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발전

 

현대 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고

일반인도 손쉽게 전문분야에 접하게 된다.

 

법도 이제는 보편화되어

변호사가 예전처럼 희소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하는 입법활동이나 정치활동에 대해

고학력자가 많아진 사회에서

일반인에 의해 공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때문에 국민의 정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비판능력이 향상되었다.

 

이에 비해 정치인들의 수준이 크게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정치인들에 대해 실망하기 쉽다.

 

현재 우리 정치는 여당과 야당이

자당의 이익을 위해

사사건건 대립하고 극단적인 대치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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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선택

오후에 남산에 갔다. 국립극장 앞에서 출발해서 북측순환도로를 따라 산책을 했다. 날씨가 쌀쌀해져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북측순환도로는 내가 좋아하는 코스로서 차량통제가 되어 있는 구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마라톤을 한다. 유니폼을 입고 씩씩하게 달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삶의 역동감을 느낄 수 있다.

 

왕복 6킬로미터의 산책로다. 나도 조금 뛰어보았다. 역시 뛰는 일은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뛰다 걷다 하니 땀도 나고 좋았다. 추운 날씨지만 밖으로 나오니 가슴 속이 시원해졌다. 답답한 공간에서 가만히 있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

 

중간에 벤치에 앉아 차를 마셨다. 보온병의 따뜻함이 손에 전해졌다. 그것은 사랑의 느낌이었다.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추운 겨울날 갑자기 내 몸을 녹여주는 온기! 그것이 작던 크던 따뜻함으로 나를 감싸는 포근함이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추운 곳에 있지만, 어딘가에 사랑이 있다는 믿음만으로도 우리는 그 추위를 견딜 수 있다.

 

주변의 나무들을 돌아보았다. 벤치 위에도 낙엽이 조금 떨어져 있었다. 낙엽을 치우지 않고 그 위에 앉았다. 낙엽들은 모두 말라 있었다. 그들은 이미 가을의 낙엽이 아니었다. 겨울의 낙엽은 또 다른 것이었다. 가을의 정취는 사라지고, 겨울만 남아 있었다.

 

약간은 쌀쌀했지만 겨울의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은 또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겨울의 벤치란 낭만이라기 보다는 긴장이 있는 것 같았다. 사랑과 미움의 대치상태인 것처럼 우리를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앉아 있는 동안에도 곧 떠나야 할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사랑과 미움은 수시로 교차되어 나타난다.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게 된다. 미움이 사라지면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과 미움은 똑 같이 우리의 감정이고 생각이다. 사랑했던만큼 미움도 강할 것이다.

 

순환도로는 푹신푹신한 부분과 딱딱한 부분으로 구별되어 있다. 아스팔트는 갈색으로, 조깅로는 녹색으로 나누어 놓았다. 발의 촉감이 전혀 다르다. 삶의 길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부드러운 부분과 딱딱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두 길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커피를 파는 두곳에도 아저씨, 아주머니가 나와있지 않았다. 대신 낙엽을 쓸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는 혼자서 추운 날씨에 낙엽을 쓸어모으고 있었다. 얼마나 힘이 들까? 바람에 날린 낙엽들을 한곳에 모으는 일이란 정말 힘들어 보였다. 그 넓은 길에서 낙엽을 한쪽으로 치운다는 것은 무한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다.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그들은 흰지팡이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중간에 필동가는길로 내려갔다. 순환도로 바로 밑에 동네가 있다. 차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기도 좋은 곳에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제는 겨울과 많이 친해졌다. 겨울에 맞추어 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사랑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적인 사랑은 자신이 선택하는 길이다. 그 길은 선택한 이상 그는 그 길에 전념을 해야 한다. 한눈을 파는 것은 위험하다. 오직 자신이 선택한 길에 초점을 맞추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솔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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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이 깊어가는 밤! 나는 조용히 ‘Forever with You’라는 노래의 색스폰 연주를 듣고 있다. 가사는 잘 모르지만 색스폰 소리가 너무 구슬프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색스폰 연주는 항상 그렇다. 너무 분위기를 가라앉혀 우울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남양주 수동에 다녀온 다음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 검단산에 갔다. 차를 타고 현충탑 바로 아래까지 올라갔다. 현충탑이 있는 곳에서 바람을 쐬었다. 풀밭에 누웠다. 아무 것도 깔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풀밭에 누워 보았다. 하늘이 높이 보인다. 하얀 구름이 몇 점 떠있다. 가을바람이 시원하다. 땅에 누워 하늘을 보면 사람의 존재는 매우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흙에서 우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시 흙으로 돌아갈 운명이기 때문이다.

