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

 

76일에 개최되는 사랑학 세미나 주제는 불행한 결혼 vs 행복한 이혼이다. 나는 이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 동안, “결혼과 이혼, 재혼에 대해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다.

 

특히 법에 대해서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내신 윤진수 변호사님의 가족법 강의 4개정판을 정독하였다. 그리고 결혼과 이혼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모두 읽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에서 영어로, ‘marrage’‘divorce’를 검색하면 수많은 자료가 나온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너무 많다.

 

프랑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쓴, ‘사랑의 역사를 다시 읽고 있다. 김영 교수님이 번역한 1997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책이다. 저자의 폭넓은 학문적 지식과 날카로운 해석능력에 감탄하고 있다.

 

저자는 사랑의 역사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실제로는 서양의 정신사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관하여 구약성경의 아가서부터 현대의 프로이트까지 철저하게 꿰뚫고 있다.

 

사랑과 결혼, 성과 이혼,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따지고 보면, 그 어느 것이나 지독하게 개인적인 것이며,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이고 기억이다.

 

모든 인간이 지극히 짧은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타인과의 우연한 만남, 지속되는 특별한 관계, 그 안에서의 갈등과 문제 해결, 그로 인해 얻어지는 희로애락, 실존의 결합과 해체 과정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적으로 만난다. 그 어떤 경우든 지구 상의 인구가 79억명이나 되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 성관계를 맺고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특히 일시적인 연애나 섹스를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결혼까지 한다는 것은 운명론에 의하지 않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운명이고, 이혼은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틀린 말이다. ‘결혼도 운명이고, 이혼도 운명이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

 

운명론이 아니고는 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오랜 기간 같이 붙어 살며, 자식까지 낳고 가정을 꾸밀 수 있을까?

 

그리고 운명이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지구 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남남이 되며, 냉정하게 갈라설 수 있는가? 이러한 만남과 헤어짐은 모두 운명일 것이다.

 

다시 결혼과 이혼으로 돌아가보자. 결혼은 서로 좋아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혼례를 치루고 혼인신고를 한다. 두 사람은 혼인서약을 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30년 넘게 생활해온 두 사람은 많은 면에서 다르고, 이질적이다. 근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다. 결혼생활은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하여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부는 서로 충돌하고, 갈등을 일으키며, 싸우게 된다. 서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면서, 서로 무시하고, 정신적으로 학대하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 정도 되면 서로 보지 않고, 기분 나쁜 관계로 정리하면 되지만,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집에서 24시간 지내야하며, 자녀 때문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안에서는 피터지게 싸우고, 밖에 나가서는 다정한 부부로서 행복한 척해야 한다.

 

이러한 모순된 행동, 위선과 가식이 계속되면 부부는 쌍방 모두 우울증에 걸리고, 이상심리가 되며, 두 사람의 삶은 불행해지고, 고통과 질곡에서 헤매게 된다.

 

이럴 때 두 사람은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혼은 이혼대로 말할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이 따른다. 때문에 이혼하기 전에 부부는 최선을 다해서 이혼하지 않고, 현재의 결혼생활을 바꿔서 정상적인 부부관계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첫 번째,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정말 짧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생백년이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가 100세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렇게 짧은 인생, 거대한 우주의 은하계에서 한 점 먼지 같은 지구상에서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도 ‘79억분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온 현재의 배우자와 다시 한번 화해하고, ‘원수에서 친구로전환하여 사는 것은 어떠한가?

 

두 번째, 자녀를 생각하면 함부로 이혼해서는 안 된다. 부부야 이미 살만큼 산 사람들이지만, 아직 자녀들은 어리고, 세상에서는 어린 사슴 새끼와 같다. 어미의 보호가 없으면 살 수 없다. 설사 산다고 해도, 얼마나 불쌍할까? 부부는 밉지만, 아무 죄 없는 자녀를 생각해서 그냥 참고 사는 방법을 연구해 보라.

 

세 번째, 성질대로라면 100번도 더 이혼하는 것이지만, 막상 이혼하면 지금과 같은 고물가시대, 불황기에 먹고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장사하면서 동업하는 경우에도 동업이 깨지면 두 사람 모두 망한다.

 

결혼은 단순한 동업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 재산, 자녀까지 함께 하는 완벽한 동업관계인데, 이것이 깨지면 동업자는 정말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손해본다.

