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90)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대학의 가을은 풍성하면서도 심오했다. 벤치에 앉아 있어도 깊은 사색에 빠져야했다. 교정에서의 삶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장서에 꽃혀있는 책들의 무게에 비례해서 삶은 바다 속으로, 심연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미경은 최고경영자과정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다가 오늘 같은 날에는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가 너무 서운했다. 그래서 혼자 벤치에 앉아 빨간 단풍잎과 진누런 은행잎을 보고 있었다. 벤치 아래로 떨어진 낙엽을 발로 비볐다. 바스락소리가 난다.

그건 낙엽이 보내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너는 아직 살아있는 거야. 무언가에 붙어있잖아?’ 이런 낙엽의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미경에게는 ‘매달려야 할’ 그 무엇이 없었다. 낙엽 때문에 순간적으로 진한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거야.’ 다시 낙엽의 무리가 외쳤다. 미경은 그런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했다. 더 진한 외로움, 더 가득한 울분이 안에서 치밀어올랐다.

낙엽은 학교 앞으로 걸어가서, 호프집으로 갔다. 젊은 학생들로 호프집은 시끄러웠다. 음악도 빠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는데, 가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인생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이 중요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그리고 그걸 하면 끝나는 거야. 왜 그렇게 심각한 거지. 이 바보야!’

힙합과 랩에서 가수는 미경을 향해 이렇게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경은 중얼거렸다. ‘여기가 한국인 거지? LA가 아닌 거야?’

미경은 혼자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로 취하려면 배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소주도 시켜 맥주와 섞었다. 안주는 노가리와 땅콩이었다. 미경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생은 상대적인 거라 어린 여대생들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 미경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닌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의 음성은 밝고 미소도 예뻤다. 미용실에 와서 자녀 자랑이나 하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경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한 시간쯤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있는데, 갑자기 강교수가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강교수는 미경을 보지 못한 채 호프집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막이로 들어갔다. 강교수는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과 일행이었다. 그 여학생은 호리호리한 키에 무척 지적인 얼굴이었다. 미경은 강교수를 보자 당황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야 하나? 아니면 나중에 인사라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술에 취해 재빨리 옳은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술을 더 마셨다. 술을 마시면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음주운전이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이 음주운전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까지 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머릿속으로 ‘정언명령’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면, ‘잠깐 운전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 이 시간 내가 가는 곳까지 단속반이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콘트롤이 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경은 전에 미용실 손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자 손님은 어느 날 술에 취해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탈 때는 정신이 들어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운전하시는 택시를 확인하고 탄 것 같았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잠이 깨어서, “아저씨, 지금 제가 어디 가는 거지요?”라고 큰소리로 물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 기사분은 깜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깜짝이야. 아가씨는 언제 뒤에 탄 거요?” 그 아가씨에 그 할아버지 이야기다.

그래서 때로는 남자와 여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같이 모텔에 가고, 그곳에서 서로가 무엇을 했는지도 불분명한데, 나중에 술에서 깨어난 여자가 ‘분명히 네가 술에 취한 나를 건드렸고 했을 거야!’라고 주장하면, 남자는 억울하지만 준강간죄로 징역을 가기도 한다. 서로 술에 취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여자로부터는 ‘성교에 대한 동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경이 혼자 술에 취해 테이블에서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는데, 갑자기 강교수가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강교수는 대학생 일행들과 간단히 이야기를 한 다음 술값을 내주고 집에 가려고 하다가 혼자 있는 미경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용히 그 앞에 앉아 미경이 술에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경이 잠에서 깨자 강교수는 미경을 데리고 부근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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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29)

강 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진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외국에 가서도 열심히 연구했다. 출세하기 위해 부잣집 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해서, 그 덕분에 미국 유학생활을 충분하게 했다. 자녀도 한 명 낳고, 겉으로는 멀쩡한 부인도 있고, 대학에서도 부교수까지 올라갔다.