 

나뭇잎들이 조금씩 가을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가을색을 좋아한다. 너무 푸르지도 않고, 너무 황량하지도 않은 중간의 색깔이다. 세상의 쓴맛, 단맛을 겪어본듯한 색깔이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 것 같은 색깔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게 된다. 똑똑한 사람, 너무 잘 나서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 빈틈 없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무언가 부족하고 어리석은 사람, 남에게 이용 당하고 평생을 고생하는 사람, 냉혹한 현실에서 벗어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사람, 혼자만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지만 끝내 회의에 빠져 비참하게 되는 사람 등등, 너무나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무엇을 옳다고 해야 할까? 너무 많은 위선과 가식을 바라보면 우리는 절망한다. 우리의 갈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잘 사는 사람,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환경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 그러나 세상은 비교적 공평하다.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사람들은 대개 다 비슷비슷하다. 어떤 면이 뛰어나면, 어떤 면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대개 제로에 가깝다.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끔 자살하는 것을 보면 대충 실상을 알 수 있다. 세상의 이치란 어떤 한 가지의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그것을 소유하면 행복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본인 스스로 그것에 대한 가치를 모르거나 느끼지 못하면 그는 불행한 것이다. 재벌의 아들들이 돈가치를 모르고 방황하는 경우를 보라. 반면에 없는 형편에 열심히 공부하고 살아가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세상이 그렇게 넓은지도 몰랐고, 세상에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물론 세상에는 선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종교 없이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는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다. 거대한 운명이 개인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그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도 정확하게 몰랐다. 물질로 크게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애매모호한 감정 때문에 어리석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일찍 이런 진리를 깨닫고 냉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허망한 감정을 가지고 늙어서는 또 다른 후회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기분에 따라 살다가 술을 많이 마셔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사랑에 너무 빠져 추악한 삶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돈을 너무 좋아해서 수전노가 되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출세에 급급해서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심지어는 감방에 가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열심히 살지 않아 고생을 하고 가족들까지 심한 고통을 주는 무책임한 사람들도 많다.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살아 혼자 잘 먹고 잘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주변에 많다.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인생의 짧은 여정에서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살아왔는가?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내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이고,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을 해왔는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결국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다만, 우리가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한한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질문을 제기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일응의 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네가 있고, 너에게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너는 삶의 여정의 끝까지 함께 해야 할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Forever with You’ 색스폰 소리는 여전히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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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밤의 상념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은행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씩 색깔이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모든 은행잎들이 노랗게 물이 들을 것이다. 은행잎을 보면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가장 힘들게 느끼고 있을 때, 그때 은행잎이 아주 샛노랗게 물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면서 제일 힘든 일은 역시 사람 때문에 겪는 갈등과 고통이다.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배신을 했을 때, 사랑을 주었던 사람이 말없이 떠났을 때, 너무나 커다란 기대를 했다가 수포로 돌아갔을 때, 건강을 잃었을 때 우리는 고통을 겪는다. 삶의 고뇌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었던 막연했던 관계, 애매모호한 감정들 때문에 우리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 분해서, 억울해서 복수까지 생각해야 했던 일들을 우리는 시간이 가면서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잊어버리지 않고 가슴 속에 담아두면 우리만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지난 보름 동안 허리가 아파서, 감기가 들었기 때문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처음으로 새벽 6시 반에 배드민턴을 치러갔다. 2시간 동안 배드민턴을 쳤다. 땀이 온몸에서 나와 흐른다. 땀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설하게 된다. 몸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똑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마음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아야 한다. 미움도 버리고, 증오심도 버리자. 질투심도 버리고, 온갖 욕심을 다 버리자. 허망한 욕심을 가슴속에 담고 있어보았자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가을에 우리 가슴에 담을 것은 선선한 가을 바람과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단풍의 가을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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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도의 가을풍경

가을은 소리 없이 깊어간다.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눈치 채기는 어렵다. 원래 가을은 조용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을에 숨을 죽이고, 가을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을은 어느덧 저 혼자 깊어가다가 우리 곁을 떠나가게 된다. 한 없는 아쉬움만 남기고 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차를 탔다. 집에서 6시에 출발했다. 새벽이 밝아오는 올림픽대로를 달렸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시간은 감동을 준다. 새로운 변화가 다가오고, 우리가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다. 오른쪽으로 길게 한강이 눈에 들어왔다. 한강을 끼고 달리는 기분은 남다르다. 서울의 새벽풍경이다. 강물에도 가을빛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그윽한 가을빛을 유심히 살펴보려고 했다.

