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

한편 국홍의 부인 복자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무래도 남편의 신상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복자는 일년 전에 교회를 처음 나갔다. 나이 20살 때 교회를 다니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당시 복자에게는 세상은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이었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여자를 육체만 탐하고, 어느 정도 정욕을 충족하면 버렸다. 동물만도 못한 존재였다. 주변에 여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잘난 척이나 했다.

자랑이나 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였다. 복자는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당하고, 저렇게 당하고, 이 사람에게 무시 당하고, 저 사람에게 무시 당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을 확실하게 내렸다.

그러면서도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모님께 기도했다. 소원을 빌었다.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가 새벽에 정화수(井華水)<수돗물이나 생수가 아닌 우물물을 길어서 떠놓은 것이다>를 깨끗한 그릇에 떠놓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간절히 소원을 빌던 것처럼 아침 일찍, 그리고 밤 늦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면서 가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 어디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빌어요. 저는 비록 혼자지만 늘 부모님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부모님께 실망드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멀리 계시지만,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다.

복자가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부모님께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머니도 만나게 되었고, 살면서 크게 망가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살다가 복자는 국홍과 결혼하고 나서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어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지나간 세월을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이런 복자에게 국홍은 어제 밤부터 퇴근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복자는 술집으로 가보았다. 아침 8시에 술집에 들어가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테이블에 술병과 안주가 널려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쇼파도 지저분하게 되어 있었다. 술집이란 영업을 할 때에는 에어콘을 켜놓아서 그렇지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가 들어가면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나고, 절대로 들어가서 술을 마실 기분이 나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한 냄새는 감수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도중이나, 술에 취해서 나올 때까지도 그런 쾌쾌하고 기분 나쁜 냄새는 술로 인해 업되는 분위기 때문에 상쇄된다. 하지만 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은 지옥이지 천국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이런 것과 비슷하다. 남자와 여자가 술을 마시고 모텔에 들어가서 그짓을 한다. 모텔방 냄새는 어딘지 모르게 쾌쾌하다. 비릿한 정액 냄새가 배어 있고, 오징어냄새가 난다. 매우 동물적인 냄새를 감수하고 모텔에 들어가서 정사를 벌인다.

그것은 오직 정사를 위해서 잠시 은밀한 공간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향기롭지 않아도 감수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만일 모텔에서 정사를 끝내고 바로 나오지 않고, 계속 잠을 자다가 아침에 나오게 되면 햇빛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보기 흉한 몸뚱아리가 눈에 들어오고, 화장을 지운 민낯이 보이고, 쭈굴쭈굴한 피부와 주름살, 검버섯 등이 부각되면 정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탁한 공기, 술이나 담배 냄새, 정액 냄새, 흐트러진 클리넥스 휴지, 사용한 타월, 구겨진 이불 등을 보고 맡게 되면 정말 모든 게 끝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껴안고 사랑을 나누었는가? 우리가 밤새 울부짓던 신음소리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생식의 본능인가, 퇴폐적인 쾌락이었던가?’

복자는 놀랐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복자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울면서 하소연했다. 경찰서에서는 핸드폰 위치추적을 해서 그런지, 복자에게 곧 바로 연락이 왔다.

“남편께서는 현재 OO 경찰서에 있습니다. 경찰서로 가보십시오.” 복자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경찰서라니! 어제 밤 술집에서 손님들과 싸움을 한 모양이구나!’ 복자는 아직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라 거동하기도 힘이 들었지만, 곧 바로 경찰서로 갔다. 그곳에 국홍이 붙잡혀있었다.

“아니! 여보, 이게 어쩐 일이예요? 싸움을 한 거예요. 많이 맞았네요. 빨리 병원에 가야지, 왜 여기에 있어요?”

국홍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강간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구속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있고, 서로 믿고 의지하는 부인에게 지금 이처럼 비참하고 추락한 더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이 들었다.

복자는 경찰관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경찰관은 복자에게 아무래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 같으니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복자는 밖으로 나와 급하게 변호사를 찾았다. 법원 앞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몇 군데 들렀다.