속으로는 곪아터진 부인과의 결혼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부인의 과거 애인문제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깨질대로 깨졌다. 형식적인 부부생활만 아무런 애정 없이 하고 있었다. 그것을 트집삼아 강 교수는 밖에서 여러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

그렇다고 어떤 한 여자에게 완전히 파묻혀 인생을 걸 용기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은 용기의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연애하는 여자가 목숨을 걸만한 매력이나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고, 상대 여자도 마찬가지로 강 교수가 가정 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강 교수는 그런 자신의 모습과 상대 여자의 태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첫 번째 외도 때에는 약간 달랐다. 그때는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는데, 상대 여자가 미혼의 상태에서 강 교수에게 목숨을 걸었다.

특히 그 여자는 머리 좋은 인텔리였는데, 강 교수가 생애 첫남자라고 하면서 강 교수가 변하면 곧 생을 마감할 것처럼 강 교수에게 집착하고 매달렸다. 하지만 강 교수는 그 여자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잠자리가 별로 맞지 않아 늘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 입장에서는 여자와의 연애, 사랑은 기본적으로 육체관계가 서로 맞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오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이나 사상, 종교, 취미 등이 같거나 맞아도 그런 관계는 명학한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떼는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강 교수는 그 여자가 자살하거나 강 교수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고, 커다란 상처를 받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면서 강 교수와 헤어지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하고 행동으로 옮겨 마침내 서로 웃으면서 헤어지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그와 같이 그 여자와 헤어지는 이별의 과정 6개월 동안 너무 많은 고통과 위기를 겪고 마음 고생을 했다. 그 당시 6개월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강 교수는 오히려 그때 젊은 나이에 겪었던 경험이 두고 두고 여자를 만날 때, 여자와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지혜를 주고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강 교수가 그 여자를 떼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정말 많은 연구를 한 결과였기 때문에 사실 혼자만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는 아까울 정도였다.

강 교수는 그에 관해 논문을 쓰려고 했다. ‘상처 주지 않고 헤어지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심층적인 연구를 하려고 했다. 그에 관한 국내외 책과 논문, 자료를 수집해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론과 가설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논문은 결국 처음부터 이별을 목적으로 그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순수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연구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는 이별이란 그 자체로 모순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별은 사랑의 소멸을 뜻하는데, 사랑 자체가 사망하는데, 사랑이 받는 상처를 감소시키는 행위가 어떤 효과를 의미하는지도 애매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소멸시키는 살인행위에 있어서 그 사람에게 상처를 덜 가하는 것, 즉 상해의 결과를 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과 똑 같았다.

결국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지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이별을 막는 방법,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야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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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9)

그래서 이혼한 다음에도 대체로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전생에 무슨 잘못을 많이 했는지, 만나는 남자마다 시간이 지나면 실망스럽고 미경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해를 했다.

그리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때려부셨다. 그런 남자들은 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 성질대로 살고, 잘못되면 감방에 가도 좋다는 배짱이었다. 미경은 쉽게 그런 남자들을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 미용실을 크게 하고 있는 공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한번 이혼한 다음에는 더욱 그랬다. 남자 때문에 사회적으로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개 몇 달 사귀다 헤어졌다. 그리고 한 동안은 굳게 결심을 하고 죽을 때까지 남자 친구를 두지 않기로 했다. 몇 번이고 다짐했다. ‘앞으로 한번 더 애인을 두면 내 성을 갈겠다.’

미경은 언젠가 사주역학을 잘 보는 사람에게 찾아갔다. 가까운 여자 친구와 둘이서 사주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용하다는 역학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전생에 남의 첩으로 살았어. 그때 자네 때문에 본처가 제명에 못죽었어.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만났던 남자들이 다 놈팽이고, 건달이었을 거야. 그렇지? 뻔해. 내 눈은 못 속여.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놈들만 나타날 거야. 조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제명에 못 죽어.”