 

이른 시간이라 올림픽대로는 전혀 막히지 않았다. 김포공항까지 50분도 안 걸렸다. 공항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었다. 8시까지 기다려야했다. KAL 라운지에 서 커피를 마셨다. 서머싯 몸(Somerset Maugham)이 지은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소설을 읽었다. 송무 교수가 번역한 책으로 1988년 민음사에서 출간한 것을 읽었다. 두권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조용한 장소에서 책을 읽고 있는 느낌도 괜찮았다. 소설이 재미있어서 요새 틈틈이 읽고 있는 책이다. 서머싯 몸이 지은 소설 ‘달과 식스펜스’는 7월에 이미 읽었다. 둘 다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다.

 

소설가는 온 힘을 다 바쳐 소설을 쓴다. 엄청난 집중력이 있어야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취미로 소설을 써보니 그런 사정을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어떤 스토리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나름대로 많은 재미가 있는 일이다. 혼자서 무엇인가 새롭게 창조하는 기분이다. 인물도 만들고, 그에게 특별한 성격도 부여하고, 개인적으로 세상에 대해 느끼는 생각과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

 

8시에 비행기를 탔다. 비즈니스 클래스라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사실 국내선에서는 비지니스 클래스가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번에 갑작스러운 출장계획을 잡다 보니 이코노미 클래스는 자리가 없다고 해서 그냥 비지니스로 잡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출발시간에 이코노미도 많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체적으로 아주 힘이 든 여행이 아니면 나는 여전히 이코노미를 즐겨 타는 편이다. 짧은 시간에 공연히 돈을 낭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비행기를 타고 잠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찍 운전을 하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눈을 뜨니 제주공항에 거의 다 가있었다. 미국에서 여행할 때를 떠올리면 한국은 참 좁은 나라다. 영토가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다. 한 시간 비행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자동차로 달려도 5시간 이내면 거의 다 갈 수 있다. 미국에서는 5시간을 달려야 별로 많이 가는 거리도 아니다.

 

곧 바로 제주지방법원으로 갔다. J 변호사 사무실을 들러 차를 마셨다. 사무실이 꽤 넓었다. 91년에 개업을 했다고 한다. 원래 제주 출신이다. 제주도 인구는 55만여명이고, 변호사는 30여명이 개업해 있다고 한다. 법원 검찰 청사를 새로 잘 지어놓았다. 광주고등법원제주지부도 함께 있었다.

 

10시 30분 재판을 마치고 Y사장님 사무실에 갔다. 한라신문사 바로 옆 건물에 있었다. 어느 일식당으로 갔다. Y사장님 단골이라고 해서 다금바리를 특별 주문해 놓았다고 한다. 다금바리는 제주도 연해에서 사는 토착어라고 한다. 깊은 바위 부근에서 살면서 전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마시고 바닷가 호텔로 갔다.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라마다프라자 제주호텔이었다. 바로 바다 옆에 있어서 로비라운지에서 바다가 바로 보였다. 시원한 바다를 보고 있는 호텔은 무척 컸다. 바다가 보이는 넓은 창가에서 커피를 마셨다. 멀리 바다 위로 배가 몇 척 보였다. 시원한 바다는 어디에서 보아도 똑 같다. 제주도 바다는 그야말로 가을을 품안에 품고 있었다. 가을의 정취가 바다 속에 깊이 잠기고 있었다.

 

제주시 시내를 관광하고 오래된 제주목관아를 둘러보았다.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는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로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관덕정은 보물 322호로서, 병사의 훈련과 무예수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종 30년(1448년)에 창건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연희각은 목사(牧使)가 집무하던 곳이다. 옛날 관리들이 제주도에서는 근무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워낙 거물들이 귀향와서 머물던 곳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오래된 성곽이 있었다. 제주성지를 둘러보았다. 짧은 일정에 많은 구경을 했다. 4시에 제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대화상대가 없어 고독하다. 그 고독까지 혼자 즐길 수 있다면 대단한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혼자 많은 시간을 길에서 보내고 있으니 머릿속에는 많은 상념들이 떠올랐다. 가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든지 자신들만의 삶이 존재한다.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작은 성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방인의 눈으로 그 성을 피상적으로 보고 지나가는 것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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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1)

Welcome to the Hotel California

Such a lovely place

[Eagles의 노래, Hotel California에서]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월요일 저녁 시간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5박 6일간의 캘리포니아 여행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 5시경에 돌아왔다. 미국은 2005년 10월 다녀온 이후 처음이다. 세월이 빠르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4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세월을 아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느껴본다. 아직은 시차가 완전히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기억을 되살려 미국 여정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나 혼자만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서다.