난생 처음 만나는 변호사와 사무장들은 정말 냉정하게 생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주 차가운 냉혈동물이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것같았다. “강간사건은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으면 힘들거예요. 빨리 합의를 해야 됩니다.”가 대부분의 답변이었다. 모두가 남의 일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계약서를 쓰고, 돈을 내야 비로소 경찰서로 가서 피의자인 국홍을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복자가 만나본 변호사들은 모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돈만 받아먹고 열심히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내 복자는 마음에는 썩 들지 않지만, 어떤 나이 든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 변호사는 틀림없이 불구속으로 해주겠다고 하면서 착수금으로 500만원을 내라고 했다. 부가가치세 50만원은 별도라고 했다. 신용카드도 가능하다고 해서 복자는 당장 현금이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긁었다. 정말 큰돈이었다. 너무 아까웠다.

복자는 남편과 술집에 필요한 식부자재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러, 대형마트, 수산물시장, 농산물시장, 재래시장을 무수히 다녔다. 돈이 아까워서 택시는 거의 타지 못했다. 옷도 동대문시장에 가서 주로 사입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의 순간적인 실수로 한꺼번에 550만원을 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남편이 미웠다. 그리고 복자의 운명이 미웠다. 복자와 남편을 돌봐주지 않는 하나님도 서운했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냥 약을 먹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더러운 성범죄사건을 누구와 상의한단 말인가? 세상은 이럴 때 가장 외롭고 고독하다. 인간이 혼자라는 진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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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100)

한편 강교수 부인인 민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희 역시 공부는 아주 싫어했다. 그러다가 머리 좋은 강교수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결혼 당시 강교수는 집안이 어려웠고, 민희는 부잣집 외동딸이었다.

민희는 물론 결혼 전에 여러 차례 연애를 했고, 남자들과 성관계도 가졌지만, 강교수를 만나 결혼한 이후에는 완전히 마음을 고쳐먹고, 오직 강교수에게만 순정을 바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강교수는 결혼한 직후부터 서시히 민희가 머리가 나쁘고 공부를 못했다는 이유로 은근히 무시하고 핀잔을 주었다. 민희 부모가 대준 돈으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도 강교수는 늘 민희가 지적이지 못한 점을 언급했다.

강교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국 TV는 거의 보지 않았다. 강교수는 영어 좀 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미국 방송 CNN이나 BBC 방송을 틀어놓고 있었다. 그러면 민희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 방송 드라마 채널로 돌렸다. 그러면 강교수는 민희가 유치하다고 짜증을 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이 가면서 민희는 자신은 강교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맞지 않는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되면, 그건 더 큰 불행이 될 거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민희는 강교수와 각방을 썼다. 처음에는 아주 이상했다.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말을 들어봤지만, 한국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한 두달 지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남편과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의 냄새도 싫었고, 코고는 소리도 싫었다. 특히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자는 때에는 마치 돼지가 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이 돼지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싫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민희는 강교수가 자신과는 관계를 하지 않고 각방을 쓰면서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처음에는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 여자를 만나서 박살을 내려고도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강교수가 그짓을 하지 않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포기했다.

민희는 그래서 다시 옛날 처녀시절 연애하던 남자들의 낭만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작한 산악회 동호회에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너무 지성적이지 않은 남자, 너무 잘난 척 하지 않는 남자, 너무 똑똑하지 않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만나게 되니, 육체관계는 특별한 의미 없이 이어지는 게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민희는 자신이 바람을 피는 것에 대해 만약에 강교수가 문제 삼으면 혼자서만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강교수의 뒷조사를 해서 이미 강교수의 불륜에 대한 증거를 확보해 놓았다. 그래서 맞불 작전을 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두 사람은 아주 냉냉해졌다.