미경은 놀랐다. 지금까지 여러 사람을 만나서 자신의 사주와 관상, 과거와 미래에 대해 물어보았고, 들어보았지만, 지금처럼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추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남자를 만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평생을 혼자 살아야 해요?”

역학자는 잠시 눈을 감고 무엇을 따져보는 듯 했다. 그러더니 미경의 일행을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한 30분 정도 역학자는 방안에서 혼자서 큰소리로 기도를 하는 것같았다. 딸랑거리는 소리도 나고, 무언가 부르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런 다음 다시 미경을 들어오라고 했다.

“금년 가을에 괜찮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자네하고 잘 맞아. 그 사람을 놓치면 안 돼. 잘 잡아. 그 사람은 키가 작을 거야.”

미경은 이 말이 뇌리속에 박혔다. ‘금년 가을. 키 작은 남자!’ 무언가 운명의 기적소리가 들리고, 백마 탄 왕자가 몸을 단정하게 한 공주를 찾아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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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8)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싸움을 하면 대부분 말리는 사람이 있게 되고, 더 싸움이 계속되면 누군가 경찰에 112신고를 하게 된다. 그래서 싸움은 끝이 나고, 더 이상 피해는 진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부부싸움은 다르다. 말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만일 한쪽이 수그러들지 않고 죽기 살기로 대들면 싸움은 계속되고, 자칫 잘못하면 대형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

가끔 신문을 보면,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남편이 아내를 실컷 두들겨팬 다음 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 아내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도 있다. 그래서 부부싸움은 위험한 것이다.

결국 미경은 결혼생활 10년 만에 마침내 이혼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건달이 쉽게 협의이혼을 해주지 않는 바람에 변호사를 선임해서 10개월만에 겨우 이혼판결을 받았다. 이혼하면서 그때까지 번 돈 절반도 빼앗기고 말았다.

미경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도대체 법도 법이 아니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남자를 잘못 만나서 10년간 고생을 했는데, 무엇 때문에 재산을 분할 당하고, 이혼녀로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혼소송을 하면서 느낀 것은 판사들은 남의 아픈 마음을 전혀 헤아릴 의사가 없는 것같았다. 매우 기계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여자가 고생해서 번 돈과 남자가 번 돈을 아주 똑 같은 잣대로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미경은 이혼을 한 다음, 한 동안은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미용실에 단골로 오는 남자손님들도 이상하게 싫었다. 마지못해 남자 손님의 미용을 해주어도 속으로는 남자라는 동물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이 일었다.

그러다가 또 1년 정도 지나자 미경은 옛날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남자를 만났다. 이상하게 남자답게 거친 스타일에 쉽게 빠졌다. 미경이 넘어가는 남자들은 대개 이랬다. 별로 돈도 없고, 사회적 능력은 부족해 보이는데, 겉으로 매우 의리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호감이 갔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남자를 좋아했다. 머릿속은 비어 있는데, 술을 마시면 눈물을 흘릴줄 아는 남자, 여자가 속상해 하면 끝까지 옆에 있어주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걱정해 주는 남자, 그리고 운동을 좋아해서 근육이 튼튼한 남자, 골프에 미친 남자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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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7)

강교수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인생의 목표가 오직 돈과 출세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 여자도 추가되었다. ‘돈과 출세, 여자’ 이 세가지를 누릴 수 있는데까지 누려야겠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러면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강교수는 자신이 좋지 못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전임강사에서 교수가 된 다음부터는 학교에서 강의를 열심히 하거나 연구를 더 한다기 보다는 외부로 나아가 일반 기업체의 자문역할이나, 사회적 활동을 많이 했다.