 

네 번째, 싱글 라이프는 고독하고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둘이 오랫동안 같이 사는데 익숙해 있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로 그 많은 시간 외롭고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 견디기 어렵다. 혼자 밥을 먹는 것도 그렇다. 외식을 해도 혼자 가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봐라. 얼마나 멋쩍을까?

 

부부는 사실 친구처럼 짝이 되어 모든 것을 같이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목욕탕 빼고는 어느 곳이나 동행할 수 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생각하면 함부로 이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섯 번째, 이혼하면 건강관리를 하기 어렵다. 육체적인 건강도 그렇지만, 정신적인 건강이 문제다. 특히 나이 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우울증에 걸린다. 늙어 병이 들면 옆에 간병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부부만큼 편한 반려자는 있을 수 없다.

 

여섯 번째, 사랑이나 섹스를 좋아해서 혼자 살지 못하는 사람은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그러나 통계는 재혼 또는 삼혼의 실패율은 매우 높다고 한다.

 

그 이유는 초혼과 달라서 재혼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 자체가 그렇고, 이혼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 배우자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결혼생활에 실패한 원인이 있은데, 그러한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깨닫거나 고치지 못하고 재혼생활에 들어갔다가 또 다시 실패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혼 후 다시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일곱 번째, 이혼과정이 쉬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롭고, 어려울 수도 있다. 특히 합의로 이혼하지 않고, 재판까지 가면 문제는 달라진다. 두 사람 모두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리고 재산이 없는 부부의 경우, 이혼을 당하면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이혼하면서 부부가 서로 완전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여덟 번째,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하는 세상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이혼을 창피하게 생각하고 숨기려고 한다. 일부러 내놓고 밝히려고는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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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아주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잘 안 한다. 하더라도 아주 늦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결혼할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혼하려면 같이 살 집이 있어야 하고, 생활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도시 생활에서 혼자 사는 것은 그럭저럭 할 수 있어도, 두 사람이 같이 살려면 원룸에서 투룸이 되어야 하고, 생활비도 세배로 들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월급을 받아야 본인의 생활비로 쓰고 나면, 저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축을 해봤자, 은행이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몫돈을 만들기 어렵다. 몫돈을 만들어봤자.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집을 마련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요원해진다. 청년주택이고 뭐고 해봤자, 극소수의 몇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지, 대다수의 청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두 번째, 결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음에 들면, 진한 연애감정에 빠져 목숨을 걸만한 사랑을 하고, 그래서 결혼하려고 난리를 쳤다. 또한 육체관계를 하게 되면, 웬만하면 서로 정도 들고, 책임감 때문에 결혼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육체관계를 했다고 해서 꼭 결혼하고 연관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나 의식은 희미해진 것 같다. 육체관계를 했다고 해도, 서로가 좋은 것이지, 꼭 남자가 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념은 이미 구태로 변했다. 혼인빙자간음죄도 폐지되었다. 이제는 남녀 모두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 때문에 성관계, 육체관계는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으로서 자기책임의 문제로 돌아간다. 여자의 동의가 있었다면, 설사 임신까지 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여자가 남자에게 결혼하거나 평생 책임지라고 할 권리는 없다. 두 사람이 연애하고 사랑하다가 여자가 임신한 상태에서 남자가 연락을 끊어버리면 여자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된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다. 인터넷으로 채팅을 하면서 가까워져서 두 사람이 만난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성관계를 한다. 3개월 후에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낙태수술을 하라고 한다. 여자도 낙태수술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자가 수술비를 달라고 하자, 남자는 연락을 끊어버린다. 여자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변호사의 답변은 이렇다. “우선 형사문제는 되지 않는다. 남자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사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쉬워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결국 남자에 대한 심한 배신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고, 대인기피증세를 보인다. 아이를 낳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본인 돈으로 낙태수술을 한다. 몸도 망가지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주변 사람들은, 남자는 아주 나쁜 인간이지만, 여자도 바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우리 사회가 이러지는 않았던 것같다. 아무리 나쁜 인간이라도 여자와 연애하다 임신시켰으면, 적어도 수술비는 마련해서 대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새 일부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좋아서 연애한 것이고, 서로 섹스를 즐겼는데, 왜 남자 혼자 책임을 져야 하느냐? 여자, 네가 알아서 해라. 그리고 나를 만났을 때, 이미 너는 여러 남자들과 섹스를 했던 여자 아니냐? 이번 임신도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돈이 없다.” 이런 마음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여자 부모가 알면 어떨까? 얼마나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플까? 여자 아이가 철부지도 아니고, 저렇게 세상을 모를까? 그 나쁜 인간을 만나서 혼을 내주고 싶은데, 아무런 방법도 없다고 하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법은 왜 이런 것일까? 세 번째, 예전에는 결혼 이외에는 달리 성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요새는 꼭 결혼하지 않아도 남녀가 성생활을 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비교적 쉬워졌다. 물론 여기에서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돈 있고, 잘 났고, 능력이 있으면 섹스 파트너를 쉽게 구할 수 있고, 동시에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고, 잘나지 못했고, 능력이 없으면 섹스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재혼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는 남자는 쉽게 재혼할 수 있고, 더군다나 젊은 여자도 구할 수 있지만, 돈이 없는 남자가 상처하거나 이혼한 다음 밥을 해줄 여자를 찾으면, 보통 50년이 걸린다. 순수한 인간적인 정 때문에 무능력한 홀아비 밥해주고, 잠자리해줄 순정파 여자는 근대소설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일부 남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책임을지지 않는 범위에서 자꾸 여자들을 바꿔가면서 연애하고 섹스를 한다. 그런 맛에 결혼은 하지 않는다. 네 번째, 현대인들은 결혼이나 혼인이 법적으로 너무 심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의무나 책임, 구속을 귀찮아하고, 두려워한다. 결혼하면 좋은 점도 많지만, 그에 못지 않게 박탈당하는 자유가 많고, 꼼짝 못하게 하는 굴레를 쓰는 것이다. 결혼하면 개인의 자유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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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 때 자녀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부가 이혼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해서,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자녀들에게 부부의 이혼사실을 알려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한다.