민희는 강교수를 볼 때마다, 다른 여자와 껴안고 뒹굴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완전히 동물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이 아니었다. 사람은 배꼽 이하는 동물과 똑 같다. 만일 증명사진을 얼굴만 나오는 상반신이 아닌, 하체만 나오는 하반신으로 찍어서 제출하면 실제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사진과 대조해서 증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민희 역시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실존의 방황’일 뿐, 그렇게 더럽다거나 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교수의 외도는 그야말로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이며, 완전히 동물적인 ‘추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희는 당분간 소강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혼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지금 이혼해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작은 운명 (98)

한편 미경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았다. 비록 첫단추는 잘못 끼어졌기 때문에 결혼도 실패했다. 그후 몇 사람의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지만, 자신이 남자복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다 건달이었고, 무책임한 방랑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경 자신은 정말 괜찮은 남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제대로 된 남자! 제대로 배우고, 남자답고, 여자를 배려하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언젠가는 미경의 앞에 나타나 진정으로 미경의 진수를 알아보고, 영원한 사랑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나타난 사람이 바로 강교수였다. 미경이 강교수에게 바랬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강교수의 돈을 바랬던 것도 아니었다. 강교수의 인물 때문에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다. 강교수의 성적 능력에 이끌렸던 것도 아니었다. 미경에게 강교수는 그야말로 교수였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강교수의 순수함, 대학 교수가 가지는 카리스마, 지적 능력과 분위기, 그리고 그의 여자에 대한 배려 때문에 미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강교수에게 바치려고 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강교수와의 육체적 관계는 시들해졌다.

서로 나이가 있었기도 했지만, 강교수가 그렇게 탁월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남자와의 관계가 언제나 육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했다. 미경은 강교수와 관게를 할 때에는 언제나, 그의 현실적인 육체의 움직임을 본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 강교수의 강의하는 모습,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그가 캠퍼스를 거닐면서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을 연상하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에 빠져 있으면, 그가 미경의 위에서 움직이는 동작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그림자였다.

그래서 미경은 황홀경에 빠졌고, 사랑의 미로에서 몸부림쳤다. 미경의 모든 것을 바치고,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강교수의 조각을 영원히 세우고 싶었다. 설사 자신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도 좋았다. 강교수가 오직 자신을 농락했다고 해도 좋았다.

그건 사랑의 일방적인 희생이었고, 기약 없는 메아리였다. 그러던 강교수가 이상한 일로 자신을 멀리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강교수로부터 멀어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그때 발렌타인 데이가 왔다. 그날 미경은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이미 강교수에게서 마음은 멀어진 상태였다. 다시 미경의 일상으로 돌아와 많이 냉정을 되찾은 때였다.

그런데 문득 강교수의 품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미칠 듯이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미경은 그래서 강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강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미경의 전화를 차단해놓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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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31)

그러다보니 경아는 남자 친구들과 한 번도 육체관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에게 딱 맞는 남자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강 교수는 영특하게도 이러한 경아의 생각과 의식을 알아채고 경아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맞게 말하고 행동했다.

강 교수는 남녀의 육체관계에 관한 자신의 소견도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어야 해요. 육체는 정신에 따라 가는 것이지만, 본질적으로 생식의 본능의 범위에서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섹스가 우선하거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정신적 사랑이 퇴색하고 소멸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행동했다. 경아는 이런 강 교수의 사랑과 섹스에 관한 소신과 철학에 감동했다. ‘역시 교수님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아주 뚜렷한 신념을 가지고 있구나!’

강 교수는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본질적으로 남녀의 섹스는 육체적으로 더러운 것이예요. 성기가 신체에서 배설기관과 같이 기능을 하는 것만 봐도 그런 거예요. 나체 사진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킨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론인 거예요. 누드화는 예술적으로 변형되어 승화되지 않으면 추한 것이지요. 때문에 동물적이고 추한 섹스를 사랑이라는 묘약으로 승화시키고 정화시킬 수 있을 때, 섹스가 아름답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예요.”

강 교수는 어디에서 이런 이론을 정립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런 신념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고, 그를 평생 지키려는 사도처럼 보였다. 경아에게 그런 강 교수는 매우 성스러운 수도자처럼 보였고, 그 때문에 강 교수를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강 교수 역시 경아의 이런 순수한 모습을 좋아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는 잘 맞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만난 지 6개월이 지난 2월이었다. 강 교수는 부산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주말에 2박 3일 동안 부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입춘이 지나고 온천지에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겨울 동안 움츠러들었던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겨울은 그렇게 춥지 않았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눈도 별로 오지 않고, 그렇게 지나갔다. 강 교수는 일부러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부산까지 갔다.