그리고 방송에서 적극적으로 나가 얼굴을 많이 알렸다. 그런 까닭에 오직 교수로써 외골길을 걷는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 유명해졌고, 능력이 있는 것으로 과대포장되었으며, 경제적 수입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여자들이 따르게 되었고,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괜찮은 여자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강교수는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개설한 최고경영자과정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6개월 코스인데, 지역 사회에서 돈이 있고, 괜찮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남자와 여자가 섞여있는데, 여자들 역시 비즈니스를 하거나 사회적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최고경영자과정은 학문적으로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기 보다는 사교모임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들어온 선미경사장이 있었다. 당시 강교수가 45살이었고, 선사장은 50살이었다. 선사장은 미용실을 경영하는 원장이었다.

나이는 5살 위 연상이었지만, 선사장은 미용사로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외모나 몸매는 거의 연예인 수준이었다.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서, 골프도 잘 쳤다. 이혼하고 혼자 산다는 소문도 있었다. 강교수가 먼저 선사장에게 집적거렸다. 선사장은 가방끈이 짦아서 그랬는지, 대학 교수라고 하니까 무조건 존경하고 좋아했다.

그때까지 선사장은 이혼한 전남편도 건달이었고, 그 후 만난 몇 명의 남자들도 모두 건달들이었던 모양이었다. 여자가 미용사로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처음 남편도 부인에게 기대는 마음 때문에 그랬는지, 골프나 치러다니고, 하는 사업마다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잘 나가는 부인을 두고 있는 처지에서 느는 것은 폭력과 의처증이었다.

전 남편은 술이나 마시고, 와이프의 뒷조사나 하러 다녔다. 의처증은 참 무서운 질병이다. 남편은 심한 콤플렉스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미경을 의심했다. 새 옷을 사가지고 들어오면, 어떤 놈이 사준 것이냐고 밤새도록 들볶았다. 미경이 자신의 신용카드로 긁은 것이라고 영수증을 보여줘도 소용없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 X이 지 카드로 사줬겠어? 당연히 당신 카드로 긁게하고, 현금으로 당신 주었겠지.’ 그러면서 핸드폰의 통화기록을 확인하였다. ‘분명히 여러 차례 통화를 했겠지? 그리고 카톡을 했을 거야. 그런데 내가 볼까봐 집에 들어오기 전에 다 지웠을 거야? 누군가 말해! 그 X이 돈이 많은 X이야?’

이러면서 수사관처럼 밤새도록 신문을 하면, 미경은 그 다음 날 피곤해서 일도 제대로 못했다. 그리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의처증이 심해지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프로세스다.

그런데 부부 사이의 폭력은 폐쇄된 공간에서 시간의 제한 없이 이루어지는 무한게임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보통 싸움은 밖에서 이루어지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싸움이 벌어지면, 자연히 싸움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모이게 된다. 남들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처럼 재미 있는 일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묘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싸움을 구경하는 것, 불구경을 하는 것, 교통사고가 나서 부서진 자동차를 보는 것, 다른 사람이 사업하다 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것, 정치인이 잘난 척하다가 감방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을 즐겨한다.

사회 저명인사가 위선을 떨다가 가면이 벗거지고 추락하는 것을 보는 것, 바람둥이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고, 쾌감을 느끼고 즐긴다. 자신의 작은 행복보다 더 큰 위안을 주고,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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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6)

강교수는, ‘사람들의 수준은 이렇게 현저한 차이가 나는구나! 결국 끼리끼리 사는 것이 편한데,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과 맞추어 산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불가능하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민희는, ‘사람이 배워봤자, 거기서 거기지, 무슨 차이가 난다고 저렇게 교만하고 건방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런 강교수의 태도에 점점 정이 떨어져나갔다.

