퍼스가 있었다. 정 부장은 이미 와 있었다.

 

캠퍼스는 20여년이 되었다는데 아주 깨끗했다. 산 속에 있어 공기도 아주 맑았다. 캠퍼스를 둘러보고 그 대학 교수님과 함께 우리 일행은 천안으로 향했다. 천안까지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다. 김 교수님을 모시고 2시간 동안 가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천안에 가니 K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근무하는 K 씨도 나왔다. 그래서 전체 일행은 9명이나 되었다. 일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서초동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되었다. 차를 많이 타고 술을 마셔서 피곤했다.

 

오늘은 점심 시간에 김 선생님이 찾아왔다. 강희제에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우리 보고 독한 술을 마시지 말라고 충고했다. 자신의 친구들을 보니, 독한 술을 많이 마셨던 사람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떴거나, 몸이 아주 나빠졌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맥주나 와인을 가볍게 마신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꾸 실망을 하면서 살다 보니 가까운 사람도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낮에 하루 종일 바빴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바깥 날씨가 너무 좋아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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