 

7월 20일 월요일 저녁 8시에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7월 20일 월요일 오후 4시경(미국 현지시간)에 LA공항에 도착했다. B를 공항에서 만나 자동차를 렌트한 다음 헌팅턴비치까지 갔다. 이번 여행의 주된 목적은 미국에서 B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복장도 편한 상태였고, 휴대품도 별 것이 없었다.

 

화요일에는 Monterey로 갔다. 수요일에는 Pebble Beach를 둘러보고 1번도로와 101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목요일에는 Desert Hills Outlet을 다녀왔다. 오후에는 비버리 힐스와 할리우드를 구경했다. 금요일 낮 12시 30분에 LA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짧은 여행이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구경하고, 느끼고 돌아왔다.

 

캘리포니아는 넓었다. 넓은 땅과 넓은 바다가 있었다. 거친 산들이 있었다. 파란 하늘이 계속되었고, 맑은 공기가 우리와 함께 있었다. 예쁜 꽃들이 많았고, 도심지에서는 낭만과 화려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 가사와 리듬을 생각했다.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동안 넓은 캘리포니아의 풍경들을 눈에 많이 담으려고 했다.

 

노래 가사처럼 사막을 달리는 동안에는 열풍이 불어왔다. 땅의 열기 때문에 건물 밖에 오래 있기도 힘이 들었다. 그러나 저녁시간에는 추울 정도였다. 티셔츠를 입고 밖에 있으면 한기가 돌았다.

 

On a dark desert highway

cool wind in my hair

 

나무가 별로 보이지 않는 산들 사이로 도로가 나 있었다. 사막의 삭막함이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나무와 숲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는 절대로 내릴 것 같지 않은 곳이었다. 산의 색깔과 나무와 풀의 색깔은 죽음과 가까웠다. 물이 생명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물은 그래서 생명이고 사랑이다. Wet의 의미와 Dry의 의미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경우이든 메말라서는 안 된다. 감정도 그렇고 육체도 그렇다. 항상 촉촉한 상태에서 몸과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밤이 되면 하룻밤 머물 곳을 찾아야 했다[We had to stop for the night].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우리의 하룻밤을 모두 맡기고, 그곳에서 잠을 자고, 꿈을 꾸어야 할 곳을 선택해야 했다.시간은 오직 밤뿐이다. 한낮의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덮이기 시작할 때부턴 어둠이 걷히고, 빛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가 어둠을 피하기 위해 숨어야 할 도피처(shelter)였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래서 어둠이 내리면, ‘캘리포니아 호텔’ 노래를 떠올리면서 모텔을 찾아야 했다.

 

우리가 그때그때 선택한 모텔은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하고, 만족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선택한 모텔은 우리의 것이었다. 비록 하룻밤 머물 곳이었지만, 우리만의 것이었다[This could be heaven or this could be hell].

 

여행을 하면 사람들은 사랑을 잊어버리게 된다. 사랑의 기억만을 가지고 떠난다. 춤을 출 때 사랑을 떠올리기 위해 추기도 하고, 사랑을 잊어버리기 위해 추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Some dance to remember, some dance to forget].

 

캘리포니아에서 맞이하는 밤에는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항상 내 손에는 와인잔이 들려있었다[Please bring me my wine].

 

나는 화이트와인을 좋아한다. 하얀 잔속에 천천히 부어지는 화이트 와인은 마치 내 가슴속에 진한 사랑을 부어넣는 것같이 느껴졌다. 와인을 마실 때마다 가슴속에도 사랑이 가득 찼다. 와인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와인은 곧 그리움으로 변했다. 와인에 취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면 그리움이 사막에서도 눈꽃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2.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2)

#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낯선 곳에서 며칠이라도 머물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번 여행은 20여일 전에 결정되었다. 주된 목적은 B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B를 보지 못한지도 벌써 2년 6개월이나 되었다. 2007년 1월에 B가 미국으로 간 다음에 한국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미국으로 가보기로 했다.

 

먼저 비행기표를 예약해야 했다. 갑자기 시즌에 예약을 하려니 비행기표가 충분하지 않았다. 겨우 예약을 했다.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약을 하면 시간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요금도 저렴한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국제운전면허증도 신청해서 발급받았다. 나머지는 특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출발 당일 사무실에 출근했다. 갑작스러운 상담건이 있어서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채 사무실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막상 미국 여행을 하려니 요새 유행하고 있다는 전염병인 신종 플루가 걱정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예방백신을 맞고 가라고 한다. 그래서 내과에 물어보았다. 백신주사는 없다고 했다. 대신 약이 있는데 그것도 예방약은 아니라고 했다.