강교수는 이처럼 이지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이었지만, 반면에 여자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은 외계인의 수준이었다. 그냥 자신이 남자로서 열심히 일을 하고, 학교에서 인정을 받으면, 자연히 부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강교수를 남자로서 인정해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교수가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더 이상 처갓집의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강교수는 처갓집에서 그동안 도와준 은혜도 모두 망각했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장인이 돈을 번 과정이 정당치 않다고 비난하거나, 죽을 때까지 돈만 벌다가 죽으면 무엇하느냐는 어려운 종교적 질문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면서 강교수는 부인과 각방을 쓰면서, 가급적 늦게 귀가했다. 주로 학교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처음 결혼할 때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아이를 갖자고 약속했으나, 그 후에는 민희와 같이 공부에 친하지 않은 여자와 아이를 낳으면, ‘백치 아다다’의 소설 속 주인공이 호적에 올라갈 것을 염려해서 의도적으로 피임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민희의 옛 남자친구 때문에 며칠 동안 전쟁을 치른 다음, 뜻한 바 있어 혼자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런 사실도 민희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정관수술을 한 후에도 강교수는 민희와 잠자리를 할 때 가임기간인지 확인하는 제스처를 보임으로써 수술한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는 완벽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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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5)

옥자씨가 사랑하게 된 교수는 강철민이었다. 강교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와서 한 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지방 도시에 와서 교수가 되었다. 워낙 소신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해서 학교 재단측과 싸움이 많았다.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유학갈 돈은 없는 처지였다. 그때 어느 부잣잡 외동딸이 나타났다. 그녀는 공부를 싫어해서 고등학교때부터 늘 꼴찌를 맡아놓은 주인공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강교수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공부를 잘하는 머리좋은 강교수에게 모든 것을 바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집에서는 강교수를 사위 삼고 많은 돈을 들여 강교수 부부를 미국으로 보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가면서 강교수는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되자, 교만해졌고, 자기 부인을 지적으로 무시했다. 늘 와이프가 머리가 나쁘고, 공부는 못했고, 노는 것만 잘한다고 비아냥거렸다.

강교수는 시도 독일어로 된 시를 읽고 있었다. 음악도 클래식을 주로 듣고,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를 주도 다녔다. 그런데 부인은 한글로 된 시도 읽지 않고, 음악은 주고 70-80음악에 빠졌있었다. 오페라나 클래식 콘서트 대신 한국에서 대흥행을 이루는 영화를 주로 보았다.

몇백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는 히트작은 민희가 보지 않은 것은 없었다. 강교수가 싫어하는데도, 민희는 옆에서 자기 친구들에게 최근에 본 한국 영화의 스토리를 알려주면서 꼭 가서 보아야 한다고 선전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강교수도 마지 못해 한번 끌려가보았는데, 상영 도중 내내 눈을 감고 자다가 나왔다.

주인공 이름도 하나도 알 수 없고, 그들이 극중에서 하는 말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토리도 뻔하고, 대사도 유치했다. 그걸 진지하게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재미 있다고, 어떤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쳐다보고 있는 민희를 비롯한 젊은 남녀 쌍쌍의 모습을 보니 정말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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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6)

맹 교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남자가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하면 그 자체가 구속이고, 가정에 매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비록 신부는 되지 못했지만, 독신으로 지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을 하는 것이 꿈이고 소망이다.”

이런 말을 하는 맹 교수는 학생들에게 신부님처럼 순결한 이상주의자로 비쳤다. 맹 교수는 그래서 그런지, 강의시간에도 여학생들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학생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냉하게 대했다. 여학생이 교수실로 상담을 하러 와도, 반드시 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짧은 시간 상담하고 돌려보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도 소문이 나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맹 교수가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45살 늦은 나이에 어렵게 맹 교수 한명을 늦둥이로 나아서 애지중지 키웠다. 올해 85세인데, 맹 교수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5년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였다. 아버지는 그래서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자식들이 나타나서 상속권을 주장할까 봐 몇 년 동안은 아주 노심초사했다.

다행이 아버지는 바람은 많이 피웠어도, 재수없게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런 점에서는 아버지를 높이 평가했고, 존경했다.