최근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비행기를 타기가 꺼려졌기 때문이었다. 고속버스나 고속열차를 타는 것고 찜찜했다. 그래서 힘이 들었지만, 스스로 자가운전을 하고 먼 길을 갔다.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하면 참 기분이 좋다.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장시간 어디론가 향해서 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다. 고속도로를 달려보면 한국이 참 넓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참을 달려도 산이 계속되고,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도시를 지나게 된다. 가끔 넓은 들판도 눈에 띈다.

일본에 있는 지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 사람의 친척 부부가 크루즈선을 타고 여행을 갔다가 요코하마에서 내리지 못하고 묶여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친척 부부는 70살 가까이 되었는데, 평생 처음으로 부부가 크루즈여행을 갔다가 신종 코로라 바이러스 문제로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벌써 일주일째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배에 승선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감염자는 매일 늘어나서 지금까지 모두 174명이나 된다고 한다.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그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지인은 강 교수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도대체 이렇게 비인도적인 정부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무조건 배에서 내리게 한 다음 특별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런 전화를 끊고 강 교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인생이란 참 별 거 아니구나! 저런 일을 어느 날 갑자기 당할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다.’라디오에서는 ‘Dust in the wind'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부산에 도착해서 호텔을 잡았다. 강 교수는 다른 세미나 참석자들이 주로 머무는 호텔을 피해 일부러 해운대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놓았었다. 전염병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위축되어서 그런지 호텔도 무척 조용했다.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낮에 행사를 마치고 저녁 6시경 강 교수는 호텔로 돌아왔다. 운전도 장시간 했기 때문에 약간 피로를 느꼈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바에 들어가서 혼자 술을 마셨다. 8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경아였다.

“뭐하고 있어요?” “저녁 먹고 혼자 술 마시고 있어요?” “아, 그러세요. 저는 친구 전시회 때문에 부산에 와 있어요.” “부산에 왔어요? 나도 부산에 출장 왔는데, 지금 어디예요? 내가 그곳으로 갈게요.” “저는 지금 부산역에서 SRT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그 기차표 취소하고 기다려요. 내가 데리러 갈게요.”

강 교수는 택시를 타고 부산역으로 가서 경아를 데리고 호텔로 왔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지금까지 서로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했다.

강 교수는 술에 취했지만 일부러 방을 따로 잡아서 경아에게 혼자 자라고 했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이틀 밤을 같이 지내고 같이 강 교수 차를 타고 돌아왔다.


작은 운명 (30)

강 교수가 첫 번째로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달라붙는 여자 성경아(28세, 가명)를 성공적으로 떼어낸 과정은 이랬다. 당시 강 교수는 35살이었다. 강 교수는 아직 조교수 신분이었다. 그리고 한참 열심히 교수 일을 하고 있었다.

경아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술학원에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경아의 꿈은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서 화가로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려 주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었다.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아는 그림 그리는 것과 자신의 몸매를 가꾸는 것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틈틈이 프랑스어 공부를 했다. 파리에 가서 생활하기 위해서였다.

경아는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학교에 다니다가 우연한 기회에 강 교수를 만났다. 너무 매력적인 여성이 학교 앞 커피숍에서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강 교수가 먼저 말을 걸어 만남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강 교수가 매우 적극적으로 경아에게 접근을 해서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영화도 관람했다. 두 사람은 같이 미술전시회를 다니면서 서로 미술에 대한 의견 교환을 나누었다.

그 때문에 강 교수도 현대 미술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다.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하다 보니 강 교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보람 있는 일,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강 교수가 그동안 해왔던 경영학 공부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이고 연구였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되는 학문이고, 테크닉이었다. 하지만 미술을 달랐다.

그것은 원초적으로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하고, 특별한 달란트가 필요했다. 창의성과 예술성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다른 사람의 그림을 베끼는 작업은 열심히 노력하면 똑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추상화나 디자인은 달랐다.

강 교수는 경아의 재능과 열정을 인정하면서 더욱 그녀의 매력에 빨려들어갔다. 처음으로 여성의 정신만을 사랑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한편 경아는 그 동안 몇 사람과 연애를 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곧 바로 소개팅으로 만난 대학 4학년 미대생이었다. 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기본적으로 삶에 있어서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었고, 모든 말과 행동이 너무 천박했다.