 

명일역에서 내려 부근에 있는 내과를 들렀다. 그런 약이 그 부근에는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주양쇼핑 부근에 있는 내과에 갔다. 예방을 할 수 있는 약이 아니라,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면 복용을 해야 하는 약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약값은 3만원이나 했다. 그것도 겨우 하나가 약국에 남아 있었다. 약을 사서 가지고 갔다.

 

여행준비를 마치고 택시를 불렀다. 콜택시를 타고 삼성공항터미널로 갔다. 어떤 경우이든 여행은 여행이다. 다소 흥분되기도 한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감정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7월의 따가운 햇살이 더욱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한 동안 장맛비가 내렸는데 날씨도 개어서 움직이는데 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도심공항터미널에는 3시간 전에 출국절차를 마쳐야 한다. 현장에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들 하려고 했더니 내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비행기표는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한 표라고 했다. 예약할 때 업그레이드가 가능한지 여부도 알아놓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냥 이코노미 클래스로 좌석을 지정받았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1인당 편도 1만4천원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2시간이나 남았다.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니 2층에 커다란 푸드코트가 있었다. 그전에는 그곳에 그런 식당가가 있는 줄 몰랐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했다. 비행기를 타고 잠을 자려고 청하를 한병 마셨다. 육개장을 시켜 안주로 했다. 식사 후에 편의점에서 맥주와 차, 생수를 사 가지고 들어가려는데 모두 반입이 금지된다고 해서 몰수되었다. 일체의 액체는 기내에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성수기라 그런지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는 대한항공 KE 002편이었다. 비행기는 저녁 8시에 출발인데 30분 정도 지연되었다. 어떤 승객이 짐을 실어놓고 탑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짐을 다시 내려놓아야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어서 무척 힘이 들었다. 인천에서 LA까지는 10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다. 예전과 달리 요새는 일어나서 뒷부분에 서 있는 것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단체생활이 힘이 든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가는 것이므로 질서를 지켜야 한다. 단체가 만들어놓은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는 상당 부분 통제된다.

 

비행기는 1등석, 비즈니스석, 이코노니석으로 구별해 놓고 있었다. 공간의 차이와 서비스의 차이가 있다. 사회적 구별이 이런 것이다. 누구는 1등석에서 편하게 여행을 하고, 누구는 3등석에서 고생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동일한 비행기 내에서 구별된 공간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분화가 된다. 1등석에 앉아 있으면 웬지 고상해 보이고, 3등석에 앉아 있으면 평범해 보이는 것이 현대 사회의 실상이다.

 

좌석에 앉아 힘이 든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 같이 겪는 일이다. 혼자만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다들 힘이 들지만 참고 견디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다들 인생은 고해와 같기 때문에 누구나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그 고통을 혼자만이 겪는 것처럼 생각하고, 유별나게 반응하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이래서 필요하다. 남들도 다 같이 겪는 고통이라면, 혼자만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고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3.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3)

# 불이 꺼진 기내에서는 지루함도 있지만, 때로는 혼자만의 좋은 사색기회가 되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오랜 시간 잠겨 있을 수 있다.

 

비행기가 운항중일 때에는 무려 10시간 넘게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다. 가만히 있기 어려운 존재다. 그런데 꼼짝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10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나는 감방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좁은 공간에서 몇 달씩 보낸다. 때로는 몇 년씩 보낸다. 아무런 소망도 없이, 오히려 끝없는 절망의 늪에 빠져서 헤매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10시간을 견디면, 곧 해방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희망이다. 그러나 감방에서 소정의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전과자가 되고 싸늘한 눈초리에 둘러쌓이게 된다. 그것은 지옥이다. 희망의 상실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육체적인 고통을 느낄 때 우리는 더 큰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비행기 좌석에는 개별적으로 화면이 놓여 있고, 각자가 자기 취향대로 영화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과학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었다. 주로 7080 한국노래를 들었다. 애절한 가사를 음미해 보았다. 가슴을 저미는 가사들이 많았다.

 

비행기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7월 20일 월요일 16:00경 도착하였다.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 정도였다. LA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는데 좌우 열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고, 얼굴 사진도 찍는다. 안경도 벗고 찍어야 했다. 테러 때문에 철저한 공항검색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그대로 검사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좋지 않았다.

 

짐을 찾아 가지고 밖으로 나가니 B가 기다리고 있었다. B는 필라델피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LA로 온 것이었다. 비행시간이 5시간 반이나 걸렸다고 한다. LA공항에 와서도 3시간이 기다렸다고 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짐도 두 개나 가지고 왔다.

 

B가 고생을 하면서 혼자 외롭게 LA까지 온 것을 생각하니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고생, 고통은 그렇게 상대적인 것이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 내 마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B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외국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함께 순환버스를 타고 자동차 렌트 장소로 갔다. 그린 색의 National 회사였다. 자동차를 렌트하는 모든 절차를 B가 다 했다. 덕분에 나는 편하게 있었다. 네비게이터도 렌트했다.