주변에는 별로 재산도 없는 남자들이 무능력한 여자들을 건드려, 이른바 혼외자를 만들어서 깨끗해야 할 호적을 더럽혀놓고, 자식들간에 불화를 일으키고, 부인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천당도 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불행한 사례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맹교수의 어머니는 나이 50에 소위 말하는 과부가 되었다. 사실 과부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나이 들면 대부분 남편이 먼저 죽는데, 좀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었다고 50살이 된 여자보고 ‘과부’라고 부르면 기분이 좋을리 없다.

이혼해서 그렇건, 사별해서 그렇건, 남편이 없고 혼자 사는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다. 대통령을 지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전직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건 이해가 가지만, 영부인을 죽을 때까지 전직 대통령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맹교수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맹교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나서, 아들을 키우면서 커피숍을 했다. 뒤늦게 커피 배리스터 자격을 따고, 커피에 연구를 했다. 남편이 남겨 놓은 돈으로 가게를 작게 오픈했다.

그 가게는 지금 맹교수가 재직중인 대학교 정문 앞에 있었다. 비록 나이는 50살이었지만, 비교적 동안이었고, 아담한 몸매에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이 든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대학 앞인데도 시간이 가면서 젊은 학생들은 잘 오지 않고, 나이 먹은 대학 교수나 부근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주된 단골이 되었다.

맹교수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혼자 꾸준이 책을 보고 연구를 해서 문학이나 예술에 관해 대화를 나누어보면, 미국 유학을 3년간 엉터리로 다녀온 사람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고, 교양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좋아하는 대학 교수가 적지 않았다. 이들은 강의가 끝나면 커피숍에 와서 서너시간씩 혼자 않자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실상은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커피숍 주인인 맹교수 어머니를 지켜보거나 감상하는 것이었다.

젊은 대학생들의 관점에서 보면, 50살이 넘은 아주머니를 뭐가 좋다고 몇 시간씩이나 옆에서 보고 있느냐고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나이 든 남자와 나이 든 여자 사이에는 그런 묘한 감정의 기류, 전기가 통하는 모양이었다.

처음 1년 동안은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던 맹 교수 어머니 옥자씨도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움직여갔다. 특히 대학 교수라는 추상적인 관념의 이미지에 이끌린 것같다. 그녀는 마침내 60살이 된 교수의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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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운명 (85)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판세는 더욱 불분명해졌다. 처음에는 백상무와 정국영 두 사람이 각축적을 벌였는데, 시간이 가면서 맹공희 교수가 치고 올라왔다. 특히 맹교수는 젊고, 키가 크고, 인물이 좋아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나이 먹은 여자들도 그런 맹교수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 같았다.

맹교수는 40세의 나이에 시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백 후보와 정 후보 진영에서는 너무 나이가 어려서 무슨 시장을 하겠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50대 후반이나 60살이 넘어야 세상을 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면적은 64만㎢로 한반도의 2.9배, 인구 6,500여만명, GDP 2조7,900여달러로 세계 6위인 나라의 대통령이 될 때 나이가 40세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맹교수는 결코 시장이 되기에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맹교수 지지자들은 이제는 나이 든 사람들은 양로원이나 가 있어야지, 정치나 단체장을 한다고 머리 하얗고, 허리 구부정한 상태에서 옛날이야기나 하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수나 진보와 같은 이념적 대결이나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젊은 맹교수를 노골적으로 좋아했다. 그는 음성도 부드럽고 좋아서 아나운서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매사에 완벽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그는 주변에 모든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주택단지 내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경제의 민주화, 서민경제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자동차는 벤츠를 타도 다녔다. 그것도 빨간 색 벤츠였다. 대학에서도 그래서 학생들은 그를 BR이라고 불렀다. Bentz Red라는 뜻이었다.

대학의 신입생 중 일부는 선배들이 맹교수를 비알(BR)이라고 부르니까,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빌어먹을’이라는 비속어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입생들은 처음에는 맹교수가 강의도 잘 못하고, 인간성이 나쁜 교수인 줄 알고 있다가 시간이 가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빨간 벤츠’는 신세대의 성공 신화가 되었고,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다.