 

두 사람이 자녀에게 이혼하겠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있다가, 자녀가 부부 이외의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부의 이혼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된다.

 

가능하면, 부부는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이 있는 자리에서 자녀에게 이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부부는 자녀에게 이혼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어야 한다. 이런 경우 가급적 우리(we)’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너무 많이 싸움을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부부는 자녀에게 자신들이 이혼하는 이유를 납득이 가도록 설명해주어야 한다. 부부는 자녀에게 상대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자녀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를 원한다고 해도, 부부가 상대에 대한 비난을 자녀에게 하게 되면, 자녀는 중간에서 매우 혼란스러워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혼하는 마당에서 무엇 때문에 이혼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혼하면서 자녀에 대한 보살핌과 지원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에 우선 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자녀 앞에서 부부는 더 이상 싸움을 해서도 안 되고, 큰소리로 시끄럽게 해서되 안 된다. 부부는 이 단계에서 자녀의 감정을 보호해야 하고, 자녀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어서도 안 된다.

 

자녀에게 앞으로 일어날 변화와 변하지 않을 것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특히 자녀는 앞으로 어느 곳에서 누구와 같이 살 것인지데 대해 가장 궁금해 할 것이다.

 

만일 자녀가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게 된다면, 자녀에게 부모 중 누가 집에서 나갈 것인지, 그 사람은 어디에서 살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자녀와 연락을 하고 소통을 할 것인지 알려주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가 이혼한 다음, 학교와 친구들, 일상의 활동 등이 현재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알고 싶어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부부는 확실하게 답변을 해주어야 한다. 부부가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해서는 솔직한 태도로 잘 모른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는 이혼하면서도, 부부는 모두 자녀들을 예전처럼 사랑할 것이며, 자녀에 대한 사랑이 부부의 이혼으로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혼하더라도 자녀는 부모 두 사람과 동시에 같이 살지는 않아도, 부모 두 사람은 각자 자녀와 늘 연결되어 있으며, 부모 각자 자녀을 사랑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소식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이혼 이야기에 대해 어느 한쪽 또는 부모 양쪽에 대해 화를 내거나 분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이것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만일 자녀가 부모의 이혼 발표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면, 몇 가지 대응방법이 있다.