 

자동차를 렌트한 다음 공항을 벗어나 Pasadena라는 작은 도시로 갔다. Pasadena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군에 있는 시의 명칭이다. 치페와어로 계곡의 정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은 도시다. 샌게이브리얼 산맥의 샌게이브리얼 계곡에 있으며, 샌퍼스퀄 목장의 일부였다.

 

1874년 토머스 B. 엘리엇이 인디애나 식민지로 건설했으며, 샌타페이 철도가 들어서면서 겨울 휴양지와 감귤류 주산지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로스앤젤레스와는 약 19킬로미터 떨어진 인구 약 13만 명 규모의 작은 도시다.

 

Pasadena는 매우 깨끗하고 도시가 아름다웠다. 미국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아주 작은 규모의 깨끗하고 예쁜 도시를 만나게 된다. 때로는 작은 타운일 수도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동네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다.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Twin Palm이라는 레스토랑이었다. 야외식으로 꾸며진 곳에 앉았다. 두 그루의 팜트리가 식당 입구에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뉴욕스테이크와 생맥주를 시켰다. 너무 맛이 좋았다. 생맥주에 레몬을 올려놓았는데 그것도 좋은 맛이었다.

 

어두워진 상태에서 Huntington Beach로 갔다. 모텔을 하나 골라들어갔다. 모텔 방에는 에어콘이 없었다. 대신 선풍기가 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밤이 되니 전혀 덥지 않았다. 그래도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야 했다. 밤에는 아무 것도 볼 것이 없었다. 그냥 모텔에서 답답하게 밤을 지내야 했다. 주변은 캄캄하고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밤에는 밖에 나갈 엄두도 못냈다.

 

 

4.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4)

# 헌팅턴 비치에서는 세계 최대의 서핑 축제인 제50회 U.S. 오픈 서핑대회(The Hurley US Open of Surfing)가 열리고 있었다. 7월 18일부터 시작되어 7월 26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헌팅턴 비치는 캘리포니아 남쪽 태평양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다. 매우 아름다운 서프 시티(Surf City)다.

 

7월 21일 화요일 아침 눈을 뜨니 환한 햇살이 들어왔다. 미국에서 첫날밤을 지낸 것이다. 간밤에는 시차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한밤중에 눈이 떠졌는데 밖에는 어두워서 나가지 못하고 그냥 뒤척였다. 미국 여행을 하면 느끼는 것은 낮에는 참 좋은데 밤에는 무섭고 활동하기가 힘이 든다. 혼자 잘 때는 잠이 안 오면 그냥 TV도 틀어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B가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아침에 밖을 나오니 눈이 부실 정도로 햇살이 강했다. 푸른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는 어느 곳에서 만나든지 우리를 감격케 만든다. 바다와 마주 서서 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넓은 바다는 태평양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앞에서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헌팅턴 비치였다. 많은 사람들이 파도를 타고 있었다. 서핑보드를 가지고 파도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많은 비키니 차림의 사람들이 선탠을 하고 있었다. 해변의 규모가 대단했다.

 

마침 U.S. 오픈 서핑대회가 열리고 있어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서 이런 대회가 열리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 그냥 비치에 가보니 대회를 하고 있었다. 운이 좋았다. 이 대회는 헌팅턴 비치시 창설 1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서핑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는 대회다. 헌팅턴 비치는 4마일에 이르는 해변에 몰려오는 파도를 탈 수 있는 곳이다.

 

백사장을 한참 동안 걸었다. 구경을 마치고 차를 탔다. 헌팅턴 비치에서 나와 샤브샤브집으로 갔다.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무척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파란색의 하늘이 보였다.

 

헌팅턴 비치에서 몬터레이로 갔다. 가는 길이 넓은 평원지대였다. 광활한 토지에 어떤 과일나무를 심어놓았다. 캘리포니아가 얼마나 넓은 곳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몬터레이 가는 길이 너무 삭막해서 도중에 돌아 나왔다가 다시 그 길로 갔다. 나무가 없는 산들 사이로 길이 나있었다.

 

헌팅턴 비치에서 몬터레이까지는 먼 길이었다. 몬터레이에 도착하니 벌써 10시가 다 되었다. 가까스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했다. 바닷가에 붙어 있는 식당이었다. 그리고 부근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모텔을 잡고 들어갔다.

 

 

5. 캘리포니아 호텔, 그리고 와인(5)

# 페블비치는 Monterey에서 Camel로 이어지는 17마일 드라이브 내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미국에서 유명한 골프장인 Pebble Beach, Spyglass, Links at Spanish Bay 등이 있는 골프명소라고 할 수 있다.