맹 교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고 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남자가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결혼하면 그 자체가 구속이고, 가정에 매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비록 신부는 되지 못했지만, 독신으로 지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많은 것을 하는 것이 꿈이고 소망이다.”

이런 말을 하는 맹 교수는 학생들에게 신부님처럼 순결한 이상주의자로 비쳤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맹 교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번도 성관계는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위행위 조차도 해보지 않은 신부님 이상으로 고결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다.

맹 교수는 그래서 그런지, 강의시간에도 여학생들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학생에게 일부러 거리를 두고, 냉냉하게 대했다. 여학생이 교수실로 상담을 하러 와도, 반드시 문을 열어놓고 가급적 짧은 시간 상담하고 돌려보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으로도 소문이 나있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맹 교수가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45살 늦은 나이에 어렵게 맹 교수 한명을 늦둥이로 나아서 애지중지 키웠다.

올해 85세인데, 맹 교수 아버지가 아들을 낳고 5년 만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였다. 아버지는 그래서 적지 않은 유산을 남겨놓고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아버지가 숨겨놓은 자식들이 나타나서 상속권을 주장할까 봐 몇 년 동안은 아주 노심초사했다. 



작은 운명 (84)

한편 백상무 후보에 대해서는 시청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뇌물을 먹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지역에서 오피스텔 허가를 내주면서 업자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친척의 이름으로 오피스텔 한 채를 공짜로 분양받았다는 소문이 났다.

이런 소문을 근거로 김민첩 사장은 공칠에게 이 사건을 신속하게 조사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김민첩 사장은 공칠에게 이 사건 조사용역비로 500만원을 개인적으로 주었다.

공칠은 지시에 따라 백상무 후보가 관여하였다는 오피스텔에 대한 심층조사에 들어갔다. 공칠은 경찰도 아니고, 감사원 공무원도 아닌데, 마치 자신이 무슨 대단한 권한이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조사해 들어갔다.

그러면서 지역 신문 기자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했다. 기자들도 아주 좋아했다. 뜨거운 선거판에 유력한 후보의 뒷조사를 한다고 하니, 특종 욕심에 들떠있었다.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공칠은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공칠은 이러한 증거를 곧바로 김민첩 사장에게 가져다주지 않고, 먼저 백상무 후보를 만났다.

“제가 이번에 이러 이러한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태양오피스텔사업과 관련해서 국장님으로 재직할 당시 2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오피스텔 한 채를 후보님 친척 명의로 공짜로 받은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자료를 정국영 후보에게 주어야 할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백상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저도 무척 괴롭습니다. 차라리 선거를 포기하는 것이 좋이 않을까요?”

“최 선생! 우리 이렇게 합시다. 지금 선생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모두 말밖에 없는 겁니다. 물적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 이런 문제가 터지면 큰일입니다. 내가 당선되면 선생의 은혜를 잊지 않고, 4년 동안 챙겨줄 테니 모든 걸 덮어주세요. 그리고 이 자료는 저를 주시면 어떨까요?”

“예. 알았습니다. 후보님. 저도 후보님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를 위해서도 후보님이 당선되었으면 합니다. 상대 정국영 후보는 워낙 지저분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칠은 이렇게 타협을 보고, 김민첩 사장에게는 껍데기 자료만 가져다 주고, 이 정도 자료만 가지고 문제를 삼았다가는 거꾸로 백상무 후보측으로부터 역공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김민첩 사장은 크게 실망했지만, 하는 수 없다고 단념했다.

지역에서는 정국영 후보와 백상무 후보 두 사람 모두에 대해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루머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지만, 이상하게 이번 선거에서만은 me too 운동의 영향력이 이 지역에서는 크게 미치지 않아서인지 두 사람의 여자문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보통은 후보로 나온 사람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가진 여자들이 들고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두 사람 모두 여자를 잘 다루었거나 관리를 잘 했거나, 적어도 이용해먹고 나몰라라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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