그렇다고 남자다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 이외에는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은 것같았다. 인터넷으로 게임이나 하고, SNS를 통해 채팅이나 하는 것이 문자나 글을 대하는 유일한 시간 같았다.

반면에 세상일에는 도통해있었고, 정치적인 신념이나 이념에 대해서도 어느 한 쪽에 서서 맹목적인 신앙심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관계를 무리하게 감행하려고 했다.

경아를 만나는 목적이 오로지 성욕을 충족시키려는 발정기의 숫컷 같았다. 동물은 오직 생식의 목적으로만 성교를 한다. 성교라기 보다는 교미다.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교미를 하는 동물은 아직 없다. 경아의 지식이다.

그런데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경아는 그런 남자 친구의 태도가 아주 징그러워보였다. 때로 동물처럼 보였다. 동물과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경아의 인식이었다. 어느 날 남자 친구는 경아를 태우고 야외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강변에 차를 세워놓고, 처음에는 무드 있는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경치를 구경하면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한 30분쯤 지난 다음 남자는 차안에 보관해놓은 양주를 꺼내 안주도 없이 혼자 들이켰다.

그리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는 경아를 껴안았다. 그리고 키스를 하려고 했다. 경아는 놀랐다. 죽을 힘을 다해 뿌리쳤다. 그리고 침을 뱉었다. 차에서 내려 뛰어 도망쳤다. 그 남자는 그냥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나중에 소문을 들으니 그 남자는 그 날 술을 마시고 차를 운전하고 돌아오다가 사고를 내고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경아는 그 후 다른 남자를 만날 때, 첫 번째 경험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가급적 거리를 두고 만나면서 그 사람의 외모나 말, 행동 보다 내면의 수준을 먼저 생각했다. 깊이 있는 남자인가, 생각이 있는 남자인가, 머릿속에 무언가 들어있는가를 따졌다.

단지 운동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성욕이나 채우려는 동물인지 구분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개의 남자들이 그런 부류였다. 그래서 경아는 계속 만남과 이별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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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5)

강교수는 무서웠다. 지금까지 사우나에서 많은 문신을 보았지만, 이렇게 크게 무시무시하게 악마의 문신을 한 것은 처음 보았다. 뿐만 아니라, 사기꾼은 배꼽 바로 아래에 작은 글씨로 ‘선미경’이라고 써놓았다. 그것이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면서 “미경이 배에도 내 이름이 있어. 확인해 봐. 이 등신아!” 정말 충격이었다.

강교수는 그런데 미경의 배에 어떤 글자가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는데 이상했다. ‘도대체 내가 귀신에 홀린 것일까? 도대체 미경이란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이 남자와 짜고 내게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었나?“

강교수는 어쩔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성관계 횟수를 거짓말로 줄여서 계산을 해보니까 500만원이라고 하면서 사기꾼에게 500만원을 주겠다고 다시 각서를 썼다. ”본인은 귀하에게 선미경과 성관계를 한 데 대해 위자료로 500만원을 일주일 이내에 지급할 것을 약속합니다.“

사기꾼은 강교수에게 엄하게 타일렀다. ”앞으로는 절대로 부인 이외의 다른 여자를 만나지 말아요. 교수가 그러면 안 돼요. 교수는 사회에서 지도층 인사이기 때문에 일거수일투족을 모범적으로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비싼 등록금 내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어요? 학생들은 교수를 하나님처럼 받들고 믿고 배우고 있는 것 아니예요. 한번 더 나쁜 짓을 하면, 내가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당신을 매장시킬 거예요. 알았지요?“

사기꾼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적어도 군대에서 소대장 정도는 하지 않았나 싶었다. 강교수는 죽고 싶었다. ’내가 어쩌다 그 수준 낮은 미용실 원장과 연애를 하다가 이렇게 개망신을 당하고, 돈을 뺏긴단 말인가? 정말 사람 한번 잘못 본 죄로 이렇게 되었네. 쯧쯧...‘

사기꾼과 헤어지고 나서 강교수는 그 길로 미경을 만나러 갔다. 미경의 말을 들어보니 그 남자는 철저한 사기꾼이었고, 날강도였다. 그리고 미경의 배는 아주 깨끗했다. 나이가 50인데도 처녀 뱃살 같았다.

