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제1장 (1) - 법적 관점에서의 해석
가을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롬 1:1~2)’
로마서 제1장은 바울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어떤 것이며, 왜 자신이 그러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선포하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바울의 지위 및 자격에 관한 설명이다. 즉,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로 사명을 받았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개념은 바울의 일방적인 관계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양자간에 형성되는 것이다. 주인이 노예에 대해 ‘앞으로 너는 내 노예이며, 노예로서 의무를 다 해야 한다’고 선포할 수 있는 것은 힘의 논리에 의해 노예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를 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노예는 권력관계에 의해 노예로서의 생활이 강요되거나, 돈에 의해 팔려와서 노예로서 일을 하거나 한다. 불평등한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한 계약관계에 의해 신분상의 노예는 존재하고 그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주인도 노예에 의해 주인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계약을 맺지 않고,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 대화도 나누어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은 예수님의 종이고 노예라고 선포하고 있다. 일방적인 관계설정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바울은 예수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했다. 그는 선지자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그가 성부 성자 성령의 3위일체로서 사실상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땅에 왔다가 부활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스스로 그의 종이 되기로 결심했다.
자발적으로 종이 된 사람은 강요에 의해 종이 된 사람과 다르다. 그는 종이면서도 종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종 노릇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해방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종의 역할은 주인이 시키는 것, 주인을 위한 것. 별로 보람이 없는 것에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자발적인 종인 다르다. 그는 주인이 시키지 않는 것, 주인뿐 아니라 종 자신을 위한 것, 보람이 있는 것을 찾아서 스스로 한다.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차이다. 바울은 스스로 종이 된 사람이다. 굳이 종이 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데 스스로 좋아서, 가치를 인식한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 결과 종이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있는가? 말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의 종이라는 사실을 애당초 생각하지 않고 있거나 잊어버리고 있는가? 정작 종이라는 관계형성을 자신에게 선포한 사실이 있었는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종과 주인의 관계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말과 행동 모든 분야에서 일관성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인이 없는 자리라고 해서 주인에게 불충하거나 배신해서는 안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오죽하겠는가?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가 잠에 들었을 때에도 우리 곁에 계신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 선택되었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라고 말하고 있다. 사도라 함은 아로스톨로스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다.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바울은 자신이 누구에 의해 보내어졌다는 뜻이다. 피동적으로 보내어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울이 스스로 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보내어졌다. 그러므로 가지 않을 수 없고, 가야만 할 수밖에 없어 사도로 보내어졌고, 현재 사도로서 직분을 가지게 되었으며 사도로 활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사도는 누가 무엇 때문에 보내는 것일까? 왜 사도가 필요한 것이며, 사도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누가 사도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는 것이다. 사람이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일일이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보내실 수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사도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신다. 그래야 일반 사람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에게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된다. 자신이 스스로 사도가 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의 자격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종이 되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의만 가지면 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라고 선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복음이 없으면 사도도 필요 없다. 전할 복음을 받았기에,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도가 필요한 것이고, 바울은 그러한 사도로서 복음을 위해 선택되어 정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직 복음만을 위해 자신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진정한 사도로서의 역할이고, 사도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다. 도리다.
바울은 로마서 모두에서 자신의 신분과 역할, 그리고 사명에 대해 간결하게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복음이라는 말은 유앙겔리온이라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이다.
복음(福音)이라 함은 그야 말로 Good News 로서 좋은 뉴스라는 뜻이다. 좋은 소식이 있다는 것이다. 좋은 소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하늘 나라에서 내려온 것이다. 하늘 나라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 보내주신 것이다. 그 복음은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처럼 소리로 들리는 것일까? 누가 녹음해서 저장해 둔 것은 없을까?
바울은 복음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 관해 미리 약속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 성경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록해 놓으셨다.
구약성경 전체가 복음은 아니다. 바울의 설명에 의하면 복음은 오직 예수님에 대한 말씀만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선지자들의 말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땅에 오실 것이라는 사실에 관한 부분만이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은 예언하고 있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로서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양이 되어 죽을 것이다. 그의 희생에 의해 인간은 모든 죄를 사함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고 죽은 다음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신다. 그는 부활한 다음 하나님 우편에 앉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게 된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죄인이 되었다. 태생적인 죄인이 되었기에 개인의 힘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죄는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죄악을 낳게 된다. 죄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나중에는 죄에 대한 변별력까지 상실하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서로 헤매고 충돌하고 그럼으로써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가지지 않고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불쌍한 존재로 전락한 채 살아가게 된다.
구원에 대한 소망은 전혀 없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 인간에 대한 유일한 희망과 빛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출현이었다. 메시아가 곧 출현할 것이라는 뉴스가 복음이었다.
바울은 구약성경에 선지자들이 기록한 대로 좋은 소식이 뉴스처럼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좋은 소식, 복음을 전파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바울이 이처럼 담대하게 선포한 것처럼 작은 선포를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종이며 그에 의해 선택되었고, 그의 복음을 위해 사명감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에게 충실한 종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오직 우리 앞에는 하나님밖에는 다른 주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