 

7월 22일 수요일, 오전에 몬터레이에서 페블비치로 갔다. 17마일드라이브 길을 따라 가면서 구경을 했다. 페블비치에서 내려 바닷가를 걸었다. 정말 아름다웠다. 페블비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바닷가 식당에서 핏자와 스파케티를 시켰는데 맛이 없는 편이었다.

 

오후에는 1번 도로와 101번 도로를 따라 LA로 갔다. 해변도로를 따라 간 것이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가다가 중간 중간에 쉬면서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였다. 도중에 솔뱅이라는 도시를 들렀다. 덴마크 스타일의 작은 타운이었다. 시간이 늦어 대부분 상가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밖에서 차를 타고 둘러보고 그냥 나왔다.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찰차가 우리 차를 세운다. 이유는 우리 차가 비틀거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네비게이터를 보다가 그랬다고 해명했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밤 11시가 다 되어 LA에 있는 한인타운으로 갔다. 대부분의 식당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24시간 하는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그랜드호텔에서 잠을 잤다.

 

# 디저트 힐스 아울렛은 삭막한 외곽에 만들어놓은 아울렛매장이다.

 

7월 23일 목요일 오전에 호텔에서 나와 디저트 힐스 아울렛 매장으로 갔다. 구경을 하러 간 것이다.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곳에서 3시간 가량 머물렀다.

 

오후에 비버리 힐스를 구경갔다. City of Beverly Hills 라는 작은 구역은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Will Rogers Memorial Park 이 있다. 비버리 힐스 그룹 투어는 1인당 100불 가까이 한다. 2시간 관광코스라고 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관광코스를 보고 있었다. 비버리 힐스 동네 입구에서는 어떤 여자가 연예인들의 집 지도를 팔고 있었다. 한 장에 10불이나 한다.

 

할리우드 거리를 돌아다녔다. 구경을 마치고 저녁 식사는 한인타운에 있는 일식당에서 했다. 저녁 식사 후에 공항 부근에 있는 베스트 웨스턴 모텔로 들어갔다.

 

7월 24일 금요일 오전에 공항으로 갔다. B는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가고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다.

 

 

6. 아버지와 아들(Father and Son)

사람은 누구나 부모의 노고로 출생하고, 양육되며, 교육을 받고, 성장하게 된다. 부모와 형제로써 가족이 구성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족 구성원 상호 간에 각자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불행이 초래된다.

 

서로에게 감사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각자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서로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도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누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고, 자기 할 일에 쫓기다 보면 전체로서의 가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에 대한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높은 수준을 기대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시간을 아

끼며 꼭 필요한 일만 하기 바란다. 흐트러지지 않고, 바른 생활만 하기를 원한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혼을 내주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돈만 대주고, 밥만 먹여주고, 그 다음 자녀들은 공부만 열심히 하고 성적만 좋으면 된다. 따뜻한 대화도 서로 나누지 않는다. 각자 TV를 보고, 아버지는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도, 자녀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식은 기계가 아니다. 사람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기도 힘이 들고, 주변 환경이 공부에 전념하게 놔두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해도 성적이 제 마음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 자녀를 구박하고 냉대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는 자꾸 멀어진다. 서로가 바라보는 시각에 너무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실망하고 삐뚤어진다. 부모는 부모대로 실망하고 애정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이렇게 성장한 한 아들이 아빠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두려운 존재였어요. 그것은 조금만 잘못해도 아빠가 나를 정말로 버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우리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게 대한 신뢰가 다른 가정에 비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신뢰한다는 것은 가족 중에 누가 잘못을 했을 때나 힘든 상황이 생겼을 때 상대방이 그곳에 끝까지 있어 줄 것이라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고,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생기는 것이에요. 누가 한번 잘못했다고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은 남들끼리 하는 일이지, 가족이라는 것은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보루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렸을 때에 아빠와의 사이에서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아빠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어요. 아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 성격에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런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러한 원인이 어린 시절에 겪었던, 아빠에게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당당하게 아빠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그로 인해 열등감과 낮은 자존심이 생겨 그랬다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없어졌어요. 나도 성인이 되었고, 크리스챤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도 가끔 아빠가 다른 아빠들과 달리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그 안에서 내 모습이 보이고, 미래의 나도 저럴까 안타깝고 불안해져요. 나도 아빠 아들이니까 아빠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해요.