강교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오히려 미경에게 더 깊은 정이 갔다. 물론 500만원은 미경의 돈으로 강교수가 주고 끝을 냈다. 사기꾼은 500만원의 더러운 돈을 뜯어낸 다음에는 연락이 없었다. 아마 또 다른 사건으로 감방에 갔을 것 같다는 것이 미경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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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4)

강교수는 놀랐다. 지금까지 미경의 태도로 보아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남자는 미경과 연애를 하던 유부남이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돈이 많은 사업가인 것처럼 속였다. 명품 가방도 사주고, 다이아반지도 사주었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가방도 다이아도 모두 가짜였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미경에게 돈을 펑펑 썼다. 그렇게 믿게 한 다음, 미경에게 중국 사업에 투자하라고 해서, 돈 5천만원을 빌려갔다.

그걸 가지고 흥청망청 하다가 끝내 구속되어 징역을 1년 살고 출소한 것이었다. 출소한 다음 미경에게는 염치가 있어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소문을 들어보니, 미경이 대학 교수와 연애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기꾼은 강교수를 찾아가 공갈을 쳐서 돈을 뜯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강교수는 이런 것으로 문제가 되면 학교에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으므로, 일단 사기꾼이 요구하는대로 각서를 써주었다. ‘본인은 선미경을 만나 연애를 하였는데, 앞으로는 일체 만나지 않겠습니다.

만일 이 약속을 위반하면 민사형사상의 책임을 지겠습니다.’ 사기꾼은 각서를 받은 다음, 앞으로 안 만나는 것은 당연하고, 지금까지 남의 애인을 데리고 놀았으니, 손해배상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교수에게 그동안 미경과 성관계한 횟수를 물었다. 1회당 싸게 계산해서 10만원씩 내라는 것이었다.

강교수는 기가 막혔다. “도대체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에게 이렇게 공갈을 치느냐?”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것인데, 왜 관계한 것에 대해 돈계산을 당신에게 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사기꾼은 배에 크게 새긴 문신을 보여주면서, “그래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 모양인데, 돈을 주기 아까우면, 학교에서 만나자. 총장 앞에서 누가 옳은지 판결을 받으면 되니까. 나는 감방에서 있으면서 법에 대해 많이 공부했어. 왠만한 변호사보다 내가 법을 더 잘 알아. 남의 애인하고 공짜로 했으면, 당연히 돈을 물어내야지. 대학 교수가 그런 법도 모르면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교수 그만 두고 제비족을 하면 될 텐데.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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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3)

미경은 강교수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좋지 않은 이야기는 모두 빼고, 그냥 평범한 이야기, 열심히 살아온 이야기, 현재 최고경영자과정 다니면서 느끼는 보람 같은 이야기만 했다. 이혼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교수를 존경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강교수는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미경의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술이 너무 과한 것 같으니, 그만 집에 가라고 했다. 그리고 대리기사를 불렀다.

강교수는 자상하게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미경의 차에 같이 타고 미경의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주었다. 미경이 차 안에서 술 때문에 강교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 강교수는 가만히 받아주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강교수는 미경에게 가끔 전화를 해서 시간이 되면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어떤 때는 휴일에 강교수 차로 드라이브도 나갔다. 강교수의 매너는 너무 깨끗했다.

미경은 이처럼 지적인 남자는 처음 만나는 것이었으므로 곧 자신의 마음을 주고, 몸을 주었다. 강교수가 미경과 가까워진 이유는 미경에게 매우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미경과 대화를 해보면, 그녀의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미경은 지금까지 남자를 전혀 모르고 살아온 여자같이 강교수에게 느껴졌다. 강교수는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해보았지만, 미경처럼 속궁합이 잘 맞는 여자도 드물었다. 그래서 강교수는 더욱 많은 시간을 미경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남자가 강교수를 찾아왔다.

“당신은 교수로서 어떻게 남의 애인을 빼앗아 가로챘는가? 가만 두지 않겠다. 지금 당장 각서를 써라.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그렇지 않으면 학교를 찾아가서 개망신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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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2)

미경은 자신은 고졸학력인데, 어떻게 오빠와 같은 좋은 대학을 다니고 더군다나 나중에 판사가 될 사람인데, 어떻게 나와 결혼할 수 있느냐고 수십번을 물었다. 그랬더니 선우는 늘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남자와 여자는 학벌이 중요한 게 아냐. 사랑이 중요한 거야.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내가 고시 붙으면 너를 미국에 유학보낼게.’