 

부부는 먼저 자녀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도록 격려하고, 자녀들의 감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우리가 이혼한다는 것이 너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함으로써 자녀들이 이혼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녀들이 시간을 가지고 부모의 이혼 사실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 느낌을 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부 자녀들은 부모들이 이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녀들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부모가 이혼하려고 하는 것은 자녀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은 전혀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부부는 이혼하는 과정에서 부부 상대방에 대한 감정과 자녀를 보호하는 기술과는 구별하여야 한다. 비록 부부가 배우자에 대해서는 완벽하지 못했고, 불완전하며 잘못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관계에서는 훌륭한 아빠나 엄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에게 이혼소식을 알려준 다음, 자녀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자녀들에게 부모의 이혼결정은 확정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비록 자녀들이 부모가 이혼하지 않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를 바라고 원하다고 해도 부모는 이혼사실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사랑학이란 무엇인가?

 

사랑학이라 함은 사랑에 관한 모든 현상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사랑 현상(love phenomena)이라 함은, 인간이 사랑에 관하여 가지는 감정과 생각,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 사랑을 기초로 이루어지는 결혼과 이혼, 출산과 양육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사랑 현상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며, 법과 윤리, 사회의 보편적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개념은 매우 다양하며,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의 사랑은 사회학적, 심리학적, 성의학적, 윤리적, 법적 측면에서 각각 개별적으로 고찰된다.

 

사랑학은 가족학, 여성학, 사회복지학, 인간발달학, 정신의학에서의 성과를 기초로 통합적인 방식으로 연구해야 하는 학제적(interdisciplinary) 학문으로서의 특성을 지닌다.

 

사랑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사랑과 성을 통해 인간의 개인적인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사랑은 연애로부터 출발하여 결혼으로 연결되고, 자녀를 출산하여 가정을 이룬다.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좋은 상대를 선택하여 두 사람 모두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여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일부 사람들은 출발 자체부터 진실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사랑의 진행과정에서 변심하거나 변질되어 사랑이 불완전하게 끝나는 경우도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고, 애당초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하더라도 나이 들어 늦게 결혼하는 경우도 많다.

 

이혼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혼에 따른 자녀의 보살핌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사랑학의 목적은 간단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건강한 사랑,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있다.

 

또한 결혼해서 자녀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유지하는 방법을 함께 연구하는데 있다. 그리고 사랑의 일탈 현상에 대해 그 부작용을 살펴보고, 일탈행위를 방지하고, 일탈 후의 원상으로의 회복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다.

<사랑의 단상> (1)

 

현대 사회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 특히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서울의 한복판에 서면, 개인은 아주 초라하고, 정말 작은 개미와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남산에 올라가 서울을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 그 높은 123층의 잠실타워도 그냥 작은 막대기처럼 보인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숲도 내 작은 주먹안으로 잡을 수 있다.

 

<사랑의 단상> (2)

 

TV를 틀면 잘 난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여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이야기한다. 얼굴도 잘 났고, 음성도 매끄럽고, 매너도 좋다. 아는 것도 너무 많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AI 로봇이다.

 

오늘 서초동에서 택시를 타고 성동구청으로 갔다. 점심 식사 후에 택시를 탔기 때문에, 따뜻한 4월의 날씨에 졸음이 왔다. 졸리운 눈으로 창밖으로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차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사랑의 단상> (3)

 

택시 기사와의 짧은 대화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힘이 든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 “손님들이 줄었다나는 졸린 상태에서 나름대로 성의껏 대답을 한다.

 

차는 한강 다리를 건넌다. 시원한 강물을 보니 순간적으로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때문에 잠이 완전히 깼다.

 

<사랑의 단상> (4)

 

오래 전에 들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이 들어 사랑에 빠진 중년의 남녀가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처음부터 불안해하고, 만나도 행복하지 못하고, 늘 우울해하고, 끝내 두 사람 모두 공황장애에 빠진다.

 

두 사람에게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단순한 집착이고, 불행의 열쇠였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의 단상> (5)

 

스토리는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1년 만에 끝이 나는데, 그것은 남자의 아내가 상간녀를 본격적으로 괴롭힘으로써 불륜의 관계가 종식되고, 두 사람은 모두 헛된 사랑의 한계를 깨닫고, 사랑의 허망함과 인간의 연약함에 무릎을 꿇는다.

 

술을 마시면서 아주 지루하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는 그때 남녀 사이의 사랑이란 육체적으로 보면 아주 더럽고, 동물적인 섹스를 위한 욕정의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사랑을 했다고 하는 남자의 얼굴과 음성이 발정난 숫캐처럼 보였다.