 

가까운 사람들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그 사람들과의 관계도 끝내 버리고,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거북한 상황이 생기면 현실에서 도피해 버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그런 것을 고치지 않고서는 내가 원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우리는 가족이니까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어도, 서로 회피하지 말고 대화하고 인내하고 사랑으로 받아주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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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법률상담의 애환

 

나는 변호사로서 늘 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전화로 유료상담을 하고 있는데, 시도 때도 없다. 내가 상담전화를 켜놓으면 밤낮 없이 온다. lawars.

 

우리 법무법인에서 유료상담전화를 시작한지는 벌써 15년쯤 된다. 초기에는 나는 바빠서 직접 상담을 하지 않았다. 우리 법인의 젊은 변호사들이 담당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5년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과 달라서 요새 사람들은 변호사와 상담을 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를 한다. 법도 다 찾아보고 오랜 시간 검토를 한 다음,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것 저것 물어본다.

 

구체적인 법조문도 읽어주기도 하고, 대법원판결 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질문을 하고 직답을 구한다. 처음에는 내가 만물박사도 아닌데, 민법, 형법, 상법, 임대차, 부동산관계, 경매, 근로계약관계, 성범죄, 교통사고, 손해배상, 일조권, 건축관련 분쟁, 상표권이나 저작권 등등 모든 분야에 걸친 질문을 해온다.

 

이런 법률상담을 통해서 나도 꽤 많이 공부를 했고, 상당히 긴장을 하면서 살았다. 수시로 쏟아져나오는 대법원판결을 읽어야 하고, 자꾸 바뀌는 법과 제도를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 덕분에 실력도 많이 늘었다.

 

가끔 이상한 사람도 있다. 요금이 부과되는 전화를 걸어놓고, 변호사 이야기는 듣지 않으려고 하면서 자신의 주장이나 한다. 변호사와 의견이 다르면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론을 말해주면 기분 나쁘다면서 갑자기 전화를 끊기도 한다. 정말 이상한 사람은 변호사에게 욕설을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시간이 가면서 나도 많이 적응을 했다. 처음에는 나도 상담하면서 언성도 높아지고, 화를 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수양이 되었다. 오죽 답답하면 저럴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단골손님도 많이 생겼다. 나도 단골의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어떤 때는 나이 들어 꼭 이런 상담전화업무를 해야 하나 회의가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변호사의 일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천직이려니 하고 오늘도 또 전화상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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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영어나 수학 공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창작이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소설은 시와 또 다르다. 시는 짧기 때문에 짧은 시간 쓸 수 있다. 물론 아주 잘 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소설은 전체적인 플롯을 짜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런 뚜렷한 구상을 하지 않고 쓰면, 체계가 없어지고, 자꾸 옆길로 이야기가 새나간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가가 불분명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요새 나는 ‘닥터 지바고’와 ‘전쟁과 평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고 있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써도 이런 소설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써보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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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causation, 因果關係)

 

어떠한 결과에 대하여, 그러한 결과를 야기한 원인되는 행위와의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 것이 바로 인과관계이론이다. 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론이다.

 

법과대학에 들어가서 형법을 공부하게 되면, 형법총론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이러한 인관관계론이다.

 

예를 들어서 갑이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피해자 을을 치어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런데 의사 병은 을을 치료하던 중 주사를 잘못 놓아서 을로 하여금 심장쇼크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러한 경우, 을의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해 최초에 교통사고를 낸 갑도 형법상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인과관계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갑이 만일 교통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면 건강한 을은 병원에 입원해서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갑이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에 을은 병원에 입원했고, 비록 의사 병의 과실로 인한 것이었지만, 사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과관계론에 대해서는 조건설, 원인설, 상당인과관계설 등이 대립되어 있고, 상당인과관계설은 또한 주관설, 객관설, 절충설로 다시 나누어진다.

 

이러한 인과관계론과 더불어 객관적 귀속이론이 있다. 객관적 귀속이론은 발생된 결과가 형법적 의미에서 행위자에게 객관적으로 귀속되는가를 일정한 척도를 통하여 판단하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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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사태의 심각성>

 

정부의 그간의 대책이 옳았던지, 잘못되었던지 그 문제는 차치하고,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태는 심각한 상태임이 분명하다.

정부에서도 심각단계로 격상한 것이 아닌가!

 

현재 급속히 확진자수가 늘어나고,

확진자가 입원도 못한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어도 언론에 나와 말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좋다.

 

코로나가 별것 아니라든가,

치사율이 높지 않다든가,

얼마 있지 않으면 진정될 것이라든가 하는 식의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를 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코로나 19에 감염되거나

그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방심하게 만드는 견해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에서도 무조건 대통령 탄핵, 책임자 문책 등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방역 및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야당 국회의원 모두 대구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성금을 내는 것이 국민들 눈에 좋게 보일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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