미경은 선우의 말을 듣고 정말 잘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선우는 성욕이 매우 강한 남자였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온몸은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미경을 원했다. 미경은 미용실 일 때문에 무척 힘들고 피곤했지만, 선우가 원하면 죽을 힘을 다해서 그를 위해 몸을 바쳤다.

“오빠. 그런데, 자꾸 이런 데 힘을 쓰면, 공부를 하는데 지장이 있잖아?”
“아냐 그렇지 않아. 남자는 이것을 제대로 못하면 몸 콘디션이 좋지 않아 공부가 되지 않는 거야. 고시 붙은 사람들, 출세한 사람들은 모두 여자를 좋아하고 섹스를 좋아한다고 책에도 쓰여있어.”

미경은 선우가 고시준비생이므로 어떤 대학교 책에서 보고 그런 것으로 믿고 아무 불평 없이 계속해서 선우가 하자는대로 따랐다. 선우는 미경이 생리중인데도 그짓을 했다. 미경은 선우의 집안이 어렵다고 하니까, 선우의 자취방에 가서 빨래도 해주고, 생활비도 조금씩 대주었다.

선우를 경제적으로 도우려고 하니까 미경은 휴일도 없이 다른 사람보다 두배 일을 더 열심히 했다. 몸도 약한 데 그렇게 과로를 하니 자주 코피가 나왔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몇 년 있으면 판사 부인이 되어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미경에게 어느 날 청천벼락이 떨어졌다. 선우와 연락이 되지 않아, 선우의 자취방 주인을 찾아갔다.

“아 글쎄, 그 X이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어. 가짜대학생이었어. 전과자라고 하는데 대학생이라고 속이면서 사기나 친 거야. 내 방세도 떼어먹고 도망간 거야. 경찰관이 잡으러 왔는데, 그걸 낌새채고 밤에 모든 짐을 싸가지고 사라졌어. 학생도 무슨 피해를 봤으면 경찰에 신고해. 원 세상에 나쁜 사기꾼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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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91)

강교수와 미경은 분위기 있는 와인바로 가서 와인을 마셨다. 강교수는 술이 센 모양이라 아무리 술을 마셔도 전혀 취하지 않는 것같았다. 미경은 자신이 대학교수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미경의 입장에서는 대학교수는 그야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적 존재였다. 모든 행동도 모범적이고, 아무런 흠이 없는 존재였다.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아주 상대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면서, 분위기 있게 필요한 범위에서만 하고 뒷처리를 다하는 남자로 생각이 되었다.

미경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학에 대해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학생도 아닌 교수님이라니, 그런 하늘 같은 존재인 교수님과 자신이 단둘이 사적으로 만나서 와인을 마시는 영광을 얻었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미경이 이렇게 생각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미경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모님 생각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곧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에 다닌 다음 미용실에 취직했다. 미용실의 일은 힘들었다. 특히 처음에 보조로서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미용실원장으로부터 조금만 잘못했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손님 머리를 잘못 잘라서 쫓겨날 뻔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멋을 부리고 미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미용실 보조로서 일하고 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가끔 아는 친구들이 미경이 일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오면, 미경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그 친구가 갈 때까지 자리를 피하곤 했다.

원장은 이런 미경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그때에는 이미 미경이 필요한 입장이어서 그런 것을 문제삼아 내보낼 수도 없었다. 특히 미경의 학교 동창이 미용실에 손님으로 왔는데, 같이 온 남자 친구가 대학생으로서 두꺼운 대학교 교재를 몇 권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해 미칠 정도였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미경은 말하자면 자신이 대학교 3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남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선우라는 남자 아이는 당시 지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다. 그는 법대를 다니고 있었다.

미경은 그 남자와 6개월 동안 사귀었다. 그러면서 첫경험도 했다. 선우는 미경을 아주 사랑했다. 선우는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미경에게 고시를 붙으면 결혼을 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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