 

<사랑의 단상> (6)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단순하게 사랑으로 인식하고 규정하는 것은 단세포적인 접근이다. 사랑은 섹스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섹스는 사랑이 아니다. 섹스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에서 모든 사랑의 불행은 시작한다.

 

사랑은 정신적인 작용이고, 정신의 영역에서 잉태되고, 성장하며, 소멸한다. 그런 사랑만이 영원히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자리잡고 기억된다.

 

<사랑의 단상> (7)

 

날이 갈수록 진정한 사랑을 찾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처럼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이가 없어지고, 유니섹스화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사회에 나와서는 남자와 여자를 성적으로 대하면 그 자체로 추하게 된다. 성희롱이 되거나 성추행이 된다. 스토커로 신고된다. 사랑을 함부로 표현되고 불법이 되는 세상이다.

 

<사랑의 단상> (8)

 

유일하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에서 얼굴을 보고 소통하다 보면 연애감정이 싹트고, 서로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간이고, 수많은 거짓과 위선, 가식이 판을 치고 있다. 실제 만나보면, 대부분 실망스럽고, 나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다. 신체적으로 건강한지도 알 수 없고, 심리적으로 정상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사랑의 단상> (9)

특히 사랑에 대한 그의 인식과 관념, 사랑에 대한 가치와 태도를 확인할 수 없다. 사랑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 그 사랑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것인지, 사랑 이외의 다른 가치와 비교하여 사랑에 얼마나 우월적 가치를 인정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뿐만 아니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섹스로 이어지는 모습도 사랑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현실이다.

 

<사랑의 단상> (10)

 

깊이 없는, 표피적인 육체적인 사랑에 쉽게 빠지고, 단순한 동물적인 욕정의 충족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사랑인 줄 착각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절망한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사랑을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너무나 불완전하고, 너무나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택시는 목적지인 성동구청 앞에 섰다. 나는 교통카드로 결제를 하고 내린다. 구청 건물에는 <서울 교육특구, 성동>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다. ‘그래, 교육이 중요한 거야!’ 나는 중얼거리면서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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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말 아픈 거야>

 

1.

사랑의 아픔이 아물기 전에 봄날은 오고

사랑의 슬픔이 잊혀지기 전에 봄날은 간다

 

2.

너 때문에 길잃은 사슴이 된다

너 때문에 짝잃은 기러기가 된다

 

3.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시간

우리 사랑은 꿈속에서 꽃길을 걷는다

 

4.

사랑은 가슴으로 짓누르는 거야

진물이 되도록 힘껏 짓눌러야 해

그리고 눈물로 사랑을 받아들이는 거야

 

5.

우리 사랑을 약속할 때 벚꽃이 피었다

우리 영원을 기약할 때 라일락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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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가능하다. 사랑을 쉽게 생각하고 도전하거나,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사랑이 진정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 너무 막연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냥 좋아하고, 성적 결합에 이르고, 결혼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사랑을 하려고 하며,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리고 진정한 사랑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이 필요한 것일까?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와는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다.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

- Erich Fromm,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황문수 옮김, 문예출판사, 5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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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공감, 공존>

 

<사랑할 때 상대를 소유하려 하지 마라. 소유는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관계다. 서로가 노력해야 유지되는 가변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때문에 일방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아가면서 따라서 움직여야 관계가 유지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적으로 많이 소외된다. 가족관계도 소원해진다. 예전의 부모 자식관계는 기대하기 어렵다. 형제간의 관계도 달라졌다.

 

모든 것은 자신이라는 핵이 중심이고 주체성이 매우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있어서도 상대방에 대한 의존심은 많이 감소되고 있다.

 

사랑도 소유 개념도 희미해지고 있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관계로서 만족해야 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가진 것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조건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상대방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관계가 끝나면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일반적인 우정과는 다르다. 본질적으로는 성적인 결합, 상호보충적인 기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에는 성적 욕망과 욕구가 반드시 뒤따르게 된다. 하지만 그 성적 욕망도 적절히 제어되지 않으면 결국 성적 욕망으로 끝나고 진실한 사랑을 상실하게 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지나치게 성적으로 탐닉해서는 안 된다. 사랑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다정함이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다정해야 한다. 서로가 정으로 연결되어 그 정이 끈끈하게 이어나갈 때 사랑은 자리를 내리고 뿌리를 내리게 된다.

 

 

성적으로 소유하려 하지 마라. 성적인 소유관계는 매춘이다. 성적인 관계에서 해방되라. 그래야 진정한 사랑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존재를 정신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롤랑 바르트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지 않고, 다만 가볍게 욕망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리는 다만 그 사람의 다정함만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도 다정해질 필요가 있다. 서로의 친절함 속에 갇혀 어머니처럼 서로를 보살핀다. 우리는 모든 관계의 근원으로, 욕구와 욕망이 결합되는 그곳으로 되돌아간다. 다정한 몸짓은 이렇게 말한다. 네 몸을 잠들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청하렴. 그러나 또한 내가 너의 그 무엇도 즉시 소유하려 함이 없이, 너를 조금, 가볍게 욕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 다오라고.>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319쪽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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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쾌락은 축제가 아니다>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성적 동작은 어디까지나 육체의 본능적인 표현에 불과하다. 육체는 몸으로 느끼는 쾌감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영속성이 없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만이 기억한다. 사랑의 감정을 오래 오래 저장해둔다. 그래서 정신적인 교감이 중요한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사랑은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고 있는 관계를 말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육체적인 결합은 그 사랑을 표현하는 동작에 불과하다. 그러한 사랑의 동작이 사랑 자체일 수는 없다. 롤랑 바르트가 지적하고 있듯이, 성적 쾌락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쾌락을 얻을 수 있어도, 곧 끝이 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성적 쾌락은 닫힌 축제다. 열린 축제가 아니다.

 

 

롤랑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성적 쾌락에 대해 설명한다.

 

<성적인 쾌락은 환유적인 것이 아니다. 일단 얻고 나면 끝이 나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닫힌 축제, 잠시 열린다 해도 금지에 의해 통제를 받는 그런 축제이다.

 

반대로 다정함은 무한한, 충족될 줄 모르는 환유이다. 다정한 몸짓이나 에피소드(어느 날 저녁의 그 감미로운 조화)가 중단될 때 내 마음은 찢어지는 듯하다. 모든 것은 의문시되며, 리듬의 회귀 - 윤회, 열반의 사라짐.>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319~320쪽에서 -

 

성적인 쾌락은 시간이 가면서 한계효용의 법칙에 의해 급격히 감소한다. 단지 육체적인 필요성에 의해 요구되는 제한된 것에 불과하다. 성적인 쾌락을 느꼈다 해도 그것을 오랫동안 기억 속에 간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성적인 문제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축제의 의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적인 쾌락에서 벗어나 근원적인 존재의 보완성, 영혼의 교감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육체보다 정신에 있다. 사랑을 하려면 동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물적 욕구, 성적 충동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사랑을 맛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먼 곳에 있어도 눈이 보인다. 사랑은 눈에서 시작한다. 선한 눈빛으로 사랑은 시작되고, 눈과 눈이 마주치면서 정이 든다. 눈에 깊이 자리 잡은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첫눈에 반한 사람과 사랑이 맺어진다. 먼 곳에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눈은 볼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눈을 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사랑이다.

 

눈을 감아도 미소가 보인다. 눈을 감고 있어도 보이는 세상이 있다. 눈을 떠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다. 은은한 미소, 그가 내게 주었던 다정한 선물이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웃음으로 보여준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멀리 있어도 음성이 들린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가 있다. 멀리 떨어지면 소리는 사라지고,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있어도 또렷이 들을 수 있는 음성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소리, 따뜻한 음성이다. 그 음성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고, 가슴 속으로 울려오는 메아리다. 꿈속에서도 그의 음성은 자장가처럼 노래한다. 사랑의 아리아가 주는 감동이다.

 

떨어져 있어도 촉감이 느껴진다. 딱딱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곳. 그의 가슴이다. 그곳에서 삶의 율동을 느끼며 생명의 빛을 발견한다.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오아시스의 생수 같은 촉감이다.

 

보지 않아도 영혼이 포개진다. 영혼은 서로를 간절히 원한다. 외로움을 견디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넣어준다. 사랑은 서로의 영혼을 바꿀 수 있게도 만든다. 그 사랑의 장력은 해와 달처럼 우리를 영원히 이끌고 있다. 그로 인하여 영혼은 쉴 수 있고 평안과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아름다운 슬픔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동행은 아름다운 꿈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여백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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